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과 수지, ‘당잠사’가 깨운 연기자의 매력

역시 배우는 작가를 잘 만나야 제 매력을 발휘하게 되는 걸까. 박혜련 작가의 새 수목드라마 SBS <당신이 잠든 사이에(이하 당잠사)>에서 첫 회부터 이종석과 수지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사실 이 두 배우는 모두 박혜련 작가와 인연이 깊다. 수지는 <드림하이>로 박혜련 작가와 인연을 맺었고, 이종석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로 박혜련 작가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사진출처:SBS)'

<당잠사>는 판타지와 현실을 엮어내는 박혜련 작가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소년이 주인공이었고, <피노키오>에서는 마치 사진을 찍듯 모든 걸 기억해내는 소년과 거짓말을 하면 딸국질을 하는 소녀가 주인공이었다. 이번 <당잠사>는 예지몽을 꾸는 남녀가 주인공이다. 

첫 회에 <당잠사>는 꿈꾼 대로 현실이 되어버리는 홍주(배수지)와 그녀가 일어날 일을 꿈꾸게 된 재찬(이종석)이 자동차 사고를 계기로 관계를 맺게 되는 그 과정을 흥미롭게 그렸다. 홍주 대신 운전을 한 이유범(이상엽)이 사고를 내고 그래서 혼수상태로 병실에 눕게 된 홍주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녀의 엄마 윤문선(황영희)이 과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그래서 홍주 역시 건물 옥상에서 자살하는 꿈을 꾸게 된 재찬이 그대로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걸 느끼면서 사고를 막는 과정.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어떤 불행한 사건 사고를 미리 꿈으로 예지한 인물이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간절함 때문이다. 누구나 어떤 사고를 겪었을 때 한번쯤은 그 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만일 그런 말이나 행동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 <당잠사>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 들어간다. 

타임리프라는 시간을 되돌리는 설정이 한 때 드라마의 트렌드가 되었던 이유는 그 과거로 돌아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결과를 바꾸려 하는 간절한 욕망이 거기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잠사>는 타임리프의 방식을 예지몽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려낸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일을 미리 꿈으로 알게 되고 깨어나 현재에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런 이야기 설정에 특히 지금의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건 워낙 우리가 많이 겪었던 사건 사고들 때문이다.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부터 멀게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사고들이 남긴 트라우마는 우리네 대중들의 가슴에 지금까지도 선연한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러니 <당잠사>의 인물들이 보이는 간절함은 남 이야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박혜련 작가는 이처럼 판타지적 캐릭터를 활용하지만 그 캐릭터 속에 현실적인 정서나 감정을 투영해 넣는 것으로 마법 같은 힘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그래서일까. 최근 전작에서 그리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이종석도 수지도 이 작품의 캐릭터 속에서 제대로 매력이 풍겨져 나오고 있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첫 회가 주는 예감은 좋다. 미리 꾸어보는 꿈처럼.

<리멤버>, 이 복합장르에 담긴 <변호인><베테랑>

 

SBS 새 수목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은 다양한 장르들이 뒤섞여 있다. <별에서 온 그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냄새를 보는 소녀>처럼 SBS가 그간 열어온 이른바 복합장르의 유전자가 이 드라마에는 어른거린다. 주인공 서진우(유승호)가 갖고 있는 기억 능력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타인의 내면을 읽는 능력이나, <냄새를 보는 소녀>의 냄새를 보는 능력의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이고, 그들이 범죄에 연루되어 진범을 찾는 이야기도 비슷한 구조처럼 읽힌다.

 


'리멤버(사진출처:SBS)'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스릴러 장르의 한 면을 보여준다면 서진우와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언제 사형당할 지 알 수 없는 그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의 애끓는 부자 관계는 가족드라마의 틀이고, 서진우와 향후 사건을 함께 파헤쳐나가며 사랑 역시 피워나갈 이인아(박민영)와의 관계는 멜로드라마의 틀이다. 여기에 박동호(박성웅) 같은 조폭 변호사 캐릭터는 저 <용팔이>의 조폭들에게 왕진가는 의사 김태현의 이야기가 살짝 변호사로 변주된 느낌이다.

 

각각의 캐릭터들도 흥미롭고 이렇게 장르적으로도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놀랍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복합적인 장르의 장치들이 드라마를 보는 다양한 재미들인 반면, 그 기저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올 한 해 대중들이 그토록 몰입하여 들여다봤던 정의의 문제다. 과연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영화 <변호인>을 쓴 시나리오 작가 윤현호의 첫 드라마라는 사실은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드라마에 대한 상당한 신뢰감을 만들어낸다. <변호인>은 송우석(송강호)이라는 한 인권 변호사를 인물을 세우고 있지만 <리멤버>는 세 명의 변호사가 나온다. 하나는 인권변호사 이인아이고 또 하나는 조폭변호사 박동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모든 걸 기억해내는 절대기억변호사 서진우다.

 

이처럼 세 명의 변호사가 제각각의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건 드라마의 다채로운 재미의 결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정의 실현의 문제가 우리네 현실에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뜻(인권변호사)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며 또 그렇다고 현실적인 처세(조폭변호사)로만 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절대 기억 같은 놀라운 능력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 명의 변호사가 맞서게 되는 인물은 남규만(남궁민)이라는 재벌 후계자다. 이 인물은 여러모로 <베테랑>의 공분유발자 조태오(유아인)를 닮았다. 금수저와 갑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만들어내는 키워드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이 만만찮은 남규만이라는 인물과 세 명의 변호사가 대결구도를 갖는 것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리멤버>는 이처럼 최근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들과 정서들을 그 복합적인 장르의 틀 속에 기막히게 채워 넣고 있다. 그 요소들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서진우나 박동호 같은 캐릭터의 신선함이 있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기억의 문제를 이 익숙한 이야기 위에 변주하게 했다는 건 흥미롭다. 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아들은 너무나 모든 기억들을 세세히 갖고 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그 상반된 기억능력 때문에 고통 받는다.

 

기억과 정의의 문제를 교차시켜놓은 것도 흥미롭다. 어쩌면 진정한 정의의 실현은 법에 의한 처벌보다 기억이 해내는 것이 아닐까.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대중들의 기억을 상기시킴으로써 시대적 정의의 문제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던 것처럼, <리멤버> 역시 파렴치범으로 기억된 채 형장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과연 아들은 돌려놓을 수 있을까. 오랜만에 다양한 재미의 결과 동시에 신선한 의미를 기대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나왔다



<냄보소>, 복합장르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재미

 

뭐야 뭐야? 나 촉 디게 좋아-” KBS <개그콘서트>은밀하게 연애하게에서 임종혁은 김기열과 박보미의 비밀연애를 슬쩍 슬쩍 훔쳐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들은 형사들이다. 범죄를 수사해야할 촉이 연애로 향하고, 선임과 신입 여형사는 수사가 아닌 연애를 한다. 형사물과 연애물을 결합하니 기묘한 지대가 생겨난다. 늘상 보던 연애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그 복합장르 속에 뒤섞인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아마도 SBS <냄새를 보는 소녀>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느낌이 이와 같지 않을까. 복합장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SF 판타지에 멜로와 코믹, 액션, 스릴러 같은 장르들을 엮어내 대륙까지 흔들었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피노키오>의 박혜련 작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장르를 뒤섞으면서도 그 안에 독특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자신만의 영역을 과시한 바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는 복합장르의 또 다른 버전이다. <별에서 온 그대>가 초능력을 가진 별에서 온 도민준(김수현)을 내세우고 있다면 <냄새를 보는 소녀>는 제목처럼 냄새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 오초림(신세경)이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미스테리하게 벌어지는 이른바 바코드 연쇄살인을 담은 스릴러로 시작한다.

 

연쇄살인마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하고 쫓기던 오초림은 차에 치어 기억을 잃어버리는 대신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연쇄살인마를 목격한 그녀 때문에 최무각(박유천)은 같은 이름을 가진 여동생이 살해당하는 걸 보고는 감각을 잃어버린다. 연쇄살인마에 의해 두 사람은 각각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되지만 한 사람은 초감각을 갖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름처럼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만 보면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나 추리 장르처럼 보이지만 이 두 사람이 운명처럼 만나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멜로 역시 빠질 수 없는 재미요소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는 멜로의 이야기는 또한 두 사람의 공통의 목표 즉 연쇄살인마를 잡고 과거의 아픔을 극복해내는 것에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다양한 장르들은 기묘한 이음새로 이어진다.

 

초감각의 오초림이 무각의 최무각을 도와 수사를 하는 과정은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해 하나의 완전체를 이루는 모습 그대로다. 오초림이 초감각으로 사건의 단서들을 찾아낸다면 무각은 온몸을 던져 범죄자들을 잡아낸다. 또 오초림의 꿈인 개그우먼이 되는 것을 돕기 위해 의외의 콩트 연기력을 보여주는 무각은 그녀와 콤비를 이룬다.

 

일상에서 오초림은 땅 위로 1센티 정도 들어 올려진 듯 과장된 인물이고 최무각은 반대로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무겁게 가라앉은 인물이지만 콩트 코미디 속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초림이 콩트 특유의 과장을 잘 못하는 반면, 최무각은 거꾸로 과장된 연기로 개그의 자질을 드러낸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건 이들의 외면과 내면 사이의 부조화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것이 어떻게 합치를 이루는가도 이 드라마가 앞으로 보여줄 또 하나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 여러 장르들이 뒤섞인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의외로 보는 내내 두근두근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것이 스릴러가 주는 긴박감 때문인지 아니면 오초림과 최무각 사이에 벌어지는 알콩달콩한 로맨스 때문인지는 애매모호하다. 물론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복합장르의 기묘함은 분명한 정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그 모호함에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에게 가상과 현실은 이미 혼재되어 있다. 우리는 그다지 그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니 가상이 주는 판타지와 현실이 주는 실감 사이의 경계도 점점 얇아지고 있다. 복합장르가 주는 기묘한 느낌은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들이나 판타지와 현실이 의외로 자연스럽게 엮여 어떤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데서 나온다.

 

흔히들 가상현실의 혼재가 가져온 그 으스스한 느낌을 언캐니 현상이라 부르고 그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특징이라고들 말한다. 복합장르에서 느껴지는 그 기묘하고 정체가 모호한 재미 역시 그 특징을 어느 정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냄새를 보는 소녀>가 주는 정체모를 두근두근에는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감각의 일단이 느껴진다.

 

뭐야 뭐야 나 촉 디게 좋아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그 재미의 정체가 여전히 모호하게 다가오는 건 우리에게 아직 남아있는 전통적 문법들의 저항 때문일 게다. 물론 <냄새를 보는 소녀> 같은 복합장르의 애매모호함 역시 우리가 디지털 깊숙이 들어와 이제 디지털을 그다지 새롭게 느끼지 않는 것처럼 향후 우리네 드라마의 익숙함이 될 지도 모르겠다.

 

<피노키오>, 이종석의 말, 윤균상의 칼

 

자신의 실제 이름을 숨긴 채 기자가 되어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과 거짓보도를 한 기자들을 밝히려는 최달포(이종석). 그리고 거짓말을 한 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그의 형 기재명(윤균상). 이 두 사람의 교차편집으로 이뤄진 <피노키오> 5회의 마지막 몇 분은 팽팽함과 절절함이 극에 달한 시간들이었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거짓말로 자신의 가족을 파탄 낸 세상에 대한 복수를 위해 한 사람은 펜()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칼을 들었다. 그토록 증오하던 기자라는 존재는 최달포에게는 결국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되어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한편 아버지의 허망한 죽음을 알게 된 그의 형 기재명에게 남은 건 복수뿐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헤어진 형제라는 사실은 이들의 또 다른 비극을 예고한다. 최달포가 사회부 기자라는 점은 그가 앞으로 기자가 되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범죄자가 된 자신의 형을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예상케 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세상에 칼을 꺼내든 형 앞에서 과연 최달포는 진실의 말만을 전할 수 있을까.

 

<피노키오>가 세상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방식은 이처럼 새롭다. 이 드라마는 한 가족의 비극을 처절하게 바닥까지 보여줌으로써 왜 누군가의 거짓말이, 또 그것을 받아 제 멋대로 과장한 언론의 거짓말이 얼마나 큰 폭력인가를 드러낸다. 억울하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형마저 복수의 삶을 살아가게 된데다 자신은 신분조차 숨기며 살아야 하는 최달포라는 주인공은 아마도 최근 드라마 속 주인공 중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피노키오>는 현실의 비극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신문 사회면 사건을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로 단순히 구분되어 보이지만 <피노키오>는 그 겉으로 보이는 면이 아닌 그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가해자와 피해자 이면에 숨겨진 진짜 부조리한 현실이 무엇인가를 파헤친다.

 

이것은 박혜련-조수원 콤비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세계이기도 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역시 사건 이면의 이야기를 듣는 주인공을 통해 비극의 진짜 실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던가. <피노키오>는 그래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피노키오>의 기저에 깔린 감정이 분노라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왜 이들은 이렇게 분노하는가. 그들이 분노하는 그 이유를 찾아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잘못 흘러가는 시스템의 현실과 마주한다. 그 현실은 MSC의 송차옥(진경) 같은 인물로 드러나기도 하고, 이 가족을 한 순간에 파탄으로 몰고 간 거짓말을 한 화재현장의 작업반장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분노라는 감정은 어쩌면 지금 현재 대중들이 세상에 막연히 품고 있는 어떤 정서일지도 모른다. 왜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뿐인데 이런 지독한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게 되었던가.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것처럼 <피노키오>는 우리 앞에 그 감춰진 부조리의 얼굴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던져지는 질문. 과연 이 시대의 말과 칼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말과 칼은 정의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정의는 진실을 통해 실현되고 있을까. 이 드라마가 그토록 절절하게 우리의 마음에 닿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난무하는 말과 칼이 거꾸로 아무 죄도 없는 서민들을 향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말과 칼은 다시 제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피노키오>의 복수극이 그 어느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이다.

 

<피노키오>, 제2의 <너목들>? 그 이상인 까닭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사회적 범죄를 다루면서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는 초능력과 그 과정에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멜로까지를 다 잡은 이른바 복합장르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다. 박혜련 작가가 다시 들고 온 <피노키오>라는 작품을 대중들이 기대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기대한대로 <피노키오>는 그 첫 회만으로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만큼의 잘 봉합된 복합장르의 틀을 보여주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져왔다면 <피노키오>는 기자라는 직업을 다루었다. 다루는 내용도 사회적 범죄에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언론의 문제로 바뀌었다. 남다른 명석한 두뇌와 암기력의 소유자인 최달포(이종석)와 벌써부터 핑크빛 기류를 만들고 있는 최인하(박신혜)와의 멜로도 있다.

 

하지만 <피노키오>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단순한 복합장르때문이 아니다. 이런 복합장르를 통해 이 작품이 전하려는 이야기가 가진 힘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피노키오>가 첫 회에 던져놓은 것은 거짓말이라는 화두다. MSC 보도국의 송차옥(진경)은 기자로서 진실 그 자체보다는 보도의 효과에 더 집중하는 거짓말을 대변하는 기자다. 그녀의 캐릭터는 이 한 마디로 정리된다. “팩트보다 중요한 게 임팩트야!”

 

최달포는 바로 이 송차옥의 거짓말 보도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고 섬 마을로 들어와 자란 인물이다. 그런데 달포는 자신을 아들로 착각하는 최공필(변희봉)에게 거짓으로 아들인 척 함으로써 결국 입양된다. 거짓말로 피해를 본 인물이지만 그는 때론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기자가 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거짓말의 효용도 알지만 폐해도 알고 있는.

 

반면 최인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갖고 있어 거짓말 자체를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는 그녀는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다. 그녀의 등장인물 소개란에는 이런 재치있는 인물설명이 들어있다. ‘변호사, 국회의원, 작가, 배우, 그 어떤 직종도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기자가 된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는.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초능력을 가졌다면 <피노키오>는 역발상이다. 초능력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능력의 부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능력의 부족일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초능력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실 거짓말의 유혹이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넘기 힘든 한계처럼 여겨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거짓말을 못한다는 건 또 다른 능력이 될 수 있다.

 

결국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그러했듯이 <피노키오>가 다루는 것 역시 소통의 문제. 아예 대놓고 기자들을 등장시켜 언론과 진실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건 그만큼 진일보한 <피노키오>의 야심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유독 사건사고와 논란이 그리도 많았던 올해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매체를 통해 매번 보고 듣고 접하는 모든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신의 선물>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이다

 

시청률의 여왕 이보영, 이번엔 작품을 선택했다? <신의 선물-14(이하 신의 선물)>은 마치 미드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새로움이다. 유괴된 딸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김수현(이보영)과 어딘지 허술하고 껄렁해 보이는 전직 형사 현직 흥신소 사장 기동찬(조승우)의 조합은 벌써부터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두뇌게임에 기대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에 과거 김수현과 연인사이였던 강력반 팀장 현우진(정겨운)의 존재는 이 스릴러에 멜로적인 변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신의 선물-14일(사진출처:SBS)'

이미 복선으로 김수현의 딸 한샛별(김유빈)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했고 또 딸을 구하기 위해 김수현의 희생이 필요할 거라는 걸 잔혹동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또 어떤 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는지 알 수 없는 기동호(정은표)와 그의 지적장애 아들 기영규(바로)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기동찬의 집을 자꾸 찾아오는 추병우(신구)라는 인물도 그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 스릴러적인 장르 속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이 들어갈 전망이다. 딸을 구하기 위해 2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 드라마의 첫 시작을 딸을 구하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칼을 잘라주고, 가시덤불을 껴안고, 눈알까지 빼서 호수에 던져주는 엄마의 잔혹동화로 시작했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주는 셈이다. <신의 선물>은 타임워프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모성애를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가 될 거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 새로움은 기성 우리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음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스릴러나 형사물 같은 장르가 영화로는 괜찮을지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껏 이 장르로 성공했던 드라마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 드라마에서 스릴러로 성공한 작품이라면 김은희 작가의 <싸인>이 거의 유일하다. 여기에 타임워프라는 설정은 드라마를 더 낯설게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신의 선물>은 그 독특한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대본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서는 그다지 유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보영과 조승우 같은 톱 연기자들이 들어간 작품치고 첫 회 시청률이 6.9%에 머물렀다는 것은 이런 불리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우리네 시청률 추산 시스템 안에서 시청률을 얻기 위해서라면 멜로를 바탕으로 하고 복잡한 이야기는 훨씬 단순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다. 판타지? 그것도 멜로를 보강하는 차원에서만이 시청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우리 드라마 현실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보영은 왜 굳이 이렇게 불리한 드라마를 선택했을까. “지난해 연기대상 받은 거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상대 드라마가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시청률의 기대도 없고요. 우리가 즐겁게 촬영하는 만큼 장르 드라마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요.” 제작발표회에서 이보영이 던진 이 이야기는 그녀의 선택기준이 시청률이 아니라 작품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년 50% 시청률에 육박한 <내 딸 서영이>25% 시청률을 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이미 시청률로 얻을 것은 거의 얻은 이보영이다. 그러니 시청률 때문에 익숙한 드라마를 하느니 좀 더 실험적이지만 의미가 있는 드라마를 하고 싶었을 게다. 그녀는 장르물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끼리 재미있고 즐겁게 미드를 찍는다는 심정으로 촬영 중이라는 그녀의 말 속에는 새로움에 도전하고픈 그녀의 의지가 엿보인다.

 

시청률? 사실 <신의 선물> 같은 드라마는 그 시도 자체가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에 경도되어 심지어 막장으로까지 치닫는 우리네 드라마 현실 속에서 이런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 시도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부담스런 칭호를 과감히 벗어던진 이보영의 선택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그녀는 시청률이 아닌 작품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진심은 어쩌면 꽤 괜찮은 시청률로 보상받을 지도 모르겠다.

실장님부터 초능력자까지, 남자주인공들의 진화사

 

미소년의 얼굴에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카리스마.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김수현에게 <드림하이>의 송삼동은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군왕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남파간첩(거의 아이돌에 가깝다)을 거쳐 <별에서 온 그대>의 초능력 외계인 캐릭터는 그의 아우라를 완성시켰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지금 현재 김수현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을 보장받는 남자주인공의 끝판왕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지금껏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이 여성들에게 주던 판타지를 거의 모두 가진 인물이며, 그 복합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그가 연기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외계에서 와 조선시대부터 4백년을 산 인물 도민준. 그는 일찍이 사둔 잠실벌과 압구정의 땅으로 어마어마한 재벌급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다, 4백년 동안 의사에서부터 변호사까지 안 해본 직업이 없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집 한 켠에 마련된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서재는 그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능력을 표상하고, 시간을 멈추고 사물을 움직이는 초능력은 실현 불가능한 일들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이런 재산, 능력, 지성, 감성 게다가 초능력까지 가진 인물이 오로지 천송이(전지현) 한 사람만을 마음에 두고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해도 인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영웅을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판타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인물. 게다가 4백년의 공력으로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늙지 않는 미소년 외모의 소유자. 그가 바로 도민준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정체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 캐릭터는 작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이종석)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그 매력이 입증된 바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인 박수하는 그 놀라운 소통능력으로 억울한 이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장혜성(이보영)이라는 한 여성을 위한 일이다. 천송이와 도민준, 장혜성과 박수하라는 커플의 공통점은 남자주인공이 미소년에 초능력자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젊고 아름다운 육체와 함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남자주인공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에서부터 <시크릿 가든>의 현빈, <상속자들>의 이민호로 이어지는 김은숙표 멜로의 재벌이거나, 주상욱이나 이동욱 같은 성공적인 실장님 캐릭터, 혹은 전문분야에 능력을 갖췄으나 성격은 모난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 같은 인물들이 얼굴을 달리 하며 반복해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종석과 김수현에 이르면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판타지로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점점 초능력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현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점점 커져간다는 걸 말해준다. 슈퍼히어로들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상징들이 아닌가. 하지만 서구의 슈퍼히어로들이 전 지구적인 위기와 맞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우리네 슈퍼히어로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적인 삶에 오히려 집중한다는 것이 완전히 다른 특징이다.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일단 국가나 인류 같은 거창한 꿈에 대한 허무주의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정치인들이나 국가 지도자들이 말해온 거대 담론들이 정작 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단 말인가. 그러니 퇴행적이라고 비판받을지언정 바로 직접적으로 나를 돕는 슈퍼히어로를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 변호사를 돕는 박수하는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신뢰하게 한 점은 국가와 국민을 얘기해도 그것이 거대담론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친조카 같은 한 국밥집 아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 도민준이라는 슈퍼히어로는 국가나 인류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극도의 허무주의를 보여준다. 그가 천송이라는 한 여성을 위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다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4백년을 살다보면 그도 그럴 것이다.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일제와 남북분단을 경험한 인물이라면 세상의 변화에 초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인물 속에 담겨진 사적인 욕망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허무는 씁쓸함을 남긴다.

 

김수현이라는 배우는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욕망과 좌절을 모두 함께 캐릭터를 통해 껴안고 있는 셈이다.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미소년의 여전한 장난기와 때로는 어른스럽게 여성을 보호해주는 카리스마, 그리고 한 편에 느껴지는 어두운 허무의 그림자는 그래서 그가 도민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 이 시대의 징후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얼굴 속에는 그간 남자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의 면면들이 혼재되어 있다.

<주군>, <너목들>, <별그대>, 그들의 특별한 능력

 

판타지가 드라마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는 단 4회 만에 20% 시청률을 돌파했다. 외계에서 온 꽃미남이라는 존재와 연예계 톱스타의 시공을 초월한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이색적인 스토리에 아무래도 김수현과 전지현이라는 배우의 힘이 작용한 탓일 게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외계에서 온 꽃미남 도민준(김수현)이 가진 능력이다. 그는 시간을 순간적으로 멈출 수 있고 무언가를 파괴시킬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 게다가 불사의 존재로 이미 4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 긴 세월 동안 쌓인 지식과 경험 또한 초능력 못지않은 능력으로 작용한다.

 

도민준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그 조각처럼 잘 생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엄청난 능력을 숨기고 있는 초능력자이면서 그 힘을 온전히 한 여인을 위해 사용하는 순정남이기 때문이다. 도민준은 400년에 걸쳐 환생한 운명의 연인 천송이(전지현)가 수차례 죽을 위기에 몰리는 상황에 뛰어들어 그녀를 구한다. 또 그는 현재에 톱스타로 살아가는 그녀가 겪는 고충들, 이를테면 소문 때문에 욕을 먹게 되고 심지어 누군가를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음해까지 받게 되는 그런 상황들을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올해 주목받은 SBS 드라마들 중 대부분이 이러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을 세우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주군의 태양>에서 태공실(공효진)은 아무도 못 보는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박수하(이종석)는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물론 이 세 작품 모두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능력은 어떤 식으로든 멜로로 이어지게 된다. 능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한다.

 

흔히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은 엄청난 사람들을 또는 지구를 구하는 그런 슈퍼히어로물의 단골 등장인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위 세 작품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어딘지 슈퍼히어로라 부르기 애매모호한 인물들이다. 그것은 그들의 능력이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되기 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들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법정극이 일정 장르로 자리하고 있어 거기서 수하의 타인의 속내를 읽는 능력이 활용되기는 한다. 하지만 궁극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 능력이 결국은 그가 좋아하는 장혜성(이보영) 변호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적 틀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겠지만 슈퍼히어로의 능력자가 지극히 소시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것은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더 이상 거창한 영웅상을 기대하지 않는 대중정서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보편적으로 슈퍼히어로의 능력이 거꾸로 말해주는 대중들이 갈증 또한 그 안에는 존재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는 능력이란, 거짓과 소통부재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갈증의 표현이고, <별에서 온 그대>가 가진 시간을 멈추는 능력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극히 얇아진 위험천만한 사회가 갖게 마련인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이나 갈증이 사회적 차원으로 나가지 못하고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것은 또한 위축된 대중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회적인 변혁이라는 것이 너무나 요원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슈퍼히어로물에서조차 그 능력을 갖고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가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슈퍼히어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세계로 귀환한다. 한 개인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는 운명적 사랑에 충실한 슈퍼히어로는 그래서 굉장한 판타지를 제공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다지 건강한 존재일 수는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의 힘 있는 존재들은 어쩌다 그 힘을 사회가 아닌 사적인 부분에만 쓰고 있는 걸까.

<목소리>, 캐스팅에 담긴 혼합장르의 열쇠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흔한 멜로라고 생각한 시청자라면 지금 스릴러로 치닫고 있는 이 드라마에 심지어 당혹감마저 느낄 만하다. <내 딸 서영이>로 국민 딸로 자리매김한 이보영과 <학교 2013>으로 여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이종석의 조합, 여기에 <시크릿가든>의 윤상현까지 가세하면서 드라마는 삼각 멜로의 달달한 이야기를 예상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수하(이종석)의 능력은 멜로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 소통의 가능성까지 만들어주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보영과 이종석의 달달한 멜로가 그만큼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스릴러의 요소를 깔아놓고 있었다. 그것은 민준국(정웅인)이라는 범죄자 때문이다. 수하와 혜성(이보영)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이 바로 민준국(의 범죄의 피해자인 수하와 그것을 증언하는 혜성)이라는 점은 이 드라마의 혼합 장르적 성격을 명확히 말해준다. 이종석의 풋풋한 눈빛과 이보영의 좌충우돌 명랑함이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떠올리게 해줬지만, 정웅인의 잔인한 미소가 피어나는 순간 드라마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이 변곡점은 민준국이 혜성의 어머니인 춘심(김해숙)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방영되는 순간부터다. 춘심의 치킨 집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은 민준국이 본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감금하고 몽키스패너를 휘두르는 장면으로 끝나는 7회 마지막까지도 설마 실제로 춘심이 죽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8회 첫 장면에서 춘심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라마는 급격히 법정극과 스릴러의 장르 속으로 그 흐름을 바꾸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정웅인이다. 왜 민준국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자 역할에 정웅인이 캐스팅되었을까. 사실 정웅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장르가 시트콤 혹은 코미디일 정도로 코믹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다. 잔뜩 경직된 얼굴 속에서 엉뚱하고 음흉한 모습이 살짝 드러날 때 그것이 웃음을 만들어냈던 기억을 대중들은 여전히 갖고 있다. 그러니 그가 범죄자로 등장한다는 것은 다소 의외의 캐스팅이다. 여기에는 이 혼합장르의 드라마가 가진 신의 한수가 들어가 있다.

 

이 드라마를 함께 세팅해온 SBS 김영섭 CP는 정웅인 캐스팅에 대해서 ‘반전 효과’를 노렸다고 말했다. 즉 코믹 캐릭터가 진짜 살벌한 범죄자로 변신했을 때 오히려 그 공포감은 더 커질 거라는 것. 그 반전 효과는 실제로 주효했다. 물론 초반부터 수하의 아버지를 죽이는 살인자로 등장하지만 그 배우가 정웅인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스릴러 장르라 여겨지지 않았던 면이 있었던 것. 초반 멜로로 충분히 수하와 혜성의 관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스릴러의 색채를 상당부분 줄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웅인이 진짜 범죄자의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섬뜩함은 오히려 배가 되는 효과를 만들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가진 특별한 매력은 그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다양한 복합장르에서 비롯된다. 즉 청소년 판타지물처럼 보이던 것이 로맨틱 코미디로도 이어지고 멜로로도 엮어지다가 휴먼 드라마적인 요소까지 아우른다. 하지만 차츰 이 현실감 없을 것만 같은 판타지물은 점점 스릴러적인 요소를 강화하면서 무게감을 찾아간다. 비현실적인 판타지에서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스릴러로의 자유로운 전환. 바로 여기에 이 드라마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기는 지점인 셈이다.

 

이렇게 보면 이 드라마의 캐스팅은 다양한 장르적 성격들을 각자 구현해낼 수 있을 만큼 적절했다 여겨진다. 이종석이 그리는 청소년 판타지물의 성격과 이보영이 만들어내는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드라마, 법정 장르의 요소, 그리고 윤상현이 여기에 부여하는 멜로와 휴먼드라마적인 색채가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웅인이라는 배우가 있어 멜로에서 범죄물과 스릴러로의 전환이 가능했다 여겨진다.

 

수하의 어머니가 죽고 1년이 지난 시점, 갑자기 떠오른 정웅인의 손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향후 전개가 도무지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수하가 정웅인의 살인피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혜성과 차관우(윤상현)가 그를 변호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무수한 변수들이 남아있다. 수하는 과연 민준국을 죽인 것일까. 왜 수하는 기억을 잃게 된 것일까. 민준국은 죽기는 죽은 것일까. 또한 수하와 혜성 그리고 차관우의 멜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이러한 다양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생기는 건 복합장르를 절묘하게 엮어내면서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캐스팅의 묘수가 숨겨져 있다.

이보영, <적도>를 거쳐, <서영이>를 넘어 <목소리>로

 

이보영. 사실 <적도의 남자> 이전 그녀가 무슨 작품을 했는지 기억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2003년도에 데뷔해 드라마만 무려 16편을 찍은 그녀였지만 존재감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렇게 된 데는 그녀의 도도하면서도 심지어 차갑게까지 보이는 이지적인 이미지가 작용했다. 매력은 밖으로 발산되기보다는 안으로 꾹꾹 눌러졌다. 드레시한 옷을 입고 나오는 신데렐라는 그녀의 이지적인 모습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사진출처:SBS)'

<적도의 남자>는 비로소 이보영의 매력을 찾아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여자. 중견기업의 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다 집안이 몰락하자 생활전선으로 뛰어나온 여자. 그래서 숨기려 해도 밖으로 드러나는 도도함과 이지적인 매력. 게다가 이 여자는 시각을 잃어버린 첫사랑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여자다. 단단한 이성의 껍질로 고고하게 서 있는 여자가 어느 날 그 껍질이 깨지는 사랑 앞에 여성을 드러낼 때, 이보영의 매력도 활짝 피어났다.

 

<내 딸 서영이>는 <적도의 남자>의 이보영이 가진 매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가난하지만 똑똑하고 혼자서도 세상과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여자가 바로 서영이였다. “늘 아버지 행동이 자식들 위할 거라는 착각 이제 그만 좀 두세요.” 이 도발적인 대사는 아마도 이보영이 아닌 그 누군가가 했다면 더 큰 정서적인 논란이 생겨났을 지도 모른다. 서영이라는 인물의 정당성은 그래서 상당 부분 이보영의 이미지에 기댄 면이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이제 이보영의 매력, 활용편이다. 이 드라마에서 이보영은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빈 구석(?)을 한껏 드러냈다. 국선변호사로서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천연덕스레 연기하고,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진 어린 박수하(이종석) 앞에서 매번 속을 들키고 망가지는 모습은 심지어 그럼에도 여전히 도도해 보이는 이보영의 매력을 더욱 강조시켰다. 이보영은 드디어 자신의 매력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책 읽어주는 여자와 두 차례나 연거푸 연기하게 된 변호사라는 직업은 이보영의 매력이 단지 섹시함이나 백치미 같은 여성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녀는 심지어 보이시할 정도로 지적인 워킹 우먼으로 서 있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된다. 단색의 스커트에 소박해도 깨끗하게 빤 흰 블라우스만 입고 있어도 여성들의 워너비 의상이 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녀는 치열한 생활 전선 속에서도 자신의 기품을 잃지 않는 능력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녀가 드라마에서 그저 멜로의 대상이 되는 여성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사회적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지적인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도의 남자>에서 정의와 사회의 약자들에 대해 시선을 던졌고, <내 딸 서영이>에서는 부모 세대와의 갈등을 겪고 홀로서기 하는 젊은 여성들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물론 달달한 연애에서 늘 진심이 들키는 여성이면서도 세상의 진실을 추구하는 국선변호사이기도 하다.

 

이보영의 멜로나 가족드라마가 사회적 소통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도 그녀의 이지적이고 능동적인 워킹 우먼의 이미지 덕분이다. 복수극의 틀 속에서 사회정의의 문제를 꼬집어낸 <적도의 남자>가 그렇고, 지극히 가족드라마의 공식 안에 있으면서도 그 무수한 세대 간의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내 딸 서영이>가 그렇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아예 이 소통의 문제를 멜로와 사회극의 두 차원에서 다룬다.

 

긴 긴 무명생활의 <적도>를 거쳐 모든 세대를 아우르게 했던 딸 <서영이>를 넘어선 그녀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때로는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이고, 때로는 뜨거울 정도로 감성적이며, 때로는 귀여울 정도로 허술하면서, 때로는 꾹꾹 눌려 숨겨둔 슬픔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는 그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그녀가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워너비가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현실과 싸우려면 이 정도의 당당함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으려면 그만큼의 지극히 여성적인 귀여움은 필수가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무수한 이보영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꿈꾸게 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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