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의 밤’, 이런 시도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폭망도 있지만 대박도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무도의 밤’ 특집은 온전히 멤버들의 기획 하에 만들어졌다. 기획으로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대박이 아닐까 생각했던 아이템이 의외로 폭망하고, 별로일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템이 의외로 재미있다. 물론 폭망한 것도 조금만 아이디어를 추가하면 괜찮을 것 같은 아쉬움을 남긴 것도 있고, 훈훈하게 잘 마무리 되었지만 하나의 아이템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뭐 그리 중요할까. 그런 시도들이 있어 진짜 대박 아이템이 되기도 하는 것을.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번 ‘무도의 밤’ 특집에서 방송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건 정준하의 ‘프로듀서101’이었다. 자신을 띄워줄 PD를 뽑는다는 이 아이템은 나영석 PD나 한동철 PD 같은 스타 PD들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더욱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막상 프로그램이 진행되자 그다지 PD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면서 김이 빠졌다. 결국 스튜디오까지 <프로듀스101>을 비슷하게 재연해 놓았지만 아무 PD도 오지 않으면서 허무하게 프로그램은 끝났다. 물론 그 지점 하나가 웃음 포인트이기는 했지만 투자 대비 효과가 너무 없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실패한 아이템인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PD들의 오디션이라는 콘셉트보다는 차라리 <무한도전> 멤버들을 모두 출연시킨 대국민 오디션으로 했다면 더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껏 시청자들과 함께 한 아이템들이 꽤 많았지만 달라진 예능 환경 속에서 다시금 ‘리부트’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출연자들을 다시 띄워줄 시청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은다면 팬들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재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박명수가 유재석을 섭외 카드로 초빙해 함께 했던 ‘프레쉬맨’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분들에게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게 해주겠다는 그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실감을 느끼게 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힐링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건 단지 그런 곳에서 채취한 공기만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이템 역시 발상을 뒤집어 그런 오염된 환경에서 종사하는 분들을 모시고 직접 그런 산으로 바다로 가서 새삼 공기의 신선함을 경험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한다면 또 다른 느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하의 작은 친구들의 파티 ‘작아 파티’는 키가 작은 이들의 공감대를 포착했다는 점에서 첫 방송에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확장되지 못하고 <무한도전>에서 늘 해오던 방식대로 그들의 파티로만 마무리된 건 어딘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이 아이템을 풀어봤다면 어땠을까. 이를 테면 스튜디오 파티 형식이 아니라 현장을 찾아가 일반인들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면 조금 더 흥미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애초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대박의 기운을 감지하게 만든 아이템들도 있었다. 양세형이 연예계 게임 고수들과 일종의 ‘도장깨기’를 하는 ‘양세바리를 이겨라’ 같은 아이템은 의외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졌고, 마지막에 은지원과의 게임 대결은 보는 이들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게임 대회 같은 것을 아직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무한도전>으로서는 충분히 확장해서 제대로 아이템화시킬 수도 있는 기획이 아니었나 싶다. 

또 유재석의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은 처음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할 때만 해도 그리 새롭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건 과거 어린이를 출연시키는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자주 시도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 길거리로 나가 아무하고나 즉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그 시도는 유재석이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었다. 특히 “오래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시민의 질문에 대해 은행에서 일하는 다른 분에게서 그 답을 듣는 대목은 충분히 재미와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소통이 주는 따뜻한 느낌이 유재석과 잘 어울렸다. 사실 이대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시도해도 될 만큼.

김태호 PD는 과거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도전의 실패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결국 성공과 실패 이렇게 결과가 나뉘는 거잖아요. 성공하면 그대로 좋은 거고 실패하면 한 번 더 할 수 있어서 좋은 거죠.” ‘무도의 밤’ 특집이 의미 있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무한도전>의 존재 의미를 새삼 드러내줬기 때문이다. 폭망하면 어떠랴. 대박 아이템도 그런 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폭망한 것도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니.

<1> 날게 한 박보검, <런닝맨> 주목시킨 차승원

 

요즘 KBS로서는 박보검을 업고 다니고 싶을 것이다. 그가 출연한 <12>19.9%(닐슨 코리아), 18.2%, 17%로 동시간대 주말 예능 시청률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바로 직전 <12>의 시청률이 14.7%까지 떨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이건 거의 박보검의 매직이라고 불러도 될 만하다. 게다가 박보검은 월화 사극 대전에서도 그가 출연한 <구르미 그린 달빛>16.4%로 경쟁작인 <달의 연인>7%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이 정도면 박보검은 KBS보검이라 불려도 될 정도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한편 SBS <런닝맨>은 요즘 한참 차줌마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차승원을 게스트로 세웠다. 시청률은 6.1%로 지난 회 5.5%보다 상승했다.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지금의 <런닝맨>을 생각해보면 차승원 게스트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날 있었던 <런닝맨>손 맛볼 지도라는 게임의 콘셉트는 그리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차승원 주연의 <대동여지도>를 상당히 배려한 제목에, 그저 늘 하듯이 편을 나눠 장소를 바꿔가며 대결하는 게임 정도.

 

물론 <삼시세끼>의 차줌마로 주목받는 차승원인만큼 그의 요리 실력을 볼 수 있는 게임이 들어갔다.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요리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런닝맨>의 차승원에게서는 <삼시세끼>의 차줌마 캐릭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런닝맨>은 아예 유해진 이야기를 꺼내 <삼시세끼>에서의 차승원 이미지를 프로그램에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12>이 무려 3회에 걸쳐 박보검을 게스트로 활용한 건 분명 결과적으로 보면 괜찮은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12>은 물론이고 <구르미 그린 달빛>까지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 박보검의 출연 하나로 이만큼 극적인 시청률 상승효과를 가져왔다는 건 <12>이 여전히 힘이 있는 프로그램이면서도 무언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일이다.

 

<12>은 그나마 멤버들의 케미가 살아나면서 비슷비슷한 소재의 여행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쇼의 재미가 살아있지만 <런닝맨>의 경우에는 너무 소소한 게임의 연속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관심 자체가 멀어진 상태다. 차승원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도 <런닝맨>에 없던 관심을 만들어냈다.

 

잘 나가는 프로그램은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과거 <12><런닝맨>은 거기 출연하기 전에는 잘 몰랐던 게스트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다. 매력적인 게스트가 들어와 오히려 프로그램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된 것. 그것도 박보검과 차승원 모두 그 캐릭터를 주목시킨 건 KBSSBS가 아닌 tvN이다. <응답하라1988><꽃보다 청춘>을 통해 박보검의 바른 이미지가 주목되었고, <삼시세끼>를 통해 차승원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박보검 매직과 차승원 효과의 이면에는 그래서 지금 현재 지상파 주말예능이 처한 상황이 드러난다. 한 때는 전체 예능을 이끌어갈 만큼 뜨거웠던 이들 프로그램들이 어쩌다 지금은 관성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을까. 게스트의 힘이 발휘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목매는 모습은 지상파 주말예능이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 좋은 캐릭터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던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갔나.

장근석, 전략 수정이 절실하다

 

종영한 사극 SBS <대박>의 주인공은 단연 장근석이다. 여진구, 전광렬, 최민수 같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래도 전체 이야기의 중심은 대길이라는 인물이 겪는 고난과 성장 스토리를 통해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가 서 있는 인물들 사이의 위치는 막중하다. 위로는 아버지인 숙종(전광렬)과 연결되고, 옆으로는 형제가 되는 연잉군(여진구)이 있으며 시대의 공적인 이인좌(전광렬)와 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박(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드라마는 온전히 장근석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드라마 초반부터 중반 이후까지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건 독특한 숙종 역할을 맡은 최민수였고, 드라마가 끝까지 굴러가게 만든 장본인 역시 그가 아니라 공공의 적으로서 조정을 농단하는 이인좌 역할을 연기한 전광렬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연기 공력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장근석은 절치부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아버지인 백만금(이문식)이 죽고(물론 나중에 다시 살아 돌아오지만) 벼랑 끝에서 이인좌의 칼에 맞고 떨어지는 그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그의 연기와는 사뭇 달랐다. 심지어 뱀을 물어뜯는 연기까지 선보였다. 그것은 마치 <레버넌트>로 꽃미남이 아니라 연기자라는 걸 확실히 증명해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행보처럼 보였지만, 그런 노력은 그리 큰 효과를 가져 오지는 못했다.

 

장근석이 이처럼 <대박>을 선택하고 지금껏 해오지 않았던 연기에 도전한 건 스스로도 늘 현대극의 허세남 캐릭터에 붙박여 있는 것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현실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2009<미남이시네요>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공작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매리는 외박중><미남이시네요>의 연장처럼 여겨졌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사랑비>는 아쉽게도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예쁜 남자> 역시 마찬가지. 장근석이 갖고 있는 꽃미남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소비했을 뿐, 이렇다 할 그의 성장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다.

 

배용준 이후 일본 한류의 새로운 물꼬를 튼 장근석이지만 후속작을 내지 못한다는 건 그에게는 커다란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아쉽게도 이번 <대박> 역시 대박이 되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결과다. 물론 대본의 완성도가 높지 못했다거나, 함께 하는 연기자들의 면면이 워낙 강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쨌건 중심에 서 있던 연기자로서 드라마의 실패에 책임이 없다 말하긴 어렵다.

 

이번 <대박>을 경험하면서 장근석에게 필요한 건 적절한 전략의 수정이다. 연기변신이 절실하다고 해도 너무 급작스런 변화는 그에게도 또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연기자라면 이걸 넘어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장근석처럼 너무 강하게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는 연기자라면 적절한 수위 조절을 통한 변신을 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시도와 그 의지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방법이 너무 과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갖고 있는 허세 꽃미남의 이미지가 자신의 경쟁력이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대박>은 여러모로 장근석이라는 연기자에게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작이지만 볼 게 없는 월화드라마, <백희>가 채웠다

 

땜방드라마의 반전. KBS 월화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에 붙는 수식어다. <백희가 돌아왔다><동네변호사 조들호>의 후속작인 <뷰티풀 마인드>가 미뤄지면서 그 사이를 메우기 위해 편성된 드라마다. 4부작으로 작은 규모의 드라마지만 의외로 첫 방송부터 반응은 폭발적이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첫 회에 9.4%(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냈다. ‘4부작 땜방드라마(?)’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록이다.

 

'백희가 돌아왔다(사진출처:KBS)'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그 첫 번째는 월화드라마들이 너무 소소해지며 볼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종영한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빼고 24부작 SBS <대박>이나 50부작 MBC <몬스터>는 대작드라마이면서도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다. <대박>은 이야기가 너무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숙종 대의 역사를 재해석한 것이지만 허구가 너무 과하고 전개도 개연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들쭉날쭉했다. 그나마 현재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는 힘은 최민수, 전광렬, 장근석, 여진구 같은 연기자들의 호연 덕분이라고들 말한다.

 

<몬스터>는 아예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무려 50부작이고, <기황후> 같은 쟁쟁한 작품을 해온 장영철 작가의 작품이지만 어쩐지 너무 만화적인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흔한 복수극의 틀에 적당한 멜로를 섞고 있지만 이런 어정쩡한 이 드라마의 위치는 그 색깔을 명확히 내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있다. 이야기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장영철 작가지만 현실성이 별로 없는 이야기들의 나열은 시청자들이 왜 이 드라마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4부작과 50부작. 그 틈바구니에서 고작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가 선전한 것은 어쩌면 그 ‘4부작이라는 한계가 오히려 작품을 더 신선하게 만들어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솔솔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50부작 드라마의 무용론이다. 이런 장편들은 과거 연속극의 형태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한층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느슨하고 질질 끌고 가는 드라마로 인식되고 있다. 16부작이면 충분히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를 굳이 50부작으로 늘리다 보니 드라마도 늘어진다는 것.

 

그런 점에서 4부작이라는 틀은 거꾸로 한계가 아닌 기회가 되었을 수 있다. 덩치가 작기 때문에 군더더기 따위는 과감하게 쳐낼 수밖에 없고 전개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괜스레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고는 질질 끌고 다니는 방식도 불필요하다. 섬월도판 맘마미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백희가 돌아왔다>에서 백희(강예원)의 딸 옥희(진지희)는 섬월도에서 만난 세 아저씨, 범룡(김성오), 종명(최대철), 두식(인교진)을 만나 누가 아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식으로 아빠 찾기를 보여준다. 굳이 출생의 비밀어쩌고 하는 지지부진한 전개 따위는 없다.

 

4부작의 틀은 또한 그 규모 때문에 편성되지 못했던 중소규모의 이야기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백희가 돌아왔다>는 동네 개들이 뭐했는지까지 다 아는 작은 섬마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것도 시골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적어도 16부작이나 심지어 20부작, 나아가 50부작 드라마들이 갖는 스케일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게 느껴지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시골의 작은 이야기들은 의외로 신선하다. 그동안 큰 규모의 편성 속에 도시를 소재로 하거나 심지어 글로벌한 이야기들이 드라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규모가 작을 뿐, 그렇다고 가치가 작다는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4부작을 취하고 있는 <백희가 돌아왔다>24부작, 50부작 사이에서 더 빛날 수 있었던 것.

 

<백희가 돌아왔다>가 보여준 선전은 그래서 이 한 편의 드라마의 성공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깊다. 중소규모의 드라마들이 상업적인 잣대 때문에 편성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그 많은 작지만 가치 있는 이야기들과 소재들을 소외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편드라마들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그 어떤 말보다 <백희가 돌아왔다>가 보여준 한 편의 선전이 더 효과적인 건 그래서다

<대박> 최민수, 어떤 사극에도 없던 숙종을 연기하다

 

SBS <대박>의 시청률 성적은 좋지 않다. 동시간대 지상파 꼴찌는 물론이고, tvN <또 오해영>이 기록한 7.9%(닐슨 코리아)보다도 낮은 7.7%까지 추락했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시청률이 급락한 19회에 숙종(최민수)이 죽음을 맞이했다.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급 숙종을 연기한 최민수의 퇴장은 마지막까지 강렬했다.

 

'대박(사진출처:SBS)'

최민수가 연기한 숙종은 지금껏 어떤 사극에서도 보지 못했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장희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가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사실 그건 대본에 있던 장면은 아니었다. 최민수가 현장에서 숙종의 당시 상황이라면 그랬을 수 있다며 제안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온 장면은 의외로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

 

최민수의 숙종 연기가 역대급이었다는 것은 과거 MBC <동이>에서의 숙종(지진희)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드러난다. <동이>에서 숙종은 왕의 위엄보다는 사랑꾼의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그래서 숙빈 최씨(한효주)와의 신분의 뛰어넘는 알콩달콩한 사랑을 선보였던 인물로 해석됐다. 하지만 <대박>에서 숙종은 모든 걸 꿰뚫어보는 왕의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이인좌(전광렬)라는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대박>이라는 드라마의 성격 상 자칫 숙종 역할은 가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인좌의 농간을 내려다보듯 눌러버리는 숙종의 카리스마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는 훨씬 더 팽팽해질 수 있었다.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이 이인좌를 잡기 위해 갖가지 명분들을 생각할 때, 왕의 명이라며 그를 잡아 능지처참하라고 소리치는 숙종의 모습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치 아편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을 짓는 숙종의 모습은 숙빈 최씨(윤진서)의 죽음으로 인해 점점 몸이 쇠해가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가까스로 숨이 붙어 있는 듯한 숙종의 마지막이지만 최민수는 그 모습에서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연잉군과 대길의 대결을 걱정하며 서로가 살 길을 일러주는 모습에는 제왕으로서의 면모와 자식을 걱정하는 아비의 면모가 뒤섞여 있었다.

 

드라마는 숙종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연잉군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는 모습으로 피곤해하는 숙종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여줬다. 이로써 최민수가 만들어낸 숙종의 이미지는 그 인물이 죽고 난 후에도 강렬하게 여운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대박>은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 과도하거나 자의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민수의 숙종만큼은 건졌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만큼 최민수의 존재감이 확실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연기자라면 드라마가 어떻건 자기 몫을 해내야 한다는 걸 최민수는 실제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대박>의 폭주, 어째서 막장이 떠오를까

 

SBS 월화사극 <대박>이 폭주하고 있다. 그 폭주는 이인좌(전광렬)의 폭주를 닮았다. 그가 연령군(김우섭)을 찾아가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이 사극이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걸 말해준다. 연령군이 누군가.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비록 서자지만 숙종이 그토록 아끼던 자식이 아닌가. 그런데 일개 이인좌 같은 인물의 폭주에 의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너무 과한 허구다.

 

'대박(사진출처:SBS)'

이인좌라는 인물 역시 역사적 기록에 남아있는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이런 설정은 지나치다. <대박>은 이인좌라는 인물의 힘이 중요한 게 사실이지만, 너무 이 인물을 크게 그려놓았다. 연잉군(여진구) 따위는 애송이로 바라보는 존재이며 심지어 한 나라의 임금인 숙종과도 대적하는 엄청난 존재다. 이제는 왕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찔러 죽이는 희대의 인물로 그려졌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허구조차도 개연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박>의 여주인공은 담서(임지연). 그런데 담서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고 또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사실은 이인좌라는 걸 알고 있는 담서는 복수를 하려던 인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숙종의 명을 받고 이인좌를 죽이러 온 김체건(안길강)의 앞을 그녀가 막아선다. 그가 자신을 제자로 삼은 것만은 진심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그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기꺼이 김체건의 칼에 맞아 죽으며 이인좌를 살려달라고 말하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물의 일관성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걸 보고 역시 이인좌를 처단하기를 그토록 원해왔던 백대길(장근석)이 구생패를 던지며 갑자기 그를 살려달라고 김체건에게 말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갑자기 살인검 활인검이야기를 꺼내며 담서가 목숨을 걸고 부탁한 일인데 그를 살려달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일관성이 없는 캐릭터의 행보다. 모든 비극이 이인좌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잘 알고 있는 대길이 담서의 죽음과 부탁(이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지만)으로 이렇게 이인좌를 살려 달라 하는 대목이 이해될 수 있을까.

 

앞서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대길의 아버지 백만금(이문식)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며 돌아오는 이야기에서도 미심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여주인공으로서 훨씬 더 많은 역할이 가능했을 담서가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대목에서는 작품이 너무 쉽게 인물을 죽이고 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박>에도 일종의 데스노트같은 것이 있는 것인가.

 

다른 게 막장이 아니다. 충분히 납득될 만큼의 개연성이 없는 것, 인물의 일관성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궁극에는 인물들이 마치 작가의 노리개처럼 별다른 이유 없이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런 전개가 바로 막장이다. 이런 막장이 목적하는 건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아니라 자극이다. 충격적인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줘 주목을 끌려는 것이지만 이런 식의 자극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던 시대는 지나갔다.

 

<대박>의 시청률은 결국 8.5%(닐슨 코리아)로 월화극 꼴찌로 전락했다. 시청률에서 유리한 사극이고, 장근석, 여진구, 전광렬, 최민수 같은 쟁쟁한 캐스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건 결국 폭주하는 이야기 때문이다. 연기는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개연성을 잃어가고 있다

<대박>의 무리수, 운빨에 맞춰버린 전개라니

 

역사를 상상력으로 재해석하거나 바꾸는 건 이제 그다지 큰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역사 왜곡의 문제가 어느 선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따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SBS <대박>이 그리는 다소 무리한 전개들, 이를테면 숙빈 최씨(윤진서)가 도박에 빠진 남편이 있었다거나, 그 남편 백만금이 숙종(최민수)과 도박을 벌여 숙빈 최씨를 얻었다거나 하는 것 같은 설정은 차치해두고 이야기하자.

 

'대박(사진출처:SBS)'

하지만 드라마가 내적 개연성을 따라가기보다는 너무 인위적인 흐름이 느껴지는 문제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다. 숙종의 명으로 이인좌(전광렬)가 형장에까지 나오게 되고 형 집행이 막 벌어지려는 그 순간 마침 숙빈 최씨가 사망하면서 집행이 유보되는 이야기는 너무 인위적이다.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이 그토록 노력해 잡은 이인좌가 아닌가. 하지만 그가 거의 죽음 직전에 살아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운이 좋아서다.

 

어쨌든 <대박>이라는 드라마가 도박을 다루고 그래서 운이라는 것이 중요한 동기나 결과에 작용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적 상황을 애써 만들어놓고 그저 운이 좋아 인물을 살린다면 거기에 몰입해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이인좌라는 인물이 억세게 운이 좋은 인물이니 그렇게 살아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드라마가 운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합당한 근거와 이유들을 대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운이라는 것이 그저 하늘에서 점지해준 어떤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우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들의 행동과 부딪침, 그로 인해 생겨나는 화학작용 등을 좀 더 세세하게 다뤄주는 게 오히려 시청자들에게는 더 흥미진진함을 안길 수 있지 않을까.

 

이 사극이 그리고 있는 숙종은 그 캐릭터만 보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신하들과 세자는 명분을 찾지만 숙종은 그저 명령한다. “짐이 말하고 있노라하고 엄포를 놓으면 그 많은 신하들의 반대는 그대로 수그러든다. 그토록 이인좌를 붙잡을 명분을 찾기 위해 대길과 연잉군이 고생을 했지만 숙종은 한 마디로 명분 따윈 필요 없다며 당장 그를 잡아넣으라고 명하고, 며칠 후 능지처참시켜버리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숙종 앞에 그간 유약함을 보이던 경종(현우)이 이인좌의 형 집행을 유보시키고 그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에 대노한 숙종은 칼을 뽑아 들고 경종을 향해 다가와 죽고 싶으냐며 으름장을 놓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순간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져버린다. 그간 지병을 앓고 있던 것이 마침 그 순간 터져버린 것이지만, 이런 전개 역시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우연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런 우연의 반복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굴러가기보다는 작가에 의해 개연성 없이 전개되는 걸 계속 보다보니, 이미 죽은 걸로 알고 있던 대길의 아버지 백만금(이문식)을 다시 살려놓은 것 역시 작가의 인위적인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애초에 백만금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복선을 우리는 과연 봤던가. 갑자기 이인좌가 감옥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죽었던 인물을 다시 살려놓은 느낌이다. 대길에게 아버지를 보고 싶으면 자신을 살려내라고 엄포를 놓는 이인좌의 이야기를 그리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이야기 전개가 어떤 내적 개연성으로 흐르지 않고 작가의 자의적인 의도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은 <대박>에 시청자들이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굉장한 일에 빠져든 듯 진지하지만 그들은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육룡이 나르샤>에서 육룡은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저마다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대박>의 인물들은 심지어 대길이나 연잉군도 그리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그들 캐릭터가 스스로 가진 내적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무언가에 의해 휘둘리거나 열심히 능동적으로 움직이려 했는데 사실 알고 보면 이인좌의 손바닥 위라는 걸 발견하고는 허탈해한다. 그들이 느끼는 허탈함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열심히 몰입해 들여다봤는데 그게 그들 캐릭터의 내적 힘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손바닥 위에서 감정놀음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시청자들은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박>의 전광렬, <옥중화>의 전광렬

 

전광렬은 아마도 요즘 가장 바쁜 연기자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두 편의 사극에 출연하고 있다. SBS 월화사극 <대박>MBC 주말사극 <옥중화>가 그 작품들이다. 겹치기 출연이 만들어내는 혼동은 이런 선택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를 묻게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두 사극이 전광렬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대박(사진출처:SBS)'

전광렬이 이렇게 무리해서까지 동시에 두 작품을 소화하는 까닭은 이 작품의 작가나 PD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전광렬은 <대박>의 권순규 작가가 쓴 <무사 백동수>, <불의 여신 정이>에 모두 출연했다. 물론 <옥중화>를 만들고 있는 이병훈 감독과 최완규 작가와는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최완규 작가의 데뷔작인 <종합병원>에서부터 최근 <빛과 그림자>까지 전광렬은 출연해왔고 <허준>처럼 이병훈-최완규 콤비가 해낸 사극에도 출연했었다.

 

전광렬의 연기자로서의 색깔은 독특하다. 물론 젊은 시절에 그는 연기도 출중했지만 훈남의 외모로도 어필하던 스타였다. 그래서 주연이 당연했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 중견의 자리에 오면서 존재감 강한 조연의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전광렬은 조연 자리에 있으면서도 주연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빛과 그림자>에서 그는 악역이었지만 장철환을 미친 존재감으로 만들며 주역인 안재욱을 압도하기도 했다. <왕과 나>에서도 주인공인 김처선(오만석)보다 내시부 수장인 조치겸(전광렬)이 주목받는 아이러니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조연이 주연보다 주목받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시각은 양갈래로 갈라진다. 요즘처럼 주조연의 구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진 시대에 그건 미친 존재감으로 칭찬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드라마가 균형 있게 흘러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대박>에서 전광렬이 연기하는 이인좌라는 인물은 역사 속에 이인좌의 난으로 유명한 실존인물이다. <대박>은 전면에 대길(장근석)과 연잉군(여진구)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인좌와 숙종(최민수)의 대결구도가 더 팽팽한 사극이 되었다. 대길과 연잉군이 연합하고 그들이 형제인 사실을 알게 되는 등 출생의 비밀에 얽힌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걸 조종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이인좌와 숙종이다.

 

문제는 이인좌라는 인물의 존재감이 거의 한 나라의 왕인 숙종과 대결할 정도로 크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물론 <대박>이라는 사극이 허구를 덧대 만들어낸 대결구도라고 하지만 이런 정도의 상상력을 지금의 시청자들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이인좌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대길과 연잉군이 주변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은 <대박>이 가진 최대 약점이 되었다. 좀더 명쾌한 주인공들의 활약상이 그려지기보다는 이미 이인좌의 손에서 그려진 대로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옥중화>에서 전광렬이 연기하는 박태수라는 무술고수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옥서의 비밀감옥에 오랜 세월 갇혀 있으면서 주인공인 옥녀(진세연)에게 무술을 가르쳐주는 인물이다.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상인물이지만 사극의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 이 인물은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옥녀라는 캐릭터에 힘을 보태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옥중화>가 활용하고 있는 전광렬의 연기는 과하지 않고 적절하다. 이런 점들은 아마도 이 사극이 훨씬 안정된 느낌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전광렬이라는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은 <대박><옥중화>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들이 쓰고 있는 이인좌라는 캐릭터와 박태수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캐릭터 활용이 주인공을 그림자로 덮어버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빛나게도 하는 건 너무나 큰 결과의 차이가 아닐까. 공교롭게도 사극이라는 장르에 겹쳐져 출연하고 있는 전광렬이라는 배우의 활용법은 그래서 주조연이라는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대박>의 전광렬과 최민수에 가린 장근석과 여진구

 

SBS 월화드라마 <대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최근 들어 사극의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인 경우는 낯설지 않다. <육룡이 나르샤>가 조선 개국의 이야기에 여섯 용을 등장시킨 건 한 주인공의 관점이 아니라 여러 관점들을 교차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대박>은 그 주인공이 명확하다. 숙종(최민수)과 숙빈최씨(윤진서) 사이에 태어나 어린 시절 저자거리에 버려진 대길(장근석)이 그 주인공이다.

 

'대박(사진출처:SBS)'

이 점은 <대박>의 포스터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대길 역할의 장근석이 정중앙에 서 있고 바로 뒤에 훗날 영조가 될 연잉군(여진구)이 그리고 그 뒤에 숙종과 이인좌(전광렬)가 서 있다. 무엇보다 대길이 연잉군과 공조해가며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얽혀있는 연원들을 풀어가고 그런 운명을 만든 이인좌에게 복수하려는 내용이 줄거리라는 점에서 <대박>의 주인공은 이 여정을 이끌어가는 대길이 분명하다.

 

이렇게 <대박>의 주인공이 대길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굳이 강조하는 까닭은, 이 사극이 그러나 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장면들만 놓고 보면 대길의 분량이 많고 그와 연잉군이 공조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대길이 이인좌와 맞서기 위해 육귀신(조경훈)과 골사(김병춘)를 하나하나 도장 깨기하듯 투전판 깨기를 하고 나면 그것이 결국은 이인좌가 이미 다 예상한 손안의 게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알고 보면 이인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길이라는 청춘이 지금까지 고난과 성장을 거듭해온 그 이면에는 모두 이인좌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인좌는 범 새끼가 아니라 범이 되라며 대길을 칼로 찔러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린다. 이인좌에 대한 복수심으로 대길은 성장하고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 복수의 행보를 보이는데 그것이 결국은 모두 이인좌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그의 예상 시나리오대로의 결과라는 것. 드라마는 세상을 통찰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인좌라는 특별한 인물이 한 시대를 어떻게 농단했는가를 다루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사극에서 이처럼 어른의 농단에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청춘의 모습은 대길만이 아니다. 연잉군 역시 금난전권 폐지같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고 싶지만 그 때마다 그는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아버지인 숙종에게 불려가 세상이 네 뜻대로 그렇게 될 듯싶으냐?”라는 식의 무시를 당한다. 그리고 연잉군이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걸 숙종은 거의 모두 꿰고 있으며, 심지어 그를 도발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이 판을 움직이려 한다.

 

결국 <대박>의 이야기는 그래서 전면에 대길과 연잉군이 갖가지 시대의 어둠과 싸워나가는 모습을 그리지만, 그 실제적인 대결은 숙종과 이인좌라는 그 배후의 인물들에 의해 계획된 것들처럼 보인다. 대길이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육귀신 같은 인물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통쾌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결국 이인좌의 생각대로의 결과라는 걸 아는 순간 맥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대박>의 이야기는 마치 숙종과 이인좌가 두고 있는 체스판에 대길과 연잉군, 나아가 담서(임지연) 같은 청춘들이 하나의 말로서 등장하고 있는 듯한 구도를 만들고 있다. 이런 구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사실 대길과 연잉군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야기가 엉뚱하게도 숙종과 이인좌의 캐릭터가 강해지면서 그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의심할 수 있는 건 초반 장희빈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숙종의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 다른 캐릭터들이 주목되지 않을 정도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최민수와 전광렬이라는 배우의 강렬한 연기가 어떤 면에서는 장근석과 여진구의 존재감마저 덮어버린 면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러 연기자들의 연기가 조합이 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드라마에 있어서 이런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독주는 바람직한 건 아니다.

 

세 번째는 이 구도를 작가가 의도했다는 것이다. 숙종과 이인좌라는 어른을 대변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짜놓은 판 위에서 대길과 연잉군 같은 청춘들이 처음에는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다가 후에 이를 뒤집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을 수 있다는 것. 이 관점으로 보면 <대박>은 최근 <육룡이 나르샤><사도> 같은 여러 사극들이 다루었던 어른과 청춘의 대결구도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주인공인 청춘들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깨버린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점이다. 현실에 더 적응되어 있고 판세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노회한 어른들은 청춘들을 때론 도발하고 때론 다독이면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려 한다. 그것은 <대박>이라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드라마의 중견연기자와 젊은 연기자 사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렇게 주인공인 청춘들이 숙종이나 이인좌 같은 어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나아가 이들과 좀 더 명쾌하게 대적하는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극을 보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답답함이다. 이 답답함은 물론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지만, 아마도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는 조금 다른 판타지를 원했을 수 있다.

 

고구마보다는 사이다를 더 요구하는 요즘, 이런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구도는 시청률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 청춘의 답답함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은 이 사극이 가진 미덕일 것이다. 대길과 연잉군이 아니 이들을 연기하는 장근석과 여진구의 안간힘이 느껴질수록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건 그래서일 게다

<대박>24부작인데, <몬스터>는 왜 50부작?

 

사실 드라마에서 길이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50부작이고 해도 한 회 한 회 저마다의 메시지를 담고 그것이 잘 엮어져 50부의 흐름을 관통한다면 그건 오히려 명작이 될 수 있다. 종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는 대표적이다. 조선 건국의 과정이라는 큰 스케일인데다, 여섯 명의 건국 영웅을 각각 다루면서 이들의 이합집산을 통한 다양한 이야기의 재미들이 매회 나왔기 때문에 50부작이라고 해도 순식간에 흘러가버린 듯한 몰입감을 주었다.

 


'몬스터(사진출처:MBC)'

하지만 MBC <몬스터>는 어떨까. 50부작이 예정되어 있고 이제 8회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야기는 벌써부터 산으로 가고 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이국철(이기광)이라는 인물이 강기탄(강지환)으로 살아 돌아와 도도그룹에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돌아온 강기탄이 도도그룹에 들어가 받는 인턴 연수의 과정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인턴들이 한 회사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놓고 해외 연수를 가서 마치 스파이나 된 것처럼 경합을 벌이는 장면은 어찌 보면 유치한 어린이 드라마 같은 느낌마저 준다.

 

물론 이것 역시 강기탄이 도도그룹 깊숙이 들어가 복수를 해가는 과정이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건 정서적인 일관성과 흐름이 있어야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는 법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게임과 미션들 속에서 강기탄의 애초 목적인 간절한 복수의 의지들은 슬쩍 가려진다. 무엇보다 극의 장르적 흐름이 복수극이 아닌 스파이극과 멜로 심지어 코미디 같은 기조로 흘러가는 건 너무 한가한 전개처럼 보인다. 본 이야기로 달려가지 못하고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그 50부작이라는 길이 때문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사실 지금 같은 이야기 전개라면 굳이 <몬스터>50부의 길이로 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여겨진다. 강기탄으로 살아 돌아와 도도그룹에 복수하는 이야기를 지난한 인턴 과정 이야기를(그것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시시콜콜 다루면서 굳이 긴장감을 뺄 필요가 어디 있을까. 만일 20부작이나 24부작 정도였다면 과연 <몬스터>는 이렇게 한가한 삼천포 전개를 할 수 있었을까.

 

SBS <대박>이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24부작인 이유는 굳이 50부작 같은 큰 흐름으로까지 갈 필요가 없는 이야기인데다, 좀 더 압축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론 <대박> 역시 여러 이야기의 허점들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적어도 <몬스터>처럼 한가하지는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드라마의 이야기가 가진 밀도에 비해 길이가 너무 긴 데서 비롯된 일이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풍성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본 이야기와 관계없는 엉뚱한 이야기들이 얼기설기 붙어 있는 건 본 이야기의 기조마저 흐릿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일이다. 결과는 이미 시청률 꼴찌가 말해주고 있다. 물론 시청률이 그 작품의 완성도를 말해주는 지표가 되지 못한 지는 오래다. 하지만 10분짜리 웹드라마가 나오는 시대에 굳이 대서사의 밀도가 없는 이야기에 50부작을 쓴다는 건 구태의연한 지상파드라마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야 50부작 같은 긴 호흡이 투자비 회수를 위해 용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처럼 완성도와 밀도를 보는 시청자들 앞에서 이런 단순한 길이 늘이기가 효과가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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