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눈물과 감동의 ‘아이 캔 스피크’

그는 도대체 왜 20여 년간 무려 8천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었을까. 도깨비 할매로 불리는 옥분(나문희)은 시장통에서 수선집을 하며 시장 곳곳에 문제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하나하나 구청에 민원으로 제기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 속 깊숙이 담겨져 있는 그 말은 꺼내지 못하며 살아간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상처를 입게 했던 그 말. 그래서 그가 8천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었을 때 그 마음이 느껴진다. 얼마나 그는 말하고 싶었을까.

사진출처:영화<아이 캔 스피크>

그는 시장통에서 사사건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하다못해 민재(이제훈)의 동생이 생라면을 먹고 있는 것조차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그 나이에 이제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 영어를 그토록 열심히 배우려 한다. 그래서 집안 벽 곳곳에는 영어 문장들이 적혀진 종이들이 붙어 있다. 학원도 다니며 젊은 친구들 사이에 앉아 조금 천천히 해달라고 선생님께 조른다. 결국 학원도 받아주지 않자 그는 구청에 새로 온 9급공무원 민재(이제훈)에게 영어 개인교습을 청한다. 동생이 인연이 되어 옥분을 가르치게 된 민재는 궁금하다. 왜 그가 이렇게 영어를 배우려 하는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옥분이라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할매를 등장시킨다. 사람들은 그가 하고 있는 많은 말들이 진짜 하고픈 말을 못해서라는 걸 잘 모른다. 그가 영어를 배우려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오해한다. 하지만 그 오해가 우리가 가진 많은 편견들에게 비롯됐다는 걸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옥분은 일제강점기에 깊은 상처를 가진 위안부 할머니다. 그 모진 고통을 겪고 돌아왔을 때 그러나 부모조차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입을 다물고 살았던 이유다.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시작하지는 않는다. 가벼운 코미디처럼 접근한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를 보면 이 영화의 제목처럼 할머니가 영어를 배운다는 그 설정이 가진 휴먼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 할머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점점 진중해지고 무게가 얹어지는 후반부로 가면 관객들로서는 그 둔중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지금껏 많은 영화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이 영화만큼 균형 있으면서도 따뜻하게 담은 영화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아이 캔 스피크>라는 제목은 뒤로 갈수록 그 의미가 확장된다. 처음에는 옥분의 끝없는 민원과 영어가 그 목적어처럼 여겨지다가 그가 평생을 숨기고 있던 그 역사의 한 대목이 될 수밖에 없는 상처가 목적어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아가 그것은 그의 삶만이 아니라 꽤 많은 세상의 할 말은 있지만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픈 서민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누구나 하고픈 말을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

웃다가 뭉클해져 눈물을 흘리다가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는 이 감정의 파고는 <아이 캔 스피크>가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그 소재에만 매몰시키지 않고 보다 확장시킨 데서 나오게 되었다. 역사적 실제 사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그분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영화는 그래서 훌륭하게 설득시킨다. 이만큼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이토록 균형 잡히게 말해주다니.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제목은 이 영화가 이런 무거운 소재들도 충분히 따뜻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또한 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디마프>, 조인성 특별출연이 특별하게 다가온 까닭

 

종영한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조인성이 나왔다. 그런데 그는 특별출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사실 조인성 정도면 어떤 드라마에서든 주연 자리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를 챙겨보려는 팬들도 적지 않을 테니.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하지만 조인성은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위치를 기꺼이 감수했다. 그가 맡은 연하라는 캐릭터는 슬로베니아에 거주하는 인물이다. 완이(고현정)와 함께 그 곳에서 사랑을 피웠지만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장애인과 유부남은 안 된다(물론 뒤에 와서는 이런 편견을 모두 깨지만)”는 엄마 난희(고두심) 때문에 그녀는 그를 떠나와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 자신을 질책한다. 그럼에도 연하는 그 먼 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그런 인물이다.

 

가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초반부에 등장하고, 점점 그가 당했던 사고와 그로 인해 완이와 떨어져 지내게 된 사연 등이 소개되며, 나아가 난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슬로베니아까지 날아온 완이와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하지만, 연하는 이 드라마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가 다리를 다친 후 그 자리에 멈춰선 수동적인 인물로 살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이를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귀국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면서 동시에 연하의 자기 극복 이야기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조인성이 이 역할을 맡아 드라마를 빛내주면서도 동시에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한 발 뒤편으로 물러나는 걸 기꺼이 감수했다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특별출연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무게감 있는 조연에 가깝다. 어르신들이 저마다 앞으로 나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연기자들은 드라마에서 자신이 서는 위치에 대해 민감하다. 특히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들일수록 자신의 역할이 보조적인 것에 머무는 걸 용납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심지어는 분명 조연인데도 불구하고 과한 연기로 주연을 가려버리는 중견 연기자들도 적지 않다. 결국 드라마가 팀플레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아무리 연기력이 출중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건 드라마를 망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어 마이 프렌즈>는 김혜자, 나문희, 신구, 주현,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같은 쟁쟁한 중견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분들은 모두 우리네 드라마에서 어머니, 아버지 역할을 해 오셨던 분들이다. 드라마가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이 분들은 항상 뒤편에 서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 분들이 연기가 부족해서 그렇게 한 발 뒤로 물러나 계셨을까. 그것이 드라마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 분들이 그동안 어떻게 이 놀라운 연기력을 억누르며 뒤편에 서 있었는지가 놀라울 정도의 연기들을 보여줬다. 치매 연기를 하며 마치 아이처럼 우는 장면에서는 보는 이들을 모두 눈물짓게 만들었던 김혜자, 꼰대 남편에 대한 불만과 함께 여전히 남은 정을 보이는 따뜻한 연기를 선보인 나문희, 그 쉽지 않은 꼰대 역할을 제대로 보여준 신구, 속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지만 씩씩한 엄마로서 딸과 화해를 해나가는 변화를 연기한 고두심, 친구에 대한 깊은 우정과 오랜 세월 순애보를 안고 살아가는 여배우 역할을 실감나게 보여준 박원숙,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는 이들에게 사이다를 안겨준 윤여정 그리고 노년에도 여전히 멋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주현까지. 어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명연기들이 펼쳐졌다.

 

이들이 이렇게 속에 깊이 갖고 있던 연기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풀어놓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노희경 작가가 그 마음껏 그 연기력을 펼쳐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인성이나 이광수 같은 이른바 특별출연연기자들은 기꺼이 뒤로 물러나 이분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저 어르신들이 해왔던 그런 역할을 즐겁게 자청했던 것.

 

이것은 <디어 마이 프렌즈>가 전하는 메시지와도 상응하는 이야기다. 지금껏 막연히 꼰대로 치부되어 왔던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좀 더 담아내겠다는 것. 그러니 연기자들도 늘 뒤편에 있던 어르신들이 앞으로 나오고 앞에 서있던 젊은 배우들이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조인성과 이광수 같은 연기자들의 특별출연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물론 이런 배치와 이야기 구성은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어르신들의 모습을 무조건 긍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현재 고령화 사회의 길에 접어든 우리에게 어르신들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어버이가 어버이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연장자라는 것 때문에 그것까지를 모두 수용하고 긍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래서 현실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네 어르신들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비전을 담아냈다. 중견연기자들은 기꺼이 그 비전을 절절한 연기로 전해주었다. 조인성과 이광수 같은 젊은 배우들이 비껴 준 자리에서.

<디마프>, 고두심과 김혜자가 보여준 엄마의 진면목

 

완이(고현정)는 잠든 엄마 난희(고두심)의 얼굴을 찬찬히 내려다본다. 그 얼굴은 많이 늙었고 어찌 보면 낯선 느낌이었을 것이다. 눈 떴을 때의 그 짱짱함이나 꼬장꼬장함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마치 아기처럼 잠 들어 있는 엄마의 문득 낯설게 다가오는 그 얼굴. 완이는 괜스레 엄마의 얼굴에 바람을 살짝 불어본다. 바람결에 뒤척이는 엄마를 보며 마치 살아있는 걸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왔지만 우리가 오래도록 보지 않았던 엄마의 얼굴이 주는 알 수 없는 짠한 느낌. 난희의 얼굴을 바라보는 완이의 마음이 그랬지 않았을까.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치매를 앓게 된 희자(김혜자)의 민낯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나이 들어도 늘 소녀 같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런 그녀가 방금 있었던 일도 기억을 못해내고 화장실을 혼자 가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하지만 아픈 기억은 어째서 그리도 생생하게 잊히지 않을까. 젊은 시절 잃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밤마다 성당을 잠옷 바람으로 찾아가 회개하는 그녀다. 희자의 잠든 얼굴을 아들 민호(이광수)는 아프게 내려다본다. 그 얼굴 또한 낯설음만큼의 아픔 같은 것이 아들을 통해 전해진다.

 

이 시선은 tvN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가 갖고 있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보여준다. 지금껏 통상적으로 어떤 이미지로만 막연하게 그려져 온 어르신들의 얼굴. 하지만 이 드라마는 민호와 완이 같은 시선으로 그네들의 또 다른 얼굴들을 들여다본다. 겉으로 퉁퉁대고 때로는 꼰대처럼 굴었던 어르신들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왔던 아픔이나 고통 같은 것들이 거기서는 읽혀진다.

 

자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는 얼굴이지만, 친구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아내인 정아(나문희)살 섞고 산 세월이 얼만데라며 아는 척하는 꼰대 어르신 석균(신구)은 이제와 아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아직도 그 진짜 얼굴을 잘 모른다. 그런 석균에게 충남(윤여정)우린 살 대신 마음 섞고 살았어.”라며 대꾸한다.

 

젊었던 시절 아이가 아파 결국 죽게 됐을 때, 유일한 친구였던 정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희자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그 원망의 마음을 토로하지만 그 후 희자는 미안한 마음에 정아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다. 그런 희자에게 정아는 자신 역시 당시 유산된 아기 때문이었다는 걸 밝히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한다. 희자는 세상이 우리한테 미안해야 해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쓰다듬어 준다.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 오히려 화가 잔뜩 난 희자에게 난희는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오히려 그녀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병자끼리 있으니까 위로가 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마음을 섞고 산 친구들은 서로의 얼굴을 오래도록 봐왔고 그래서 그들의 어떤 모습도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그런 난희도 자신의 엄마 오쌍분(김영옥)이 낯설다. 수술을 받기 전 내려간 시골에서 엄마가 챙겨주는 맛난 밥을 먹고는 한 방에서 삼대 모녀가 잠든 밤. 난희는 돌아누운 쌍분을 굳이 다시 되돌려 그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런 난희의 등 뒤에서 완이는 그녀를 꼭 껴안는다. 엄마의 얼굴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낯설다. 오래도록 함께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자세히 본 적이 없는 그런 얼굴. 그것이 못내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한다.

 

완이는 이 엄마의 낯선 얼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마 그 말은 부모된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말일 게다. 우리 자식들의 잘못은 단 하나 당신들을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영원히 아니 오래 우리 곁에 있어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세상의 엄마들은 그렇게 나이 들었다. 희자처럼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엄마들은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아가 받아들이듯 그건 혼자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지금은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날이 온다. 잠든 엄마의 얼굴이 몹시도 낯설게 다가오는 그 시간.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 낯선 엄마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비춰주었다. 우리들이 그 얼굴을 보며 눈물이 났던 건 아마도 우리 역시 저마다의 엄마들에 대한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디마프>에 망라된 노희경 작가의 작품 세계

 

워낙 대단한 작가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노희경이라는 작가의 색깔이 원숙미까지 얹어져 이처럼 빛나는 작품이 있었던가.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드라마 작가라면 꼭 한 번 써보고 싶지만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희경 작가의 인생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노희경 작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 작가는 멜로를 그려도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의 인간애를 담는 작가다. 가족드라마를 해도 가족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양태를 잡아내는 작가다. 그런 그에게 <디어 마이 프렌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망라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물론 어르신들의 삶이라는 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이야기, 사랑, 우정 같은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며 겪게 되는 거의 모든 경험들이 녹여져 있다. 희자(김혜자)와 정아(나문희)의 둘도 없는 우정, 정아와 남편 그리고 부모와 자식으로까지 얽힌 한 집안의 가족사, 희자와 성재(주현)의 노년에도 피어나는 사랑, 희자와 충남(윤여정)의 친자매 이상으로 느껴지는 자매애, 난희(고두심)와 영원(박원숙)의 우정, 난희와 완이(고현정)의 자매 같은 모녀 사이, 완이와 연하(조인성)와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 게다가 노년을 맞아 갖게 된 치매나 암의 이야기까지...

 

생각해보라. 이 많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는 이 드라마의 면면들을. 그 중 한 가지 이야기만 갖고도 꽤 무거운 한 편의 드라마가 나올 것만 같은 무게감이다. 하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렇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노희경 작가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입으로 꼭꼭 씹은 음식을 넣어주듯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볍게 건넨다.

 

그 각각의 소재들이 갖는 극적 상황들이 놀랍도록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면서도 전체를 꿰뚫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놓지 않는다. ‘친구의 관점으로 들여다본 인생은 그 많은 아픔들을 긍정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하다. 드라마 곳곳에, 장애의 문제, 가부장제가 갖고 있는 폭력의 문제, 남녀 성차의 문제 등등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들이 번뜩이지만 그 양상은 갈등을 갈등으로 풀어내기보다는 그것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극점을 전제하여 얻어지는 어떤 통찰들을 통해 해결점을 제시한다는 점도 놀랍다.

 

이런 작품은 결코 단기간에 쓰일 수 없는 것이고, 단지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그려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 동안 작품을 해오고, 또 스스로도 많은 인생의 경험들을 쌓아오면서 갖게 된 진지한 궁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감히 노희경 작가의 인생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점들이 이 작품 하나에 망라된 느낌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했을까. 최근 tvN에서 유독 드라마 작가들의 많은 인생작(?)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그널>을 쓴 김은희 작가가 그렇고 <응답하라> 시리즈를 쓴 이우정 작가가 그러하며 <기억>의 김지우 작가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희경 작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역작들을 연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미생><시그널>을 연속적으로 성공시킨 김원석 감독은 필자에게 잘 하는 것을 해보고 싶은 대로 끝까지 하게 내버려두는작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얘기한 바 있다. 곱씹어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디마프>,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성이 강한 까닭

 

이토록 강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희자(김혜자)는 치매를 앓고 난희(고두심)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난희의 절친 영원(박원숙) 역시 암 투병을 해왔던 사실은 이미 서두에 그녀가 벗은 가발 아래 듬성듬성 난 머리칼로 보여진 바 있다. 정아(나문희)는 뒤늦게 딸이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것이 늘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 치부해온 자신 탓이라 여기며 후회한다. 결국 그녀는 집을 나와 꼰대 남편 석균(신구)과 떨어져 지낸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난희의 엄마 오쌍분(김영옥) 여사의 삶은 또 어떤가. 평생을 폭력 남편 아래서 장애인 아들 장인봉(김정환)을 건사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나이 들어 이제는 자신의 손길이 아니면 혼자 살아가기 힘든 남편과 아들을 챙기며 살아간다.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것 같은 오충남(윤여정) 역시 가족 친지들을 위해 한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온 장본인이다. 교육을 못 받은 것에 대한 한을 화가 먹물들을 만나며 위로받지만 그들이 점점 속물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후회하기도 하는 인물.

 

상대적으로 젊은 인물들도 삶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완이(고현정)는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걸 목격한다. 결국 장애인이 되어버린 그를 버리고 도망치듯 귀국하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선택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가 어린 시절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엄마가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하면서 자신에게도 약을 먹였던 사실을 들먹이며 이 모든 선택이 엄마 탓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장애인과 유부남은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은 지금도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일에 커다란 벽을 세워놓는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강하고 아프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인물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한 사람이 한 편의 드라마를 써도 될 정도로 아픈 사연들이 넘쳐난다. 이렇게 된 건 아마도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이 노년의 삶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죽을 날이 가까운 나이에 그들에게 치매나 암 같은 건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게다가 그 한 평생의 삶 속에서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들이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기 마련일 게다.

 

꼰대 드라마를 표방한 것처럼 노년들의 삶을 다룬다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보면 이 노년의 삶이야말로 그 어떤 드라마들보다 드라마틱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어떤 갈등이나 사건도 살아왔던 한 인생을 절단 낼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하는 나이에 서 있다.

 

하지만 이 도처에 놓여져 있는 아픔과 상처와 고통들 속에서도 <디어 마이 프렌즈>는 어떤 따뜻함과 희망 같은 걸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것이 가능해지는 건 결국 그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보듬는 친구라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희자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 밤마다 집밖을 나가려는 그녀를 붙잡아주는 충남이나, 한 밤중에 잠옷 바람으로 성당을 가는 그녀를 먼발치에서나마 따라다니며 보살피는 성재(주현), 그리고 그 사실을 듣고는 부정하면서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주는 절친 정아가 있어 희자의 불행은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암 판정을 받은 난희 옆에 친구 영원과 친구 같은 딸 완이 있어주는 것처럼.

 

이것은 <디어 마이 프렌즈>가 전하는 삶의 메시지다. 삶이란 결국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기 마련이고 결국은 죽음 앞에서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똑같은 운명 앞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디어 마이 프렌즈’. ‘내 친구들앞에 친애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건 그래서일 게다

<디마프>, 관계의 족쇄 벗어 버리고 친구가 된다는 것

 

엄마도 여자야. 내 말이 맞지 엄마. 엄마도 여자지? 엄마도 남은 인생 여자로 살고 싶지? 그치?” 꼰대 남편과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집 나온 정아(나문희)에게 딸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고충을 토로한다. 엄마가 집을 나오자 아빠가 딸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일을 시킨다는 것. 딸들은 집나온 엄마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이혼을 찬성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남은 인생 여자로 살고 싶지 않냐고 묻는 딸은 이혼을 찬성하는 쪽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아는 그렇게 말하는 딸에게 듣다못해 한 마디를 던진다. “아휴 내가 무슨 여자냐. 물혹으로 자궁 떼 낸 지가 언젠데. 그리고 이 나이 들어서 내가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때.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어 그냥.” 그러자 또 딸이 엄마 인생을 들먹이며 대거리한다. “지랄 안하게 생겼냐? 여적 잘 살다 이렇게 집 나오면 엄마 인생 실패한 거 밖에 더 돼?” 다른 딸은 생각이 다르다. “엄마가 왜 실패야?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는 아버지 인생이 실패지.”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정아의 남편 석균(신구)은 한 마디로 꼰대다. 아내인 정아 구박하는 일이 마치 습관처럼 되어 있다. 눈 뜨면 밥 차리라 명령하고, 물 떠다 먹는 일조차 제 손으로 하는 법이 없다. 밖에 나갔다 늦게 들어올라 치면 문 밖에서 반성하고 들어오라며 벌을 준다. 온 친척들을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제사상을 차리라고 해놓고는 여자들은 재수 없다며 제사 때는 집 밖으로 내몬다.

 

집안에서 이러니 집밖에서는 오죽할까. 후배인 성재(주현)의 집에 불쑥 찾아와 밥 달라고 하고는 자신은 식탁에 숟가락 놓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아내 부리듯 성재에게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기 일쑤다. 이러니 젊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리 만무다. 완이(고현정)는 그에게 전화 오는 것조차 끔찍해 한다. 집 나간 아내 대신 그 주변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전화해 밥 차려 달라고 떼쓰는 그에게 모두가 인상을 쓴다. 버스를 타고 마치 제 자리인 양 앉아있는 여학생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그에게 예의는 없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그는 철저히 꼰대다.

 

그러니 집 나온 정아의 사정이 백 분 이해된다. 그런데 딸들이 찾아와 아버지에 대해 나쁘다고 말하자 그녀는 오히려 석균을 변호한다. “니들이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할 게 뭐 있냐. 젊어서는 니들 키운다고 아버지 그냥 철공소 공장 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그 추운 겨울에도 귀가 얼고 코가 얼면서도 그냥 밤 12시까지 야근하고 나이 칠십 먹어서는 지금 그래도 너희들 덕 안 볼라고 일하는데 너희들이 아빠한테 그렇게 말할 게 뭐 있어? 반찬 해주기 싫다고 그럼 하지 말어. 사다 줘. 천벌 받을 년들아.”

 

왜 정아는 딸들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석균의 입장을 대변했을까. 주변사람들은 정아의 가출을 복수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게 복수가 아니라 그저 혼자 마음 편히 흑맥주 한 잔 먹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가출은 석균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그녀 스스로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다.

 

절친인 희자(김혜자)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며 그녀는 석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한다. “나도 몰라. 밥 해주는 게 딱히 싫은 것도 아니고 성질 별난 것도 모르는 것 아니고. 안쓰럽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근데 지금은 그냥 다 싫어. 나도 내 마음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전화를 해서 잘 자라고 말하고는 왜 너는 나한테 잘 자란 얘기 안하냐고 지청구를 날리는 석균에 대한 정아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런 정아에게 희자는 살갑다. “좀 앉았다 가 나 기운 있으면 너 업고 갈건데.” 불쑥 정아가 남편 석균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김석균이랑은 얘기 안돼. 아휴 둘이 같이 가다가 지금처럼 내가 힘들면 좀 쉬어 가자 그러구. 또 다치면 너처럼 조심하라고 그러면 될 텐데 그냥 쥐어 박듯 왜 그랬냐 정신머리는 어디다 뒀냐 하면서 어쩌구저쩌구. 내가 평생 같이 산 남자라 어디 가서 욕하는 것도 치사하고 구질스럽고.”

 

그녀는 저나 나나 앞으로 죽을 날만 남았는데자기가 바랄 게 뭐가 있냐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희자가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다. “남편도 됐고 남자도 됐고 그냥 친구처럼 살다 가면 좋을 텐데. 나랑 너처럼. 친구처럼. 그치?”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정아와 석균의 갈등을 혹자들은 남녀 대결 구도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는 남편도 남자도 아닌 친구라는 관점으로 우리네 사회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갈등들의 해법을 제시한다. 왜 우리는 남녀와 노소로 관계를 설정하고 역할을 나누고 그 구분에 얽매여 해야 할 일들을 강제하는가. 왜 여자와 여자로 만나지 못하고 고부관계로 만나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지 못하고 장애와 비장애로 만나는가.

 

빈부 격차,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남혐 여혐 갈등 등등.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갈등들의 연원을 들여다보면 그저 모든 관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친구의 관점으로 만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도, 부부 관계도 나아가 세대 관계나 남녀 관계 역시 고작 몇 십 년 차이와 생김새만 다를 뿐, ‘죽을 날을 앞둔똑같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친구라는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는 진정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정아의 말마따나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떤가. 희자의 말처럼 남편도 남자도 아닌 그저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걸까. <디어 마이 프렌즈>는 제목부터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디마프>, 여성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그러진 우리 사회

 

꼰대들의 드라마? 애초에 이런 기치를 내걸었다지만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거기서 머무는 드라마는 아니다. 단지 어르신들의 이야기만이 아니게 된 것은, 그들의 삶에 묻어난 많은 것들이 우리 사회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려운 드라마는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종합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물론 이야기는 어르신들의 삶에서부터 시작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삶. 그래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혼자 살 수 있다고 되뇌는 희자(김혜자), 한 평생 구두쇠에 꼰대 남편 밑에서 살아오며 차라리 <델마와 루이스> 같은 자유롭게 살다가 길 위에서 죽는 삶을 꿈꾸는 정아(나문희) 같은 어르신들의 삶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서 묻어나는 건 우리 사회 현실의 많은 문제들이다. 폭압적인 남편을 그저 참으며 살아온 정아는 알고 보면 상습적인 아버지의 폭력을 겪으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에서 영향 받은 것이고, 그것은 또 폭력을 당하는 딸의 삶으로 대물림된다. 이것은 우리네 근대사에 점철된 가부장제로부터 지금껏 흘러온 폭력의 역사를 고스란히 그려낸다.

 

그 폭력 속에는 바람 피는 남편 같은 불륜의 문제가 만들어내는 치명적인 결과들까지 들어 있다. 남편과 자기 집 침대에서 뒤엉켜 있는 다른 여자를 본 난희(고두심)는 그 충격에 자살을 결심한다. 딸을 혼자 놔두고 갈 수 없어 딸에게도 약을 먹인 일을 저지른 난희는 훗날 딸 완이(고현정)에게 그 때 일로 인해 자신이 갖게 된 선택들에 대한 처절한 원망을 듣게 된다. 난희는 그 일로 유부남과 장애인(동생이 장애를 가져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때문)은 안된다고 완이에게 버릇처럼 말하고, 완이는 그 때 그 일 이후 자신은 엄마 거라는 걸 확인했다며 엄마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즉 하나의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아픈 트라우마로 남아 그들의 삶 역시 굴절시킨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난희에게 완이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연하(조인성)가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자 버렸다며 그것이 엄마 탓이라고 절규한다. 그런 딸의 아픔을 뒤늦게 알게 된 난희는 완이를 끌어안고 자신의 잘못을 후회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어르신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결국 비뚤어진 남성성의 폭력의 역사가 드러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여성들의 우정같은 연대로서 화해되고 해결되는 모습을 그리게 됐다는 건 주목해볼 일이다. 난희는 불륜 상대녀의 친구였던 영원(박원숙)과 결국 화해하고, 또 어린 시절 그런 고통을 겪게 만든 딸과도 화해한다. 정아는 남편에 대한 복수의 칼로서 이혼을 결심하고 친구들은 그녀를 돕는다. 성재(주현)를 두고 희자와 충남(윤여정)이 모두 관심을 갖지만 충남은 희자에게 남자를 양보한다. 그리고 확인하는 건 다시 그들의 우정이다.

 

남성성의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수직적 관계들을 <디어 마이 프렌즈>는 여성성의 우정으로 대변되는 수평적 관계로 그 해결점을 보여준다. 이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주름을 발견하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대에 심정적인 지지를 하게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로 어르신들을 이토록 깊게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담겨진 삶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역시 노희경이다

<디마프>, “사랑해 친구로서라 말하는 드라마

 

자세히 봐야 아름답다고 했던가. tvN <디어 마이 프렌즈>가 보여주는 감동은 멀리서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던 꼰대들의 삶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가슴 뭉클한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데서 온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남편이 외도한 친구 숙희를 자신의 절친인 영원(박원숙)이 여전히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난희(고두심)는 배신감에 그녀와 드잡이를 한다. 화가 단단히 난 난희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영원은 숨기고 있던 사실을 밝힌다. 사실 그녀는 암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고, 자신을 찾아온 숙희를 간호할 사람이 없어 이용했다고 털어놓은 것.

 

배우로서 겉보기에 화려한 삶을 살아온 영원이지만 그녀는 친구 난희와 화해하기 위해 가발을 벗고 다 빠져버린 머리칼을 보여준다. 또 목과 등에 난 수술 자국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희는 독한 말들을 쏟아내지만 이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친했던 사이인가가 드러나는 장면이고, 또 화려하게만 보였던 영원이 실제로는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아(나문희)와 희자(김혜자)<델마와 루이스>를 꿈꾸며 무작정 시골 어머니 집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 사고를 내고 뺑소니치지만 자수해 알고 보니 사람이 아닌 노루였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저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지만 인생의 오점이 될 수 있던 그 사건 속에서 정아와 희자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의지되는가를 확인한다.

 

희자의 남편이 벽장 속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그녀가 죽였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친구 기자(남능미)에게 희자는 사실을 밝힌다. 사실 잘못을 저지른 남편이 스스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벽장으로 들어갔다는 것. 그러다 죽음을 맞게 됐다는 것. 오해가 풀리고 친구들끼리 놀러간 기자가 일하는 콜라텍에서 희자는 그녀에게 돈을 쥐어준다. 기자가 동정하냐고 묻자 희자는 동정은 무슨 친구사이에. 우정이지.”라고 말한다. 친구로서 자신을 오해한 기자를 희자가 얼마나 가깝게 생각하는가를 알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한편 충남(윤여정)이 가난한 예술가들인 양 그녀를 이용해 먹는 도예가 교수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이유도 밝혀졌다. 어쩌다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된 그녀가 사실상 엄청나게 많은 친척들을 모두 부양하고 있었던 것.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배운 자들을 후원하는 일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낙이었던 것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처럼 멀리서 보면 오해하기 십상이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처럼 보여 꼰대라 치부하는 어르신들의 삶을 박완(고현정)이라는 시선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들여다보는 드라마다. 그들은 때론 오해 때문에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는 친구들이다.

 

드라마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친구의 시선이다. 그저 꼰대가 아니라 친구의 눈빛으로 바라보면 그 삶마다 갖고 있는 질곡들이 이해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 이 드라마가 감동적인 순간은 이들이 점점 우리에게도 친구 같은 존재들로 다가오고 그래서 막연했던 오해가 풀리는 그 순간이다. 박완을 사랑하지만 교통사고로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후 먼 발치서 그녀에게 영원히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 서연하(조인성)가 그 뒤에 친구로서라는 단서를 붙이는 건 그래서다. 사랑하는 남녀의 관점으로 보면 한없이 슬픈 관계지만 친구의 관점으로 보면 서로의 삶을 긍정하게 되는 것. 이 드라마가 <디어 마이 프렌즈>인 이유다.

<디마프>, 남은 건 친구뿐, 짠내 나는 꼰대들

 

이 어르신들은 죽음을 끼고 산다. 문정아(나문희)길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자 그 옆에 있던 조희자(김혜자)는 너무 멋있다며 같이 죽자고 한다. 그들은 어르신 사진만 찍는 사진작가인 마크 스미스(다니엘 헤니)에게 찾아가 다짜고짜 영정사진을 찍으라고 명령한다. 거기서 박완(고현정)의 할머니 오쌍분(김영옥)은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 죽으면 울어라고 말한다. 그런 얘기 말라는 박완에게 할머니는 저승바다에 발 담근 지오래됐다고 한다. 그리고 걱정 말라며 지금은 골로 가는 것보다 집에 밭일이 더 급하다고 말한다.

 

'디어 마이 프렌드(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가 그려내는 흔한 장면들이다. 아예 대놓고 꼰대 드라마라며 우리가 꼰대라 치부하는 어르신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려는 드라마. 그래서인지 이 어르신들이 항상 옆에 친구처럼 달고 다니는 건 죽음이다. 조희자는 집에서 전구 하나를 스스로 갈지 못하고 망상 증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자 건물 꼭대기에 올라간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것이지만 그 밑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이 다칠까봐 내려와 도로로 뛰어들기도 하고 한강 물로 뛰어들려고도 한다.

 

물론 미수에 그쳤지만 그런 조희자가 친구들 영정사진 찍을 때는 피했다가 살짝 사진작가를 찾아와 부탁해 찍은 사진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린 채 찍은 그 사진 속에서 조희자는 웃는 것처럼도 보이고 우는 것처럼도 보인다. 어찌 보면 부끄러워하는 소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겹쳐지는 얼굴을 보인다는 건 그 자체로 뭉클해지는 일이다. <디어 마이 프렌드>는 그런 드라마다. 우리가 막연히 꼰대라 치부하며 봤던 어르신들의 여러 얼굴들을 들여다보는 드라마.

 

그 나이에도 여전히 꿈이 있다. 꼰대에 구두쇠 남편을 둔 문정아는 힘들 때마다 자신을 붙잡아 놓기 위해 남편이 사탕발림으로 말하곤 했던 세계일주의 꿈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녀는 길 위에서 벼랑 끝으로 신나게 차를 몰아 죽음까지 날아간 <델마와 루이스>를 꿈꾼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집 구석을 벗어나 길로 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죽음을 향해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무작정 집을 나선 그녀는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조희자를 부른다. 결국 남은 건 친구뿐. 아마도 <디어 마이 프렌드>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여진 것일 게다. 그리고 그들은 차를 몰고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찾아간다. 마치 <델마와 루이스>처럼 신나게 달려 나가지만 그들 앞에 놓인 건 그런 멋진 죽음이 아니라 사고로 벌어진 지독한 현실이다.

 

박완의 엄마 장난희(고두심)는 남편의 불륜을 집안에서 목격한 아픔이 있다. 또 여전히 그녀의 어머니가 돌보는 장애인 동생도 있다. 그래서 박완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모든 남자가 되지만, 유부남과 네 삼촌처럼 장애인은 안된다논란까지 야기한 대사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이런 편견들을 가감 없이 끄집어내 깨려는 목적으로 이런 대사를 집어넣었다. 결국 박완이 사랑하는 서연하(조인성)는 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장난희가 그 편견을 스스로 넘어서고 박완 또한 장애는 불편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걸 담아내려는 게 이 드라마가 가려는 목적이다.

 

박완과 서연하라는 여전히 빛나는 남녀의 안타깝고도 설레는 사랑이야기가 있지만 죽음을 무시로 끼고 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디어 마이 프렌드>는 단순한 멜로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나아간다. 박완은 사진작가의 집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라는 문구를 읽어낸다. 남녀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나 편견은 시한부라는 그 문구 앞에서 무색해진다.

 

젊어서 영원히 살 것만 같을 때는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죽을 것이라는 그 명제를 직시한 후 바라보는 삶은 완전히 다르다. 아픔도 이별도 사랑도 모두가 긍정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보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라는 말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 <디어 마이 프렌드>는 그런 얘기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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