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동거, 워킹맘, 졸혼...‘아이해’가 보여주는 가족의 변화

KBS 주말드라마는 사실상 가족드라마의 최후보루나 마찬가지다. 기본이 20% 시청률부터 시작한다는 이 KBS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의 전통적인 시청층의 충성도가 대단히 높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채널을 이 주말드라마에 고정시켜놓는 것이 당연한 주말의 풍경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하지만 주말드라마는 최근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그 가족드라마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네 가족의 형태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 수의 4분의 1을 넘어선 지 오래고, 결혼률은 물론이고 출산률 또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현실의 가족이 가족드라마가 늘 구성하던 대가족 형태에서 이미 벗어나 있기 때문에 주말드라마의 양태들은 어찌 보면 시대와 맞지 않는 틀로 보이기 십상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버지가 이상해>를 보면 그래서 이러한 시대성을 따라가기 위한 현실적 상황들을 다수 포진시키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변미영(정소민)과 김유주(이미도) 사이를 통해 보여줬던 왕따문제, 변준영(민진웅)이라는 공시생을 통해 보여준 우리네 청춘들의 취업현실, 변혜영(이유리)과 차정환(류수영)의 동거, 계약결혼 등을 통해 보여준 현 세대들의 달라진 결혼관, 임신을 하게 된 후 겪는 경력 단절의 고충을 통해 김유주가 간접적으로 드러내준 워킹맘의 비애, 실력이 출중해도 돈이 없어 아이를 보낼 수 없는 나영식(이준혁)과 이보미(장소연)의 고충을 통해 드러낸 특목고의 문제, 그리고 차규택(강석우)과 오복녀(송옥숙)를 통해 보여준 졸혼이라는 새로운 노년의 풍경까지.

물론 <아버지가 이상해>는 이토록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담으면서도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가족드라마의 공식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방식을 취했다. 즉 변라영(류화영)과 박철수(안효섭)를 통해 여전히 등장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그렇고, 변혜영과 차정환의 결혼 과정을 통해 그려내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도 그렇다. 여기에 배우 안중희(이준)가 뒤늦게 변한수(김영철)가 자신의 친부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코드도 빠지지 않았다. 

즉 <아버지가 이상해>는 우리네 가족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가족 형태에 대한 여전한 향수를 가족드라마라는 틀에 녹여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식상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여전한 공식들을 가져오지만(그래서 주제 역시 가족애라는 틀로 많은 갈등들이 봉합되는 보수적 형태를 유지한다), 그래도 그 안에 많은 현실적인 질문거리들을 담아내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특히 변혜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달라진 여성의 면면은 주목할 만하다.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동거를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나, 결혼에 계약 조건을 단다거나, 시댁에 살면서도 시부모와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은 지금의 결혼 세대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사회 현실이 대중들의 생각만큼 변화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래서 김유주 같은 인물이 임신을 한 후 일에서 점점 배제되고 그래서 더 무리하게 되는 그 안간힘은 달라지는 가족의 변화만큼 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네 사회의 면면을 꼬집는다. 아이를 결국 잃게 된 김유주가 뒤늦게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후회하는 장면은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개인의 차원에서 그들의 희생으로 덮여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낸다. 

물론 가족드라마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양태가 바뀌고 있는 한 그 가족드라마의 틀이 언제까지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아버지가 이상해>는 그 과도기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가족을 향수하는 보수적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볼만한 많은 현실적인 변화와 문제들을 꺼내놓고 있다.

‘아버지가 이상해’가 드러낸 동거·결혼에 대한 세대 차이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결혼 전 동거는 잘못된 일일까. 차정환(류수영)과 변혜영(이유리)의 동거사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사실을 숨겨 충격을 안겨준 것에 대해서 변혜영 역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동거’를 한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를 모르겠다고 부모들 앞에 대놓고 말했다. 그건 변명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이었다.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가 화두로 꺼내 놓은 건 최근 달라진 결혼관과 동거에 대한 생각이다. 동거는 변한수(김영철)와 나영실(김해숙) 같은 부모 세대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다지 넉넉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똑 부러지게 잘 자라 변호사가 된 딸 변혜영이 동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대만큼 더 큰 실망감을 안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변혜영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을 비난하는 가족들 앞에 적어도 동거에 있어서는 당당했다. 결혼 전 함께 살아봐야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고, 그래서 하는 동거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 사실 그녀의 말대로 결혼부터 덜컥하고 살다가 아이까지 생겼지만 그제서야 생각이 바뀌어 이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떤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인가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딸을 둔 부모의 경우 동거를 더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는 과거의 혼전순결을 강조하던 비뚤어진 여성관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동거를 하는 것 자체가 여성으로서의 삶의 끝처럼 여기는 여성관이다. 하지만 어디 지금 우리네 삶이 그러한가. 동거를 찬성하는 쪽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건 성별과 상관없는 경험이고 선택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차를 <아버지가 이상해>는 아들의 경우와 딸의 경우를 비교해 논점으로 끌어내고 있다. 즉 변혜영의 오빠인 변준영(민진웅)은 혼전에 김유주(이미도)와의 아이를 먼저 덜컥 갖게 되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부모 역시 충격을 받긴 하지만, 의외로 선선히 이를 받아들이고 결혼을 허락했다는 것. 그 와중에 김유주의 입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부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동거와 임신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동거를 반대하는 것도 또 그러다가도 덜컥 임신을 하고 오면 결혼을 서두르는 것도 결국 남성과는 달리 여성을 바라보는 과거의 성별의식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즉 변한수와 나영실의 다른 태도 속에는 은연 중에 아들과 딸에 대한 다른 입장이 들어가 있다는 것. 

변혜영은 자신이 틀렸다며 몰아세우는 가족들 앞에서 그건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라고 말했다. 부모의 생각도 맞지만 자신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는 것. 그저 이전 세대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이상해>가 변혜영의 동거에 대한 입장을 통해 꺼내놓은 건 지금의 달라진 결혼관에 대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더 이상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락 여기는 세대들에게 동거는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 세대들은 여전히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당사자들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세대들이 갖게 된 결혼관이 그러할 진대.

최여진의 재발견, <공항>의 사랑만큼 진한 우정

 

너 나 결혼할 때 왜 안 말렸어? 뜯어말렸어야지. 박진석, 가족이랑 못산다. 네가 숨 쉬는 것도 지나다니는 것도 싫어할 거다. 나랑 살면서 최수아 너 만났듯이 너랑 살면서 끝없이 딴 여자 만날 거다. 넌 박진석 인생에서 곧 아웃이다. 왜 말 안했냐고? ? ? ?” KBS <공항 가는 길>에서 절친인 송미진(최여진)에게 최수아(김하늘)는 그간 쌓여온 감정을 쏟아낸다. 그 감정에는 자신의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결혼한 자신에 대한 회한이 더 깊게 자리해있다.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송미진은 말렸어도 그녀가 박진석과 결혼했을 거라며 그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자신을 드러낸다. “네가 내 말을 들었겠다. 미치도록 사랑해놓고. 너 거기서도 못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치겠지? 잘 살아? 못살아? 그것만 말해. 너 걱정돼서 그래. 어쩌자고 간건지 확실하게 말해.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 테니까.” 결국 송미진은 그녀와 다투면서도 그녀를 걱정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를 도울 거라고 말한다.

 

친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송미진은 절친인 최수아에게 결국 사과했다. 그녀가 최수아의 남편 박진석과 결혼 전에 동거했었고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이 사사로이 만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박진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건 아니다. 어찌 보면 그녀 역시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건 박진석이라는 애초부터 여성 편력이 있는 나쁜 남자에 의해 생겨난 일이기 때문이다. 박진석은 송미진과 동거하면서 심지어 그녀의 절친인 최수아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남자친구와 절친이 관계를 맺는 아픔을 먼저 겪은 건 바로 송미진이다.

 

최수아 역시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림에도 불구하고 송미진이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과거 남편과 동거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숨겼고, 박진석이 그런 인간이라는 걸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 못내 화가 날뿐이다. 그래서 송미진이 사과한 것은 최수아 남편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최수아와의 우정관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우정이 끈끈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우정은 힘겨운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최수아가 결국 서도우(이상윤)의 아내인 김혜원(장희진)을 만나게 되고 그 관계를 들킨 후 뺨까지 맞게 됐을 때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한 건 바로 송미진이었기 때문이다. 송미진은 유경험자(?)로서 최수아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제주도를 찾아온다.

 

<공항 가는 길>은 이미 결혼한 남녀 사이에 생겨난 인연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그 안에 사랑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관계는 우정이다. 어찌 보면 송미진과 최수아 그리고 박진석의 관계란 미묘하게 얽힐 수 있는 잘못된 만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힘겨운 관계에서조차 어떤 위로를 주는 건 송미진과 최수아의 변치 않은 우정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는 면면은 송미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보통 멜로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절친은 마치 연애 코치를 하는 듯한 호감을 주기 마련이다. 송미진은 진정성 있는 우정은 물론이고 어딘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최수아 옆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될 것 같은 걸 크러시의 면면까지 갖고 있다.

 

참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최여진이라는 배우가 특히 이번 작품에서 주목되는 건 아무래도 이 송미진이라는 인물이 제 옷을 입은 듯 그녀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일 듯싶다. 복잡한 남녀관계 속에서 명쾌한 우정관계를 드러내주는 인물이 주는 속 시원함과 든든함. 송미진이란 캐릭터를 통해 최여진이라는 배우 역시 달리 보인다

<질투의 화신> 공효진, 어떻게 양다리를 설득시켰을까

 

두 남자 사이에서 대놓고 간을 보는 여자. 여타의 멜로드라마라면 이런 여자 캐릭터는 비난받기 일쑤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SBS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공효진)는 다르다. 그녀는 내놓고 이화신(조정석)과 고정원(고경표)에게 자신의 마음이 두 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이화신이 양다리를 제안(?)했고 고정원도 그걸 수락함으로써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 두 남자 사이에서 대놓고 양다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캐릭터. 어떻게 이 드라마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었을까.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사실 드라마의 앞부분을 보지 않고 세 사람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이 기묘한 상황부터 보게 된 시청자라면 이 장면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고 나아가 그 관계를 허용하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처음부터 들여다본 시청자라면 다르다. 그들이 어쩌다 그런 복잡 미묘한 관계가 되었는가를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이건 이 드라마를 쓴 서숙향 작가가 관계가 어쩌다 이렇게 흘러왔는가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뤘는지를 말해준다.

 

이화신을 짝사랑하지만 늘 퇴짜만 맞고 구박받던 표나리가 고정원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차츰 이화신의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이화신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피는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졌으며, 뒤늦게 이화신의 사랑을 확인한 표나리가 이미 고정원과 가까워짐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을 위해 둘 다 포기하려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도 담겨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화신과 고정원이 지금의 동거 상황까지를 만들어낸 것.

 

그 속에서 표나리는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양다리에 있어서 최소한의 예의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저 스스로는 두 사람을 비교하며 어느 쪽이 나은가를 가늠해본다. 여기서 표나리의 미묘하고도 섬세한 내면이 드러난다. 즉 자상하고 배려심 많고 돈도 많은 데다 젠틀하고 성숙해 보이는 고정원이 사실상 모든 면에서 이화신보다 나아보이는 게 사실이고 정반대로 이화신은 투덜대고 자기 위주인데다 툭 하면 싸우기 일쑤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이화신쪽으로 기울어가는 것. 그걸 증명하는 건 다름 아닌 질투.

 

밤마다 고정원의 집을 무단으로 찾아오는 금수정(박환희)을 그가 집까지 바래다주는 걸 알게 된 표나리는 그러나 이렇다 할 마음의 동요를 갖지 않는다. 질투의 마음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양다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졌다는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어머니와 식사를 하자고 애원했음에도 표나리가 고정원의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제 관두자며 집을 나가버리자 그녀는 마음이 쓰인다. 부랴부랴 방송국을 찾은 표나리는 마침 이화신에게 키스하는 홍혜원(서지혜)을 목격하며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어찌 보면 간 보는 여자 캐릭터로 지탄받을 수도 있고, 또 생각과 마음이 달리 움직여 두 남자를 괴롭게 만드는 그녀가 민폐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표나리의 갈팡질팡은 그런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감정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크다. 생각으로는 고정원이 여러 모로 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마음은 이화신을 향해 가는 그 심리가 이해된다는 것.

 

<질투의 화신>은 질투가 사랑을 증명한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러니 사랑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연기보다 이렇게 질투를 하고 화를 내고 지질하게 굴며 아이처럼 투정부리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연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이라는 연기자를 새롭게 보게 된 이유다.

 

하지만 두 남자 사이에서 생각은 고정원을 향해 가지만 마음은 이화신을 향해 기울어지는 그 복잡 미묘한 표나리의 감정을 연기하는 공효진 역시 그 연기가 조정석만큼 섬세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질투는 그래서 두 감정 사이에서 사랑을 확인시키는 증표가 된다. 그러고 보면 질투로 사랑을 표현해낸 조정석만큼, 생각과 마음이 갈라지는 그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공효진 역시 이 작품의 하드캐리였던 것이 분명하다

<세결여>의 숨은 주인공, 한진희의 부성애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있을까.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오병식(한진희)은 뭐 딱히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그다지 없어 보이는 아버지다. 그는 한때 택시기사였었고 중소기업 사장의 운전수였다가 지금은 건물의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딸 은수(이지아)가 중견기업 오너의 며느리라는 사실은 얼핏 이 오병식이라는 아버지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늘 차분하고, 성실해 보이는 이 아버지는 그래서 이 드라마에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재혼한 은수의 딸, 슬기(김지영)를 챙겨주는 인물이거나 걱정이 태산인 아내 순심(오미연)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정도의 역할이랄까. 하지만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차츰 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실 자식까지 전 남편에게 넘겨주고 재혼했지만 남편의 불륜 때문에 또 이혼을 준비하는 딸이 아버지에게 마뜩찮을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속이 상해도 그 흔한 술 한 번 마시고 주사라도 늘어놓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속으로 꾹꾹 눌러 삼키고 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것은 과년한 첫째 현수(엄지원)가 결혼식도 안올리고 심지어 광모(조한선)와 동거를 하겠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버지는 그저 한 걸음 물러서 알아서 하겠지.”하며 딸의 선택에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걸핏 하면 소리를 지르고 손부터 올라가는 준구(하석진)의 아버지 김회장(김용건)과는 사뭇 다르다. 김회장이 어딘지 과거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를 닮았다면 오병식은 달라진 현재의 서민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이런 아버지들은 가족 내에서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다. 가장으로서 서 있긴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자식들 앞날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딘지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이들 아버지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가족들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되었다.

 

오병식이라는 아버지는 그래서 이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가족들이 힘겨울 때마다 묵묵히 그 아픔을 들어주고 또 버텨내주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 남편의 불륜에 상심한 딸을 품어주는 것도 이 아버지고, 결혼 안 하고 살겠다는 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도 이 아버지다. 심지어 이혼해서 아버지를 따라간 딸의 자식까지 걱정하고 챙겨주는 것도 이 아버지의 몫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결혼을 몇 번을 하든, 아니면 아예 하지 않든 그들을 딸로서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 달라진 결혼 풍속도가 야기하는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어쩌면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문제들을 자식을 보는 마음으로 품어주는 시선일 지도 모른다. 결국 결혼이란 자신들의 선택일 뿐이라는 것. 다만 부모로서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그런 점에서 오병식이라는 아버지는 이 드라마의 숨겨진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그의 부성애는 이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이혼과 결혼, 동거, 불륜, 심지어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계모의 이야기까지를 모두 보듬어 안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존재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 언제든 가슴 열어 안아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이것이 제 아무리 세태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가족의 가치가 아닐까. 그가 있어 참 다행이다.

‘우리 결혼했어요’, 그 재미 속에 남는 우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상으로 설정된 남녀들의 결혼생활을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담아낸 프로그램. 전성호 PD는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다. 아마도 가상이지만 타인들의 좌충우돌 결혼 생활을 들여다봄으로써 타산지석이 될 거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가상 결혼’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동거’라는 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결혼은 ‘하는 것’이지만, 동거는 ‘해보는 것’이듯이, 이 ‘가상 결혼’도 그저 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결혼했어요’가 보여주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동거다.

바로 그 동거생활, 즉 결혼처럼 해보는 생활은 적어도 책임감이나 의무감 혹은 관계의 피곤으로 점철된 우리네 결혼생활이 자리한 사회 속에서는 환타지에 속한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주는 재미의 포인트는 현실적인 리얼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부족한 이 환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데 있다.

따라서 정형돈-사오리 같은 현실적인 부부생활의 리얼리티는 이 프로그램의 주요 재미요소인 환타지를 상쇄시킨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알렉스-신애 같은 풋풋하고 절절한 연애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커플이거나, 크라운제이-서인영 같은 거침없고 개성강한 신세대 커플, 솔비-앤디 같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커플, 혹은 황보-김현중 같은 엇박자지만 잘 어울리는 연상연하 커플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그 달콤하고 유쾌한 환타지 속에 빠져보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시청자들은 이미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런 몰입과 관조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다. 저건 가상이지 실제가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환타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그 목적에 합당하게 충분한 재미를 주면 되는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동거생활을 보여주면서 ‘결혼했어요’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결혼에 대한 개념을 전적으로 혼동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가상결혼이라는 컨셉트로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제목을 달면서, 보는 이에게 이건 ‘가상의 결혼생활’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마치 ‘가상’이라는 전제를 달았기 때문에 괜찮다 생각될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것은 여전히 결혼생활이라는 강변을 하고 있다. 비록 가상이지만 결혼생활은 결혼생활이라는 말이다.

이로써 이 프로그램이 실제로 보여주는 동거생활은 결혼생활로 치환되면서 저 케이블TV에서 줄곧 방영되며 선정성 논란에 휘말린 동거 프로그램들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어찌 보면 ‘우리 결혼했어요’는 이미 케이블TV에서 방영되고 있던 ‘애완남 키우기 나는 펫’같은 동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공중파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뉘앙스의 차이다. 둘 다 같이 사는 것이지만 동거와 결혼은 그 뉘앙스가 다르다.  “나 결혼했어”하고 말하는 것과 “나 요즘 동거해”하고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동거 프로그램이 갖는 어두운 면들을 ‘결혼’이라는 용어로 포장함으로써 양지로 끄집어낸 혐의가 짙다. 여기에 일반인들이 갖는 남녀관계의 환타지를 결혼에 대한 환타지와 묶음으로써 자칫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방향을 로맨틱 모드로 바꾸어주었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 바로 이 부분이 스타들의 리얼리티쇼와 맞닥뜨리는 부분에서 폭발력을 갖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동거생활을 결혼생활로 포장하면서 발생하는 결혼의 개념에 대한 혼란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것이 그 열렬한 환타지에 대한 희구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면서도 한편으로 남는 우려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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