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탄생

어떤 영화는 실제 주인공을 숨겨야 그 감동의 효과가 커지기도 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그런 영화다. 이 영화가 시작됐을 때 가장 전면에 나선 배우는 역시 이병헌이었다. 한 때는 동양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한물 간 전직 복서로 스파링 파트너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조하 역할을 이병헌은 천연덕스럽게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다. 

사생활 문제로 질타를 받았던 이병헌이지만 적어도 연기에 있어서만큼 관객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였다. <내부자들>의 3류조폭 안상구 역할을 통해서도, <밀정>에서 특별출연이지만 정채산 역할로 확실한 존재감을 세운 면에 있어서도 또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강변하는 최명길 역할로서도 그는 연기의 공력을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그것만이 내 세상>의 조하라는 캐릭터는 그간 그가 보여줬던 카리스마의 정반대편에서 힘을 쪽 뺀 삼류인생 연기로 이병헌은 더욱 주목되었다. 버림받고 두드려 맞으며 홀로 세상과 사투하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제는 꿈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는 조하라는 캐릭터는 이병헌의 연기 스펙트럼이 갈수록 넓어진다는 걸 확인시켰다. 

하지만 이병헌이 전면에 나와 있어 이 영화가 ‘그의 세상’처럼 홍보되었지만, 실상 영화를 보고나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다른 데 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는 바로 조하의 동생 역할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홍보에서도 의도적으로 그 존재를 숨겨놓은 이 인물은 바로 그것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전율하게 만든다. 

대사하고 해봐야 “네-” 정도가 대부분인 진태를 연기하는 박정민은 마치 진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이 인물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어눌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이 같은 천진함으로 밝은 웃음 같은 걸 함께 주는 인물.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쩌면 박정민의 ‘연기 세상’이 이제 드디어 꽃을 피웠다는 걸 알리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가 저 배우가 누구야? 하고 질문을 던지고 나면, 그가 바로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옆자리에 든든하게 서 있던 송몽규 역할을 연기했던 바로 그 배우라는 걸 되새기게 된다. 그 때도 사실 동주 역할을 했던 강하늘이 전면에 나와 있어 살짝 가려져 있었던 배우가 바로 박정민이었다. 그러고 보면 박정민은 이제 강하늘이나 이병헌 같은 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연기를 해오며 자기만의 연기 영역을 확보해오고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실로 이병헌이 깔아놓는 희비극 위에서 박정민이 깊은 감동의 연기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박정민이 선보인 피아노를 치는 연기는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다. 물론 연출의 힘을 더해 완성된 것이긴 하지만, 실제 연주를 방불케 하는 피아노 연주 연기와 더불어, 서번트 증후군 특유의 독특한 동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로서는 그 연주 무대만으로도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박정민은 주어진 재능도 정말 특별한데 노력과 성실함도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단한 배우다.” 함께 연기한 이병헌의 이 말이 그저 던지는 상찬이 아니라는 걸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게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동주>에서 드디어 자기 존재를 드러낸 박정민이 이제 자기 세상을 활짝 열어젖힌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사진: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기억의 밤’, 아픈 기억은 어째서 밤을 필요로 하는가

영화 <동주>에서 감옥에 수감되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점점 파리해져가는 강하늘의 그 초점없는 눈빛이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관객이라면 장항준 감독의 신작 영화 <기억의 밤>은 바로 그런 강하늘의 얼굴이 가진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올 게다. 밝고 맑은 청년 같은 얼굴로 시작하지만 저 뒤편으로 가면 ‘절실함’에 몸부림치다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그의 얼굴 속에 한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느낄 수 있을 테니.

<기억의 밤>은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동시에 공포물이 갖는 충격 요법이 적절히 배치된 작품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기 어렵고, 또 벌어진 일이 실제인지 꿈인지 알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주는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워낙 반전의 반전이 많은 작품이라 어떤 언급조차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기억의 밤>은 어느 날 낯설게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동생 진석(강하늘)이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집으로 가족이 모두 이사를 하면서 밤마다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추적해 가는 진석은 그가 본 것들이 실제인지 아니면 꿈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신경쇠약을 앓고 있는 자신의 환상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가림막이 주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그러나 영화가 중반 정도를 지나면서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공포물이 아닌 스릴러의 긴박감을 만들어낸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소름 돋는 반전이 관객의 예측을 깨버리면서 이야기는 과거 우리가 겪어냈던 시대의 아픔을 기억으로 소환해낸다. 진석의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던 영화가 사회적 함의로 확장되어간다는 건 이 작품이 단순한 스릴러 장르의 쾌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전하려는 주제의식이 분명하다는 걸 말해준다. 

밤에만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기억이 실제인지 아니면 환상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일들은 이 작품의 제목이 왜 <기억의 밤>인가를 말해준다. 그것은 진짜 기억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밤이라는 영화의 실제 상황을 지시적으로 말해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아픈 기억이 어째서 망각이라는 밤이 필요한가를 얘기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최근 2,30년 동안 꽤 많은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어왔다. 다리가 붕괴되고 건물이 무너지고 하루아침에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해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고 지하철 화재와 배의 침몰로 무고한 생명들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른바 안전 불감증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사건들이 가진 충격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그건 진짜 우리가 안전에 대한 불감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너무나 고통스런 기억들이어서 마치 없는 일처럼 치부하고,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 여기려는 안간힘에서 생겨난 ‘증상’은 아니었을까. 기억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밤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밤>이라는 제목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이 증상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로 강하늘은 그 변화해가는 얼굴 속에 우리 사회가 겪은 그 상처의 면면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연기를 보인다. 스릴러 장르가 가진 반전의 쾌감이 주는 재미가 그저 장르적 재미로 휘발되지 않고 어떤 사회적 함의로 확장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강하늘의 얼굴에 담긴 시대의 정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얼굴 속에 우리네 현대사의 상처들이 어른거린다.(사진출처:영화<기억의 밤>)

세종부터 윤동주까지, <무도> 역사로 현재를 경고하다

 

세종대왕, 위안부, 성웅 이순신, 유관순 열사, 윤동주 시인... <무한도전>이 힙합과의 콜라보를 위해 꺼내든 역사는 그 하나하나가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실들이었다. 그것은 굳이 현재의 시국 상황을 꺼내놓고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단지 그 역사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비판보다 준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의 평가가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에 내리는 철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가기 전 출연자들이 모여 들은 설민석 강사의 강의는 그 메시지가 명확했다. 설민석 스스로 말했듯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킨 건 백성이라는 게 이 강의의 중심주제였다. 본래 역사란 현재에서 선택되는 순간 그 자체로 현재적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설민석이 중심 주제를 그렇게 잡은 것도, 또 그래서 현재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과 임진왜란에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이순신 장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천명하기 위해 천민이지만 홀로 나섰던 안용복 선생님, 일제강점기에 기꺼이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나라 잃고 이름마저 잃은 세상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그리고 꽃다운 나이에 이역 땅까지 끌려가 지옥 같은 나날을 살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소녀들까지 모두가 그저 과거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 울림을 주는 것들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농사직설 같은 책을 편찬하기 위해 똥지게를 지고 직접 농사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지금의 대중들은 어떻게 들을까. 이를 주제로 노래를 만들기 위해 정준하와 지코가 찾은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해주는 세종대왕의 이야기에 지금의 대중들은 어떤 걸 떠올렸을까. 박상연 작가가 지도자들 입장에선 백성이란 존재가 적당히 무식하고 정치에 무관심해야 통제하기가 쉽다.”고 말한 대목에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를 비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을 양세형과 비와이가 만나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초를 듣는 그 대목에서 지난해 1228일 한일외교정상회담에서 나온 위안부 합의의 굴욕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에 할머니들 역시 거리로 나와 현 국정농단을 규탄하면서 위안부 합의 역시 역사 농단의 하나임을 외치지 않았던가.

 

왕이 도망칠 때 홀로 왜적과 맞서 싸운 성웅 이순신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순신 장군을 노래로 만들기 위해 하하와 송민호가 <명량>의 전철홍 작가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들은 저 광화문 광장에서 지금도 우뚝 서서 백성들과 함께 할 그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박명수와 딘딘이 설민석 강사의 강의에 감명 받아 노래로 만들려 하는 독도이야기에서 나라의 관리들이 하지 못한 일을 천민 출신의 안용복 선생이 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또 황광희와 개코가 주제로 잡은 윤동주 시인이 시로써 써나간 당대의 부끄러움이 현재의 부끄러움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었다. 오직 역사적 사실들을 가져와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은 그 어떤 준엄한 비판보다 크게 다가왔다. 거기에는 결국 역사가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후대에 평가되어 대대로 이어질 역사가 있다는 것. 그걸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은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날렸다.

<사도><동주>, 이준익 감독이 그린 청춘의 자화상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는 송몽규와 같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아름다운 청년들처럼 지금 이 시대의 송몽규들에게 많은 위로와 응원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동주>가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백상예술대상(사진출처:JTBC)'

52회 백상 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을 차지한 이준익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밝혔다. 올해는 <암살><베테랑>이 쌍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여름 시장과 <내부자들>까지 겹쳐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한 해였다. 백상은 그 중 <사도><동주>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도>6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했고, <동주> 역시 저예산 영화에도 불구하고 116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 하지만 두 작품 다 관객 수로는 여타의 영화들에 밀렸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이 백상의 주인이 된 까닭은 두 작품 다 상업적으로도 또 작품으로도 의미 있는 성취를 거뒀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모두 청춘에 대한 위로를 담고 있었다. <사도>는 우리네 역사의 가장 큰 비극적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영조(송강호)가 사도세자(유아인)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사안을 소재로 삼고 있다. 여러 차례 사극을 통해 방영되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여기에 현재의 청춘들과 어른들의 관계를 투영시켰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게 만드는 이야기는 그래서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힘겨운 현실에 처해 있는 청춘들이 공감 받을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되었다. 갑갑한 관 같은 궁궐에 갇혀 산 송장 취급받으며 살아가는 사도세자의 울분과 광기는, 아버지와 아들이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서로 대립하며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 세태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기는 대목이었다.

 

한편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진 <동주>는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라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바라던 청년들은 시대의 아픔 앞에 쓰러졌고 그러면서도 꿋꿋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갔다.

 

사실 이 작은 흑백영화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 속에 담아낸 치열했던 청춘들의 이야기에서 지금의 청춘들 역시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저예산 흑백영화가 거대자본의 상업영화들 속에서 이만큼 선전했다는 것은 마치 지금의 현실 속에서 소외된 청춘들의 목소리에 대중들이 귀 기울여줬다는 희망과 위로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동주>를 통해 지금의 청춘들을 지지했다. 그리고 백상은 그런 이준익 감독의 지지에 화답했다. 두 영화는 말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청춘들은 치열하고, 치열한 만큼 아름답다고

<귀향>의 소녀들과 <동주>의 청년들

 

영화는 이미 자본의 경제가 된 지 오래다.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가 하는 점은 그 영화의 성패와 무관하지 않다. 극장에 얼마나 걸어주는가가 흥행의 관건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배급사가 투자사인 우리네 상황에서 투자규모가 큰 영화는 그만큼 극장에서 더 오래 많은 관을 내주게 된다. 그러니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설 자리 자체가 없다. 자본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영화 산업에 극명하게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사진출처: 영화 <귀향>

그런데 여기 이런 자본 시스템을 거스른 두 영화가 있다. <귀향><동주>. <귀향>은 국민 75270명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 12억을 모아 겨우 제작될 수 있었다. 물론 손숙 같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배급사에서 관심을 갖는 제작비 규모가 최소 20억 수준(홍보 마케팅비 포함)이라고 한다. 그러니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개봉관이 50개 정도로 얘기가 됐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개봉일 이 영화는 500여개가 넘는 개봉관을 확보했고 그 후로도 계속 개봉관 수를 늘려나갔다. 지난 7일 현재 267만 관객을 돌파했다. 작은 영화의 반란인 셈이다. 산업적인 논리로서는 도무지 벌어지기 힘든 일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공감대가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위안부문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그 공감대가 기억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

 

윤동주 시인의 청춘을 다룬 <동주>는 고작 5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사실 이 정도의 제작비로 이런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기획부터 연출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여 빈틈없이 제작된 결과다. 5억 원의 규모이니 역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개봉 당일 개봉관 수는 370개 남짓.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관수도 점점 늘어갔다. 지난 224일에는 467개 스크린으로 확대됐다. 관객 수는 90만 명을 훌쩍 넘어 이제 곧 1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귀향><동주>의 이 같은 선전에는 20대 청춘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과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지금의 청춘들이 일제강점기라는 한참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들에 호응한 걸까. 그 키워드는 결국 청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귀향>에서 무고하게 지옥으로 끌려간 소녀들과 <동주>에서 부끄러운 세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산화한 청춘들이 지금의 혹독한 취업 현실 속에서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을 공감하게 했다는 것이다. <귀향><동주>를 보며 흘리는 청춘들의 눈물에는 그래서 당대의 소녀들과 청춘들의 아픈 역사는 물론이고 지금 현재의 현실에 부대끼는 자신들의 아픔도 들어 있다.

 

너무나 작은 규모라서 설 자리조차 찾기 힘든 <귀향><동주> 같은 작은 영화들은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 있다. 모든 게 태생부터 결정되고 진짜 내용이 아니라 스펙에 의해 모든 미래의 성패까지 달리는 현실. 그것이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귀향><동주>에 대한 청춘들의 호응은 당연해 보인다. 그 영화가 처한 현실 또한 청춘들이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귀향><동주>의 이례적인 성공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기적이라 불리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남는다. 왜 이런 일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못할까. 왜 작은 영화들은, 또 청춘들은 거대한 영화들과 기득권자들에 의해 항상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때로는 이런 현실도 긍정적으로 바꿔낼 수 있다는 희망도 이 두 영화의 사례가 보여주었다. 결국 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만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중한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다

<동주>, 그의 부끄러움이 시대의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다. 사실 요즘 멀티플렉스에서 방영하는 영화들을 볼라치면 그 화려한 색감과 입체적인 연출 그리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시간과 공간을 점핑하듯 널뛰는 편집 속에서 영화를 본 것인지 롤러코스터를 탄 것인지 알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동주>는 정반대다. 흑백 영화이고 영화의 흐름도 유려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인다. 본래 인물을 염두에 두고 그려낸 것이겠지만 동주(강하늘)의 어딘지 어눌할 정도로 느린 말투까지도 지금의 속사포로 쏟아내는 영화 속 대사와는 너무나 다르다.

 


사진출처: 영화 <동주>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정반대로 가는 영화가 마음을 뒤흔든다. 그것은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청춘과 죽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윤동주 시인에게 후대로서의 예우를 보내듯 지극히 절제된 영상으로 그 얼굴에 비춰지는 정조와 생각들을 담아낸다. 영화는 그래서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의 가슴은 이내 먹먹해진다. 영화가 앞질러가며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으로 가리지 않으니, 그 정지된 듯한 화면 속에 동주의 눈빛 하나, 물기하나 없이 마른 입술, 흑백으로 처리되어 핏기는 알 수 없으나 투명해질 정도로 창백한 얼굴의 음영은 그대로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파고든다.

 

강하늘의 목소리로 다시 읽혀지는 윤동주의 시는 영화를 통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 너무 유명해 흔해져버린 서시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같은 구절이 영화 속에서 되살아난 동주의 시선과 겹쳐지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새삼 의미를 전해준다. 영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두 가지 화두는 청춘부끄러움이다.

 

영화 속 윤동주는 그의 평생의 지기이자 경쟁자이자 사촌이었던 송몽규(박정민)와는 사뭇 다르다. 몽규가 당대 일제에 대항하던 행동파였다면 동주는 스스로 회고하듯 그의 그림자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시로 숨어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시란 본래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진실 된 시를 쓴다는 건 그가 서시를 통해 다짐하듯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시인 동주는 어쩌면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걸어간 것뿐이다. 다만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과 마주쳤을 때 첨예한 갈등과 마찰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동주가 살았던 일제 강점기는 그래서 일본의 제국주의라는 현실이 그에게 부끄러운 삶을 용납하지 않게 했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청춘은 있었고, 청춘은 언제나 시대 때문에 아파왔다. 지금의 세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동주>는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에도 작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땅의 무고한 청춘들은 모두가 그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다만 부끄러운 현실이 그들을 바람에 스치우게 하고 있을 뿐.

 

바람에 맞서 서 있는 나무의 그 격렬한 고통은 스스로 항변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롯이 서 있음으로 해서 바람의 존재를 알린다. 동주라는 존재가 그렇다. 그는 당대의 현실 앞에 오롯이 부끄럽지 않게 서 있었기 때문에 그 혹독했던 현실의 부조리를 우리 앞에 드러냈다. 그리고 동주는 그 한 세기를 건너 힘겨운 현실 앞에 괜찮다는 듯 짐짓 무표정한 얼굴로 버텨내고 있는 지금의 청춘들과 겹쳐진다. 비록 힘겨워졌지만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현실이 부끄러운 것이니. <동주>가 지금의 청춘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동북공정에서 항일로, 일본 버리고 중국 향하는 한류

 

KBS <12>3.1절 특집으로 중국 하얼빈을 간다고 한다. 3.1절이라는 의미도 그렇고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라는 점은 이 특집이 갖고 있는 방향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항일의 의미로서 하얼빈이라는 장소는 우리와 중국의 뜻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지난 2008년 이른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와 민감했던 시기에 <12>이 떠났던 백두산행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다. 당시 외교적인 갈등 상황 때문에 촬영 자체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독도, 가거도, 우도, 백령도에서 가져온 물을 백두산 천지에 붓는 장면은 나름 <12>의 방식으로 백두산을 생각하는 우리네 정서를 표현했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8년 전 중국과의 대립에서 마치 하나의 상징물처럼 존재하던 백두산을 갔던 분위기와 현재 항일이라는 동일한 뜻이 모이는 하얼빈 출국을 준비하고 있는 분위기는 이토록 다르다.

 

물론 <12>이 중국과 공존하려는 최근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런닝맨>이 중국 상하이에서 찍은 이른바 ‘10인의 결사단특집을 떠올려 보라. 옛 난징루 거리를 재현한 곳에서 <런닝맨>이 게임을 하며 가져온 스토리는 다름 아닌 일제에 맞서 싸우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작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암살>이 중국시장을 염두에 뒀고 또 실제로 중국 흥행에서 꽤 괜찮은 수익을 거둔 사실은 흥미롭다. 물론 초반 기록적인 흥행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지속적으로 이뤄지진 못했지만 <암살>이라는 작품이 중국에서도 관심을 끌어 모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로 주목받고 있는 전지현이 항일 독립투사로서 캐스팅되었다는 점이 주효했던 것.

 

올해 개봉을 준비 중인 김지운 감독의 <밀정> 역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과 그를 둘러싼 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한다. 여러모로 <암살>과 궤를 같이 하는 블록버스터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다룬 이준익 감독의 <동주>, ‘위안부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이미 해외에서까지 반향을 얻고 있는 <귀향>도 어찌 보면 이러한 항일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한류의 목적지는 일본으로 귀착됐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종착역이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 아베총리의 망언에서부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역사인식의 부재, 어이없는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의 정치적 사안들이 한일 간의 교류의 물꼬였던 한류마저 얼어붙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여전히 일본의 한류는 진행 중이지만 매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한류의 흐름과 비교해보면 한풀 꺾인 모양새다.

 

최근 들어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콘텐츠들이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 그래서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해외여행에 있어서 명확한 명분이 필요한 <12>8년 전 백두산을 갔던 데 이어 하얼빈을 선택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어쨌든 현재 우리네 한류는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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