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큰 울림, ‘세상에서’ 같은 리메이크 더 없을까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맛없는 된장국 먹을 때, 맛있는 된장국 먹을 때,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잘 때, 잠 깰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님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그 놈 대학갈 때, 정수 대학 졸업할 때, 설날 부침할 때, 추석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이제 떠날 것을 직감한 인희(원미경)가 남편 정철(유동근)에게 자신이 언제 보고 싶을 것 같냐고 묻자, 남편은 그렇게 하나하나 떠오르는 장면들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전부 다 아내가 그리울 것이라는 걸 말하는 것이지만, 그 그리움의 순간들은 무슨 대단한 일들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함께 해왔던 일들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르고, 앞으로는 많은 날들을 혼자 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리게 다가온다. 

다음 날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은 인희를 발견한 정철은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카메라는 그들이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벽에 붙어 있는 바다에서 가족이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집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창 밖 풍경, 나란히 놓여 있는 신발, 널어놓은 빨래들, 함께 앉아 있던 의자, 남편이 읽어주던 책, 바다에서 사진 찍던 그 날의 기억을 훑어나간다. 마치 떠나는 인희가 그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듯.

tvN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담으려 한 것이 바로 이것일 게다. 죽음에 이르러 누군가의 한 삶이라는 것이 이처럼 소박한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시한부의 삶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그 시선으로 인해 짧은 4부작임에도 큰 울림을 전해 주었다. 

사실 1996년에 만들어진 작품이고 그러니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지금의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의구심으로 다가왔던 리메이크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픈 몸에도 치매를 앓는 노모를 걱정하는 자기희생적인 주부의 면면들은 윗세대들에게는 큰 울림을 줄 수 있었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리메이크 작품이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노희경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 더더욱 간절해지는 그런 가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리메이크작으로 남은 건 4부작이라는 압축미 때문이었다. 본래 1996년도에도 MBC 창사 35주년 특집 드라마로 4부작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이지만, 그 압축적인 스토리는 리메이크작에도 한층 힘을 실어주었다. 만일 이 아름답지만 슬플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장편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해보라. 이만한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또 하나 거둔 성과는 단막극이 가진 그 짧은 형식만의 가치다. 갈수록 단막극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이 작품은 어째서 단막극이어야 더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짧은 인희의 삶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었듯이.

향후에도 이 작품처럼 거장들의 명작을 짧은 리메이크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미니시리즈나 장편이라도 단막극 형식으로 압축적인 리메이크를 통해 재탄생한다면 아마도 그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명작을 리마인드하고 단막극의 가치도 살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같은 명작 단막극 리메이크가 더 나올 수 있기를.(사진:tvN)

<비밀>, 집착을 버릴 때 더 커지는 것

 

가지려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사랑이다. <비밀>의 엔딩은 그 사랑의 진정한 비밀을 알려주면서 마무리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강유정(황정음)은 행복을 위해 아들을 놓아주었고, 그토록 조민혁(지성)을 갖기 위해 심지어 자신을 망가뜨리기까지 한 신세연(이다희)은 그를 놓아주었다. 조민혁은 사장직을 버렸고 안도훈(배수빈)도 신세연과 성공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의 과오를 모두 인정했다.

 

'비밀(사진출처:KBS)'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민혁에 대한 신세연의 집착이 그렇고, 안도훈의 성공에 대한 집착이 그러했으며, 박계옥(양희경)의 아들에 대한 집착 또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강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이 집착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받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이 집착의 고리들을 끊어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조민혁에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했고, 안도훈에게 정의를 알게 했으며, 박계옥에게는 진정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 갚으며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다.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강유정이 왜 그토록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는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죄 없는, 아니 그 죄를 비밀로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그 비밀을 드러내고 용서를 구했을 때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

 

드라마는 강유정이 법정에 선 장면으로 시작해서 안도훈이 법정에 서는 장면으로 끝난다. 억울한 강유정이 차츰 현실을 깨달아가고 그래서 결국에는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도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애초에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시작했다는 얘기다. 첫 회에 벌어진 사건에 깔린 숨겨진 이야기들이 마지막 회에 드러날 수 있는 건 이 완결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비밀>은 드라마가 참신해질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통속극에 가까운 평범한 멜로와 복수극이 될 수도 있었던 소재였지만, 그 안에 시청자가 궁금해 할 수 있는 비밀 코드를 담아냄으로써 이야기를 팽팽하게 만들었고, 그 비밀 속에 사회와 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집어넣음으로써 이야기가 통속 치정극으로 흘러가게 하지 않았다. 결국 참신한 드라마란 전혀 새로운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치밀하게 다루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로 변주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비밀>은 보여주었다.

 

또한 <비밀>은 드라마의 성패가 단순히 작가의 시청률로 만들어진 지명도나 원고료 액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시청률에 올인하면서 자기복제나 심지어 막장도 서슴지 않는 중견작가들의 세상 속에서, 신인작가의 과감한 발굴이 얼마나 드라마를 참신하게 만들어주는가를 <비밀>의 작가들을 통쾌하게도 알려주었다. 이로써 입증된 단막극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비밀>은 그래서 주제의식이 그러하듯이 가지려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만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고, 그 시청률만을 위해 이름 있는 작가들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으며, 연기가 아닌 스타성만을 앞세운 연기자를 세우려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비밀>이 가지려 했던 것은 작품의 완결성이고 그걸 통해 추구하는 대중들과의 공감대였다. 그것은 결국 <비밀>이 시청률에서도, 무명작가의 이름을 알리는 데도, 또 그동안 평가절하 되었던 연기자를 재발견하는데도 성공한 이유가 되었다.

 

이제 <비밀>은 종영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들에게 던진 질문은 끝난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스타작가와 스타배우에 힘입어 그저 시청률만 나오면 다라는 식의 드라마 제작 패턴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시청률을 위해서 자극적인 코드를 계속 복제해 사용하는 퇴행적인 드라마를 반복할 것인가. 몇몇 스타작가와 스타배우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생겨나는 드라마 제작의 양극화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비밀>은 이 많은 질문들에 이미 스스로 답을 보여주었다. 집착이 오히려 비뚤어진 결과만을 가져오듯 놓아야 산다. 이 반복되는 드라마 패턴에 대한 집착을.

<드라마스페셜>에도 보이는 양극화의 그림자

 

KBS <드라마스페셜>은 우리 드라마에 남은 유일한 단막극의 공간이다. 시청률은 낮은 편이다. 3%에서 5% 남짓. 하지만 편성시간대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낮다고 만도 할 수 없다. 일요일 밤 11시45분. 사실상 이 시간대에 드라마를 챙겨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그러니 어찌 보면 이 스페셜한 드라마들은 편성에 있어서는 홀대받고 있는 형편이다.

 

'드라마스페셜'(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드라마 스페셜>의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회당 8천만 원 남짓의 예산에서 그 절반을 뚝 떼서 회당 4천만 원의 예산으로 줄인다는 것. 이건 사실상 드라마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캐스팅을 하는 데만도 3천만 원 가까운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1억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스페셜>의 면면을 보면 그 실험성이나 작품성에서 꽤 의미 있는 성취를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번 시즌에 방영된 <불이문(KBS 우수 프로그램상 수상)> 같은 작품은 작금의 드라마 환경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화면 속에 깊은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수작이었고, <습지생태보고서(이달의 PD상 수상)>는 작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재기발랄한 연출로 보여준 좋은 작품이었다.

 

또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은 <스틸사진>은 경쟁적인 현실 속에서 이제는 젊은 날의 순수가 스틸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답답한 현실을 잘 포착한 작품이었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불륜과 죽음을 엮어놓은 문제작이었으며, <기적 같은 기적>은 불치병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소재로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괜찮은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들 작품들이 몇 배의 투자가 이뤄지는 장편 드라마들의 화려한 색깔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이 돈의 논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점(그래도 여전히 가난하지만)이 이들 드라마가 무언가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숨통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드라마들의 예산을 절반이나 삭감한다는 것은 그나마도 어려운 살림에 자존심과 뜻 하나로 버텨내고 있는 이들 드라마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행위다.

 

경제논리가 이제 이들 드라마에도 드리워지고 있는 양상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건 올해 KBS 드라마가 역대 최고치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KBS 드라마는 광고매출, 판권수출, MD상품판매, OST수입 등 올해 약 2천3백억 원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시청률이 좀 낮았던 <사랑비> 같은 작품은 해외에서 최고가의 판권수출을 이뤘고, <각시탈>처럼 해외 판매가 거의 없었던 작품은 높은 시청률로 광고 완판 수익을 올렸다는 것. 이 상황에 단막극의 예산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막극은 알다시피 눈으로 보이는 수치로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이기도 하고, 신인 연출자들은 단막극을 통해 경험을 넓혀 결국 그 성과를 장편에서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월에 방영되었던 <보통의 연애> 같은 작품은 대표적인 사례다. 비록 3%대의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연출, 대본, 연기의 삼박자를 두루 갖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김진원 PD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를 통해 그 진가를 보여주었다. 또 이 작품을 쓴 이현주 작가는 현재 <학교 2013>의 공동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논리로만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겪게 된 것은 결국 극심한 양극화다. 올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최대의 이슈로 떠오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드라마스페셜> 같은 가난한 드라마들에게 똑같이 드리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KBS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아닌가. 가난한 여건에도 다양성을 시도할 수 있는 바로 그 숨통이 있기 때문에 장편 드라마들에 새로운 동력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양극화의 양상을 드라마에서조차 확인하게 되는 이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짧은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런닝 구'

길면 되고 짧으면 안되는 것. 바로 드라마다. 심지어 50회를 훌쩍 넘기는 장편 드라마들은 50%의 시청률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단 한 편으로 끝나는 단편 드라마의 경우, 5%에서 10% 사이의 시청률을 향해 달린다. 장편 드라마가 풀코스 마라톤이라면 단편 드라마는 단거리 혹은 중장거리 달리기에 해당한다. '런닝 구'는 4부작이다. 그러니 이 사이에 낀 하프 마라톤 코스 정도는 될까?

한편에선 같은 집에서 내놓고 불륜을 저지르고, 욕망을 위해 폭력이 자행되는 지독스런 막장이, 다른 한편에선 전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월드컵이 서 있는 스타트 라인 위에 선 지독해도 착한 드라마 '런닝 구'는 극중 주인공인 구대구(백성현)를 빼닮았다. 이 드라마는 다음에 이어질 MBC의 야심작 '로드 넘버 원'의 페이스메이커다. 그래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경쟁 위에 서게 되었다.

'런닝 구'는 구대구처럼 마라톤 풀코스를 달릴 필요는 없다. 그저 30킬로까지 질주하고는 그 힘을 다음 작품에 넘겨주면 된다. '로드 넘버 원'은 그 힘을 받아서 골인점의 승리를 따낼 것이다. "너는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을 둥 살 둥 뛰어주면 그 기운 받아서 지만이는 달려 나가 메달 따고 너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있는 거잖아." 극중에서 행주(박민영)의 이 대사는 런닝 구' 같은 이 땅의 단편 혹은 중편 드라마들의 운명을 말하는 것만 같다.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단막극의 부활을 주창하며 'KBS 드라마스페셜'을 신설했다. 몇 편이 방영됐지만 각 작품마다 완성도의 차이도 있고 대중성에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건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기도 했지만 보통은 5%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단막극이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청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짧게 달리는 드라마에서 시청률을 기대하는 것은 좀체 어렵다.

그래서인지 '단막극의 부활'이라는 이 슬로건은 공영방송의 명분 정도에 그치는 느낌이다. 단막극의 부활이 기성보다는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무색하게, '드라마 스페셜'은 기성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재기발랄하고 실험적인 스토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단막극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단거리 경기를 마라톤 중계 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면 '런닝 구'라는 중편드라마는 장편들만 살아남는 세상에서 중요한 가능성을 몇 가지 보여주었다. 왜 단막극의 부활이라고 하면 늘 1회로 끝나는 단편만을 생각하는 것일까. 1회는 이미 길어진 호흡에 적응된 시청자들에게 드라마가 끝까지 달리기에는 너무나 짧아져버렸다. 이미 드라마의 스토리텔링이 점점 장편화하는 추세라면, 그 취지를 살리면서 대중성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왜 2부작이나 4부작 드라마들의 설 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4부작이라고 하더라도, '런닝 구'가 가진 성취는 50부작 이상의 막장드라마들이 거둔 것보다 훨씬 크다. 그저 그런 자극적인 설정 몇 개면 늘 승리해온 장편드라마들의 패배를 모르는 허세보다, 이 작지만 죽을 힘을 다하는 드라마의 선전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끝까지 달리고 싶다"고 말하는 구대구의 진술이 이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드라마들의 항변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SBS ‘아버지의 집’과 KBS ‘경숙이 경숙아버지’

불황이 드라마 세상에 가져온 것 역시 현실과 다르지 않다. “길면 살 것이요, 짧으면 죽을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드라마 버전으로 읽히는 우리네 단막극의 실종은 그래서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가난한 드라마, 단막극들은 이제 이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드라마 경제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힘겨운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듯,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꽤 괜찮은 선전을 한 두 가난한 드라마가 있어 주목을 끈다. 바로 SBS 2부작 ‘아버지의 집’과 KBS 4부작 ‘경숙이 경숙아버지’다.

먼저 눈을 의심하게 하는 건 이 두 가난한 드라마가 거둔 시청률이다.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13.5%, ‘아버지의 집’은 무려 19.6%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AGB 닐슨). 보통 16부작 미니시리즈에서도 높은 시청률이라 할 만한 이런 기록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짧은 단막극에서 가능했던 걸까. 먼저 이 두 작품은 여타의 장편 드라마들이 갖추고 있기 마련인 자극적인 소재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두 편의 드라마들에 대중들이 공감을 갖게 된 것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그 드라마가 전해준 메시지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1월에 방영된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가난과 전쟁이라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적인 정을 다루었다. 경숙(심은경)의 아버지인 조재수(정보석)는 집을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나도는데, 그와 악연관계에 있는 박남식(정성화)이 경숙의 집에 기거하며 경숙모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경숙의 가족들이 친 아버지인 조재수보다 가족에 헌신적인 남식을 더 따른다는 것. 결국 극단적 가난의 상황에서 조재수와 박남식의 악연이 차츰 정으로 바뀌어나가는 과정을 이 드라마는 특유의 해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또 ‘아버지의 집’은 1998년 IMF서부터 2009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연도들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불황 속에서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초상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아버지 강만호(최민수)가 스턴트맨 대역배우라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아버지가 경제의 그늘 아래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배운 것 없어 몸으로 벌어먹고 살면서도 자신의 손가락을 꼭 쥐어주는 아들을 바라보며 그 힘겨운 나날들을 버텨낸다.

하지만 그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1998년부터 2009년 간 무려 11년이 지났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다. 아들은 친엄마가 미국으로 데리고 가고, 그는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의 힘겨운 삶을 알게 되고 “이것이 전부 자기 탓”이라고 말할 때, 강만호가 “네 덕분에 살 수 있었어.”하고 말하는 장면에서 아마도 모든 아버지들은 그 진심을 읽었을 것이다. 가난해서 배운 게 없어서 오로지 온 몸으로 사랑하는 법밖에 모르는 강만호의 마음은, 불황 속에 지치고 허덕인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일 테니까.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가난한 드라마는 이처럼 그 배경 속에 불황의 풍경을 그려 넣고 있다. 그 가난 속에서도 놓지 않는 희망을 진심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함으로써 대중들과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진심은 상업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단편 혹은 중편의 이 가난한 드라마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연장에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 생태계 속에서 이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단막극들의 울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2009년 단막극이 사라진 세상 속에 남겨진 두 편의 가난한 드라마가 주는 진심이 2010년 단막극 부활의 희망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드라마시티’, 왜 살려두지 못하나

왜 짧으면 안되는 걸까. 우리네 문화 중에서 짧은 것들은 왜 대부분 퇴출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일까. 문학에 있어서 단편소설이 그렇고, 영화에 있어서 단편영화가 그렇다. ‘이 시대 마지막 단막극’, ‘단막극의 멸종’이라는 비장한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이 ‘짧은 것들’에 대한 선호를 일정부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KBS가 폐지를 결정한 단막극 ‘드라마시티’의 마지막 방송이 일주일 남짓 남겨진 가운데, 방송작가협회와 KBS PD협회의 철회 성명에 이어 노희경 강은경 이금림 박정란 주찬옥 정성주 등 드라마 작가 57인이 ‘드라마시티’를 살려내라는 성명서를 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 그것도 방송 3사를 통틀어 한 시간밖에 할애되지 않고 있는 단막극은 이들의 표현대로 멸종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리저리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드라마시티’를 폐지시키려는 이유는 한 마디로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시티’는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고, 또 광고게재를 위해 계산될 수도 없기 때문에 방송사에게는 손해다. 돈은 투입되나 이익은 창출되지 않는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익 안 되는 사업에서 발을 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KBS 스스로 자신들의 결정이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나 윤리적으로는 비합리적이라는 걸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단막극의 효용은 한 방송사의 효용보다는 사회 전체의 효용으로 봐야 한다. 단막극은 이미 코드화된 소재와 기법을 가지고 상업적으로만 치닫는 장편 드라마들의 세상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실험의 장이다. 흔히들 드라마 하는 사람들은 “남의 돈 갖다가 예술 하려고 하지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드라마는 개인 혼자의 작품이 아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제작진들과 방송 관계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된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인 드라마들만 제작해서는 드라마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체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드라마시티’ 같은 창구를 없애버리면 새로운 피, 즉 신진 작가들이 수혈될 수 있는 곳이 사라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내는 단막극은 이런 점에서 효용성을 발휘한다. 여기서는 적어도 새로운 생각의 작가나 PD들이 예술(적어도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끝까지 단막극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사회적인 효용성을 위해서이다.

공영방송인 KBS의 입장에서 보면 단막극의 존립은 그 자체로 자신들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상업방송이 하지 않는 영역을 하고 있다는 가장 상징적인 프로그램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자면 단막극의 폐지는 오히려 손해가 될 공산이 크다. 방송사의 정체성은 몇몇 프로그램의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KBS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손익계산을 해본 결과 그들은 폐지를 선택했다. 그것은 이제 공영방송이 더 이상 지금의 방송환경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은 그 자체가 이제 공익성보다는 오락성, 상업성으로 점점 인식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점이 이 짧은 것들(단편 형태의 문화들)로 하여금 문화소비자들이 원하는 그 상업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걸까. 현재 장편 형태의 문학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들은 점점 본연의 미학에서 멀어져 스토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문학에서의 문체나, 영화에서의 영상미학, 드라마에서의 대사가 갖는 언어미학은 종종 스토리가 가진 상업성에 가려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문학으로 된 작품이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는 것은 잘 들여다보면 바로 이런 스토리가 가진 상업성에 의존한 바가 크다. 문체가 뛰어난 단편소설이 좀체 장편영화화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지만 장편들이 대부분 상업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반대에 위치한 단편들은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두 쉽게 변환이 이루어지는 장편들의 특징인 ‘스토리 지향’은 거꾸로 말하면 이들 서로 다른 장르들이 가진 고유의 미학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드라마로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멋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드라마만이 시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를테면 드라마만이 갖는 대사의 묘미 같은)’이 멋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학이나 영화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대부분 짧은 구조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짧다는 것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고 그것은 본래 그 문화만이 갖는 장점을 가장 극대화해야되는 상황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단막극 폐지가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 하나의 장르를 장르이게 하는 방법적인 틀이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 멸종이다.

우리는 ‘단막극 폐지’를 보면서 ‘또 사라지는군”하는 체념적인 말로 수동적인 반대를 한다. 몇몇 거기에 밥줄이 달려있는 사람들 - 예를 들면 작가협회 같은 - 은 극렬히 반대하지만 그것은 이 거대한 돈의 조류에 급물살을 타고 흘러가는 방송사를 비롯한 매체들 속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이것은 그냥 많은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제 ‘단막극’이라는 형식 자체가 TV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일주일에 한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의 비상업적 방송도 이제는 더 이상 묵인하지 못하는 시대인가.(이 글은 서울예대 학보에 쓴 글을 조금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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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이 주는 청량감, ‘그라운드 제로’

드라마는 꼭 길어야 맛이 아니다. 2부작 드라마 ‘그라운드 제로’는 짧아도 압축되고 잘 짜여진 스토리와 굵직한 메시지, 그리고 연기자들의 호연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라운드 제로’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폭지점 혹은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를 뜻한다. 드라마가 이 용어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삶의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온 불행과 그 불행 속에서 절망하고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그라운드 제로’는 제각각 살아가던 세 남자가 부딪치게 되는 자동차 사고지점이다. 거기서 택시기사 유동선(박철민)은 갑자기 차로 달려든 김천수(김갑수)를 치게 된다. 그리고 그 택시에는 승객으로 이주현(김남진)이 있었다. 신문 사회면에서 봤다면 이 정도 기사는 단 몇 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드라마는 그들이 그라운드 제로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파고든다.

세 남자는 모두 아픔을 갖고 있다. 유동선은 1년 안에 수술을 해야 하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있고, 김천수는 뇌물수수라는 누명에 아내의 불륜사실까지 알게되면서 절망에 빠진다. 이주현은 911 테러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 사고가 터지면서 이 각자의 아픔들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드라마는 눈물의 릴레이라 할 만큼 연달아 벌어지는 슬픔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감동해서 울고, 분노해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후회가 돼서 울며, 고마워서 운다. 그리고 그 눈물이 끝날 즈음, 그들은 깊은 상처 위에 돋아난 새 살을 발견하게 된다. 김천수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자신의 몸을 기증함으로써 타인의 삶으로 생을 이어준다. 그를 통해 다시 아내가 살게된 유동선은 그를 천사라고 부르며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오른다. 이주현은 연인에 대한 아픈 기억을 털어 내고 돌아온 김소영(황보라)과 새로운 관계를 엮어간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눈물폭탄을 터뜨리고 있으면서도 신파가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 속의 눈물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혼자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즉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던 아픔과 일 대 일로 대면하면서 눈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그것은 치유의 눈물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눈물 연기를 해야하는 연기자들이다.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준 김갑수의 눈물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회한의 눈물연기를 보여준 김남진, 그리고 웃기다가 감동 주다가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박철민이란 연기자의 호연은 눈물연기의 거장들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였다.

조금 인기 있다 싶으면 연장을 해대고 인기가 없으면 조기 종영시켜 버리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환경 속에서 ‘그라운드 제로’는 그 시청률 잣대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단막극들의 필요성을 웅변해준다. 짧기에 더 짜임새 있고 짧기에 더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단막극이야말로, 느슨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 장편 드라마들 속에서 참신한 청량제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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