<마스터>, 영화는 어째서 현실에 미치지 못했을까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마스터>는 여러 가지 흥행의 기본조건들이 이미 기획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실제 사건으로서 희대의 금융사기꾼 조희팔을 모델로 한 이야기는 요즘처럼 현실에 민감해진 대중들에게는 충분히 유인이 될 만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마스터>에서 조희팔을 모델로 한 캐릭터 진현필 회장(이병헌)이 중요한 순간마다 꺼내드는 이른바 정관계 로비가 적힌 노트는, 최근 벌어진 엘시티 비리 사건에서 거론되는 이영복 회장이 갖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로비 리스트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진출처:영화<마스터>

영화가 아예 대놓고 썩은 머리 이번에 싹 다 잘라낸다라고 포스터에 캐치프레이즈를 담아 놓은 건 그래서 의도적이다. 관객들은 그 문구가 지목하는 비리에 연루된 정관계 인물들이 영화 속에서 통쾌하게 말 그대로 싹 다 잘려내지는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워낙 고구마 시국인데다 갈수록 답답해져가는 정국 속에서 영화를 통해서나며 어떤 카타르시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런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는 못한다. ‘썩은 머리를 싹 다 잘라낸다고 했지만 영화 속에서 머리는 목소리만 들려올 뿐 좀체 보이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금융사기의 꼬리에 가까운 진현필 회장만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정관계 로비 리스트가 적힌 노트를 입수했다는 사실은 무언가 그 썩은 머리를 향한 사정의 칼날이 날아갈 것을 예고하지만 어디 우리네 현실이 그런가. 결국 다된 수사처럼 보여도 썩은 머리들은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던 게 우리네 현실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마스터>는 심지어 이병헌, 강동원에 김우빈까지 캐스팅해 막강한 라인업이 잡아끄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내부자들>의 이병헌과 <검사외전>의 강동원 그리고 <기술자들>의 김우빈이 아닌가. 물론 캐릭터는 조금씩 변주되거나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이들이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아우라는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한 30분 정도가 흐르고 나면 어쩐지 이들 배우들의 매력이 좀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사건들을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사건에 인물들의 감정이 제대로 얹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강렬한 느낌이 없다.

 

이병헌은 확실히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딘가에서 봤던 캐릭터를 영화 속으로 그저 끌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마스터>의 진현필이라는 인물만의 독특한 개성 같은 것들이 잘 설정되어 있지 않아 악역이라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 이런 문제를 가장 크게 드러내는 배우는 바로 강동원이다. 사실 강동원 하나만 써도 티켓 파워가 어마어마할 정도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스터>에서 강동원이 연기하는 김재명이라는 형사는 그다지 인간적인 느낌도 없고 그렇다고 멋진 카리스마를 폭발시키지도 못한다. 그나마 영화적 재미를 주는 배우는 김우빈이다. 그가 연기하는 김장군이라는 캐릭터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오가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마스터>는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현실적 소재를 따오고, 제 아무리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캐스팅과 100억 대의 물량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야기와 장르가 제대로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때 얼마나 지루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최근 이병헌과 강동원 그리고 김우빈이 나왔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이들이 함께 모인 작품이 이렇게 지루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달라지고 있는 드라마 트렌드, 로맨틱하거나 발칙하거나

 

KBS <함부로 애틋하게>가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100% 사전 제작에 김우빈, 수지 주연, 스타작가인 이경희 작가가 참여하는 것으로 KBS 측도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100% 사전 제작은 오히려 작품을 중도에서라도 수정할 수 없는 한계로 드러났고, 김우빈과 수지라는 최고의 캐스팅은 그럼에도 안 좋은 결과라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너무 옛날 드라마 같은 설정들과 코드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물론 <함부로 애틋하게>가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주제의식이 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젊은 청춘들의 한판 대결구도가 이경희 작가 특유의 절절한 멜로로 연결됐다는 건 작품의 완결성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코드들이나 정서와 이 드라마가 너무나 달랐다는 점이다. 성패는 결국 거기서 비롯됐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방영될 때 등장한 경쟁작들을 보면 이 사전제작 드라마가 지금의 대중정서에 어떤 한계를 갖고 있었는가가 명확히 드러난다. 먼저 <W>를 보라.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지상파에는 어울리지 않는 드라마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만화적이고 나아가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 시한부 설정만으로도 마지막 새드 엔딩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도다.

 

<함부로 애틋하게>KBS라는 그래도 보수적 시청자들이 존재하는 채널에서 방영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호응이 없었다는 건 지금의 시청자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함부로 애틋하게><W>가 가진 그 발칙한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야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의 결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이 열광할만한 도발적이고 발랄한 상상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SBS <질투의 화신>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 <함부로 애틋하게>가 눈물 가득한 비극적 정조를 끊임없이 보여줬던 것과는 사뭇 다른 유쾌하고 웃음이 빵빵 터지는 전개를 보여준다. 가슴에 집착하는 여자 주인공과, 유방암에 걸린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들이 한 병실에서 만들어가는 상황들은 웬만한 코미디보다 훨씬 더 우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가볍기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질투의 화신>은 지독한 현실을 담아내기도 하고, 또 가족의 해체와 한 가장의 죽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비극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비극과 함께 존재하는 희극적인 면들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인물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면 눈물 날 정도로 가슴이 아프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 상황은 눈물 날 정도로 웃기는 희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함부로 애틋하게><질투의 화신>이 현실을 다루는 방식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무겁고 어떤 면에서는 비장함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접근방식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호응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드라마 한 편조차 잠시 간의 휴식이나 위안으로 기능하길 바랄 정도로 지금의 시청자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든 현실을 힘들게 드라마 속에서조차 보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작품이 보여준 결과들은 지금의 시청자들이 적어도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발칙하거나 아니면 로맨틱하거나. 발칙한 상상력을 끝없이 질주해나간 <W>, 비극성조차 웃음의 코드로서 전하는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 트렌드 속에서 <함부로 애틋하게>는 사전제작이라는 족쇄에 묶여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왜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까.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에, 가난하다 못해 처절한 여주인공과 최고의 위치에 선 한류스타, 게다가 시한부 설정까지 들어 있으니 이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를 그저 그런 틀에 박힌 멜로 심지어 신파로까지 여기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혹자는 우리네 드라마 시청자가 첫 회만 보면 그 끝을 쉽게 예측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니 <함부로 애틋하게>의 초반부는 함부로그저 그런 멜로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함부로 애틋하게>가 하려던 진짜 이야기들이 조금씩 고개를 든다.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경희 작가가 왜 틀에 박힌 설정들과 이야기들을 끌어왔고, 그것을 어떻게 뒤집으려 하는가 하는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건 드라마가 오해되는 게 못내 안타까워 제작사가 나서서 그 본래 의도로서 얘기했던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명쾌하게 어른들의 세상과 청춘들을 분리해 놓았다. 어른들의 세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최현준 검사(유오성). 그는 정의로운 척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 갖가지 부조리와 부정을 저지른 인물이다. 법을 운운하며 공명정대한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지만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걸 모른다. 그러니 법을 수호한다기보다는 법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게 그의 추악한 진면목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하나는 그에게서 자란 최지태(임주환)고 다른 하나는 그도 모르게 태어나 자라 스타가 된 신준영(김우빈)이다. 신준영은 엄마인 신영옥(진경)의 소원처럼 최현준 같은 검사가 되려 노력하지만 노을(수지)의 아버지의 죽음을 덮어버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최현준의 진면목을 보고는 흔들린다. 결국 아버지의 비리를 덮어주려다 노을을 죽일 뻔한 일을 저지르고는 검사의 길을 포기한다.

 

신준영은 아버지 최현준과는 달리 염치 있는 인간이다.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지만 바로 그렇게 저지른 실수 때문에 영원히 검사 자격 따위는 없다며 꿈을 포기한다. 그는 대신 한류스타가 되지만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꿈을 포기한 일은 그에게도 혹독한 벌을 내린다. 엄마인 신영옥이 그를 더 이상 아들로서 대하지 않는 형벌.

 

최현준의 또 한 명의 아들 최지태 역시 염치 있는 인간이다. 그는 아버지의 잘못을 알고는 노을의 키다리 아저씨로 살아온다. 그것이 자신이 대신 사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최현준이라는 어른과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염치없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최현준 같은 어른(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과 그로 인해 처절한 삶에 내몰린 노을(그녀가 영원히 을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어른을 아버지로 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대신 사죄하려는 최지태, 신준영이라는 청춘들.

 

여전히 최현준에 대한 환상을 저버리지 못하는 신영옥에게 아들 신준영은 그 실체를 고발한다. 그가 노을의 집안을 어떻게 풍비박산냈고 그로 인해 그들이 지금도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털어놓는다. 신영옥은 그제서야 충격에 빠진다. 평생을 기대왔던 믿음이 무너지는 충격.

 

최지태는 쫓겨나게 된 노점상들에게 그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아버지 최현준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법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런 최지태의 말을 최현준은 그런 경험조차 없는 그가 던지는 값싼 동정심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최지태는 최현준의 어머니 역시 노점상이었다며 그런 경험조차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를 오히려 비판한다. 신준영은 과거 노을의 아버지 뺑소니 사건 수사를 덮으라는 최현준의 명령을 불복해 불이익을 받은 최변호사(류승수)를 찾아가 그 과거의 진실을 다시 밝히려고 한다.

 

최지태와 신준영이 최현준과 맞서는 이유는 노을에 대한 애틋한마음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면서 연민이면서 동시에 동정이다. 그녀의 처절한 아픔과 고통을 도무지 저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최소한의 염치 있는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염치에 대한 것이란 걸 염두에 두고 바라보면 <함부로 애틋하게>가 왜 전형적인 신파 멜로의 틀과 상투적 설정들을 가져왔을까 하는 것이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신파 멜로의 틀이란 어찌 보면 기성세대들의 사고관이다. 기성세대가 어떤 아픔과 고통을 주고 그것에 저항하기보다는 내면화할 때 신파 멜로의 틀이 생겨난다. 고부갈등은 대표적이다. 그러니 이 기성세대의 사고관을 대변하는 전형적 신파 멜로의 틀을 가져오되 그것을 내재화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뒤집어 적극적으로 청춘들이 항변하고 저항하는 이야기를 담는 건 꽤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물론 <함부로 애틋하게>의 이런 전략은 결과적으로 보면 실패했다. 그것은 요즘의 시청자들이 너무 많은 드라마들을 접하고 있고 그래서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간과했기 때문이다.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뒤에 숨겨놓는 전략은 그래서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도 중반 이후를 통해 드러난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래 하려던 이야기는 나름의 재미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함부로 무치한사회에 대한 애틋한저항이다

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어떤 의미인가

 

멜로드라마에서 키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혹자는 사실상 멜로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남녀가 키스하는 그 순간의 달달함 때문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멜로드라마에서의 키스는 남녀의 관계가 좋은 감정 이상의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이고, 그로부터 멜로 특유의 행복감이 생겨나는 지점이며 또한 불안감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닥터스(사진출처:SBS)'

최근 부쩍 많아진 멜로드라마들에서 키스 장면이 만들어내는 관심거리와 화제는 그 드라마의 인기의 척도처럼 얘기된다. 이를테면 종영한 tvN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서현진)과 박도경(에릭)이 하는 키스신은 서로 치고 받는 격렬한 느낌을 줌으로써 큰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의 쌓여 있던 감정들과 그것이 풀어내지는 과정을 그런 독특한 키스신이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하는 키스신은 조금 어색하고 서툴러 더 설레는 장면이 되었다. 즉 한 번도 키스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떨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키스신은 <닥터스>가 그려나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주며 성장해가는 그 과정에 잘 걸 맞는 것이었다. 키스신조차 기분 좋은 경험과 배움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W>의 키스신은 작품의 성격에 맞게 맥락 없이자주 벌어진다. 즉 극중 여주인공인 오연주(한효주)가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에게 뜬금없이 키스를 해대는 것. 물론 그 이유는 그녀가 웹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려는 목적 때문이지만, 그런 잦은 키스신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급진전되었다. 유머 있고 위트 있는 키스신이 작품의 묘미를 한층 높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키스신은 자못 비장하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신준영(김우빈)은 자신이 점점 사랑하게 된 노을(수지)을 자꾸 밀어내다가 결국 기습키스를 하게 된다. 이 키스신은 신준영이 참다 참다 못해 내적으로 응축된 그 사랑을 폭발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으로서 임팩트가 있게 다가온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에서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그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인 김현지(김소현)가 귀신 보는 박봉팔(옥택연)과 키스를 우연히 하게 됐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일종의 핑계처럼 보이지만 이런 설정이 의외로 선선히 키스신을 가능하게 해 남녀의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드는 장치인 건 분명하다.

 

한편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공감 능력이 없는 이영오(장혁)가 계진성(박소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답변으로서 계진성이 이영오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아무래도 공감 능력이 없어 사랑의 감정은 물론이고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이영오에게 계진성이 한 걸음 다가가는 의미로서 키스신이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이처럼 그저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변주된다. 때론 의도적으로 관계를 급진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설정들을 통해 넣기도 하지만, 때론 향후의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 오히려 자제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키스신의 한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키스신의 반응은 그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를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W>는 멜로와 장르물을 제대로 엮을 것인가

 

MBC <W>의 방영으로 수목드라마 대전이 새롭게 시작됐다. KBS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격 멜로로 MBC <운빨로맨스>의 말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면, 그 후속으로 등장한 <W>는 또다시 <함부로 애틋하게>와의 일전을 예고하고 있다. <함부로 애틋하게><운빨로맨스>가 멜로 대 멜로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상대적으로 본격 스릴러 장르물인 SBS <원티드>는 그다지 큰 영향이 없었다. 시청률이 7%대를 줄곧 유지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W>의 등장은 <원티드>의 시청률에 적신호를 울리게 했다.

 

'W(사진출처:MBC)'

<W>의 첫 회 시청률은 8.6%(닐슨 코리아). <함부로 애틋하게>가 오히려 12.9%로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고 대신 <원티드>5.4%로 하강곡선을 그린 건, 다른 말로 하면 <W>의 방영이 <원티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즉 애초에 이종석과 한효주 캐스팅에 멜로 구도가 강할 것으로 여겨졌던 <W>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의문의 살인사건과 이를 파헤치려는 주인공의 스릴러적 요소들이 더 많이 보인 장르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본격 장르물을 그리고 있는 <원티드><W>의 대결구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W>의 첫 회가 장르물의 성격을 띠며 <원티드>와의 대결을 예고하고 있지만 계속 이 흐름이 유지될 것 같지는 않다. <W>는 첫 회에 이미 밑밥을 깔아 놓은 것처럼 웹툰 속 주인공 강철(이종석)과 웹툰 바깥의 의사인 오연주(한효주)의 멜로 역시 곧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수목 드라마의 삼자 구도의 색깔이 흥미롭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본격 멜로물이고 <원티드>가 본격 장르물이라면 <W>는 장르와 멜로가 섞인 복합 장르적 성격을 띠고 있다.

 

<W>가 가진 강점은 그래서 멜로와 장르물의 묘미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는 시청자들에게 훨씬 더 어필하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원티드>는 확실히 매 회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는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바로 이 점은 새로운 시청자들의 유입을 막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중간부터 보면 그만한 몰입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함부로 애틋하게>는 김우빈과 수지라는 캐스팅의 힘이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이야기가 너무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비판적인 시선들도 존재한다. 너무 익숙한 설정들이 반복되는 점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이다. 게다가 너무 드라마가 무겁다는 반응은 요즘처럼 답답한 현실에 정서적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끌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보면 <W>는 확실히 타 방송사 두 드라마의 중간 정도 위치에 서 있어 잘만 장르를 운용한다면 괜찮은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W>의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웹툰이라는 가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판타지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작품이 판타지를 통해 어떤 현실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장르의 혼합은 좀 더 지켜봐야 그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스릴러적인 요소들이 주는 쫄깃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밀고 당기는 멜로가 균형 있게 그려질 수 있을지에 따라 그 성패가 갈라질 수 있을 것이다

김우빈, 수지라 가능한 <함부로 애틋하게>의 옛 감성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까칠한 톱스타 남주인공,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가난한 여주인공, 남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부모와 얽혀 원수지간이 된 남녀, 일주일간의 계약연애 등등. KBS <함부로 애틋하게>에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너무 익숙한 설정들과 클리셰들이 가득 하다. 익숙한 설정과 클리셰는 그만큼 극적 상황들을 손쉽게 만들어낸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투성 때문에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이러한 익숙한 극적 상황과 상투성은 향후 드라마가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를 쉽게 예측하게 만들기도 한다. 까칠한 톱스타인 신준영(김우빈)과 가난한 여주인공인 노을(수지)은 악연으로 얽혀있지만 함께 다큐 작업을 하면서 가까워질 테고, 그렇게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두을 갈라놓는 상황들(이미 들어가 있는 시한부나 부모 간의 악연, 나아가 빈부 격차까지)로 인해 안타까워질 것이다. 만일 시한부 선고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드라마의 비극적 엔딩은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보여주는 이런 익숙한 전개들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그리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한다.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면들은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게다가 드라마의 판타지를 통해 짧아도 어떤 위로와 위안을 그 때 그 때 받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비극의 비장함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제목이 담고 있듯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건 함부로라도 애틋함을 그려내는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시간을 되돌려 현재의 상황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오래도록 보여준다. 고교시절로 돌아가 노을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거를 들춰보고, 20대 시절로 돌아가 신준영이 자신의 친부가 노을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증거물을 빼앗으려다 노을이 사고를 당하는 끔찍한 순간을 돌아본다.

 

드라마가 애틋함을 만들어내는 건 그 사람의 아픈 삶을 하나하나 새삼 들춰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길거리에서 지나쳤다면 몰랐을 사연들을 알게 되고 다시 돌아보게 되며 나아가 걱정하게 되는 것. 그것이 애틋함의 실체다. 요즘처럼 쿨한 세태에게 그래서 애틋함이란 감정은 다소 옛날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함부로 애틋하게>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는 지점은 그 애틋함을 절절한 휴머니티로 느끼는가 아니면 올드한 감성으로 느끼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건 이러한 옛 감성을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설득하는 일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과거로 회귀해 당대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금의 시청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그 옛 감성이 주는 따뜻함같은 것들이 어떤 위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그러나 그 옛 감성이 따뜻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익숙한 비극 속에서의 애절함이나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트렌디한 부분은 김우빈과 수지다. 이야기는 옛 감성으로 가득 차 있고 설정도 익숙하지만, 그걸 연기해내는 인물들이 다름 아닌 김우빈과 수지라는 현 세대의 시선을 잡아끄는 인물이라는 것. 그래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까칠한 스타 역할이 조금은 새롭게 보이고, 얼굴에 잔뜩 낙서를 해놓고는 그걸 보고 웃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들의 트렌디함은 과연 <함부로 애틋하게>의 옛 감성을 살려낼 수 있을까. 지금의 시청자들은 과연 김우빈과 수지를 통해 함부로 애틋해지는 감정에 빠져들 수 있을까

<함부로 애틋하게>, 김우빈과 수지의 냉소적 사랑

 

너 나 몰라?” “알아 이 개XX.”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렇게 호통치고 욕하는 걸로 과거의 관계를 현재로 이어나갔다. 눈이 쌓인 혹독한 겨울, 얼마나 걸어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도로 위를 노을(수지)은 비틀대며 걸어가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발견한 준영(김우빈)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냥 돈이나 몇 푼 집어 던지고 돌아서려던 그였지만, 그녀의 무언가가 그를 잡아끈다. 그건 다름 아닌 애틋함이다. 그 애틋함이 함부로그의 가슴을 건드린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에서 노을도 준영도 한가한 사랑 타령을 하기는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노을은 아버지가 뺑소니를 당하고 어이없게 다른 사람이 대신 뺑소니범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돈이면 뭐든 함부로되어버리는 현실을 알아버린다. 죽은 아버지 앞에서 고인에 대한 애도는커녕 그 자식들에게까지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려는 빚쟁이들처럼. 현실은 그렇게 냉정하기만 하다.

 

준영의 엄마 영옥(진경)은 가방끈 짧다는 이유로, 검사가 된 최현준(유오성)에게서 스스로 물러나 그의 아이인 준영을 혼자 키워낸다. 영옥은 준영을 검사 만들어 그의 아버지인 현준에게 자신이 아들을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준영은 검사가 되진 못했다. 대신 톱스타가 됐지만 그것 때문에 엄마인 영옥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채 1년을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톱스타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고, 게다가 유일한 세상의 끈인 엄마와 데면데면한 준영에게 사랑 따위는 사치스런 이야기다. 죽은 아버지에게서 빚만 잔뜩 물려받은 노을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하는 세상 중의 을이다. 그녀 역시 사랑 같은 건 다른 나라 이야기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그녀가 툭 내뱉은 알아 이 개XX.”라는 말 속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냉소와 함께, 그에 대한 일말의 마음 같은 것이 들어가 있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준영과 을이 보여주는 냉소적인 시선은 사랑 따위는 개나 줘버릴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건 돈이거나 스펙으로 모든 게 결딴나는 그런 세상이다. 돈만 있으면 뺑소니를 쳐 사람을 죽이고도 다른 사람을 대신 감옥에 가게하고 자신은 해외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세상.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어린 자식들이 그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 그런 세상. 돈과 권력이 있는 집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정의롭게 행동하고도 벌을 받아야 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사랑 따위의 감정은 허위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함부로 사람에게 예의 따위는 차리지 않는 세상 앞에서 준영은 막돼먹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노을은 돈 앞에 기꺼이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비굴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진심일까. 어쩌다 보니 스스로를 막 대하게 된 청춘들의 작은 반항이 아닐까. <함부로 애틋하게>는 그러나 바로 그런 세상 속에서 여전히 남은 작은 희망을 바로 그 사랑이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어찌 보면 요즘 세태와는 조금 다른 옛사랑의 느낌이 묻어나는 건 그래서다.

 

애틋하다애가 타는 듯이 깊고 절실하다는 뜻이다. 주로 사랑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지금의 청춘들에게 애틋함이란 어쩌다 보니 가져서는 안 되는 현실 속에서 함부로쑥 들어오는 그런 감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함부로 들어온 감정은 넘어서는 안 된다 여겨왔던 그 선을 넘게 됨으로써 더더욱 애틋해진다.

 

<함부로 애틋하게>의 조금은 구식처럼 보이는 옛 사랑은 과연 시청자들에게도 어떤 선을 넘어 애틋하게다가올 수 있을까. 함부로 슬금슬금 넘어오는 이 사랑이야기가 어쩌면 희망 없는 세상에 작은 훈훈함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김우빈, 준호, 강하늘, <스물>이 보여준 가능성들

 

이들에게 이런 면들이 있었나. 영화 <스물>에서 우리가 늘 봐왔던 김우빈이나 준호 그리고 강하늘의 모습은 조금 낯설어진다. 어딘지 반항기 가득한 김우빈이 이토록 병맛 코드로 웃길 줄 누가 알았으랴. <상속자들>에서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들던 그 대사도 멋지게 소화해내던 그 김우빈은 <스물>에서는 입만 열면 섹스하자고 외치는 반전의 허당으로 관객들을 웃긴다.

 

사진출처:영화<스물>

2PM 준호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다. 물론 <감시자들> 같은 영화에서 이 친구 연기 가능성이 좀 있다고 생각했던 관객이라면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무릎을 쳤을 지도 모른다. 준호는 <스물>에서 힘겨운 청춘의 삶에서도 순수하고 순진하며 긍정적인 동우 역할 그 자체처럼 보인다. 그가 이유비(소희)와 만들어가는 풋풋한 이야기 속에서 준호라는 괜찮은 연기자의 틀을 발견하게 된다. 연기톤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준호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어딘지 조금은 재수 없던 <미생>의 스펙남 장백기로 강하늘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분들 역시 <스물>을 통해 그가 천상 연기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 한 번 못해본 쑥맥 경재라는 청춘을 연기하며 강하늘은 한없이 망가진다. 그 망가짐이 장백기의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강하늘의 연기 스펙트럼이 의외로 넓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스물>은 코미디다. 물론 청춘의 고달픔을 그 이면에 깔고 있지만 그걸 영화는 그다지 전면에 내세워 쓸데없는 진중함에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청춘을 다룬 영화의 패턴이 초중반까지 시종일관 웃기다가 후반에 이르러 눈물로 마무리 짓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는 끝까지 코믹함과 경쾌함을 잃지 않는 추진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영화가 청춘의 문제를 지나치게 무겁게도 또 가볍게도 다루지 않으려 고민했다는 증거다.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은 그래서 우습지만 그 이면에 짧은 페이소스 같은 걸 남긴다. 물론 결말은 통상적인 성장 드라마를 취하고 있다. 스물이라는 청춘의 고단한 터널을 넘고 나면 거기서 새로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걸 영화는 밝은 전망으로 그려낸다.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생각해보면 너무 경쾌한 것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청춘이 가진 긍정을 비관적으로만 다룰 필요는 없는 일 아닌가. 적어도 스물이라면 그 때만이라도 아픔마저 좋은 시절로 기억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영화의 힘은 다름 아닌 김우빈, 준호, 강하늘 같은 출연자들에게서 나온다. 이들이 보여주는 스물의 풋풋함은 그 시절을 한참 지나온 중년들에게도 훈훈한 미소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성격도 너무나 다르고 사는 환경도 제각각이지만 우정이라는 관계로 똘똘 뭉쳐져 있는 이 세 사람의 모습은 청춘만이 가진 힘이자 특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직은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나 끈끈한 우정으로 묶여질 수 있는 그들이 하나의 판타지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청춘의 면면들을 각자 가진 색깔로 연기해낸 김우빈, 준호, 강하늘의 지분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다.

 

막장드라마들 속 <참 좋은 시절>의 가치

 

착한 여잔 나쁜 남잘 좋아해 왜. 나쁜 남잔 나쁜 여잘 좋아해 왜. 그래서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해. 근데 너는 이런 내 맘을 몰라 왜.’ 최근 발표된 2NE1착한 여자라는 곡이다. 노래가 말해주듯이 요즘 착하다는 것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나쁘다는 것이 쿨하고 세련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한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줄곧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가치로 세워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열광이 더 두드러진다. <학교 2013>에서 이종석만큼 주목을 끈 김우빈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울분 같은 걸 보여준다. 김우빈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상속자들>을 통해서 그 매력을 폭발시켰다. 최근 <사남일녀> 같은 가족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고 있는 김우빈은 오히려 이 나쁜 남자 이미지로 고정되는 자신을 부담으로까지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나쁜 남자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이 진짜 악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나쁘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상처받은 착한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나쁘다는 건 캐릭터의 능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나 <나쁜 남자>의 김남길처럼 재력이든 능력이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쁘게 행동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 즉 나쁘다는 건 성공한 자, 혹은 가진 자의 자신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선의 가치가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착한 드라마들은 독하디 독한 막장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KBS의 새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대해 낯설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거꾸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독한 드라마들에 중독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이전 동시간대 드라마였던 <왕가네 식구들>은 그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 때문에 막장 논란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다. <왕가네 식구들>의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의 이 착함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세컨드와 함께 가족을 이뤄 생활하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서로를 챙겨주기 바쁜 며느리와, 권위라고는 손톱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자애롭다 못해 연민마저 느껴지는 시아버지,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이 집에 맡긴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사는 여인이나, 어찌해 갖게 된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못하고 동생이라 부르며 사는 그 여인의 아들 또한 그 밑바탕에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오로라 공주>처럼 툭하면 작가의 손에 의해 인물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와는 정반대다. <참 좋은 시절>에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이미 <고맙습니다>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경희 작가는 선의 가치를 믿게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마치 세상에 매력적인 착한 남자는 없다는 세태와의 정면대결을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극이고 일일극이고 할 것 없이 막장이 창궐하며 선의 가치보다는 악의 가치를 세련됨의 상징이나 되듯이 보여주는 요즘의 세태에 이 드라마는 어딘지 투박해보여도 정감이 가는 참 좋음의 가치를 새삼 드러내준다. 선하다는 건 진정 한물 간 가치가 아니다. 다만 난무하는 자극이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폭력과 금력 미화하는 <상속자들>, 뭐가 문제일까

 

때로는 드라마 작가에게 능력이 오히려 독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상속자들>이 그렇다. 드라마만을 놓고 보면 <상속자들>은 재벌2세와 가난한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다. 지금껏 김은숙 작가가 계속 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고 또 가장 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속자들(사진출처:SBS)'

“나 너 좋아하냐?” 같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대사 톤도 여전하고, 밀고 당기며 때론 아프고 때론 달달하게 이어지는 멜로 역시 꽤 강한 극성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 강민혁 같은 아이돌 스타들의 존재감은 어찌 보면 늘 봐왔던 김은숙 표 멜로의 역할 놀이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어찌 보면 이들이 있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구석들, 이를 테면 지나친 우연의 반복이나 제국고등학교 같은 과장된 설정들이 그나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상속자들>은 전형적인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가 있다. 마치 아이돌 팬시 상품 같은 느낌이랄까. 김탄(이민호)이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을 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풀빌라에서 사는 모습은 그가 아무리 유학이 아닌 ‘유배’라고 말해도 보통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의 하나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김탄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제국고등학교는 ‘사탄들의 학교’라고 일컬어지지만, 가진 자들의 재수 없음의 이면에는 고등학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으리으리한 환경과 커리큘럼에 대한 막연한 동경 역시 깔아놓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 막연한 동경 속에 자꾸만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행동들마저 도취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영도(김우빈)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그가 단지 가난하고 클래스가 다르다는 이유로 준영(조윤우)이 같은 아이를 구타하고 왕따시키며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장면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시선은 왕따 당하는 준영이의 입장보다는 왕따시키는 최영도의 입장에 가 있다. 물론 현재는 달라졌지만 김탄 역시 과거에는 최영도와 다름없는 캐릭터였다. 이 드라마는 이 부유한 친구들이 소위 고통이라고 부르며 그것 때문에 폭력과 금력을 쓰는 것들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다. <상속자들>에 붙어있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는 제목에는 이들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게 되어 있는 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고통’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가 다루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그 고통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상속자들>의 김탄이나 최영도처럼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대부분 아버지의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해 콩가루 집안이 된 가족사에서 비롯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왕관을 쓰려는 자’들의 고통을 다루는 일이 과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왕관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현실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아마도 이들 ‘왕관을 쓰려는 자’들은 드라마가 슬쩍 보여주는 것처럼 거의 상류층 1%에 해당할 것이다. 상류층 1%의 고통을 얘기하는 드라마는 어쩌면 그 자체로 나머지 99%를 그저 배경으로 치부하면서 이 1%의 세계가 가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은상(박신혜)은 바로 그 99%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으리으리한 저택의 메이드룸에서 살고 있다는 공간 설정 자체가 이 인물이 처한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차은상이라는 인물이 이 부유한 저택에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시키는 심부름을 해야 하고 명령에는 오로지 예스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그녀에게 김탄과 최영도가 조금씩 빠져드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왜 그녀에게 이토록 목매게 되는지는 잘 설명이 되어있지 않다.

 

그 이유를 드라마는 클리쉐로 넘겨버린다. 우연적인 만남의 반복과 왠지 모를 끌림이라는 상투적인 방식이다. 김탄은 갑자기 차은상에게 “나 너 좋아하냐?”고 묻고는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최영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략결혼으로 이복동생이 될 지도 모를 유라헬(김지원)을 열 받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인 차은상에게 갑자기 관심을 갖는 식이다. 즉 이 모든 멜로의 키는 가진 자들이 쥐고 있다. 그들은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현실에 처한 차은상에게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혹자들은 결국은 신데렐라 판타지를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해 너무 심각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벌가의 신데렐라 판타지를 즐기기에는 이미 현실이 너무 많은 재벌가들의 문제를 드러내주었다.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이나 특목고 에서 벌어진 사배자 전형의 편법 운용 같은 사례는 심지어 대중들의 공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근 재벌가를 다루는 드라마들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아마도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추적자>가 권력이 가진 힘과 싸우는 한 서민을 통해 정의의 문제를 제기했다면, <황금의 제국>은 그 재벌가가 가진 태생적인 비극을 다루었다. 하다못해 <결혼의 여신> 같은 드라마도 재벌가 판타지를 오히려 깨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던가.

 

김은숙 작가처럼 멜로를 잘 쓰는 작가도 없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잘 쓰는 것이 작가의 품격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자칫 능력은 오히려 잘못 사용되어지면 파괴적인 힘이 될 위험성이 있기 마련이다. <상속자들>에서 폭력과 금력이 이른바 그들의 고통이라는 근거로 미화되는 것은 그래서 제 아무리 판타지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라고 말하지만 지금의 힘겨운 현실에서 왕관을 쓰려는 자의 고통이란 엄살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개념이 잘 보이지 않는 <상속자들>. 재미만 있다고 모든 게 다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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