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마이’ 박서준, 무심한 듯 애틋하고 웃긴데 설레는

이쯤 되면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박서준 파워를 인정해야 할 듯하다. 아예 남녀 관계에 있어 쑥맥이라 그런지 그것이 우정인지 정인지 아니면 사랑인지도 헷갈려하는 고동만 역할을 박서준이 이토록 잘 소화해낼 것이라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지난 작품이었던 <화랑>의 잔상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다. 물론 당시에도 무명 역할을 연기한 박서준의 연기가 나빴다고는 볼 수 없었다. 다만 사극의 그 이미지가 박서준에게 잘 어울리지 않은 면이 있었을 뿐이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쌈마이웨이>의 박서준이 돋보이는 건 고동만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무심한 듯 애틋하고, 웃긴데 설레는 그 면면들을 너무나 잘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지원의 공 역시 적지 않다. “그러지 마. 나 자꾸 설레”라고 말하는 그녀가 있어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고동만이 “어쩌냐. 이젠 우는 것까지 예뻐 보이니.”라고 하는 대사가 확 살아난다. 

온 시청자가 다 알고 있지만 두 사람만 모르는 것 같은 연애감정이다. 그래서인지 드디어 고동만의 “썸이고 나발이고 키스 했으니 오늘부터 1일이다”라는 직진 멘트를 하고 공식적으로 사귀는 걸 인정하는 그 순간, 시청자들 역시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귀니까 또 하자”는 그 말에서는 고동만이라는 인물의 순진함과 순수함이 묻어난다. 

오래도록 친구 사이로 지내 자신들도 모르게 남사친, 여사친 관계가 되어버린 그들이 보여준 건 사실상 썸이나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썸. 그래서 최애라(김지원)의 아버지에게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잤다는 걸 들켰을 때 고동만이 “애라하고는 무인도에 가도 원숭이나 원주민처럼 지켜줄 수 있는 사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여러 감정들을 수반한다. 

그런 말이 웃기기도 하지만, “뭘 지켜주냐”며 발끈해하는 최애라에게서는 서운함이 묻어나고 최애라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우리 딸이 뭐가 모자라서?’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그렇게 애써 변명을 하고 있는 고동만도 슬쩍 한 발 물러나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하는 그 속내를 숨길 수 없다. 바로 이런 지점이 <쌈마이웨이>에서 박서준과 김지원의 멜로가 갖는 남다른 묘미다. “썸이고 나발이고”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들은 그 이상의 썸을 보여줘 왔던 것.

하지만 일단 마음을 확인하고 나면 앞뒤 재지 않고 직진하는 게 바로 고동만의 스타일이다. 이런 남자다움은 친구 사이에서 갑자기 연인 사이로 훅 들어오는 그 순간의 가슴 두근거림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 

박서준이 로맨틱 코미디 장인이라는 건 사실 <그녀는 예뻤다>의 지성준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확인된 바 있다. 거기서도 친구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연인으로 다가올 때의 그 설레는 순간을 그는 제대로 연기해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쌈마이웨이>에서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의 밑그림으로서 현실에 날개가 꺾였지만 그래도 고개 숙이지 않고 살아가려는 당당한 청춘의 자화상까지 덧붙여 놓았다. 

<쌈마이웨이>의 고동만이라는 캐릭터에 그래서 시청자들은 사랑과 꿈 두 가지가 모두 성취되기를 바란다. 동생 수술비 때문에 포기했던 꿈을 격투기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얻기를 바라고, 힘들 때 항상 옆에서 친구처럼 지지해줬던 최애라와의 사랑이 이뤄지길 바란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지금의 힘겨운 청춘들에게 기원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박서준은 그 청춘의 초상을 제대로 연기해 보여주고 있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며.

<디마프>, 관계의 족쇄 벗어 버리고 친구가 된다는 것

 

엄마도 여자야. 내 말이 맞지 엄마. 엄마도 여자지? 엄마도 남은 인생 여자로 살고 싶지? 그치?” 꼰대 남편과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집 나온 정아(나문희)에게 딸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고충을 토로한다. 엄마가 집을 나오자 아빠가 딸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일을 시킨다는 것. 딸들은 집나온 엄마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이혼을 찬성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남은 인생 여자로 살고 싶지 않냐고 묻는 딸은 이혼을 찬성하는 쪽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아는 그렇게 말하는 딸에게 듣다못해 한 마디를 던진다. “아휴 내가 무슨 여자냐. 물혹으로 자궁 떼 낸 지가 언젠데. 그리고 이 나이 들어서 내가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때.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어 그냥.” 그러자 또 딸이 엄마 인생을 들먹이며 대거리한다. “지랄 안하게 생겼냐? 여적 잘 살다 이렇게 집 나오면 엄마 인생 실패한 거 밖에 더 돼?” 다른 딸은 생각이 다르다. “엄마가 왜 실패야?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는 아버지 인생이 실패지.”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정아의 남편 석균(신구)은 한 마디로 꼰대다. 아내인 정아 구박하는 일이 마치 습관처럼 되어 있다. 눈 뜨면 밥 차리라 명령하고, 물 떠다 먹는 일조차 제 손으로 하는 법이 없다. 밖에 나갔다 늦게 들어올라 치면 문 밖에서 반성하고 들어오라며 벌을 준다. 온 친척들을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제사상을 차리라고 해놓고는 여자들은 재수 없다며 제사 때는 집 밖으로 내몬다.

 

집안에서 이러니 집밖에서는 오죽할까. 후배인 성재(주현)의 집에 불쑥 찾아와 밥 달라고 하고는 자신은 식탁에 숟가락 놓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아내 부리듯 성재에게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기 일쑤다. 이러니 젊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리 만무다. 완이(고현정)는 그에게 전화 오는 것조차 끔찍해 한다. 집 나간 아내 대신 그 주변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전화해 밥 차려 달라고 떼쓰는 그에게 모두가 인상을 쓴다. 버스를 타고 마치 제 자리인 양 앉아있는 여학생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그에게 예의는 없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그는 철저히 꼰대다.

 

그러니 집 나온 정아의 사정이 백 분 이해된다. 그런데 딸들이 찾아와 아버지에 대해 나쁘다고 말하자 그녀는 오히려 석균을 변호한다. “니들이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할 게 뭐 있냐. 젊어서는 니들 키운다고 아버지 그냥 철공소 공장 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그 추운 겨울에도 귀가 얼고 코가 얼면서도 그냥 밤 12시까지 야근하고 나이 칠십 먹어서는 지금 그래도 너희들 덕 안 볼라고 일하는데 너희들이 아빠한테 그렇게 말할 게 뭐 있어? 반찬 해주기 싫다고 그럼 하지 말어. 사다 줘. 천벌 받을 년들아.”

 

왜 정아는 딸들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석균의 입장을 대변했을까. 주변사람들은 정아의 가출을 복수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게 복수가 아니라 그저 혼자 마음 편히 흑맥주 한 잔 먹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가출은 석균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그녀 스스로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다.

 

절친인 희자(김혜자)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며 그녀는 석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한다. “나도 몰라. 밥 해주는 게 딱히 싫은 것도 아니고 성질 별난 것도 모르는 것 아니고. 안쓰럽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근데 지금은 그냥 다 싫어. 나도 내 마음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전화를 해서 잘 자라고 말하고는 왜 너는 나한테 잘 자란 얘기 안하냐고 지청구를 날리는 석균에 대한 정아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런 정아에게 희자는 살갑다. “좀 앉았다 가 나 기운 있으면 너 업고 갈건데.” 불쑥 정아가 남편 석균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김석균이랑은 얘기 안돼. 아휴 둘이 같이 가다가 지금처럼 내가 힘들면 좀 쉬어 가자 그러구. 또 다치면 너처럼 조심하라고 그러면 될 텐데 그냥 쥐어 박듯 왜 그랬냐 정신머리는 어디다 뒀냐 하면서 어쩌구저쩌구. 내가 평생 같이 산 남자라 어디 가서 욕하는 것도 치사하고 구질스럽고.”

 

그녀는 저나 나나 앞으로 죽을 날만 남았는데자기가 바랄 게 뭐가 있냐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희자가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다. “남편도 됐고 남자도 됐고 그냥 친구처럼 살다 가면 좋을 텐데. 나랑 너처럼. 친구처럼. 그치?”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정아와 석균의 갈등을 혹자들은 남녀 대결 구도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는 남편도 남자도 아닌 친구라는 관점으로 우리네 사회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갈등들의 해법을 제시한다. 왜 우리는 남녀와 노소로 관계를 설정하고 역할을 나누고 그 구분에 얽매여 해야 할 일들을 강제하는가. 왜 여자와 여자로 만나지 못하고 고부관계로 만나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지 못하고 장애와 비장애로 만나는가.

 

빈부 격차,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남혐 여혐 갈등 등등.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갈등들의 연원을 들여다보면 그저 모든 관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친구의 관점으로 만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도, 부부 관계도 나아가 세대 관계나 남녀 관계 역시 고작 몇 십 년 차이와 생김새만 다를 뿐, ‘죽을 날을 앞둔똑같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친구라는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는 진정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정아의 말마따나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떤가. 희자의 말처럼 남편도 남자도 아닌 그저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걸까. <디어 마이 프렌즈>는 제목부터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리멤버>의 유승호, 아이와 어른 그리고 남자

 

<태왕사신기>에서 어린 담덕 역할을 할 때 유승호에게 슬쩍 보인 얼굴이 있다. 그저 가녀리고 순수한 얼굴로만 알았던 그 소년에게서 어떤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의 카리스마가 숨겨져 있다는 것. 그 후로 <선덕여왕>의 김춘추는 유승호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연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욕망의 불꽃><공부의 신>은 이 양갈래 길에 서 있는 유승호를 각각의 이미지로 끌어냈다면 <보고싶다>는 드디어 유승호가 어른의 얼굴을 드러냈던 작품이었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군 제대 후 <상상고양이>를 선택했다는 것이 못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이제 본격적인 유승호의 연기자로서의 행보가 시작됐다는 걸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간 아이와 어른 사이 그리고 슬쩍 슬쩍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리멤버>에서는 느껴진다. 서진우라는 캐릭터가 그 세 가지 얼굴을 끄집어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로 점점 기억을 잃어버린 채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수로 수감돼 있는 아버지 앞에서 유승호는 아이의 얼굴로 돌아간다. 간간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추억 속에서 유승호는 여전히 남아 있는 소년의 얼굴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아무 걱정도 없던 아이의 얼굴. 그것은 아마도 유승호가 다른 배우와는 확연히 다른 강점 하나를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세월이 빗겨간 듯한 그 동안의 얼굴에서는 순수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순수의 얼굴이 5년의 세월을 거쳐 복수의 칼날을 숨긴 어른으로 돌아온 유승호에게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복수를 위해서는 뭐든 할 것 같은 그 모습은 아이 같던 얼굴의 변신이라는 점에서 더 살벌하게 느껴진다. 변호사로 돌아온 그는 더 이상 과거 진실을 좇던 아이가 아니다. 진실도 이겨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 것. 복수를 위해 조금씩 남규만(남궁민)에게 접근해가는 그 얼굴에서는 유승호가 저 <태왕사신기> 때 살짝 보여줬던 그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래서 변호사로 돌아온 서진우는 과거 한 아버지의 아이 같던 시절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그 아버지의 무고함을 풀어주기 위해 변호사가 된 이인아(박민영)에게 냉혹할 정도로 달라진다. 그런데 술 취해 쓰러진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 단란한 가족을 보며 다시 그 아이 같은 얼굴을 보여주는 그에게서는 언뜻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마도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리멤버>는 그래서 남자 유승호의 모습을 제대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지 않을까 싶다.

 

한 배우의 얼굴에서 세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가 그것도 전혀 이물감을 주지 않고 공존한다는 건 연기자로서는 굉장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순간적으로 아버지 앞에 아이 같은 얼굴을 드러내며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 아버지를 그리 만든 세상을 향해 복수의 날을 세우는 어른의 얼굴을 보여주고, 또 냉철한 이면에 숨겨진 따뜻한 연심을 동시에 표현한다. <리멤버>는 어찌 보면 유승호라는 배우에게 최적화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어쨌든 이제 유승호는 더 이상 아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아잇적의 순수함을 모두 지워버린 것도 아닌 어쩌면 그 모든 걸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배우로서 우리 앞에 서고 있다. <리멤버>라는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가 그간의 유승호라는 배우의 성장들을 기억하게 해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그 세 가지 얼굴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얼굴들이 가능성으로 존재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집밥 백선생', 갈비 요리 꿀팁보다 중요한 것

 

명절이면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 내준 양념갈비에 갈비찜에 갈비탕 같은 걸 한 번쯤은 누구나 먹어봤을 것이다. 그렇게 맛있을 수 없는 명절 갈비의 맛. 하지만 일일이 갈비를 손질하고 양념에 재우고 끓이면서도 뜨는 기름을 제거해내는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면 얼마나 그 갈비 요리에 정성이 담겨지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것이 하나라도 더 먹여 보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겠나.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집밥 백선생>이 갈비를 주제로 한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그저 주는 대로 맛있게만 먹었지 그 과정이 어떤가를 전혀 몰랐던 남자들이 그 정성을 스스로 느껴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백종원이 알려주는 꿀 팁을 활용해 한번쯤은 스스로 가족을 위해 명절에 갈비 요리를 해보는 건 어떤가 하는 제안이다.

 

명절에 남자와 여자를 모두 스트레스 받게 하는 건 그 놈의 역할 구분이다. 여자들은 쉴 틈 없이 요리하고 일하는데 남자들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저 뒤에서 뒹굴뒹굴 대는 풍경은 남녀 모두를 스트레스 받게 한다. 여자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다면, 그 여자들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남자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명절 증후군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요리는 여자들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집밥 백선생>이 추구하는 것도 이 편견을 깨는 일이다. 남성 요리 무식자들이 요리의 세계가 의외로 즐겁고 재미있다는 것을 하나씩 깨우쳐주는 일. 그래서 백종원이 가르쳐준 대로 손쉽게 만능양념을 만들어 양념갈비도 해먹고, 갈비찜에 갈비탕, 그리고 갈비탕 고기를 이용해 단 5분 만에 뚝딱 차려내는 매운 갈비찜까지 슥슥 해보는 것이다.

 

백종원이 알려주는 갈비요리들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요리는 아니다. 물론 어머니들의 요리 노하우가 쉽다는 건 아니지만 백종원은 일단 기본적인 것들을 충실히 알려준다. 만능간장이 그렇듯이 갈비 요리를 위한 만능양념을 알려주는 건 누구나 쉽게 요리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기 위함이다. 세상이 만능이 어딨겠나. 하지만 만능이라고 표현하면 일단 그 요리가 너무나 친근하고 쉽게 다가오는 것만큼은 분명한 일이다.

 

일단 요리에 대한 성별 역할 구분의 편견을 깨고 나면 명절의 풍경은 확 달라지지 않을까. 사실 명절의 풍성함의 이면에는 명절이 지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지기 마련인 어머니의 노동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자식들을 위해 노구를 쉴 새 없이 재게도 움직이시며 요리를 차려내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명절을 대하는 남자들의 자세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요리보다 더 중요한 건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남자가 요리를 하면 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저 무수하게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쿡방 속에서 그 많은 남자들이 이런 저런 요리들을 해내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집밥 백선생>이 추석을 맞아 갈비 요리 레시피를 선보이고, 후속으로 추석의 남은 음식을 이용한 요리를 준비하는 건 그래서 단지 요리 꿀팁만을 위한 일은 아닐 것이다. 갈비찜 하나로라도 명절의 풍경을 바꿔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아마도 <집밥 백선생>이 명절을 대하는 방식이 아닐까.



만재도라는 놀이터, <삼시세끼>라는 로망

 

이 땅에 사는 남자들은 어떻게 놀고 있을까. 아니 놀기는 노는 것일까. 늘 일과 책무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피곤에 쩔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삼시세끼> 어촌편이 끝났다. 케이블 시청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지상파 시청률이라고 해도 그렇다) 13%를 훌쩍 뛰어넘은 <삼시세끼> 어촌편의 기록은 여러모로 신드롬의 성격이 짙다. 도무지 프로그램의 내적인 요인만으로 그 놀라운 성과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괴물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네 대중들의 무엇을 건드린 걸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삼시세끼> 어촌편의 실험적인 카메라는 이 프로그램의 놀이적 취향을 잘 말해준다. 투망에 카메라를 설치해 물고기가 들어오는 장면을 고스란히 찍어 보여주는 데는 단지 그것이 조작이 아닌 진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만은 아니다. 그것은 물고기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투망이라는 덫에 걸려드는 놀래미들의 모습은 이 만재도라는 공간을 좀더 입체적으로 보게 해준다.

 

<삼시세끼> 어촌편의 카메라의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네 이장님의 개에 카메라를 묶어 달리는 개의 시선으로 만재도의 여러 곳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새의 시선처럼 부감으로 내려다 본 만재도에 유해진이 낚시를 했던 포인트들을 일일이 찍어주며 보여줘 마치 게임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도 선사한다. 만재도를 떠나며 짐을 싸는 손호준 옆에서 놀고 있는 산체에게 카메라를 놔두자 그 산체의 시선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독특한 접근방식이다.

 

카메라가 이처럼 육해공을 넘나들며 동물의 시선까지를 느끼게 해줄 만큼 다양하게 활용되는 건 자칫 이 만재도라는 고립된 공간이 너무 갇힌 느낌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또 그냥 보면 몰랐던 것들이 이렇게 자세히 카메라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새롭게 발견된다는 것도 큰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카메라의 놀이적인 접근이다. 나영석 PD의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삼시세끼>는 거창하진 않아도 소소한 놀이에 대한 대단한 몰입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만재도는 남자들의 거대한 놀이터가 된다. 참바다 유해진은 매일 아침 낚시를 떠나고 차줌마 차승원은 매 끼니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는 놀이에 심취한다. 섬 소년 손호준은 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섬 마을 소꿉놀이에 조금씩 빠져든다. 불 피우는 장면이나 프라이팬을 돌리은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잡아내면 대단한 액션처럼 보이지만 그건 하나의 놀이에 된다.

 

회전초밥을 먹기 위해 동네의 쓰레기(?)를 뒤지고 다닌 유해진이 회전판을 비슷하게 만들고, 차승원이 그 위에 초밥을 얹어 돌려가며 먹는 이 덩치들은 이 쓰잘 데 없어 보이는 놀이가 그토록 재미있을 수가 없다는 표정들이다. 가끔씩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그래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놀이. 그들의 며칠 간 지속된 소꿉놀이는 왜 그다지도 우리네 대중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걸까.

 

그것은 아마도 일 바깥으로 도주하여 그 멀고 먼 만재도라는 놀이터로 들어간 까닭과 무관하지 않다. 일의 세계가 아닌 놀이의 세계로의 탐닉. 온전히 삼시세끼 챙겨먹는 이 생존 게임은 건장한 사내들의 소꿉놀이 욕망을 끄집어낸다. 그토록 현실에 치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놀이는 그래서 마치 힐링처럼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힐링이라는 게 별게 없다. 마치 아이적 그랬던 것처럼 아무 걱정 없이 하루를 노는 일. 이 땅의 어른들은 그런 걸 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삼시세끼>는 일과 노동 중심으로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잠시 그 일로부터의 탈주를 대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에는 삼시세끼 챙겨먹는 일 빼고는 걱정할 일이 없다. 낚시로는 한 마리도 못잡아도 투망으로 잡은 물고기를 저축해놓은 참바다씨의 피쉬 뱅크가 있고, 그 어떤 재료로도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차줌마가 있으니 뭐가 걱정일까. <삼시세끼>의 만재도는 그렇게 도시인들의 로망이 되었다. 거대한 소꿉놀이의 판에 들어온 듯 느껴지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래서 대중들을 유혹한다. 잠시 모든 걸 뒤로 한 채 그런 놀이 속으로 뛰어드는 건 어떻냐고.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얻은 것과 남긴 숙제

 

MBC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은 끝났지만 그 여운은 여전히 남아있다. 터미네이터 같은 조교마저 미소 짓게 만들었던 혜리의 돌발 앙탈에서부터, 함께 힘을 합쳐 벽을 넘는 과정에서 서로 어깨와 머리를 내어주던 장면, 사다리를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 오르듯 힘겹게 오른 후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해 모두를 울게 만들었던 악바리 김소연의 뭉클함, 다들 덜덜 떠는 두 줄 타기 유격 훈련에서 라미란이 보여줬던 그 의연함... 그 여운은 깊은 잔상으로 남았다.

 

'진짜 사나이(사진출처:MBC)'

항간에 재입대를 거론할 정도로 여군특집이 이토록 대박을 냈던 까닭은 남자 연예인들에게서는 좀체 발견하기 힘들었던 훈련 강도를 새삼 이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실제 훈련 강도가 여군특집이 더 높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훈련은 남자들이 더 세게 받았을지 모르지만, 거기서 나오는 체감은 여자들이 더 세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김소연은 그런 점에서 여군특집 최고의 기여자가 아닐까 싶다. 체력은 바닥이지만 끝까지 해내려는 그 악바리 정신력은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 훈련과정들의 힘겨움을 200% 시청자들에게 실감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물론 다른 출연자들도 남다른 리액션(?)으로 여군특집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엄마 마음으로 훈련하는 동료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홍은희가 그렇고, 마치 대대장님 포스를 보이며 동료들을 독려하고 챙기던 라미란이 그렇다. 말도 서툴지만 열심히 훈련에 뛰어든 지나나 군대문화 자체가 익숙지 않아 소대장에게 잦은 꾸중을 들었지만 유격교장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 맹승지, 두려운 훈련에서도 늘 처음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 혜리, 또 운동선수로서의 근성을 보여준 박승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처럼 남다른 리액션보다 더 중요했던 건 여군특집이 진짜 군대의 리얼 그 자체보다는 일종의 체험을 더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기획적 이점이다. 남자들에게 군대는 리얼이냐 아니냐로 다가오지만, 여자들에게는 그 군대 체험이 얼마나 힘드냐 아니냐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따라서 리얼의 문제보다는 여성들이 남자들의 군대 체험의 강도를 느끼고 공감하는 모습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군특집은 <진짜사나이>의 부록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여성들을 군대에 보내 체험하는 걸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다. MBC 측은 여군특집의 존속여부에 대해서 일 년에 두 번 치러지는 부사관 훈련에 맞추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즉 진짜 여군을 뽑는 그 리얼 훈련과정에 맞춰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얘기다. 지당한 결정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건 이 여군특집이 만들어낸 힘을 어떻게 하면 남자들의 <진짜사나이>로 이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지난 여군특집 유격훈련에 등장한 김수로와 서경석에 대한 대중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여군특집이 <진짜사나이>에 남긴 숙제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여군특집이 호감이 되어갈수록 <진짜사나이>의 남자들의 부담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진짜사나이>가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건 초창기부터 출연해 이제는 말년이 되어가는 김수로나 서경석 같은 인물들이 이제 어느 정도 군대생활에 적응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한 적응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초창기 모든 것들이 낯설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고참으로서의 모습은 사실 대중들이 그리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이다.

 

새롭게 투입된 인물들이 그 신참으로서의 군대 체험을 제대로 보여줘야 하지만 그 강도가 너무 극과 극으로 나뉘어보여지고 있는 건 <진짜사나이>의 또 다른 숙제가 되었다. 헨리는 너무 과도하게 군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천방지축의 캐릭터이고, 반면 천정명이나 박건형은 너무 군대 생활에 잘 맞아 떨어지는 FM병사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그 중간 어디쯤에 있어야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감대가 생기기 쉽지 않다.

 

이번 여군특집이 보여준 것처럼 <진짜사나이>의 힘은 대단히 군대 생활을 잘 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멍병사들의 면면에만 집중한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잘하든 못하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실감하게 될 때 그 웃음이든 감동이든 생겨난다는 점이다. 여러모로 여군특집은 부록처럼 기획되었지만 본편인 <진짜사나이>에 꽤 많은 성패의 단초들을 보여주었다. 이제 그 숙제를 어떻게 해내느냐에 따라 <진짜사나이>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나 혼자 산다>, 잘 나가는 이유? 남자들에 있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남자가 혼자 살 때>가 정규편성 되면서 굳이 몇 번의 제목을 고치더니 <나 혼자 산다>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남자가 혼자 살 때>의 뉘앙스가 어딘지 소극적이고 궁상맞은 느낌을 주었던 반면, <나 혼자 산다>는 좀 더 당당하고 즐기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모인 무지개 회원들은 구호를 굳이 이렇게 외친다. “나 혼자 산다! 자알-”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사실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뭐 그리 재미있을까 한번쯤 의구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금껏 그런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서(특히 예능에서)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방송이 조명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란 여행을 가거나(1박2일) 특별한 도전을 하거나(무한도전, 남자의 자격) 게임이나 스포츠를 하는(우리동네 예체능)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송은 이 남자들이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면들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빠들은 지금껏 바쁘다는 핑계로 좀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아이들과 1박2일의 추억 여행을 떠난다. 처음에는 아내 없는 아이와의 여행이 어색하기도 하고 영 적응이 안 될 정도로 낯설기도 했지만, 몇 주가 지난 지금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고 스스로 척척 아이들의 아침밥을 차려낸다. 조금 투박하긴 해도 아빠와 함께 놀고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새롭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은 아이들이라는 순수의 지대가 일등공신임에 분명하지만 거기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호기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일밤>이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새로운 남자들의 이야기가 핵심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가 아닐까 싶다. 이 프로그램의 남자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지금껏 우리가 잘 보지 못했던 남자들의 수다와 놀이(그것도 남자들끼리 놀거나 혼자 노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노홍철과 김태원, 이성재, 서인국, 김광규, 데프콘 같은 너무나 다른 색깔을 가진 남자들이 카페 같은 공간에 둘러앉아서 신나게 수다를 떠는 모습은 그 자체로 우습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간다면 누구랑 나가고 싶냐는 노홍철의 질문에 김태원이 강수연을 얘기하고, 서인국이 김혜수를 떠올리며, 김광규가 김완선을 지목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남자들끼리 둘러앉아서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꽃이 주는 새로움이다. 그 누가 수다를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와의 정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 혼자 사는 남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였을 때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이성재처럼 프로그램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재미는 이들의 놀이다. 서인국의 집을 방문한 노홍철이 그 구질구질한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그 방에 동화되는 즐거움을 느끼거나, 노홍철의 제안으로 한강변에서 야경을 즐기는 장면은 그것이 너무나 일상에 닿아있어 지금껏 여타의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낸다. 여행이나 도전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닌 다음에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남자와 남자가 함께 노는 장면은 그리 흔하지 않다. 기껏해야 남자들의 만남이란 술자리에서 시작해 술자리로 끝나기 일쑤가 아닌가. 그만큼 우리네 남자들은 일할 줄은 알아도 놀 줄은 잘 모른 채 살아왔던 게 사실이다.

 

김광규의 집을 방문한 김태원이 즉석에서 기타를 조율해 주고 레드 제플린의 곡을 연주하며 노는 모습이나, 데프콘의 집을 방문한 이성재가 힙합 리듬에 맞춰 어색하지만 즉석에서 랩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수다 떠는 남자들이나 저들끼리 노는 남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과거와는 갑자기 달라진 시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가 되기도 한다. 왜 남자들이라고 그렇게 한가롭게 수다를 떨거나 놀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게 사는 남자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 교육받아온 탓이 클 뿐이다.

 

<나 혼자 산다>는 그래서 독신자들(혹은 독거자들. 제목에서 남자를 뺏으니 여자도 출연이 가능해졌다)의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트렌드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은 또한 달라지고 있는 가족 관계 속에서 남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남편, 가장, 아빠, 회사원 같은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만 늘 서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들이라면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그 삶이 또한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홍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때로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크다는 것을 판타지처럼 발견할 수도 있을 게다.

<적도>, 오이디푸스와 근현대사가 만날 때

 

<적도>는 남자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에 대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는 그 흔한 모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들은 넘쳐난다. 주요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는 선우(엄태웅)와 장일(이준혁)은 둘 다 여러 의미의 아버지들을 갖고 있다.

 

 

'적도의 남자'(사진출처:KBS)

선우는 진짜 아버지(그게 누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키워준 아버지 김경필(이대연), 그리고 그를 절망의 늪에서 구원해준 아버지 같은 존재 문태주(정호빈)가 있다. 한편 장일은 진짜 아버지지만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용배(이원종)가 있고, 그가 검사가 될 때까지 후원을 해준 마치 대부 같은 진노식 회장이 있다.

 

선우와 장일은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로서 그 본질은 선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버지들에 의해 선과 악으로 갈라지게 된다. 진노식 회장과의 거래로 이용배는 김경필을 죽이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장일은 그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걸 밝히려던 친구 선우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

 

선우와 장일의 대결은 결국 선우를 키우고 성장시킨 선한 아버지들(김경필, 문태주)과 장일을 키운 악한 아버지들(이용배, 진노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고통 받는다. 그리고 그 고통의 근원은 자신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아버지대의 잘못이 유전된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남자로 표상되는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가 가진 문제와 그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조리의 고리를 보여주겠다는 의도.

 

선우에 의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잘못을(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캐묻는 이 드라마는 시대의 욕망과 권력에 의해 은폐되었던 정의와 진실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리려 한다. <적도의 남자>가 그토록 시각이라는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은 이 감추어진 진실을 다시 끄집어내 제대로 보여주려는 이 드라마의 욕망을 잘 말해준다.

 

선우가 시각장애를 갖게 되는 설정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은 진실을 보려는 자와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자 사이에 생겨난 갈등에서 비롯된다. 또 최수미(임정은)와 그 아버지인 최광춘(이재용)이 모두 '진실을 본 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박수무당인 최광춘은 선우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자이고, 그 딸인 최수미는 선우의 뒤통수를 장우가 내려치고 바닷물에 집어 던지는 장면을 목격한 자이다.

 

화가로 돌아온 최수미가 극사실주의의 그림을 그린다는 설정도 그래서 이해가 된다. 사진 같은 증거는 없지만, 최수미의 기억 속에 남겨진 사건의 기록은 그대로 있는 셈이다. 그녀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낸다. 거의 사진 같은 사실적인 그림으로. 이처럼 드라마는 진실을 억압하려는 자들에게 자꾸만 과거의 그 불편한 진실을 들이댄다. 보지 못하던 선우가 문태주를 만나 눈을 뜨게 되고, 장일에게 버려진 수미가 화가가 되어 과거를 시각적으로 재현해내는 과정은, 그래서 묻는다고 묻힐 수 없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적도의 남자>는 진실의 법정에 아버지들을 세우는 드라마다. 그들의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진 부조리한 현실을 짊어진 아들들이 서로 피 흘리며 싸우면서 그 아버지 대의 잘못을 폭로하는 이야기. 아버지에 대항한 아들의 이야기와 그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들어가는 스토리 구조는 고전인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제 아버지를 제 손에 죽게 했다는 사실을 안 오이디푸스가 제 눈을 스스로 찌르는 것은 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면하기 힘겨운 불편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선우의 친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추정할 수 있는 건 그 아버지가 바로 선우가 그토록 복수하려 했던 진노식 회장이 될 거라는 예감이다. 심한 충격이 선우의 시력을 다시 잃게 만들 수도 있다는 복선은 <적도의 남자>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정확히 겹쳐지는 부분이다. <적도의 남자>가 최근 보기 드문 수작인 이유는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대단히 근원적인 스토리를 보여주면서도(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동시에 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근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다.

불황이 만들어낸 마이너리티 감성

만일 당신이 사회의 정신적인 뇌관을 건드리는 테러리스트라면, 우리 사회만큼 간단한 테러 목표도 없을 것이다. 그저 남자라는 단어와 '루저'라는 단어를 붙여 넣기만 하면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테니까. '미녀들의 수다'의 한 여대생이 "남자 키 180cm 이하면 루저"라는 말 한 마디가 일으킨 대폭발(?)은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민감해져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불황에 남녀 구분이 있을까마는 아마도 상대적인 박탈감은 남성들이 더 할 것이다. 본래 높은 위치에 계시던 분이 진창으로 나서야 그 힘겨움을 더 느끼게 되는 법 아닌가. 남성들은 가부장제적 사회 속에서 이제 조금씩 남녀평등의 사회로 이행해가고 있는 중이고, 차츰 자신들이 가졌던 이성적 능력보다, 여성성이 가진 능력이 이 감성적인 시대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인정해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렇다고 그 박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독한 불황은 남성들의 어깨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실로 이 계속된 불황 속에서 우리네 남성들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왔다. 그들은 이 이행기에 여전히 가장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으면서도, 그 지위는 누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청년실업에서부터 조기퇴직까지 이른바 가장으로서의 남성들의 목은 댕겅댕겅 잘려나갔다. 그러니 이 가뜩이나 힘겨운 상황에 처한 남성들에게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붙여진 '루저'라는 단어는 뇌관이 될 수밖에 없다.

'루저'는 무능력자에 회생 불가능한 폐인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상대적인 의미인 위너들과 비교될 때 분노감은 더 커지게 된다. 즉 세상은 위너들의 공고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고 '루저'들은 늘 질 수밖에 없는 패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루저'라는 말이 그저 한 때의 잘못 발화된 한 여대생의 실수담이 아니라는 것은,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사실과 함께 드러난다. 유해진은 늘 조연 자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는 '전우치'에서 전우치로 등장하는 강동원이 아니다. 그는 전우치가 데리고 다니는 개 초랭이의 분신으로 등장한다. 그런 그가 늘 '엣지있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당당한 미인 김혜수의 남자친구라는 사실은 고개 숙인 남성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그러고 보니 작년 한 해 눈에 띄게 약진한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저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주창하던 남성들이라는 사실이 도드라져 보인다. 물론 '루저'라 지목되지는 않았지만 그 낮게 되어버린 남성들의 눈물겨운 도전과 노력에 우리는 감동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남성과 '루저'가 만나면 폭탄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만큼 구조적으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남성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루저'라는 말조차 농담처럼 웃으며 들을 수 있는 사회가 될까. 아직은 요원한 느낌이다.

드라마 속에 어른거리는 루저와 남자

언제부턴가 남자와 '루저'라는 단어가 만나면 폭발적인 반향이 일어나는 사회가 되었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여대생이 건드린 이 '루저'라는 뇌관은 그잖아도 힘겨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꾸만 위축되어가는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었다. 김혜수와 유해진의 연애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이 단어는 다시 등장했다. 외모와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의 연애담에 대한 이야기는 이상할 정도의 열기를 띄었다. 그 기저에는 루저와 위너라는 남성들의 마음 한 구석에 담겨진 불씨가 들어 있었다.

실제 사회 속에서 우리네 남자들의 상황은 그다지 썩 좋지 않다. 남자들은 여전히 가장이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으면서도, 여성성의 사회 속에서 조금씩 여성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청년실업이니 조기퇴직 같은 사회 분위기는 물론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힘겨운 현실로 어깨를 짓누르지만 문화적인 콘텐츠들은 상대적으로 여성 편향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방송에 있어서 여성 편향은 두드러져 왔다. 그것은 TV의 주시청층이 중년여성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현실에서 자기만의 공간으로 들어와 막 TV를 켰을 때, 거기 존재하는 판타지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현실로 돌아갔을 때도 어떤 힘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드라마의 캐릭터는 현실에 부재한 것에 대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작년 '아이리스'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일부에서는 그것이 가진 남성적인 코드 때문에 성공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성공했다. 이병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액션과 멜로 양면을 잘 섞어내는 연기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남성적인 코드는 물론이고 여성적인 코드도 잘 맞춘다는 이야기다.

'아이리스'에 이어 방영된 '추노', 이 두 드라마는 장르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르지만, 묘하게도 비슷한 점들이 있다. 먼저 '추노' 역시 마초적인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길(장혁)과 태하(오지호)의 멋진 몸이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는 모습은 이 드라마가 가진 어떤 이야기나 메시지보다 더 강력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것은 '아이리스'의 이병헌이 연기한 김현준이라는 캐릭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 두 드라마는 모두 드라마로서는 보기 힘든 영화적 연출 장면들을 선보였다. 즉 영화적으로 연출된 장면 속에서 강한 남성들이 아름다울 정도로 멋지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추노'는 그 캐릭터들의 면면을 통해 이 현실의 남성들의 억눌린 감성을 건드린다. '추노'는 양반가의 외아들이었다가 멸문하고 도망친 노비를 쫓는 추노꾼이 된 대길, 조선 최고의 무장이었으나 도망노비가 되어버린 태하, 그리고 그 사이에 서서 쫓는 자의 첫사랑이자 쫓기는 자의 마지막 사랑이 된 언년이(이다해)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대길은 아마도 현재 우리들의 입에 붙어버린 '루저'라는 단어에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겉으로 보면 인간 말종의 '루저'처럼 보이는 대길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멋진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고 보면 작년 한 해, 드라마보다 예능 프로그램이 그토록 약진을 했던 데는 이런 루저와 위너라는 두 단어를 가슴 한 구석에 불씨처럼 품고 살아가는 남성들의 시선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최고 히트 예능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해피선데이'의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은 모두 남성들을 캐릭터로 세우고 있고, 그 캐릭터들은 저 '무한도전'이 일찍이 세워두고 성공시킨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주창(?)하고 있다. 그 평균 이하가 열심히 하는 모습 속에서 공감과 감동과 웃음을 주었던 것이다.

'추노'의 남자들이 주목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평균 이하의 위치에 서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짐으로써 현실에 치여 답답한 남성들의 가슴 한 구석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마초적으로 보이는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 역시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드라마 속 남자들이 돈과 배경 같은 권력을 통해 매력을 보이려 했다면, 이 남자들은 오로지 노동으로 단련된 멋진 몸뚱아리 하나로 매력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여성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여성성으로만 포장된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 가요계에 '짐승남' 같은 마초적인 아이돌들이 등장하고, 드라마에서 '버럭남'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추노'는 그 연장선 위에 서 있으면서, 이른바 루저와 남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억눌린 감정을 터트리는 남성 캐릭터들을 갖고 있다. 따라서 '추노'의 성공은 어쩌면 여성 편향적으로만 되어왔던 드라마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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