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어부’, 가만있어도 재밌는 건 도대체 뭘까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걸까.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이하 도시어부)>가 새해 첫 출조로 떠난 대마도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김재원은 낚시 그 자체로도 또 방송출연에 있어서도 그리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한 마리도 낚지 못했고, 또 방송에서도 별로 말이 없어 거의 ‘묵언수행’ 수준이었던 것.

하지만 김재원의 얼굴은 ‘살인미소’라는 별명 그대로 밝은 미소가 계속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대마도의 바다낚시 포인트에서 모두가 황금배지를 차지하기 위해 고기에 대한 욕망을 드러낼 때, 한가롭게 바다를 보며 이런 곳에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했다. 마치 평론가처럼 요즘 TV를 켜면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별로 대단한 정보랄 것이 없는 <도시어부>는 그냥 쳐다보고만 있어도 좋다는 것. 

김재원이 아마도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담아 툭 던진 이 말은, 지금 현재 ‘낚시를 한다’는 그 어찌 보면 방송으로서는 단순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진짜 맛이 아닐까. 낚시에 평소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 프로그램은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된다. 1시간 반이 넘는 꽤 긴 방송분량이지만 그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알 수 없게 훅 지나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이 프로그램에는 있다.

물론 이것은 수면 위에 드러나 있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다. 즉 낚시도 수면 위에서는 그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평온하고 심지어 심심하게까지 보이지만, 실상 수면 밑에서는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물고기의 치열한 밀당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도시어부>는 그래서 그냥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이면에 담긴 낚시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감정들을 들여다보면 흥미진진하게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완도에서 힘겨운 부시리 낚시에 한 마리도 낚지 못해 낙심했던 큰 형님 이덕화의 마음을 슬쩍 들여다보면 그가 대마도에서의 새해 첫 날 낚시에 얼마나 절치부심했을까가 드러나고, 과거 이 프로그램에 나와 프로 낚시꾼으로서 굴욕을 당했던 박진철 프로가 척척 벵에돔을 낚아올릴 때 타들어갔을 마음이 보인다. 그 팽팽한 대결구도가 주는 긴장감이 있는 반면, 한 마리도 제대로 낚지 못해 끊임없이 투덜대는 이경규의 푸념을 듣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대마도 출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어쩌면 가장 존재감이 약했던 게스트 김재원이 아닐까 싶다. 낚시를 잘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낚시프로이자 방송프로들(?) 사이에 들어가서도 오히려 그 평범함 때문에 일반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러고 보면 이경규가 김재원에게 “여기 딱 맞는 게스트”라며 그 이유가 “낚시를 잘 못하는 것”이라고 한 말은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하루의 고단한 낚시를 끝내고 어느 숙소에서 벌어진 한 판 상차림에서도 김재원은 묵묵히 매운탕을 끓이는 모습만 보여줬다. 하지만 그래도 “잘 못 낚아 사랑받는 것”이라는 이경규의 말 한 마디가 게스트 김재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낚시든 방송이든 더 많이 낚고 뽑으려는 욕망이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한 동력이라면, 둘 다 못해도 그런 곳에서 도시의 복잡함을 잊고 있는 그 시간이 주는 힐링이 또 하나의 존재가치가 된다. 김재원이 보여준 이 부분은 아마도 낚시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까지 <도시어부>가 끌어들인 가장 큰 힘일 것이다.(사진:채널a)

‘나쁜 녀석들2’, 왜 박중훈이어야만 했는지 이제 알겠네

2회까지 보니 알겠다. 왜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에 박중훈이 필요했는지. 오랜 만의 드라마 출연이지만 벌써부터 이 작품은 우리가 막연히 갖고 있던 박중훈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주고 있다. 어딘지 가볍고 코믹한 캐릭터로만 여겼던 박중훈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쁜 녀석들2>에서 박중훈은 드라마 전체에 묵직한 무게감을 부여하는 그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나쁜 녀석들2>는 첫 회를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서 마주한 이명득(주진모) 검사장과 조영국(김홍파) 현성그룹 회장의 대면으로 열었다. 아마도 한 때는 나쁜 짓도 꽤 했을 법한 이명득 검사장이 ‘적폐청산’을 이야기하며 선전포고를 하자, 조영국 회장이 검찰 역시 ‘적폐’라며 전면전을 예고하면서 드라마가 시작한 것.

흥미로운 건 2회의 시작 역시 그 선술집에 마주한 이명득과 우제문(박중훈) 검사의 대면으로 열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바뀌자 적폐청산을 하려는 이명득에게 우제문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을 잘 안변하던데? 변한 척 하는 거지.”라는 그의 말투 속에는 그간 우제문이 얼마나 검찰 내 주류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었던가를 에둘러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제문에게 이명득이 조영국을 잡으라며 나선 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그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조영국의 허수아비로 세워진 서원시장 배상도(송영창)는 자신의 비리를 캐내려 하자 대놓고 검찰 내 자기 사람에게 전화를 해 이를 막으려 한다. 즉 검찰 내부 역시 조영국의 사람들이 있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이명득은 알고 있다. 그래서 우제문을 찾아온 것.

바로 이 지점이 <나쁜 녀석들2>가 그려내는 나쁜 놈들 잡는 ‘나쁜 녀석들’의 전제가 된다. 즉 우제문이 이렇게 거칠고 때론 나쁘게 보이게 된 까닭은 제대로 살려 했기 때문이다. 조영국의 사주를 거부하고 곧이곧대로 하려 했던 것이 자신의 고립을 만들었던 것. 그래서 이제 그 적폐를 청산하는 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들은 우제문과 그와 함께 하는 소외된 이들 뿐이다. 우제문은 이명득의 명령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한다. “내가 뭐 할 수 있는 일 하겠어요? 해야 될 일을 하지.”

이런 설정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우제문이라는 인물의 역할이다. 어딘지 나빠 보이지만 더 나쁜 놈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여야 하고 그래서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비뚤어진 인물로 보이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소신 있는 인물로 다가와야 하는 역할. 게다가 그는 저마다 한 가락씩 하는 ‘나쁜 녀석들’을 이끌고 가는 팀장으로서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즉 그에게 어떤 정서적 동조를 할 수 있어야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이 가능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보면 박중훈은 그 연기 내력이 만들어내는 묵직함을 제대로 드러내면서 나쁜 놈들 앞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조영국 역할을 연기하는 김홍파와 마주서거나, 또 상사지만 존경할 수는 없는 이명득 역할을 연기하는 주진모와 마주설 때 박중훈이 만들어내는 팽팽함은 이 드라마가 가진 양면적인 대결구도를 제대로 만들어낸다. 

적폐청산이 하나의 시대적 요청이 된 지금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걸 수행해내는 검찰에 대한 신뢰를 100% 보내지 못하고 있다. <나쁜 녀석들2>가 가능해진 건 바로 그 적폐의 대상들과 이를 청산해야할 검찰 사이에 존재하는 ‘소외됐던 인물들’이 오히려 하나의 희망으로 떠오르게 된 그 틈입 덕분이다. 적폐와 싸워나가며 또 내부적으로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우제문이라는 검사를 정서적으로 납득시키는 배우. 왜 박중훈이어야 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사진:OCN)

‘병원선’, 그저 오지 소재의 의학드라마 같지 않은 이유

“치료가 아니라 실험이겠지. 논문에 칸 채우고 싶어 몸살 났잖아.” 송은재(하지원)가 국내에서는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엑시투 간절제술’을 통해 직장암 말기환자 설재찬(박지일)을 수술하려고 하자 이를 막으려는 김도훈(전노민)은 비꼬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송은재는 오히려 그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다. “논문에 칸 채우는 게 뭐가 나쁩니까? 언제나 처음은 있죠. 두려워해야 하나요?”

'병원선(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병원선>의 이 대화는 마치 새로운 수술을 두고 모험이라도 시도를 해보려는 의사와 이를 위험하다고 막는 의사의 진보-보수 논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송은재가 그토록 위험한 수술을 하려는 건 환자를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실적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렇게 큰 케이스를 성공시켜 쫓겨난 서울대한병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물론 이런 속사정은 김도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환자의 생명을 걱정해서 송은재를 말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만일 그 수술을 성공이라도 하게 돼서 다시 서울대한병원으로 복귀하면 자신의 입지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겉으로는 도전이니 모험이니 생명이니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 

이런 송은재에게 곽현(강민혁) 역시 반대의사를 드러낸다. 그는 송은재에게 “선생님이 실패하면 설재찬이라는 사람이 죽는 거예요”라며 그 도전의 대상이 다름 아닌 생명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그러자 송은재는 “과학은 실패를 통해 진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곽현은 거기에 대해 “이런 비정한 진보라면 거절합니다.”라고 응수한다. 

병원에서 환자의 수술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고, 그것도 진보와 보수의 논쟁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그 실상은 저마다 ‘생존하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보며 정치권의 진보 보수 대립을 떠올리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렇게 대립할 동안 이제 죽을 지도 모를 누워 있는 환자는 어쩌면 그들의 생존 게임 아래 방치된 국민들이라는 느낌마저 들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송은재가 왜 이렇게 실적에 목숨을 걸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권력 시스템의 문제다. 저들만의 공고한 권력 시스템 안에서 내부고발자가 된 그는 남다른 실력에도 불구하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애초에 실력만으로 온전히 자신을 세울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역시 김도훈의 밑에서 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도무지 환자의 생명을 두고 진실을 덮을 수 없었던 그의 마지막 양심이 그를 이런 변방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서울대한병원이라는 권력시스템은 우리네 사회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그 권력 구조를 더 명쾌히 보려면 거기에 ‘여성’이라는 관점 하나를 더 집어 넣어보면 쉬워진다. 송은재는 그 남성성의 공고한 권력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에서 저 스스로도 남성성의 작동방식대로 살려하다 어느 날 엄마의 죽음을 통해 최후로 남은 여성성의 한 자락이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래서 밀려나는 캐릭터라고도 읽을 수 있다. 

반면 이 섬마을을 다니는 오지의 병원선이 가진 시스템은 이런 남성성의 권력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눈앞에 촌각을 다투는 환자가 있는 것이고 그들이 하나하나 소중한 생명이며 자신은 다름 아닌 그 생명을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행위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저 남성성의 권력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서울대한병원이 생명을 소외시키고 있다면 이 병원선은 그 소외된 생명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여성성의 공간이다. 

<병원선>이 가진 대결구도는 그래서 단지 송은재와 김도훈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이 서울대한병원의 시스템과 병원선의 시스템 사이의 대결이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결이기도 하다. 송은재는 그 중간에 서 있다. 다시금 실적을 통해 그 권력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곳에 남아 생명을 돌보는 의사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선택 하나에 따라 환자가 대상이 되느냐 아니면 목적 그 자체가 되느냐의 차이가 생긴다. 

진보 보수 논쟁을 하면서도 정작 국민이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그 남성성이 지배하는 권력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실적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네 현대인들에게 <병원선>의 이야기가 낯선 오지에서 벌어지는 의학드라마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검경과 언론의 ‘조작’, 진실에 다가가려는 역발상

여론조작. 사실 이 만큼 우리네 대중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건 없다. 그 여론조작에 관여하는 건 검찰과 경찰 그리고 거대 언론이다. 이들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조하며 권력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사건을 조작한다. 검찰이 밑그림을 그리면 경찰은 행동하고 거대 언론은 그럴 듯한 소설(?)로 여론을 조작한다. 이런 일이 과연 현실에 있을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은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가 가끔씩 실제로 벌어지기도 한다. SBS 월화드라마 <조작>이라는 드라마가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리는 건 그래서 이러한 현실이 만들어낸 갈증 때문이다. 

'조작(사진출처:SBS)'

<조작>의 맨 꼭대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언론 대한일보의 구태원(문성근)은 현재까지 이 적폐 시스템의 머리 격이다. 구태를 상징하는 이 인물은 권위 있는 언론인 척 하면서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호도한다. 여론조작을 위해 검찰을 마치 제 수하 부리듯 좌지우지한다. 임지태(박원상) 검사 같은 인물은 대한일보의 뒤를 봐주면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한다. 그는 자신들이 충실한 개라고 말하며 짖으라면 짖고 덮으라면 덮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고 말한다. 한편 전찬수(정만식) 같은 부패경찰 역시 구태원의 수족이 되어 여론조작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런 그림은 우리가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것들이다. 적폐세력이라고 자주 등장하는 부패한 검찰과 경찰 그리고 언론의 공조는 이미 <내부자들> 같은 영화를 통해 많은 대중들의 공분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래서 <조작>이 그리고 있는 현실이 특별할 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적폐세력들과 대적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그것은 저들이 하는 방식의 역공조를 통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일보의 구태원이 있다면 그에 대적하는 인물로 스스로를 기레기라 자청하며 오히려 그런 변칙적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해가는 애국신문의 한무영(남궁민)과 바보행세를 하며 대한일보의 스플래시팀을 부활시키고 그래서 마지막 반전을 도모하는 이석민(유준상) 기자 있고, 임지태 같은 부패 검사가 있다면 그가 덮으라는 진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파헤치려는 권소라(엄지원) 같은 검사가 있다. 전찬수 같은 행동대원격의 부패경찰이 있다면 그와 대적하는 양추성(최귀화) 같은 애국신문을 돕는 의리파 깡패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저들과 대적하기 위한 역공조 팀을 이룬다. 영세하지만 진실을 위해 할 짓 안할 짓 다 하며 파헤치는 한무영과 애국신문이 권소라 검사 같은 인물과 공조하며 저들의 커넥션과 싸워나가는 이야기는 같은 방식을 통한 대결이라는 점에서 흥미진진해진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대적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역공조는 어떤 공감대를 갖게 만든다. 

그 끝에 서 있는 건 결국 대중들이다. 부패 언론에 의해 호도되는 진실이 여론을 조작하는 그 흐름이 있다면, 그 흐름과 맞서 그 여론 조작의 실체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그 사이에서 대중들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태원이 말하는 대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여론 전쟁이라는 표현은 이 드라마를 가장 잘 설명하는 대목이다. 

조금 뻔할 수 있는 현실적 문제의식을 가져왔지만 <조작>이 흥미로워지는 대목은 바로 그 문제의식과 맞서는 방식으로서 저들의 방식을 정반대 방향으로 활용한다는 그 지점이다. 부패한 검경과 언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인 조직에서 소외된 검사와 기자 그리고 기레기 언론의 공조. 물론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런 판타지적 구도만으로도 흥미롭게 응원의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네 비뚤어진 현실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뜻이니까.

품위녀’, 팽팽해진 김희선과 김선아의 대결이 말해주는 것

그저 잘 포장된 불륜극이다? 글쎄.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가 2회 동안 보여준 건 강남 부유층 집안사람들의 막장에 가까운 내밀한 삶의 이야기다. 남편이 딸의 미술선생과 바람나는 줄도 모르고 그 선생의 작품을 후원하는 우아진(김희선), 남편을 성형외과 원장으로 두어 남부러울 것 없는 유한마담으로 살아가지만 그 남편이 그녀 바로 옆에 있는 오경희(정다혜)와 내연관계라는 사실을 모르는 차기옥(유서진). 대담하게도 남편의 레지던스홀에서 바람을 피우다 직원에게 들킨 김효주(이희진)과 그녀의 불륜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듯한 그녀의 남편 서문탁(김법래).... 겉으로 보면 품위 있는 그녀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살은 불륜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이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그래서 마치 <품위있는 그녀>는 그 부유층의 불륜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아진의 집으로 안태동 회장(김용건)의 간병인으로 들어온 박복자(김선아)가 이들과 만들어내는 팽팽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어딘지 어수룩한 모습으로 사투리를 쓰며 회장의 간병에 마음을 다하겠다며 이 집안으로 들어온 박복자는 이상한 낌새를 차린 첫째 며느리 박주미(서정연)가 그녀를 내보내려하자 발톱을 드러낸다. 온몸으로(?) 안회장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박복자가 오히려 집안에서 왕따인 박주미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보다 그녀가 “먼저 쫓겨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논다. 결국 박복자가 안회장과 한 침대에서 자는 모습을 본 박주미와 우아진은 경악했다. 

<품위있는 그녀>가 쫄깃해진 건 바로 이 박복자와 우아진 사이에 만들어진 대결구도 때문이다. 이 안회장의 집안에서 실세로 자리해 오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우아진이다. 첫째 며느리가 남편의 잘못으로 안회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채 왕따 당하고 있는 사이, 우아진이 사실상 집안의 대소사를 선택해나가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녀가 간병인으로 들인 박복자로 인해 이런 권력구도에 변화가 생기게 됐다. 박복자가 이 집안의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이틀은 작은 사모님의 집을 청소하라고 시킨 것에 대해 우아진이 그런 결정은 모두 자신과 첫째 며느리에게 묻고 해야 한다며 선을 긋는 장면은 그래서 향후 이 드라마의 전개에 대한 복선을 담고 있다. 안회장의 마음을 얻은 박복자가 이 집안의 실세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 

<품위있는 그녀>가 그저 불륜극에 머물지 않고 어떤 사회극의 느낌을 담게 된 건 바로 이 대결구도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안회장의 이 집안이 보여주는 권력구도나 계급체계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그대로 축소해 보여준다. 돈줄을 쥐고 있는 자가 왕처럼 군림하고 자본의 힘에 의해 주인과 하녀 같은 봉건적인 권력구도가 형성되어 있는 집안. 드라마의 시작점에 박복자가 태생으로 결정되는 자신의 삶을 벗어나 그녀들 같은 ‘품위 있는 삶(?)’을 살고픈 욕망을 내레이션으로 말하는 대목은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빈부와 그로인해 결정되는 삶의 양태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박복자의 목숨 따위도 중요치 않게 여기는 폭주와 투쟁(?)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빈부로 고착된 틀을 넘어서려는 안간힘처럼 그려진다. 안회장에게서 선물 받은 고가의 명품백을 받고 백화점 화장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에서는, 그래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탔지만 그렇게밖에 자신을 던져야 비로소 백 하나 정도를 얻을 수 있는 그녀의 처지가 온전히 느껴진다. 이름조차 ‘박복자’가 아닌가. 박복한 사람.

그녀의 폭주는 그래서 단지 개인적인 욕망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놓여진 거대한 장벽을 어떻게든 뛰어넘으려는 안간힘. 그리고 그녀의 시선으로 다가오는 장벽 저편의 품위를 가장한 위선적인 삶들에 대한 폭로. 물론 그 첫 장면에 그녀가 무참히 살해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이 욕망의 끝이 비극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박복자의 대결구도가 마치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귓속말’, 이들의 폭주가 보여주는 통쾌함과 씁쓸함

“법대로 살 수 없어 사는 법을 배웠죠.” 이동준(이상윤)이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던진 이 말은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긴장을 늦추고 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없는 대결구도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또한 끝없이 새로운 판이 그 때마다 짜지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다시 내일의 적이 된다. 

'귓속말(사진출처:SBS)'

이들이 대립하는 가장 큰 골격은 로펌 태백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최일환과 보국산업 강유택(김홍파)의 패권다툼이다. 하지만 이 대결구도 속에 틀어 앉은 또 하나의 사건이 방산비리다. 보국산업과 태백이 얽혀 있는 이 비리를 캐던 기자가 최일환의 딸 최수연의 사주로 인해 살해당하고 그녀의 연인인 강정일(권율) 역시 그 살해에 동조한다. 그리고 살인범으로 대신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 신창호(강신일)가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여기에 판사였던 이동준은 최일환의 위협에 못 이겨 신창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잘못된 판결을 내게 된다. 

비리 기업이 있고 그 비리에 동조하고 있는 로펌이 있으며 그걸 취재하다 죽음을 맞이한 기자가 있다. 그 기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딸 신영주가 나선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관계들은 사건과 비리와 권력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은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연인 관계보다도 더 앞서있다. 

최일환은 태백을 집어 삼키려는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과 맞서기 위해 딸 최수연(박세영)이 사랑하는 강회장의 아들 강정일(권율)을 밀어내고 대신 이동준과 정략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최일환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이 딸이다. 강정일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딸은 모든 죄를 자신이 내린 것이라고 증언하라며 오히려 아버지 최일환을 겁박한다. 

이런 상황은 강정일과 강유택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강유택은 아들 강정일을 태백에 심어놓고 결국 그 태백을 집어삼킬 야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강정일을 밀어내려는 최일환의 공격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아들이 최일환의 딸 최수연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은 탐탁찮은 일이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강정일을 직접 도와주지 않고 대신 그에게 최수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라고 제안한다. 

가족도 믿지 못하는 얄팍한 인간적 관계인데다, 법이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귓속말>의 세계는 그래서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법 역시 정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귓속말>이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냉혹한 세계가 거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경수 작가가 <황금의 제국>이나 <펀치>를 통해 지금껏 그려온 권력자들의 세상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흥미진진함이고 속 시원함이며 동시에 씁쓸함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세계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고, 한껏 몰렸던 누군가가 하나의 키를 새롭게 쥐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나 이 싸움판을 보게 되면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법 정의와는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귓속말>은 법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는 법에만 능숙한 이들의 대결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풍자적 관점 또한 들어 있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들인가.

‘귓속말’ 권력게임, 이것이 바로 박경수표 드라마의 맛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이 드디어 본 매력을 드러냈다. 사실 3회까지 <귓속말>의 전개는 빠르긴 했지만 너무 많은 인물들과 상황들이 동시에 보여지면서 혼돈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던 건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이렇게 된 건 드라마를 사실상 이끌어가는 이동준(이상윤)이 너무 상황에 질질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귓속말(사진출처:SBS)'

하지만 4회는 <귓속말>에 드리워졌던 이런 불안감과 답답함을 단번에 지워내기에 충분한 긴박한 이야기 전개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된 건 역시 이동준이 반격을 시작하게 되면서 생겨난 확실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3회 마지막에 강정일(권율)이 친 덫에 걸려 마약 상습복용자로 입건될 위기에 처했던 이동준은 신영주(이보영)의 도움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한 후 강정일과 그와 내연관계인 그의 아내 최수연(박세영)에게 통쾌한 일격을 가했다. 

<귓속말>의 이야기가 쫄깃하게 된 건 이처럼 이동준을 둘러싸고 신영주, 강정일, 최수연 그리고 장인인 태백의 대표인 최일환(김갑수)과 권력 게임 속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치고 박는 반전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역시 박경수 작가는 <펀치>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권력 시스템 안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치고 박는 전개를 그려나갈 때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맛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쫄깃함은 사실 태백의 대표인 최일환과, 부모 대부터 주인과 하인으로 이어졌던 악연을 가진 강유택(김홍파) 사이의 로펌 태백을 둘러싼 경영권 싸움에서 비롯된다. 강유택은 자신의 아들 강정일이 태백을 먹어치우기를 원하지만 최일환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딸 최수연이 능력이 부족해 태백을 이어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최일환은 촉망받던 판사 이동준을 사위로 들여 그걸 막아내려 한다. 

최일환과 강유택 그리고 이동준과 강정일의 선명한 대결구도가 드러나면서 <귓속말>의 권력 게임은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권력을 쥐지 않으면 권력에 의해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살벌한 게임은 시청자들에게는 한 번씩 치고 맞을 때마다 쫄깃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일종의 싸움 구경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싸움이 아니고 권력과 관계되어 있으며 그 권력의 연원이 과거 주인과 종 사이의 계급관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워진다.

그러고 보면 지난 3회는 이러한 본격적인 전개를 위한 밑그림이었다는 게 명확해진다. 이동준의 싸움은 그들 사이에서는 권력 투쟁이지만 신영주의 입장에서 보면 덮여진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되돌리는 일이 된다. 그래서 신영주가 이동준에게 말하듯 이 싸움의 끝에 진실이 밝혀지면 자신과 가족들은 다시 그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이동준은 태백의 주인이 될 것이라며 갈수록 혼탁해질 세상에 혀를 차는 대목은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메시지와 재미 부분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드라마적 재미는 권력 투쟁의 밀고 당기는 게임에서 나올 것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미는 신영주가 말하는 ‘쓸쓸하지만 그래도 추구되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문제에서 찾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수표 드라마가 늘 쫄깃한 재미와 함께 동시에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를 파헤쳐 들어가는 그 지적인 의미들을 보여줬던 그 연장선 안에 이 작품 역시 서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 되어야 할 절대적인 캐릭터가 바로 이동준이다. 이동준은 권력 게임의 냉철한 대응을 통해 재미를 주면서도 동시에 신영주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나 진실에 대한 고민들을 찾는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욕망의 화신인 아버지 이호범(김창완)과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정미경(김서라)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드디어 그 이동준이 깨어났고 따라서 <귓속말>은 이제 본격적인 드라마의 맛을 내기 시작했다.

‘화랑’과 ‘미씽나인’, 어째서 소외됐을까

지상파 방송3사의 드라마 경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애초에 기대작이었던 작품은 의외의 실망감을 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은 갑자기 주목받는다. 어째서 이런 배반과 반전이 생겨난 걸까. 

'화랑(사진출처:KBS)'

월화드라마는 애초에 KBS <화랑>이 확실한 주도권을 가질 것처럼 여겨진 바 있다. 100% 사전 제작되어 중국 한류를 넘보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의 화랑들을 미소년들이나 아이돌처럼 해석하기도 하고, 당대의 골품제도를 현재의 금수저 흙수저라는 청춘들의 현실로 그려낸 것도 기대를 자아내게 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시청자들의 반응은 갈수록 미지근해지고 있다.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가 자꾸만 멜로 쪽으로 기울고 무엇보다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간절한 이야기의 극적 구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화랑>이 주춤하는 동안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펄펄 날아 시청률 수위를 차지해버렸다. 

여기에 같은 시간대 새로 시작한 MBC <역적>이 호평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화랑>에 대한 화제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피고인>과 <역적>의 대결처럼 보이는 월화드라마의 구도 속에서 <화랑>은 소외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 것. 

이런 흐름은 수목드라마 경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애초에는 SBS <사임당, 빛의 일기>의 독주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KBS <김과장>이 시청률을 앞지르는 놀라운 반전을 기록했다. 물론 <사임당>이 계속 이 흐름에 끌려갈지는 알 수 없다. 향후에도 <김과장>과 <사임당>의 대결구도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MBC <미씽나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고 있다. 애초에 MBC는 <미씽나인>이라는 본격 생존 장르물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네 드라마로서는 새로운 장르의 시도로서 그 자체로도 어떤 가치가 있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인도 생존기라는 낯선 이야기가 마니아적인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되었다. 여기에 <사임당>과 <김과장>의 대결구도라는 악재까지 끼어들게 된 것이다. 

요즘은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뀌는 걸 발견하곤 한다. 과거에는 드라마가 첫 회에 어느 정도 시청률을 내면 그 흐름이 유지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첫 회에 모든 걸 쏟아 붓는 경향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제 아무리 재밌고 기대를 하게 했던 작품도 몇 회가 지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면 가차 없이 채널이 돌아간다. 

유명 배우가 캐스팅 됐건,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했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국 관건이 되는 건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임당>을 이긴 <김과장>이나 <화랑>을 눌러버린 <피고인>이나 <역적>을 보면 확실히 지금의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만큼 보는 눈이 높아져 있다는 것. 

안타깝게도 <화랑>과 <미씽나인>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타 방송사들의 대결구도 속에서 소외되는 양상을 보이게 됐다. 하지만 이 또한 끝이 아니라는 건 지금의 시청자들의 조변석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제든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끌어 오기만 한다면 반전은 가능하다. 물론 한 번 꺾인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피고인’, 다소 과한 설정도 지성과 엄기준의 연기라면

깨어보니 기억이 지워진 채 사형수가 되어 있는 검사. 자신의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 행세하는 살인자. 사실 SBS 새 월화드라마 <피고인>의 설정은 다소 과한 면이 있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강력부 검사가 사형수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나 그렇게 벌써 감옥에서 4개월이 지나버렸지만 여전히 자신이 사형수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한 명은 사업가지만 다른 한 명은 살인자인 쌍둥이 형제 설정도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극화된 면이 더 강하다. 폭행으로 사경을 헤매는 여자의 가해자로 쌍둥이 동생 차민호(엄기준)는 검사 박정우(지성)에 의해 쫓기게 되자 형 차선우를 때려눕히고 베란다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그리고 형 행세를 하며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가 형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형수에게 그녀의 아이가 형의 자식이 아니라는 약점을 폭로하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사실 제 아무리 쌍둥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업가와 살인자가 뒤바뀌는 설정이 쉽게 용인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모만 같다고 해서 모든 존재의 증명이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문 조사 하나만 해도 금세 들통 날 일이다. 하지만 <피고인>은 그런 디테일한 문제들은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사건들을 밀어붙이는 쪽을 선택한다. 

첫 회에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는 최근 드라마들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분명 스토리의 설정이 과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지성과 엄기준이 보여준 연기대결에 가까운 절절한 연기 덕분이다. 사실상 지성이나 엄기준 모두 1인2역을 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성은 잘 나가던 강력부 검사에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한 순간에 사형수가 되어버린 그 절망감을 연기한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는지도 그는 전혀 가늠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사형수가 된 이유가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것이란다. 지성은 이 천상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박정우라는 인물의 처절함을 특유의 ‘미친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어떤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으로 집으로부터 멀리까지 오게 된 박정우가 다시금 집으로 돌아가는 그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너무 다른 쌍둥이 역할을 1인2역으로 해내야 하는 엄기준 역시 만만찮은 배역을 맡았다. 특히 형을 죽인 동생 차민호 역할은 보는 이들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첫 회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베란다에서 떨어뜨렸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병원까지 실려 온 형이 동생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다 결국 죽는 순간, 웃으며 오열하는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물론 <피고인>이 하려는 이야기는 그저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극적인 상황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결국 진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고 그 과정은 정의를 구현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한 박정우가 처한 상황, 즉 4개월 기억의 공백은 그걸 채워나가며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들을 훨씬 더 긴박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보인다. 

첫 회이기 때문에 다소 과한 설정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가 어떤 힘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연기자들 덕분이다. 그리고 이런 대결구도는 향후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 이 두 연기자들의 연기대결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해질 것으로 보인다.

달라지고 있는 드라마 트렌드, 로맨틱하거나 발칙하거나

 

KBS <함부로 애틋하게>가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100% 사전 제작에 김우빈, 수지 주연, 스타작가인 이경희 작가가 참여하는 것으로 KBS 측도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100% 사전 제작은 오히려 작품을 중도에서라도 수정할 수 없는 한계로 드러났고, 김우빈과 수지라는 최고의 캐스팅은 그럼에도 안 좋은 결과라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너무 옛날 드라마 같은 설정들과 코드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물론 <함부로 애틋하게>가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주제의식이 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젊은 청춘들의 한판 대결구도가 이경희 작가 특유의 절절한 멜로로 연결됐다는 건 작품의 완결성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코드들이나 정서와 이 드라마가 너무나 달랐다는 점이다. 성패는 결국 거기서 비롯됐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방영될 때 등장한 경쟁작들을 보면 이 사전제작 드라마가 지금의 대중정서에 어떤 한계를 갖고 있었는가가 명확히 드러난다. 먼저 <W>를 보라.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지상파에는 어울리지 않는 드라마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만화적이고 나아가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 시한부 설정만으로도 마지막 새드 엔딩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도다.

 

<함부로 애틋하게>KBS라는 그래도 보수적 시청자들이 존재하는 채널에서 방영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호응이 없었다는 건 지금의 시청자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함부로 애틋하게><W>가 가진 그 발칙한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야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의 결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이 열광할만한 도발적이고 발랄한 상상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SBS <질투의 화신>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 <함부로 애틋하게>가 눈물 가득한 비극적 정조를 끊임없이 보여줬던 것과는 사뭇 다른 유쾌하고 웃음이 빵빵 터지는 전개를 보여준다. 가슴에 집착하는 여자 주인공과, 유방암에 걸린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들이 한 병실에서 만들어가는 상황들은 웬만한 코미디보다 훨씬 더 우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가볍기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질투의 화신>은 지독한 현실을 담아내기도 하고, 또 가족의 해체와 한 가장의 죽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비극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비극과 함께 존재하는 희극적인 면들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인물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면 눈물 날 정도로 가슴이 아프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 상황은 눈물 날 정도로 웃기는 희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함부로 애틋하게><질투의 화신>이 현실을 다루는 방식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무겁고 어떤 면에서는 비장함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접근방식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호응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드라마 한 편조차 잠시 간의 휴식이나 위안으로 기능하길 바랄 정도로 지금의 시청자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든 현실을 힘들게 드라마 속에서조차 보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작품이 보여준 결과들은 지금의 시청자들이 적어도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발칙하거나 아니면 로맨틱하거나. 발칙한 상상력을 끝없이 질주해나간 <W>, 비극성조차 웃음의 코드로서 전하는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 트렌드 속에서 <함부로 애틋하게>는 사전제작이라는 족쇄에 묶여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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