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에 여행 더한 <신서유기3>, 상상초월 놀이 한 판

 

대체 왜들 이러는가.’ tvN <신서유기3>가 중국 계림에서 벌인 첫 번째 기상미션에는 이런 제목이 붙었다. 아침 8시 이후에 미션이 시작된다고 전날 나영석 PD가 얘기했지만 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7시가 되기 전부터 일어나 스스로들 기상미션을 수행한다. 6명 중 3명만 아침으로 나올 완탕을 먹을 수 있다는 말 한 마디에 은지원은 다른 방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버리고 안재현과 강호동은 가까스로 문을 열고 나와 역습을 가한다.

 

'신서유기3(사진출처:tvN)'

뒤늦게 일어난 송민호가 잠긴 방문 대신 창문으로 나오자, 이수근과 은지원은 아예 숙소 바깥으로 나가 그 대문을 철사로 잠그려 한다. 그걸 알아차리고 송민호와 안재현도 문밖으로 나오고 뒤늦게 문이 잠기는 걸 본 강호동은 얼굴을 내밀다 문틈에 머리가 끼어버린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강호동이 괜스레 달리는 척 하자 모두들 어딘지도 모른 채 달려가고, 놀랍게도 우연히 당도한 주차장에서 그들은 버스를 발견하고 올라탄다.

 

대체 왜들 이러는가라는 제목이 붙은 건 당연하다. 미션 자체가 제시되지도 않았는데 도무지 밑도 끝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뛰고 달리는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언 버전의 손오공 분장(?)을 하느라 뒤늦게 나온 규현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면서 이 알 수 없이 뛰고 또 뛰는 기상미션에 참여한다. 그런데 이 미션의 끝을 보면 결국 선택에 의한 복불복이다. 두 개의 버스로 3명씩 나눠 탄 그들에게 9시 쯤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나영석 PD는 한 버스에 올라탐으로써 그 버스에 탄 3명의 승전보를 알린다. 이 버스에 탄 규현, 은지원, 안재현이 완탕으로 먹으러 갈 때, 나머지가 탄 버스는 아침도 못 먹고 답사를 하러간다.

 

이 아침 기상미션은 <신서유기3>라는 나영석 PD표 예능 프로그램이 얼마나 출연자에게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게 됐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속고 속이고 뛰고 달리는 뜬금없는 기상미션을 하는 것에 대해 출연자도 시청자도 그다지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신서유기>도 시즌3를 했지만, 이런 식의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복불복은 <12> 시절부터 지금껏 익숙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런 익숙함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게임에 들어간다고 해도 새로 들어온 규현이나 송민호 모두가 쉽게 동화될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중국 계림으로 떠나긴 하지만 그 목적이 따로 없다. <12>이나 <꽃보다 청춘> 같은 시리즈의 주목적은 여행이다. <삼시세끼>는 여행보다는 시골 살이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신서유기3>는 그 목적이 무엇일까. ‘서유기라는 중국 고전을 끌어옴으로써 그 목적지를 중국으로 정해놓고 있지만 <신서유기3>의 목적이 여행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 게다가 이들은 서유기혹은 드래곤볼캐릭터를 가져와 분장을 시킨다. 이런 분장은 일반적인 여행과는 <신서유기3>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걸 분명히 해준다.

 

그건 바로 놀이다. 이들은 아예 시작부터 대놓고 놀이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고, 중국의 어느 지역을 놀이의 장소로 정한 것이며 심지어 그 놀이 속에서 캐릭터까지 설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놀이에 중국이라는 낯선 여행지가 덧붙여지고 거기에 서유기의 캐릭터까지 더해지면서 평시에는 하기가 쉽지 않은 놀이들이 가능해진다. 물론 <무한도전>은 서울 도시 한 복판에서도 캐릭터 분장을 하며 대로를 활보하기도 했지만, <신서유기3>는 그래도 여행이라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는 틈을 벌려주고 거기에 캐릭터까지 부여해줌으로써 놀이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이제 왜 이들이 낯선 계림의 한 공간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뛰고 또 뛰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가가 이해가 된다. 또 그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게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이유도 알게 된다. 핵심은 여행에 캐릭터를 더하고 아예 목적을 즐거운 놀이로 정해놓은 것이다.

 

이것은 <신서유기3>가 가진 색다른 나영석 PD표 예능의 또 다른 버전이다. 여행이라는 바탕 위에 서 있지만 <꽃보다> 시리즈가 해외 배낭여행의 진수에 방점을 찍고, <삼시세끼>가 시골살이를 통해 우리네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면, <신서유기3>는 캐릭터 놀이를 더해 아잇적 순수한 즐거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다음 날 출근할 일에 한껏 무거워진 마음을 잠시 동안 잊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의 세계로.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는 은근 닮은꼴

 

<꽃보다 할배>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른바 ‘일섭다방’에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어른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귀여운 할배들의 ‘서열놀이’가 들어있다. ‘젠장 나이 70에 막내라니...’라는 자막과 함께 투덜대는 백일섭과 그 놀이가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 어린 얼굴로 뒤에서 웃고 있는 이순재, 그리고 백일섭에게 커피 타라고 시키는 신구는 나이만 쏙 빼놓으면 영락없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꽃보다 할배>의 할배들이 그렇다. 그들에게 주어진 ‘배낭여행’이라는 중차대한 미션은 그들을 순식간에 아이들로 만들어버린다. 파리에 내려 숙소까지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이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오는 장면처럼 흥미진진한 모험의 연속이다.

 

누가 뭐라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이순재와, 무거운 짐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자 아내가 정성스럽게 챙겨준 장조림통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백일섭이 그렇다. 또 그 투덜대는 막내(?)를 살뜰하게 지켜주고 그가 버리고 간 꽃다발을 챙겨 그의 가방에 꽂아주는 바르고 착한 어린이 같은 신구와, 드라마 속에서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멋진 스타일에 여전히 소년처럼 보는 이를 설레게 만드는 미소를 짓는 박근형이 그렇다. 이들은 적어도 <꽃보다 할배>에서는 소싯적의 아이들로 돌아간 모습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여행이 주는 힘 덕분이다. 일상과 일 속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이자 후배들이 우러러보는 국민배우들이지만, 여행은 그런 무거운 타이틀들을 모두 벗어버리게 만든다. 그들은 그저 오래도록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형 동생 사이일 뿐이다. 나영석 PD는 아마도 <1박2일>을 통해 이미 여행이 주는 감성이 때 묻은 어른의 껍질을 벗어내고 대신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게다. 중년의 어른들도 계곡 앞에 서면 입수를 걸고 목숨 걸듯 복불복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보면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전혀 다른 소재를 갖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쪽이 이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할배들을 조명한다면, 다른 한쪽은 실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으로 무장된 밝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프로그램 모두 여행이라는 일상과는 다른 시공간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할배와 아이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보통의 성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어떤 경우에는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약자의 위치는 예능이 주는 간단한 미션조차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만들어준다. 아이들에게 시골이라는 낯선 공간이 하나의 도전이라면, 할배들에게는 배낭여행으로 가게 되는 외국의 낯선 공간이 도전이 되는 셈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아빠들이 보호자로 서 있다면, 할배들에게는 이서진이라는 젊은이가 보호자가 되는 셈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가 점점 ‘조미료 없는 예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할배와 아이라는 약자의 지점은 중요하다. 성인이라면 훨씬 강도 높은 미션이 주어져야 그만한 효과를 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다이빙을 한다든지 군에 재입대를 한다든지 해야 그만한 효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할배와 아이처럼 출연진 자체를 약자로 두게 되면 단순한 일조차 미션이 된다. <꽃보다 할배>의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 찾는 첫 번째 미션이 별다른 조미료(설정) 없이도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되는 이유다.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주는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다시 찾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진짜사나이>가 다 큰 장정들의 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혹독한 군대로 들어가야 하는 반면, 할배들과 아이들은 이 순수함을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군들이다. 어쩌면 향후의 새로운 예능 트렌드는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준 그 순수의 지대에서 새롭게 피어날 지도 모르겠다.

나영석 PD는 왜 <꽃보다 할배>를 선택했을까

 

왜 하필 할배(?)들이었을까. 나영석 PD가 새롭게 시작하는 <꽃보다 할배>의 평균연령은 76세. 막내 나이가 무려 70세다. <1박2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나영석 PD가 CJ로 이적해 만든 첫 작품인데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국민배우들이 뭉쳤기 때문인지 <꽃보다 할배>는 시작 전부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일섭다방’이라는 실시간 검색어까지 떠올랐던 공원에서 커피를 타 마시는 티저 영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꽃보다 할배>가 가진 특별한 재미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영상 속에서 백일섭은 막내라는 이유로 투덜대며 커피를 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나이 다 들어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칠순 할배들이지만 그 안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위계질서가 큰 웃음을 주었던 것.

 

이 장면은 <꽃보다 할배>가 어르신들이 주인공들이지만 그 소구대상은 젊은이들을 포괄할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즉 이 예능 프로그램은 ‘할배’가 아니라 ‘꽃보다’에 더 방점이 찍힌다는 것. 할배들이지만 여전히 ‘꽃보다’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감동의 존재들이기도 한 그들의 새로운 면모가 이 프로그램의 진면목이라는 점이다.

 

tvN <택시>를 통해 살짝 공개된 <꽃보다 할배>의 장면들은 이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어르신들의 배낭여행이 젊은이들의 <1박2일>보다 훨씬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굉장히 적극적인 직진순재, 엉뚱한 매력의 시크신구, 로맨티스트 박근형, 좌충우돌 웃음담당 막내 백일섭 같은 캐릭터가 이미 만들어질 정도.

 

할배와 배낭여행이라는 새로운 조합 속에는 그간 나영석 PD가 해온 리얼 예능에 대한 생각이 들어가 있다. 나영석 PD는 예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이 가진 재미’를 꼽고는 했다. 즉 기획단계에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림이 떠오르는 예능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식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젊은이들이 배낭여행에서 겪을 수 있는 그림은 한정되어 있지만 그 체험자가 할배들이라면 도무지 어떤 그림이 나올 지 상상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지점은 작금의 <1박2일>이 난항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영석 PD가 이끌던 <1박2일>이 예측 불가능한 과정들을 담았다면, 지금의 <1박2일>은 시작과 함께 대충의 과정과 결과까지를 예측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오래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대중들의 뒤통수를 치는 새로움에 대한 노력이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나영석 PD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그렇다고 해도 그 낯설음이 기대감마저 없는 미지수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조합이 낯설면서도 막연하게나마 할배들의 배낭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아니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어르신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그렇고, 70년 이상을 살아온 경험치에서 묻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할배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네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네 근대사를 통과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여가나 여행에 대해 그만큼 소홀했을 어르신들이 경험하는 배낭여행이란 그분들에게도 똑같은 여운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즉 ‘할배들의 배낭여행’이라는 단순명쾌한 콘셉트 안에 상당히 많은 기획 포인트들이 자연스럽게 들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야동순재를 통해, 또 “니들이 게맛을 알어?”하고 묻던 신구 선생을 통해, “아 글씨”하고 추임새를 붙여가며 부르던 백일섭 선생의 ‘홍도야 울지 마라’를 통해, 그리고 칠순에도 여전히 빛나는 박근형 선생의 로맨틱한 풍모를 통해서 그네들에 대한 팬덤이 젊은 층들에게도 충분히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어르신이 순간 권위를 무너뜨리고 아이 같은 천진함을 드러낼 때, 나이와 세대의 장벽은 허물어져버린다.

 

게다가 제 아무리 자기 세계에만 매몰되어 있던 자라도 그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기 마련인 여행이 아닌가.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껏 가족의 한 언저리로 밀어놓고 구태여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우리네 어르신들의 ‘여전한 청춘’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예측불가능성’과 ‘기대감’. 이것이 나영석 PD가 보여줄 <꽃보다 할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이유다.

서수민 CP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

 

“신미진 PD의 뛰어난 고집이 통했습니다. 제가 부탁한 건 딱 하나예요. 개그맨들이 뜨면 버라이어티에 한 번씩 넣어주잖아요. 근데 그렇게 하게 되면 개그맨들의 버라이어티 MC 따라 하기가 되요. 그래서 <개콘>이나 다른 버라이어티가 보이지 않았던 자연인 개그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죠. 근데 그게 잘 살았어요. 제가 이 프로그램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는 건... 사실 처음엔 맘에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도 암말 안했다는 거(웃음). - 서수민 CP”

 

사진:전성환

<인간의 조건>의 서수민 CP는 요즘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인간의 조건>이 이렇게 잘 나오고 반응이 좋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개그맨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짜보라고 신미진 PD에게 숙제를 내주면서였다고 한다. 신미진 PD는 무려 10개의 아이템을 가져왔는데 결국 전부 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수민 CP나 예능국 총괄 프로듀서인 박중민 EP 입장에서는 MC도 없이 개그맨들만으로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미진 PD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4부작 파일럿 얘기가 나오자 “하지 말란 얘기 아니냐”며 반 포기 상태였다고 한다. 그 때 가져온 기획안이 <인간의 조건>이었던 것. 그것도 그다지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서수민 CP는 박중민 EP에게 이번은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고 했다는 것이다. 후배 기를 살려주는 차원에서.

 

“그래서 박중민 EP와 농담으로 방송 나갈 때 첫 방이 괜찮으면 우리 이름을 넣고 아니면 빼자고도 했어요. 결국에는 이름 들어가는 게 자랑거리가 됐지만(웃음).”

 

막상 나온 프로그램이 너무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이 프로그램의 불안 요소였던 MC가 없이 개그맨에 최적화시켰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콩트에 익숙한 개그맨들은 설정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들어가면 자꾸 설정을 하고 상황극을 하려다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은 거꾸로 갔다. 개그맨들에게 뭔가를 하라고 하기보다는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왔고 더 잘 될 수 있었던 것.

 

“박성호는 설정이 없으면 불안해해요. 갸루상 같은 분장을 해야 편안해지는 편이죠. 그래서 <인간의 조건> 들어갈 때도 너무 불안해 했어요. 그런데 아무 설정 없이 그냥 들어가더니 오히려 김준호와 케미(관계)를 만들어 내더라구요. <개콘> 이면에 이런 불편한 관계도 있구나 하는 걸 시청자분들도 흥미롭게 보아주셨죠. 사실 이 둘의 관계는 진짜예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해가는 모습이 훨씬 진정성 있는 재미를 만들어내죠.”

 

서수민 CP는 <인간의 조건>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배운 게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후배가 뭐 한다고 할 때 말리기보다는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겠다는 것이다. 나름 본인도 예능에 있어서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 나름의 경험과 기준으로 판단을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통해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예능PD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게 있어요. 예능하면 꼭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1,2,3가 있는데 이것 없이 과연 제대로 나올까. 메인 엠씨가 없고 게임이 없고 오락성이 없는데 과연 될까. 그런데 되는 걸 보면서 시청자가 원하는 건 다른 거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건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와 <인간의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중들은 언젠가부터 예능의 양념들(서수민 CP가 말하듯 게임이나 메인 MC, 오락성 같은)에 질려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그 양념을 빼버림으로써 오히려 대중들이 원하는 담백한 예능의 맛을 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갈 수 있게 신미진 PD를 잡아준 건 나영석 PD였습니다. 사실 처음 휴대폰, TV, 인터넷 없이 살기 미션에 대해 저나 박중민 EP나 뭐 딱히 잡히는 게 없어 걱정이 많았죠. 그래서 신미진 PD는 꽤 신랄한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같이 회의를 했던 나영석 PD가 이거는 분명히 된다고 확신을 갖고 말하더라구요. 왜? 하고 물었더니 지금 국장님도 휴대폰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 물어 봤을 때 아무런 그림이 안 떠오른다고 얘기하시지 않았냐고 하지 않았냐. 마찬가지다. 뭐가 될지 모르는 게 버라이어티의 시작이다. 게임이 있고 뭐가 있으면 뭐가 나올 지 다 예상이 되지 않냐. 그것보다는 뭔지 모르겠다는 궁금증이라도 생기고 그래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고 얘기하더라구요. 후에 몇 번 촬영장에 찾아갔는데 그 때마다 나영석 PD가 말하더군요. 이건 대박이야!”

 

'인간의 조건'(사진출처:KBS)

사실 박중민 EP나 서수민 CP의 걱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예능을 하면서 예능적인 핵심 코드들을 다 빼겠다는 건 큰 실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영석 PD는 어떻게 <인간의 조건>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턱없는(?) 자신감이 <1박2일>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1박2일>은 결국 연출을 빼고 관찰을 통해 재미요소들을 발견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굳이 연출이나 기획하지 않아도 분량이 나오는 걸 늘 봐왔던 나영석 PD는 그래서 상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기존 멤버로 계속 갈 건지 아니면 조금씩 새로운 개그맨을 투입해서 바꿔나갈 건지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너무 같은 그림만 나오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고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그대로 가려구요. 중요한 건 이야기지 굳이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건 아니라고 봐요. 지금 이대로도 박성호와 김준호처럼 그 멤버들 사이에 다양한 케미가 가능하거든요. 이 기본을 유지하고 중간 중간에 숙소를 자연스럽게 개그맨들이 찾아올 수는 있겠죠. <인간의 조건>이 좋은 게 이 프로그램으로 <개콘> 개그맨들도 자극이 된다는 거예요. 여기 들어오고 싶어 하는 개그맨들이 생긴 거죠.”

 

<개콘>이 늘 아쉬웠던 부분은 이 프로그램에서 성장한 개그맨들이 그 연장선 위에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 <개콘>의 개그맨들은 성장하면 이 프로그램을 나와 버라이어티에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은 다르다. <개콘>을 하면서 동시에 콩트 코미디 이상으로 개그맨이 성장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할 수 있다. 개그맨들로서는 확실한 발판이자 성장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개콘>을 잘 하면 또 다른 자기를 메이킹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개그맨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인간의 조건>은 그래서 <개콘>과 또 개그맨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예능인 셈이죠.”

 

<인간의 조건>은 <개콘>의 이면 같은 느낌을 준다. <개콘>이 무대 위에서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는 개그맨들을 보여준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분장을 지우고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온 맨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준다.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그래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개콘>의 짝패 같은 느낌.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조건>이다.

나영석 PD까지 CJ행을 선택한 이유

 

이명한 PD, 신원호 PD에 이어 이우정 작가(그녀는 물론 KBS 소속은 아니었지만)도 합류하더니 결국 나영석 PD도 CJ E&M 행을 택했다. 이로써 한때 <해피선데이>를 최고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던 주역들이 모두 KBS를 떠난 셈이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나영석 PD 본인은 부인했지만 그의 이적설은 끊임없이 나왔으니까. 아마도 KBS라는 조직의 생리를 아는 방송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나영석 PD 같이 재기발랄한 인재가 이 조직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것은 KBS가 가진 제작 여건이 열악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제작상의 많은 이점들을 갖고 있다. 전국망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고, 폭넓고 보편적인 시청층을 갖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그 공영성에 부합한다면 시청률에 있어서도 그다지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조직이다. 이런 면은 오히려 CJ E&M과 상반되는 것들이다. CJ라는 조직은 케이블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갖고 있고 좋은 제작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시청률이 낮다면 KBS처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것은 이적한 PD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작 환경에 있어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런 선택을 왜 모두 하는 걸까. 혹자들은 그것이 결국 돈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모든 직장인(PD도 한 사람의 직장인이다)들에게 있어 급여 문제만큼 첨예한 것이 있을까. 그러니 더 대우를 해주는 직장이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회사가 능력에 맞는 대우를 제대로 해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KBS는 그런 점에서 몇몇 실력 있고 도전적인 PD들에게는 매력 없는 직장이다. KBS가 원하는 것은 그 전체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서의 PD이지 저 스스로의 확고한 영역을 만들어 이른바 스타가 되는 그런 PD가 아니다. KBS는 스타PD를 키우지도 또 용인하지도 않는 그런 조직이다.

 

또한 KBS는 제작환경은 좋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마인드는 떨어지는 편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다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시즌 프로그램들이 그토록 많고,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도 넘쳐나는 건 보수적인 시청층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무언가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젊은 PD들에게는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남자의 자격>을 연출했던 신원호 PD가 CJ E&M에 가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을 연출해 큰 화제를 일으킨 것은 나영석 PD에게는 꽤 큰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제작여건은 어려워도 새로운 도전정신이나 상상력의 기회는 늘 열려 있는 그런 조직.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승부를 볼 수 있는 그런 조직. KBS는 물론 안정적이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PD들에게는 아마도 그 안정적인 것 자체가 힘겨웠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거기에는 예전부터 손발을 맞춰왔던 그들(이명한 PD,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이 있다.

 

한때를 풍미했던 <해피선데이>팀이 모두 KBS라는 둥지를 떠나 CJ E&M에 새 둥지를 세우게 된 것은 물론 대우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PD들이 갖기 마련인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작하고픈 그 도전정신을 KBS라는 조직이 그다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새 둥지에서 이른바 히트작을 터트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젊은 날에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게다. 새 도전 앞에 서 있는 나영석 PD의 건투를 빈다.


발견의 예능, 예능의 발견 '1박'의 나영석 PD

나영석 PD는 역설의 연출자다. 무려 5년 간이나 여행 버라이어티를 이끌어오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 점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일 제가 여행 마니아라면 프로그램도 마니아적인 게 됐을 겁니다. 보통 가정에서 여행을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잖아요. 제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오버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죠."

이 '보통 사람들'의 시각은 다름 아닌 '1박2일'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나영석 PD의 성향처럼 '1박2일'은 늘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은 나이에 걸맞는 혜안이 있기 마련인가 봐요. 촬영을 가서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 툭툭 던지는 얘기 속에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인생의 진리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죠. 강호동씨가 시골에 가면 어르신들 붙잡고 얘기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 분들에게는 정말 뭔가 건질 게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1박2일'의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존중은 루머나 오해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일단 PD가 사과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부산 사직구장 논란이 그랬고, MC몽의 흡연 장면 논란이 그랬다. 물론 이건 초창기 일찌감치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즉 밀양 여행 편에서 시골집에 간 이수근이 빨래판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갔었는데 그것 때문에 '민폐 논란'이 생겼던 것. 하지만 이건 오해였다. 그 집은 본래 나PD의 외할머니집이었고, 빨래판은 오래돼서 본래부터 태우려고 내놓은 것이었다는 것. 그 후로 나PD는 대중들이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1박2일'이 어딘지 투박하고 서민적이며, 꾸며진 화려함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이러한 나영석 PD가 가진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나영석 PD는 애초에 '1박2일'이 '여행'이라는 어딘지 거창한(?) 소재를 겨냥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저 야외에 한번 나가보자.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한번 들여다보자던 것이었죠. 그런데 정말 의외의 재밌는 상황들이 벌어지더라구요. 라면 하나 가지고 누가 먹었냐 안먹었냐를 놓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었죠. 물론 그런 상황을 초기에 만든 건 전적으로 강호동씨의 공이 큽니다."

나영석 PD의 '내버려둬도 무언가 나온다'는 이 자신감은 '1박2일'만의 느긋함과 자연스러움을 만들었다. 무언가 인위적인 상황을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내버려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발견'해내는 심지어 '다큐스러움'은 그래서 '1박2일'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이 자연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출연자들의 캐릭터다. '1박2일'은 출연자들에게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하진 않는다. 차라리 내버려두고 스스로 캐릭터를 발견하고 찾아낼 시간을 준다. 이수근이 그랬고, 엄태웅이 그랬으며, 후에 다시 복귀했던 김종민이 그랬다.

이 자연스러움과 기다림의 태도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에 비견된다. 무언가 해줘야 하는 마음은 있지만 급하게 다그치면 본래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고 엄한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부모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이 출연자들이 더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또 갈 길을 제대로 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출자로서 당장 역할을 못하는 출연자들을 보면 어찌 답답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한 집에서도 잘 나가는 자식이 있으면 묻어가는 자식도 있는 법이죠. 그러다 어느 날은 그게 뒤바뀌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만 굴러갔다면 '1박2일'은 어딘지 밋밋한 느낌의 예능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영석 PD는 다큐처럼 진지한 모습 뒤에 어린 아이 같은 개구진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늘 야전에 머물면서 시커멓게 타버린 얼굴이 슬쩍 미소를 보일 때 드러나는 게 바로 그 장난기 가득함이다. 이것은 '1박2일'이라는 진국에 톡톡 쏘는 맛을 내는 양념, '복불복'을 그대로 빼닮았다. 복불복이라는 코드는 '1박2일'의 예능적인 부분들을 뾰족하게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1박2일'이 복불복으로 한 게임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반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위바위보, 묵찌빠 같은 이미 누구나 익숙한 기본적인 게임들 아니면, 아예 족구나 탁구 같은 스포츠들의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반복적으로 게임을 하면서도 어째서 '1박2일'의 복불복은 매번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게임은 단순했지만, 그 게임에 거는 것들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텝들 전원 야외취침을 복불복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니 어찌 간단한 족구 게임이라도 몰입도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때론 다큐 같고 때론 완전한 예능 같은 이 어찌 보면 이질적인 두 분야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지는 과정은 나영석 PD의 진지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것은 '1박2일'이 나영석 PD를 닮은 것일 수도 있고(그 성향이 묻어난 것), 또 정반대로 5년  간이나 함께 해오면서 나영석 PD가 '1박2일'을 닮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 우리가 '1박2일'과 나영석 PD를 비슷한 어떤 존재로 보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제 나영석 PD의 '1박2일'은 그 긴 여행을 끝냈다. 이제 대신 최재형 PD의 '1박2일'이 그 새로운 여행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예능에서 한 획을 그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면서 나영석 PD를 추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영석 PD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1박2일'이라는 '발견의 예능'은 그래서 새로운 '예능의 발견'이 될 수 있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100% 이상을 기획하지만, 50% 정도만 기획을 충족시킬 때 '1박2일'만의 재미가 만들어진다." 나영석 PD의 이 말은 '1박2일'만이 가진 재미의 핵심을 말해준다. 즉 이 말은 '1박2일'이 아무 준비 없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재미를 기대하는 '날방'이 아니며, 그렇다고 100% 기획한대로 방송이 흘러가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야생과 날것의 느낌, 즉 의외성이란 '1박2일'만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획한 것의 반 정도가 기대대로 움직이고, 나머지 반이 의외의 상황으로 흘러갈 때 '1박2일'은 완전한 재미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의 이 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박2일'의 전체 흐름 속에서 PD는 사실상 모든 걸 쥐고 흔들 수 있는 존재다. 연기자들을 속여 제주도 한 음식점에 내버려두고 모두 도망치거나, 각각의 단계마다 특정한 미션을 부여해 그들의 동선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즉 아무리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고 해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PD는 이 모든 흐름을 통제하는 '신적인(스토리를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존재다.

이것은 나영석 PD 스스로도 잘 인식하고 있는 일이다.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리얼 버라이어티는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 동력이 꺼지지 않게 해주는 게 포인트"라며 그래서 "과거에는 프로그램 포맷에 그러한 것들을 집어넣었다면 요즘은 PD가 전면에 나서 그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과거에 이러한 외부적 개입을 프로그램 포맷 속에 넣은 이유는 당연하다. 그 개입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너무 인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극작에서 최악의 방식으로 지목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신의 강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늘 신적인 존재로서의 작가는 작품 뒤쪽으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 그가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보는 이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대중들은 아무리 작가가 뒤쪽으로 빠져 있어도 그 숨겨진 개입을 눈으로 읽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것이 너무 짜여진 연출이라는 것을 발견해낸다. 그러니 리얼리티를 부르짖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의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이제 PD들이 카메라 속으로 들어와 즉석에서 연기자들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심지어는 연기자들과 대결구도를 갖기도 한다. 이것은 외부의 개입을 대중들에게 인정하는 대신, 모든 상황이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MBC처럼 PD 개개인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의 방송사라면 모를까, KBS처럼 시스템 중심으로 움직이는 방송사에서 PD가 카메라에 얼굴을 내미는 건 심지어 금기시되어 있다. 그래서 초창기 이명한 PD는 자신이 전면에 나선 것은 어쩔 수 없는 형식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바톤을 이어받은 나영석 PD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영석 PD는 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온전히 '1박2일'의 한 재미요소로까지 격상시켰다.

이렇게 된 것은 나영석 PD가 일종의 반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즉 어딘지 엄하고 모든 걸 통제하려는 완고함을 가질 것만 같은 PD가 사실은 이보다 더 수더분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이것은 서글서글한 외모에서부터 드러난다), 늘 "안됩니다!"를 외치면서도 연기자들을 걱정하는 선한 이미지에,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가 귀엽기까지 한 장난기(그래서 그는 귀요미로 불린다), 인간적인 성정을 드러내는 욱하는 성미까지 보여주니 대중들로서는 이 완전한 반전 캐릭터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재간이 없다.

카메라 바깥에서 프로그램이라는 세계를 움직이는 신적인 존재로 자리하던 PD는 나영석 PD로 와서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인간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자신이 연기자들에게 부여할 독한 미션 앞에 고민하고 흔들리기까지 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러니 이제 나영석 PD 없는 '1박2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 되었다. 심지어 나영석 PD 보는 맛에 '1박2일' 본다는 얘기도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영석 PD가 했던 말을 뒤집어서 해보면, 이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100% 완고한 PD'가 아니다. 어쩌면 50%의 PD 역할에 나머지 50%의 빈 자리를 남겨놓는 PD. 그래서 그 빈 자리를 여유와 온기로 채워주는 그런 PD가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영석PD와 한 방. 누군가는 닮았다고 얘기하던데...ㅎ

나영석 PD를 처음 만난 건 '1박2일'이 시작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명한 PD가 '1박2일'을 이끌었고, 나영석 PD는 그 밑에서 실질적인 일을 했죠. 얼굴이 거무튀튀한 게 정말 야생과 현장 냄새가 물씬 풍겼던 그 때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삼성 사내방송에서 마련한 대담 자리에서 나영석 PD를 다시 만났죠. 예전보다는 세련되어 보였지만, 그 특유의 털털함과 수더분함은 여전했습니다. 물론 그 수더분함 속에는 나영석 PD만의 카리스마도 있었죠. 아마도 현장에 나가면 일에 있어서 꽤 추진력이 있어보였습니다.

한 시간 남짓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정말 꽤 오랜 시간동안 만났던 사람처럼 편안해졌습니다. 사실 PD들과 스스럼없는 느낌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그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점이 나영석 PD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융화력. 현장에서 늘 발생하기 마련인 돌발사태도 그 융화력 속에서는 새로운 재미로 만들어지거나, 어떤 돌파구로 제시될 것이기 때문이죠.

요즘 나영석 PD는 정말 '1박2일' 출연하는 연기자들만큼의 존재감을 보이더군요.. 얼굴만 봐도 아시겠지만 나영석 PD는 장난꾸러기 같은 면도 갖고 있습니다. 꼭 아이들 같은 그런 느낌이죠. 그래서 '1박2일'이 가끔씩 하는 복불복이 때론 아이들 놀이 같은 느낌을 줄 때, 거기 그 놀이의 마당을 펴놓는 나영석 PD는 정말 잘 어울립니다.

"안됩니다!", "땡!", "실패!" 이 몇 마디로 이승기가 나영석 PD를 캐릭터화 했지만 나영석 PD의 그 부정어법에는 그만의 따뜻함이 배어있습니다. '1박2일'을 '1박2일' 답게 만들어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 하는 그 일을 하면서도, 늘 연기자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건 그 때문입니다.

정말 '1박2일' 함께 하고픈 수더분함을 가진 나영석 PD, 언제 한 번 만나서 소주 한 잔 해야겠습니다.

관련글 : 나영석PD의 부정어법에 모두가 공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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