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와 '상류사회' 희비쌍곡선, 좋은 영화는 관객이 먼저 알아본다

변혁 감독의 영화 <상류사회>는 시작 전부터 시끌시끌했다. 19금이니, 일본 AV배우까지 등장한 역대급 노출이니 하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변혁 감독 스스로 영화가 가진 의미를 이야기하는 인터뷰까지 더해졌다. 논란에 대한 해명의 뉘앙스를 가진 인터뷰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것 역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홍보 마케팅처럼 여겨졌다. 논란과 19금이 버무려진 형태의 홍보 마케팅.

물론 홍보 마케팅이 잘못된 건 아니다. 영화가 그만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상류사회>는 감독까지 나서서 그 작품이 가진 의미들을 세세히 설명했어도 관객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완성도도 떨어졌고, 새로움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남은 건 노출뿐이었다. 관객들은 외면했고 주말 이틀 간 20만 관객을 동원해 누적 50만 관객을 기록했지만 주말 박스오피스 3위로 밀려났다.

<서치>가 미국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SNS 세계만으로 구성된 영화라는 게 일단 관객에게 참신하게 다가온다. 그게 한 편의 영화가 될까 싶지만,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삶이 얼마나 이 새로운 세계에 포획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아빠 역할을 연기한 존 조는 시종일관 얼굴 표정을 통해 그 깊은 감정과 아픔들을 연기해냄으로써 한국 관객들에게도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아메리칸 파이2>와 <스타트랙>의 술루 역할로 기억에 남겨진 배우다. 한국에서 태어나 6살 미국으로 이민해 성장한 한국계 배우다.


'식샤3' 제작진의 무리수 혹은 착각

tvN 수목드라마 <식샤를 합시다3>가 종영했다. 정상적인 시즌제 드라마의 경우라면, 시즌4에 대한 요청이 나와야 하지만 어째 반응이 영 시원찮다. 그만큼 이번 시즌3에 드리워진 논란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이렇게 해서 시즌4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아픈 이야기지만 <식샤를 합시다3>가 시즌4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 논란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봐야 한다. 시청자들은 무엇에 불편함을 느낀 것일까.

그 첫 번째는 여주인공으로 들어온 백진희의 연기력 논란이다. 사실 꽤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력 호평을 받은 바 있는 백진희에게 ‘연기력 논란’이라는 표현은 좀 과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논란이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불편해한 것은 사투리 연기와 먹방 연기였다. 사투리가 자연스럽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만의 중요한 포인트일 수 있는 먹방의 매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이 논란을 통해 읽을 수 있는 건 <식샤를 합시다>라는 시리즈가 가진 일반 드라마들과는 다른 특징이다. 먹방과 드라마가 엮어진 이 드라마는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먹는 장면만 10분 가까이 등장하는 먹방이 그 자체로 중요한 특징이 있다. 이 부분은 윤두준이 지금껏 구대영이란 역할로 드라마의 중심을 이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맛깔나게 먹는 그 먹방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캐스팅에 있어서 <식샤를 합시다>는 연기 그 자체만큼 먹방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백진희의 연기력 논란까지 나온 데는 작품 초반부터 논란으로까지 비화됐던 대본의 무리수들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 시즌의 여주인공 백수지(서현진)를 죽음으로 처리한 부분은 너무 큰 무리수였다. 그것은 새로운 여주인공으로 들어온 이지우(백진희)와 구대영의 멜로를 본격화하기 위한 전제로 설정된 것이지만, 굳이 특별출연까지 시켜가며 죽음으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냐는 비난의 목소리에 직면했다. 

시즌제란 지난 시즌에 대한 애정 때문에 계속 이어지는 것이란 걸 염두에 둔다면 그 때 사랑받았던 백수지를 그렇게 죽음으로 처리한다는 건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백수지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된 이지우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연기력 논란 속에는 이러한 캐릭터에 대한 반감을 만들어낸 무리한 설정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연기력 논란마저 일으킨 건 결국 허술한 대본의 문제가 컸다는 것이다. 

대본이 그려낸 이지우라는 여성 캐릭터는 너무 단선적이었다. 지금 시대에 구대영에게 전적으로 기대는 일편단심 캐릭터는 그다지 큰 매력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보다는 사랑 하나에 목매는 캐릭터로 마지막까지 홀로 가슴앓이를 하며 구애하는 모습은 너무 수동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차라리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이서연(이주우)이 더 주목받았던 건 그래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논란으로 남게 된 윤두준의 입대에 따른 조기종영은 이 작품이 얼마나 무리하고 급하게 제작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의경 시험에서 탈락하게 되면 예정된 촬영을 마치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제작진이 이를 강행했다는 건 그만큼 시간에 쫓겨 작품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제아무리 시트콤에 가까운 예능 드라마라고 해도 그만큼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시즌제 드라마로서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이번 시즌에 쏟아진 갖가지 논란들은 시즌제 드라마들이 조심해야 하는 문제들을 드러낸 면이 있다. 시즌제라고 만들기만 하면 시청자들이 알아서 좋아해줄 것이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애착이 있는 만큼 더 충실한 대본과 연기를 요구한다. 메인 주인공 역할로 윤두준이 계속 출연해 중심을 잡아주지만, 바뀌게 되는 상대 역할의 캐스팅과 그렇게 바뀐 과거의 인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도 중요한 관건이다. 특히 먹방이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한 <식샤를 합시다>는 캐스팅에 있어서 이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요구되는 건 좀 더 충실한 대본이다. 적당한 먹방과 멜로를 엮어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높아가는 기대치를 맞출 수가 없다. 새로운 시즌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찾아내야 한다. 아쉽게 종영했지만 시즌4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보다 탄탄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돈꽃’, 연출·연기·대본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보기 드문 수작

MBC 주말드라마가 그간 방영해왔던 드라마들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돈꽃>은 시작부터 막장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여기에는 제목도 한 몫을 했다. ‘돈’이라는 단어를 직설적으로 붙여 ‘돈꽃’이라 붙인 제목은 이 드라마에 ‘속물적인 뉘앙스’를 선입견으로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 방영되면서 초반부터 등장하는 기업극화적 분위기와 복수극의 틀은 그런 선입견을 확증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이건 완벽한 선입견으로 인한 오해다. <돈꽃>은 막장드라마가 아니고 오히려 촘촘하게 얼개가 짜여진 완성도 높은 드라마이며, 특히 놀라운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물론 이 드라마 속에는 우리가 막장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출생의 비밀이나 성공을 위한 이전투구와 복수극 코드가 들어있다. 하지만 <돈꽃>이 이런 소재들을 담는 방식은 실로 진지해 막장과는 너무나 다른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마치 같은 코드들을 썼어도 삶의 비의를 담아내곤 했던 그리스 비극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돈꽃>의 주인공인 강필주(장혁)는 친구이자 보스인 장부천(장승조)을 청아그룹 회장에 앉히려는 인물. 그래서 그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목되는 나기철(박지일) 의원의 딸 나모현(박세영) 모르게 모든 걸 꾸며 장부천과 정략결혼시킨다. 하지만 청아그룹 회장 자리를 노리는 장여천(임강성)과의 대결과정에서 청아그룹과 나기철 의원의 유착이 폭로되면서 청아그룹의 실권자인 장국환(이순재) 명예회장의 권유에 의해 나기철 의원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쉽게 흘러갈 것 같은 상황들은 모두 뒤집어진다. 

강필주는 사실 장부천의 모친인 정말란(이미숙)에 의해 강물에 던져졌던 장씨 가문 후처의 아들 장은천이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위해 정말란이 욕망하는 것처럼 장부천을 회장에 앉힌 후 그 꼭대기에서 밀어내버리려 한다. 그것이 가장 처절한 복수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부천 역시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그는 자신에게 장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정말란의 운전기사인 오기평(박정학)이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강필주가 사실 장은천으로 장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자신이 그의 꼭두각시였다는 걸 알아차린다. 

<돈꽃>은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진짜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대사도 굉장히 절제되어 있고, 오히려 영상 언어를 통해 인물의 내적 감정을 표현해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못 어려운 드라마의 선택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건 놀라운 연출력이다. 

막장드라마의 연출들이 빠른 속도에 집착하고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대사에 기댄다면, <돈꽃>의 연출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속도는 유려하게 흐르는 클래식 배경음악에 맞게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대사도 쏟아내기 보다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듯이 끊어서 전달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마치 연극대사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유려함과 절제미 그리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영상들은 시청자들이 충분히 그 장면과 대사를 음미할 시간을 준다. 깊이는 그래서 만들어진다. 

또한 이 작품이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듯 비장미를 갖게 되는 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 선이 굉장히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강필주만 봐도 그렇다. 그는 다름 아닌 정말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가문의 개를 자청한 것이지만,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오면서 그들 사이에 다른 끈끈한 관계들이 이어진다. 즉 정말란과는 애증이 결합된 내연관계의 모습을 보이고, 장부천에게도 친구로서의 우정 같은 것들이 슬쩍슬쩍 드러난다. 

정말란은 자신의 아들인 장부천의 며느리로 들어온 나모현이 그의 아버지의 자살시도로 그 정략결혼 자체가 쓸모없어지자 아들에게 이혼을 하라고 종용하지만, 나모현이 강필주와 남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자신이 준비하던 이혼서류를 찢어버린다. 아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강필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혼재하는 그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 

겉으로는 인자한 경영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살벌한 늑대의 실체를 숨기고 있는 장성만 회장(선우재덕)이나, 그저 자수성가해 뒷방으로 물러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얼굴을 숨기고 있는 장국환 명예회장, 하다못해 그저 운전기사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강필주를 어린 시절 강물에 던진 해결사였고 또 장부천의 숨겨진 친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오기평조차 그 캐릭터가 복합적이다. 그래서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이 새삼 돋보이게 되는 것도 이 작품의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돈꽃>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어째서 이런 속물적인 느낌마저 드는 제목을 달아놓은 걸까. 만일 특별한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부재하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기업극화 복수극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최근 들어 보기 드문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자본의 세상이 사실 한 꺼풀을 열어보면 그 실체가 돈이라는 욕망의 자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조작된 것들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은 바로 나모현이다. 그는 장부천을 만나(물론 강필주가 뒤에서 조작한 것이지만)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그 과정들을 스스로 피어난 ‘꽃’으로서의 진정한 사랑의 결실로 여겨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장부천이 결혼 전부터 알고 있던 여자와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그 ‘꽃’이 ‘돈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보다 강렬한 주제의식이 있을까. <돈꽃>은 우리가 지금껏 그 많은 자본의 환상을 판타지로 그려내던 드라마들에게 그게 ‘꽃’이 아닌 ‘돈꽃’이라 말하고 있는 중이다. 

<돈꽃>은 깊이와 심도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연출력과 복합적인 감정들이 교차되는 캐릭터를 내놓은 대본,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연기가 결합된 보기 드문 수작이다. MBC 주말드라마가 만들어냈던 ‘막장’의 이미지 때문에 늘 존재해왔던 그 선입견을 깨줄 만큼 충분히 완성도 높은.(사진:MBC)

JTBC 드라마의 신기원 ‘품위녀’, 무엇이 그리 특별했을까

욕심쟁이 드라마다. <품위 있는 그녀>는 결국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 마지막 회 12%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하며 JTBC 미니시리즈 사상 신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백미경 작가는 전작인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성공시키며 JTBC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품위 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하지만 이 작품이 얻은 건 단지 시청률만이 아니었다. 스릴러 장르에서부터 사회 풍자극, 치정극 같은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을 한 드라마 안에 녹여놓은 완성도 높은 대본이 있었고, 김희선과 김선아를 중심으로 빈틈없는 연기의 향연이 있었다. 보통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가고,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삼박자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드라마라고 할 때, <품위 있는 그녀>는 그 기준에 모두 부합한 드라마였다. 

<품위 있는 그녀>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무엇보다 강남 부호들의 위선적인 삶을 들여다본다는 쾌감이었다. 겉보기엔 화려해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치정과 돈 관계로 얼룩진 구질구질함이 이 드라마가 폭로해낸 것이었다. 욕망으로 얼룩진 그 삶이 실체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허망한 것이라는 걸 백미경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통찰해냈다.

단지 폭로의 쾌감만 있었다면 <품위 있는 그녀>가 가슴까지 어떤 울림을 주는 드라마가 되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박복자(김선아)라는 인물이 이 세계에 들어와 파란을 일으키는 이야기지만, 드라마는 후반으로 갈수록 이 인물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을 담아냈다. 그토록 꿈꾸던 진정한 품위와 우아함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파국을 맞는 그 삶을 통해 우리네 서민들이 갖는 욕망과 그 욕망의 끝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러면서 어떤 길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그 세계로부터 탈주해 나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냈다. 진정한 삶의 행복과 가치는 돈으로 얻어질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평상시에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걸 ‘품위 있는 그녀’의 캐릭터를 통해 드러냈다. 그것이 진정한 ‘품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

이처럼 자못 무게감이 있는 메시지를 백미경 작가는 지극히 대중적인 작법들을 통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이야기로 그려냈다. 이미 첫 회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박복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마지막 회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작가가 공언한 것처럼 드라마가 끝나기 10분 전에서야 그 진범이 밝혀지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진범이 누구인가가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장치가 있어서 시청자들은 끝까지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누가 범인인가를 추측하게 만드는 그 장치를 통해 여러 용의자들(?)의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도 했다. 마지막 회의 또 다른 떡밥으로서의 풍숙정 김치의 정체는 그 실체가 조미료였다는 게 밝혀짐으로써 어떤 통쾌함을 안겨주면서도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전했다. 맛도 모르면서 비싸게 산다고 진짜 맛이 아니라는 것. 품위가 그러하듯이.

<품위 있는 그녀>는 지금껏 JTBC 드라마가 추구해온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중성까지 확보해낸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남았다.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 이야기를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내는 연기와 연출... 좋은 작품의 교과서 같은 면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거너사', 발연기야 그렇다치고 대본·연출은 왜 이러나

tvN 새 월화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이하 그거너사)>는 시작 전부터 어느 정도의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그 첫 번째는 이 작품의 원작이 2009년부터 연재된 일본 만화라는 점이다. 물론 일본 만화 원작의 리메이크 드라마가 모두 실패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일본 원작들이 그 정서적 차이를 넘지 못해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본 바 있고, 게다가 2009년 시작된 작품으로서 무려 8년의 시차를(작품에 대한 느낌은 시청자들의 변화에 의해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우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사진출처:tvN)'

하지만 무엇보다 큰 불안감은 캐스팅이었다. 물론 남자 주인공 강한결 역할로 이현우가 자리하고 있어 그나마 어떤 기대를 갖게 만들었지만, 그를 둘러싼 중요한 배역들이 조이, 이서원, 홍서영, 성주, 신재민, 장기용 같은 연기 검증이 거의 되지 않은 신인들로 채워졌다는 건 너무 모험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연기라는 것이 한 사람이 잘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상대역들이 같이 받쳐주지 않으면 제 아무리 베테랑 연기자들도 같이 망가질 수 있는 게 연기가 아닌가. 

실제로 <그거너사>에서 여주인공 윤소림 역할을 맡은 조이의 연기 문제는 첫 회부터 드러났다. 사실 이 역할은 결코 쉽지 않은 연기를 요구한다. 처음 만난 윤소림에게 돌직구 호감을 표현하며 다가가는 모습은 잘못 연기하면 뜬금없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첫눈에 반한다”는 걸 믿느냐는 식으로 툭 던지며 들어오는 윤소림이 공감가려면 그 캐릭터가 본래 그런 성격이라는 걸 충분히 납득시켰거나 강한결과의 우연적 관계 속에서 그녀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근거를 확실히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거너사>는 대본을 통해 윤소림이라는 캐릭터에게 그런 정도의 인상적인 캐릭터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아 무대 공포증이 있고,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자라 공부 빼고는 뭐든 열심히 하는 성격이며,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 정도가 그녀가 그나마 보여준 캐릭터였다. 

역할 자체가 쉽지 않은데 그걸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조이가 해낸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이가 연기를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미숙함을 드러낸다. 어떨 때는 지나칠 정도로 방긋방긋 웃고, 어떨 때는 또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이런 감정 표현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캐릭터의 심경과 어울려 어떤 공감대 속에서 조절되지 않으면 안정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캐릭터가 너무 감정변화가 급박하게 마구 드러나는 듯 보이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조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인 연기자들이 비슷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 채유나 역할의 홍서영도 그렇고, 강한결과 같은 크루드플레이 멤버이면서 대립각을 세우는 기타리스트 이윤 역할의 신제민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연기는 화를 내는 장면에서도 소리만 지를 뿐 그것이 감정적인 공감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물론 이런 과감한 신인 캐스팅을 했다면 대본과 연출이 이들의 이미지와 성격 등을 충분히 분석해 그걸 캐릭터와 맞춰주는 작업을 했어야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본도 자연스러운 흐름보다는 우연적 요소들이 겹쳐져 덜컥되는 느낌이 강하고, <라라랜드> 같은 뮤지컬적 요소를 가미하려 시도한 연출은 어색하다. 

연기에서 대본, 연출까지. <그거너사>는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1.5%(닐슨 코리아)로 초라하게 시작한 시청률이 2회에 1.3%로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다. <또 오해영> 같은 작품으로 tvN 드라마가 월화 시간대에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던 그 때를 떠올려보면 <내성적인 보스>에 이어 <그거너사>로 이어지는 난국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의 무모한 모험으로는 그간 애써 힘겹게 쌓아놨던 tvN 드라마의 이미지만 깎아먹을 뿐이니.

<내성적인 보스>, 스토리는 과했고 연기는 부족했다

 

티저 예고편이 준 기대감은 어째서 조금씩 허물어져 갔을까. tvN 새 월화드라마 <내성적인 보스>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직원들이 퇴근하지 않아서 그 눈치를 보느라 퇴근 못하는 보스. 그 상황을 보며 그 이야기가 나 같다는 팀장들도 꽤 있었을 법 하다. <내성적인 보스>는 이처럼 이 주인공 캐릭터가 주는 우스꽝스런 모습에 대한 묘한 공감대 위에서 빵빵 터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내성적인 보스(사진출처:tvN)'

하지만 <내성적인 보스>의 첫 회는 그 스토리의 과함으로 인해 오히려 몰입이 잘 되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시작부터 건물 옥상 위에서 투신자살하는 채지혜(한채아)의 모습은 별다른 설명 없이 툭 던져졌고, 그것이 결국 주인공인 은환기(연우진)의 내성적인 성격(사실 이건 내성적이라기보다는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의 이유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걸 후에 암시하게 해줬다. 그가 채지혜의 동생인 채로운(박혜수)이 뮤지컬을 할 때마다 꽃다발을 가져다 줬다는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상큼 발랄하고 웃음이 빵빵 터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게 하는 작품에서 시작부터 투신자살 신을 보여주는 건 과도한 시선끌기처럼 보였다. 물론 그 후 이어진 브레인 홍보회사의 대규모 오페라 홍보를 따내기 위한 PT에서 은환기와 그의 친구이자 공동대표인 강우일(윤박)의 흥미로운 관계가 등장했다. 사실상 천재적인 능력으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건 은환기였지만 누구 앞에 나서는 걸 하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강우일이 사실상의 대표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

 

그렇지만 이런 캐릭터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PT 신에서도 역시 과도한 상황 설정이 눈에 띄었다. PT 자리에서 보고서를 찢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PT를 하는 장면은 과장되게 그려졌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다는 전제는 1시간 전 은환기가 메모로 간략하게 적어준 새로운 PT 콘셉트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과한 장면들을 빼놓고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납득가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내성적인 보스>는 전반적으로 스토리나 캐릭터에 있어서 너무 과한 상황들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예를 들어 채로운에게 꽃다발을 전해주며 팬입니다라고 말하러 가는 도중 마침 그녀의 차를 들이받은 은환기가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차창도 내리지 않고 도망치는 장면이나, 그를 회사까지 추격해 와 사장실에 난입해 서랍을 뒤지는 채로운의 이야기는 현실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신입사원이 이런 행동을 마구 할 수 있겠나.

 

게다가 신입사원 환영회처럼 벌어진 회식자리에서 사장인 강우일에게 채로운이 거의 반말에 가깝게 말을 건네며 순식간에 친해지는 장면도 쉽게 납득되기 어렵다. 결국 이런 납득되지 않는 과한 상황 설정들의 반복은 심지어 채로운을 연기하는 박혜수의 연기력 논란으로까지 불거지고 있다. 제 아무리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이 상황을 연기한다고 해도 그걸 납득시키기는 어려웠을 게다. 비현실적인 상황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성적인 보스>는 이런 과한 상황 설정 자체를 코미디 특유의 과장으로 연출하려 의도했을 수 있다.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었지만 그것을 아예 코미디 설정이라고 내놓고 보여주려 했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연출에 있어서 더 현실을 뭉그러뜨리는 만화적 연출법이 들어가거나 연기에 있어서 대놓고 캐릭터를 과장하는 연기가 들어갔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대본과 연출, 연기의 조화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코미디적 상황을 의도한 대본이었을 수 있지만 연출은 좀 더 과감하지 못했고 연기는 그걸 받쳐줄 만큼 능숙하지 못했다. 결국 스토리는 과하고 연기는 부족하게 느껴진 건 그래서다. 첫 회 만에 연기력 논란까지 갖게 되었지만 <내성적인 보스>는 향후라도 어떤 하나의 선택을 해서 이 문제를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출을 과감하게 하던가, 다소 과한 설정의 대본을 피하던가. 그나마 괜찮았던 로맨틱 코미디의 기대감을 되살리려면.

<씬스틸러>, 즉흥 상황극 예능의 진화

 

어떻게 저런 애드리브를 하지? SBS <씬스틸러-드라마전쟁(이하 씬스틸러)>의 대본은 대부분 비어있다. 기본 상황은 제시되지만 그 안은 온전히 배우들이 채워야 하는 것. 김신영과 황석정 그리고 최은경과 함께 만들어가는 하녀들에서 이규한은 끝없이 난감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어졌다. 불륜 관계인 김신영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본부인 역할의 최은경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상황극을 막장으로 몰아가자 이규한은 숨기던 상황들을 모두 털어놓는 것으로 반전을 꾀한다. 하지만 김신영도 최은경도 모두 떠나버리고 남은 하녀 황석정이 숨겨놓은 아들이라며 김병옥을 데리고 오자 결국 충격에 빠진다. 그렇지만 이규한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김병옥에게 담배 피우냐며 사랑의 매를 때리는 것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씬스틸러(사진출처:SBS)'

이라는 상황극에서는 조직원으로 들어간 경찰 역할을 한 김정태가 역시 씬스틸러다운 순발력을 보여줬다. 경찰임을 의심하는 상황들이 계속 제시됐지만 김정태는 그 때마다 특유의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가방에서 수갑이 발견되자 이런 말까지 안하려고 했는데, 내 아내가 묶는 걸 좋아한다며 오히려 화를 내고, 보스의 여자로 강예원이 등장해 너 나 사랑하기는 했냐고 묻자 사모님 약하셨습니까?”하고 응대하는 김정태는 어쩌면 <씬스틸러>라는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인물이라는 걸 보여줬다.

 

본격 상황극의 이런 묘미는 이미 맛보기로 출연자들에게 제시된 몰래 드라마에서 예고되었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자기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출연자들은 놀랍게도 금세 몰입하여 상황을 반전시켰다. 가장 센 상황극으로 이규한과 동성애 설정으로 투입된 정준하는 등장하자마자 그의 뺨을 때리며 그가 바람을 피웠다고 몰아세웠지만, 이규한은 거꾸로 정준하의 뺨을 때리면서 네가 먼저 다른 남자를 만났지 않냐고 말함으로써 상황을 뒤집었다.

 

사실 이런 즉석 상황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신동엽, 김원희가 해서 화제가 됐었던 <헤이헤이헤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또 <해피투게더-프렌즈>에서 유재석과 이효리가 했던 프렌즈 극장역시 이러한 즉석 상황극으로 웃음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씬스틸러>가 다른 점은 예능인이 아닌 진짜 연기자들, 그 중에서도 진짜 씬스틸러들이 직접 출연한다는 점이다.

 

물론 양세형이나 김신영, 정준하 같은 예능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다. <씬스틸러>가 집중하는 건 놀라운 애드리브를 보여주는 실제 씬스틸러들의 연기다. 순간적으로 상황에 몰입하고 때로는 공격적인 대응으로 그 상황을 뒤집는 묘미를 선사한다. 그건 웃기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진짜 상황극 속에 몰입해서 보여주는 연기의 흥미로운 세계를 슬쩍 보여주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파일럿팀과 레귤러팀 이렇게 팀이 나뉘어져 한 팀은 대본을 공유하고 다른 팀의 연기자 한 명을 몰아세우는 대결구도는 상황극의 몰입을 더 깊게 만들어낸다. 대본팀은 씬스틸러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이고 그 속에서 씬스틸러는 자연스럽게 자신 속에 있는 연기의 잠재성들을 끌어낸다. 이건 실제로 연기를 배우는 이들이 종종 연습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씬스틸러>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프로그램이다. 그 하나는 놀라운 연기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서 슬쩍 슬쩍 드러나는 실제 상황의 난감함이 만들어내는 웃음이다. 과거의 상황극 설정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여줬던 것이 주로 후자에 대한 것이었다면 <씬스틸러>는 여기에 연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전자의 재미를 붙임으로써 훨씬 진화된 형태를 만들었다. 연기와 실제 사이에서 피어나는 놀라움과 웃음. 물론 첫술에 배부르진 않겠지만 <씬스틸러>의 첫발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시그널>의 김원석, <응답하라>의 신원호, <태양의 후예>의 이응복

 

물론 사극 같은 경우는 이병훈 감독처럼 연출자가 키를 쥐는 경우도 있었지만, 드라마의 키는 오랫동안 작가들이 쥐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드라마가 시작하면 으레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다름 아닌 작가였고 연출자는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가만큼 연출자의 몫이 주목되고 있다.

 

'김원석 감독(사진출처:tvN)'

tvN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는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 작품이 잘 된 것이 김원석 감독의 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대본도 훌륭했지만 김은희 작가는 그것을 완성도 높은 연출로 빛나게 해준 김원석 감독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의례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시그널>의 스타일이나 연출은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김워석 감독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복고적인 질감을 멋스럽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런 스타일은 <시그널>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결코 쉽지 않은 이 장르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tvN <응답하라 1988> 역시 마찬가지다. 이우정 작가 팀이 만들어낸 훌륭한 대본이 있었지만 이를 완성도 높게 연출한 신원호 감독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자칫 잘못하면 시트콤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코미디적인 재미와 진지한 정극의 느낌을 골고루 살려낸 신 감독의 연출은 이번 작품은 물론이고 <응답하라> 시리즈에 대한 신뢰 또한 높여놓았다.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KBS <태양의 후예> 역시 이응복 감독의 연출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특성상 액션에 재난까지 블록버스터적인 스케일을 담아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드라마 연출이다. 그럼에도 이응복 감독은 블록버스터의 볼거리를 충분히 그려내면서도 그 안의 인물들의 감정 선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연출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최근 들어 이처럼 드라마에서 대본만큼 연출에 대한 지분이 많아지고 있는 건 드라마들의 변화 때문이다. 즉 지금의 드라마들은 과거처럼 대사 위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하다못해 tvN <또 오해영> 같은 멜로드라마도 대사만큼 중요한 게 인물의 심리를 담아내는 영상 연출이다. 그러니 <시그널> 같은 장르드라마의 경우에는 영상 연출의 몫이 훨씬 커진다.

 

이른바 때깔이 나는 드라마와 그렇지 못한 드라마가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예를 들어 MBC <몬스터><굿바이 미스터 블랙> 같은 드라마는 연출이 좀 더 공을 들였다면 훨씬 괜찮은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KBS <국수의 신> 같은 경우는 그나마 연출이 영상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대본이 가진 심지어 막장에 가까운 자극성들을 상당히 무마해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연출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는 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져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제 인물과 대사만으로 시청자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완성도 높은 연출이 그려내는 그 드라마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분위기는 이제 드라마 성패의 중요한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다

<무림학교>, 연출, 연기, 대본 뭐 하나 건질 게 없네

 

이건 혹시 병맛이 아닐까. 아마도 KBS의 새 월화드라마 <무림학교> 첫 회를 보던 시청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 이현우 같은 배우가 나온다는 것으로 호의를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하지만 보통의 시청자라면 어땠을까.

 


'무림학교(사진출처:KBS)'

한 아이를 안고 도주하는 황무송(신현준)이 그를 추격하는 일단의 사내들과 벌이는 일전은 이 드라마가 현대적 시점에 무협장르를 섞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누구이고 황무송은 왜 사내들에게 쫓기고 있는가 하는 이 첫 도입부의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첫 회가 다 끝나기까지 아무 것도 드러난 게 없었다.

 

물론 첫 회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의 맥락 없이 캐릭터만을 보여주는 건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아이돌 가수 윤시우(이현우)와 상해그룹 왕하우 회장의 아들 왕치앙(홍빈) 그리고 무림학교를 다니는 심순덕(서예지)과 황무송의 딸 황선아(정유진)를 한 명씩 소개하는 장면들은 이야기는 없고 보여주기 일변도였다.

 

뜬금없이 웃통을 벗고 상체 복근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회장 아들의 그렇고 그런 위세를 보이는 장면, 아이돌 가수를 음모에 빠뜨려 추락시키는 소속사 이야기, 그리고 생계를 책임지며 일을 전전하지만 그래도 씩씩하고 명랑한 여주인공. 어디선가 봤던 클리쉐들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장면들이 반복됐다.

 

이렇게 현실감 떨어지는 이야기라면 그것을 안착시킬 무게감 있는 캐릭터 하나 정도는 필요할 테지만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야기는 허공으로 떠버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시장을 의식한 듯 끝없이 이어지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소재들은 보기에 불편할 정도였다. 상해그룹 회장 아들이지만 괜스레 중국어를 해대고, 무협물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이어지며, 거기에 중국 팬들이 관심 있을 아이돌 가수라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하겠다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그것도 일단은 작품이 먼저 어떤 이야기가 된 후에야 생각할 문제다.

 

이야기의 맥락이 뚝뚝 끊기는 대본과 현실성을 별반 느끼기 어려운 과잉된 연출. 그 속에서 이현우 같은 괜찮은 배우라고 해도 좋은 연기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게다. 그러니 왕치앙 역할을 하고 있는 홍빈처럼 연기 경험이 일천한 배우는 심지어 발연기에 가까운 어색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현우처럼 괜찮은 배우를 이런 정도로밖에 보여주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학원물과 무협물의 퓨전은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화산고> 같은 작품이 그것을 시도했던 바 있다. 하지만 이 가상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학원무협물이 조심해야 할 것은 너무 가벼운 이야기로 연출하기 시작하면 만화처럼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무림학교>는 그 첫 회만 봐서는 구성이 허술한 만화 같은 느낌이다. 현실성도 그렇다고 판타지도 강렬하지 않은 어정쩡한 클리쉐 흉내 내기만 가득하다.

 

동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척사광이라는 무술의 고수의 정체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됐다. 거기에도 무협적인 요소들은 어김없이 들어갔다. 칼 위에 물이 채워진 잔을 올려놓고 무술 수련을 하는 이방지(변요한)의 이야기는 현실적인 이야기일 수 없지만 팽팽한 극적 구성의 이야기 속에서 잘 만들어진 연출을 통해 보여짐으로써 시청자들을 감탄시켰다.

 

<육룡이 나르샤>는 무협 장르가 섞여 있지만 그건 중심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무협의 이야기가 중심일 수밖에 없는 <무림학교>와 비교해보면 천지 차이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결국 <무림학교> 첫 회는 결코 의도된 병맛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 장면에서 웃음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잔뜩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그 총체적 부실에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엔젤아이즈> 용두사미가 드러낸 구혜선의 한계

 

마치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다. <엔젤아이즈>의 구혜선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드라마 초반부에만 해도 <엔젤아이즈>에서 수완 역할을 하는 구혜선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그것은 지금껏 출연하는 작품마다 연기력 논란을 불러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동주(이상윤)가 다시 돌아와 만나는 장면에서 수완이 흘린 눈물은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와 닿았다.

 

'엔젤아이즈(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러한 호평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서서히 꺾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종반으로 와서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구혜선의 연기력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심지어 표정 연기가 마네킹 같다는 얘기에서부터, <엔젤아이즈>가 재밌었던 것은 초반 아역으로 나왔던 강하늘과 남지현 때뿐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무엇이 같은 작품의 같은 캐릭터와 연기자에 대해 이런 극과 극의 반응을 만든 것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설득력이 없고 관성적으로 흘러간 <엔젤아이즈>의 스토리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초반에 <겨울연가>를 떠올리게 하는 절절한 멜로가 시선을 집중시킨 데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도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충분히 유발해냈다. 게다가 의사라는 직업과 119 구조대원이라는 직업이 만나 이루는 긴박한 상황이 향후 이야기 전개에서 더 흥미진진한 사건을 만들어낼 거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졌다. 중반을 지나오면서 이야기는 수완과 동주의 지지부진한 사랑과 그것을 반대하는 수완의 아빠 재범(정진영)의 통상적인 멜로 구도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동주의 어머니를 누가 죽였는가 하는 미스테리도 상식적인 전개 속에 긴장감이 사라져버렸다. 재범이 죽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지운(김지석)의 모친인 병원 이사장 오영지(정애리)의 짓이었고 또 알고 보니 지운이 동주 어머니의 뺑소니범이라는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지만 그것이 충격적이라기보다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었다.

 

결국 지운이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이 동주의 어머니를 죽였다 거짓 자백을 하고, 그 때 오영지가 나타나 사실은 자신이 그랬다는 걸 밝히는 과정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스런 느낌이 강했고, 재범이 동주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수완이 다시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또 그 오해가 풀린 후 다시 앞을 보게 되는 이야기도 그다지 극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이렇게 된 것은 이야기가 너무 개연성 없는 인위적인 전개로 흘러가거나 혹은 누구나 쉽게 예상하는 상식적인 진행으로 흘러간 것에서 생겨난 결과다.

 

이렇게 되니 드라마가 미스테리와 멜로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미스테리가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시켜주고 멜로가 그 달달함과 절절함으로 연결될 때 두 장르는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엔젤아이즈>는 미스테리든 멜로든 그 양자가 각각 따로 놀면서 지리멸렬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완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을까. 수완은 시력을 잃고 수동적인 캐릭터에 머물더니 다시 시력을 되찾고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전락했다.

 

구혜선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이 혹평으로 이어진 것은 이러한 드라마 대본이 가진 부실과 그 캐릭터의 흔들림이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 구혜선의 연기력이 출중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캐릭터에 따라 호평과 혹평을 오가는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구혜선이라는 연기자가 가진 한계다. 물론 캐릭터는 좋은 연기를 만들어내는 전제조건이지만 구혜선은 그 캐릭터의 힘에 여전히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엔젤아이즈>는 소재적으로 대단히 아까운 작품이다. 어느 순간 배경으로 전락되어버린 소방대원들의 이야기가 그렇고, 좀 더 절절하게 가슴을 울릴 수 있었던 수완과 동주의 사랑이야기도 아쉬움이 남는다. 각각으로 흩어져버린 소재들이 한데 얽혀들 수 있는 좀 더 치밀한 스토리가 구성되고 인물에 대한 좀 더 깊은 탐구가 있었다면 꽤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진범이 밝혀지고 수완이 눈을 뜬 상황으로 이미 드라마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다음 회는 이 드라마의 부실한 구성과 지지부진함을 잘 말해준다. 어쩌다 이런 용두사미에 이르렀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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