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이방인>, <개과천선>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의 김상중

 

그런데 말입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김상중이 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면 다음에는 어떤 말이 나올까를 자못 기대하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을 그대로 전해주면서 거기에 어떤 의구심을 덧붙이는 이 전환용 멘트는 그래서 김상중의, 아니 나아가 <그것이 알고 싶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섹션TV 연예통신(사진출처:MBC)'

조금은 차가운 듯한 이미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얘기하듯 또박또박 내뱉는 대사는 김상중이란 배우를 딱딱한 이미지로 각인시킨 이유였다. 그래서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홍준표는 우유부단하고 뻔뻔하기까지 하면서 전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추적자>에서의 강동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랬던 김상중의 이미지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가 점점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상류층의 부조리를 폭로하면서 공분을 일으켰던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이나, 영훈 국제중학교 비리를 다뤘던 수상한 배려 귀족학교 반칙스캔들같은 소재들은 대중들의 열렬한 공감을 얻었다.

 

그러면서 김상중의 차가운 이미지는 이지적이고 냉철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와 비리들에 대해서 좀 더 철두철미하게 다뤄줬으면 하는 대중들의 바람은 그래서 김상중의 그런데 말입니다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점점 김상중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신뢰를 쌓아갔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면서 엔딩에서 김상중은 MC로서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의 진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차디찬 바다 밑에서 어른들의 말을 믿고, 어른들이 구해주길 기다렸을 아이들과, 아직도 그 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생존자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끄럽고 무기력한 어른이라 죄송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김상중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드라마에서의 시너지로 이어졌다. MBC <개과천선>에서 로펌 차영우펌의 대표 차영우를 연기하는 김상중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대표 변호사지만 그 이미지는 귀여운 면까지 보이는 인물이다. 인턴으로 들어온 이지윤(박민영)에게 호감을 보이기도 하는 그는 그래서 냉혈한과 로맨티스트의 양면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시작한 SBS <닥터 이방인>에서 박훈(이종석)의 아버지 역할로 특별출연한 김상중은 아들의 앞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김상중의 잔뜩 찡그린 듯한 얼굴은 아들을 걱정하는 한없는 자애로움을 표현해내기도 한다.

 

냉철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김상중이 심지어 로맨티스트의 면모와 아버지의 자애로움까지 껴안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그것은 그 이지적인 이미지가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긍정화 되었기 때문이다. 때론 엄정하게 그런데 말입니다를 던지면서 때론 진심어린 눈물을 흘려주는 인간적인 면모까지. 김상중은 연기자로서 이미지를 가로막고 있던 어떤 벽 하나를 깼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가 되었다.

장르, 사회극, 사극 속에서 계속되는 멜로의 실험들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로 대변되는 외국드라마 전성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드라마의 문법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제작비에 완벽한 사전제작으로 꽉 짜여진 완성도 높은 외국드라마들을 보다가 무언가 어수룩한 우리 드라마를 보면 단박에 그 열등감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드라마들이 쌓아온 공력은 적지 않다. 그것을 모두 무시한 채 그저 미드, 일드는 정답이고 우리 드라마는 오답이라는 편견은 어딘지 부적절해 보인다.

모든 멜로가 죄인은 아니다
특히 멜로에 강점을 가진 우리 드라마들이 어느 순간부터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게 된’ 것은 미드, 일드가 준 영향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쿨해 보이는 그네들의 드라마를 보면서 왜 우리는 매번 똑같은 삼각 사각 구도에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눈물이나 짜는 그런 드라마밖에 없는가 하는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우리의 멜로드라마를 다 싸잡아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 ‘멜로드라마 = 식상한 것’이라는 등식으로 괜찮은 멜로드라마들 역시 시청률의 무덤에 던져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90일 사랑할 시간’같은 실험적인 멜로드라마의 시청률 실패이다. 소재만으로 보면 불륜에 불치 코드가 뒤섞여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전혀 다른 형태의 멜로드라마를 직조해냈다. 하지만 당시 멜로드라마라고 표방하기만 하면 하나같이 철퇴를 맞는 분위기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역시나 참담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멜로라는 말은 쑥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위에서 표현한대로 드라마들은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았을 뿐, 멜로를 완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판으로 식상한 틀을 벗어버린 멜로는 다양한 외투를 입고 새로운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장르 속으로 들어온 멜로
미드, 일드의 영향으로 등장한 우리네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장르를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본격 수사물을 표방했던 ‘히트’는 범인을 좇는 이야기만큼 시청자들을 설레게 한 것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의 닭살 멜로였다. 차수경에게 ‘바보팅이’라고 말하는 김재윤의 모습에서 저 미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나, 일드의 쿨한 캐릭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 식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드라마에서 익숙한 귀여운 남자가 있었을 뿐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라는 전문직의 장르 드라마를 구사하면서 그 중심에 봉달희(이요원)와 버럭범수 안중근(이범수)의 멜로드라마를 접목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네들의 톡톡 튀는 사랑법이 병원이란 공간에서 인간으로서의 의사들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한편 ‘에어시티’의 실패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장르의 실패로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멜로드라마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데서도 패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르드라마라는 무게에 짓눌려 어정쩡하게 구사한 한도경(최지우)과 김지성(이정재)의 멜로라인은 드라마를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종영한 본격 느와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멜로를 상당부분 뺐다고 해도 여전히 그 중심에 멜로드라마가 섞여 있다. 이 느와르만의 특징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다룬다는데 있다. 따라서 이수현(이준기)과 강민기(정경호) 그리고 서지우(남상미)의 삼각구도는 심리적으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다. 다만 그 양상이 사랑타령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총을 든 느와르의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회극을 표방한 멜로
한편 SBS가 계속해서 사회극을 표방한 드라마를 내놓는데는 역시 이 멜로에 대한 대중들의 무조건적인 혐오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사회극 속에는 여전히 멜로드라마가 존재한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안에 기본적으로 금나라(박신양) - 서주희(박진희)의 멜로드라마를 엮었고, 여기에 공식적으로 이차연(김정화)이란 인물을 끼워 넣어 삼각라인을 만들었다. 드라마는 한창 사회적인 이슈들을 잡아나가다가 마지막회에 이르러 주인공들의 결혼식으로 흘러가는 멜로드라마의 양상을 보였다.

‘내 남자의 여자’는 과거 전형적인 틀을 가진 식상한 멜로드라마를 철저히 부수는 멜로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들이 가진 전형성을 마치 탐구라도 하듯이 현미경을 들고 조명해나간다. 식상한 멜로드라마들이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에서 시작해서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중심에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사랑과 질투, 분노, 기쁨 같은 것들이 환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기에 ‘내 남자의 여자’는 사회극과 멜로드라마가 그 정점에서 만난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방영되고 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멜로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멜로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인물들을 배치해놓은 다음, 그 화학반응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웃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당신이 아는 그 한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 기본 틀은 정윤희(배두나)를 사이에 둔 백수찬(김승우)과 유준석(박시후), 그리고 유준석을 따라다니는 고혜미(민지혜)가 이루는 사각관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들 사각관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가 아닌, 그 틀 바깥에 존재하는 많은 이웃들(조연들)의 화학관계를 통해 그 멜로를 이어가는 차이를 보인다. 즉 멜로는 나타난 현상이지 목적은 인간관계 자체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식의 멜로드라마, 외면 말아야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실험과 진화는 최근 불고 있는 사극 열풍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극의 메인 테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왕과 나’는 내시인 나, 김처선(오만석)이 왕(고주원)이 사모해온 여인 윤소화(구혜선)를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새롭게 시작한 ‘이산’에서도 정조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멜로드라마가 그려진다. 현대물에서는 외면한 운명적인 멜로드라마를 사극이라는 형식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늘 식상하다는 편견 속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멜로드라마는 늘 우리가 보는 드라마 속에 존재해왔다. 다만 새로운 외투를 입고 나타났을 뿐이다. 멜로드라마는 그렇게 비하되거나 구닥다리로 손가락질 받을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름하는 진짜 숨은 주역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타 분야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멜로드라마를 외국 드라마와 단순히 비교하면서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다. 멜로는 죽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다양한 틀 속에서 실험을 해왔을 뿐이다.

자매애로 보여지는 동지의식

참 이상한 일이다. 인터넷사전에 ‘형제애’라고 치면 ‘형이나 아우 또는 동기(同氣)에 대한 사랑’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반면, 왜 ‘자매애’라는 단어는 없는 것일까. 신데렐라와 못된 언니들 혹은 콩쥐와 팥쥐 같은 고전들 속 캐릭터들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틀에 박힌 텍스트 공식들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하지만 드라마들은 꽤 여러 번 자매애의 가능성을 포착한 바 있다. ‘여우야 뭐하니’의 병희(고현정)와 준희(김은주), ‘연애시대’의 은호(손예진)와 지호(이하나),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배종옥)와 은수(하유미)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자매애는 모두 늘 만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한이라는 듯 으르렁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사실은 서로를 깊이 배려하고 있는 속내를 내보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렇게 자매들이 드라마 속에서 서로 의견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여성들의 서로 다른 입장(애정관, 결혼관 등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 캐릭터들의 개성은 더 살리고, 공감의 폭은 더 넓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애정관, 결혼관이 달라 싸우던 이들이 결국에는 자매라는 끈으로 묶여지면서 묘한 동지의식을 끌어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여성들의 연대의식 같은 것이다. 그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는 건 역시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와 은수다.

“이런 언니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들의 자매애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연대의식 속에서 피어났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자체가 추구하는 것이 멜로가 아닌, 결혼제도나 남녀문제 같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여우야 뭐하니’나 ‘연애시대’ 역시 기존 관습에 던지는 사회성 짙은 질문들이 있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여우야 뭐하니’가 사회 통념으로 생각되는 나이와 결혼의 문제에 있어서 병희와 준희란 캐릭터를 통해 연령차를 극복하려 했다면, ‘연애시대’는 은호와 지호를 통해 결혼이란 사회적 관습에 연애라는 잣대를 들고 질문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멜로가 가진 틀이 강했기에 ‘내 남자의 여자’처럼 그것이 전면에 부각되진 않았지만 그 속에서 이들 자매들이 보여주는 은근한 서로에 대한 애정은 바로 이런 동일한 적(?)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매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자매들 간의 동지의식이 드라마 자체로 드러나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것은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와 영채다. 둘은 서로 다른 외모로 똑같은 외모지상주의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비슷한 결론에 다다른다. 막돼먹은 영애씨가 살기 어려운 만큼, 잘 빠진 영채씨의 삶도 어렵다는 것. 결국 이 드라마는 이 둘의 대비와 거기서 얻어지는 한 가지 결론, 즉 ‘이 사회에서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영애와 영채가 굳이 자매애를 강조하지 않아도 한 가닥의 끈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들이 이 시대를 사는 여성이라는 동지의식이다.

멜로 드라마들이 보여주었던 연애에 시청자들이 식상해했던 것은 어쩌면 그 연애 밑바닥에 공유되어 있는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이나 사회체계에 더 이상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여성들에게 참신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아예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을 제거해버린 여성들만의 환타지(커피 프린스 1호점)를 그리거나, 그런 사고방식과 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막돼먹은 영애씨)가 유리하다. 만일 드라마 속 자매들의 끈끈한 정에 마음을 빼앗겼거나, 자매들이 좀더 자매애를 보여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도 그들과 한때 암묵적인 동지였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대, 연애보다 애틋한 것은 어쩌면 자매애다.

드라마 속 이 시대의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1972년도 시청자들을 눈물바다에 빠뜨렸던 드라마, ‘여로’의 시어머니(박주아)는 며느리(태현실)를 박해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각인됐다. 바보 아들인 영구(장욱제)를 극진히 돌보는 천사표 며느리를 구박하면서, 심지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모함하는 시어머니는 전국의 며느리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 속 고부관계는 달라지고 있다. 심지어 시집살이에 대응한 ‘며느리살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 말은 직장 생활하는 젊은 며느리의 뒷바라지를 시어머니가 해야하는 상황에서 생긴 신조어이다. 이것은 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잘 나가는 며느리 박해미에게 구박받는 시어머니 나문희를 통해 충분히 봐왔던 상황이다. 이런 변화를 본격적으로 포착한 드라마가 KBS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다.

시집살이 끝나는가 했더니 며느리살이?
이 드라마는 장충동 원조 뚱땡이 할머니집 맏며느리로 거의 소처럼 취급받아온 서미순(윤여정)이 신세대 며느리, 미진(이수경)을 맞으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고부 갈등이라는 케케묵은 소재가 주는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초점이 톡톡 튀는 발랄한 신세대 며느리 미진에 맞춰지면서 드라마는 경쾌함을 얻는다. 그간 시집살이를 톡톡히 겪어온 세대라면 이 당찬 며느리의 당돌한 행동에 묘한 쾌감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간에 끼어있는 서미순의 상황은(물론 드라마에서는 충분히 코믹으로 명랑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이 시대의 예비 시어머니들에게는 좀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서미순은 여전히 며느리로서 시어머니 오향심 여사(김을동)에게 박해받는 순교자지만, 또한 새롭게 들어오는 신세대 며느리 앞에서 어쩌면 ‘며느리살이’를 해야될지도 모르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 평생을 시집살이로 살아온 그녀가 나머지 삶을 며느리살이로 산다는 건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집살이가 끝나자 며느리살이가 시작되었다는 이 상황은 지금의 시어머니들이 실제 겪고 있는 일. 시집살이와 며느리살이가 이 족발집이란 공간에서 동시대적으로 발생한다는 것, 그것이 제대로 현실을 포착하고 있는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시댁에서 벌어지는 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한 현실에서 그 둘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건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최근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신 고부갈등편’에서 한 설문조사에서는 며느리의 60%가 “시어머니가 원치 않아서” 같이 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며느리 대신 해야할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 양측이 바라는 건 이렇다.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 그리고 친딸 같은 며느리.

시어머니보다 더 어려운 공주엄마 모시기
그런데 드라마가 포착하는 친정엄마와 딸의 관계는 나을까. 이들 엄마들의 모습은 툭하면 시집간 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거나, 딸의 비뚤어진 행동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다. ‘황금신부’에 등장하는 지영 모(김청)는 이미 결혼한 옥지영(최여진)의 눈앞에 나타나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킨다. 지영의 입장에서 보면 시어머니보다 더 어려운 존재가 친정엄마인 셈이다.‘칼잡이 오수정’의 수정 모(유지인) 역시 궁할 때면 찾아와 수정을 괴롭히는 존재이며,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 모(김영애) 역시 딸 앞에서 결혼을 두고 ‘한 몫을 챙기려는’ 비정한 친정엄마로 등장한다.

물론 이것은 극화된 것이고 과장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이 말해주는 현실은 또한 분명 존재한다.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 “공주엄마 모시는 것이 시어머니 모시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결혼하면 육아문제로 이제는 친정어머니를 찾게될 딸에게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네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야겠으니 결혼하지 말라”는 공주엄마들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시어머니가 됐든 친정어머니가 됐든 시집살이, 며느리살이, 혹은 딸이 찾아와 겪는 이른바 친정살이(?)를 피하는 것은 그만큼 그간 가사활동으로 억눌려온 이 시대 어머니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집살이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걸 환호할만한 처지가 못된다.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는 풀리기 어려운 실타래 마냥 더 꼬인 상황이니까.

하지만 ‘며느리 전성시대’의 서미순은 어쩌면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을 지도 모를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 인간이 아닌 관계가 만들어내는 입장 차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그 관계를 벗어나거나 그 모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이렇게 제각각의 인물인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그 모든 위치가 한 여성에게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서미순은 보여준다. 그것이 며느리이자 시어머니이자 친정어머니인 그녀가 못내 안됐으면서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쩐의 전쟁’, ‘내 남자의 여자’가 뜨는 이유

역시 돈(쩐)과 여자는 되는 소재인가. 불륜이란 자극적인 상황에서 여자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내 남자의 여자’에 이어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사채업자들의 지독한 이야기 ‘쩐의 전쟁’도 30%대의 시청률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주몽’의 장기집권(?)과 ‘하얀거탑’같은 새로운 시도에 힘입어 드라마왕국이라 불리던 MBC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히트’와 ‘에어시티’의 부진으로 주춤하는 사이, SBS는 오랜만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점들이 시청자들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든 걸까.

독성이 강한 드라마들
시작부터 논란이 야기됐을 정도로 ‘내 남자의 여자’와 ‘쩐의 전쟁’은 독한 드라마다. 불륜이 그렇고 사채업이란 소재가 그렇다. 잘못 건드리면 불륜이나 사채업자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소재만이 아니다. 이 두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세상은 아름답거나 매력적이거나 귀여운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다. ‘쩐의 전쟁’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돈을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며, ‘내 남자의 여자’는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언어로 벌이는 전쟁이다.

이 두 드라마는 자극적인 상황으로 시청자들의 욕망에 직격탄을 날린다. 첫 회부터 내놓고 불륜사실을 드러내는 ‘내 남자의 여자’는 이 금기된 욕망이 가지는 양가감정을 건드린다. 가정을 지키며 살아가는 시청자들로서는 이 ‘찢어 죽일’ 불륜에 이를 갈다가도, 또 한 편으로는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되고 길들여졌던 마음의 대리충족을 경험한다. 물론 전자에 더 무게중심이 실린다. 한편 ‘쩐의 전쟁’ 도 더럽다고 하면서도 숭배하는 돈으로 시청자들의 욕망을 건드린다. 이 역시 양가감정이다.

두 드라마의 욕망에 대한 법칙은 라깡이 말했듯이 얻어질 수 없는 환상이다. 욕망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 깊은 허기에 시달리는 격이다. 이 두 독성 강한 드라마가 승승장구하는 이면에는 위에서 밝힌 독한 소재, 독한 이야기 전개가, 시청자들 속에 숨겨져 ‘지저분한 일’ 혹은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던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그것뿐일까. 이 독한 두 드라마가 논란드라마 혹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진지함’이다.

욕망에 대한 진지한 접근
단지 욕망과 자극만을 추구한 드라마였다면 지금 같은 드라마 환경 속에서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적당한 자극적 설정으로 시청률을 꾀해보려다 실패한 여타의 불륜드라마들이 단적인 예이다.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의 드라마 상황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이 두 드라마는 자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진지한 칼날을 갖다댄다. ‘내 남자의 여자’가 불륜드라마라는 오명에도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그 진지한 접근이 우리네 현실에도 와 닿았기 때문이다. ‘쩐의 전쟁’이 사채업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돈에 대한 나름의 진지한 성찰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은 자극적인 소재까지도 공감으로 끌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이 진정성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다.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동시간 대 여타의 드라마들과 상대적으로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점이다. 김수현이란 작가가 끌어가는 언어의 전쟁은 때론 살 떨릴 정도의 실감으로 다가온다. ‘쩐의 전쟁’ 역시 만화원작이 갖는 스토리성을 장태유 PD 특유의 속도감 있는 연출감각으로 풍자가 깃든 독특한 현실성을 끌어낸다. 여기에 힘을 듬뿍 실은 ‘쩐의 전쟁’의 박신양, ‘내 남자의 여자’의 김희애, 배종옥 같은 선수(?)들의 연기는 완성도에 굵직한 방점을 찍는다.

‘쩐의 전쟁’과 ‘내 남자의 여자’의 시청률 독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진지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스토리의 탄탄함일 것이지만 이 역시 드라마에 취하고 있는 진지한 태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물론 시청률이란 상대적인 것이며, 완성도와 비례가 되는 개념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두 드라마가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던 데는 지독함과 진지함 사이에서 벌인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결과라는 점이다.

여자들을 혹은 여자들만을 위한 드라마

김수현이 그려내는 불륜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그 제목부터가 심상찮다. 불륜이라면 당연히 여자와 함께 남자가 있어야 하는 법. ‘내 남자의 여자’란 제목은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라는 관계를 설정한다. 중요한 것은 이 제목에 방점이 찍히는 부분이 ‘남자’와 ‘여자’, 양쪽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조되는 부분은 궁극적인 지칭대상인 ‘여자’에 있다. ‘남자’라는 단어 역시 ‘내’라는 여자에 의해 한정되어 있는 존재. 그러니 이 제목에서 ‘남자’는 그냥 가운데 가만히 멈춰선, 혹은 양쪽에 포획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왜 홍준표는 침묵하고 있을까
제목처럼 이 드라마에서 남자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홍준표(김상중)가 남자일까. 교수에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부모의 돈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며, 게다가 천사표 부인까지 있는 홍준표는 과연 이 드라마에서 남자로 그려지고 있을까. 이화영(김희애)과 김은수(하유미)가 마치 입에 기관총이라도 단 듯 거침없이 속내에 잔뜩 품은 총알을 쏘아대고 있을 때, 홍준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침묵하고 방관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가정을 쥐고 또 한 손에는 욕망을 쥔 채 어느 한 쪽도 잡지 못하고, 또 버리지도 못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가 이화영과의 불륜을 저지른 것에 무언가 그만의 이유가 있음직도 한데, 그와 이화영이 밝히고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의도하지 않았다”와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꽃처럼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을 뜻하니, 그것은 운명적인 것이었을까. 그런데 잘 보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드라마는 운명이나 금지된 욕망에 대해 논하려는 의도가 없다. 머리채를 잡고 프라이팬으로 머리통을 내려치며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상황이 그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이화영이 대사 속에서 말한 것처럼 불륜이라는 상황 속에서 “끝까지 가보는”, 그래서 어떻게 될 것인가의 화학반응을 보는 쪽을 택했다.

남자라는 족속은 다 그렇다(?)
그런데 김수현의 직설화법 속에서 왜 유독 홍준표는 그다지도 입이 무거운 걸까. 혹 이유가 없는 건 아닐까. 그저 남자라면 다 그런 족속이라고 드라마가 말하는 건 아닐까. 적어도 등장하는 남자들의 면면을 볼 때 그런 혐의를 벗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트렌디하기 이를 데 없는 불륜전과자(?), 허달삼(김병세)은 남자란 존재가 ‘다 그렇고 그런 수컷’이라고 말한다. 그의 대사를 보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놈의 수컷 기질은 어쩔 수 없는 철없는 남자라는 존재가 그려진다. 불륜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지수(배종옥) 앞에서 오히려 더 열불을 내고 있는 은수에게 “당신도 처음이 제일 힘들었지?”라고 묻는 남자다.

불륜 사실이 밝혀지고 집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홍준표를 데리고 가 코치랍시고 하는 대사들 속에도 남자는 없고 수컷만 존재한다. “무조건 빌어라. 빈다고 해결되지 않지만 그렇게 지나간다”는 게 허달삼이 코치한 내용이다. 중요한 건 이런 허달삼의 이야기를 홍준표 역시 듣고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역시, “그게 통할까요?”라고 묻고, “차라리 한 일주일 숨었다가 오라”는 허달삼의 말에, “저도 그러고 싶어요.”라고 맞장구를 치는 캐릭터다. 여기서 그려지는 남자의 모습은 가정이 파탄 날 상황에서도 남자들은 저 혼자 도망칠 궁리만 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저질이고 철없으며 책임회피만 하면서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자들의 모습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준표의 아버지인 홍회장(최정훈)이 가정부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 “남자란 족속들은 나이가 드나 젊으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듯한 그 장면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남자가 아닌 수컷이다. 왜 이다지도 남자를 극단적인 모습으로 그려 가는 것일까. 이것은 그 남자가 침묵하고 있다는 것과 만나면서 드라마 속에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그것은 이 불륜 게임에서 남자를 소외시키고 여자들만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낸다. “남자들은 어쩔 수 없어. 그러니 우리가 해결해야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자들을 혹은 여자들만을 위한 드라마
김희애라는 팜므파탈이 탄생하는 것은 바로 이 여자들의 대결구도를 흥미진진하게 이끌기 위함이다. 적이 도무지 이가 들어가지 않는 인물이어야 대결은 더 극적으로 전개된다. 이 대결구도는 윤리적으로 말하면 선악구도가 너무나 명징해서 오히려 식상해진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주로 여자와 남자의 대결이었던 과거의 선악구도와 달리 여자와 여자가 맞붙게 되자 이야기는 참신해진다. ‘내 남자의 여자’라는 관계 속에서 화영과 지수는 서로 자리싸움을 시작한다. ‘내 남자의 여자’는 화영의 관점에서 보면 지수가 되고, 지수의 관점에서 보면 화영이 된다. 여기서 변하지 않는 인물, 남자는 홍준표이고 그는 침묵을 통해 드라마 전체가 말해주는 ‘남자라는 속물’을 묵인하고 있는 셈이다.

‘내 남자의 여자’는 여자들을 위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이 드라마가 불륜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갖게되는 최대의 강점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은수가 지수를 위해 화영을 찾아가 ‘박살을 내버리는’ 장면에서 “저런 언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한 이러한 여자들만의 구도 속에서 남자 캐릭터가 일방적으로 그려져 상황 자체에서 배제되는 것 역시 사실이다. 단 한 명 그렇게 그려지지 않는 유일한 남자인 지수와 은수의 친정아버지인 김용덕(송재호)이란 캐릭터가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아버지는 남자로 그려지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김수현이 ‘내 남자의 여자’를 가지고 또 한번 시청자들의 가슴에 불을 확 질렀다. 들고 온 기름은 화력 좋기로 소문난 ‘불륜’이다. 기름 위에 얹어진 장작들도 여느 장작들과는 달랐다. 그저 불륜이란 소재에 기대 평이한 설정과 연기를 해 이제 식상해져버린 기존 불륜에 넣어진 장작들보다 몇 배는 더 잘 타들어가는 김희애, 배종옥, 하유미라는‘명품 장작들’이다. 그들의 혼을 불사르는 듯한 연기는 김수현이 내지르는 직설화법이란 기름을 만나 활활 타올랐다.

불륜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이제 불륜 좀 그만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던 것에 비하면 첫 방송을 끝낸 이 드라마의 반응은 남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자칫 불륜에 집중될 수 있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 그 장본인은 김수현이란 작가와 작품 속에서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준 김희애라는 연기자다.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불륜드라마를 통해 역시 드라마는 소재보다 중요한 것이 완성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륜 드라마도 완성도 있게 만들어지면 인간 본질의 사랑 이야기로 발전하는 것인가.

‘내 남자의 여자’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남자에 초점이 맞춰진 드라마가 아니다. ‘내 남자의’는 수식어고 결국 그 뒤에 붙는 ‘여자’가 중심이 된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는 아예 내놓고 여성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시작부터 중반까지 김지수(배종옥)의 일상을 따라가며 계속되는 대사들은 여성들의 수다에 가까우면서도 대단히 연극적이다. 일상적인 사설은 지겨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그를 통해 관계는 ‘보여지기보다는 설명’된다. 드라마라는 영상언어가 있는데 왜 이렇게 대사중심의 극을 이끌어가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하게 된다. 혹 김수현이란 작가가 PD의 몫을 빼앗아간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목적은 더 치밀한 데 있다는 걸 알게된다. 평온한 가족의 파티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인물, 이화영(김희애)이 그 장소에 오기 전까지 거의 노출된 몸을 보여주었던 것은 그녀가 앞으로 불붙게 될 극적 순간을 예고했던 것이고, 유난히 천사표이자 세상물정 모르는 김지수가 그녀의 보호자격(적어도 불륜에 관해서는)인 김은수(하유미)와 너스레를 떨며 명랑한 하루를 보내는 장면 역시 그 순간의 폭발을 위한 장치였다. 물론 연극적인 대사 중심의 극 전개 역시 후에 벌어질 시각적 자극의 극대화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보아야한다.

김수현이란 작가는 소위 작가들이 말하는 ‘눌러주기’의 대가이다. 한참 겉으로 도는 관계를 평이하게 눌러주다가, 어느 한 순간에 폭발시켜주는 것. 그것이 ‘내 남자의 여자’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게 만든 요인이다. 이 정도 되면 김수현은 ‘언어의 마술사’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을 장인임을 증명한 셈이다. 게다가 김수현은 ‘감춰지는 불륜’이 아닌 ‘드러내는 불륜’을 선택했다. 이 차이는 분명하다. 전자는 감춰진 게 드러나는 순간 맥이 빠져버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륜드라마 공식 속의 불륜이고, 후자는 드러낼수록 점점 더 강도가 높아지는 불륜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김희애라는 연기자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내는 이화영이란 캐릭터에 있다. 이 캐릭터는 불륜이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잘못된 관계를 되돌리려 하기보다는 자포자기하면서 파멸을 향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다. 즉 드러나서 해결되지 않고 드러나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캐릭터란 얘기다. 여기에 맞상대역으로 먼저 등장하는 김은수 역의 하유미도 만만찮은 연기력을 과시한다. 이 팽팽한 대결구도 앞에서 더 몸서리처지는 것은 ‘지금 이건 맛보기에 불과해’라고 말하는 김수현 작가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불륜드라마라고 무엇이 나쁠까. 불륜은 사실 저 드라마(drama)의 구조가 나왔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연극 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유구히 내려오는 전통적인 소재다. 그만큼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담기에 용이하다는 말이다. 사회가 가진 가치개념과 인간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 소재는 욕망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또 불륜이냐”는 목소리에는 우리 드라마가 다루었던 소재의 폭이 그만큼 좁다는 것에 대한 비판과 또한 같은 불륜이라도 너무 표피적인 자극으로만 다루었던 드라마들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

김수현이 만든 불륜드라마는 일단 무언가 다를 것 같은 예감을 준다. 작가와 연기자들에게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불륜을 통한 인간의 문제를 천착하지 않고 자극으로만 치닫게 된다면 또다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 불륜이냐”는 말보다는 “불륜도 제대로 다루면 다르다”는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337)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126)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019,459
  • 123492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