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 사이다 원하는 대중정서 제대로 건드렸다

 

<뉴스룸>에 이어 이젠 <썰전>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JTBC의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들이 약진을 하고 있다. <뉴스룸>의 시청률이 8%를 훌쩍 넘긴데 이어, 115일 방영된 <썰전>은 무려 9.287%(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물론 집계방식이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동시간대 지상파에서 방영된 KBS <해피투게더> 4.7%, SBS <백년손님 자기야> 6.7%, MBC <미래일기> 1.7%를 훌쩍 상회하는 수치다.

 

'썰전(사진출처:JTBC)'

이 날 <썰전>의 대박은 이미 예견된 대로였다. 지난 주 초미의 관심사가 된 최순실 게이트특집을 부랴부랴 마련했던 <썰전>이지만, 이전에 잡혀 있던 해외 일정 때문에 유시민, 전원책이 동영상으로 대체하며 남긴 아쉬움이 있었고, 그래서 시청자들은 그들이 출연할 이번 주 방송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지난 주 살짝 맛보기로 했던 최순실 게이트관련 내용만으로도 6%를 넘겼으니 이번 주 방송이 9%를 넘긴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썰전>최순실 게이트를 다루면서도 역시 <썰전>다웠다. 최순실의 존재를 알면서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그 청와대와 정치권의 상황을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와 비교하고, 키맨으로 불리는 고영태라는 인물을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묘사해냈다. 그들은 이번 상황을 보면 막장드라마가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 리얼리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순실이 귀국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유시민은 사전에 검찰과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예견하면서도 최순실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유리한 결정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여겼지만 들끓는 국민여론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됐다는 것. 여기서도 유시민은 위트 있는 비유를 통해 상황을 쉽게 설명했다. 즉 드라마의 주인공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게 이제는 시청자들이라는 것.

 

유시민과 전원책은 모두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들을 조목조목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어내면서 이것이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라는 것에 입을 모았다. 유시민은 일국의 대통령에게 중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어떤 면을 봐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 조언자 역할을 맡긴 대통령의 책임 아니냐.”고 일갈했고, 전원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인사 이런 것까지 쥐어줬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최순실과 정윤회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포위되고 의지하고 있었다대선 후보 시절에도 외부에서 전화가 오면 참모들과 정한 것을 바꿨다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썰전> 특유의 시사, 정치적 사안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써는그 특징은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로 깊은 분노와 상실감에 빠져버린 시청자들에게는 사이다가 아닐 수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온 후 삶의 회의감이 들 정도로 허탈해하던 대중들이 아닌가. <썰전>은 그 대중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거침없이 그 감정들을 드러냈다. 전원책이 말하는 올단두대는 어찌 보면 지금 사안을 보는 대중들의 격한 정서를 반영해냈다.

 

이 시국에 그저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진지한 척 하며 어떤 면에서는 사안을 더 복잡하게 만들거나 타깃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물 타기를 하는 시사 프로그램들에도 시선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썰전>은 이번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안에 있어서 준비된 프로그램이었다. 진지하면서도 서민들의 언어들로 사안들을 친절히 설명해주고 에둘러 말하기보다는 대놓고 핵심을 건드리는 속 시원함이라니. 그 어느 때보다 사이다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정서를 <썰전>은 제대로 읽고 방송으로 담아냈다.

 

<뉴스룸>이 그 대상이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들을 피하지 않고 증거를 통해 제대로 지적해낸 국내 유일의 뉴스라면, <썰전>은 그 사안들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속 시원히 풀어내는 이 시대에 걸 맞는 시사 프로그램이 아닐까. <뉴스룸>에 이어 <썰전>에 모인 관심에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다

요즘 뉴스 못 본 듯’, <무도>가 꼬집은 현실

 

헬륨 풍선들을 가득 매달자 두둥실 떠오르는 몸. MBC <무한도전>그래비티 특집은 러시아로 가기 전 사전 무중력 체험으로 애니메이션 <>의 한 장면을 재현해냈다. 초등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상상했을 장면을 실현해내며 <무한도전> 출연자들도 아이들처럼 들뜰 수밖에 없었다.

 

가장 몸무게가 낮은 광희는 허공으로 붕붕 뜨는 몸에 두려우면서도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였고, 몸무게가 100킬로를 넘는 정준하는 비록 완전히 몸이 뜨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에 반색했다. 마지막으로 체험을 하게 된 박명수는 순식간에 고공으로 떠오르자 그 기분을 온 나라에 웃음꽃이 피었다라고 표현했다. 그 때 그 장면에 자막 하나가 덧붙여졌다. ‘요즘 뉴스 못 본 듯’.

 

아마도 지금 같은 시국이 아니었다면 그저 아이처럼 즐거울 수 있는 체험이고 도전이었을 테고 그래서 말 그대로 웃음꽃이 필 수도 있는 장면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 날은 그러기에는 시국이 너무 암울했다. <무한도전>이 방송되던 시각 서울 청계광장에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불거진 대규모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요즘 뉴스 안보시는 듯이란 자막은 이런 시국상황을 염두에 둔 <무한도전>의 센스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어 풍선을 타고 허공에 붕붕 떠오른 박명수의 장면에는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란 자막이 덧붙여졌다. 그 자막 역시 최순실 게이트에서 박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의 증거로 지목됐던 오방낭 복주머니 퍼포먼스를 떠올리게 하는 글귀였다. 최순실씨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태블릿 PC에서 발견된 파일 중에는 박대통령 취임식 당시 했던 오방낭 복주머니 퍼포먼스의 그 오방낭이 저장되어 있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야기한 국민적 허탈감과 분노는 최근 다양한 패러디 사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하나가 지난 <무한도전> ‘우린 자연인이다특집에서의 한 장면을 따온 패러디다. 산골에서 현실과 유리된 채 살아오는 상황극 설정을 하면서 정준하가 뜬금없이 이런 멘트를 던진다. “대통령은... 지금 누구예요?” 물론 그 멘트는 상황극 속에서 그가 진짜 몰라서 묻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차갑게 식어버린 대중정서는 이 장면을 똑 떼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패러디가 되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국민들이 허탈해하고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그 질문 속에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국민들의 삶을 비전문적인 어느 한 인물의 결정으로 좌지우지했다는 걸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현실을 가져와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어떤 작은 숨통을 틔워주는 것. 그것이 패러디의 힘이다.

 

이 패러디가 보여주고 있듯이 <무한도전>의 자막 한 줄은 대단히 짧지만 그동안 현실을 줄곧 대상으로 하여 풍자해왔던 그 전통 속에서 패러디의 힘을 발휘한다. 함부로 웃기조차 힘들어 맘 편히 프로그램을 보며 웃기도 힘든 현실 속에 전하는 작은 한 줄의 힘. <무한도전>의 자막 센스에는 이런 특별함이 담겨져 있다. 이러니 이 프로그램을 지지할 수밖에.

여행과 잃어버린 청춘, 감회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영석 PD가 새롭게 들고온 tvN <꽃보다 청춘><꽃보다 누나>의 남자편 같은 성격으로 어찌 보면 <꽃보다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마치 <남자의 자격>의 아저씨들이 보여줬던 나이 들어감과 그럼에도 여전한 청춘에 대한 욕망이 공존하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이것을 <꽃보다 청춘>이라고 지칭하고 그들 속에 숨겨진 소년을 여행을 통해 깨어내는 이야기로 풀어낸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꽃보다> 시리즈 3부작이 본래 배낭여행 프로젝트라는 부제로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들이 결국은 모두 청춘에 닿아있다는 걸 말해준다. ‘배낭여행은 마치 청춘들의 전유물처럼 불리워진 여행의 한 종류다. 그러니 그 틀 안에서 어르신을 넣어보고 또 누나들을 넣어보고 그리고 여전히 청춘의 소년을 갖고 있는 아저씨들을 넣어보는 여행 실험이 나영석 PD가 본래 하려던 그림이었던 셈이다.

 

<꽃보다 청춘>에서 윤상은 우리가 그의 음악을 통해 생각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아왔던 자신을 드러내주었다. 술 없이는 지낼 수 없었던 나날들을 조용히 고백하고 지금은 우울증 치료제로 대신하며 술을 끊어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술도 우울증 치료제도 떨궈내고 싶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술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청춘을 찾아가는 여행일 것이다.

 

이적은 그런 윤상의 이야기를 듣고는 조용히 눈물을 떨궈냈다. 같은 음악인으로서 살아왔던 그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고 또 같이 나이 들어감을 공감 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지만 그런 배려를 받아주지 않을 때는 마치 아이처럼 화를 내는 이적은 감정에 솔직하다. 유희열은 늘 밝고 어떤 환경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며 스스럼없는 행동을 하는 소년처럼 보이지만 그 나이라면 익숙해질 만도 한 심각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다.

 

윤상은 담담하고 이적은 솔직하며 유희열은 리더십이 강하다. 이처럼 잘 맞는 조합이 있을까. 유희열이 길을 찾고 계획을 세우면 이적은 그 길 위에서 행동하고 윤상은 옆에서 그들이 놓칠지도 모르는 것들을 조용히 지켜낸다. 그들에게 짐꾼이 없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들 스스로 재미와 의미 모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툭탁대고 셀프 카메라를 들고 그 나이에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웃기면서도 짠한 느낌을 준다.

 

이런 여행의 특징은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가 3연타 홈런을 날린 가장 큰 이유다. 그의 여행은 특별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기대감과 그 기대감에서 비롯되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이것이 재미에 끝나지 않고 대중정서를 자극하는 의미망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폭발력이 있다. <꽃보다 할배>도 그랬고 <꽃보다 누나>도 그랬던 것처럼 왜 하필 청춘이라는 키워드일까.

 

우리에게 여행이란 한때는 계속되는 일 속에서 잠시 떠나는 것이었고 멈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젊어서 일만 하다 나이 들어버린 이들에게는 여행이란 마치 잃어버린 청춘과 비견되는 어떤 것일 게다. 그러니 여행을 통해서 그 청춘을 확인하는 건 즐겁고 설레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일이다. <꽃보다> 시리즈가 지금껏 배낭여행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 것이 그것이다.

 

휴가시즌, 이제 맘만 먹으면 해외로 나가는 일이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닌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더 팍팍해졌다. 무리해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그 한 자락의 추억을 가슴에 부여안고 한 해의 힘겨움을 버텨내는 건 이제 우리 사회의 한 삶의 패턴이 되었다. 우리 삶의 꽃 같은 시간들은 그렇게 빠르게도 지나가고 시들어간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도 기억은 남는 것. 나영석 PD의 여행은 그 청춘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저들처럼 한번쯤 청춘의 시간 속으로 떠나보기를.

 

<표적>, 공권력에 맞서는 히어로는 어떻게 가능한가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거두절미하고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쫓기는 여훈(류승룡)으로부터 시작되는 <표적>의 장르적 방점은 물론 액션에 찍혀 있다. 강렬한 인상만으로도 일단 기본 먹고 들어가는 류승룡이라는 배우는 이 영화를 위해 특공무술 특훈을 받아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몸의 액션을 보여준다. 총에 맞서 맨 몸으로 부딪치는 류승룡표 액션은 화려함보다는 묵직함이 어울리고, 특유의 감정 선이 덧붙여져 타격감에 통쾌함을 더해준다.

 

사진출처: 영화 <표적>

하지만 온전한 액션 영화 한 편을 보는 와중에도 흥미로운 설정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역전이다. 거두절미하고 시작하는 추격전 속에서 쫓기는 자들은 자신이 왜 쫓겨야 하는 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희생양이 되어버린 쫓기는 자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깨닫게 되면서 여훈의 분노가 터져 나온다. 류승룡의 액션이 폭발하게 되는 건 그 분노가 대중들의 정서를 끌어안기 때문이다.

 

왜 무고한 이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조폭과 비리경찰은 액션 범죄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악역들. 경찰이 비리경찰로 돌변하고 공권력이 주인공을 위협하는 요소로 돌변하는 순간, 류승룡의 액션은 틀에 박힌 추격전 양상을 벗어난다. 이제 이 안티 히어로는 공권력과 맞서 싸우는 인물로 돌변한다.

 

돈만 된다면 제 어머니도 죽일 존재들이라는 이 비리경찰들은 이 영화만의 특별한 장면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은 범죄물에서 흔히 생각하는 경찰서라는 안전을 상징하는 듯한 공간이 오히려 살육과 공포의 공간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여훈이 경찰서 하나를 완전히 때려 부수는 장면은 그래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추격자> 같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능한 공권력은 이제 어느새 비리로 점철된 폭력적인 공권력으로 그려지고 있다. 때때로 누가 범죄자고 누가 경찰인지 아리송해지는 코미디 같은 설정이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건 지금 서민들이 갖고 있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 <표적>은 그 서민들을 지켜야할 공권력이 오히려 그들을 표적 삼아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상황을 그려낸다. 쫓기던 류승룡의 반격이 서민들의 분노를 덧붙여 통쾌함을 만드는 이유다.

 

류승룡과 더불어 김성령, 유준상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반전 연기는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가장 큰 요소다. <7번 방의 선물>에서 당하기만 하던 바보 연기를 했던 류승룡은 이 영화에서 분노의 히어로로 돌변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줄곧 고수해왔던 김성령은 이 영화를 통해 거친 액션의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착하고 선한 이미지의 유준상? 그의 변신은 그 이미지 때문에 더욱 큰 반전효과를 만들어낸다.

 

<표적>은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한 추격 액션 정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반에 일어나는 반전 이후 마지막까지 흘러가는 류승룡의 액션은 기막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영화가 건드리는 현실에 대한 대중정서 덕분이다. 공권력과 맞서는 히어로라니. 그 설정에는 영화 속에서나마 답답한 현실을 풀어내주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 특히 요즘 같은 시절에.

대중문화가 묻다, 정부는 믿을 만한가

SPECIEL 2014.04.24 11:34 Posted by 더키앙

대중문화에 투영된 정부에 대한 불신

 

정부는 과연 믿을 만한가. 요즘 드라마를 보다보면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다. <신의 선물 14>은 아이를 구하려는 한 엄마의 고군분투를 그리는 드라마지만,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대통령까지 용의자가 되는 상황에 이른다. 처음에는 그저 사적인 유괴사건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이 뒤로 갈수록 거대한 사건과 연루된 일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것. 그 과정에서 아이와 엄마와 관계된 모든 인물들의 숨겨진 면모들이 드러난다.

 

평범한 변호사인 줄만 알았던 남편은 회사 후배와 불륜인데다 이 거대한 사건과 깊이 연루되어 있고, 그를 도와주는 기동찬(조승우) 역시 조금씩 과거 그가 형을 여자 친구의 살인범으로 증언했던 사실과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진다. 기동찬은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아이의 유괴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것이 사형집행을 서두르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적 쇼라고 추리한다.

 

유괴사건이 거대한 정치적 음모와 연루되는 과정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이미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다루어진 정부의 모습들이 대부분 음모론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추적자> 같은 드라마는 어떻게 권력자들이 비리를 은폐하고 정치를 통한 권력을 쥐려 하는가에 대한 밑그림이 들어가 있다. 대중들은 이 정부와 관련된 음모론을 수긍하면서 그것을 파헤치고 그 음모를 분쇄하는, 현실에는 없는 서민들의 영웅상을 희구하는 중이다.

 

<골든크로스>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상위 0.001%의 집단이 유린하는 우리네 경제를 가감 없이 그려낸다. 드라마라고는 해도 이 풍경은 IMF 이후 외자들이 대거 들어와 국내의 멀쩡한 기업들까지 사냥했던 실제 상황들을 고스란히 연상시킨다. 이 드라마에서 정부의 고위층이란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내의 건실한 기업을 저평가시켜 싼 가격에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거액의 뒷돈을 챙기는 이들로 그려진다.

 

<쓰리데이즈>는 남북관계를 이용해 긴장관계를 조성하고 그를 통해 어마어마한 무기를 판매해 이득을 챙기려는 무기거래상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들은 긴장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북한을 동원해 양진리에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또 제2IMF를 만들어 그 반사이익을 거둬가려는 시도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다. 이 과정에서 국내의 정관계 인사들 상당수가 돈에 매수되어 무기거래상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골든크로스><쓰리데이즈>에서 정부 고위 인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는 일들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이 실체가 아닌 숫자로만 세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든크로스>에서 회사 하나가 헐값에 넘어가면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이 남는지만 알았지, 그로 인해 파산한 회사가 파탄 내는 가족들의 면면은 나 몰라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쓰리데이즈>의 양진리에서 희생된 무고한 양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의 위기대처능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건, 사고 초기 전원 구출 발표 같은 어처구니없는 오보에 이어 구조자와 희생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오락가락했던 일이다. 그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만일 그 숫자가 누군가의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발표 하나에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대중문화에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부에 대한 불신. 그것이 지금의 대중정서이고 그걸 자초한 건 지금의 정부다.

<개콘> 이문재의 개그에는 특별한 감성이 있다

 

개그 영역에 더 이상 새로운 건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그맨 이문재에게만에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그가 하고 있는 개그는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독특한 감성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의 ‘나쁜 사람’에 이어 ‘두근두근’을 통해 이문재는 그만의 영역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것을 ‘감성 개그’라고 해야 할까? ‘나쁜 사람’이 관객을 웃기는 방식은 과장된 리액션을 통한 감성의 증폭을 통해서이다. ‘나쁜 사람’으로 몰렸지만 사실은 ‘착하고 불쌍한 사람’인 이상구의 반전 멘트와 함께 OST로 깔리는 ‘냉정과 열정사이’에 빵 터지는 이유는 그 앞에서 과장되게 눈물을 참는 리액션을 보여주는 이문재 때문이다.

 

이문재의 웃음 코드가 절묘한 것은 어떤 감정을 보이지 않아야할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감정이나 속내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용의자를 심문해야할 상황이지만 용의자의 아픈 상황과 현실에 공감하며 심지어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형사는 그 강한 인상과 정반대의 가녀린 감성이 충돌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작금의 대중정서에 대한 깊은 공감이 깔려 있다. 용의자가 되어 끌려온 사람이 사실은 ‘나쁜 사람’이 아닐 때, 그것이 비판하는 것은 그를 ‘나쁜 사람’으로 내몬 ‘나쁜 세상’일 것이다. 그래서 이문재의 눈물 과잉 연기는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만들어준다. 즉 처음에는 진짜로 ‘나쁜 사람’ 아니냐고 추궁하다가 나중에는 그 사연에 자신 같은 형사마저 눈물 흘리게 만드는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로 바뀐다.

 

이러한 이문재의 특별한 이중적 감성 개그는 최근 새로 시작한 ‘두근두근’에서도 빛을 발한다. ‘나쁜 사람’과 ‘두근두근’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그 웃음의 기재는 이문재 특유의 감성 개그의 틀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장효인과 이문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친구처럼 지내지만 사실은 서로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상황. 그 설렘이 어떤 특별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났을 때 생겨나는 그 알콩달콩한 분위기와 거기에 과장되게 반응하는 장효인과 이문재의 리액션이 웃음의 핵심 포인트다.

 

즉 ‘나쁜 사람’이 용의자와 형사라는 관계 속에서 넘어서지 않아야할 감성의 선을 넘어서 웃음을 준다면, ‘두근두근’은 친구 사이에서 살짝 연인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감성으로 웃음을 준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쁜 사람’이 ‘냉정과 열정 사이’ OST를 사용하는 반면, ‘두근두근’은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Ode To My Family’를 깔아 그 두근대는 감성을 증폭시킨다.

 

실로 웃음에는 많은 결이 있다. 통쾌한 웃음도 있고 이지적인 미소도 있으며 심지어 불편한 웃음도 있다. <개그콘서트> 같은 다양한 코너들이 한 무대에 올려지는 프로그램은 비슷한 코드의 웃음보다는 그 웃음의 결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문재가 잡아온 이 감성적인 웃음은 실로 가치 있다 여겨진다. 상황과 심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특별한 개그는 그래서 몸 개그나 말 개그들 속에서 도드라진 면이 있다. 때론 두근거리는 감성을 때론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웃음으로 전화시킨다는 것. 실로 마법 같은 일이 아닌가.

설경구의 무엇이 <힐링캠프>까지 킬링하게 했을까

 

방송의 힘을 과신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청자의 의견 따위는 무시하는 것일까. 혹자는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출연하든 누가 출연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것은 제작진들의 선택이다. 다만 방송의 목적이 시청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게스트를 위한 것인지, 혹은 시청자를 낚기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대중들이 반대한 것은 그가 전처와 이혼하고 송윤아와 결혼하면서 생긴 잡음들 때문이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루머인지는 알 수 없다. 부부 간에 벌어지는 일은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그 깊은 내막을 알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힐링캠프>에 설경구가 출연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방송의 효과면으로만 생각해봐도 <힐링캠프>와 설경구의 만남은 양자에게 모두 득이 되기보다는 독이 된다. <힐링캠프>는 설경구의 출연, 그것도 2회 분량으로 만들어 첫 회에는 변죽만 때리는 식의 편집으로 사실상 시청자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늘 토크쇼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제지만, 그것이 게스트 홍보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시청자를 위한 것이냐는 여전히 뜨거운 문제다.

 

<힐링캠프>는 시청자가 굳이 원하지 않는 게스트를 데려왔고, 데려온 후에도 시청자가 원하는 내용은 쏙 빠져있는 첫 회를 구성했다. 굳이 ‘설경구의 눈물’ 운운하며 예고편을 내보낸 것으로 볼 때 첫 회 편집은 다음 회를 위한 꼼수인 셈이다. 첫 회가 그나마 <힐링캠프> 같은 분위기를 만든 것은 설경구의 얘기 그 자체보다는 김민기나 이창동 감독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방송은 과연 설경구에게도 도움이 되었을까. 설경구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이전부터 시청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만일 설경구와 송윤아의 결혼에 얽힌 이야기들이 루머라고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해명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렵다. 대중들이 과연 방송을 그렇게 신뢰하는가. 그것도 몇 차례 논란 연예인의 해명 방송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힐링캠프>를.

 

만일 루머라면 억울할 법도 하지만, 대부분의 연예인 루머는 그것이 생기는 이유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실제 사실이 아니더라도 앞뒤 정황이 그렇게 만드는 수도 있고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가 그 루머를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루머란 연예인에게 있어서는 평상시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갖기 마련이다. 루머는 그래서 법적인 차원으로도 해결되지 않고(고소를 한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호소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대중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게 마련인 연예인들의 루머는 결국 대중들의 마음만이 풀어낼 수 있다.

 

과거 최민수가 자신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무조건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한 것은 자신의 존재근거가 결국은 대중들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 행한 현명한 대처였다. 최민수는 말을 믿지 않았다. 대신 산속에 칩거하는 방식으로 행동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열었다. 루머란 토크쇼에 나와 답답한 속을 토로하는 것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혹 <힐링캠프>는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 것일까. 대중들의 시선마저 교화시키고 바꿀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일까.

 

<힐링캠프>의 설경구 출연이 본인의 힐링에 머물고 대중들에게 다가오지 못할 때 그것은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될 수 있다. <힐링캠프>는 대중들을 무시한 셈이고, 설경구 또한 프로그램에서는 속 시원할 수 있었을 지 모르지만 대중들과의 교감에는 그다지 성공적이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프로그램의 시청률만이라도 성공해야 할 텐데, 어찌된 일인지 <힐링캠프> 설경구편의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힐링캠프>란 말인가. ‘힐링’이 소통에 닿아있지 않을 때 그것은 자칫 교조적이고 계몽적인 문구가 되어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아닐까. 잠깐 논란을 통해 주목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과 소통하지 않는 토크쇼는 결국 그것이 제살 깎아 먹기가 된다는 걸 알아야하지 않을까.

김미경, 힐링과 자기계발 열풍의 양면성

 

한 달에 무려 40여회의 강연을 나가고, 가는 곳마다 부흥회에 가까운 반응을 얻고 있는 김미경. 최근에는 자기 이름을 내건 김미경쇼를 선보였고, <무릎팍도사>에 나와서도 거침없는 입담으로 강호동마저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녀. 이제 국민 강사라고까지 불리던 김미경은 왜 잇따른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을까.

 

'김미경쇼(사진출처:tvN)'

인문학 비하 논란에 이어 생긴 논문 표절 논란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벌어진 일 그 자체보다 논란이 훨씬 더 크게 번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사건의 경중 그 자체보다 일종의 대중정서가 작용했다는 얘기다. 김미경쇼에서 했던 발언이 뒤늦게 논란으로 이어진 이른바 인문학 비하 발언은 편집된 장면이 가져온 착시현상에 가깝다.

 

김미경이 해명한 것처럼 그녀는 인문학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다만 자기계발서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말인 “시건방을 떨고...” 같은 다소 강한 표현이 논란의 촉매제가 되었다. 그녀는 해당 논란이 된 방송에서, 자기계발서가 인문학을 치열하게 읽고 남은 지혜가 한 사람의 책으로 쓰여지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 서적이 내 머리로 들어오고 몸으로 들어와서 내 몸과 그 지식이 치열하게 소통하는 거야. 치열하게 소통하고 나면 한 방울 지혜로 남아. 인문학은 지혜 만들기 위해서 읽는 거라구. 근데 그 사람의 지혜가 삼백 페이지 책으로 쓰여지면 그가 자기계발을 해온 거고, 그게 자기계발서적이야. 근데 안 읽는다고? 웃기고 있어. 시건방 떨고... 나는요. 책은 아무 문제없어요. 사람도 아무 문제없고. 읽는 사람이 문제예요.”

 

인문학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하에 자못 감정적인 논조를 섞어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렇게 감정이 들어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녀가 그토록 강연을 통해 설파했던 것들이 바로 그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하는 자신에 대한 비하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김미경이 얘기하는 것처럼 자기계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오히려 문제는 읽는 사람이 문제일까. 이 부분에서는 김미경이 갖고 있는 계몽주의적인 시각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 생길만 하다. 즉 세상과 사회의 잘못과 부조리가 아니라 문제는 바로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 사회 시스템이 갖고 온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시각은 듣는 이에게는 마치 고해성사 같은 카타르시스를 줄 지는 몰라도 그 사람의 진짜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사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권력이 대중들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과거에 권력은 총과 칼로 대중들을 통제해 왔지만 근대 이후에서는 이른바 푸코가 얘기하는 파놉티콘처럼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는 기술들을 만들어왔다. 왜 우리는 굳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고, 왜 우리는 굳이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강박적으로 해야 하며, 왜 우리는 사회생활을 위해 무수한 처세들을 따라야 할까. 또 굳이 왜 그렇게 꿈을 강박적으로 가져야만 할까. 꿈이 있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것에 강박을 갖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아도르노가 이미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명저를 통해 얘기했듯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자연을 통제해왔지만, 그 자연의 일부가 인간 자신도 포함하고 있다는 데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또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고 조직화되는 비인간화를 꼬집었던 것이다. 과연 김미경은 이러한 자기계발서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김미경이 하는 이야기는 속 시원하면서도 달콤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걸 여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논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왔던 개발시대의 사회와 작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는 다르다. 지금의 달라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해서 김미경은 과거의 해법을 들고 나오는 셈이다. 일종의 복고와 보수주의가 거기에는 깔려 있다. 지금 네가 안 되는 것은 네가 죽어라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여전히 얘기하고 있다. 과연 그 말이 이 시대에도 맞을까.

 

갑작스럽게 나온 김미경의 논문 표절 논란은 그 사안 자체만 보면 뜬금없어 보인다. 사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석사 학위 논문, 그것도 직장인들을 위한 석사 과정에서의 학위가 얼마나 아카데믹할 수 있는지를. 박사 학위도 아니고 석사 학위에서 타인의 논문을 인용하는 것은 늘 있던 일이다. 그만큼 우리네 사회가 가진 학위에 대한 강박과 이제는 심지어 상술이 되어버린 학교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어쨌든 이런 엄밀한 잣대로 논문을 들여다보면 아마도 표절 아닌 것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즉 김미경의 논문 표절 논란은 그 자체보다는 그 이면에 놓여진 그녀에 대한 대중정서가 폭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 강사라는 명성을 가졌으니 그만한 실력에 대한 일종의 검증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김미경은 분명 스피치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스피치는 말하는 기술이다. 정작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 아닌가.

 

김미경 신드롬과 논란 속에는 그래서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자기계발과 힐링 열풍의 뒤안길을 보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예 들어갈 기회조차 주지 않는 세상 앞에 청춘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미경의 꿈은 달콤하다. 적어도 몇 십분 동안 ‘나도 할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연을 듣고 나선 현실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달라지면 현실도 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왜 이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라져야 할까. 그것은 또 다른 보수적인 순종이 아닐까.

대선과 올해의 대중문화 콘텐츠들

 

대선이 있는 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대중문화 자체가 본래 대중들의 정서와 염원을 담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미 대선은 끝났고 그 결과도 나왔지만, 그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그 과정이 담고 있었던 대중들의 염원일 게다. 올해의 어떤 작품들이 대중들의 어떤 정서를 담아내고 있었을까.

 

'추적자'(사진출처:SBS)

올 전체 드라마 중 가장 돋보였던 작품으로 지목받는 것은 단연 <추적자>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국민드라마’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것은 과거 시청률 몇 프로를 넘었을 때 붙이던 그런 호칭이 아니라,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냈다는 의미의 호칭이었다. <추적자>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이번 대선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양극화의 문제라든가, 사회 정의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뤘다는 점이다.

 

백홍석(손현주)이라는 서민 가장을 대변하는 인물과 강동윤(김상중), 서회장(박근형) 같은 이른바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대결구도가 양극화에 허덕이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흥미로운 건 드라마 말미에 절정 부분에 들어간 내용이 대선이었다는 점이다. 작가의 염원이 들어간 것일 게다. 투표로서 세상을 바꾸고픈 대중들의 의지를.

 

영화에서 대중들이 소망하는 리더십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은 <광해>일 것이다. 올해 1천2백만여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늘 대선에 즈음해 리더십을 다루는 작품이 주목을 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광해>는 기존 왕의 리더십을 다루던 사극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다. 백성을 살피는 성군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백성 중 하나가 그 왕 역할을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것은 다분히 SNS로 대변되는 대중정치 시대의 달라진 대중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즉 왕이나 정치인보다 더 뛰어난 일개 광대를 왕의 대리 역할로 세움으로써 정치란 그렇게 복잡한 역학관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행하는 것이란 걸 잘 보여주었다. 이것은 지금 대중들이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정치적 행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광해>가 대중들을 통쾌하게 했던 것은 바로 그 명쾌한 상식(일개 광대도 알고 있는)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성군이 되는 정치의 세계를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중에서 가장 청춘들의 문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은 <마의>일 것이다. 겉으로 보면 출생의 비밀을 안고 마의로 자라난 백광현(조승우)이 인의가 되어가는 성장담을 그린 전형적인 퓨전사극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는 지금 현재의 청춘들과 맞닿아 있다. 출생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조선사회는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나 스펙사회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정치하는 자들의 끝없는 모략과 편견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는 백광현이 그 장애물들을 하나 하나 넘어가며 성장하는 모습은 아마도 작금의 청춘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판타지가 될 것이다. 스펙을 넘어서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는 일련의 과정들은 어쩌면 그런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고 있는 작금의 청춘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잘못된 구조에 대한 비판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의>다.

 

한편 이정희 전 대선후보가 대선토론에서 언급해 화제를 모았던 <청담동 앨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는 없다.” 그녀가 언급한 극중 이 대사는 역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양극화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와 자신이 태생부터 결정되어버린 가진 것으로는 도무지 넘어설 수 없고 또 이해할 수도 없는 그 세계를 경험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국 이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들을 건드리고 있다. 아마도 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어디 위로받을 곳 하나 없는 대중들은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잠시 동안의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선의 결과가 나왔다. 누가 당선이 되었고 당선되지 못했다고 해도 이 대중들의 소망이나 염원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모쪼록 이 소망들이 실현되는 세상이 오기를.

로이킴은 어떻게 <슈퍼스타K4>가 되었나

 

간발의 문자투표 차이로 로이킴이 딕펑스를 이기고 <슈퍼스타K4>가 되었다. 우승과 준우승을 가른 표 차이는 실로 미미했다. 당일 심사위원 점수는 283점으로 둘 다 똑같았고 인터넷 점수는 로이킴(90점)이 딕펑스(100점)보다 10점 낮았지만 당일 투표점수는 로이킴(600점)이 딕펑스(588)보다 12점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2점 차이로 로이킴이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슈퍼스타K4'(사진출처:mnet)

너무 미소한 차이였기 때문에 딕펑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이 결과가 자못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게다. 심사위원 점수가 똑같았다는 것에 대해 일부 팬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당락을 결정지은 것은 문자 투표였기 때문에 심사위원 점수가 같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쉽다는 표현일 것이다.

 

이번 시즌은 유독 역대 그 어떤 <슈퍼스타K>보다 그 오디션의 승패를 예측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의외의 결과 때문에 심사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정준영은 그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top6에서 음 이탈을 하고도 붙었을 때는 왜 붙였느냐는 논란이 생겼지만 상대적으로 잘했던 top3에서 떨어졌을 때는 또 왜 떨어뜨렸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붙고 떨어지는 것은 심사방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거의 문자투표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제작진이나 심사위원은 그 가이드라인 정도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들리는 바로는 이번 본선 무대의 결과에 대해서 제작진들 역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제작진들도 나름 이런 친구가 올라가면 방송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거의 대부분 그 예측이 맞아떨어졌는데 올해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를 가장 대중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세운 시즌2에서 허각이 보여준 것은 실력, 그 중에서도 가창력이었다. 허각 신드롬까지 생겼던 것은 그가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슈퍼스타K2>의 판타지는 그 무대가 현실과는 달리 공정하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공정함 위에 오로지 실력만으로 겨루는 그 과정에 대중들은 매료되었던 것.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대중들은 그 실력, 즉 가창력 대결 자체를 피곤해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2>, <위대한 탄생>, <탑밴드>, <K팝스타> 등등 무수히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몇 단 고음을 치는 가창력의 소유자들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놀라웠지만(<나는 가수다>가 대표적이다) 차츰 식상해졌다. 성대 대결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는 그렇게 서서히 음악에서의 실력이 단지 가창력(고음이나 음정 리듬감 같은)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가창력이 아니면 그럼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유독 심사결과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올해 <슈퍼스타K4>는 이런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top12 안에는 실로 다양한 개성의 인물군들이 들어 있었다. 연규성이나 홍대광처럼 강력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후보들이 있는 반면, 유승우나 김정환처럼 노래보다는 작곡이나 편곡에 능한 아티스트도 있었다. 정준영처럼 하나의 스타일이 압도적인 경쟁력이 되는 인물도 있었고, 가창력은 떨어지지만 연주와 아이디어로 승부한 딕펑스 같은 밴드도 있었다.

 

즉 이렇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한 무대에 세워서 오로지 실력만으로(그 실력의 기준을 대중들은 여전히 가창력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우위를 판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중들은 결국 자신들이 좋아하는 취향대로 투표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가창력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홍대광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고, 스타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정준영을 더 선호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언가 창의적인 무대 퍼포먼스에 더 치중하는 대중이라면 딕펑스에 열광했을 것이다. <슈퍼스타K>라는 한 무대에 서 있다고 해서 그들을 이제 유일한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가창력 하나를 잣대로 보던 데서 이제 우리의 시선은 음악의 다양한 면들로 돌려지고 있다. 이 과도기적인 상황은 당연히 논란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로이킴이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가창력에 좋은 스타성 그리고 아티스트적인 이미지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준영과 대결해도 스타성에 덧붙여 노래 실력이 더 좋아 보이고, 딕펑스와 대결해도 괜찮은 무대 퍼포먼스(비주얼만으로도!)를 보여준다. 홍대광이 확실한 스토리를 가졌다면, 로이킴은 거꾸로 곡절 없는 그 엄친아 스토리가 있다.

 

즉 로이킴의 우승은 각각의 개성을 가진 경쟁자들과 비교해 그들에게 없는 한 가지씩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따라서 로이킴이 우승했다고 해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양성의 관점으로 보면 무대 퍼포먼스는 확실히 딕펑스가 좋고, 스타성은 여전히 정준영이 낫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슈퍼스타K4>의 본선 무대에 오른 top12가 모두 우승자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개성에 있어서는 확실히 인정받은 셈이니까.

 

로이킴의 우승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달라져가는 대중정서 속에서 <슈퍼스타K>가 대중들에게 주는 판타지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2>가 공평하지 않은 현실에서 공정한 무대를 세움으로써 판타지를 주었다면, <슈퍼스타K4>는 단지 타고난 가창력만이 아닌 다양한 음악적 개성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로서의 판타지를 제공했다. 일반인들은 그 무대를 보면서 뭔가 자신이 부족해도 자기가 가진 개성을 창의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통해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대중정서의 반영이면서, 또한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가창력에서 개성적인 목소리와 끼의 소유자들을 찾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한 물 갔다는 얘기가 나오는 그 지점에서 새로운 판타지로 무장한 오디션 제 2기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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