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겪어야할 중국의 한류 차단, 체질 강화 기회로 삼아야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한류 보복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아예 내 놓고 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한류가 흘러가는 물꼬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들에서 이제 한류 콘텐츠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최근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도깨비>가 사드 보복으로 인해 공식적인 루트를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터넷 사이트로 흘러들어가던 그 흐름조차 막혀버렸다. 중국의 대표적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유쿠(優酷)와 투더우(土豆), 아이치이(愛奇藝), 큐큐(QQ) 사이트 등에서는 <도깨비>는 물론이고 <런닝맨> 같은 인기 한류 콘텐츠도 사라졌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한 때 차이나 드림을 꿈꾸던 시각은 이제 냉정한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로 바뀌고 있다. 본래 이처럼 중국에 거의 올인하는 듯한 한류의 흐름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큰 시장이 열렸고 양국의 콘텐츠 종사자들이 글로벌 콘텐츠를 지향하며 협력하려는 모습이 강했기 때문에 중국 시장은 미래를 위한 괜찮은 비전이 되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국익에 대한 적절한 대책 없이 사드를 도입하고 그것을 이유로 중국 당국이 금한령을 내리는 20세기에나 어울릴 법한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그 비전만을 따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뒤집어 생각하면 이번 사드 보복 조치는 그것이 본래 차이나 드림이라는 가면에 가려진 중국 시장의 실체를 보게 만든 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광전총국에 의해 그 때 그 때 한류의 흐름에 제동이 걸려왔던 게 실제 벌어져온 일들이다. 그러면서도 이처럼 전면적인 제재까지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 하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중국시장의 진면목을 바라봐야할 시점이다. 

일본 한류가 엄청난 기세로 번져가다가 한일 양국의 관계가 차갑게 식어버리면서 주춤하게 됐던 상황을 다시금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일본 한류는 혐한 정서가 생겨나고 지금도 그런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일본에서 일정부분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당시 일본 한류가 주춤할 때 중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을 상기해보면 이번 중국 한류에 낀 먹구름은 또 다른 시장을 찾아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번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인해 일본 시장으로 그 주 목표를 바꾸는 대형 기획사들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동시에 한류의 신흥 개척지로 떠오르고 있는 남미나 중동,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싱가폴 등으로 한류 다각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일 간의 정치외교적 갈등들이 여전하다고 해도 대중문화 교류는 끊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중국이 이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겠다고 나선다면 그건 마치 강물의 흐름을 막겠다는 식의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으로서 ‘고립’의 길을 자초할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콘텐츠 생산국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래서 시장이다. 당연히 중국이 막힌다면 다양한 시장을 찾고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늘 해외 시장에만 의존해야 하는 콘텐츠 사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작은 땅덩이로 수출에 의존해온 것이 우리네 산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의 콘텐츠 산업의 구조는 과거 삼각무역에 의존했던 물질적인 상품 무역의 구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에 상륙을 준비하고 있는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서비스 업체의 흐름을 본다면 이제 콘텐츠 산업에서 국내와 국외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지금껏 콘텐츠 산업, 특히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주로 그 플랫폼 기반이 지상파 TV나 케이블 같은 곳에 맞춰져 있었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거기에 맞춰진 콘텐츠는 사실상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즉 이 인터넷 플랫폼의 개발은 향후 우리 콘텐츠가 굳이 중국이나 일본, 미국 등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도 글로벌 사업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열심히 콘텐츠를 잘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마켓에서 그것이 사고 팔리는 산업의 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지속적인 한류의 성장을 가능하게 해줄 청사진이 아닐까. 사드 보복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 지금 촉구하는 건 이런 새로운 글로벌 플랫폼의 시대에 맞는 콘텐츠 산업의 체질개선이다. 치졸한 일이지만 중국의 이런 보복조치는 어차피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콘텐츠 산업 자체에 스스로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뇌관을 심는 자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tvN 드라마, 어째서 펄펄 날던 기세가 꺾였을까

tvN 드라마가 예전 같지 않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한 마디로 찬란했다. 시청률이 20%(닐슨 코리아)를 넘겼고 작품의 완성도에도 호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후속으로 편성된 <내일 그대와>는 첫 회 3.8%에서 시작된 시청률이 줄곧 떨어져 4회에는 2.1%까지 추락했다. 

'내일 그대와(사진출처:tvN)'

tvN의 또 다른 드라마 편성시간인 월화에도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5는 3.9%의 최고 시청률을 냈지만 반응은 영 좋지 않았다. 내용은 없고 영애씨가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스토리가 계속 이어졌다. 애초의 기획의도가 막돼먹은 현실 속에서도 당당한 여성상을 그려내려던 것을 떠올려보면 역행하는 느낌마저 주었다. 

이어진 <내성적인 보스>는 사정이 더 좋지 못했다. 애초에는 <또 오해영>을 연출한 송현욱 감독이 연출한다는 점 때문에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첫 회를 보고 난 후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렸다. 시청률이 1.2%까지 떨어졌다. 결국 부랴부랴 대본수정에 들어갔고 그래서 가까스로 2%대 시청률로 올려 놓긴 했지만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이미 사그라져버렸다.

tvN 드라마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과거 케이블 채널이 2% 시청률 내는 것도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현재의 tvN 드라마가 그리 실패하고 있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상황이 바뀌었다. tvN 드라마는 어쨌든 20%를 넘기는 시청률을 달성했다. 그러니 이제 눈높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에서 2%는 너무 심한 추락이다. 

결국 tvN 드라마의 발목을 잡게 된 건 tvN 드라마 자체다. 사실 tvN 드라마가 지난 2년여 동안 드라마 전체 업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컸다. 이른바 스타 작가들의 작품들이 연달아 편성되었고, 영화라고 해도 괜찮을 드라마 연출의 일취월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도연 같은 드라마 출연이 좀체 없었던 배우의 캐스팅 역시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tvN 드라마는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를 높여놓았다. 그것은 또한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드라마에 대한 갈망들이 있었고, 그것을 tvN 드라마가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파 드라마들이 타임리프 같은 실험적인 설정의 이야기들을 선보이기도 하고, 멜로에만 천착하지 않고 본격 장르물을 내걸게 된 것도 tvN 드라마가 영향을 준 변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좋은 영향을 미쳤지만 이것은 또한 tvN 드라마들에게도 똑같이 기대치를 높여놓았다. 조금만 빈틈이 보이거나 혹은 비슷한 코드들이 반복되면 이제 가차없이 채널이 돌아간다. 그건 tvN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막돼먹은 영애씨>가 갑자기 날선 비판을 받은 건 드라마 내적 요인도 컸지만 tvN 드라마에 대한 달라진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한 면도 컸다. 이것은 현재 <내일 그대와>와 <내성적인 보스>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김은숙 작가 같은 스타 작가들의 작품들은 확실히 시청률과 호평을 동시에 얻어가는 tvN 드라마의 자산이 되었지만, 또한 tvN 드라마가 넘어야할 산이 되기도 했다. 이미 존재하는 스타 작가를 모셔와 하는 작품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스타 작가를 발굴하고 만들어냄으로써 일정부분의 균질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드라마들이 이제는 tvN에 절실하게 되었다. tvN 드라마는 스스로를 넘어서야 하는 당면과제를 갖게 됐다.

‘내일 그대와’, 결국 신민아·이제훈 멜로에서 승부 봐야

만일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의 후속작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새로 시작한 <내일 그대와>는 여러모로 부담감을 갖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장르적 특징은 다르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 판타지 역시 유사한 지점을 갖고 있고 또 그 시간을 뛰어넘는 멜로라는 소재의 유사점은 <내일 그대와>가 <도깨비>의 그늘을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된 이유들이다. 

'내일 그대와(사진출처:tvN)'

하지만 첫 회만 두고 보면 <내일 그대와>는 확실히 <도깨비>와는 다른 드라마다. 시작부터 유소준(이제훈)은 스스로 ‘시간여행자’임을 밝힌다. 그게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어떤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송마린(신민아)과 관계를 맺는다. 멀지 않은 미래, 그는 자신과 그녀가 함께 사고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일 그대와>의 이야기는 그래서 그걸 막으려는 유소준의 시도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로맨틱한 멜로가 된다. 

이렇게 보면 <내일 그대와>는 <도깨비> 같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운명적인 사랑의 서사라기보다는 차라리 <또 오해영> 같은 살짝 판타지가 곁들여진 멜로 쪽에 가깝다. <또 오해영>은 여자 친구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그 미래를 바꾸려 애쓰는 모습이 담겼다. 마찬가지로 <내일 그대와>는 아예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주인공이 판타지로 들어가 있다. 이야기의 방점은 타임슬립 같은 판타지가 아니라 두 사람의 멜로에 찍혀 있다. 

확실히 이제 멜로라는 장르는 그 자체만으로는 식상한 이야기가 된 듯싶다. 수백 년을 뛰어넘고 심지어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라는 특별한 존재들의 멜로이거나, 타임슬립처럼 과거에는 SF 장르물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들이 들어가는 멜로 정도는 되어야 식상함을 지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일 그대와>의 타임슬립은 이제 특별한 설정이라기보다는 멜로라면 하나 정도 있어야 될 필수적 판타지 요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내일 그대와>에서 오히려 더 주목되는 건 이제훈과 신민아가 이어가는 멜로 부분이다. 첫 회부터 확실히 자신을 내려놓은 듯한 신민아의 술 취한 연기는 향후 이어질 멜로 연기의 달달함을 기대하게 하고, 많은 장르물들을 소화해 이런 타임슬립 또한 잘 어울리지만 그가 처음으로 존재감을 보였던 <건축학개론>의 그 풋풋한 멜로의 느낌으로 돌아온 이제훈의 연기 또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 미래의 사건을 향해 도저하게 움직이는 시간의 흐름은 유소준과 송마린의 달달해질 멜로에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일 그대와>에 대한 반응이 기대감과 실망감으로 나뉘는 까닭은 역시 <도깨비>의 잔상이 여전히 만들어내는 그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금요일이면 여전히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그 긴 여운. <내일 그대와>의 본격적으로 시작될 신민아와 이제훈의 멜로와 장르의 긴박감이 그 후유증을 말끔히 지워낼 수 있을지 주목해볼 일이다.

타임리프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더 껴안아야 하는 까닭

이제 타임리프가 없으면 어딘지 심심하다? 아니 너무 타임리프가 많이 등장해 식상할 지경이다. 드라마를 보는 취향에 따라 최근 쏟아져 나오는 타임리프 설정에 대한 호불호는 나눠질 것이다. 종영한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조선시대에서 이어진 인연이 현재로까지 이어졌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고려시대의 무장 김신(공유)이 도깨비로 부활해 무려 7백여 년을 산 이야기를 다뤘다.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조선시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또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들은 올해도 계속 나올 전망이다. 3일 첫 방송되는 <내일 그대와>는 지하철을 매개로 하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 되어 있다. 오는 3월 방송 예정인 <터널>은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에서 현재로 온 아재 형사의 新문물 표류 수사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훨씬 이전부터 타임리프라는 판타지는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 다뤄진 바 있고, <시그널> 같은 작품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라는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경우에는 죽지 않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타임리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폭넓은 시간대를 다루는 설정으로 인해 사극과 현대극은 이제 완전히 구별되는 장르가 아닌 게 되었다. 

이러한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가 많아지는 것은 시간의 혼재가 주는 흥미로움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이 설정이 모두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의> 같은 고려시대의 최영 장군이 현재를 넘나들며 여의사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하는 드라마는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 조선시대와 현재의 전생과 이생을 뛰어넘는 <푸른 바다의 전설> 역시 스토리적으로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른바 순환우주의 세계관을 끌어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임당> 역시 아직까지 그 성공을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시그널>이나 고려시대의 전생과 현재의 이생을 도깨비와 도깨비신부, 저승사자의 이야기로 풀어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대중적인 성공은 물론이고 작품성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똑같은 타임리프라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이런 성패를 가르게 된 것일까. 

흔히들 타임리프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설정은 그 자체의 흥미로움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타임리프라는 판타지 설정은 그 허구를 이어주는 강력한 현실적인 동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전락할 위험을 지닌다. 현재에서 갑자기 과거로 소환됐다면 그런 판타지가 왜 필요한가를 그 작품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시그널>의 판타지가 성공했던 건 무전기 설정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그런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미제사건을 해결하고픈 강렬한 현실적 열망이 그 동인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은 무전기라는 판타지 설정에 대한 현실적 근거를 자세히 넣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건 판타지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하려는 현실적인 정서나 갈망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도깨비>가 성공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심지어 도깨비나 저승사자 같은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통해 실제 하려는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것이었다. 사랑과 기억이 있다면 죽음은 그저 불행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 마찬가지로 영생한다는 것이 행복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판타지 설정을 통해 이야기해줬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금의 힘겨운 현실상황에 처한 대중들에게 위로를 주기에 충분했다. 

타임리프라는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설정이 건드리는 현실적인 정서가 더 중요하다. 타임리프는 그저 그림을 멋지게 만들기 위함이거나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자유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그것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그 드라마의 타임리프가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상업성과 작품성, 그 어려운 두 마리 토끼 잡은 ‘도깨비’

드라마는 끝났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내지 않았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종영 후에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류의 물길이 막혀 버린 중국에서조차 열풍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타전되어 오고, 김은숙 작가의 회당 원고료가 최고 수준이라는 기사도 흘러나온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이 드라마의 출연자들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다. 그 중심에 선 공유는 이미 대세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이동욱은 이 작품 속 저승사자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내면서 인생 캐릭터를 얻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은교>로 다소 파격적으로 데뷔한 김고은은 그 이미지를 이 작품을 통해 온전히 지워버렸고, 사드 배치의 여파로 중국 드라마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던 유인나는 이 드라마로 만들어낸 확고한 존재감으로 한판 통쾌한 복수극을 보여줬다. 

놀라운 건 <도깨비>에 대한 열광이 사실상 모든 걸 허용하는 듯한 분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은숙 작가의 회당 원고료가 7,8천만 원에 달한다는 확실한 진위를 알 수 없는 기사 내용에도 그 반응이 “받을 만 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드라마가 막바지에 이르러 완성도 높은 엔딩을 위해 한 회를 쉰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도깨비>라면 한 회 쉬어도 된다”는 반응이 나왔던 그 정서와 유사하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런 원고료 이야기나 한 회를 못 보는 상황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응이 곱지만은 않았을 터다. 

작가와 배우들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 이제는 이 작품의 완성도 높은 영상을 만들어낸 이응복 PD에 대한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사실 <태양의 후예>를 통해 그 남다른 연출력이 주목을 받은 바 있지만, 이번 <도깨비>는 아름다운 미장센들이 영상미를 높여주었고,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구현해낸 액션 신들도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나영석 PD, 김원석 PD에 이은 새로운 신세대 연출자로서 이응복 PD가 새롭게 대중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도깨비>가 사실상 모든 게 허용되는, 그래서 다른 작품이라면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부분마저 용인됐던 건 드라마 내적인 부분들도 적지 않다. 늘 제기된 PPL 문제만 봐도 그렇다. 이번 작품 역시 김은숙 작가는 곳곳에 PPL을 노출시켰다. 너무 과도한 면들까지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가 도드라지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이러한 상업성들까지 덮을 만큼 출중했다는 뜻이다. 

드라마의 엔딩 역시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에 따라 논란이 제기 되곤 하는 문제 중 하나다. <도깨비>는 해피엔딩이지만 그 안에 죽음과 환생이라는 코드를 넣음으로써 새드엔딩의 요소도 함께 집어넣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어딘지 쓸쓸함이 담긴 끝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래서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두고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그 역시 큰 논란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찬란한’ 해피엔딩과 ‘쓸쓸한’ 새드엔딩이 교차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통찰이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이고, 그것이 엔딩에도 잘 녹아들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말 그대로 도깨비 같은 드라마가 되었다. 그 어렵다는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껴안은 작품이 되었고, 그래서 자칫 논란이 될 수 있는 많은 소지들조차 오히려 시청자들이 ‘허용’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드라마에 나온 이 대사의 표현대로, <도깨비>와 함께 모든 시간들이 다 좋았다고 시청자들은 말하고 있다.

<도깨비>의 로맨틱 코미디, ()도 되돌리는 힘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그 후가 궁금해지고,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남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그 이후를 원하는 대로 상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은 개연성과는 상관없다고 해도 왠지 믿고 싶어지고 그랬으면 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가 그렇다. 결국 도깨비 김신(공유)은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의 도움(?)으로 자신의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 사태를 이런 비극으로 만든 간신 박중헌(김병철)을 베어버리고는 자신은 신탁대로 무()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결말은 시청자도 또 작가도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9년이라는 시간을 이승과 저승 사이를 헤매는 도깨비 김신의 고행이 이어진다. 그 사이 지은탁은 도깨비와의 기억이 모두 지워진 채 성장해 방송사 라디오 PD가 되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슬픔이 문득 문득 눈물로 차오르고, 자신이 과거에 했던 메모들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마음을 건드려 삶이 버티기 힘들어질 때 지은탁은 기도하듯 촛불을 켜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시청자도 원하고 작가도 원하며 또 그 이야기 속 캐릭터들도 원하는 기적이 합의된다. 김신은 9년 간을 떠도는 처절한 고행을 거쳤지만 그가 돌아온 건 그와 지은탁이 과거에 썼던 일종의 갑을계약서 때문이다. 눈 오는 날 부르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계약. 그래서 갑자기 나타난 김신은 자신이 이라며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갑의 횡포라고 말한다.

 

비극에서 희극으로. 어찌 보면 웃음이 나오는 심지어 황당하게도 느껴지는 코미디적인 상황 전환이지만 이상하게도 <도깨비>에서는 이런 이야기 전개가 그리 불편함을 준다거나 뜬끔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거기에는 작가와 시청자 사이에 일종의 공모가 들어가 있다. 가슴에 칼이 꽂힌 채 수백 년을 살아온 도깨비와 그를 무()로 되돌릴 수 있는 칼을 뽑을 운명으로 나타나 그와 사랑에 빠지는 도깨비 신부의 이야기는 그 상황 설정 자체가 비극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 새 이야기 속에 푹 빠져버린 시청자들은 작가가 그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바꿔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마치 지은탁이 무로 돌아간 김신을 다시 부르는 것처럼.

 

물론 이런 식의 비극에서 희극으로 넘어오는 이야기 전개를 자연스럽게 해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련함이 요구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도 없이 김은숙 작가는 그 특유의 노련미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것이 가능해진 건 그녀의 양 손에 없던 것도 나타나게 할 수 있는 마법을 부리는 두 개의 초가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로맨틱이고 다른 하나는 코미디.

 

도깨비 김신을 다시 돌아오게 한 힘은 바로 그가 지은탁과의 애절한 사랑을 다시 이어가길 바라는 로맨틱한 바람이 그 원천이다. 시청자들은 절절하고 아픈 그 사랑이 늘 풋풋하고 웃음이 피어나던 그 달달한 관계로 돌아가길 원한다. 시청자들은 작가가 들고 있는 이 로맨틱이라는 초의 불을 껐고 그 순간 김신과 지은탁의 관계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갑작스런 상황 전환의 어색할 수 있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또 다른 초인 코미디. ‘의 귀환. 갑자기 나타난 김신의 입에서 툭 던져지는 그 농담 같은 유머는 진지하고 절절한 상황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발휘한다. “그게 말이 돼?”하고 묻는 진지함에 뭘 그리 심각해?”라고 어깨를 툭툭 쳐주는 듯한 농담.

 

로맨틱과 코미디. <도깨비>는 그래서 바로 이 로맨틱과 코미디가 가진 마법적인 힘들을 제대로 구현해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김은숙 작가를 왜 로맨틱 코미디의 장인이라고 부르는 지도 긍정할 수 있는.

<무도>, 굳이 유재석 모르는 사람을 찾아 나선 까닭

 

우리나라에 과연 유재석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미션 자체가 되지 않을 이 질문이 <무한도전>에서는 굉장한 흥미를 자극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시상식에서 대상만 무려 14번을 받은 그가 아닌가. 그만큼 방송에서 맹활약한 인물이고 인지도로만 치면 아마도 국내에서 손을 꼽을 만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그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늘 그렇듯이 농담처럼 툭 던져진 이 궁금증을 <무한도전>은 제대로 된 하나의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출연자 모두가 거리로 나가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을 찾고, 만약 찾게 되면 그 즉시 퇴근이라는 파격적인 보상(?)을 내놓은 것. 빨리 찾게 되면 금세 퇴근할 수 있다는 보상이 따르지만, 그건 또한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굴욕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웃을 수도 또 울 수도 없는 상황을 포착하는 것이 이번 아이템이 갖고 있던 웃음의 포인트였다.

 

하하와 함께 미션에 나선 최민용은 과거 잘 나갔던 시절을 회고하며 지나는 행인들에게 하하의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너무나 쉽게 하하를 모르는 사람을 발견하게 됐다. TV를 잘 보지 않는다는 한 어르신이 하하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 연예인으로서 너무 일찍 굴욕을 맛본 하하를 최민용이 짐짓 안타까워하며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향해 그가 하하라는 걸 외치는 장면은 고개 숙인 하하와 함께 큰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유재석은 마침 하루 쉬는 날이었던 김종민을 불러 함께 미션을 수행했다. 옷차림을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로 차려입고 나선 유재석은 김종민을 저승사자라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고 할 도깨비 신부를 찾아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너의 이름은이라는 부제를 붙여 놓은 이 미션은 그래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도깨비>의 콘셉트를 엮어 더 깨알 같은 재미요소들을 추가했다.

 

<12>10년째 전국을 여행해온 김종민은 하필 쉬는 날 이런 미션을 함께 하게 된 것에 투덜대기도 하고, 유재석을 모르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에서는 퇴근 욕심을 드러내며 웃음을 안겼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이미 <12>에서 갔던 강원도 두메산골까지 들어가 유재석의 이름을 묻는 이 미션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황당해 했다.

 

이 미션의 백미는 한 시골에 사는 91세 할머니를 만나면서였다 KBS1TV만 본다는 할머니는 유재석을 듣도 보도 못한 일반인 취급 했고, 게다가 그다지 호감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대신 함께 갔던 김종민을 알아보고 그가 웃는 상이라며 대놓고 호감을 드러냈다. 졸지에 울상이 되어버린 유재석은 김종민에게 인지도에서 눌리는 굴욕을 맛보게 됐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그 상황에서 유재석은 초심을 떠올렸다. 과거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그토록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다며 이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닌다니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 것.

 

사실 굉장히 단순하고 소소한 미션이지만 의외로 <무한도전>은 이런 미션들에서 깨알 같은 재미들을 만들어낼 때가 더 많다. 유재석이 그를 모르는 산골 어르신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큰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그로 하여금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유재석이라는 인물이 아니면 아이템 자체가 되기 힘든 미션이다. 그 정도 되는 인지도이기 때문에 두메산골까지 가서 비로소 찾아낸 유재석 모르는 할머니가 굉장한 흥밋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 유재석의 막강한 존재감을 오히려 더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나 싶다

<도깨비>,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동시에 껴안고 걸어가는

 

tvN 드라마 <도깨비>는 그 앞에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까.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에 서서 다시 처음을 돌아보니 도깨비라는 캐릭터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쓸쓸하지만 또한 찬란하게 스러진다. 그의 가슴에 꽂힌 검이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면서 가슴 한 켠에 꽂고 살아가는 쓸쓸함과 찬란함을 표징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그 검이 뽑히는 날 누구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여타의 드라마였다면 죽음은 그 이야기의 끝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깨비>는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여러 차례 죽었었다. 김신(공유)과 김선(유인나)은 이미 왕여(이동욱)의 지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바 있고, 그들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관계로 얽혀진다. 전생의 삶은 그렇게 이생의 삶으로 인연을 이어간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다. 김신의 죽음은 도깨비로의 부활로 이어지고 그 부활은 다시 도깨비신부를 만나 무()로 돌아가는 또 다른 죽음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져버린 도깨비는 그것으로 끝일까. 마치 마지막 회처럼 몰아친 한 회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한다. 도깨비가 캐나다의 한 레스토랑에서 봤던 지은탁(김고은)이 누군가를 부르는 그 장면은 그래서 그 시작을 알리는 복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다른 남자인 듯 질투를 보이는 도깨비의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어쩌면 그녀가 부르는 그 남자는 다시 시작된 삶을 살게 된 도깨비 자신이 아닐까.

 

<도깨비>가 흥미로운 건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수식어를 달은 것처럼 희극과 비극이 겹쳐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고 도깨비 신부를 만나는 그 과정은 삶의 행복이 묻어나는 희극이지만, 그 행복의 끝은 결국 도깨비의 가슴에 꽂힌 칼을 신부가 뽑아내는 비극이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삶이 찬란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그 끝인 쓸쓸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죽음이 드라마 속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의 극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깨비>의 시청률이 15.5%(닐슨 코리아)까지 상승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의 이런 독특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밝고 경쾌한 이야기에 매료되면서도 거기에 서서히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에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도깨비의 죽음이라는 극적 상황을 보여주지만 또한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상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여지를 남겨 놓는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드라마 시청자들은 그 끝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민감하다. 그래서 엔딩을 암시하는 무언가가 등장할 때마다 기대감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도깨비>는 이 둘을 동시에 껴안고 끝을 향해 걸어간다. 도깨비의 죽음은 과연 새드엔딩일까. 그건 다시 벌어질 해피엔딩의 시작은 아닐까.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 하듯 걸어가는 <도깨비>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시 살아 돌아오길 더더욱 간절히 기원하며. 이러니 다음을 기다리는 한 주가 900년 같다는 말이 나올 밖에.

<도깨비> 김병철, <푸른바다> 황신혜, <낭만닥터> 최진호의 유사점은

 

사실상 드라마의 반은 악역들이 만들어낸다. 악역이 있어야 갈등이 생기고 드라마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갈등유발자로서의 악역은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그 시대가 밟고 있는 지평 위에서 가장 민심을 건드릴 수 있는 악이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주인공만큼 악역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그런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악역들의 유사점들이 발견된다. 그들은 멀쩡한 얼굴로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이고, ‘세치 혀를 놀려 사실상 모든 권력의 정점에 서서 전횡을 일삼는 인물들이다. 대중들 앞에서는 선한 척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실체는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괴물들. 이 시대가 이른바 비선실세라고 부르는 그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간신 박중헌(김병철)은 어린 왕을 세우고 그 왕을 조종해 세상에 군림하려는 자다. 알고 보면 이 <도깨비>의 모든 갈등의 근원은 바로 이 박중헌이라는 악역으로부터 비롯된 일들이다. 그의 세치 혀에 의해 외세를 물리친 김신(공유)은 왕을 위협하는 역적으로 몰아세워지고 결국 그와 그의 여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에 힘입어 부활한 도깨비 김신은 그렇게 9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자신을 영원히 무()로 보내줄 도깨비 신부를 기다리지만 막상 만난 그녀를 김신은 사랑하게 된다.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 세치 혀를 놀려 파국을 노리는 자가 바로 박중헌이다. 그는 김신과 함께 지내는 저승사자(이동욱)가 바로 그들을 죽게 만든 왕이었다고 말한다. 등장하면서 검은 세치 혀를 날름대는 장면은 박중헌이라는 악의 근원은 바로 그 말이라는 걸 말해준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계모로 들어와 단란했던 가족을 붕괴시켜버린 강서희(황신혜) 역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는 악역이다. 자신이 함께 살았던 이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 희대의 악녀는 결국 허준재(이민호)의 부친이자 그녀의 남편인 허일중(최정우)의 시력을 점점 잃게 만들더니 결국은 살해한다. 허준재를 만난 후 그녀를 의심하게 된 허일중이 그녀가 주는 약을 먹지 않고 버릴 때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장면은 마치 공포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소름을 돋게 만든다.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역이란, 여러모로 허수아비를 세워 놓고 눈과 귀를 가리며 결국은 파국으로 이끄는 비선실세의 캐릭터 그대로다. 허일중의 죽음은 그래서 허준재를 각성하게 만든다. 가짜 행세를 해온 강서희와 그녀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을 몰아내고 제 자리를 찾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대한 사안으로 다가오는 것. 이만큼 현 시국과 닮은 상황이 있을까.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악의 근원은 도윤완(최진호) 거대병원 원장이다. 그는 과거 김사부(한석규)의 대리 수술을 실제로 주도한 인물이지만 그 문제가 불거지자 모든 죄를 김사부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병원의 주인은 아니다. 실제 주인은 신회장(주현)과 그의 딸(김혜은)이지만 도윤완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격.

 

그는 권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김사부를 내쫓고 자신의 입지를 지켜내려 한다. 그러면서 실제로 김사부가 그 어려운 인공심장 교체 수술을 해낸 걸 마치 자신의 치적인 양 가로챈다. 신 회장은 자신의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병원 경영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지만 차츰 이런 현실을 알아차린다. 그 잘난 세치 혀로 사실상 비선실세의 역할을 해온 도윤완의 전횡을 김사부가 어떻게 저지하고 무너뜨리느냐가 이 드라마가 꿈꾸고 있는 사이다 결말이다.

 

드라마 악역들이 이처럼 비선실세들로 넘쳐난다는 사실은 어쩌다 겹친 우연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악의 근원이라는 걸 드라마들은 놓치지 않고 꺼내놓고 있다는 것. 그들의 세치 혀가 농단한 세상을 다시 본래 자리로 돌리는 것이 드라마들이 꿈꾸는 결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네 서민들이 꿈꾸는 결말이기도 하다

자유자재 방송분량, 지상파가 부러워하는 tvN 드라마

 

62분부터 88분까지.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tvN <도깨비>의 자유로운 방송분량이다. <도깨비>는 첫 회에 무려 88분 동안 방영됐다. 아무래도 고려시대와 현재를 오가는 그 비장하기까지 한 운명의 서막을 담아내는데 있어서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다고 보인다. 실제로 이 첫 회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는 평들이 많았다. 그만큼 88분이라는 시간을 몰아친 것이 주효했다는 뜻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2회와 3회 역시 <도깨비>는 각각 77, 83분을 방영했다. 3회분 동안 <도깨비>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단히 잡아끌었다. 첫 회에 6.3%(닐슨 코리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2회에는 7.9%로 상승세를 이어가더니 3회에는 무려 12.4%로 폭등했다. 2회 마지막에 납치된 지은탁(김고은)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도깨비(공유)와 저승사자(이동욱)이 마치 런웨이를 걷듯 신비스럽게 나타나던 장면으로 끝을 맺은 것에 대한 궁금증이 컸을 게다. 3회 시작은 이 둘이 멋지게 괴한들을 물리치는 장면을 보여줬다. 자동차를 반 토막내는 도깨비의 멋짐이 폭발했던 것.

 

3회까지 이렇게 쏟아 부은 <도깨비>4회에 이르러 62분으로 정상적인 방송분량을 내보냈고, 그 후 조금씩 방송분량이 늘어나 9회에는 79분까지 다시 늘어났다. 시청률은 안정적으로 12%대를 유지했고, 지은탁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저승사자의 정체가 써니(유인나)에게 드러난 11회에서는 14%로 반등했다. 11회 방송분량은 76분이었다.

 

사실 방송분량이 시청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만은 볼 수 없다. 즉 제아무리 방송분량을 늘린다고 해도 작품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시간 투자만 많아지게 될 뿐이다. 하지만 <도깨비> 같은 작품은 다르다. 이미 완성도도 높고 시청자들의 관심도 갈수록 증폭되어간다. 그러니 방송분량을 조금씩 늘리는 건 드라마로서는 굉장한 이점들을 주기 마련이다.

 

이미 몰입이 생겨난 드라마에 늘어난 방송분량은 시청률의 반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분량이 늘어나면 광고가 게재될 수 있는 양도 늘어난다. 중간광고가 허용되는 케이블 채널의 경우, 방송분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수익성이 극대화된다는 뜻이다. 제작사나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만큼 좋은 일이 없다.

 

지상파 드라마들은 사실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동시간대에 경쟁을 하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들은 방송시간에 그만큼 민감하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사 3사는 방송시간에 대한 일종의 합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방송시간을 늘리는 방송사가 있으면 변칙 방송이라며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tvN 같은 케이블 채널은 이런 제한이 전혀 있을 수 없다. 지상파3사 같은 경쟁체제라고 할 수 있는 구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성에 있어서도 tvN 같은 케이블은 훨씬 더 유연하다. 뉴스 같은 그 시간대에 반드시 나와야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락 채널이기 때문에 훨씬 더 자유롭게 편성을 할 수 있다. 때로는 특정 드라마 데이를 만들어서 하루 종일 그 드라마만을 방영하는 파격적인 편성을 하기도 한다. <도깨비> 같은 경우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재방송되고 있다. 이 재방송 광고까지를 수익으로 생각해보면 실로 드라마 한편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가져가게 되는 셈이다.

 

물론 방송분량에서 자유롭다는 뜻이 단지 시청률이나 수익에서의 우위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PD나 작가 같은 제작자들 입장에서 보면 방송분량에서의 자유는 마음껏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창작의 자유이기도 하다. 이러니 김은숙 작가 같은 유명 드라마 작가들이 지상파 3사가 아닌 tvN에서 드라마를 하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또한 tvN에서 지상파보다 훨씬 높은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도. 물론 이런 자유는 결국 tvN 드라마의 완성도도 더 높여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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