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 마약 범죄 느와르에 숨겨놓은 우리네 삶의 풍경들

영화 <독전>은 제목처럼 독하다. 이야기가 독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독하며 그걸 연기해내는 배우들은 더더욱 독해 보인다. 한 마디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배우들, 조진웅, 故 김주혁, 류준열, 차승원, 김성령, 박해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진서연까지 모두가 소름끼치는 연기 몰입을 보여준다. 관객으로서는 그들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어떻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마약을 두고 벌어지는 느와르 영화의 전형처럼 강렬한 장면들이 관객의 시선을 온통 집중시키는 바람에 이해영 감독이 이 느와르를 통해 담아놓은 많은 종교적 뉘앙스들이 슬쩍슬쩍 뒤로 숨겨진다. 이건 <독전>이라는 영화 제목의 영문명이 조금은 엉뚱하다 싶은 ‘Believer’라는 데서도 찾아질 수 있다. 겉면은 ‘독한 전쟁’이지만 그 내면에는 ‘믿는 자’들을 내세운 삶에 대한 종교적 통찰을 숨겨놓은 듯한.

워낙 맹렬하고 독한 범죄 현장의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채워져 있는지라, 영화의 시작점과 끝점에 등장하는 눈이 하얗게 쌓인 풍광 속을 달려가는 원호(조진웅)의 모습은 어찌 보면 이 느와르를 표방한 영화에는 사족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시작점과 끝점은 영화를 다 보고나면 사족이 아니라 사실은 이 느와르 영화를 훨씬 더 확장해서 볼 수 있는 열쇠라는 걸 알게 된다. 마치 자신이 믿는 바를 끝까지 확인하기 위해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한 원호의 모습은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 단면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독전>이라는 느와르 영화에서 이런 종교적 뉘앙스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이 영화 전편에 깔려 있는 ‘이선생’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세워져 있어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이선생을 만나려 하거나 그를 사칭하거나 그를 잡으려 한다. 물론 느와르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 속에서 이선생은 거대 마약 조직을 배후에서 움직이는 ‘거물’이고 그래서 그를 만나려는 자들은 그와 거래를 하려 하거나, 그의 명성을 이용하려 하거나 혹은 그를 검거하려 한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이선생의 존재를 숨겨 놓는다. 그래서 그 가상의 존재를 두고 벌어지는 인물들의 지옥 같은 전쟁이 벌어진다. 아무도 믿지 않는 자나 그를 사칭해 권력을 쥐려는 자는 그래서 그 지옥 속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그를 잡으려 하는 자는 결국 허상만은 잡게 된다. 그나마 끝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원호만이 이선생의 실체 앞에 다가간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 이선생 앞에 선 원호는 그렇게 이선생을 좇으며 살아온 삶이 허망하다는 걸 느낀다. 그는 문득 이선생에게 묻는다. 그렇게 “살면서 행복했던 적이 있었냐”고. 마치 이선생을 잡으면 자신의 삶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지만, 막상 그 앞에 서게 되면서 그는 문득 깨닫게 된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고집스럽게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그 세상의 끝에까지 오게 됐던 것인지. 

<독전>은 제목이 말해주는 대로 그 ‘독한 전쟁’을 느와르를 즐기듯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그 느와르의 질감을 독한 핏빛으로 만들어낸 배우들의 열연은 소름끼치도록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느와르를 통해 종교적인 구원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이해영 감독의 속삭임을 들여다보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순 없다. 영화 앞과 끝을 이어주는 그 황량하고 추운 동토 속을 구도하듯 차를 몰고 나가는 원호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아른거리는 그 여운이 주는 재미를.(사진:영화'독전')

'무적자', 영웅은 있지만 본색은 없다

'무적자'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당할 적이 없는 자’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국적이 없는 자’란 뜻이다.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본색’은, 2010년 우리나라로 오는 과정에서 그 시대적 간극과 국가적인 정서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이런 변화를 모색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국적이 없는 자’란 의미의 ‘무적자’는 탈북자로서 국내에 들어와 무기밀매를 하며 살아가는 김혁(주진모)과 영춘(송승헌) 그리고 김혁의 동생 김철(김강우)을 일컫는 말이다. 이로써 ‘영웅본색’이라는 느와르는 남북문제 같은 우리식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된다.

혹자들은 이것이 흥미롭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 탈북자가 갖는 의미가 ‘영웅본색’이라는 스토리 속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이다. 이 영화가 다루어야 할 것은 형제애나 우정이 뒤섞인 액션 느와르이지 탈북자들의 애환이 아니다. 따라서 탈북자 설정은 다분히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김혁과 영춘이 부산에서 무기물매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근거가 탈북자들이 갖는 무국적자 같은 위치라면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존재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연 설명이 없다. 그저 탈북자라면 어딘지 절망적이고 호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바탕에 깔아놓고 있을 뿐이다.

김혁의 동생, 김철이 경찰이 돼서 한 조직폭력배를 심문하는 장면은 그래서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너 사람 죽여본 적 있어? 너 사람 고기 먹어본 적 있어?”하고 물으며 물론 과장이 섞인 것이겠지만 북한에서 사람 고기를 먹게 된 사연을 얘기할 때, 그 얘기에 부들부들 떠는 폭력배는 어딘지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된 것은 ‘영웅본색’이라는 느와르 장르가 사실은 실제 현실이라기보다는 과장된 이야기나 판타지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무적자’는 여기에 갑자기 현실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이것은 ‘영웅본색’에서 쌍권총이나 기관총을 마구 쏘아대고 아무리 적이 많아도 죽지 않는 소마(주윤발) 같은 인물이 하나의 장르적 재미로서 용인됐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무적자’에 등장하는 총과 유탄 발사기, 기관총이 생뚱맞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는 홍콩이라는 떨어진 공간만큼, 또 느와르 장르라는 과장이 용인되는 공간만큼 ‘영웅본색’의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받아들였지만, ‘무적자’는 그렇지 못하다. ‘무적자’에는 탈북자라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거기에 들어가 있고, 또 그것도 부산이라는 우리에게 가깝고도 친숙한 현실공간이 들어있다.

우리네 액션에 대해 세계가 주목한 것은 그것이 장르적 재미를 주면서도 꽤 현실적인 연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주먹을 주고받거나 폼 잡고 총을 쏴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막싸움 같은 액션들은 그 장면에 실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무적자’가 가진 액션은 그렇지 못하다. 홍콩 느와르의 향수를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 총기 액션과 우리네 정서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무적자’가 홍콩 느와르의 향수를 자극할만한 통쾌한 액션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우리식의 정서들(예를 들면 탈북자 문제 같은)에 천착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느와르를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로 그릴 것인지, 어정쩡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느와르를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서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기 쉽다. ‘무적자’가 결과적으로 국적 없는 작품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이 시대와 국가를 넘어선 혼종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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