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선물>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이다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을 선택했다? <신의 선물-14(이하 신의 선물)>은 마치 미드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새로움이다. 유괴된 딸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김수현(이보영)과 어딘지 허술하고 껄렁해 보이는 전직 형사 현직 흥신소 사장 기동찬(조승우)의 조합은 벌써부터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두뇌게임에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에 과거 김수현과 연인사이였던 강력반 팀장 현우진(정겨운)의 존재는 이 스릴러에 멜로적인 변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이미 복선으로 김수현의 딸 한샛별(김유빈)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고 또 딸을 구하기 위해 김수현의 희생이 필요할 거라는 걸 잔혹동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또 어떤 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기동호(정은표)와 그의 지적장애 아들 기영규(바로)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라는 인물도 그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 스릴러적인 장르 속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이 들어갈 전망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2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드라마의 첫 시작을 딸을 구하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칼을 잘라주고, 가시덤불을 껴안고, 눈알까지 빼서 호수에 던져주는 엄마의 잔혹동화로 시작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주는 셈이다. <신의 선물>은 타임워프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가 될 거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새로움은 기성 우리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음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스릴러나 형사물 같은 장르가 영화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껏 이 장르로 성공했던 드라마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성공한 작품이라면 김은희 작가의 <싸인>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은 드라마를 더 낯설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신의 선물>은 그 독특한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대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유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보영과 조승우 같은 톱 연기자들이 들어간 작품치고 첫 회 시청률이 6.9%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런 불리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우리네 시청률 추산 시스템 안에서 시청률을 얻기 위해서라면 멜로를 바탕으로 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훨씬 단순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다. 판타지? 그것도 멜로를 보강하는 차원에서만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우리 드라마 현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보영은 왜 굳이 이렇게 불리한 드라마를 선택했을까. “지난해 연기대상 받은 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상대 드라마가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시청률의 기대도 없고요. 우리가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장르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요.” 제작발표회에서 이보영이 던진 이 이야기는 그녀의 선택기준이 시청률이 아니라 작품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년 50% 시청률에 육박한 <내 딸 서영이>25% 시청률을 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이미 시청률로 얻을 것은 거의 얻은 이보영이다. 그러니 시청률 때문에 익숙한 드라마를 하느니 좀 더 실험적이지만 의미가 있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 게다. 그녀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재미있고 즐겁게 미드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촬영 중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는 새로움에 도전하고픈 그녀의 의지가 엿보인다.

 

시청률? 사실 <신의 선물> 같은 드라마는 그 시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에 경도되어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우리네 드라마 현실 속에서 이런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 시도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부담스런 칭호를 과감히 벗어던진 이보영의 선택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녀는 시청률이 아닌 작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어쩌면 꽤 괜찮은 시청률로 보상받을 지도 모르겠다.

TV, 영화 사로잡은 딸바보의 심리학

 

이준익 감독의 신작 <소원>에는 성폭행을 당한 딸아이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아빠가 등장한다. 성폭행의 후유증으로 아빠마저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아빠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딸의 마음을 조금씩 연다. 결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딸바보 소원이의 아빠다. 그저 가족에게 무심하게 살아왔던 그는 참회하듯 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사진출처:영화 <소원>

최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투윅스>에서 아빠 장태산(이준기)은 삶에 아무런 의미조차 갖지 못한 채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딸 수진(이채미)이 백혈병을 앓고 있고 그녀에게 골수를 기증할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알고는 삶이 절실해진다. <투윅스>는 이 주 동안 딸바보 장태산이 온갖 세상의 위협과 어려움을 뛰어넘고 딸과 가족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에 부쩍 딸바보 아빠들이 많아졌다. 올해 초에 개봉해 1천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딸바보 아빠들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영화에서 딸 예승(갈소원)이에 대한 무한사랑을 보여주는 딸바보 용구(류승룡)는 실제로도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바보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는 대놓고 딸바보의 이야기를 기획했다고 보여진다.

 

무려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낸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서영이(이보영) 아빠 이삼재(천호진) 역시 딸바보다. 자신이야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잊혀지더라도 딸 서영이가 행복하게 잘 살기만을 바라는 그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물론 이삼재가 그렇게 하는 데는 원죄가 있다. 서영이의 청춘시절에 자신의 사업실패가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는 것. 그래서 이삼재의 사랑에는 원죄에 대한 참회가 섞여 있다.

 

딸바보 열풍(?)은 예능 프로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아빠 어디가>의 송종국이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추성훈은 물론이고 예능에 출연하는 이들은 서슴없이 자신들이 딸바보임을 인증하곤 한다. 마치 세상의 아빠 치고는 딸바보 아닌 이들이 없는 것처럼 이들은 왜 이렇게 스스로를 딸바보로 세우는 것일까.

 

흥미로운 건 TV 프로그램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딸바보들은 대부분 자신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 무릎을 꿇는다는 점이다. 영화 <소원>의 아빠는 그간 벌어먹고 살기 위해 딸에게 무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투윅스>의 장태산은 가족을 위한다면서 가족을 떠난 자신을 후회한다. <7번방의 선물>의 용구는 정신지체이기 때문에 딸 예승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들에 눈물을 쏟고 <내 딸 서영이>의 이삼재는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서영이에게 사죄한다.

 

딸바보들은 이처럼 과거와 달라진 아빠들의 부성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즉 과거에 어딘지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던 아빠들이 가족에 대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IMF 이후부터 꺾여 온 아빠들의 권위와 사회가 달라지면서 점점 가족 내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입지가 좁아진 점 때문에 아빠들 스스로 가족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생겨난 현상일 것이다. 아내는 어딘지 어색하지만 딸이라면 바보처럼 살갑게 굴어도 훨씬 자연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점점 집 밖에 딸을 내놓기가 위험해지는 사회와도 관련이 있다. 특히 성폭행이니 하는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아빠들은 괜스레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빠져들곤 한다. 어른들이 만든 불안한 사회는 아빠들에게는 그래서 또 하나의 죄의식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의 <소원>은 바로 이런 딸바보 아빠들의 원죄의식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영화다. 이토록 많아진 딸바보 아빠들. 그간의 남성성의 성 역할에만 머물며 집밖을 떠돌던 아빠들은 그렇게 가족의 품으로 점점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투윅스>,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던 이유

 

<투윅스>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놀라운 드라마가 헤집고 간 파문은 꽤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을 듯하다. 우리네 드라마 현실에서 이처럼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성을 가진 작품을 시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윅스>는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성공하기 힘들다는 스릴러 액션을 다루면서도 그 안에 가족드라마의 문법을 성공적으로 묶어낸 작품. 게다가 그 안에 우리네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준엄하게 꾸짖는 시선까지 담아놓았다.

 

'투윅스(사진출처:MBC)'

2주라는 짧은 시간을 나눠 하루를 한 회 분량으로 풀어내는 형식미는 이 드라마의 시간을 훨씬 더 숨 가쁘게 만들었고 그 2주를 끝없이 뛰어다니던 장태산(이준기) 옆에 늘 함께 하는 딸 수진(이채미)을 판타지로 엮어내는 방식은 탈주극이 가족드라마의 테두리 안에 온전히 놓여질 수 있게 해주었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의미라는 통상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범죄자의 가족, 이를테면 김선생(송재림)과 한치국(천호진), 조서희(김혜옥)와 그의 장애를 가진 아들까지 가족 이야기를 확장함으로써 그 의미를 사회적인 시각으로 넓혀놓았다.

 

즉 자신의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타인의 가족을 걱정하는 장태산과 그 주변 인물들(임승우(류수영) 같은)이 있는 반면, 제 자식만을 챙기려 타인을 불행에 몰아넣는 조서희 같은 인물이 있고, 뒤늦게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김선생 같은 인물이 각각 사회적인 틀 안에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가족주의가 가진 이중성이다. 모두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것이 가족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 때 가족주의는 가족 이기주의가 된다. 마지막 회에 이르면 <투윅스>는 그래서 가족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수진이는 사실상 두 명의 아버지를 갖게 된 것이고 박재경 검사(김소연)는 장태산 가족과 유사가족 형태를 이룬다. 장태산에게 살갑게 같이 살지 않겠냐고 묻는 한치국 역시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이렇게 가족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확장되자 드라마는 좀 더 사회성 있는 울림을 갖게 되었다. “내가 무서웠던 것도 니 마음이 약해서였고, 내 협박에 도망치지 못한 것도 니가 용기가 없어서였어. 선택은 니가 한 거라고 이 모자란 자식아.” 문일석(조민기)이 장태산(이준기)에게 던지는 이 말이 더 아프게 다가오는 건 5년마다 우리가 듣는 ‘선택’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조서희처럼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저마다 국민을 외치지만 정작 국민은 없고 사적 이익만 있던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이 모든 불행이 저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 때문이라는 것. “뭘 시켜도 찍소리 못하는 놈”이었기 때문에 장태산의 불행이 비롯됐다는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그저 드라마의 한 대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조서희라는 악역이 권력이 목표가 아니라 돈이 목표라는 건 우리를 더 암울하게 만든다. 권력이야 5년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그렇게 착복된 돈은 두고 두고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일석의 비아냥은 그래서 장태산을 변화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도망치기만 하던 장태산이 공세적으로 돌변해 문일석과 조서희 일당을 압박하게 됐던 것. 결국 마지막에 문일석과 장태산이 정 반대의 입장으로 바뀌었을 때 장태산은 자신의 선택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걸 걱정해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장태산도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이 이주 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주변사람을 진정 걱정한다면 제대로 된 선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토록 긴박한 탈주극에 이처럼 뭉클한 가족극이면서 동시에 이토록 날카로운 사회극을 한 작품 속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소현경이라는 작가 덕분이다. 이 작품을 쓴 소현경 작가는 이제 확실한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여겨진다. 주말드라마이면서도 미니시리즈의 긴박감을 엮어냈던 <찬란한 유산>으로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녀는 <검사 프린세스>, <49일> 같은 밀도 있는 작품실험을 거쳐 <내 딸 서영이> 같은 국민드라마를 만들어냈지만 진정한 성취는 <투윅스>를 통해 이뤘다 여겨진다.

 

<내 딸 서영이>가 익숙한 가족드라마 속에서 특별한 지점들을 뽑아낸 작품이었다면 <투윅스>는 낯선 설정 속에서 익숙함을 균형 있게 맞춘 작품이라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물론 시청률에서야 <내 딸 서영이>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런 실험적인 시도로 10%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필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소현경 작가 특유의 균형감각 덕분이다. 이 작가는 보편적인 시청층이 요구하는 드라마적 설정들(가족 설정 같은)마저 장르 속에 잘 녹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좋은 드라마는 좋은 배우를 만든다. <투윅스>의 거의 모든 배우들이 호연을 펼쳤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의 중심을 만든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이준기와 조민기를 말할 수 있을 게다. 이준기는 이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혀놓았다. 아빠 연기를 제대로 소화해낸 이준기는 이제 좀 더 폭넓은 연기자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이 드라마의 사실상의 힘을 만들어낸 조민기의 악역 또한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연기자의 팽팽한 대결이 있어 <투윅스>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동시간대 시청률 2위로 종영했지만 <투윅스>는 2등짜리 드라마가 아니었다.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그렇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져간 점도 그러하며 또한 드라마가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 역시 결코 작다 할 수 없었다. 시청률을 무시할 순 없지만 시청률만을 위해 만들었다면 아마도 이처럼 많은 성취들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윅스>는 진정 다 가진 드라마였다.

이보영, <적도>를 거쳐, <서영이>를 넘어 <목소리>로

 

이보영. 사실 <적도의 남자> 이전 그녀가 무슨 작품을 했는지 기억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2003년도에 데뷔해 드라마만 무려 16편을 찍은 그녀였지만 존재감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는 그녀의 도도하면서도 심지어 차갑게까지 보이는 이지적인 이미지가 작용했다. 매력은 밖으로 발산되기보다는 안으로 꾹꾹 눌러졌다. 드레시한 옷을 입고 나오는 신데렐라는 그녀의 이지적인 모습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사진출처:SBS)'

<적도의 남자>는 비로소 이보영의 매력을 찾아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여자. 중견기업의 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다 집안이 몰락하자 생활전선으로 뛰어나온 여자. 그래서 숨기려 해도 밖으로 드러나는 도도함과 이지적인 매력. 게다가 이 여자는 시각을 잃어버린 첫사랑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여자다. 단단한 이성의 껍질로 고고하게 서 있는 여자가 어느 날 그 껍질이 깨지는 사랑 앞에 여성을 드러낼 때, 이보영의 매력도 활짝 피어났다.

 

<내 딸 서영이>는 <적도의 남자>의 이보영이 가진 매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가난하지만 똑똑하고 혼자서도 세상과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여자가 바로 서영이였다. “늘 아버지 행동이 자식들 위할 거라는 착각 이제 그만 좀 두세요.” 이 도발적인 대사는 아마도 이보영이 아닌 그 누군가가 했다면 더 큰 정서적인 논란이 생겨났을 지도 모른다. 서영이라는 인물의 정당성은 그래서 상당 부분 이보영의 이미지에 기댄 면이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제 이보영의 매력, 활용편이다. 이 드라마에서 이보영은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빈 구석(?)을 한껏 드러냈다. 국선변호사로서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천연덕스레 연기하고,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진 어린 박수하(이종석) 앞에서 매번 속을 들키고 망가지는 모습은 심지어 그럼에도 여전히 도도해 보이는 이보영의 매력을 더욱 강조시켰다. 이보영은 드디어 자신의 매력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책 읽어주는 여자와 두 차례나 연거푸 연기하게 된 변호사라는 직업은 이보영의 매력이 단지 섹시함이나 백치미 같은 여성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녀는 심지어 보이시할 정도로 지적인 워킹 우먼으로 서 있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된다. 단색의 스커트에 소박해도 깨끗하게 빤 흰 블라우스만 입고 있어도 여성들의 워너비 의상이 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녀는 치열한 생활 전선 속에서도 자신의 기품을 잃지 않는 능력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녀가 드라마에서 그저 멜로의 대상이 되는 여성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사회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지적인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도의 남자>에서 정의와 사회의 약자들에 대해 시선을 던졌고, <내 딸 서영이>에서는 부모 세대와의 갈등을 겪고 홀로서기 하는 젊은 여성들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물론 달달한 연애에서 늘 진심이 들키는 여성이면서도 세상의 진실을 추구하는 국선변호사이기도 하다.

 

이보영의 멜로나 가족드라마가 사회적 소통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도 그녀의 이지적이고 능동적인 워킹 우먼의 이미지 덕분이다. 복수극의 틀 속에서 사회정의의 문제를 꼬집어낸 <적도의 남자>가 그렇고, 지극히 가족드라마의 공식 안에 있으면서도 그 무수한 세대 간의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내 딸 서영이>가 그렇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아예 이 소통의 문제를 멜로와 사회극의 두 차원에서 다룬다.

 

긴 긴 무명생활의 <적도>를 거쳐 모든 세대를 아우르게 했던 딸 <서영이>를 넘어선 그녀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때로는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이고, 때로는 뜨거울 정도로 감성적이며, 때로는 귀여울 정도로 허술하면서, 때로는 꾹꾹 눌려 숨겨둔 슬픔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는 그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그녀가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워너비가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현실과 싸우려면 이 정도의 당당함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으려면 그만큼의 지극히 여성적인 귀여움은 필수가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무수한 이보영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꿈꾸게 되는 시대다.

<이순신> 최고 시청률 얻었지만... 아이유 호연이 아까운 이유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말했다. KBS 주말극에 한 번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이유? KBS 주말극은 기본 시청률이 20%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자 당시 25%에 머물고 있던 <최고다 이순신>에 대해 누군가 한 마디 농담을 던졌다. “그럼 <최고다 이순신>은 시청률이 5%네?” 모두가 웃고 넘겼지만 그 농담이 남긴 뒷맛은 여전히 씁쓸하게 남아있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한때 MBC <백년의 유산>이 30% 시청률을 내면서 주말극 경쟁에서 KBS <최고다 이순신>을 따라잡았을 때만 해도 이번 KBS 주말극은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시작부터 불거진 이순신 비하 논란은 그 신호탄처럼 보였지만, 진짜 추락의 원인은 진부한 스토리에서 비롯됐다. 딸 부잣집 이야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하고 노래할 것 같은 여주인공, 그를 구원해줄 잘 나가는 백마 탄 왕자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매들 등등.

 

하지만 이렇게 주말극이라고 해도 너무나 구태의연하고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로 시청률이 좀체 오르지 않을 때, 슬슬 고개를 든 것이 ‘출생의 비밀’이다. 이순신(아이유)이 사실은 죽은 아버지의 숨겨둔 딸이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 김정애(고두심)가 그녀를 핍박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친모인 여배우 송미령(이미숙)이 그녀를 도와주는 척 하다가 다시 내치고 그 사실을 안 김정애와 송미령이 드잡이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드라마는 흘러갔다.

 

<최고다 이순신>이 최고 시청률을 회복하게 된 순간은 송미령이 막장 엄마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부터다. 그녀는 이순신이 자신의 딸임을 알면서도 그녀의 상처는 생각도 않고 세상에 그 사실을 공표해버린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엄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이 자기 중심적인 행위에 시청자들이 드디어(?) 욕을 하며 드라마를 보았던 셈.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이 송미령을 찾아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는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보복 심리를 자극했다. 또한 이순신이 처한 입장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갖게 만들었다. 친 딸이 아니지만 친 딸처럼 집 나간 이순신을 찾아 헤매는 김정애의 절절함이나, 길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어찌 해야 할 지 모르는 이순신이 김정애를 만나 ‘그래도 자기가 여전히 엄마 딸’이라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래서 가슴 찡한 아픔을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최고다 이순신>이 지금껏 해온 이야기가 결국은 ‘출생의 비밀’ 한 가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많은 드라마들이 사용하면서 이제는 그 패턴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 상투적인 코드의 반복. 무려 26회나 방영되면서 이렇게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반복하는 드라마가 있을까.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가 말하듯 KBS 주말극이 시청률 프리미엄을 갖는다고 해도, 과거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내 딸 서영이> 같은 작품은 저마다 분명한 메시지와 차별화된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최고다 이순신>은 어떤가. 과연 스스로 칭하듯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청률이 조금 떨어질 때 ‘출생의 비밀’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들은 대체로 극악한 캐릭터 하나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려는 속성이 있다. 송미령이라는 인물이 점점 막장으로 치닫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이러한 막장스럽고 상투적인 스토리를 어느 정도 연기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송미령을 연기하는 이미숙은 그나마 어떤 품위를 지켜내고 있고, 김정애 역할의 고두심도 모성애와 분노가 뒤섞인 역할을 잘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건 애초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이유의 연기다.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으로 충분히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공감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스토리의 진부함이다. ‘출생의 비밀’이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최고다 이순신>은 언제쯤 거기서 빠져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부터 새로운 이야기라는 것이 있기는 있었던 걸까. KBS 주말극이 그간 쌓아놓은 고정시청층은 실로 대단하다. 하지만 거기에 기대 그저 그런 코드들로 꾸며진 드라마를 반복하다보면 그 고정층도 이탈할 것은 뻔한 일일 것이다.

<이순신>, 제목 논란 여전한 진짜 이유

 

제목은 <최고다 이순신>이지만 이 드라마를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물론 늘 그래왔듯이 시청률에서는 최고다. 하지만 이 관성적인 시청률이 작품의 질을 얘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일일 게다. 이순신 장군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터지고, 거기에 대한 꽤 세세한 해명들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먼저 <최고다 이순신>의 전작들이 만들어놓은 KBS 주말극에 대한 기대감이 이 드라마의 실망감을 더욱 크게 한 원인일 수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내 딸 서영이>는 기존 주말드라마의 공식을 살짝 뒤틀어버림으로써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기존 가족드라마가 늘 그리던 시월드의 세계를 며느리의 시각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신선함을 안겨주었고, <내 딸 서영이>는 아버지와 딸이 대립에서 소통하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서 신구세대를 끌어안는 드라마가 되었다.

 

반면 <최고다 이순신>은 다시 이들 드라마가 나오기 이전으로 퇴행한 듯한 설정의 드라마다. 출생의 비밀이 바탕에 깔려 있고, 미운오리새끼 모티브에 신데렐라 이야기 게다가 전형적인 딸 부잣집의 결혼 이야기까지 들어 있다. 즉 출생의 비밀을 안고 미운 오리 새끼로 지내던 이순신(아이유)이 가비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신준호(조정석)를 만나 신데렐라가 되어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주요 얼개다. 여기에 이순신의 친모인 톱 연예인 송미령(이미숙)과의 관계가 드라마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식상할 법도 한 전형적인 틀에 박힌 이 드라마를 위해 사용된 두 가지 방법은 캐스팅을 신선하게 가져가는 것과 초반 자극적인 설정과 대사를 통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아이유와 조정석이라는 캐스팅은 사실상 이 드라마로 채널을 돌리게 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다. 물론 조정석은 역시 탄탄한 연기의 소유자지만 아이유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의 연기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어쨌든 이 두 인물의 조합이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허술한 구성에 KBS 주말드라마라고 하기엔 자극적인 장면과 대사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순신의 둘째언니인 유신(유인나)은 이 드라마의 초반 자극적인 상황을 거의 떠맡은 인물이다. 툭하면 배다른 동생이라는 걸 이유삼아 순신을 구박하고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조차 순신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역할이 유신이다. 게다가 그녀는 술자리에서 비롯되어 박찬우(고주원)와 원 나잇 스탠드를 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보기에는 다소 자극적인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회사 말고 독도나 지키라”라는 대사나 극중 이순신에게 신준호가 던지는 “이 100원짜리야”라는 대사는 물론 이순신이 처한 상황을 극대화시키고, 신준호라는 인물의 까칠함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이 나오는 이유는 이 드라마가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빗대서 사용할 정도로 괜찮은 완성도나 신선함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과 신데렐라 이야기에 원 나잇 스탠드 같은 자극적인 장면들까지 끼워 넣은 이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차가운 반응은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제목에 걸맞는 최고의 드라마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제목은 이제 이 드라마의 족쇄가 되었다.

<내 딸 서영이>, 진정한 국민드라마였던 이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 딸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그 딸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아버지. 사위를 구하려다가 자신이 자동차에 치이고도 자기 정체가 밝혀질까 봐 제대로 검사도 받지 않고 도망쳐버린 아버지. 그렇게 존재를 부정한 딸을 위해서 그 딸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아버지. <내 딸 서영이>의 아버지 이삼재(천호진)가 국민 아버지가 된 이유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아마도 이 땅의 부모들은 이삼재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위안 받았을 지도 모른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살아왔고 그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한 평생의 삶. 그 삶에 대해 <내 딸 서영이>의 자식들은 그 부모가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죄송하다”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이 자식들의 뒤늦은 회한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는 부모세대들에게 <내 딸 서영이>의 국민 아버지 이삼재는 대단한 판타지임에 틀림없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때로는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던 그 가부장제 하에서 숨조차 쉴 수 없었던 딸. 어느 날 불쑥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해버린 딸.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삶이 좀체 행복할 수는 없었던 딸. <내 딸 서영이>의 그 딸 서영이(이보영)가 국민 딸이 된 이유다.

 

아마도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은 서영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늘 보금자리가 될 수는 없는 거라고, 때로는 그 보금자리가 도망치고픈 족쇄이기도 한 거라고, 저 서영이가 당당하게 자기 삶을 선택한 것처럼 그렇게 자신의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무에 잘못된 일이냐고 서영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눈에 밟히는 부모의 그림자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영이의 눈물은 그래서 자기 삶을 선택했던 젊은 세대들이 그 당당함 뒤에 남겨진 아픔을 대신 씻어내주는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었다.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은 어딘지 애매하다. 단지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고 해서 흔히들 국민드라마라고 부르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과하게 여겨지는 건 과연 국민이라는 호칭을 붙일 만큼 모든 세대를 끌어안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삼재 같은 국민 아버지, 서영이 같은 국민 딸은 물론이고, 도무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하디착한 이상우 같은 국민 동생에, 역시 세상에 없을 것 같은 국민 며느리 호정(최윤영)까지. <내 딸 서영이>는 ‘국민’이란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드라마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찌 보면 뻔한 소재일 수도 있었고, 때로는 지나친 신파가 될 수도 있었으며, 혹은 너무 틀에 박힌 전개일 수도 있었지만 <내 딸 서영이>가 그토록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우리네 가족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지 파편화된 우리네 가족관계는 <내 딸 서영이>가 보여준 것처럼 어쩌면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드라마 제공한 화해의 판타지는 더더욱 우리의 마음을 울렸는지도. <내 딸 서영이>를 진정한 국민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 가족 판타지가 모든 세대들을 끌어안을 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서영이>, 악역들마저 소통하려는 강박의 이유

 

“그래도 한때 사위였는데. 사위한테 부사장님, 부사장님 한 것도 모자라서... 너 우리 아버지 과거 알지? 그 수치스런 얘길 다 했단다 우리 아버지가. 정말 미치겠다. 우리 아버지 땜에.” 서영이(이보영)의 친구에게 하는 이 대사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아픔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뒤엉켜 있다. 제 아무리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지만, 그 아버지의 치부가 한 때 사위였던 강우재(이상윤)에게까지 드러나는 건 영 싫다는 거다.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녀는 아버지 욕하고 뭐라 할 권리는 자신과 상우 그리고 엄마한테만 있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버지 욕하는 건 싫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삼재(천호진)가 사위에게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서영이를 변호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토록 서영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녀 앞에서 “미안하다”고 할 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진심을 봤기 때문이다.

 

<내 딸 서영이>가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은 이렇게 상대방의 진심을 보게 되는 계기를 통해서다. 강우재가 서영이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것도 이삼재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서영이의 진심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진심이 전해지는 방식은 그래서 흥미롭다. 이삼재는 강우재에게 서영이의 진심을 전해주고, 이제는 강우재가 서영이에게 아버지의 진심을 전해준다(그렇게 단서를 주게 된다). 여기서 강우재는 양자를 이해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이 역전됨으로써 그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내 딸 서영이>가 50% 가까운 시청률을 내는 원동력이다. 이심전심과 역지사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감과 소통’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저지른 실수나 오해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로 인해 뒤틀어진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게 되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바로 그런 이심전심과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진 인물들 때문인지, 이미 서영이의 주변 인물들은 거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서영아. 너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가 너였다면 못 이겨냈어. 그 상황을 버텨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나.” 이렇게 말하며 누구나 실수는 한다며 “그러니까 니가 먼저 너를 용서해.”라고 하는 강우재의 말처럼 이제 서영이가 용서해야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인 지도 모른다.

 

갑자기 은호라는 아이를 서영이가 변호하는 에피소드가 들어온 것은 바로 이 남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은호야 아버지는 니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니가 죽으려고 했었던 거 어떻게 알았냐구? 나도 그랬었거든 아버지 땜에. 근데 하루 하루 버티니까 시간이 가고 살 날이 오더라.” 은호에게 너는 아버지 땜에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서영이는 사실 자신(이 과거 아버지를 부정했던 이유)의 이야기를 했던 셈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어요. 내가 죽지 않으면 아버지를 죽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은호의 말 역시 서영이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서영이와 은호의 이야기는 그래서 어쩌면 자신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은호의 에피소드는 은호를 통해 서영이가 자신을 보게 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고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내 딸 서영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방식은 심지어 강박적인 느낌마저 준다. 예를 들어 서영이의 과거를 폭로한 정선우(장희진)마저 서영이를 찾아와 갈등을 풀어내기도 한다. 사무실을 찾아온 정선우는 이미 자신이 서영에게 잘못을 사죄했고 강우재와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걸 쿨하게 얘기한다. 그러자 서영이는 희미하게 웃으며 “제가 정변호사님 위로해줘야 돼요?”하고 되묻는다. 둘 사이에 남은 앙금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여유가 생겼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내 딸 서영이>의 작가가 가진 캐릭터에 대한 태도 덕분이다. 그토록 많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이 저질러졌지만 이 드라마에서 절대적인 악역이 잘 보이지 않는 건 작가가 이처럼 끝까지 캐릭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지만 거기에는 저 마다의 이유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 작가의 캐릭터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한 셈이다.

 

이상우(박해진)와 헤어지게 된 강미경(박정아)이 결국 서영이와 마음을 풀게 되는 과정에서도 작가의 이 기분 좋은 강박이 드러난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과연 강미경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이 상황을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미경이 역시 신분을 속이고 병원에서 지내다 들통 남으로써 서영이의 입장을 고스란히 겪었다는 점에서 역지사지를 통한 화해의 가능성을 이미 갖고 있던 인물이다.

 

물론 이건 현실에는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이자 작가의 강박이다. 한 번의 실수나 오해로 뒤틀어진 관계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역지사지의 시선으로 단박에 풀어질 수 있는 호락호락한 현실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이 강력한 소통에 대한 판타지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소통에 대한 이 강력한 욕구는 그래서 어쩌면 쉽사리 소통되지 않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류승룡은 어떻게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됐을까

 

<7번방의 선물>에서 류승룡이 연기하는 용구는 딸바보다. 용구가 영화 속에서 한 가장 많은 대사는 아마도 “예승아!”라고 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을 게다. 얼굴만 쳐다봐도 그 간절한 부성애가 넘쳐나는 용구는 정신지체의 장애를 갖고 있는 실제 바보이기도 하다. 강풀 원작의 <바보>가 그러한 것처럼 이 시대에 바보의 의미는 오히려 똑똑하고 계산적인 이들이 갖지 못한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다. <7번방의 선물>에서는 그 바보가 아빠로 돌아왔다. 진정한 딸바보의 탄생이다.

 

사진출처: 영화 '7번방의 선물'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의 결정체는 그러나 지독한 현실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바보라는 존재가 늘 이른바 정상이라고 하는 이들의 변명거리나 희생양이 되는 건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을 게다. 용구는 그렇게 7번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딸 예승이를 부르며 애끓는 부성애를 보여준다. 그 부성애의 존재가 사회적으로는 어떤 아이의 강간 살해범이라는 무시무시한 누명을 쓰게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딸바보 류승룡이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을 눈물 짓게 만드는 것은 이 바보 같은 용구라는 존재가 그 부모들이 살아왔던 삶을 극적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자식 하나만을 보며 살아온 부모세대는 그러나 지금 이 청춘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현실의 발원지처럼 백안시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투표장을 향했다는 그 세대들은 어찌 보면 자신의 시대가 배척당하고 부정되는 현실의 억울함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7번방의 선물>처럼 최근 들어 모성애가 아닌 부성애가 귀환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내 딸 서영이>는 그 제목에서 드러나듯 아버지의 시선이 담겨진 드라마다. 과거의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딸에게 그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면서도 그 딸의 앞날만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시청률 40%를 넘어 50%를 향해가는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아빠 어디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아이하면 늘 먼저 떠오르는 엄마를 집에 남겨두고 대신 아빠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된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아빠들은 이 1박2일의 여행을 통해 아이들의 사랑을 재확인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성동일이 조금은 권위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아이를 통해 돌아보고, 김성주가 주눅이 든 아들의 모습에 자신이 너무 윽박지르며 아이를 대했던 것에 대해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처럼 최근 부성애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을 통해 그 양자를 힐링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7번방의 선물>의 류승룡이 한 때 거친 수컷의 향기를 뿜어내던 작업남에서 부성애의 끝단을 보여주는 딸바보로 돌아오면서 계속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 바탕에 깔린 남성들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그렇게 수컷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고, 이제는 그 차원을 넘어서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어떤 힐링을 꿈꾸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류승룡이 왜 최근 새로운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가를 읽을 수 있다. 딸바보 류승룡이 보여주는 <7번방의 선물>은 우리 시대의 수많은 바보 아빠들은 물론이고 그를 새롭게 바라보고픈 자식들을 위한 판타지다.

<내 딸 서영이>, 새 인물들 많아진 이유

 

<내 딸 서영이>는 연장 없이 50부작으로 끝낸다고 한다. 이제 41부를 끝냈으니 거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막판에 <내 딸 서영이>는 새 인물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제 이혼까지 하고 새롭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서영이(이보영)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학창시절 그녀를 쫓아다니던 성태(조동혁)가 그렇고, 믿었던 남편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재차 며느리마저 거짓말로 결혼한 것을 알고는 충격에 빠졌던 차지선(김혜옥) 앞에 갑자기 나타난 배영탁(전노민)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이 그렇다. 이제 곧 몇 회면 종영할 지점에서 왜 이들은 갑자기 투입되었을까.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성태의 출연은 당연하게도 서영이를 잊지 못하는 우재(이상윤)와의 삼각관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첫 등장에서부터 성태의 첫사랑이 서영이었다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냈다는 건 이유가 있는 셈이니까.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이제 우재와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다른 남자를 만나느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삼각관계는 서영이와 우재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한 것이지 그들 사이를 확고하게 깨기 위한 것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홀로 선 서영이는 바로 그 새로운 출발선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애초에 서영이와 우재의 비극은 그 첫 출발선이 엇나가면서 생겨난 것이니 말이다. 우재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바로 이렇게 다시 첫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다시는 누군가와 엮이고 싶지 않은 서영이를 다시 연애감정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성태 같은 인물은 그래서 필요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이혼해서 남남이 된 우재를 다시 서영이 앞에 세워놓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차지선 앞에 나타난 배영탁이라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찌 보면 마치 의도적으로 접근한 사기꾼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진짜 로맨틱한 남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누구든 누군가의 남편 혹은 엄마로만 살아왔던 차지선을 자기 이름으로 설레게 만들어줄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서영이나 차지선이나 모두 이 드라마에서 지금 하려는 것은 관계에 매몰되었던 자신의 삶을 홀로서기를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다시 시작해보려는 것이다. 바로 이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새로운 인물들과의 관계인 셈이다.

 

좀 더 폭넓게 보면 <내 딸 서영이>에서 관계에 실패한 이들은 새로운 관계를 통해 그 고통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영이의 아버지 이삼재(천호진)는 목공가구점 사장인 방심덕(이일화)과의 관계를 통해 과거를 넘어서 현재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서영이 때문에 강미경(박정아)과 헤어지고 대신 최호정(최윤영)과 결혼한 이상우(박해진)는 그 최호정이라는 속 깊고 착한 아내 덕분에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이상우와 헤어진 강미경 역시 그 앞에 최경호(심형탁)라는 인물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즉 엇나간 운명으로 혹은 한 때의 실수나 잘못으로 틀어진 관계가 삶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고 해도 결국 새로운 삶은 다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새 삶에는 새로운 관계와 인물이 요구된다는 것은 <내 딸 서영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세계관이다. 물론 서영이와 우재는 다시 재결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홀로 서기를 통해 자신을 먼저 사랑하게 된 이가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영이가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관계는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내 딸 서영이>의 막바지에 이르러 새로운 인물들이 투입되고 그들과 새로운 관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이 비극적인 인물들이 갈등을 이겨내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은 서영이와 우재가, 또 서영이와 아버지가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심하게 엇나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그만한 과정들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지금 <내 딸 서영이>는 그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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