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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시티’, 왜 살려두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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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짧으면 안되는 걸까. 우리네 문화 중에서 짧은 것들은 왜 대부분 퇴출의 위기에 직면하는 것일까. 문학에 있어서 단편소설이 그렇고, 영화에 있어서 단편영화가 그렇다. ‘이 시대 마지막 단막극’, ‘단막극의 멸종’이라는 비장한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이 ‘짧은 것들’에 대한 선호를 일정부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KBS가 폐지를 결정한 단막극 ‘드라마시티’의 마지막 방송이 일주일 남짓 남겨진 가운데, 방송작가협회와 KBS PD협회의 철회 성명에 이어 노희경 강은경 이금림 박정란 주찬옥 정성주 등 드라마 작가 57인이 ‘드라마시티’를 살려내라는 성명서를 냈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 그것도 방송 3사를 통틀어 한 시간밖에 할애되지 않고 있는 단막극은 이들의 표현대로 멸종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리저리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드라마시티’를 폐지시키려는 이유는 한 마디로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드라마시티’는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고, 또 광고게재를 위해 계산될 수도 없기 때문에 방송사에게는 손해다. 돈은 투입되나 이익은 창출되지 않는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익 안 되는 사업에서 발을 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KBS 스스로 자신들의 결정이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나 윤리적으로는 비합리적이라는 걸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단막극의 효용은 한 방송사의 효용보다는 사회 전체의 효용으로 봐야 한다. 단막극은 이미 코드화된 소재와 기법을 가지고 상업적으로만 치닫는 장편 드라마들의 세상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실험의 장이다. 흔히들 드라마 하는 사람들은 “남의 돈 갖다가 예술 하려고 하지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드라마는 개인 혼자의 작품이 아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제작진들과 방송 관계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된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인 드라마들만 제작해서는 드라마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체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드라마시티’ 같은 창구를 없애버리면 새로운 피, 즉 신진 작가들이 수혈될 수 있는 곳이 사라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내는 단막극은 이런 점에서 효용성을 발휘한다. 여기서는 적어도 새로운 생각의 작가나 PD들이 예술(적어도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끝까지 단막극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사회적인 효용성을 위해서이다.

공영방송인 KBS의 입장에서 보면 단막극의 존립은 그 자체로 자신들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상업방송이 하지 않는 영역을 하고 있다는 가장 상징적인 프로그램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자면 단막극의 폐지는 오히려 손해가 될 공산이 크다. 방송사의 정체성은 몇몇 프로그램의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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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KBS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손익계산을 해본 결과 그들은 폐지를 선택했다. 그것은 이제 공영방송이 더 이상 지금의 방송환경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은 그 자체가 이제 공익성보다는 오락성, 상업성으로 점점 인식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점이 이 짧은 것들(단편 형태의 문화들)로 하여금 문화소비자들이 원하는 그 상업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걸까. 현재 장편 형태의 문학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들은 점점 본연의 미학에서 멀어져 스토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문학에서의 문체나, 영화에서의 영상미학, 드라마에서의 대사가 갖는 언어미학은 종종 스토리가 가진 상업성에 가려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

따라서 문학으로 된 작품이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되는 것은 잘 들여다보면 바로 이런 스토리가 가진 상업성에 의존한 바가 크다. 문체가 뛰어난 단편소설이 좀체 장편영화화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는 않지만 장편들이 대부분 상업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반대에 위치한 단편들은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두 쉽게 변환이 이루어지는 장편들의 특징인 ‘스토리 지향’은 거꾸로 말하면 이들 서로 다른 장르들이 가진 고유의 미학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드라마로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이야기가 멋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드라마만이 시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를테면 드라마만이 갖는 대사의 묘미 같은)’이 멋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문학이나 영화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대부분 짧은 구조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짧다는 것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말이고 그것은 본래 그 문화만이 갖는 장점을 가장 극대화해야되는 상황을 말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단막극 폐지가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 하나의 장르를 장르이게 하는 방법적인 틀이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 멸종이다.

우리는 ‘단막극 폐지’를 보면서 ‘또 사라지는군”하는 체념적인 말로 수동적인 반대를 한다. 몇몇 거기에 밥줄이 달려있는 사람들 - 예를 들면 작가협회 같은 - 은 극렬히 반대하지만 그것은 이 거대한 돈의 조류에 급물살을 타고 흘러가는 방송사를 비롯한 매체들 속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이것은 그냥 많은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제 ‘단막극’이라는 형식 자체가 TV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일주일에 한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의 비상업적 방송도 이제는 더 이상 묵인하지 못하는 시대인가.(이 글은 서울예대 학보에 쓴 글을 조금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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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이 주는 청량감, ‘그라운드 제로’

드라마는 꼭 길어야 맛이 아니다. 2부작 드라마 ‘그라운드 제로’는 짧아도 압축되고 잘 짜여진 스토리와 굵직한 메시지, 그리고 연기자들의 호연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라운드 제로’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폭지점 혹은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를 뜻한다. 드라마가 이 용어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삶의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온 불행과 그 불행 속에서 절망하고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의 ‘그라운드 제로’는 제각각 살아가던 세 남자가 부딪치게 되는 자동차 사고지점이다. 거기서 택시기사 유동선(박철민)은 갑자기 차로 달려든 김천수(김갑수)를 치게 된다. 그리고 그 택시에는 승객으로 이주현(김남진)이 있었다. 신문 사회면에서 봤다면 이 정도 기사는 단 몇 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드라마는 그들이 그라운드 제로에 오기까지의 사연을 파고든다.

세 남자는 모두 아픔을 갖고 있다. 유동선은 1년 안에 수술을 해야 하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내가 있고, 김천수는 뇌물수수라는 누명에 아내의 불륜사실까지 알게되면서 절망에 빠진다. 이주현은 911 테러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 사고가 터지면서 이 각자의 아픔들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드라마는 눈물의 릴레이라 할 만큼 연달아 벌어지는 슬픔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감동해서 울고, 분노해서 울고, 미안해서 울고, 후회가 돼서 울며, 고마워서 운다. 그리고 그 눈물이 끝날 즈음, 그들은 깊은 상처 위에 돋아난 새 살을 발견하게 된다. 김천수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자신의 몸을 기증함으로써 타인의 삶으로 생을 이어준다. 그를 통해 다시 아내가 살게된 유동선은 그를 천사라고 부르며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오른다. 이주현은 연인에 대한 아픈 기억을 털어 내고 돌아온 김소영(황보라)과 새로운 관계를 엮어간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눈물폭탄을 터뜨리고 있으면서도 신파가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 속의 눈물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혼자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이다. 즉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던 아픔과 일 대 일로 대면하면서 눈물이 솟아나기 때문에, 그것은 치유의 눈물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눈물 연기를 해야하는 연기자들이다.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준 김갑수의 눈물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회한의 눈물연기를 보여준 김남진, 그리고 웃기다가 감동 주다가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박철민이란 연기자의 호연은 눈물연기의 거장들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였다.

조금 인기 있다 싶으면 연장을 해대고 인기가 없으면 조기 종영시켜 버리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환경 속에서 ‘그라운드 제로’는 그 시청률 잣대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단막극들의 필요성을 웅변해준다. 짧기에 더 짜임새 있고 짧기에 더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단막극이야말로, 느슨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 장편 드라마들 속에서 참신한 청량제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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