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왕 김탁구> 떠오르는 <국수의 신> 성공할 수 있을까

 

KBS <태양의 후예>가 만들어낸 후폭풍은 어마어마하다. 본방이 나갈 때도 30% 시청률을 훌쩍 넘기는 기적 같은 일을 만들었고, 심지어 후속으로 나간 스페셜 방송이 타 방송사의 드라마들을 시청률에서 압도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KBS 드라마국은 이런 <태양의 후예>가 거둔 결과에 마냥 좋아하기만 했을까.

 


'마스터-국수의 신(사진출처:KBS)'

물론 기뻐할 일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후속 드라마에 대한 고민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부담감을 고스란히 떠안고 이제 방영될 드라마는 <마스터국수의 신(이하 국수의 신)>이다. 그러니 이 첫 방에 시선에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과연 <국수의 신><태양의 후예>의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KBS 드라마가 오랜만에 잡은 승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예고편과 기획의도 그리고 이야기소재와 인물 설정 등만으로 모든 걸 예단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국수의 신><태양의 후예>와는 사뭇 다른 드라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태양의 후예>가 훨씬 세련된 느낌의 트렌디한 드라마였다면, <국수의 신>의 설정들은 사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것들이다.

 

<국수의 신>을 짧게 설명한 소개란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복수를 위해 국수의 신이 되려는 주인공 무명이의 가슴 뛰는 성장기이자 국수로 이어진 사람들과의 슬픈 연대기로 밑바닥에서부터 면의 장인이 되기까지 흥미진진한 성공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 어디서 많이 봤던 구도가 아닌가. 그것은 다름 아닌 2010년에 방영되어 무려 49.3%(닐슨 코리아)라는 최고시청률을 냈던 <제빵왕 김탁구>.

 

물론 <국수의 신> 제작진측은 <제빵왕 김탁구>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복수극과 성장드라마가 공존하고 음식 장인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만일 경연이라는 소재까지 들어가게 된다면 그건 사실상 빵이라는 소재를 국수로 바꾼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국수의 신>은 동명의 박인권 만화가 그 원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장르적 특징과 설정들이 유사하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이 높았던 건 이 드라마의 이야기 패턴들이 중장년들에게 익숙했고 동시에 젊은 세대들에게는 경연이라는 오디션 틀이 흥미롭게 다가왔었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복수극같은 코드들이 들어가 있었고, 권선징악의 단순해 보여도 강력한 극적 장치도 빠지지 않았다. 여기에 전광렬, 전인화 같은 중견 배우들과 윤시윤, 주원 같은 젊은 배우들의 조화로운 열연도 한 몫을 차지했다.

 

<국수의 신> 역시 조재현 같은 믿고 보는 중견과 천정명 같은 젊은 배우의 조합이 기대되는 대목이고, 무엇보다 <야왕>, <대물>, <쩐의 전쟁> 등을 히트시킨 박인권 화백의 원작이라는 점이 신뢰가 가는 지점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와 너무나 다른 작품이 후속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은 <국수의 신>의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태양의 후예> 열광했던 세련되고 트렌디한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전혀 색깔이 다른 <국수의 신>을 이어서 볼 것인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첫 방이 모든 걸 드러내줄 것으로 보인다. <태양의 후예>가 만들어놓은 부담감을 과연 <국수의 신>은 넘어설 수 있을까.

<내연애>가 그저 그런 멜로라고? 실험작이다

 

신하균이 이처럼 달달했던 적이 있었나. 과거 신하균이 했던 작품들 속 인물들을 보면 어딘지 신경쇠약 일보직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이미지는 그래서 아마도 하균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강렬했던 <브레인>의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일 게다. 그런 신하균이 눈웃음을 살살 치고 심지어 애교를 떤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 의원을 연기하는 신하균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물론 초반에는 예전 신하균의 이미지 그대로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연애의 모든 것'(사진출처:SBS)

반면 이민정은 신하균과는 정반대의 이미지 변신이다. 늘 풋풋한 사랑의 아이콘이었던 이민정은 이 드라마 속 노민영 의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 붓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국당, 민우당, 녹색진보당이 룸싸롱에서 술판을 벌이고 밀실회의를 하는 광경을 보고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에 그녀는 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일갈한다. “애국이 국어사전에서 썩어 빠지겠다 이 개자식들아! 이러니까 국민들이 정치가 정치인들이 국민 뜯어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연기변신을 하고 있는 건 신하균과 이민정만이 아니다. 김수영 의원의 수석보좌관 맹주호 역할을 연기하는 장광이나 김의원의 비서 김상수 역할을 연기하는 진태현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강렬한 악역을 주로 해왔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보다 더 웃길 수 없고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다. 신하균과 진태현 또 신하균과 장광의 연기 합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만큼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간 우리가 생각해왔던 정치라는 소재가 가진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치만큼 대중들에게 첨예하고 무겁고 심지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실상 그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도 결국 개인으로 돌아오면 우리와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국가나 정당을 위한 선택과 소신 같은 공적인 결정은 그래서 누구나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 사적인 연애가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수영 의원과 노민영 의원의 연애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은 그래서 대단히 신선한 화학적 실험이다. 정치가 가진 무거움과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가벼움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존재가 연애하는 사적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이 낮은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층과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시청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물>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빗대 대중들이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격 정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줌마의 정치인 성장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고, 정치 역학보다는 대중정서에 더 어필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사반장>이 수사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80% 범죄자가 된 사연을 소개하고는 나머지 20% 그 범죄자의 등을 최불암이 두드려주는 <수사반장>은 인간극장이자 휴먼드라마일뿐이다. 즉 우리네 드라마의 특성상 본격적으로 정치 역학을 소재로 활용해 성공한 드라마는 많지 않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 위에 멜로라는 사적인 문제를 얹어 놓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저 그런 멜로가 아니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달달한 로맨스를 전면에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것이 좀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꽤 많은 것들을 뒤집는 실험작이자 문제작이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연기 변신을 통해 그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 좀 낮다 해서 이 작품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시작은 창대했다. 아니 창대함 그 이상이었다. 화려한 캐스팅은 물론이고 이게 TV 화면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현란한 영상들까지. 당연 드라마 첫 방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첫 방을 보고난 마음은 어딘지 허전하다. 아니나 다를까 첫 회에서 20%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며 대박 드라마를 예고한 작품들은 중반을 지나면서 시청률이 뚝뚝 떨어졌다. 이른바 용두사미 드라마들이 걷는 운명이다. 왜 이런 현상이 최근 들어 자꾸 창궐하는 것일까.

'아이리스'의 스핀오프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아테나'에 대한 기대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로서는 보기 힘든 완성도 높은 영상연출과 무엇보다 정우성, 차승원, 수애 같은, 영화가 왠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들의 대거 출연. 게다가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감이 높았다. 게다가 예고편에 잠깐 등장한 수애의 플라잉 니킥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우아함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온 수애의 변신. 전작 '아이리스'의 김태희에서 어떤 아쉬움을 가졌던 시청자라면 수애의 그 장면 하나가 어쩌면 이 작품이 전작을 넘어설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했을 지도 모른다.

폭발적인 액션 신들을 연거푸 선보인 첫 방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대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회까지 이 기대는 그대로 이어졌다. 007을 오마주한 정우성의 이태리 액션 장면과 잔인하지만 냉혹하게 적을 살해하는 수애의 동작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볼거리는 충분히 충족되었는데, 스토리는 좀체 보이질 않았다. 납치와 구출이라는 단순한 스토리가 반복적으로 이어졌고, 그러자 '아테나'의 즐거운 볼거리는 이미 예측 가능해진 스토리 때문에 힘을 잃어갔다. 무엇보다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김태희와 사탕 키스를 하며 만들어낸 강력한 멜로를 '아테나'에서는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이것은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중장년 여성층의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시청률은 서서히 빠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반등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만큼의 몰입은 바라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예고라도 하듯 보여준 작품이 '도망자'다. '도망자'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켜놓은 건, '추노'라는 명작을 만들어냈던 곽정환 감독과 천성일 작가의 후속작이라는 후광 때문이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달리고 뛰고 넘어지는 비와 이나영의 액션으로 이루어진 예고편은 저 '추노'에서 장 혁이 테이블을 손으로 짚고 휙 날아올라 발차기를 하는 그 장면의 기대감을 재현했다. "이거 또 대박이구나!" 했다. 하지만 첫 방을 본 후의 느낌은 "이거 겉멋이 들어도 잔뜩 들었다"는 느낌뿐이었다. 얼만큼의 투자를 받았는지, 일본과 태국과 한국을 휙휙 순간이동하며 주인공들은 그 이색적인 배경 위에서 달리기를 반복했다. 첫 회는 아무래도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배경을 바꿔가며 달리는 시퀀스가 9회까지 지속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싸늘해졌다. 아무리 볼거리라도 맥락을 찾기 어려운 스토리 속에서 계속 달리는 장면의 반복을 계속 지켜볼 시청자는 없었다. 결국 시청률은 반 토막이 났다. 9회부터 비로소 인물들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스토리를 찾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망자'는 완벽한 용두사미를 그려내며 시청자들로부터 도망쳤다.

한국 최초의 본격 정치드라마에 그것도 여성 대통령을 그리겠다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대물' 역시 마찬가지의 결과를 만들었다. 고현정이 그 대통령 역할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를 키웠던 드라마는 그러나 작가와 PD가 교체되는 등의 내홍을 겪은 후, 스토리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의 연설은 처음에는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차츰 동어반복을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작품 역시 '도망자'와 마찬가지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첫 방에서 최고 시청률을 찍은 후,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시작한 '드림하이'에서도 이런 징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배용준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것도 지금은 제2의 한류가 아이돌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제1의 한류를 이끌었던 배용준이 아이돌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그 야심찬 기획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에 실제 아이돌인 택연, 우영, 은정, 수지, 아이유가 박진영과 함께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예고편에서 택연이 자동차를 짚고 뛰어넘으면서 기대감을 높여놓은 장면이 드라마 상으로는 그다지 드라마틱한 설정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실망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연출이 스토리가 가진 극적 상황과 맞닿지 않고, 그저 멋진 장면으로만 끝날 때, 그것은 겉멋에 그칠 수 있다. 여전히 배용준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아이돌들이 설익은 연기는 불안하다. 연기력을 보완해주는 것이 캐릭터여야 하는데, '드림하이'가 그럴 만큼의 스토리를 내장하고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첫 방 시청률은 기대 이하로 10%대. 보통 드라마라면 성공적이라고 하겠지만 이건 배용준이 얼굴을 내민 드라마다.

결국 방영 전까지만 해도 한껏 기대를 하게 했던 드라마가 막상 방영되면서 서서히 실망으로 바뀌게 되는 이유는 대본 문제다. 그저 뒷심이 부족하다는 식의 그런 얘기가 아니다. 애초부터 기획은 창대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대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기획은 연출도 가져올 수 있고, 연기도 가져올 수 있지만 대본은 가져올 수 없다. 대본은 말 그대로 작가에 의해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량 있는 작가에게 충분한 투자(시간적이든 물적이든)가 이뤄진 연후에나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방영 전이나 첫 방에서 연출이나 연기력으로 어느 정도 시선을 잡아끈다고 해도, 대본의 부재로 결국 고꾸라지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포장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안에 내용물이 부실하면 이제 시청자들은 외면한다. 그만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한류 초반에 우리는 이미 이 상황을 충분히 겪었다. 몇몇 연기자가 출연한다는 전제조건만으로도 해외의 투자가 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한류의 거품은 만들어졌다. 많이 걷어내졌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 거품은 남아있다. 무엇보다 작가에 대한 투자와 시스템이 절실하다. 그것이 없다면 나올 수 있는 건 겉멋만 가득한 드라마들뿐이다. 물론 그것으로 세계 시장은 어불성설이다.

실시간 드라마? 100% 사전제작? 무엇이 해답일까
흔히들 대본의 문제에서 가장 시급한 것으로, 사전제작이 되지 않고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쪽대본의 문제를 든다. 그러면서 늘 고개를 드는 것이 100% 사전제작 드라마다. 하지만 우리네 드라마 시장 상황에서 100% 사전제작으로 성공한 드라마는 전혀 없다. '로드넘버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다 제작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해외에서는 우리네 드라마의 실시간적인 제작이 경쟁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이 쌍방향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시간 제작은 결국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안적인 것이 반 정도를 사전제작 하는 형태지만 이것도 정답은 될 수 없다. 문제는 어느 정도 제작되었는가가 아니라 이것을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는 작가 시스템이 아닐까. 혼자, 혹은 한두 명이 몇 십부작에 이르는 드라마를 온전히 감당한다는 것은 작가에게도 무리지만, 작품에도 무리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에 게재된 글입니다.)

SBS 연기대상은 왜 무리수를 썼을까

정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대물' 말이다. 시작 초기부터 작가가 교체되고 PD까지 교체되고는 갈팡질팡하더니, SBS 연기대상에서까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너무나 지나치게 훈계조인데다 심지어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말이 갖는 뉘앙스는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다. 고현정은 정말 건방진 태도로 시청자들을 훈계하려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고현정이 한 말들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쳤다는 것 이외에 그 자체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보인다. 고현정은 이번 '대물' 작업을 하면서 특히 많았던 마음고생을 당당하게 밝힌 것이고, 이런 내부적인 문제들에 대한 외부의 왜곡된 시선들에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 것이다. 작가와의 불화, 전적으로 의지하던 PD의 교체. 하지만 그래도 촬영은 계속되어야 하는 상황. 아무리 제작진의 지시를 받는 배우라고 해도 마음고생이 없었을까.

또 한 편으로는 나름대로 제작진 교체에 따라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한 비판도 했다고 보여진다. "그게 좋은 대본이든, 누가 어떻든 뭐하든, 그런 거랑 상관없이 그 순간 저희는 최선을 다하거든요."라는 말에는 대본에 대한 불만이 간접적으로 녹아있다. 나중에 참여하게된 김철규 감독에게는 "팔 벌려 환영해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했다고 밝혔고, 작가에게는 "저희가 일하면서 욕 많이 했던 우리 작가님, 진짜 당신이 미워서 욕을 했겠습니까."라는 말로 에둘러 비판하고는 "새해에는 당신에게도 행운이 꼭 갈 겁니다."라는 덕담으로 마무리했다.

사적인 이들에 대한 그녀의 고마움 표시 중에 등장한 반말은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보여진다. "미안하지만 제 개인적인 얘길 잠깐 하면,"이라는 단서를 미리 붙였고, 일일이 그네들의 이름을 지목하며 하는 말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던질 수 있는 진정성도 느껴졌다.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고현정의 수상소감은 첫째,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걸 표현했고, 둘째, 제작진과 작품에 대한 비판도 에둘러 했으며, 셋째,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공감이 아닌 반감으로 돌아온 것은.

그것은 그녀가 한 말의 내용이나 태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가 받은 연기대상이라는 상 때문이다. 과연 '대물'의 서혜림을 연기한 고현정에게 연기대상이 합당한 것일까 하는 의문. '대물'은 시청률에서도 선전하지 못한 작품이고, 그렇다고 작품성에 있어서도 완성도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고현정이 연기한 서혜림이라는 캐릭터는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도 못했다. 이것은 물론 고현정의 연기력 문제는 아니지만, 연말 연기대상에서 보는 것은 연기자의 연기력만이 아니다. 캐릭터와 연기자 사이에 만들어지는 그 조합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고현정의 연기대상 수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거론되는 연기자로 정보석이나 이범수는 그런 면에서 보면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자이언트'는 시청률도 높았던 작품이었고, 정보석과 이범수가 연기한 조필연과 이강모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렬했다. 물론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고현정의 수상소감이 빚은 구설수들은 어찌 보면 걸맞지 않은 시상이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고현정이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 정도를 받으며 이런 수상소감을 말했다면 과연 이런 구설이 나왔을까.

어떤 상은 수상자에게 아무런 영광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고현정은 할 말을 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문제였다. 고현정 스스로도 문제가 많았던 작품이라 술회하고 있는 '대물'에 대한 시상은 왜 그토록 무리하게 이루어진 걸까. 결과를 보라. SBS연기대상에 대한 신뢰도도 바닥에 떨어졌고, 제작진의 잇단 교체라는 악재 속에서 마음고생하며 열심히 연기해온 고현정 자신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지 않은가.

이 땅에서 정치 드라마는 왜 어려운가

이 땅에 정치 드라마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이언트'는 극 초반부터 특정 정치인을 찬양하는 드라마로 오인 받았다. 60부작의 대장정에 첫발부터 이러니 그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다. 하지만 뚝심의 장영철 작가와 유인식 PD는 이 위기를 스토리로 넘었다. 시대극으로서 당대의 사건들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오면서도, 특유의 이야기성으로 극중 인물들이 현실의 어떤 인물과 비교되는 것을 막았다. 즉 정치를 다루긴 했지만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드라마 특유의 허구성으로 넘어서려 했다는 점이다.

'대물' 역시 그 시작은 '자이언트'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대통령 탄핵, 잠수함 침몰, 피랍사건 등 작금의 정치 현실을 초반부터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그 현실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 현실성은 실제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서혜림(고현정)이란 인물과 박근혜씨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친박계에서 흘러나왔고, 결국 '대물'의 인기는 박근혜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2007년도 MBC 드라마 '영웅시대'와 이명박 대통령처럼.

여당 측에서는 '대물'이 그려내는 여권의 모습이 너무나 부정적이라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서혜림을 위시한 몇몇 인물을 빼고는 조배호(박근형)나 강태산(차인표)은 패거리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그 주변인물들은 대부분 앵무새가 거수기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이 드라마 때문에 집권당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다루는 정치가 민감했다는 반증이다.

후반부로 오면서 서혜림의 모습은 박근혜씨보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닮아갔다. 선거 캠프의 유니폼 색에서부터, 야권 단일화가 파기되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는 점, 그리고 대통령 당선 된 직후 바로 탄핵을 받는 점 등이 그렇다. 물론 이런 이미지는 이른바 '회초리론'을 방송 토론에서 얘기할 때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물론 '대물'은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서혜림은 어떤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기보다는 여러 정치인들의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다. 하지만 '대물'이 다루는 정치에 실제 현실 정치가 보여주는 뜨거운 반응은 드라마에는 부담이 되었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초반부터 불거진 작가와 연출자가 모두 교체되는 상황은 물론 드라마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겠지만, 이 드라마가 특히 정치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더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물'은 본래 하려던 정치 이야기에서 뒤로 진행되면서 상당히 유화되고 정체가 흐릿해진 게 사실이다. 외압은 아니지만 정치에 대한 민감한 반응들이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다루는 만큼 '대물'은 '자이언트'처럼 허구를 통해 이 상황을 넘기도 어려웠다.

흥미로운 것은 고현정이 연기했던 '선덕여왕'의 미실과 '대물'의 서혜림 사이의 온도차다. 고현정은 이 두 정치 지도자를 연기했지만 '대물'의 서혜림은 미실만큼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어쩌면 이 땅에서 정치를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말해주는 것일 게다.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야 그나마 현실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정치라는 소재다. 언제쯤 정치를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진짜 리얼한 현실로서 다룰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올까. 드라마에서도 정치에서도 이미지가 아닌 진짜를 보게 될 그날은.

'대물'에 대한 정계와 대중들의 온도차, 왜?

정치를 다뤄서일까. '대물'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대단히 민감하다. 초반 작가와 연출자가 교체된 것에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물론 그건 하나의 루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만큼 '대물'이 다루는 정치 소재들을 현실 정치가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대물'의 서혜림(고현정)을 박근혜 전 대표와 비교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나라당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서혜림이 박근혜 전 대표와 닮았다며 '대물'의 인기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실제로 극 중에 서혜림이 선거 유세 중 테러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다가 의식을 회복하고는 "유세장은요?"하고 말하는 대사는 비슷한 일을 겪었던 박근혜 전 대표를 떠올리게 한다.

'대물'에서 부정부패의 상징처럼 그려지는 집권당 민우당의 이름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합쳐놓은 듯 하다는 의견 때문에 민주당측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지나치게 당리당략에만 빠져있는 모습에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집권당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대물'의 하도야(권상우) 검사의 돈키호테 같은 행동이 인기를 끌자, 청목회 입법로비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여야 의원 11명에 대해 압수수색을 한 검찰이 '대물' 때문에 그렇게 기가 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선으로 정치권은 악으로 그려지는 '대물'의 대결구도 때문에 검찰의 수사에 대중들은 마치 하검사가 조배호 대표(박근형)를 수사하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물' 만큼 정계의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이 '슈퍼스타K2'라는 점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슈퍼스타K2'에서 최종 우승자가 된 허각씨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키도 작고 출신도 별 볼일 없는 허각씨에게 평범한 국민이 하나 둘씩 관심을 갖고 130만 표까지 모아 줬다"며 "이것이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측근들에게는 “허각씨 같은 사람이 우승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공정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슈퍼스타K2'를 빗대 박근혜 위기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슈퍼스타K2'의 장재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한나라당 친박계 모임인 여의포럼 세미나에서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이택수가 대표가 최근 진보진형의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라며 한 얘기다. 즉 초반에 1위를 달리다가 결국 허각과 존박에게 1,2위를 넘겨주고 3위로 떨어진 장재인처럼 박근혜 전 대표도 차기대선에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계가 이처럼 '대물'에 민감한 반면, 대중들의 반응은 사뭇 상반된다. '대물'이 그리고 있는 정치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서혜림이 하는 정치의 모습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공감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드라마 제작진들은 다시 이 약화된 서혜림 캐릭터를 다시 공감 있는 캐릭터로 세우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정작 대중들은 '대물'을 보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데, 왜 정계에서는 이 작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며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 대중들이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대중문화를 보는 식견이 높아서일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물'에서 조배호 대표가 실제 민생정치와는 상관없이 이미지 정치를 하는 것처럼, 작금의 정계가 그만큼 이미지 정치에 민감하다는 반증은 아닐까. 제 논에 물 대듯, 뜨고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정계의 반응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대물', 정치 바깥에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대물'이 다루는 세계는 정치다. 물론 실제 정치와 정치드라마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현실에서 신물이 나게 봐서 이제는 혐오증까지 생겨버린 그 놈의 현실정치를 그대로 반복해서 보여준다면 그 누가 드라마를 볼 것인가. 따라서 드라마에는 현실정치가 결여한 부분들을 채워줄 필요가 생긴다.

'대물'의 서혜림(고현정)과 하도야(권상우)가 마치 국민들의 대변인인 것처럼, 그간 침묵하고 있던 바람들을 대사를 통해 언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서혜림이 유세장에서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하고 외치고 잘못하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회초리를 들어 달라"거나, 하도야가 검찰청 로비에서 검사윤리강령을 소리 높여 외치는 장면은 그래서 속절없게도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돈키호테 같은 대변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서혜림과 하도야를 정의의 편에 세우고 그 반대편에 조배호(박근형)를 위시한 정치꾼들을 마치 협잡꾼처럼 세워놓자 실제 정치는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기왕에 정치판에 뛰어든 마당에 서혜림이 하는 행동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서혜림은 정치판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그저 "제가 잘은 모르지만"하면서 여전히 정치 바깥에서 그 너머를 그저 끔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정치가 권력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 드라마의 순진한 선악구도는 지나치게 판타지로만 보인다. 드라마가 현실일 필요는 없지만 또 너무 현실성을 결여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이 서혜림과 하도야라는 얼룩 하나 존재하지 않는 순수 무결점 캐릭터들이다. 정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정의로운 행동이 단지 뜻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고 그 안에 다양한 욕망들이 장치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진짜 모습은 이 욕망과 정의와의 팽팽한 긴장감에서 생겨난다. '대물'이 진정 대중들에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존재할 법한 어떤 것을 다뤄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이런 개인적 욕망 자체가 거세된 캐릭터로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물'은 지금 현실 어디에선가 봤던 것 같은 민감한 사안들을 끌어들여 관심을 끌고는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 서혜림과 하도야는 말 그대로 '공자님 말씀'만 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마치 모든 일이 해결된 듯한 인상을 지우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사실은 문제 자체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대물'의 주인공은 어차피 진창인 정치권 싸움에서 진흙 한 점 묻히지 않고 싸우려는 서혜림이나 하도야 보다는, 그래도 그 진창 속에 발을 딛고 있는 강태산(차인표)이 리얼하게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좌절된 희망 앞에서 폭발하는 강태산의 분노는 그래서 서혜림과 하도야의 눈물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그 속에는 정치인으로서의 야망과 개인적인 욕망이 현실적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여전히 이상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강태산은 마치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처럼 그 끝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까지 달려보려 한다. 드라마가 굳이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착한 주인공을 내세워 주제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잘못된 길이라도 달리는 주인공을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는 더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호감으로 돌아온 권상우, 그에게 남은 숙제

권상우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권상우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대물'에서 그가 연기하는 하도야라는 돈키호테 검사 덕분이다. 사실 권상우가 검사 역할로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많이 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하기만 하면 사사건건 구설수가 됐던 데다가 지난 6월에는 뺑소니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러니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아무리 재미있어도 권상우 때문에 드라마를 안보겠다는 말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권상우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매를 맞든 칭찬을 듣든 작품으로 보여드리는 게 첫 번째인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숙해야 될 시기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부담이 됐을 터였다. 게다가 연기만 하면 연일 터져 나오는 발음이나 연기력 논란은 자칫 이 배수진에 선 연기자를 벼랑으로 밀어낼 위험까지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역시 캐릭터가 가진 힘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물'이란 드라마를 여성 대통령 즉 서혜림(고현정)이 원톱으로 나오는 스토리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하도야라는 돈키호테 검사가 나란히 서는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물론 하도야는 서혜림의 뒤에 서 있지만, 결코 서혜림에 못지않은 역할이다. '대물'은 결국 둘이었던 셈이다.

'대물'이 그리는 세계는 이분화되어 있다. 조배호(박근형)로 대변되는 썩은 정치인들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서혜림과 하도야로 대변되는 돈키호테들이다. 서혜림이 정치판에서 당의 거수기와 앵무새로 이용되는 것에 당당히 반기를 드는 것처럼, 하도야는 권력자라면 그저 고개부터 숙이는 검찰에 무모하게도 맞서는 인물이다. 그러니 '대물'의 힘은 서혜림이 싸우는 정치판 이야기와, 하도야가 싸우는 검찰 이야기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서혜림이 감성적으로 눈물에 호소하면서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하도야도 돈 없고 백 없는 서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하도야가 신상명세 몇 개로 조배호를 몇 시간 동안 앉혀놓는 장면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아무도 대면하지 못하는 조배호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대거리를 하는 장면이 주는 속시원함은 또 어떻고.

서민들의 속내를 대변해주는 하도야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늘 비호감으로 몰려왔던 권상우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분명하다. 권상우의 이미지 속에 남아있던 조금은 건들대는 듯한 모습은 하도야 속으로 들어와 정치권력 앞에서 보여지면서 오히려 당당함으로 전환된다. 가벼운 듯한 이미지는 서민적인 검사 이미지로 바뀌었고, 거친 이미지는 정의감으로 표현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일생일대의 기회에 권상우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대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겠지만 하도야 속에서 권상우의 연기는 피어나고 있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굴 때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고, 뒤에서 힘겨운 서혜림의 어깨를 두드려줄 때 든든하게 느껴지게 만들며, 자신의 정의가 거짓에 짓밟히고는 뚝뚝 흘리는 눈물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연기자의 본분이라면 그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대물'이 하도야라는 캐릭터를 통해 권상우에게 부여한 힘은 막대하다. 그리고 그에게 대중들이 부여한 역할 또한 분명하다. 하도야라는 캐릭터의 입으로 서민들의 답답한 속을 확 풀어주는 그런 연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물론 권상우가 선택한 것이 어떤 결과로 끝맺음을 할 지는 여전히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력하는 모습이 연기 속에 묻어난다면 대중들의 마음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상우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성스'와 '대물', 그녀들이 대물이 된 사연

'남장여자'라는 존재는 그 자체가 남자를 상위에 놓는다. 즉 여자지만 남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왜? 남자여야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이하 '성스')'의 남장여자 윤희(박민영)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문재를 가진 그녀는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치고 싶지만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어떤 사내의 낙점을 받아 혼인해 살아가는 것뿐이다. 왜 그래야 하나. 윤희가 남장여자가 되어 금남의 지역인 성균관에 들어온 이유다.

'성스'가 조선 정조시대로 날아가 여자라는 존재가 갖는 한계를 남자들만 수학할 수 있는 성균관이라는 공간에서 풀어낸다면, '대물'은 지금 현재 여성이 마치 남자들의 세상인 양 치부되던 정치계에 입문하고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여자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물론 현재 이미 여성들의 정계 진출은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라고 하면 말이 달라진다. 안될 건 뭐냐고 말은 하지만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성별에 대한 장벽은 남아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성스'의 조선시대나 '대물'의 현대나 성별에 대한 의식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한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두 드라마는 주목받는다. '성스'는 남장여자라는 점 때문에 드라마의 판타지가 만들어진다. '걸오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터프하면서도 부드러운 걸오문재신(유아인)과 어딘지 꽉 막힌 듯한 올곧은 선비였으나 윤희를 만나면서 탈선을 시작하는 선준(믹키유천), 그리고 늘 유쾌함을 주는 미소년 용하(송중기)는 여성들의 판타지다. 그 속에 남장여자인 윤희가 들어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며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의 나날을 보낸다. 즉 '성스'는 조선시대의 여자가 갖는 한계를 뒤집어 판타지로 제공한다. 애초 남장여자를 하게 되는 과정은 조선시대의 현실(남자여야 가능한 삶)이지만, 바로 그 남장여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판타지가 존재한다. 남자가 아닌 여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

'대물' 역시 평범한 여자 아나운서로서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아줌마가 서혜림(고현정)이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정계는 그녀를 주목한다. 이미 노회할대로 노회한 정치꾼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판에 현실의 고단함을 서민들의 입장에 서서 소신 있게 얘기하는 서혜림은 참신해 보인다. 게다가 서혜림이 남편의 죽음으로 겪은 고통은 오히려 정치인으로서의 '호감 가는 스토리'를 만들어준다. 정치인으로서 여자라는 점은 약점으로도 지목되지만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라는 다양한 긍정적인 스펙트럼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녀가 출마한 이유는 아이에게 팔뚝만한 물고기가 뛰어노는 강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여성은 모두 드라마 속에서 '대물'로 불린다. '대물'이라는 지칭은 '성스'가 보여주는 성적인 의미에서나, '대물'이 보여주는 '여자 대통령'이라는 권력적인 의미에서나 모두 남성적인 의미를 더 갖고 있다. 즉 '대물'로 불리는 이 두 여성들은 여성이 가진 한계점을 넘어서 남성들의 영역으로만 치부되던 세계로 편입되려는 강한 욕망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이다. 여성들의 한계 지점으로 보였던 세계를 뛰어넘는 바로 그 지점에 이 두 드라마가 가진 판타지의 힘이 존재한다. "여자면 왜 안돼?" 하고 도발적으로 질문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대물'의 판타지, 현실 정치의 부재를 채우다

'대물'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고충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표를 얻는 것, 그래서 권력을 계속 쥐고 있고 차츰 그 권력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물론 이건 드라마 속 얘기다. 현실에는 그래도 서민들의 삶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 온 김에 우리 동네나 한 번 들려주지. 당췌 모기 땜에 살 수가 있어야지. 지옥이 따로 없어." 매립지에 생긴 웅덩이 때문에 모기떼들이 마을을 덮쳐 사람이건 동물이건 살기 힘들어하지만, 정치인들의 관심은 보궐선거에 가 있다. 검사들은 현장에는 나가보지도 않고 모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주민들의 집단 폭력으로 몰아 부친다.

"그럼. 이 사람들 대신 나 구속해. 야.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냐? 이분들 데모한 거 김태복 때문이 아니라 모기떼 때문에 데모했다잖아. 검사란 게 현장 한 번 안가보고 사무실에 앉아서 뭐? 구속? 구속이 그렇게 쉬워? 사람이고 짐승이고 다 죽어나가는 판에 무조건 법 지키라고? 지키다가 죽으라고? 세상에 그딴 법이 어딨어?"

서혜림(고현정)의 이 말에 속이 시원해지는 것은 이것이 판타지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작금의 대중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물'이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파괴력 있게 쭉쭉 뻗어나가는 이유가 된다.

'대물'은 바로 이 현실에서 우리가 종종 발견하는 사건들을 드라마라는 공간으로 가져와 한바탕 속 시원히 풀어내는 드라마다. 따라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드라마의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현실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이다.

정치인 혹은 검사 같은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이들이, 차 안에서, 공연장에서, 헬기 위에서, 정당 사무실에서, 갤러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서혜림이 모기떼로 고통 받는 서민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고충을 듣는 장면은 사뭇 대조적이다.

서혜림이 하도야(권상우) 검사에게 주민들의 입장에서 한 마디 쏘아부칠 때, 정치권에 새 인물을 찾는 강태산(차인표)의 눈빛이 반짝거리고, 그녀에게 "정치할 생각 없냐"고 묻는 장면이 전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이미 이 대조적인 장면들을 통해 '저런 정치인 하나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네 현실에서 정치라고 하면 으레 그러려니 포기하며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그래서 '대물'이 보여주는 정치의 세계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판타지라고 해서 그저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바로 이 판타지는 다름 아닌 선거철만 되면 등장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던 것이지만, 때론 정치인들의 최대관심사인 선거의 당락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인 현실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드라마가 판타지를 통해 어떤 비전을 제시한다면, 그것으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물'의 인기가 수직상승하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팍팍하다는 반증이다. 서민들이 바라는 세상과 실제 정치 현실 사이의 괴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물'의 판타지는 액면 그대로 현실의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적어도 서민들이 뭘 바라고 있는 지는 분명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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