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한 현실마저 무화시킨 <판타스틱>의 판타지

 

나는 암환자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음으로 두려운 것도 없다. 후회? 그런 거 할 틈이 어딨어? 흑역사? 만들면 좀 어때? 오늘의 선물꾸러미는 오늘 다 풀어서 누리는 찬란한 지금을 살겠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후회 없이 저지르며... 가장 젊고 아름다운 오늘을 충분히 만끽해야지!’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의 이소혜(김현주)는 마치 다짐하듯 그런 글을 적는다. 글 제목은 ‘Fantastic’이라 쓰려다 고쳐 쓴 ‘FantastiCancer’.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그녀는 왜 ‘Fantastic’‘cancer’를 붙여 ‘FantastiCancer’라 제목을 붙였을까. 글 내용 속에 들어가 있듯 ‘cancer’가 그녀의 현실이라면 그걸 받아들이는 그녀의 자세는 ‘Fantastic’이다.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도 없고 후회할 틈도 없는 삶. 그래서 온전히 지금의 현재를 만끽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삶. 그녀가 암환자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몰랐을 찬란한 지금의 소중함. 그래서 삶의 판타스틱과 죽음은 어쩌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 그런 의미들이 그 제목에는 담겨있다.

 

<판타스틱>이라는 드라마가 말하려는 건 그래서 그 많은 불치병 소재의 콘텐츠들이 하려던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지금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다르게 느껴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비극적 정조를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판타스틱한 삶의 즐거움쪽에 훨씬 더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처럼 발랄하고 유쾌한불치병 소재의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됐다.

 

이소혜는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삶이 훨씬 더 풍부해졌다. 마음 속에 두고는 있었지만 과거의 오해 속에 멀리 했던 남자 류해성(주상욱)과 다시 가까워졌고 그 진심을 알게 됐다. 학창시절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살다보니 소원해진 친구들도 다시 만났고, 암 동지 홍준기(김태훈)를 통해 어차피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똑같은 사람으로서의 공감과 삶의 긍정 같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녀가 비로소 자신의 삶을 판타스틱이라고 적을 수 있게 된 건 실로 그 암환자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다.

 

류해성 역시 이소혜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사랑을 더 굳건하게 확인하게 됐다. 그에게 암환자라는 현실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그녀가 앞에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하루하루를 그녀의 행복을 위해 채워나가려 노력하게 됐고, 그러면서 우주대스타에 발연기로 살아가던 삶이 비로소 진정성을 갖게 됐다. 삶의 무거움을 비로소 알게 되면서 그의 가벼움은 진짜 가벼움이 아니라 그 무거운 현실을 이겨내려는 안간힘으로 바뀌었다. 힘들어도 긍정하며 살아가려는 경쾌함 같은.

 

두 사람의 죽음을 옆 자리에 둔 사랑은 그래서 현실의 복잡다단한 문젯거리들을 오히려 무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류해성의 과거를 공개해 모든 걸 망치려는 전 소속사 대표 최진숙(김정난)이나, 그로 인해 공들여 만든 드라마가 조기 종영될 위기에 처하게 된 현실 같은 것들이 물론 그들을 곤욕스럽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문제가 이제 그리 큰 일이 아닌 것처럼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난다. 이소혜가 말하듯 후회할 시간도 없고 흑역사 따위 만들면 좀 어떠냐는 그런 태도. 그들 앞을 가로막는 막장의 갑질 현실은 물론 힘겹게 넘어서야 할 산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 앞에 그리 중대한 사태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판타스틱>의 이런 시각은 막장의 현실들에 대해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효과를 준다. 어차피 다 똑같이 떠날 삶에 왜 그토록 막장의 삶을 살아가는가 하고 말이다. 물론 죽음 같은 이별이 아프지 않을 리 없다. 다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이소혜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다.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좋은 이별도 없다. 하지만 사랑이 충만한 따뜻한 이별은 있다.’ 

<판타스틱>, 멜로 말고도 판타스틱 했던 순간들

 

그래 미쳤다. 이 집구석에서 1초도 제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지. 니들이 10분 안에 마셔 없이 이 와인 한 병 값이 우리 엄마 수술비였어. 당신 장모 목숨이 이 와인보다 못해? 이 와인이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해? 그런 주제에 뭐? 정의를 구현해? 당신들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런데 내가 왜죽어? 이때까지 등신같이 살아온 게 아까워서 앞으론 멋지게 살거야. 최진태 씨 우리 이혼합시다.”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입만 열면 막말하는 시어머니에 마치 종 부리듯 부려먹는 시누이, 게다가 부부강간을 시도하고 아내 앞에서 버젓이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에서 며느리가 쓰는 돈은 몇 만원도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자신들은 수천 만 원짜리 와인을 즐기는 비정상적인 시월드에 많은 시청자들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을 참기 어려웠을 게다. 물론 극화된 것이겠지만 이런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갑질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집안의 모습은 서민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갑갑함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장모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돈 타령만 늘어놓고, 자기들 제사상 차리는 게 더 우선인 이 시월드에서 수천 만 원 짜리 와인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문을 나선 백설(박시연)은 마치 하녀복처럼 입고 있던 한복 차림을 벗어던졌다. <판타스틱>이라는 드라마가 제목처럼 판타스틱 해지는 순간. 시청자들은 사이다 한 사발을 마신 듯 속 시원함을 느낀다.

 

물론 <판타스틱>은 암 선고를 받고 삶을 더 판타스틱하게 살아가게 되는 드라마작가 이소혜(김현주)와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는 자칭 우주대스타 류해성(주상욱)의 멜로가 중심 스토리지만, 때때로 그 멜로보다 더 속 시원한 사이다 장면이 눈에 띈다. 그건 이 드라마에서 이른바 갑질 하는 인간들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백설의 시댁 인물들에게 한 방을 먹이는 반전이 등장할 때이다.

 

이 시월드의 시누이 최진숙(김정난)이 돈과 감언이설로 이소혜의 보조작가인 홍상화(윤지원)를 끌어들이려 할 때 거꾸로 홍상화가 그녀에게 한 방 먹이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최진숙이 건네는 명품 백에 김치 국물을 쏟아 부은 홍상화는 이렇게 일갈한다. “최진숙! 넌 정말 썅년이야. 이딴 가방은 너나 들어! 이게 뭔줄 아냐? 니가 한 말 여기다 다 녹음 떴거든. 개망신 당하기 싫으면 당장 정정기사 내고 우리 이작가님한테 사과해. 아니면 오늘밤 인터넷에 이거 다 뿌릴 거다. 알았냐?”

 

법 좀 안다고 툭하면 고소를 해서 고소부인이라고도 불리는 최진숙이 그건 불법 녹취로 증거가 안된다고 말하자 홍상화가 또 한 방을 날린다. “나 법대 4년 다닌 사람이야. 통신비밀보호법에서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을 처벌하고 있거든. 대화 당사자 본인이 포함된 대화 녹취는 불법이 아니다. 아셨어요? 이 무식한 고소부인아!” 돈도 법도 서민들의 것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아닌가. 의리를 저버리지 않은 홍상화의 일갈이 판타스틱한 사이다로 다가온 건 당연한 일이다.

 

<판타스틱>이 이소혜와 류해성의 판타스틱한 멜로만이 아니라, 백설의 시월드를 굳이 집어넣은 건 이 드라마가 다른 한 편으로 담고 싶은 판타스틱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돈과 권력으로 이뤄진 비정상적인 관계를 깨치고 그걸 뛰어넘는 인간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다. 백설의 시월드 탈출과 이소혜와 류해성의 최진숙과의 관계 청산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해줄 판타스틱한 이야기의 또 한 면이 된다. 적어도 드라마에서라도 속 시원한 사이다 전개를 볼 수 있기를.

<판타스틱>, 주상욱 판타지가 통하는 까닭

 

나 우주대스타 류해성 유서를 남긴다. 이소혜와의 지난 100년은 행복했다. 12명의 자식들과 50여명의 손주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너희들과 함께 한 시간 즐거웠다. 100편이 넘는 훌륭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기뻤고 특히 시작과 끝을 갓소혜 작가의 작품으로 할 수 있어서 우주 최고로 행복했다. 30여개의 남우주연상 감사합니다. 특히 오스카는 기억에 남네요. 아 칸느와 베니스 영화제도 좋았습니다... 제니퍼 로렌스, 스칼렛 요한슨을 비롯한 할리우드 여배우들 이제 나 좀 그만 미워해. 나한테 이소혜 뿐인 걸 어떡해.’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유서라고 하면 어딘지 침울해질 것 같지만 이 남자 유서로도 웃긴다.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의 류해성(주상욱)은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소혜가 쓴 유서를 보고는 자신도 유서를 남긴다. 그런데 그 유서 내용이 엉뚱하다. 그건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유서를 빙자해 앞으로 올 미래를 마음껏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서를 통해 현재를 정리하기보다는 미래를 계획한다. 향후 100년은 이소혜와 행복하게 살 것이고, 우주대스타라는 칭호에 걸맞게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라고.

 

물론 그건 꿈같은 이야기고 현재의 발연기를 살짝 넘어서 그나마 손연기정도를 하고 있는 류해성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한 바탕 마음껏 상상해보는 건 자유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읽어본 사랑하는 사람이 유서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류해성의 말도 안 되는 유서는 그래서 말이 된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비장함을 한결 덜어내는 일이 유서를 미리 써보고, 관 체험을 하는 이른바 웰다잉의 전제조건이니.

 

<판타스틱>이 암 선고를 받은 이소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어두워지고 무거워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가 쓰러지고 상태가 안 좋아지만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여기 류해성이라는 발연기 자칭 우주대스타라는 캐릭터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긍정적이고 밝은 데다 심지어 자기애가 우주적이라 함께 있는 사람들을 결코 비장함이나 진지함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마음 아파하고 힘겨워 할 수 있는 상황들을 그는 애써 밝게 만들어낸다.

 

이소혜의 무거움을 류해성의 가벼움으로 중화시키는 <판타스틱>의 균형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이 깨지게 되면 지나치게 무거움 속으로 가라앉거나, 혹은 너무나 가벼워 들여다볼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류해성을 발연기 액션 배우로 세운 점은 꽤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가 만약에 이토록 심각한 상황을 정극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한없이 죽음이라는 무거움 속으로 침잠하지 않았을까.

 

만일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고 우리가 거기 주인공들이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떤 연기를 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진지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일일 수도 있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진지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상황에서는 발연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무거움을 깨는 류해성의 발연기는 그 어떤 정극의 그것보다 더 유쾌하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판타스틱>의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류해성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죽음으로 상정되어 있지만 그 같은 절박하고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해성처럼 웃음을 주는 존재는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다. 힘겨워 유서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유서조차 미래에 대한 황당하지만 낙관적인 계획들로 채워주는 인물. 류해성이 가볍고 발연기를 하는 캐릭터라도 판타지로 다가오는 이유일 게다

<판타스틱>, 시한부에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에서 이소혜(김현주)는 말기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인물이다. 시한부라는 설정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입견을 불러일으킨다. 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시한부라는 사실을 숨긴 채 상대방을 밀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버킷리스트를 적고 실현해가는 이야기다.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사실 무수히 많은 시한부 설정의 이야기들을 봐온 시청자들에게 이처럼 두 가지의 선입견이 먼저 떠오른다는 건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반복됐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이 두 이야기 설정에 극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복된 이야기는 식상하다. 제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계속 내놓으면 물리기 마련이다.

 

<판타스틱>이 초반 일찌감치 이소혜의 시한부 판정을 드러내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에 가까운 긍정적이고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간간히 이소혜에게 엄습하는 암의 징후들이 불안감을 형성했지만 예전에 좋아했지만 헤어졌다 다시 만나게 된 류해성(주상욱)과의 밀고 당기는 관계는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고, 오랜만에 다시 결합한 학창시절의 3인방 이야기는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소혜에게 급성 폐렴이 오고 혹 같은 걸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됐다고 하자 그녀는 돌연 류해성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에게 자신이 홍준기(김태훈)와 사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선을 긋는다. 그러면서 상처받은 그가 영 마음에 걸려 홀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건 전형적인 시한부 설정의 멜로 구도다. 사실 요즘의 시청자들은 이렇게 가슴 아파하고 숨기고 눈물 흘리는 시한부 설정의 고구마 멜로는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 어찌 보면 이야기의 위기 상황에서 <판타스틱>을 구원해낸 건 다름 아닌 주상욱이다. 우주대스타 류해성을 연기하는 그는 이소혜의 절친인 미선(김재화)네 부부를 찾아와 상심을 술주정으로 풀어낸다. 그의 조금은 과장된 연기는 침잠하던 드라마를 그나마 다시 발랄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만들었다.

 

물론 이야기의 구성상 이소혜가 류해성에게 자신의 시한부 사실을 알리게 되는 계기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너무 질질 끌면서 숨기고 아파하고 상대방도 힘들게 만드는 전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게 아니다. 차라리 빨리 모든 걸 드러내고 힘겨워도 유쾌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펼쳐나가야 훨씬 흥미로워질 수 있다.

 

주상욱의 존재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만일 그런 캐릭터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일 주상욱이 과장된 연기로 만들어낸 류해성이란 캐릭터가 없었다면 <판타스틱>은 그저 그런 드라마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시한부 멜로에 시댁에 구박받는 며느리의 복수극 같은 이야기의 반복.

 

하지만 우주대스타 류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한부 멜로가 어떤 양상으로 달리 보일지 기대하게 되고 또 이소혜와 그녀의 친구인 백설(박시연) 그리고 그 자신도 얽혀 있는 절대 갑질녀 최진숙(김정난)에게 어떻게 판타스틱한 응징을 할 것인가가 기대된다. <판타스틱>이 시한부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긍정적인 우주대스타 주상욱이 절실하다.

<판타스틱> 박시연, 그녀의 반전을 기대하는 까닭

 

요즘도 저런 시댁이 있을까. JTBC <판타스틱>에서 백설(박시연)의 시댁은 이른바 명문가. 그녀의 남편 최진태(김영민)는 로펌 사장이고 그녀의 시누이인 최진숙(김정난)은 아도니스 엔터의 대표다. 이 집안은 정치인인 미도(채국희)와 가깝게 지냄으로써 최진태는 정치계에 입문하고 최진숙은 사업을 키워나가려 한다.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 집안에서 백설은 이름에 걸맞는 공주가 아니라 거의 하녀나 다름없는 존재다. 시어머니는 툭하면 백설의 집안을 비하하며 막말하고, 남편 최진태는 심지어 미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장면을 백설에게 들키기까지 한다. 이 집안에서 백설을 가장 구박하는 존재는 시누이 최진숙이다. 그녀는 백설에게 하녀 부리듯 밥 차려라, 술 내와라 심지어 외출할 때는 신발 꺼내놓으라는 명령까지 내리고, 최진태가 그래도 미안한 지 아내에게 용돈을 주려 하자 버릇 나빠진다며 돈을 빼앗기까지 한다.

 

시댁에서 구박받는 며느리의 이야기는 사실 조금 구세대의 구도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 과거 드라마들의 대부분이 고부갈등을 담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 자체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런 구박받는 며느리의 이야기가 어딘지 납득이 가는 건 이것이 단순한 고부갈등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갑질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고부갈등은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갈등을 빚는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판타스틱>의 백설이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이 명문가라는 번지르르한 집안이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애초에 없는 안하무인의 갑질 가족이라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갈등이 아니라 마치 사람을 사람 취급 안하고 거의 노예 취급하는 착취와 학대에 가깝다.

 

물론 <판타스틱>의 주인공은 이소혜(김현주)이고 그녀가 말기암 선고를 받고 달라진 삶을 선택하며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그 주된 줄거리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만큼 강력한 힘을 내재하고 있는 건 바로 이 백설의 이야기다. 한 때는 이소혜의 둘도 없는 단짝으로 그녀의 보디가드를 자처했을 정도로 잘 나가던 그녀가 어쩌다 이 막장 집안에서 제복 같은 한복을 입고 하녀처럼 살아가게 되었을까. 그 한복을 벗어던지고 대신 집안을 박차고 나와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해방감은 이 드라마가 가진 또 하나의 재미다.

 

백설이 살고 있는 이 시댁의 모습은 이 작품의 연출자인 조남국 PD가 과거 연출했던 <황금의 제국>의 그 갑질하는 집안을 그대로 닮았다. 요즘은 과거 같은 고부갈등의 이야기는 더 이상 그다지 큰 공감대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갑질에 가까운 시댁의 횡포에 당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시댁이 아니라 마치 천민자본주의의 시스템을 가족의 틀에서까지 내재화한 이른바 비뚤어진 상류층의 역겨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집안으로부터 탈주하는 백설의 이야기는 그저 고부갈등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천한 자본의 힘만을 믿고 갑질 하는 자들에 대한 통쾌한 한 방으로 다가온다. 멋진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올 그녀의 반전을 간절하게 기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판타스틱>, 같은 시한부라도 <함틋>과는 다른 까닭

 

JTBC 새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에서 여주인공 이소혜(김현주)는 시한부다. 그녀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게다가 그녀는 가족들 때문에 힘겨운 상황이다. 형부 때문에 집까지 잡혀먹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그녀의 언니는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그럭저럭 드라마 작가로서 잘 살아가고 있던 이소혜지만 그녀의 삶은 지금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대체로 이 정도 상황이면 눈물 쏙 빼는 비극이 그려져야 할 텐데 어찌된 일인지 <판타스틱>이 제목이 그런 것처럼 전혀 무겁지가 않다. 오히려 유쾌한 분위기가 이런 비극적 상황 자체를 압도한다. 이소혜는 시한부라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물론 좌절하지만 그렇다고 시종일관 찌질하게 울고 짜고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훌훌 털어내고 어차피 죽어질 몸, ‘판타스틱한 남은 삶을 살아보려 한다.

 

이미 이소혜의 주변에는 그 판타스틱한 삶을 함께 인물들이 포진되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둘도 없이 삼인방으로 지내던 친구들, 백설(박시연)과 미선(김재화)이 그 첫 번째 인물군들이다. 이들과의 우정은 마치 영화 <써니>를 떠올리게 한다. 죽음에 임박한 친구가 옛 친구들을 찾는 그 영화 속 이야기처럼 <판타스틱>은 이제는 제각각 살아오며 저마다의 문제를 갖고 있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 우정을 재확인하고, 그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 지금 그들이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모습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의 많은 얽히고설킨 문제들은 어찌 보면 살면서 생겨난 관계들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 문제 속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 <판타스틱>은 소혜가 갖게 된 시한부라는 설정을 통해 이를 훌쩍 뛰어넘으려 한다. 특히 정략 결혼한 백설이 시댁에서 마치 하녀처럼 사는 삶은, 시한부를 통보받은 소혜를 통한 각성을 통해 향후 친구들과 함께 이 삶을 떨치고 나오는 극적인 이야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인물군은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이다. 우주대스타 류해성(주상욱)은 이소혜와 과거 오해 때문에 안좋을 일을 겪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마음을 주는 인물이다. 진정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이 캐릭터는 그래서 <판타스틱>이라는 드라마를 한없이 가볍고 유쾌한 코미디로 만들어내는 인물이지만, 적어도 그녀에 대한 마음만큼은 진지해 보인다. 발연기의 대명사 같은 캐릭터로 느끼함이 하나의 코믹한 캐릭터로 만들어진 류해성이란 인물은 <판타스틱>이 시한부라는 무거움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중요한 존재다. 물론 이소혜와의 내일 없는사랑 역시 기대되지만.

 

한편 류해성과 연적 관계에 놓인 괴짜의사 홍준기(김태훈)는 그 역시 암 선고를 받은 캐릭터로 이소혜와는 소울메이트가 되는 인물이다. 동병상련의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홍준기와 이소혜는 그만큼 거침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또한 점점 이소혜를 사랑하게 되는 홍준기는 그녀 주변을 맴도는 건강한 남자 류해성을 질투하고 대립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소혜의 시한부 삶이라는 무거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판타스틱>은 그녀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과의 판타스틱한 남은 삶의 이야기를 담는다. 시한부라고 하더라도 그걸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긍정적이다. 마치 이 드라마는 우리네 삶이 누구나 다 시한부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것은 KBS <함부로 애틋하게>가 시한부 통보를 받은 한류스타를 다루는 방식하고는 너무나 다르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 시한부의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판타스틱>은 그 시한부이기 때문에 판타스틱해야 하는 삶의 긍정성을 강변하고 있다. 바로 이 유쾌함이야말로 지금의 시청자들이 <판타스틱>에 관심이 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애인있어요>, 김현주의 13역이 만든 놀라운 결과

 

사실 연기라는 건 경험이 쌓여가며 깊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그 경험도 괜찮은 배역을 만나야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김현주라는 배우가 그렇다. 최근 그녀는 SBS <애인있어요>라는 드라마를 만나 연기의 꽃이 활짝 피고 있다.

 


'애인있어요(사진출처:SBS)'

13. <애인있어요>에서 김현주는 혼자서 세 가지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다. 도해강과 그녀의 동생인 독고용기는 쌍둥이라도 성격이 너무 다르다. 도해강이 차가운 커리어우먼이라면 독고용기는 무뚝뚝해보여도 속 깊고 정 많은 사람 냄새나는 캐릭터다. 김현주는 이 두 캐릭터를 동시에 모두 소화해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도해강이 기억을 잃고 살아온 4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과거의 도해강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삶을 살았다. 백석(이규한)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기억을 잃기 전에는 그토록 미워했던 전 남편 최진언(지진희)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그러니 김현주는 기억을 잃기 전의 도해강과 기억을 잃은 후의 도해강 그리고 그녀의 쌍둥이 동생인 독고용기의 세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도해강이 기억을 되찾긴 하지만 기억을 잃었던 4년 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됐다는 점이다(물론 그것은 도해강이 기억상실인 척 했다는 사실이 후에 밝혀지지만).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고(잃어버리고) 다시금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은 이 되찾은 기억에 의해 다시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도해강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리자 4년 간 관계를 키워온 최진언과 백석은 갑자기 달라진 그녀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애인있어요>는 결국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좋은 기억들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내지만 안 좋은 기억들은 관계 자체를 파괴한다. 제 아무리 미워했던 관계라도 기억을 지워버리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물론 그건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네 삶과 관계를 지배하는 건 기억이라는 걸 <애인있어요>는 도해강이라는 인물의 변화하는 기억과 그로 인해 변주되는 관계에 의해 보여주고 있다.

 

기억 상실이라는 코드는 흔히 막장드라마에서 자주 활용되는 클리셰다. <애인있어요>의 외양이 막장드라마처럼 보이는 건 이 드라마가 기억 상실 코드를 가져와 상황을 급전시키는 그 스토리 진행방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힘은 이 기억과 관계의 문제를 그저 점 하나 찍고 다른 인물이라고 말하듯 엉성한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문제의식과 진지함이 깔려 있다.

 

이럴 경우 가장 중요해지는 건 연기자들의 연기 내공이다. 만일 김현주가 13역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 기억 상실로 인해 널뛰는 성격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관계를 연기력이 감당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애인있어요>는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애인있어요>는 그간 경험치를 조금씩 쌓아온 김현주의 만만찮은 연기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부되지 않을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 물론 그와 호흡을 맞춘 지진희나 이규한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김현주의 지분이 그 누구보다 크다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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