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가득 ‘황금빛 내 인생’과 ‘신과 함께’, 흥행하는 까닭

너무 신파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 누구도 눈물을 참기 힘든 상황 설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방송 전체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렇고, 개봉 5일 만에 350만 관객을 넘어서며 일간 관객 수 순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과 함께-죄와 벌>이 그렇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각각 대중들의 가장 큰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는 이 두 작품에는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져 있다.

인사이트<황금빛 내 인생>은 서태수(천호진)의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크리스마스의 한 풍경으로 시청자들을 울렸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 가장은 가족들에게는 원양어선을 탄다고 했지만 본래부터 삶을 정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 상태가 심상찮다는 걸 알게 된 그는 곧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끼며 웃음을 터트린다. 크리스마스에 그는 자신이 맞이할 수도 있을 죽음을 ‘휴식’으로 받아들인다.

오랜만에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외투까지 하나 사 입은 이 가장은 자신이 죽었을 때 나올 사망보험을 보며 어차피 정리하려 했지만 이렇게 병으로 죽는 것이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며 좋아한다. 죽음을 오히려 휴식으로 받아들이고, 병사하는 것을 오히려 안도하는 가장의 모습은 아마도 동시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나 그걸 바라보는 자식 세대들까지 가슴 먹먹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영화 <신과 함께>는 인명을 구조하다 죽음을 맞이한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이 사후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거치면서 그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후 세계의 모험담을 그린다는 점에서 스펙터클에 판타지 블록버스터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김자홍이 가진 휴머니즘과 ‘효’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눈물을 참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김자홍 가족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으로, 실제 영화관을 여지없이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어놓는다. 제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만큼 감정을 격동시키는 것이 있을까. <신과 함께>는 그래서 가장 비현실적일 수 있는 판타지를 그리면서도 이 눈물을 통해 현실의 무게감을 담보해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보는 이들에 따라서 지나치게 신파 코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비판적인 반응 또한 나오고 있다. 너무 익숙한 코드들이지만 어쨌든 가장 효과적인 코드로서 신파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것. 물론 그 장면들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것은 어쩌면 가족 간에도 각박해진 현실에서 촉촉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대목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빛 내 인생>과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이러한 신파적 코드에 대한 호불호는 이처럼 극명하게 나뉜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두 작품을 통해 지금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일관된 정서가 바로 ‘울고 싶다’는 그 비감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많은 작품들에서 드러나고 있는 ‘추락하는 주인공들’에 대한 대중적 호응과 공감에는 이런 정서가 깔려 있다. 이제 누군가가 잘되는 걸 보는 것보다는 잘 안 되는 걸 보면서 공감하는 측면이 더 강해졌다. 신파든 아니든, 대중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울고 있고 그래서 작품들을 통해서라도 그걸 풀어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사진:KBS)


그 누구보다 따뜻했던 故김주혁 위한 '1박2일'만의 추모사

“나 힘들까봐. 형이 나 보러 와줬었는데, 난 형이 힘든데 지금 옆에 갈 수도 없는 게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빨리 가고 싶네요. 형한테.” 정준영은 먼저 가버린 고 김주혁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참지 못했다. KBS <1박2일>에서 까불이였던 김준호는 카메라 앞에서 말문이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잊지 않을 것”이라고 꾹꾹 진심을 담아 그 마음을 전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다시 돌아보면 그제서야 더 소중해지는 일들이 있다.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김주혁에 대한 <1박2일>이 가진 회한이 그러했을 게다. <1박2일>에서 하차한 그가 마지막 촬영을 하고 돌아가는 날의 풍경은 다시 보니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애써 웃으며 그간 함께 고생했던 동생들과 제작진, 스텝들에게 하나하나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돌아서는 그 모습에 당시 그를 떠나보내는 이들은 눈물을 보였다.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또 그가 말했듯 언제든 한 번 놀러올 수도 있는 그 짧은 이별에서조차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그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김주혁은 그렇게 영영 먼 길을 떠났고 긴 이별을 고했다. 그와 <1박2일>을 함께 해왔던 많은 동료들이 느낄 아픔과 회한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 <1박2일>에 출연했을 때 그는 어색함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 2년여 간 ‘1박2일’의 시간들을 반복해서 보내면서 그는 어느새 모든 이들의 맏형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싫다던 노래를 부르고 배우로서 쉽지 않았을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가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프로그램에 임하면서 그는 결코 <1박2일>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가 <1박2일>에서 시청자들에게 준 건 따뜻함이었다. 배우로서 독보적인 아우라를 가졌던 이가 망가짐으로서 주는 웃음 속에는 그 따뜻함이 존재한다. 고생하는 동생들과 스텝들, 제작진들 앞에서 그가 스스럼없이 자신을 무너뜨린 건 그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배려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다시 되돌려본 <1박2일> 속에서의 김주혁의 모습은 우리네 삶에서 사람이 가진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서울특집’에서 젊은 시절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한없는 그리움을 눈물로 보여주던 그가 느낀 그 감정은, 아마도 지금 고인이 된 그를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마음 그대로가 아닐까. 사람의 가치란 그렇게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는 ‘1박2일’의 여행이 아닌 더 긴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렇게 긴 여행을 떠났어도 그는 우리에게 남았다. 명동성당 앞에 서서 사진을 찍은 그의 아버지가 그 곳에 가면 여전히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그가 지나갔던 많은 ‘1박2일’ 동안의 공간들 속에서 그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것이다. 그 따뜻했던 미소를 영원히.

‘고백부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란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KBS 금토드라마 <고백부부>가 갖고 있는 타임리프 설정은 어쩌면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힘겨운 현실에 부딪쳐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서로의 마음이 다치고 그래서 결국은 이혼이라는 아픈 선택을 했던 부부. 만일 그들이 과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고백부부(사진출처:KBS)'

분명 현실 걱정할 것 없는 청춘의 시절로 돌아간다는 건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있는 그들의 청춘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특히 마진주(장나라)의 엄마 고은숙(김미경)은 신장염 투석 치료를 받아오다 결국 삶을 등졌다. 그러니 영정사진으로 남은 엄마를 다시 보게 된 마진주의 마음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괜히 쳐다보다 눈물을 흘리고, 갑자기 껴안고 평소 같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속 얘기를 한다. 

장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최반도(손호준)에게도 특별해진다.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살아생전에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자신이 후회된다. 그래서 괜스레 그 집을 찾아가 선물을 놓고 오기도 하고, 곤경에 처하게 된 장모를 나서서 도와주기도 한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아서 별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새삼 소중해진다.

물론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다는 건, 지금은 죽고 못살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윤보름(한보름)과 안재우(허정민) 같은 친구의 관계가 훗날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마진주에게 접근하는 박현석(임지규) 같은 인물이 사실 얼마나 최악인가를 미리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자신들의 관계 또한 그렇게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도.

그래서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알고 있다. 함께 결혼해 살아가면서 아픈 시간들만 가득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들이 서로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가를.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서진(박아린)이라는 존재를 아예 없는 것처럼 지워버리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그리고 과거로 와보니 그 젊은 날 두 사람이 어째서 서로 끌렸던가를 새삼 느낀다. 최반도는 민서영(고보결)과 가까이 지내게 되지만 어쩐지 두 사람은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그저 오빠 동생 같은 관계처럼 보인다. 마진주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는 최반도는 스스로도 알아차린다. 자신이 그를 얼마나 마음에 두고 있는가를.

그래서 과거에서 자신만 혼자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 최반도는 마치 마진주가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없이 그를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별 특별한 날도 아닌 어느 평범한 아침이지만 최반도는 마진주가 아주 특별한 존재로 느껴진다.

현재에서 과거로, 또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을 뛰어넘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이러한 불가능한 장치들을 이용해 우리 앞에 보여주는 건 의외로 큰 울림을 준다. 너무 익숙해졌거나, 아니면 너무 가까워서 별로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그 많은 것들이 이렇게 관조적인 시각으로 그 시간들을 되돌려보면 굉장히 소중했던 시간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준다. 

이 모든 걸 겪어낸 마진주와 최반도의 눈물이 남다른 공감대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알겠는 것들. 그래서 왜 그 때 좀 더 잘 하지 못했을까 후회되는 일들. 그런 일들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는 시간들 속에 담겨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그 때로 되돌아가서라도 다시금 제대로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는 걸 이 드라마는 이들의 눈물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웃음과 눈물과 감동의 ‘아이 캔 스피크’

그는 도대체 왜 20여 년간 무려 8천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었을까. 도깨비 할매로 불리는 옥분(나문희)은 시장통에서 수선집을 하며 시장 곳곳에 문제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하나하나 구청에 민원으로 제기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 속 깊숙이 담겨져 있는 그 말은 꺼내지 못하며 살아간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상처를 입게 했던 그 말. 그래서 그가 8천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었을 때 그 마음이 느껴진다. 얼마나 그는 말하고 싶었을까.

사진출처:영화<아이 캔 스피크>

그는 시장통에서 사사건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하다못해 민재(이제훈)의 동생이 생라면을 먹고 있는 것조차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그 나이에 이제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 영어를 그토록 열심히 배우려 한다. 그래서 집안 벽 곳곳에는 영어 문장들이 적혀진 종이들이 붙어 있다. 학원도 다니며 젊은 친구들 사이에 앉아 조금 천천히 해달라고 선생님께 조른다. 결국 학원도 받아주지 않자 그는 구청에 새로 온 9급공무원 민재(이제훈)에게 영어 개인교습을 청한다. 동생이 인연이 되어 옥분을 가르치게 된 민재는 궁금하다. 왜 그가 이렇게 영어를 배우려 하는지.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옥분이라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할매를 등장시킨다. 사람들은 그가 하고 있는 많은 말들이 진짜 하고픈 말을 못해서라는 걸 잘 모른다. 그가 영어를 배우려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오해한다. 하지만 그 오해가 우리가 가진 많은 편견들에게 비롯됐다는 걸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옥분은 일제강점기에 깊은 상처를 가진 위안부 할머니다. 그 모진 고통을 겪고 돌아왔을 때 그러나 부모조차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입을 다물고 살았던 이유다.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시작하지는 않는다. 가벼운 코미디처럼 접근한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부를 보면 이 영화의 제목처럼 할머니가 영어를 배운다는 그 설정이 가진 휴먼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 할머니가 하려는 이야기가 점점 진중해지고 무게가 얹어지는 후반부로 가면 관객들로서는 그 둔중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지금껏 많은 영화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이 영화만큼 균형 있으면서도 따뜻하게 담은 영화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아이 캔 스피크>라는 제목은 뒤로 갈수록 그 의미가 확장된다. 처음에는 옥분의 끝없는 민원과 영어가 그 목적어처럼 여겨지다가 그가 평생을 숨기고 있던 그 역사의 한 대목이 될 수밖에 없는 상처가 목적어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더 나아가 그것은 그의 삶만이 아니라 꽤 많은 세상의 할 말은 있지만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픈 서민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누구나 하고픈 말을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

웃다가 뭉클해져 눈물을 흘리다가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는 이 감정의 파고는 <아이 캔 스피크>가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그 소재에만 매몰시키지 않고 보다 확장시킨 데서 나오게 되었다. 역사적 실제 사건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그분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영화는 그래서 훌륭하게 설득시킨다. 이만큼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이토록 균형 잡히게 말해주다니.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제목은 이 영화가 이런 무거운 소재들도 충분히 따뜻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 또한 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쌈마이웨이’, 송하윤의 눈물과 엄마의 피눈물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엎으고 우리 설희 앞에 다신 얼씬대지도 마러라. 그 따우 집구석에 나는 우리 딸 안 보낸다.” 이렇게 적으려던 엄마는 썼던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적는다. “주만아, 잘 지내지? 본지가 오래 되었구나. 설희가 혼자 돌잔치에 가 있다. 설희가 너를 참 많이 좋아한다. 우리 설희 그저 많이 예뻐해다오.” 본래 쓰려던 문자와 보낸 문자 사이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던 본래 쓰려던 문자는 한껏 정제되고 차분한 문자로 바뀌었다. 엄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엄마와 딸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어내는 걸까. 딸 백설희(송하윤)는 엄마가 주만(안재홍)에게 보낸 문자를 읽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날 낮 예비시댁의 백일잔치에서 종업원처럼 일하던 자신의 모습을 엄마가 봤을 거라는 걸 그녀는 단박에 알아차린다. 한쪽으로 치워져 있던 쓰레기를 엄마가 치워놓았다는 것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걸 봤을 엄마의 마음이 설희를 눈물 흘리게 한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백설희라는 청춘은 지나치게 저자세다.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고기를 잘라준다. 그녀는 6년 동안이나 남자친구 주만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 덕에 주만은 홈쇼핑 회사에 들어가 대리를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백설희는 여전히 주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그것은 그녀의 삶 전체를 저자세로 만들어버린다.

주만은 그녀에게 “네가 모자란 게 뭐가 있냐?”고 질책하며 제발 저자세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누나네 백일잔치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설희를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이나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의 그런 희생에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늘 그래왔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가 주만과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한다. 

그래도 온전히 그녀를 챙겨주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건 주만이다. 그는 집안 사람들에게 설희를 무시하지 말라고 호통치고, 설희와 결혼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아니면 자신은 결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인턴 장예진(표예진)에게 철벽을 치고, 혹여나 이를 신경 쓸 설희를 걱정한다. 

<쌈마이웨이>는 빈부 격차로 인해 태생적으로 스펙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가지지 못한 청춘들이 겪는 현실을 멜로로 엮어낸 드라마다. 하지만 그 짠내 나는 현실은 청춘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 청춘의 부모들은 그 현실 앞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된다. 백설희라는 청춘이 눈물을 흘릴 때, 그걸 바라보는 엄마는 피눈물이 흐른다. 

족발집을 하는 설희네 가게에서 족발을 자르는 남편에게 설희 엄마가 슬쩍 한 마디를 던져본다. “우리 족발집 때려치고 레스토랑이나 하나 할까?” 낮에 백일잔치에서 주만네 집 사람들이 설희네가 족발집을 한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다. 주만에게 선이 들어왔는데 그 집이 레스토랑을 한다는 이야기에 설희 엄마는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왜 그러냐는 남편의 물음에 설희 엄마는 말한다. “그냥 설희가 족발집 딸이라는 게 싫어서.” 

힘겨운 청춘들, 어째서 부모가 죄인이 되어야 할까. <쌈마이웨이>가 던지는 질문이다.

‘터널’이 연쇄살인범 잡기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

“범인 잡았으니까 이제 다 끝났네요.” “아직 안 끝났다. 우리가 범인을 왜 잡았는데. 우리가 결국 사람은 못 구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 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얘기는 해줘야지. 범인 잡았다고. 우리가 안 잊고 있었다고 말해줘야지.”

'터널(사진출처:OCN)'

OCN <터널>의 마지막 회에서 범인 목진우(김민상)가 검거되고 범행 사실을 자백했지만 박광호(최진혁)는 아직 자신들이 할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가족을 찾아 범인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일일이 형사들이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해주자 피해자 가족들은 저마다 무너져 내렸다. 거기에는 아픔과 회한이 뒤섞여진 감정 같은 것들이 엿보였다. 형사는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범인을 잡았다는 것에 죄송하다고 말했고, 피해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고마움 또한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잊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고맙습니다. 우리 누나 잊지 않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마도 <터널>이 여타의 범죄 스릴러 장르물과 확연히 달랐던 지점이 바로 이런 부분일 것이다. 보통의 스릴러 장르물들이라면 잔인한 연쇄살인범의 살해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포획하고 그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들의 추격전이 이어지다 결국 범인을 잡는 그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터널>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진짜 목적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30년의 세월 동안 범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정도로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게 됐던 분들을 잊지 않고 노력해왔다는 그것이었다. 

스릴러 장르의 명가라고 불리는 OCN이 <터널>을 통해 그 정점을 찍었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터널>은 스릴러가 그저 단순히 범인 잡는 형사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자극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담을 수 있는 스릴러 장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여타의 드라마들과 달리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타임슬립이란 메시지를 담기 위한 도구일 뿐, 재미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걸 <터널>은 보여줬다. 어째서 터널을 통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것이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시도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개연성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놀라움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간절한 마음을 담는 상징이다. 피해자 가족이라면 30년 세월 또한 어제 일처럼 잊을 수 없는 짧은 시간일 수 있으니.

또한 <터널>이 높은 완성도에 대중적인 열광까지 얻어낼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가 건드리는 우리네 대중들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통해 무수한 피해자와 가족들이 여전히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가해자를 잡거나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는 별로 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 기억조차 흐릿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터널>은 우리 안의 그 기억들을 되새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해주었다.

‘무도’ 미래예능연구소, 어째서 미래가 잘 안보였을까

이건 현 예능에 대한 고도의 비판인가 아니면 그저 안이한 기획의 결과인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새로이 시작한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은 한 공간에 11명의 피실험자들을 모아놓고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며 그들을 관찰하는 콘셉트로 시작했다. “미래의 웃음을 연구한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특별한 그 실험 상황 속에서 저마다 드러내는 본능과 속내를 관찰하는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렸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별것도 아닐 수 있는 이름 대신 사용될 1번부터 11번까지의 등번호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출연자들은 신경전을 벌였다. 그것이 향후 서열이 될 수도 있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서열을 정하기 위해 한바탕 벌인 닭싸움에서는 연합과 배신이 계속 이어졌다. 이른바 땅꼬마 유니언으로 연합한 하하, 양세형, 딘딘, 유병재가 그 연합과 배신의 주역들이었으나 그들이 급기야는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서 가만히 멍하게 서 있기만 했던 크러쉬가 1번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어진 건 피, 땀, 눈물을 모으는 미션. 이 미션에는 100만원의 참가비가 걸려 있었다. 저마다 땀을 흘리기 위해 운동을 하고 감정을 짜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역시 이어진 건 난투극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대에 땀과 눈물을 모으는 미션은 자칫 시청자들이 보기에 불편한 장면들일 수 있었다. 웃음을 위해 시도하는 미션들이었지만 그래서 억지로 짜내는 땀과 눈물은 웃음마저도 너무 억지로 짜낸 듯한 인상을 주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미션은 ‘먹방의 효과’에 대한 실험이었다. 즉 짜장면을 먹는 먹방을 보고는 짜장면 앞에서 30분을 먹지 않고 버티면 전원이 음식을 제공받는 미션이었지만, 모두가 예상했을 것처럼 이기주의가 미션을 망치고 순식간에 짜장면이 사라져버리는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그 이기주의의 주인공은 역시 누구나 쉽게 예상했을 박명수였다. 

그리고 반복된 김치찜, 라면을 두고 벌어지는 먹방 실험. 하지만 실험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 번 무너져버린 신뢰는 더 쉽게 무너졌다. 나중에는 그 뜨거운 라면을 냄비째 들고 뛰고 맨 손으로 집는 등의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장면도 이어졌다. 배정남의 반전 배신이 웃음을 주었지만 미션 자체는 그리 신선한 느낌이 없었다. 그건 결국 ‘미래예능연구’라는 포장을 했을 뿐, 또 다른 먹방처럼 느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의 첫 번째 방영분만을 두고 보면 ‘서열게임’, ‘땀, 눈물 짜내기’, ‘먹방 게임’이 그 내용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소재는 ‘미래예능’이라고 붙이기에는 너무나 과거 예능들의 반복이 아닐까. 늘 게임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는 미션들이 바로 이 서열게임이고 억지상황에 땀과 눈물 짜내기이며 먹방이 아닌가. 

물론 후반부에 어떤 반전이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과거 예능’들의 식상함을 오히려 비판하고 풍자하기 위한 밑그림이 전반부의 내용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몇 회에 나뉘어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은 그 회차분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한 내용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적어도 이번 미래예능연구소 특집의 전반부는 제목이 만들어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래예능연구소’라고 했지만 미래보다 과거의 반복이 더 많이 보였으니.

<씬스틸러> 김신영, 할머니 연기에 담긴 진심

 

예능 프로그램이 이렇게 울려도 되나. 연기자인 이한위는 마치 코미디언처럼 웃기는 반면, 웃길 것 같던 개그우먼 김신영이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울리다니. SBS <씬스틸러>에서 김신영이 하는 할머니 연기를 보던 출연자들은 그 뭉클함에 눈물을 흘렸다. 대본 없이 만들어진 즉석 연기에서 생겨난 돌발 상황이다.

 

'씬스틸러(사진출처:SBS)'

강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상황을 슬쩍 가져온 이 즉석 연기에서 김신영은 진짜 할머니에 빙의된 듯, 상대역인 이준혁을 살뜰히도 챙기는 모습이었다. 그 앞에서 여전히 수줍은 듯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힘겨웠던 젊은 날들을 회고했다. 연실 입에 붙은 듯한 죄송합니다미안합니다라는 습관적인 말 속에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그녀의 살아온 삶들의 고단함이 묻어났다.

 

이가 시원찮다며 거부하는 오돌뼈를 짓궂게도 이준혁이 씹어서 수저에 담아 건네자 김신영은 진짜 그 상황에 몰입한 듯 그걸 받아 씹었다. 그건 이준혁이 즉석 연기를 통해 그녀를 당황시키려 했던 것이지만 김신영의 스스럼없는 모습은 오히려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웃음을 기대하던 장면들은 차츰 진지해져갔고, 이준혁의 프로포즈는 이규한이 아들로 깜짝 등장해 사실은 치매를 앓는 김신영에게 수천 번 반복해왔던 것으로 드러나며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즉석연기가 끝나고 나서도 김신영은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이규한은 꼭 안아주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김신영으로 하여금 이토록 이 할머니 연기에 몰입하게 한 것일까. 그녀는 분장을 할 때 문득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이 점점 자신의 할머니의 모습과 겹쳐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연기를 통해 자신의 할머니에 더더욱 몰입하게 됐던 것. 김신영의 이 즉석연기는 연기가 흉내 내기의 차원을 넘어서 진심을 담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사실 <씬스틸러>가 연기라는 영역을 예능으로 가져올 때 먼저 떠올리게 된 건 과거 <헤이 헤이 헤이> 같은 콩트 코미디의 부활이었다. 그래서 여기 출연하는 연기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즉석 연기 상황을 통해 웃음을 전달하려는 강박이 있는 게 사실이다. 파일럿 때부터 출연했던 황석정이나 이번에 출연한 이한위도 순간적으로 던지는 애드립을 통해 웃음을 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점이 그렇다. 이건 물론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을 주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니까.

 

하지만 <씬스틸러><헤이 헤이 헤이> 같은 콩트 코미디와 다른 점은 그 연기가 단지 웃음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김신영이 보여준 것처럼 진심을 담은 즉석 연기는 웃음의 차원을 뛰어넘어 어떤 감동까지도 선사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웃음에만 포인트를 맞춤으로써 자칫 축소될 수 있던 다양한 연기의 세계를 좀 더 열어 놓을 수 있는 지점이다.

 

이미 예능 프로그램 역시 웃음에 대한 강박을 버린 지 오래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대신 다양한 재미를 추구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씬스틸러>에서 시청자들을 울리는 김신영의 연기와 시청자들을 웃기는 이한위의 연기가 동시에 보여질 수 있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 연기에 담긴 진심으로 그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 김신영. <씬스틸러>에 이만큼 고마운 존재가 있을까.

<판도라>, 결국 위기를 해결하는 건 서민들 뿐

 

영화 <판도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재난영화다. 여기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의미 속에는 이 영화가 신파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재난상황을 다룬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리네 현실을 담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스러져간 많은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사진출처:영화<판도라>

<판도라>는 영화 시작 전에 자막으로 이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허구일 뿐 특정한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걸 고지한다. 하지만 그 고지는 오히려 거꾸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허구를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네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최악의 원전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최근 경주 인근에서 벌어진 지진 때문에 오히려 더 실감 있는 허구가 되었고, 콘트롤타워의 무능함으로 국민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는 영화 속 이야기 역시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안이 의결되고 세월호 참사의 미스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짜 같은 허구로 다가온다.

 

영화는 재난영화들이 흔히 만들어가는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냉각장치가 정지되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결국 원자로의 노심까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그 숨 가쁜 과정들 속에서 영화는 청와대의 상황과 사고 현장의 상황을 병치하며 콘트롤타워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는가를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청와대에서의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는 보고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로 바뀌는 장면은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는 현장과 대비되며 관객들을 분노와 허탈감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판도라>는 이 통제 불능의 원전사고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이 나서거나 하다못해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되겠지만, <판도라>는 결코 이런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다. 지금껏 무수한 재난을 겪어온 우리네 대중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허황된 거짓말이라는 게 단박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판도라>가 그리는 건 통제 불능의 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스러져 가는 생명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원전에서 일하던 재혁(김남길)은 그 무너진 원전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료이자 선후배라는 점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결국 몇몇을 구해내지만 그 스스로도 피폭되어 쓰러져버리는 평범한 서민들.

 

그 와중에 원전을 지켜내려는 업주측은 가까이 있는 바닷물을 길어 끓어오르고 있는 원자로에 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원전을 폐기해야 하기 때문.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소장(정진영)은 울분을 터트린다. 하지만 콘트롤 타워인 대통령은 노련한 총리(이경영)에 의해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결국 원전은 2차 폭발의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판도라>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물론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표면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재난 상황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콘트롤타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판도라> 속 등장하는 총리의 모습에서 우리네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너무나 쉽다는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치 진짜 일처럼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실이 <판도라>라는 영화를 더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비극이라니.

 

결국 영화는 마지막 순간 위대한 한 서민의 희생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 마지막에 남겨져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현실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이고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이 영화의 입을 통해 전하는 외침이다. 죽음을 앞둔 재혁이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지우려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를 위해 나서는 건 결국 서민들뿐이다. 위기 상황 때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처럼.

조정석과 도경수가 <>의 신파를 살려낸 비결

 

한 마디로 말해 영화 <>은 신파다. 경기 도중 충격으로 시력을 잃은 동생과 말기 췌장암 선고로 죽어가는 형. 배다른 형제의 브로맨스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짠하다. 애증으로 시작하던 형제 관계가 차츰 애정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먹먹함으로 이어지는 그 감정의 파고를 만든 건 바로 이 신파적 설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진출처:영화<형>

하지만 이 눈물 빼는 영화가 90%를 눈물로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형 고두식 역할로 나오는 조정석과 동생 고두영 역할의 도경수는 그 신파적 눈물과 비극을 뒤집는 코미디의 밀당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들이다. 여기에 유도 국가대표 코치로 등장하는 수현 역할의 박신혜와 깨알 같은 따뜻한 웃음을 전해주는 대창 역할의 김강현은 시종일관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하고 때로는 뭉클하게 만든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의 신선함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살려내고 신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는 영화를 헤어나올 수 있게 해주는 건 배우들이다. 놀라운 건 이 영화는 온전히 조정석, 도경수, 박신혜 그리고 김강현 네 배우가 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그 중심점에 조정석이 있다. 이미 SBS <질투의 화신>을 통해, 아니 훨씬 이전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로 등장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낼 때부터 조정석은 희비극이 뒤섞인 연기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는 자신이 비극적 상황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보는 관객들을 웃기는 놀라운 재주를 가졌다. 즉 상황은 비극이지만 보는 이들은 희극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 찰리 채플린이 얘기했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 얘기가 떠오르는 배우다.

 

<>에서도 조정석은 단연 빛난다. 교도소에서 가출소된 껄렁껄렁하고 욕쟁이인 이 형이 동생을 대하는 모습은 한 마디로 까칠하면서도 인간적인 애정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장님이 된 동생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그 형의 시선은 그래서 영화 초중반을 눈물보다는 웃음을 채워 넣어준 이유다. 브로맨스의 츤데레를 보는 듯 조정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생을 툭툭 건드리며 웃기다가 어느 순간 마치 둑이 터지듯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를 보여준다.

 

도경수는 <괜찮아 사랑이야>나 영화 <카트>를 통해 보여줬던 그 진지함으로 <>이 가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적 공기를 채워준다. 조정석이 시종일관 웃음을 줄 수 있게 된 건 바로 이 도경수가 만들어내는 비극적 정조가 어떤 긴장감을 만들어 그걸 살짝 뒤트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질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은 일종의 정해진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영화를 통해 대단한 상상력이나 혹은 삶에 대한 놀라운 시각 같은 걸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감정적 위로와 위안이 절실해진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떤 따뜻한 웃음과 눈물이 주는 효용가치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정석과 도경수의 연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즐겁게 해주는 힘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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