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이런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는 것만으로도 뭉클하다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른바 ‘북풍’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째서 선거 임박해 ‘북한의 도발’이 벌어지고 어김없이 일간지에 마치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대서특필되었나. 영화 <공작>은 아마도 1990년대 말 대선 과정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총풍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그리 생소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당시 ‘흑금성 사건’으로 ‘북풍’의 실체가 드러났던 그 사건을.

<공작>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해석과 연출은 들어있지만 ‘흑금성 사건’의 현실적 자료들의 대부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워낙 흑금성이 실제로 해온 대북 공작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틱해 특별한 이야기를 첨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관객들을 몰입시킬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액션이 있는 영화도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보게 만드는 힘은 그 실제 이야기에서부터 나온다.

북핵 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시점에 대북 공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박석영(황정민)은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의 외화조달을 책임지고 있는 간부 리명운(이성민)을 만난다. 그리고 실제로 대북사업으로 진행되었던 남북 합작 광고 사업을 두 사람은 공조해 진행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박석영은 본래의 목적이었던 영변의 핵시설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북한의 정보들을 안기부에 넘기는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 

<공작>의 팽팽한 긴장감은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까지 들어가 김정일 당시 위원장까지 만나게 되는 박석영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일 분 일 초들이 만들어낸다. 그와 함께 김정일의 허락을 받아내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공동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 리명운은 박석영과 기묘한 동지적 관계를 맺게 된다. 남과 북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서게 되지만 ‘새로운 남북관계의 시대’를 희망하는 두 사람의 의지는 그들을 위협하는 양국의 세력들(?)과 대결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처음에는 박석영와 리명운이라는 인물을 통해 남북이 대결구도로 등장하지만, 차츰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가 되어가고 대신 남북 각국의 또 다른 세력들이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뀌어간다는 점이다. 북한의 리명운을 위협하는 건 정무택(주지훈)으로 대변되는 군부세력이고, 남한의 박석영을 위협하는 건 엉뚱하게도 대선이 불리해지자 북풍을 조작하려는 정치인들과 안기부의 공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은 그래서 이 영화의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북풍을 조작하면서까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밀어내려 했던 정치세력과 안기부는 그가 당선됨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른바 ‘총풍사건’이 드러나고 당시 북풍 공작을 했던 안기부 요원은 검거되며, 안기부는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 회담을 제안한다. 그렇게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던 것.

<공작>의 신랄함은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북풍 공작까지 감행했던 시대의 어둠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전까지 또 다시 재연되고 있던 상황들이다.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지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며 과거의 모습으로 퇴행해버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작>이 남북 광고 합작을 계기로 남측의 이효리와 북측의 조명애가 만나는 장면과,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박석영과 리명운의 모습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위원장이 만나던 장면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장면으로 오버랩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작>은 시대의 씁쓸함을 정조준하는 그 신랄함과 동시에 남북이 마주잡은 그 손의 훈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 있는 시대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해지는.(사진:영화'공작')

국밥 한 그릇이 전하는 진심과 거짓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변호인>에서 부산의 돼지국밥집은 중요한 공간이다. 그 곳에서 한때 가난해 막노동판에서 일했던 송우석(송강호)은 밥값을 내지 않고 도망친다. 그 돈으로 헌책방에 맡겨둔 자신의 고시 서적을 되찾은 그는 열심히 공부해 결국 고시에 합격한다. 판사로 활동하다 접고 돈이나 벌자며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돈을 좀 만지게 되었을 때 그는 가족과 함께 그 국밥집을 찾아가 과거 그 날의 일을 사죄하며 빚을 갚으려 한다. 그러자 국밥집 아주머니 순애(김영애)는 극구 마다하며 그런 빚은 다리와 얼굴로 갚는 것이라 말한다.

 

사진출처:영화 <변호인>

그저 밥 먹고 술 마시는 식당의 아주머니가 아니라 지친 이들을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의 정으로 풀어내주는 순애는 만인의 어머니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송우석의 성공을 마치 자기 자식의 성공처럼 축하해주고 그런 순애를 송우석 역시 한번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을 정도로 어머니처럼 여긴다. <변호인>에서 국밥집은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훈훈하게 서로의 마음을 껴안는 공간으로 상징화된다.

 

그 국밥집 아들인 진우(임시완)는 그래서 송우석에게는 그저 국밥집 아들이 아니라 마치 친조카 같은 존재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강제 연행되어 무려 두 달이나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고문을 당하고 그 고통에 못 이겨 거짓진술을 했다는 건 그래서 송우석이 그의 변론을 맡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거창한 정치적 이유가 아닌 지극히 가족적이고 인간적인 이유가 송우석의 변화를 대중들이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가족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낸 순애의 돼지국밥집은 중요하다. 여기서 국밥집은 이념이나 위치와 상관없이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는 진심을 상징한다.

 

국밥집이라는 서민적인 공간은 물론 이처럼 훈훈한 정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때로는 그것이 거짓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선거철 깜짝 시장을 방문해 평소에는 잘 먹을 것 같지도 않는 국밥을 훌훌 먹는 장면을 애써 연출하는 후보자들이 그렇다. 이런 경우 국밥집은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공간으로서 활용된다. 우리는 실제로 이것을 <MB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에 즈음해 만들었던 광고에 등장했던 국밥집 풍경. 욕쟁이 할머니가 국밥을 퍼주며 경제만은 살리라고 일갈했던 그 공간. 하지만 <MB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는 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국밥을 떠먹는 후보자의 모습이 가감 없이 보여지기도 했다. 물론 거기 등장한 욕쟁이 할머니 역시 실제 인물이 아닌 연기자라는 게 드러나 마음 한 구석을 씁쓸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광고는 연출된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속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시 이 후보자의 연출을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가 광고에서 메시지를 던졌던 대로 서민 경제를 살렸는가 하는 점이 중요할 게다. 그것이 후보 광고에 담겨진 국밥 한 그릇의 진심과 거짓을 설명해주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MB의 국밥이 진심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는 대중들이 판단할 문제다. 물론 그 답이 대체로 일치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MB의 추억>이 나왔을 때 대중들은 오랜만에 웃음을 터뜨렸다.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했지만 그 영화는 거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당대 현실이 얼마나 코믹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변호인>이 나왔을 때 대중들은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라고 했지만 그의 삶은 거의 영화처럼 극적이었다. 당대 현실이 얼마나 한 삶을 첨예하게 만들었는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거기 두 개의 국밥이 등장한다. 진심이 듬뿍 담겨진 국밥과 거짓으로 채워진 국밥. 어떤 국밥이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가. 또 어떤 국밥이 먹고 싶은가. 현실의 허기를 채워줄 따뜻한 국밥 같던 그 분이 너무나 그립다.

너무 많은 사건들, 김대희표 체념의 공감

 

작년 대선에서 5060세대들이 한 목소리를 내며 그 투표의 힘을 보여줬을 때, 2030세대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멘붕”이었다. 그토록 많은 SNS 상에서의 결집된 젊은 목소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온 정반대의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 SNS 상에서 떠도는 농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개그콘서트>의 ‘어르신’ 코너에 등장하는 일명 ‘소고기 할아버지’ 김대희의 목소리를 딴 것이었다. “○○○가 당선되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먹겠제...”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사실 이 ‘소고기 할아버지’가 그토록 임팩트 있는 개그라고 처음부터 생각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비슷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며 “소고기 사먹겠제-”를 연발하는 것으로 얼마나 그 개그가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김대희의 목소리는 점점 더 대중들을 빨아들였다. 이미 한 생을 거의 다 살아서 이제 큰 기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소고기 할아버지의 체념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대체 이 기이한 힘은 어디서 온 걸까.

 

대선 이후 자신이 투표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나머지 48%의 멘붕에 이어, 마치 상징적인 사건처럼 ‘웃음 전도사’였던 황수관 박사가 별세했다. 그리고 2013년이 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연초가 되자마자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과 논란이 쏟아져 나왔다. 김태희와 비의 열애설은 비의 군복무가 불성실했던 것이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졌고 그건 또 연예사병이란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찬반논란으로도 번졌다.

 

오연서와 이장우의 열애설이 터지면서 엉뚱하게도 프로그램에 불똥이 튀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중, 또 놀라운 비보가 전해졌다. 고 최진실씨의 전 남편이었던 조성민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최진실, 최진영 그리고 조성민까지 이어진 이 불행의 가족사는 남아있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2013년이지만 너무 많은 사건들이 쏟아진 느낌이다.

 

‘소고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들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시끄럽고 슬프고 아픈 현실의 소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와 관련이 있을 게다. 인생을 달관한 자의 체념의 목소리. 마치 당장 죽을 것처럼 힘겨워하고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냐는 듯한 그 ‘소고기 타령’은 의외로 우리를 허허롭게 웃게 만든다. 늘 긴장상태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혹은 생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소고기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리의 그 긴장상태를 관조적으로 비웃음으로써 우리를 이완시켜준다.

 

사실 ‘어르신’이라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는 작년 국민드라마로 추앙받았던 <추적자>의 박근형 캐릭터에서 따온 것이다. 그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로 “욕봐래이-”하고 말하던 박근형의 그 노회함을 김원효가 뒤틀어서 웃음으로 만들어냈던 것. 그 노회함을 비트는 이 개그에서 김대희가 만들어낸 ‘소고기 할아버지’의 달관은 의외의 수확이 되었다.

 

참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니 거의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정신없는 현실들 속에서 때론 화가 나고 때론 슬퍼하고 또 때론 지나치게 행복해 했다면 가끔 저 ‘소고기 할아버지’의 ‘소고기 타령’을 떠올려 보시라. 자칫 염세적으로 되거나 체념을 넘어 비관에 이르면 곤란하겠지만, 잠시 동안의 ‘소고기 타령’ 생각은 마치 가끔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숨처럼 우리를 위안해줄 것이다. 너무나 복잡한 세상, 바로 그것이 소고기 할아버지에 점점 공감하게 되는 이유일 테니 말이다.

<개콘> 풍자를 바라보는 두 시선

 

<개그콘서트>의 날선 풍자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 <갑을컴퍼니>의 최효종, 새 코너인 <고스톱>의 김기열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가 그 포문을 열었다. <갑을컴퍼니>에서 최효종은 투표에 있어서 공약만 난무했지 실제 된 일은 없다며 늘 국민들이 을인 이유를 밝히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제발 국민 갑갑하게 하지 말고 국민 모두 갑으로 만들어 달라."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새롭게 시작한 코너인 <고스톱>의 김기열은 우유부단한 국회의원으로 등장해 끝없이 말을 바꾸는 정치인을 에둘러 풍자했다. 한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역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서민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기업들을 위한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면서 “하지만 한 가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코미디’를 지목하기도 했다. “웃기는 것은 자신들이 할 테니 나랏일에나 신경 쓰라”는 것.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늘 하던 <개그콘서트>식의 풍자였지만 여기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들의 ‘용감한(?) 풍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들의 개그가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던 것. 심지어 “코미디는 자신들이 할 테니 나랏일에나 신경 쓰라”는 말을 그대로 뒤집어서 “개그맨들은 개그나 해라 정치는 하지 말고” 식의 반응들까지 나왔다.

 

아마도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풍자의 대상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목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코너의 내용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했다기보다는 오히려 풍자를 통해 “과거와는 달리 잘 해 달라”는 염원을 전한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 전이니 사실 업무에 대해 비판할 내용도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정치인들의 행보를 비판하며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을 뿐이다.

 

이번 대선은 참 많은 숙제를 남겼다. 과거에 지역구도가 정치에 있어서 가장 큰 숙제였다면(이것은 지금도 그렇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기에 세대 구도가 또 하나 겹쳐진 상황이었다. 지역구도는 지역 간의 갈등을 만들지만, 세대 구도는 가족 내에서도 분열을 만들어낸다. 선거가 프레임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세대 구도를 프레임으로 잡는 건 그만큼 부정적인 영향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이런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되면 자칫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너무 다른 시선의 부딪침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함께 보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그저 개그 프로그램의 한 풍자 코너에 대해서 이렇게 날선 공방이 생기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풍자 코너 하나를 보면서도 그걸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사실 좋은 사회라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일 것이다. 개그의 한 표현수단인 풍자가 눈치를 보는 그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개그콘서트>의 풍자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 대상이 누구든.

비참한 삶 속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대선이 끝났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 어느 선거보다 뜨거웠던 대중들의 염원을 느낄 수 있었던 선거였다. 보수 진보와 신구세대로 나뉘어져 팽팽한 대결을 벌였지만 그 공약이 전하는 내용들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로 양극화 문제 해결, 반값등록금 실현과 청년 실업 해결, 대기업의 횡포로 사라져버린 골목 상권 부활 등등. 그것이 보수 진보와 신구세대를 넘어선 작금의 민심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 <레미제라블>

대선이 치러진 날 <레미제라블>이 개봉되었다.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레미제라블>은 이 날에만 전국 28만 3887명의 관객을 동원 누적 관객수 34만 3094명을 기록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치고 이 영화를 봤을 것이다. 이미 고전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은 어떤 희망을 꿈꾸었을까.

 

<레미제라블>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후의 비참했던 민중들의 삶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목부터가 <레 미제라블 Le Miserable> 즉 ‘비참한 사람들’ 혹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무려 19년의 감옥살이를 지낸 장발장, 병을 앓고 있는 코제트를 위해 몸까지 팔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 불쌍한 여인 팡틴, 고아나 다름없이 갖은 구박과 착취를 겪으며 살아가는 코제트가 그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이 가난과 비참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는 도시, 그 끝없는 고통의 그늘 속에서 마리우스 같은 혁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기득권을 가진 아버지를 부정하고 이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하지만 혁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거리 시위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결국 혼자만 장발장에 의해 살아남게 된 마리우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마리우스를 위로하고 감싸 안는 건 바로 연인 코제트와 그 사랑을 이뤄준 장발장이라는 위대한 인간의 헌신이다.

 

<레미제라블>은 최근 우리 문화계의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뮤지컬 영화가 개봉되었고, 뮤지컬은 우리말로 초연되었다. 5권으로 완역된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있고 심지어 다시 돌아온 피겨 여왕 김연아의 프리 프로그램의 새 레퍼토리가 바로 이 작품이다. 왜일까. 도대체 15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이 걸작이 지금 우리 시대와 맞닿은 지점은. 그것은 아마도 20세기, 자본이 그려낸 지구의 미래가 양극화라는 위기의식을 가져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돈이면 사람도 서슴없이 거래되는 이 비참한 시대에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런 삶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희망이다. 도둑질을 한 장발장을 끌어안아 그 영혼을 구원한 미리엘 주교의 삶은 바로 그대로 장발장에 의해 반복된다. 한 사람에게 준 희망의 촛불이 다른 여러 사람의 희망을 비춰주는 빛이 되었던 것.

 

원작에서 장발장은 죽어가며 이런 말을 남긴다. “죽는 건 아무 것도 아니야. 무서운 건 진정으로 살지 못한 것이지.” 세상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절망할 건 없다. 스스로 진정 인간다운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니까.

 

대선은 끝났고 당락은 결정됐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었든, 아니면 그렇지 못했든 그 과정에서 지금 이 땅의 대중들의 염원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그 염원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게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는 일이다. 저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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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올해의 대중문화 콘텐츠들

 

대선이 있는 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대중문화 자체가 본래 대중들의 정서와 염원을 담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미 대선은 끝났고 그 결과도 나왔지만, 그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그 과정이 담고 있었던 대중들의 염원일 게다. 올해의 어떤 작품들이 대중들의 어떤 정서를 담아내고 있었을까.

 

'추적자'(사진출처:SBS)

올 전체 드라마 중 가장 돋보였던 작품으로 지목받는 것은 단연 <추적자>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국민드라마’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것은 과거 시청률 몇 프로를 넘었을 때 붙이던 그런 호칭이 아니라,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냈다는 의미의 호칭이었다. <추적자>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번 대선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양극화의 문제라든가, 사회 정의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이다.

 

백홍석(손현주)이라는 서민 가장을 대변하는 인물과 강동윤(김상중), 서회장(박근형) 같은 이른바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대결구도가 양극화에 허덕이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흥미로운 건 드라마 말미에 절정 부분에 들어간 내용이 대선이었다는 점이다. 작가의 염원이 들어간 것일 게다. 투표로서 세상을 바꾸고픈 대중들의 의지를.

 

영화에서 대중들이 소망하는 리더십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은 <광해>일 것이다. 올해 1천2백만여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늘 대선에 즈음해 리더십을 다루는 작품이 주목을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광해>는 기존 왕의 리더십을 다루던 사극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백성을 살피는 성군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백성 중 하나가 그 왕 역할을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것은 다분히 SNS로 대변되는 대중정치 시대의 달라진 대중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즉 왕이나 정치인보다 더 뛰어난 일개 광대를 왕의 대리 역할로 세움으로써 정치란 그렇게 복잡한 역학관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행하는 것이란 걸 잘 보여주었다. 이것은 지금 대중들이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정치적 행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광해>가 대중들을 통쾌하게 했던 것은 바로 그 명쾌한 상식(일개 광대도 알고 있는)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성군이 되는 정치의 세계를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서 가장 청춘들의 문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은 <마의>일 것이다. 겉으로 보면 출생의 비밀을 안고 마의로 자라난 백광현(조승우)이 인의가 되어가는 성장담을 그린 전형적인 퓨전사극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는 지금 현재의 청춘들과 맞닿아 있다. 출생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조선사회는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나 스펙사회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정치하는 자들의 끝없는 모략과 편견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는 백광현이 그 장애물들을 하나 하나 넘어가며 성장하는 모습은 아마도 작금의 청춘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판타지가 될 것이다. 스펙을 넘어서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는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그런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고 있는 작금의 청춘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잘못된 구조에 대한 비판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의>다.

 

한편 이정희 전 대선후보가 대선토론에서 언급해 화제를 모았던 <청담동 앨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는 없다.” 그녀가 언급한 극중 이 대사는 역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양극화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와 자신이 태생부터 결정되어버린 가진 것으로는 도무지 넘어설 수 없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그 세계를 경험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국 이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들을 건드리고 있다. 아마도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어디 위로받을 곳 하나 없는 대중들은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잠시 동안의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선의 결과가 나왔다. 누가 당선이 되었고 당선되지 못했다고 해도 이 대중들의 소망이나 염원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모쪼록 이 소망들이 실현되는 세상이 오기를.

<런닝맨>과 <남격>, 투표 소재 참신하네

 

‘모든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 하였거늘, 뽑아준 백성들의 은혜는 잊은 듯, 그래도 백성들에겐 언제나 투표의 힘이.’ <런닝맨> 왕의 전쟁 편에 나온 이 짧은 자막은 대선에 즈음하여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게임 속에서 잘 표현해냈다. 이름표를 떼도 죽지 않는 왕과 오로지 투표를 통해서만 왕을 바꿀 수 있는 백성의 대결. <런닝맨> 특유의 게임으로 보여진 1시간 반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대선을 앞두고 있는 유권자들에게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왕(王)자를 완성해 가는 ‘맛 대 맛 선택 레이스’는 최종 대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후보들의 레이스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예능적으로 장작을 패고, 기와를 깨고, 콩을 옮기고, 브로콜리를 멀리 불어 보내는 경기를 통한 은유였지만 막판에 한효주와 이광수가 왕 유력후보가 되어 양자대결을 벌이는 모습은 작금의 대선 구도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왕의 전쟁’이라는 본격적인 게임에서 왕과 백성의 대결을 그린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것이 대결구도를 이루는 것은 권력 관계 때문이다. 왕은 백성들의 투표에 의해 뽑혀지지만 막상 왕이 되서는 백성들을 잡아먹는 권력자로 변모한다. 초대 왕(?)이 된 광수는 권좌에 올라 이렇게 말한다. “왕을 시해하고 이름표를 떼려했던 그 모든 역적들. 투표를 통해 왕이 되고 싶어하는 나의 왕 권력을 탐하는 자들. 내 반드시 하나하나 잡아내서 기필코 뿌리째 뽑아 버릴 것이다. 나는 광해다. 김종국 넌 죽었다.”

 

물론 웃음을 위해 설정된 연기지만 왕의 변심은 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을 잘 드러내준 말이다. 이것은 투표에 의해 교체된 새로운 왕 한효주나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백성으로서는 도망 다니기 바쁘다가 막상 왕이 되자 걷는 태도나 말투부터 바뀌는 그 모습은 보는 이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결국 투표용지를 찾아서 새로운 왕으로 바꾸라는 이 <런닝맨> 게임의 룰은 왕을 견제할 수 있는 백성의 유일한 힘이 투표에서 나온다는 걸 말해준다. 이만한 예능의 투표 독려법이 있을까.

 

한편 <남자의 자격>에서는 ‘남자 그리고 절대권력’이라는 주제로 역시 대선에 즈음하여 의미심장한 소재를 선보였다. 즉 새로운 리더를 뽑는 선거를 통해 절대 권력을 잡기 전의 모습과 잡은 후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투표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줬던 것. 투표 전에는 “촬영을 쉬게 하겠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확실한 과거 청산. 과거의 잔재를 모조리 불사르겠다.”고 각오를 보이던 후보들이 막상 리더로 뽑혀 절대 권력을 쥐게 되자 전횡을 일삼는 모습은 웃음 뒤에 쓰디쓴 현실을 실감하게 했다.

 

대선 막판에 즈음하여 <런닝맨>이나 <남자의 자격>이 보여준 것은 결국 투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막상 쥔 권력은 국민을 잊기 일쑤다. 그러니 국민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투표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수밖에. 이번 대선이 그 국민의 힘을 가장 크게 보여준 선거가 되길 기원한다.

방문진 김재철 해임안 부결이 가져올 파장

 

결국 또 <무한도전>을 못 보게 되는 것인가. 사실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대중들도 MBC 파업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힘겨운 현실에 서민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는 게 그나마 방송이기 때문이다. MBC의 <무한도전>이 마치 파업의 상징처럼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대중들은 복잡하고 거창한 정치 이야기보다 소박하게 <무한도전> 같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왜 자꾸 못 보게 되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방송정상화를 위해 선택한 <무한도전>의 불방조차 지지하는 쪽이지만.

 

'뉴스데스크'(사진출처:MBC)

대중들이 갖고 있는 MBC 경영진에 대한 감정은 그 시청률 하락을 통해서도 보여지고 있고, 또 드라마나 예능 같은 MBC 콘텐츠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을 통해서도 보여지고 있다. 제 아무리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대중들은 시큰둥해 한다. 방송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 프로그램에 대해 보이는 대중들의 반응을 보면 방송사로서는 너무 치명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뉴스데스크>가 9시에서 8시로 옮겨진다는 사실 자체가 MBC의 치욕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옮긴 8시 <뉴스데스크>의 일련의 실수들(자막부터 방송사고까지)에 대해 대중들이 보내는 야유는 그 정서를 이해하게 한다.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회가 지난 8일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찬성 3표, 반대 5표, 기권 1표로 부결시켰다는 사실은 이러한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문제는 이 사태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대선 정국에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거라는 점이다. 해임안이 부결된 직후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김충일 방문진 이사에게 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김재철을 지켜라'라는 내용의 압박성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김사장 해임안 가결을 놓고 논의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하금열 실장과 김무성 본부장이 개입하면서 이 논의가 무산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또 야당 측 이사들과 문화방송 노조는 지난 6월 파업을 철회하는 과정에서도 방통위 상임위원들로부터 김사장 퇴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비공개 합의서를 만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당시의 약속들이 손바닥 뒤집듯 하나도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해임안 부결에 대해서 김충일 이사는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고, 하금열 실장 역시 “(김충일 이사와) 통화를 많이 하지만 김재철 사장의 연임과 관련한 전화 통화는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MBC의 문제가 정치권의 이슈로 떠오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대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야권에서 주장하듯이 이번 사태는 대선에도 영향을 줄 여권의 언론장악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대중들의 MBC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 어느 때보다 날이 서 있는 게 사실이다. MBC 관련 기사에 댓글이 1천개씩 달리고 그 대부분은 비판과 성토라는 그 대중정서가 얼마나 나빠져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 잘 모르는 이들까지도 요즘 MBC 왜 그러냐고 말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MBC의 문제가 대선 정국과 긴밀하게 관련을 갖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정치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부담감도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어쨌든 이번 사태로 또 <무한도전>을 못 보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파장은 의외로 대선에서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대중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이 필요한 이유

 

박근혜와 문재인이 출연했을 때, <힐링캠프>는 마치 대선캠프나 된 것처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보통 6%에 머물던 시청률이 12%, 10%를 넘어섰다. 놀라운 수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대선 후보로 지목되던 박근혜는 그간 너무 침묵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그 진면목을 보고 싶다는 대중들의 열망이 있었고, 문재인은 여기저기서 박근혜의 대항마로 지목되는 야권 후보였지만 대중들에게는 덜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 안철수는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대중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물론 <힐링캠프>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문재인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질문에도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낸 반면, 박근혜는 정치적인 질문에조차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힐링캠프>는 토론 프로그램이나 정책비전을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니까. 이것은 이미 <무릎팍도사>를 통해 대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사고 지지를 얻었던 안철수가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안철수는 당시 상식과 비상식을 설파하며 복지, 정의, 평화라는 3대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그의 정치적 소견과 비전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해소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박근혜, 문재인에 이어 안철수까지 연달아 출연한 <힐링캠프>는 다른 정치인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김문수 새누리당 경선 후보가 자신의 출연이 거부된 <힐링캠프>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토로한 것은 이제 방송출연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원하는 방송이 더 이상 <100분토론> 같은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토크쇼 같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

 

이유는 대중 정치의 시대에 대중들과의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들의 언어로 "새우와 고래가 누가 세냐"며 "새우는 깡이 있고 고래는 밥이다"라는 식의 농담도 준비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자신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가 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일반인으로서의 소통일 뿐이다. 그 진솔한 태도는 물론 중요하겠지만 정치인의 소통이란 정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해 보일 때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다. <힐링캠프>가 보여준 소통이란 어쩌면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 소통하는 이미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그 힘이 지대하다는 것은 이들 세 인물이 향후 대선의 3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부터 중요한 건, 이들이 TV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좀 더 자신들의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하는 자리다. 대선이 가까워오고 있고 TV만 켜면 여전히 대선후보들의 행보를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정작 이들이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은 발견하기가 어렵다.

 

최근 KBS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유력 대선 후보 3인의 순차토론을 준비해오다 무산됐다고 한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참석하겠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박근혜 후보쪽은 세 후보의 토론 순서를 추첨으로 정하도록 한 KBS의 제안이 불공평하다며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 측에서 심기가 불편한 것은 이해할만 하다. 그것은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가 단일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단일화 문제에 더 관심이 집중될 수도 있고, 3자 토론을 할 경우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KBS가 제안한 건 3명을 연달아 불러 진행하는 개별 토론이다. 결국 KBS는 박근혜 후보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공정성에 위배될 수 있다며 토론 자체를 취소해버렸다. 공영방송으로서 여당 후보의 눈치 보기를 했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대중들이 이제 40여일을 앞두고 있는 대선주자들의 정치인으로서의 진면목을 보고 소통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그 어느 선거운동보다 뜨거운 것이 바로 TV토론이다. 그 날 그 날의 이슈에 대한 후보들의 정책 대결과 토론은 연일 TV를 통해 미국 전역에 보여지고 그로 인해 지지율이 등락하는 모습은 우리로서는 심지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TV라는 대중매체가 가진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쓸모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도대체 우리네 후보들은 언제쯤 대중들에게 TV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정책적 비전을 보여줄 것인가. <힐링캠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가족 얘기를 하거나, 뉴스를 통해 재래시장을 다니며 악수나 하는 그런 모습 말고 말이다.

'MB의 추억', 유인촌도 울고 갈 명연기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럴 에이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우리는 욕쟁이 할머니가 이렇게 맛깔난 욕을 툭툭 쏟아냈던 이명박 대통령의 당시 선거 광고를 기억한다. 뜨거운 국밥을 연거푸 입에 넣으며 욕을 듣는 이명박 당시 후보. 그런데 욕쟁이 할머니의 욕들은 조금씩 뉘앙스를 바꿔나간다.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 밥 더줘? 더 먹어 이놈아.” 이제 욕은 욕쟁이 할머니의 진술과 행동을 통해 밥이라는 격려로 바뀌게 된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져지는 이 말은 설사 욕먹을 짓을 했더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데 밥이라도 챙겨주자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끌어낸다. 밥은 여기서 표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진출처:영화

기가 막힌 이 이미지 광고는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확고히 심어주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MB의 추억>은 이 광고를 다시 끄집어낸다. 당시 광고에 자막과 함께 내레이션으로 들어간 “이명박은 아직 배고픕니다”라는 말은 그러나 이제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것이 사실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 의지의 배고픔이 아니라,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탐욕의 배고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든 게 거짓 이미지였다.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사실 연기자였고, 광고 속 내용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는 제작진의 칭찬을 들을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산 코미디’라고 붙였고, 그래서 이명박 당시 후보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끝날 때까지 웃음이 빵빵 터지지만 절대 웃을 수만은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MB의 추억>이다. 그 화면 속에는 유인촌 전 장관이 등장해 “지금 우리에겐 영웅이 필요한 시절, 그분은 누구인가”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그 유명한 747공약(7% 성장, 4만 달러 시대, 7대 강국)을 설파한다. 유인촌은 90년에 방영되었던 KBS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드라마는 이명박을 모델로 했다)을 했던 연기자. 그런 그가 ‘영웅의 시대’를 말한다. MBC에서 당시 방영되었다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를 미화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영웅시대>를 끄집어낸 것. 이미지는 그렇게 당시 힘겨웠던 서민들의 눈을 현혹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당시 대선의 풍경을 조목조목 잡아내가며 그것이 일종의 쇼였음으로 상기시킨다. 대선 후보들이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주는 음식을 꾸역꾸역 받아먹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다. 여기서 이명박 당시 후보는 국수를 두 그릇이나 뚝딱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동영 당시 야권 후보가 연설 도중에 한 유권자가 자꾸만 먹으라는 음료를 “연설 끝나고 먹겠다”고 버티는 장면과 병치된 이 국수 시퀀스는 당시의 야권의 무능까지도 포착해낸다. 당시 야권은 이 정치쇼에서 연기조차 출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이명박 당시 후보는 안 해본 것 없는 백전노장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뭐든 다 해봤다고 말하는 그는 풀빵 장수에게 자신이 어설프게 만들어 잘 익지도 않은 풀빵을 서민들에게 건네면서 불이 약하다고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한 순발력이다.

 

‘우리가 강제한 것이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대가를 치르는 거야.’ 이 괴벨스의 어록으로 시작해서 이 어록으로 끝나는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단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를 혐오하고 그래서 무관심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각종 거짓말과 연기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호도되어 치렀던 그 대선이 가져온 대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아픈 꾸짖음을 감독의 목소리가 아니라 당시 선거운동을 하며 소리쳤던 이명박 후보의 목소리로 전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잘한다고 할 게 아니라 지난 5년간 잘했어야지, 어제 못한 사람이 내일 잘할 수 있어요? 정권을 바꿔야 합니다." 이 당시 유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발언은 2012년 <MB의 추억>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온다.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MB의 추억>을 통해 보여주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당시의 이 유세 발언은 지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또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X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문제”라고 한 전여옥 전 의원의 발언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MB의 추억>은 우리에게 거짓말과 명연기로 코미디가 되어버린 당시 대선의 풍경을 아프도록 웃기게 보여준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 명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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