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식당’, 정유미가 말한 오늘의 삶에 집중한다는 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서, 그런 시간 보낸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사실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거든요. 오늘을 산다. 오늘을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먹지만 잘 안 되는데 여기 와서 그걸 쫙 한 거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윤식당(사진출처:tvN)'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종영을 맞아 정유미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오늘에 집중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흔히들 욜로(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사고 싶은 걸 사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걸 마치 시대의 강령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쩌면 진짜 욜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욜로의 정신은 정유미가 말한 “오늘에 집중하는 삶”이 아닐까. 

정유미가 <윤식당>에서 해온 것들을 들여다보면 마음껏 하고 싶은 걸 누리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아침부터 먼저 식당에 도착해 그 날 장사할 재료들을 미리 준비해놓고, 장사에 돌입하면 사장님인 윤여정 옆에서 보조 그 이상의 보조 역할을 한다. 윤여정이 요리를 하기 쉽게 모든 재료들을 미리미리 챙겨주고,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들을 중간에서 정리해 윤여정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물론 가끔 식당을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우유를 나눠주며 잠깐의 여유를 누리기도 하고, 그녀를 은근히 챙겨주는 이서진을 따라서 맥주 한 잔을 마시거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무언가를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힘든 주방에서도 늘 밝게 웃었고 신구와 윤여정을 챙겨주고 이서진을 동생처럼 따르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을 게다. 시청자들이 그녀를 ‘윰블리’라고 부르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게 된 건 그 행동들 하나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들 속에 깃들여진 진심이 느껴져서다. 그것은 그녀가 말한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사실 다른 출연자들이야 이미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인물들이고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 <꽃보다 할배>의 신구, 이서진이 그렇고, <삼시세끼>의 윤여정, 이서진이 그렇다. 그래서 특히 예능이 처음인 정유미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그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유미는 <윤식당>에서 그렇게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보여준 것이 별로 없다. 항상 조용히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타인들을 살피고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가를 챙기는 게 그녀가 한 일의 전부였다. 자신이 하고픈 것들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들어주고 따라주는 것. 그래서 항상 뒤편에 있었던 것 같지만 시청자들로서는 그런 정유미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일 수 있고 어쩌면 막내로서 선배들 앞에서의 조심스러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그녀가 말한 대로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그런 모든 행동들에 진심어린 행복 같은 것들을 느끼게 한 면이 있다. 

이른바 ‘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너도 나도 하고 싶은 대로 지금 당장 하는 것을 욜로라 착각한다. 그래서 욜로를 소비와 자꾸 연관 짓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삶의 자세다. 복잡한 소비적 삶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진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욜로가 아닌가.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지워내고 바로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진짜 삶의 행복을 되찾는 것. 아마도 정유미가 <윤식당>에서 집중을 통해 경험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윤식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의 실체 또한.

드라마에서 예능까지, tvN이 흔들리게 된 까닭

어째 tvN 콘텐츠들의 조짐이 그리 좋지 않다. 금요일 저녁은 tvN이 내놓고 공략한 편성시간대다. 이미 <슈퍼스타K>가 케이블 시청률의 벽을 시원하게 뚫어준 시간대고, 여기에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이 전면에서 이끌고,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뒤에서 밀어주면서 “금요일은 tvN”이라는 새로운 시청패턴까지 만들어졌던 시간대다. 

'신혼일기(사진출처:tvN)'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보면 이 금요일도 휘청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끝난 후 이어진 <내일 그대와>는 3.8%(닐슨코리아)에서 시작했지만 반등은커녕 1.75%까지 반 토막이 나버렸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없는 작품이다. 다만 타임리프라는 소재의 복잡함과 멜로라는 틀의 달달함이 잘 어우러지지 못하면서 정확한 타깃 시청층을 확 끌어당기지 못해 생겨난 결과로 보인다. 

<내일 그대와> 같은 타임리프 소재의 드라마는 앞부분에서 확실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갈수록 힘이 빠질 수 있다. 그건 드라마가 앞 부분의 설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중간에 유입해서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화제성이 좋아서 찾아보는 드라마가 된다면야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일 그대와>는 그걸 놓쳐버렸다. 

무언가 현실적으로 간절한 갈망 같은 것들이 시청자들의 감성을 건드려야 하지만 <내일 그대와>는 멜로라는 틀 이외에 사회적 감성이나 정서 같은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5회에서 앞부분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할애해 전편 줄거리를 담아놓았지만 새로운 시청자 유입을 가능하게 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런 사정은 드라마에 이은 예능 편성으로 금요일밤의 또 다른 짝패라고 할 수 있는 <신혼일기>도 마찬가지다. <신혼일기>는 첫 회에 5.5%의 시청률로 시작했지만 3회에 3.5%까지 추락했다. 물론 100% 리얼인 구혜선과 안재현의 ‘신혼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영석표 예능이 가진 디테일한 재미와 의미를 더해 괜찮은 시도를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현실은 또 현실이다. tvN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도 이미 나영석 PD가 한껏 올려놓은 게 사실이다. 지상파를 압도하는 시청률을 기록해 왔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신혼일기>는 회를 거듭하면서 나영석 PD 예능이 가진 어떤 패턴이 느껴진다. 신혼이라는 새로운 이야기틀이 있긴 하지만 어찌 보면 <삼시세끼>의 시골살이를 남녀가 하고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소소한 갈등이 있고 달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 풋풋함을 들여다보는 일은 실로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한 느낌이 있다. 

tvN이 드라마에 이어 예능까지, 그리고 심지어 금요일이라는 전략적인 편성시간대까지 위기감이 감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 시국과 무관하지 않다. 오락을 내세운 케이블 채널에서 시국의 현실을 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뉴스나 교양을 찾기가 어려운 tvN의 경우 마취적이고 도피적인 콘텐츠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JTBC와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건 그래서다. 

나영석표 예능이 갖는 힘은 여전하지만 모든 tvN 예능프로그램이 너무 나영석 PD에 의존하고 그 패턴을 소재만 바꿔 소비하는 건 tvN 예능프로그램으로서나 나영석 PD 개인으로서나 모두 좋은 일이 아니다. 드라마에 있어서도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몇몇 성공을 반복하거나 타임리프 같은 설정들을 도처에서 활용하는 건 시청자들에게는 금세 식상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또한 드라마에서 작가 발굴의 중요성은 현재 스타 작가의 작품과 신인 작가의 작품이 보이는 편차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tvN은 좀 더 위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늘 좋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아성을 뛰어넘는 그 지점에서만이 또 다른 도약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통상적인 말을 좀 더 실감해야할 시점이다.

예능감에 심성까지, <신서유기2> 안재현 없는 게 뭐야

 

어디서 이런 예능 보물이 숨어 있었던 걸까. <신서유기2>서유기드래곤볼의 이야기를 차용해 중국 여러 곳에서 드래곤볼을 획득하는 요괴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담고 있지만 거기서 진짜 발견한 건 안재현이라는 예능 보물이다.

 

'신서유기2(사진출처:tvN)'

사실 이승기의 자리를 그가 이토록 빠르게 채워줄 줄 누가 알았으랴. 첫 만남에서부터 강호동의 과거사를 슬쩍 슬쩍 건드리며 만만찮은 상대라는 걸 드러냈지만 그가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면서도 동시에 프로그램을 훈훈하게 만드는 따뜻한 심성까지 가진 인물이라는 게 여행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아침 미션으로 부여된 알을 숨기는 게임에서 안재현은 한 때 <12>에서 지니어스라고 불리며 게임을 주도했던 은지원마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 거대한 타조 알을 선택했음에도 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침대 한 켠에 옮겨 놓고 또 살짝 이목이 다른 곳에 집중됐을 때 가방 위에 모자를 덮어 얹어놓는 치밀함을 선보였고, 이수근이 화장실 휴지통에 숨겨뒀던 오리알을 찾아내 양말에 넣고 천연덕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구혜선과 알콩달콩한 모습을 전화를 통해서 살짝 보여주는 안재현은 <신서유기2>에 사실상 달콤한 멜로의 기운을 섞어주기도 하는 존재다. 집들이로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가 음식을 차려내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은 그대로 구혜선과의 관계를 상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재현이 <신서유기2>의 예능 보물로 자리매김한 건 그가 출연자들과 벌써부터 저마다의 케미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옛날 코미디의 모습을 보여주고 때론 게임에서 연거푸 져 의기소침해 하는 강호동에게 안재현은 살가운 동생으로서 아끼지 않는 칭찬으로 오히려 그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둘 사이가 벌써부터 형제 같은 살가움이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그는 또 게임에 있어서는 은지원과 약간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내는 또 한 명의 지니어스라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두 사람이 서로 통하는 구석이 있지만 동시에 경쟁의 느낌이 생기고 있는 건 프로그램으로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괜찮은 기회로 작용한다. 또한 프로그램 말미에 이수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치 시소를 타듯 의자가 넘어지며 라면을 엎는 장면을 보여준 안재현에게서는 어쩐지 이수근과의 몸 개그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안재현이 전면에 자신을 드러내는 캐릭터는 아니다. 하지만 도처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캐릭터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예능감이면 예능감에, 착한 심성이면 심성까지 안 가진 게 없는 캐릭터. 그리고 과거 <12> 멤버들의 그 익숙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 저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

 

나영석 PD가 발굴해낸 또 한 명의 예능 스타라고 해도 무방할 캐릭터로 안재현은 이미 <신서유기2> 깊숙이 들어와 있다. <꽃보다 할배><삼시세끼> ‘정선편이 이서진을 발굴해내고, <삼시세끼> 어촌편이 차승원과 유해진을 발굴했듯이 <신서유기2>는 안재현을 발굴해내는 데 성공했다.  

<꽃청춘>, 높이 난 만큼 추락의 상처도 깊지만

 

tvN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은 나영석표 예능이 늘 그래왔듯이 그 기획부터 이미 대박이었다. <응답하라1988>로 한창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4인방, 류준열, 고경표, 안재홍, 박보검이 출연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종영으로 아쉬움이 남았던 시청자들이라면 그 연장선으로서 <꽃보다 청춘>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픈 마음이었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이미 <응답하라1988>의 포상휴가를 떠났던 그들이 푸켓에서 나영석 PD에게 납치(?)됐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대중들은 반색했다. 대중들이 정확히 원하는 그 포인트를 나영석 PD 특유의 오글거리지 않는 스타일로 짚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난 그들. 이런 상황 자체를 뒤늦게 통보받고 후발대로 박보검이 합류하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다 모인 그들이 마치 형제처럼 서로를 토닥이며 여행을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훈훈함을 주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런 여유를 만끽한 적이 없었던 청춘들처럼 들떠 있었고, 모든 것 하나하나가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 억눌렸던 청춘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풀려났던 것이 문제였던가. 가운을 입고 조식을 먹으러 가는 장면과 수영장에서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아슬아슬한 느낌을 안은 채 방영되었다. 청춘의 한 때 치기라고 볼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비매너 논란은 의외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껏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서 자잘한 논란거리는 나왔지만 이만큼의 큰 파장은 처음이다. 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나영석 PD의 성향이지만 어딘지 이번 논란을 일으킨 장면들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늘 출연자도 제작진도 또 시청자도 즐겁고 흐뭇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추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논란의 장면들은 출연자와 제작진은 어떨지 몰라도 결코 시청자들이 편안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의외로 그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춘의 한 때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동정적인 시각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늘 비호 받는 나영석 PD표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 또한 등장하기도 했다. 즉 이제는 비매너 논란이라는 사안 자체에서 벗어나 지금껏 늘 대중들에게 호의적이었던 나영석 PD표 프로그램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어쩌면 이것은 논란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결국 나영석 PD에 대한 무한지지는 그 프로그램들이 워낙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웬만한 논란이 나와도 나영석 PD가 나서서 한 마디 하면 가라앉을 수 있었던 건 그래서다. 그렇다면 <꽃보다 청춘>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꽃보다 청춘>이 예전만큼 재미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이미 아이슬란드편에서부터 조금씩 흘러나왔다. 물론 아이슬란드라는 놀라운 풍경들이 모든 걸 압도하고 있었지만 본래 <꽃보다 청춘>의 재미는 거기 출연하는 인물들의 새로운 면모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이슬란드편에서 인물들보다 주목된 건 풍광이었다. 오로라는 멋있었지만 거기 출연하는 인물들은 새롭다기보다는 이미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던 이미지의 재연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었다.

 

이것은 곧바로 이어진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응답하라1988>로 한껏 높아진 관심 때문에 첫 회부터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내는 대박 아이템이 되었지만 그 인물들은 <응답하라1988>의 캐릭터를 반복해서 보여줄 뿐 새로운 면모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들의 새로운 면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류준열은 의외로 뛰어난 소통능력과 추진력을 보여주었고, 안재홍은 긍정적이며 여유 있는 성품을 드러냈다.

 

중요한 건 그런 면모들이 그다지 부각되는 느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꽃보다 청춘>이라는 시리즈가 반복되면서 생겨난 피로가 아닐까. 그나마 시즌제로 어떤 휴지기를 두고 방영됐을 때는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아이슬란드편에서 바로 나미비아편으로 이어지면서 그건 반복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장소와 풍광만 달라졌을 뿐.

 

나영석 PD는 이제 새로운 아이템을 시작해야 할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꽃보다> 시리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삼시세끼>도 아닌 또 다른 참신한 아이템만이 그의 비상을 지속가능하게 해주지 않을까. 이번 <꽃보다 청춘><응답하라1988>의 콜라보는 시청률에서는 대박을 내주었지만 나영석 PD표 예능 프로그램에는 큰 상처를 주었다. 그간 늘 높이 날아왔기 때문에 이번 추락의 충격은 더 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에게 이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항상 대중들의 눈높이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던 그가 아닌가.

경쟁이 시너지가 된 <프로듀사><삼시세끼>

 

박신혜 2탄이 남았다. 이번 주 <프로듀사> 보다가 루즈한 부분 나올 때 바로 채널 돌리면 박신혜씨가 나올 거다. 많은 시청 바란다.” 백상 대상을 거머쥔 나영석 PD는 수상소감에서도 <프로듀사>를 언급했다. 그만큼 신경이 쓰인다는 얘기일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프로듀사>에 대한 관심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영석 PD의 이 한 마디는 금요일 저녁의 대결을 <프로듀사> vs <삼시세끼>로 굳혀 놓았다.

 

'삼시세끼, 프로듀사(사진출처:tvN,KBS)'

나영석 다시 데려오면 안돼?” “<삼시세끼>? 하루 세끼 먹는 프로그램이 되겠어요?” <프로듀사> 역시 나영석 PD<삼시세끼>를 염두에 둔 대사들이 등장했었다. <프로듀사> 역시 <삼시세끼>가 그만큼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대사들은 어떤 면에서는 나영석 PD<삼시세끼>가 가진 압도적인 존재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금요일 밤의 빅 매치가 이젠 끝나게 됐다. KBS <프로듀사>tvN <삼시세끼>의 팽팽한 대결. 그 결과는 어땠을까. 애초에 누가 이길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결과를 보면 두 프로그램은 경쟁했다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가 된 부분이 더 많았다. <프로듀사>는 그간 단 한 번도 동 시간대 기록하지 못했던 두 자릿수 시청률을 훌쩍 넘어섰고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에 이미 엄청난 화제를 만들어냈다.

 

<삼시세끼>도 마찬가지다. <삼시세끼><프로듀사>와 대결하면서도 시청률 8% 대를 줄곧 유지했다. 화제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박신혜의 등장이 가져온 화제성은 지성으로 또 보아로도 이어졌다. 강원도 정선의 한적한 곳에 마련된 <삼시세끼>집에서는 흔한 풀 한 포기, 떠도는 구름 한 점도 출연자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했다.

 

결국은 윈윈 게임이다. <삼시세끼><프로듀사>도 시청률에서나 화제성면에서나 모두 성공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마치 한쪽에 시청자가 몰리면 다른 시청자가 빠져나갈 것 같은 제로섬 게임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파이가 커지는 쪽으로 흘러갔다. 한 때 시청률의 무덤처럼 여겨지며 많은 프로그램들이 기피되었던 금요일 밤은 이제 점점 프라임 타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항간에는 불금의 문화가 이제 목요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즉 직장인들이 금요일 밤을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목요일 밤에 일주일을 마무리하듯 모임을 갖고 금요일은 가족과 함께 조용한 주말을 보내는 문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문화가 이미 자리하고 있다면 금요일 밤이 왜 이토록 방송의 격전지가 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로듀사>의 서수민 PD<삼시세끼>의 나영석 PD는 한때 한솥밥을 먹던 식구다. 두 사람은 한때 머리를 모아 <인간의 조건>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러한 윈윈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사실 예능이라는 큰 틀에서 본다면 <프로듀사><삼시세끼>는 경쟁을 했다기보다는 예능이라는 영역의 힘을 함께 드러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빼앗아오는 경쟁이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경쟁. <프로듀사><삼시세끼>는 그걸 보여줬다.

 

<꽃보다 할배>, 타인이 가족처럼 가까워질 때

 

투덜이 이서진은 포세이돈 신전 앞에 가서도 투덜거렸다. ‘가까이 가 봐야 별 거 없다는 이서진의 이른바 그리스 멀리 이론은 멀리서 봐야 더 멋있다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를 제시했다. 여행 떠나는 걸 꽤나 귀찮게 여기는 이 귀차니즘의 대가(?)는 여행을 짐스럽게 여기는 짐꾼이라는 캐릭터로 역시 <꽃보다 할배>라는 나영석표 예능에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걸 증명해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세상에 여행 즐기는 이가 여행하는 이야기만큼 평이한 것도 없을 게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로 자리한 이서진은 경비에 있어서는 한없이 깐깐한 스크루지로 돌변하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처지를 그토록 토로하면서도 할배들 앞에만 가면 고분고분한 짐꾼으로 돌아가 소소한 것까지 살뜰히 살피는 사람이 된다. 이른바 나영석 패밀리에 이서진이 중심에 서게 된 건 바로 이 지극히 보통사람의 투덜거림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미션이 떨어지면 보통사람 이상의 정성을 쏟아내는 그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이서진의 그리스 멀리 이론은 곧바로 <삼시세끼>로 나영석 패밀리에 합류한 옥택연에게 전달된다. 택연은 그리스 여행을 가서 바로 이 그리스 멀리 이론에 적합한 셀카를 찍어 SNS로 화답한다. 이제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는 각각 동떨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에서 다른 조합으로 나와도 <어벤져스>와의 이야기와 연동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삼시세끼>의 강원도 정선집에 놀러와 밥 한 끼를 같이 챙겨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꽃보다 누나>의 누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지우가 그러한 것처럼 잠시 <삼시세끼>의 게스트로 참여했던 그녀는 <꽃보다 할배>의 신참 짐꾼이 되기도 한다. <꽃보다 청춘>에서 순수 청년으로 등장한 손호준이 <삼시세끼> 만재도편에 갑자기 하차하게 된 장근석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처럼, 이제 이들 프로그램들은 나영석 월드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동되고 있다.

 

그리스까지 가서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게 낫다는 귀차니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서진이,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백일섭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음식점에서 그걸 챙겨오는 이야기는 나영석 패밀리가 대중들에게 주는 훈훈한 판타지의 실체다. 이들은 처음 낯선 타인으로 만났지만 여러 차례 여행을 하면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순재와 한 방을 쓰던 이서진이 아침에 일어나 이순재의 옷매무새를 직접 만져주는 장면은 가족 그 이상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박근형이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하자 셋이 쓰던 방에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신구와 백일섭의 모습이 그려진다. 청력이 좋지 않은 백일섭을 위해 여러 차례 큰 소리로 얘기를 해주고 어색할 수 있는 방 분위기를 친근하게 풀어내주던 박근형의 빈자리를 굳이 이 프로그램이 그려 넣는 건 나영석 패밀리가 이렇게 가족이 된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방식이다.

 

그것은 이서진의 방식과 닮았다. 어찌 보면 여행이라고는 해도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일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는 건 보다 더 깊숙이 가족 같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간만에 나게 된 시간에 나영석 PD는 스텝들을 데리고 이서진을 운전기사로 세워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가 제일 나이 많은데 운전을 해야 된다고 투덜대면서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 이서진과 나영석은 그래서 이제는 형제 같고 제작진들 역시 그 패밀리의 구성원처럼 보인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운 저녁을 나누며 그리스 여행을 회고하는 자리에는 그래서 나영석 PD도 함께 앉아 있다. 물론 그가 처음 화면에 얼굴을 내밀게 된 건 미션을 부여하는 그 역할을 리얼로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화면 안에 들어와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제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일 관계가 아닌 진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이것은 나영석 PD표 예능이 매번 성공하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낯선 타인으로 만나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그걸 계속 봐온 시청자들 역시 가족 같은 친근함으로 이들을 쳐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일섭이 우리는 이제 패밀리가 되었다고 털어놓는 건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꽃보다> 패밀리가 주는 판타지는 이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또 그 분들이 겪어온 세월에 대해 존경을 표하게 되는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삼시세끼>, 김범수의 집밥이 전하는 따뜻함이란

 

집 밥 너무 그리워. 가족의 마법. 본가 따뜻한 집으로. 내가 쉴 수 있는 곳-’ 도대체 집밥이 주는 이 놀라운 위로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최근 김범수는 정규 8집을 내면서 타이틀곡으로 집밥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사진출처: 김범수의 '집밥' 뮤직비디오

바쁜 도시인들의 일상과 혼자 꾸역꾸역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샌드위치에 햄버거를 입안에 밀어 넣는 모습.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양동근은 샌드위치를 씹다가 문득 한숨 같은 것을 툭 뱉는 장면을 연출해 보여준다. 아마도 그 한 숨이 우리들 마음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면서 뮤직비디오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집밥을 보여준다. 막 지은 듯한 따뜻한 밥 한 공기와 정성스레 만들어진 계란말이, 투박해보여도 군침 돌게 만드는 콩자반과, 색깔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하는 김치, 불고기... 늘 외지생활에 혼자 생활에 도시생활에 화려해 보이는 외식이 주식이 됐던 이들이라면 그 장면 하나가 주는 알 수 없는 가슴 먹먹함을 김범수의 노래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비주얼 가수로서 더 이미지화된 김범수. 아마도 이번 정규 8집에서는 초심이 그리웠나 보다. 뮤직비디오 중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건 김범수가 집밥 먹고 싶어서라고 하자 엄마가 얼마든지 해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은 별것 아닌데도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건 김범수의 진심이기도 할 것이다.

 

집밥이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나영석 PD가 들고 온 <삼시세끼>가 예능에 새로운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집밥의 위력이다. 나영석 PD 스스로도 망할 줄 알았던프로그램이 이렇게 하나의 트렌드 리더로서 자리한 건 놀라운 일이었을 게다. 그는 <삼시세끼>를 설명하며 굵직한 메인 스토리가 없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약점이라고 말했지만, 바로 그 점이 이 프로그램의 강점이 된 셈이다. 뭐 특별할 것 없어도 마음의 허기를 건드리는 집밥처럼.

 

그렇다면 도대체 왜 집밥이 이렇게 콘텐츠의 강력한 소재가 된 것일까. 혹자들은 이것이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싱글족이 된 현 생활 패턴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혼자 사는 이들은 김범수가 집밥의 첫 구절로 노래한 것처럼 기다려지지 않는 퇴근길을 경험한다. 따뜻한 집밥 한 끼가 주는 퇴근길에 대한 기대가 없는 허전함이란.

 

하지만 단지 싱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만으로 집밥의 울림을 모두 설명하긴 어렵다. 거기에는 정신없이 바쁘고 복잡해진 현대인들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삼시세끼>가 보여주는 시골 공간처럼 모든 바쁘고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난 하루의 세끼 챙겨먹는단순한 삶이 하나의 로망처럼 다가오는 것일 게다.

 

결국 사는 건 그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일의 반복일 뿐이라는 전언은 우리의 마음을 깊게 위로해준다. 뭐가 그리 대단할 것이며 뭐가 그리 못났을 것인가. 그저 다 같은 한 끼 밥을 챙겨먹는 것으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다. 세상을 힘들게 만드는 모든 서열 체계와 격차들은 집밥 하나로 무너져내린다. 그저 단순해 보이는 소박한 집밥에는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위로가 담겨져 있다.

 

<12>부터 <꽃할배>, <삼시세끼>까지, 이서진의 매력

 

이서진씨가 완전히 물이 올랐어요.” <삼시세끼>의 승승장구에 대해 나영석 PD는 이렇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신기한 일이지만 이서진이라는 인물은 나영석 PD만 만나면 반짝반짝 빛난다. 최근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은 최근 <삼시세끼>로 인해 재조명되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이서진을 중심으로 함께 삼시세끼를 해먹는 옥택연과의 조합이 만들어졌고 윤여정, 최화정, 김광규, 김지호가 연달아 출연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참 좋은손님들은 이 MSG 없는 예능 프로그램에 괜찮은 양념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양념으로서 기여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 이서진이라는 손맛이 있었다는 점이다. 열심히 하려는 택연에게 노예근성운운하는 말로 캐릭터를 부여한 것도 이서진이고, 김광규가 왔을 때 수수밭만 베라고 그를 자꾸 부추긴 것도 바로 이서진이며, 김지호에게 뱃속에 거지 앉았냐고 투덜대며 텃밭 브레이커의 탄생을 알린 것도 이서진이었다류승수는 이서진에게 속아 아궁이 일꾼이 되었다. 이서진은 하다못해 염소 잭슨과의 러브라인(?)까지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나영석 PD 말대로 물이 오른 것(?)이 분명하다.

 

이서진의 가능성을 처음 나영석 PD가 발견한 건 <12> 때다. <12>에서 이서진은 미대 형이라는 캐릭터로 불렸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진지함을 보이는 인물이지만 엉뚱한 면으로 웃음을 주었다. 이 때부터 투덜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러면서도 특유의 선한 이미지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조커 역할을 했다. 어르신들에게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상황을 나영석 PD는 이서진을 중간에 놓음으로써 해결했다. 이서진을 끊임없이 힘겹게 만들고 또 깐족대는 것으로 나영석 PD는 이 어르신들의 여행에 톡톡 튀는 재미를 만들어냈다. 이서진의 매력은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 하는(심지어 아주 잘 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어르신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나영석 PD에게는 으르렁대는 모습에서 이서진의 양면적 매력이 탄생했다.

 

<삼시세끼>는 악덕 마름 같은 나영석 PD와 투덜대는 노예 같은 이서진 캐릭터의 조합이 흥미진진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고기 한 점에 수수 빚을 받는 마름 나영석 PD, 빚이 불어남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점점 고기를 찾게 되는 이서진이 곤란해지는 그 상황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다.

 

즉 이서진이라는 대체 불가의 매력이 탄생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그 악역을 자처한 나영석 PD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악역처럼 보인다. 물론 그 악역에게서 실제 악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중요하다. 나영석 PD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악동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저 순응하기보다는 투덜대는 캐릭터가 훨씬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시키는 일을 하는 캐릭터는 더더욱 재미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점점 노예처럼 길들여가는(?) 악동 캐릭터는 마치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듯 은근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전체 그림이 주는 느낌은 살풍경한 것이 아니라 참 좋은훈훈함이다. 이렇게 좋은 캐릭터들이니 승승장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서진이 나영석 PD만 만나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다.

 

<인간의 조건>과 개그맨의 조건

 

아마도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는 <인간의 조건>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했을 지도 모른다. <개그콘서트>가 개그맨들을 발굴하고 키워내고 성장시키는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면, 그렇게 해서 성장한 개그맨들은 어떤 식으로든 좀 더 다양한 예능의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지만 정작 그런 프로그램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게다가 <인간의 조건>은 그 프로그램 형식상 콩트에 적응한 개그맨들이 저 넓은 예능의 세계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전초전이자 훈련소이면서 또한 그 프로그램 자체로도 재미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절묘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또 <1박2일>에서도 몇 번 시도되었던 관찰카메라를 이용한 리얼리티쇼 형식이다. 그다지 새로운 형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개그맨들을 그것도 여럿을 한 공간에 세워두었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만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조건>은 현대인들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몇몇 문명의 이기들, 이를 테면 휴대폰이나 인터넷, TV 없이 일주일 간 생활하는 모습을 특별한 설정 없이 그대로 찍어 편집해 보여주는 리얼리티쇼.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종 조미료(예를 들어 <1박2일>에는 복불복이라는 조미료가 있듯이)를 치지만 그것 없이도 맛있는 웃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의 조건>은 보여준다.

 

다른 참가자들과 비교해 스케줄이 없는 양상국이 하루 종일 집을 지키다 집에 들어온 김준호를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는 장면이나, 잠깐 전화를 걸러 나간 양상국의 빈 자리를 김준호가 똑같이 느끼는 장면은 특별한 설정 없이도 웃음을 준다. 남들이 다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할 때 그 소리를 들으며 금단증상을 느끼는 김준호나, 늘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부재가 가져오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케이스를 만지작대는 정태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예능이 주는 특별한 웃음이다.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 몇 개를 빼냄으로써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인간의 조건>이 가진 특별한 의미는 따라서 동시에 예능에 있어서 조미료 역할을 하는 의도적인 설정 자체를 빼냄으로써 그 안에서 예능 본연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특이한 프로그램이다. 이 안에서 개그맨들은 지금까지 콩트 코미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일상적인 모습)를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은 콩트 코미디에 익숙해져버린 개그맨들에게는 새로운 적응훈련이 되는 셈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투입되었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상황극을 자꾸만 하려 하거나, 개인기, 유행어를 선보이려는 콩트의 습관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부터 아무 설정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카메라 앞에 있으라는 <인간의 조건>의 미션은 얼마나 좋은 기회이자 훈련인가.

 

<인간의 조건>은 리얼리티쇼가 갖는 다큐적인 속성 그대로 어떤 분명한 의미를 가지면서도 개그맨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이들을 한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인공조미료 없는 순수한 재미까지 선사하는 예능이다. 한참을 보다보면 거기 출연하는 개그맨들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인간적인 따뜻함 같은 것까지 느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콩트 캐릭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어우러지는 이미지의 변화과정은 앞으로 리얼 예능을 꿈꾸는 개그맨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인간의 조건>. 개그맨들에게 새로운 예능의 조건을 제시해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1박2일' 새 멤버 논란 왜 많을까

'1박2일'(사진출처:KBS)

'1박2일' 시즌2 새 멤버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최재형 PD가 밝혔지만, 한 매체가 밝힌 새 멤버들, 즉 주원, 김승우, 성시경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벌써부터 '1박2일' 시즌2가 '패떴2'가 되는 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강호동이나 이승기 같은 확실한 구심점이 없는데다가 나영석PD와 은지원 같은 프로그램의 활력소가 빠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각각의 새 멤버들에 대한 호불호는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무려 5년 동안이나 '1박2일'을 하나의 가족처럼 봐왔던 열혈 시청자들에게 새 멤버가 이방인처럼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즉 새 멤버가 누가 됐든 각각의 연예인들은 그 자체로는 대중들의 호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들이 '1박2일'이라는 틀로 들어오면 보는 시점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무한도전'과 '1박2일'에서 유독 많았던 제7의 멤버 논란에서 익히 봐왔던 것들이다. 사실 길이나 엄태웅처럼 중간에 프로그램의 새 멤버로 들어간 이들은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그 비판 수위는 수그러들었지만 그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만큼 하나의 유사가족을 구성하기 마련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새 멤버 투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 새 멤버 투입에 대한 저항감은 그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박2일'은 국민이 호명될 정도로 시청자와 함께 가는 모습을 그려낸 프로그램이 아니던가. '1박2일' 시즌2 멤버 구성의 가장 큰 난점은 바로 이 프로그램이 갖는 가족적인 특징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애착'에서 비롯된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사실 누가 들어와도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1박2일'에 여전히 남아있을 이수근, 엄태웅, 김종민과 새롭게 투입될 3,4명의 새 멤버들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질 수 있는가 하는 점도 시즌 멤버 구성에 있어서 난점 중 하나다. 사실 군대로 치면 '1박2일' 고참에 해당하는 이수근이나 김종민이 전체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힘이 있다면 그나마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인물은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이수근은 분위기를 만들고 지루할 틈을 메워주는 역할에는 능수능란하지만 전체 프로그램을 장악하거나 흐름을 만들어내는 역할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김종민 역시 캐릭터가 살아나고는 있지만 중심에 서 있을 인물은 아니다.

따라서 새 멤버들 중에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 있다면(예를 들어 김승우 같은) 멤버들 간의 묘한 긴장감이 생겨날 수 있다. 이것은 헤게모니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껏 봐왔던 '1박2일'의 흐름과 시즌2의 흐름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는 문제다. 즉 기존 멤버가 중심이 되어 끌고 가는 본래 '1박2일'의 흐름과 새 멤버에 의해 바뀌게 될 '1박2일'의 흐름이 부딪치게 되면 그 때마다 정체성의 혼란이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즌2는 결국 시즌1과 비교해서 너무 멀어져서도 안 되고 너무 똑같아서도 안 되는 그 어려운 지점에 설 수밖에 없는 형식이다.

즉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처럼 하나의 캐릭터일 수밖에 없는 멤버들의 구성은 그 자체로 이야기 흐름이 되기 때문에 그만큼 논란도 많이 나오게 된다. 그 안에는 기존 '1박2일'과의 유사성을 유지하려는 힘과 시즌2로서의 차별성을 요구하는 힘이 부딪친다. 기존 멤버들을 다 가져가면 문제가 없겠지만, 멤버 중 일부를 바꾸는 건 그래서 쉽지 않은 문제다. 하물며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바뀌어도 논란이 나오는 상황에, 시청자까지를 포함한 유사가족을 구성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새 멤버 구성에 대한 논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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