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의 무엇이 불편함을 만드나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도대체 왜 만들어진 걸까. 이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이 영화의 정체가 명확해진다. 일단 영화 외적으로 자꾸만 제기되는 이념성은 떼어놓고 보자. 물론 이 영화의 제작사 대표인 정태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정신 무장을 하고 안보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이념을 앞세웠지만 그렇게 보면 영화는 그저 쉽게 선전물로 치부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념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인천상륙작전>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21세기에 여전히 공산당은 악마 혹은 적이라는 단순구도가 과연 먹힐 것인가. 70년대 반공시대도 아니고.

 

사진출처:영화<인천상륙작전>

그러니 일단 의심해봐야 하는 건 이념을 앞세우는 것에도 또 다른 의도가 들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건 다름 아닌 상업적 의도다. 이제는 이념도 장사가 된다. 이미 <디워> 논쟁이나 <국제시장> 논쟁을 통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보수냐 진보냐의 진영 대결구도는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영화를 보게 만드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이 관점을 보면 <인천상륙작전>은 누가 봐도 상업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는 오락영화다.

 

혹자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이 영화가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 같은 걸 담고 있지 않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인천상륙작전>은 이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전투가 맥아더 장군이라는 영웅만이 아니라 이를 위해 음지에서 기꺼이 목숨을 던진 켈로부대원들이 있었다는 걸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스토리상의 설정일 뿐 영화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이런 역사적 관점과는 사뭇 상반된다.

 

맥아더 장군(리암 니슨)은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그는 마치 우리를 위해 잃었던 딸을 되찾아주기 위해 집채만 한 파도가 쳐도 결코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가는 전설적인 존재이며, 일상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명언들만 던지는 그런 인물이다. 음지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한 장학수(이정재)가 맥아더 장군과 만나는 장면을 보면 마치 신적인 존재가 인간을 가엽게 여기는 듯한 그런 모습이 연출된다.

 

반면 우리네 장학수를 비롯한 부대원들의 모습은 어떤가. 주인공인 장학수나 역시 감초 같은 역할에 눈물까지 만들어내는 남기성(박철민) 같은 인물을 빼놓고 보면 작전에 투입되어 무수히 죽어나간 이들의 이름이나 얼굴이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다지 기억되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마치 그 이름도 없이 작전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지만 사실 그들 개개인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 영화를 갖고 역사를 보는 관점 같은 걸 얘기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건 하나의 제스처일 뿐이니까.

 

그래서 결국 남는 건 이 영화가 철저한 오락영화이고 상업영화라는 점이다. 그걸 확증하듯 보여주는 건 이름 없이 희생된 우리네 대원들보다 더 자세하고 잔학하게 묘사되어 있는 림계진(이범수)이라는 악역이다.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며 이념이 다르다면 가족에게도 총을 쏘는 걸 영웅적 행위로 말하는 이 인물은 철저히 악마처럼 그려지기 때문에 상업영화로서의 동력을 만들어낸다. 그런 극단적 악역은 인간적인 고민도 필요 없이 그가 죽는 걸 바라보고픈 욕망을 자극한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그를 적으로 내세워 싸우는 대원들의 액션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이념도 아니고 오로지 상업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어떤 불편함을 만든다. 상업영화지만 그래도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우리네 역사의 이야기다. 거기에는 실제로 이름 없이 기꺼이 작전을 위해 몸을 던진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진정성이나 진면목을 거의 건드리지 않고 영화는 오로지 그걸 상업적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 불편해질밖에.

 

그런 점에서 보면 <인천상륙작전>은 이념을 담은 선전영화로서도 또 오락영화로서도 실패한 작품이다. 물론 5백만 관객이 이미 봤으니 오락영화로 성공한 게 아니냐고 말할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이념 대립이 때로는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우리네 영화 시장에서 단순히 관객 수가 성공한 오락영화라는 걸 확증해주지는 않는다. <디워>가 굉장한 관객을 동원했지만 우리가 그걸 성공한 오락영화라 부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디워>에 이어 <국제시장> 그리고 <인천상륙작전>까지 온전한 오락영화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이른바 보수 진보의 이념 대결을 불쏘시개로 활용해 성공을 거두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건 우리네 영화계로서는 기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예술의 영역에서조차 상업성을 위해서는 이념도 역사도 모두 장사로 활용되는 걸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야경꾼일지>, 정통사극 시대에 판타지 괜찮을까

 

MBC <야경꾼일지>의 첫 방송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시청률이 첫 회에 10%를 넘기며 월화 드라마 전체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워낙 타방송사의 월화 드라마들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쨌든 첫 회에 시선을 잡아끌었다는 건 괜찮은 행보라고 보여진다.

 

'야경꾼 일지(사진출처:MBC)'

판타지 사극이라는 사전 정보가 있었지만 첫 회에 몰아치듯 보여준 CG의 향연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볼거리쪽으로 집중시켰다. 시청자들의 의견에 CG 얘기가 대부분인 것은 그래서다.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시도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디워>에도 못 미치는 CG 수준에 실망했다는 평가도 있다. 확실히 CG로 등장한 이무기와 조선 왕이 활로 싸우는 장면은 의도는 창대했지만 실제 결과물은 B급 괴수물 같은 인상을 주었다.

 

판타지 사극이라는 기치를 내걸어서인지 <야경꾼일지>는 기존 동서양을 초월한 무수한 이야기들의 조합 같은 인상을 주었다. 궁궐로 쏟아지는 유성은 KBS에서 했던 사극 <전우치>가 떠오르고, 왕자를 죽이기 위해 좇는 구름 같은 귀물들은 <해를 품은 달>의 초반 CG를 연상시키며, 왕인 해종(최원영)이 원정대를 이끌고 백두산에 가는 시퀀스는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건 거기 갑자기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스켈레톤 골렘을 없애는 방식이 부적을 붙이고 활로 쏘는 <강시>의 한 장면이라는 점이다.

 

이밖에도 판타지와 모험담에서 가져온 이야기 시퀀스가 이 사극에는 너무나 많다. 이를테면 백두산 마고족에게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활을 받는 장면은 <주몽>의 한 대목 같기도 하고 나아가 아더왕의 칼을 떠올리게도 한다. 또 용신족에게 재물로 잡혀간 마고족의 무녀를 이무기와 싸워 구해내는 장면은 <손오공>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 시퀀스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가 다양한 북구의 민담과 전설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처럼 동서양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와 사용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스토리의 확장면에서 권장되어야 될 일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조합한 이야기와 시퀀스들이 결과적으로 현대인들에게 어떤 정서적인 공감이나 만족감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첫 회를 마친 <야경꾼일지>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문제는 최근 들어 대중들의 사극에 대한 기호가 상당 부분 정통사극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이다. <정도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지금 영화판에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명량>이 그렇다. 이렇게 된 것은 퓨전사극이 점점 역사를 벗어내 이제는 아예 장르물처럼 변모한 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사극의 핵심적인 힘은 결국 역사라는 팩트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미 역사를 통해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현재에 울림을 주는 사실이나 인물을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걸 <정도전> 같은 정통사극은 보여주었다.

 

이런 시점에 판타지 사극을 아예 내걸은 <야경꾼일지>는 어떨까. 유성이 쏟아져 궁궐이 초토화되고, 이무기와 말을 타고 싸우는 왕의 장면이 새롭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이러한 CG가 아니라 사극이 담고 있는 현재적인 울림이다. <야경꾼일지> 첫 회는 일단 그 이색적인 CG로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이다. 사실 판타지든 정통이든 중요한 건 단 하나다. 지금 현재의 시청자들이 왜 그걸 봐야하는가를 설득시키는 일. 그것만 있다면 충분하다. 과연 <야경꾼일지>는 그 설득을 해낼 수 있을까.

 

실체는 없고 장밋빛 계획만 무성한 <디워2>

 

“100억을 투자하지만 1,000억이 돼서 돌아 올 수 있는 상황이다.” JTBC <연예특종>에 나와 심형래 감독이 영화 <디워2>의 제작준비를 하고 있다며 밝힌 말이다. 심형래의 말대로라면 엄청난 수익률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제작 첫 단계에서부터 돈 얘기부터 나오는 건 어딘지 섣부른 느낌이다. 영화감독이라면 돈 얘기보다는 영화 얘기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연예특종(사진출처:JTBC)'

심형래 감독에 따르면 최근 <디워2>는 제주 비스타케이호텔그룹과 100억 원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투자 결정 이유는 중국에서 <디워>가 보인 흥행이 <디워2>로 이어지면 투자 수익은 물론이고 홍보효과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란다. 역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다.

 

그는 또 현재 “<디워2>1차 시나리오가 나온 상태이며 CG감독으로 <고질라><스파이더맨3>의 시각효과를 맡은 데이비드 에브너와 함께 작업하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오는 7월 중순에는 미국에서 할리우드 스태프들과 영화의 제작 방향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데이비드 에브너와의 계획은 구두 협의된 상황이라고 한다.

 

또 캐스팅에 있어서도 영화에 아시아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일본의 유명 여배우와 중국 여배우를 포함해 여러 배우들이 물망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캐스팅을 하고 있지만 아직 논의 사항이고 결정된 건 없다는 얘기다.

 

심형래 감독의 이야기는 대부분 얼마를 투자받을 계획이고 그것이 얼마의 수익을 낼 것이며 또 누구와 작업할 것이고 어떤 연기자를 캐스팅할 것이라는 얘기에 집중되어 있다. 정작 <디워2>가 어떤 영화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막연하게 1969년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미국과 소련이 치열한 우주과학기술경쟁을 벌이던 시대에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실체는 없고 주변 얘기만 무성하다.

 

사실 <디워2>에 회의적인 것은 <디워>를 그다지 성공작이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애국주의와 논란이 뒤섞인 마케팅으로 국내에서 흥행하기는 했지만 이미 관객들은 그 실체를 보았다. 전작에 실망감을 갖는 관객이 속편을 찾아볼 까닭이 있을까. 아니 실패한 전작의 속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심형래 감독의 말대로 1000%의 수익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거대 투자사들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거대 투자사가 <디워2>에 투자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심형래 감독의 이야기들은 실제 이루어진 것보다는 앞으로의 계획에 더욱 집중되어 있다. 미리 1000%의 수익을 예상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계획은 넘쳐나지만 실제 성사된 구체적인 일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100억대, 아니 그 이상의 투자가 오고가는 작품이라면 향후 실패하거나 엎어졌을 때 그 파장 또한 클 수밖에 없다. CG 작품은 지금의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 정교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투자비는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정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직원 임금과 퇴직금 체불 혐의로 기소되고 파산신청까지 한 심형래 감독이다. 그는 왜 이렇게 <디워2>에 집착하는 것일까.

코미디언 출신의 영화 집착, 논란만 많은 까닭

 

서세원과 심형래. 최근 들어 이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들의 이름이 부쩍 논란의 도마 위에 자주 오르내린다. 서세원은 최근 폭행혐의로 아내 서정희씨에 의해 신고 당했다. 대중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추함을 넘어 추악함까지 보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서세원(사진출처:채널A)'

서세원은 자신이 제작 총감독을 맡은 영화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시나리오 심포지엄에서 빨갱이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안 지키면 자녀들이 큰일 난다.”는 발언을 해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 <변호인>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란다.

 

또한 그는 똥 같은 상업영화 때문에 한 국가와 시대, 민족이 잘못된 집단최면 상태에 빠지고 있다.”고 말해 대중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이 발언은 대중들이 선택한 <변호인> 같은 상업영화를 같다 표현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발언들은 마치 <변호인>을 본 천만관객을 빨갱이에 물든 대중으로 표현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주었다.

 

결국 이러한 무리한 발언들 속에는 영화를 영화적 가치로서 대중들에게 선택받기 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편 가르기라는 편법으로 선택받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이른바 애국 마케팅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한 인물이 바로 심형래다. 그가 만들어낸 <디 워> 논쟁은 뜬금없는 애국주의를 내세워 부족한 완성도를 가리는 논란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영구아트의 폐업, 임금 체불로 인한 피소, 그 후로 생겨난 엄청난 구설수들. 하지만 지난 1월 개인 파산신청으로 170억 원에 달하는 채무 탕감을 받고, 또 직원 43명의 임금과 퇴직금 등을 체불해 불구속 기소된 후 벌금 1500만 원을 최종 선고 받은 그는 <디워2>에 대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영화란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이다. 작품의 경쟁력이 아닌 얄팍한 마케팅만으로 접근한다면 자칫 업계에 커다란 악영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서세원과 심형래는 한때 이름만 얘기해도 웃음이 나는 최고의 코미디언들이었다. 서세원의 <토크박스>나 심형래가 활약했던 <유머일번지>의 무수한 코너들은 코미디업계에서는 하나의 레전드로 남아 있다. 그랬던 그들의 현재 모습은 연상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낯설게까지 다가온다.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달라졌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코미디언이라는 직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러하듯 코미디언 역시 오래도록 현업에 머물기 어려운 직업이다. 특히 코미디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코미디에 대한 일종의 폄하가 편견처럼 자리하고 있어 코미디언을 배우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업계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현업에 있을 때 일찍부터 은퇴를 준비하곤 한다. 코미디언들의 그 많은 음식점 개업과 실패 소식이 업계에 늘 떠도는 건 그래서다.

 

성공한 코미디언들이 영화감독을 꿈꾸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배우로서 좀체 인정받지 못하는 코미디언들은 그래서 영화 제작자나 영화감독으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서세원이 86년도에 <납자루떼>라는 영화를 만들어 실패를 경험한 것이나, 이경규가 92년도에 <복수혈전>으로 흥행 실패의 아픔을 겪은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심형래는 일찍부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코믹 괴수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례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결국 본격 상업영화 시장으로 들어온 그의 감독으로서의 행보는 결코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코미디언에 대한 저평가가 영화감독 같은 자리에 대한 욕망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욕망과 감독으로서의 인정을 받는 일은 사뭇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감독으로서 인정받으려면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로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해외의 경우는 사정이 너무 다르다. 이를테면 우디 알렌이나 벤 스틸러 같은 코미디 배우이면서 동시에 영화감독들은 배우로서도 또 감독으로서도 칭송받는 인물들이다. 94년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청춘스케치>로 영화감독으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최근 개봉했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는 감독 겸 배우로 등장해 호평을 얻기도 했다. 우디 알렌은 코미디에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더 깊어진 영화의 세계를 보여주며 삶의 의미를 담아내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우디 알렌이나 벤 스틸러 같은 코미디언들이 없을까. 어째서 비뚤어진 욕망으로 논란만 만들어내는 서세원이나 심형래 같은 안타까운 사례들만 나올까. 이것은 어쩌면 코미디에 대한 우리들의 뿌리 깊은 편견에서 비롯한 일일 수 있다. 그나마 임하룡 같은 중견 코미디언이 배우로서도 존재감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코미디언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이 오롯이 배우로서 인정받고 그 위에서 지평을 넓혀가는 건 우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까. 제발 더 이상 비뚤어진 욕망으로 왜곡된 안타까운 사례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심형래의 집착과 착각, 그리고 우려

 

현재 <디워2>를 놓고 투자 얘기가 오가고 있다. 임금 체불 금액은 감독료에서 가장 먼저 변제하고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다.” JTBC <전진배의 탐사플러스>에 출연한 심형래는 다시 <디워> 이야기를 꺼냈다. <어벤져스2> 촬영 현장을 다녀온 소회도 밝혔다. 그는 과거 LA에서 <디워>를 찍던 시절이 떠올랐다며 부럽기도 하고 감개무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진배의 탐사플러스(사진출처:JTBC)'

왜 또 하필 <디워>일까. 심형래는 그것이 자신의 주특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혼자 편하게 살려면 코미디를 하면 되는 일이지만 제일 중요한 건 독자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바타>의 제작비 1조 원 운운하면서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아이디어만 좋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80%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디워2>. 과연 심형래의 말처럼 승산이 있을까.

 

먼저 우려되는 점은 심형래가 그토록 집착하는 <디워>라는 콘텐츠가 그다지 경쟁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무기 전설을 모티브로 한 괴수 영화는 그다지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이를 살려내는 감독의 능력이다. 하지만 700억을 들여 만들었다는 <디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심형래 감독의 블록버스터 제작 능력은 CG나 스토리, 영상 연출 그 어느 것에서도 경쟁력을 찾기가 어렵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조금만 아는 이라면 <디워>가 그리고 있는 이무기라는 캐릭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소재라는 걸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결국 캐릭터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어려운 건 인물 캐릭터다. 하지만 이무기 같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가상의 캐릭터를 애니메이션 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실제와의 비교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워>의 애니메이션은 그토록 많은 돈을 쏟아 붓고도 그다지 경쟁력을 찾기 어려웠다.

 

스토리는 더 심각하다. 최근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면 과거처럼 단순한 애국주의적 스토리나, 선악구도를 훌쩍 뛰어넘어 심지어 철학적인 이야기까지를 담아내는 걸 볼 수 있다. <맨 오브 스틸>이 슈퍼맨이라는 슈퍼히어로를 통해 메시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는 쉴드라는 초국적인 조직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의 이중적인 면을 드러낸다. 여기에 비해 <디워>의 스토리는 거의 아이들 애니메이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영상 구현에 앞서 어떤 스토리를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던 영화다.

 

그럼에도 8백만의 관객을 동원했던 건 당시 애국주의 마케팅에 대한 논란을 통한 노이즈 마케팅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디워>의 관객동원은 영화적 성취라기보다는 그 영화를 좌우의 대결로 몰아간 노이즈 마케팅의 성취였다. 애국주의를 놓고 하도 시끄럽게 싸우다보니 도대체 뭔데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보다 떨어지는 완성도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란 장르의 성격상 일단 봐야 비판이든 뭐든 할 수 있는 법이다. 만일 드라마 같은 장르였다면 난데없는 애국주의 마케팅을 내세운 <디워>는 애국가 시청률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구아트의 폐업, 임금 체불로 인한 피소, 그 후로 생겨난 엄청난 구설수들. 하지만 지난 1월 개인 파산신청으로 170억 원에 달하는 채무 탕감을 받고, 또 직원 43명의 임금과 퇴직금 등을 체불해 불구속 기소된 후 벌금 1500만 원을 최종 선고 받은 그의 행보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의 말 속에는 여전히 정부의 지원이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의 과거 신지식인으로 지목되던 시절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느껴진다. 자신의 영화가 마치 국가경쟁력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영화란 또한 많은 투자자들의 모험이 따르는 분야이고, 따라서 거대 블록버스터의 실패는 한 나라의 영화판을 왜곡시킬 만큼의 파장을 일으키는 중대한 사안이다. 단순히 접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워2>에 대한 집착은 그런 점에서 우려스럽다. 국가주의적인 발상이 마케팅적으로 변환되어 그만한 경쟁력을 발견하기 힘든 작품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그것이 첫 번째였을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미 학습경험이 있는 대중들이 <디워2>를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심형래의 집착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 섞인 시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토리는 블록버스터의 적이 아니다


흔히들 "재미를 위해 스토리를 단순화시켰다"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블록버스터가 주는 재미의 적인가. 작년 '디워'논쟁의 중심에 섰던 것도 바로 이 스토리와 블록버스터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디워'는 블록버스터와 스토리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떨어진 것처럼 논점을 이어갔다. 이른바 "복잡한 스토리는 시각적인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논리다.


1년이 지난 이번 여름, 스토리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서다. 김치웨스턴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발굴해내고 스타일리쉬한 영상을 만들어낸 '놈놈놈'은 그러나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이야기를 최대한 최소화해 캐릭터와 액션 등 다른 영화적 요소들을 더 많이 부각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스토리에 집착하는 평단을 꼬집었다.


둘 다 블록버스터로서 스토리를 최소화했다고는 하지만 '디워'와 '놈놈놈'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영상의 완성도 자체가 틀리기 때문이다. '디워'는 스토리의 부재 이외에도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CG 영상 또한 그다지 완성도가 높지 않다. CG기술 중 가장 어렵다는 인물 애니메이션을 한 것도 아니고, 상상 속의 동물을 그려낸(사실 이것은 비교점이 없기에 대체로 그럴 듯해 보인다) CG일 뿐이며, 또한 실사와의 연결 또한 자연스럽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놈놈놈'이 가진 완성도는 남다르다. 만주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장르 속에 우리가 저 서구 세계의 액션 활극 장면으로만 생각해왔던 웨스턴 스타일을 김지운만의 색깔로 녹여냈다. 이 독특한 퓨전의 맛은 고스란히 세 캐릭터를 연기하는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을 통해 폭발적으로 구현되었고, 말 그대로 '보는 맛'을 선사했다. 그만큼 액션의 완성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각각의 액션들을 연결해주는 스토리가 빈약해지면서 눈의 즐거움 이상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작년부터 여름방학 시장을 겨냥한 영화들에 대한 스토리 논란이 불거져 나오는 것은 아마도 과거에는 할리우드에서만 할 수 있다 생각되었던 블록버스터들이 이제 우리 영화계에도 시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우리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똑같은 말로 비판했었다. "스토리도 의미도 없는 킬링 타임용"이라 비아냥대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불가능해 보이는(사실 이건 자본의 문제이지 기술력의 문제는 아니다) 블록버스터를 내놓자, 혼동이 생겼다. 그렇게 스토리 운운하던 태도는 사라지고 그걸 '우리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에 환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디워'에서부터 비롯된 왜곡된 민족주의가 자리한다.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칸느영화제 같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사실 스토리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놈놈놈'은 스토리가 약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몇 백만의 관객수로 증명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화가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한 감독들의 태도다. 감독들은 이 비판에 대해 마치 "블록버스터는 스토리가 부족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로 일반인들에게 섣부른 일반화를 강요한다.


이제 "블록버스터 같은 오락영화가 재미만 있으면 되지 무슨 스토리에 의미를 찾느냐"는 말은 가장 흔한 댓글이 되었다. 마치 블록버스터의 재미와 스토리의 재미는 서로 반비례하는 것처럼 얘기한다. 이제 우리가 과거에 비아냥대던 킬링타임용 할리우드 영화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전범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치부해온 할리우드 영화는 과연 아직도 그저 킬링타임용으로 머물고 있을까.


많은 국내의 영화감독들이 할리우드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면서 전율은 느낀 이유는 무얼까. 무수히 많은 배트맨 시리즈들이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철학적이고 가장 깊이 있는 탐구가 있으면서도 블록버스터임을 포기하지 않는 이 작품은 보는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보고난 후에는 깊은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다. '다크 나이트'가 가진 액션의 특징은 수없이 눈만을 현란하게 만들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여느 블록버스터와는 다르다.


수없이 주먹이 오고 가는 장면들만 모아놓은 것이 다른 롤러코스터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 주먹을 주고받는 자들의 내면을 파고듦으로서 그 주먹이 던지는 강도를 더 높인다. 두 척의 배를 그저 폭파시키는 것은 스펙터클한 볼거리에 머물지만, 한 쪽에는 선량한 시민을 다른 쪽에는 범법자들을 태운 배에 서로 폭파스위치를 넘기고 먼저 누르지 않으면 상대방이 누를 것이라는 갈등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순간, 볼거리는 그 자체로 철학적인 질문이 된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볼거리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강도를 강화시켜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된다.


흥행을 위해 스토리나 의미를 배제한다는 논리가 가진 위험성은 현재처럼 영화관이 점점 놀이공원화 되는 상황을 더욱 강화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영화의 즐거움이었던 두 축인 볼거리와 의미를 갈라놓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영화관은 지금껏 원격현전으로서의 볼거리(스펙타클)의 즐거움과 그 영상들의 연결에 의한 의미구성이 주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제공해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프랜차이즈화되고 대형화되며 비주얼이펙트가 강조되는 사이, 볼거리의 즐거움만을 찾는 곳으로 영화관이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는 영화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볼거리의 즐거움을 더 강화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라따뚜이’의 음식평론가와 ‘디워’의 평가

‘라따뚜이’를 보면서 ‘디워’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가(혹은 창작자)에 대해 비평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똑같이 출신(혹은 태생)의 문제가 등장하고 편견이 있으며 그 편견을 넘어서는 예술가가 있고, 무엇보다 혹독한 비평가가 등장한다.

‘라따뚜이’에서 절대미각으로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는 레미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방과는 상극 중에 상극인 생쥐다. 태생부터 요리사는 불가능하게 태어난 레미는 그러나 편견을 버린 견습생 랭귀니를 만나 함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 그들이 일하게 되는 곳은 한때 별 다섯 개 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이었으나 혹독한 비평가, 안톤 이고의 혹평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구스토 레스토랑.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레스토랑의 창시자인 구스토가 모토로 했던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요리철학이다. 그 말에 코웃음을 쳤던 음식비평가 안톤 이고는 ‘요리는 절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구스토가 죽고 레스토랑을 인계 받은 스키너 역시 그 편견을 갖고 있었다.

랭귀니 대신 레미가 만든 음식은 구스토식의 요리법이 아닌 전혀 다른 레미만의 방식이다. 요리사들은 모두들 그 방식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그 독창적인 맛은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고 결국 음식비평가마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디즈니 스타일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울림은 성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만큼 깊고 크다.

최근 인터넷은 연일 ‘디워’에 대한 기사와 그 기사에 대한 댓글들로 뜨겁다. 처음에는 ‘디워’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더니 그 논의들은 점점 커져서 심형래 감독에 대한 편견으로 넓어지고 그것은 충무로와 기자, 평론가들이 합세해 ‘심형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디워’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저만치 소외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억울한 심형래 감독만큼,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매도되는 억울한 기자들도 있을 법하다.

이것은 ‘디워’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기존 영화인으로 대변되는 충무로 그리고 그들과 한 통속으로 취급되는 기자들이나 평론가들과, 심형래로 대변되는 비주류 그리고 충무로 영화들에 신물이 난 관객들의 공방이 되고 있다. 그 공방은 마치 저 ‘라따뚜이’의 구스토와 안톤 이고의 논쟁이 된 ‘요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처럼 들린다. 영화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훈련받은 자들만 할 수 있는가. 또 만들어진 영화는 영화적인 문법 속에서 평가받아야 되는가, 아니면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재미있으면 되는 것인가.

‘디워’에 대한 기사들의 내용을 보면, 물론 몇몇 선정적인 표현들로 심하게 작품 자체를 몰아붙인 것들도 있었지만, 여타의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비판할 것은 하고 칭찬할 것은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영화인인 기자나 비평가들의 비판이 ‘저들만의 리그’로 여겨졌다면, 심형래 감독이라는 충무로 밖의 인물과 그 작품에 쏟아지는 비판은 관객들이 ‘자신들의 리그’에 투하된 충무로라는 기득권의 융단폭격으로 비쳤을 수 있다. ‘디워’는 작품 자체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대중들이 평단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작품이 되었다.

세상은 권력의 평준화를 향해 굴러간다. 한때 전문가 집단이 휘두르는 칼날에 대중들이 좌지우지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누구든 평이라는 칼을 들 수 있는 시대다. 즉 이제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요리가 맛이 있든 없든 그것은 전적으로 맛보는 자의 몫이다. 따라서 비평의 패러다임도 달라지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듯이 하는 비평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에 다가가지 않는다. 대중들의 옆에 서서 충실한 가이드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비평이 해야할 일이 되었다.

‘라따뚜이’의 혹독했던 음식비평가 안톤 이고가 라따뚜이란 음식을 먹고 쓴 참회 섞인 비평의 글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레스토랑을 평점 할 때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혹평을 하는 게 쉬웠고 그것은 또한 잘 먹혔다’로 시작하는 참회의 글은 그만큼 장점을 찾아낸다는 것이 단점을 찾는 것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끄집어내 작품을, 작품 그 이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냈던 문학비평가 고 김 현 선생의 비평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비평가는 더 이상 점수를 매기는 평가자가 아니다. 아니 평가자가 돼서는 안 된다.

‘디워’라는 블록버스터의 재미는 어디서 오나

주로 게임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난 우리네 CG기술은 주로 해외 게임업체들의 하도급 형태로 공력을 쌓아왔다. 해외 게임업체들이 우리나라 CG 샘플을 보고 놀라는 것은 ‘그 정도의 제작비로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CG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당시의 CG 기술들은 이후 게임업체들에 의해 활용되면서 지금의 우리네 게임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커다란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영화 쪽에서의 CG 활용은 제한적이었다. 주로 폭파장면 같은 특수효과쪽에 활용은 되었지만, 전략적으로 CG를 활용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전 세계를 공략하는 할리우드 같은 시도는 별로 없었다. 그만한 제작여건도 거의 전무인 상태인데다 투자는 어불성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심형래 감독이 들고 나온 ‘용가리’는 사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총체적인 부실로 드러났다. 스토리는 둘째치고 CG는 실감나지 않았고 출연한 인물들조차 연기력 논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CG가 실감나지 않은 것은 캐릭터를 모델링하는 능력이나 동작을 구현하는 애니메이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할리우드가 가진 CG와 실사를 합성하는 기술과 노하우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절치부심한 심형래 감독이 ‘디워’의 어떤 부분에 모든 정력을 쏟았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실제 결실로 나타났다. ‘디워’가 보여준 CG와 실사의 합성 노하우는 아직까지 우리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아마도 CG에 관심이 있거나 같은 업계에 일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먼저 그 압도적인 CG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시사회 이후 ‘디워’에 계속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스토리다.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의 반응은 하나 같이 스토리가 엉성한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심형래 감독조차 인정한 바이다. 그의 논지는 ‘스파이더맨’이나 ‘트랜스포머’, ‘킹콩’, ‘쥬라기공원’, ‘인디펜던스데이’를 예로 들어 그 영화들의 스토리 역시 별 것 아니며, 블록버스터는 스토리와 상관없이 볼거리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지는 지금 인터넷에서 ‘디워’를 두고 벌어지는 설전의 중심에 서 있다.

실제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개봉했던 일련의 블록버스터들,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3’는 물론이고 ‘트랜스포머’까지 시나리오의 스토리로 보면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전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심형래 감독이 얘기하듯이 블록버스터(아마도 SF나 환타지 블록버스터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의 재미가 인물이나 뒤통수를 치게 만드는 기발한 스토리 전개 같은데 있는 게 아니라 실상은 볼거리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할리우드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형 CG에 엄청난 물량을 투여하고 그 위험부담을 맥도날드 같은 다국적기업과 나누며, 전 세계 배급망을 확보해 개봉 1,2주차에 모든 마케팅비용을 쏟아 부어 투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올리는 과정 속에서, 저변을 되도록 넓히기 위해 스토리는 절대로 복잡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스토리에 대신 영화는 철저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재미에 집중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블록버스터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은 흔히 예술영화나 극영화가 제시하는 삶의 비의 같은 것이 아니다. 재미에 집중된 이 영화들의 지향점은 영화의 또 한 가지 갈래가 될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실제 지금 극장들은 이 방향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자잘한 캐릭터의 디테일이나 대사의 집중도보다는 블록버스터가 보여주는 볼거리의 참신함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을 또다시 돈을 내고 본다는 것은 어딘지 아까운 일이다. 심형래 감독이 언급한 스토리가 그저 그런 ‘스파이더맨’의 재미는 거미인간이 뉴욕의 도심을 휙휙 날아다닌다는 점이며, ‘인디펜던스데이’의 재미는 외계인이 도시를 때려부순다는 그 설정에 있고, ‘트랜스포머’의 재미는 변신로봇 자체가 주는 유아적 욕망이 눈앞에서 실현된다는 점에 있다. ‘킹콩’의 재미는 이 거대한 생물체가 도시라는 정글을 마구 때려부수는 장면들의 재미이며, ‘쥬라기공원’은 공룡을 실제로 본다는 그 자체가 재미이다. 이 블록버스터들은 모두 볼거리의 참신함에 있어서 훌륭한 CG와 만나면서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렇다면 ‘디워’가 가진 볼거리의 참신함은 어떨까. 먼저 용이 되어야 한다는 이무기라는 소재, 조선시대에 도성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관군들과 이무기 군단들과의 전쟁 설정 같은 것들은 참신하다. 게다가 후반 40분 동안 폭풍처럼 몰아치는 LA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무기와 헬기, 탱크, 비행기들의 액션 장면들은 ‘디워’라는 롤러코스터가 가진 볼거리라는 측면의 가능성을 충분히 담보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CG의 디테일을 감안해서 본다면 볼거리의 재미는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들이 있다. 우리의 관객이나 외국의 관객 모두에게 특별한 볼거리가 될 수 있었던 조선시대 장면들이 특수촬영으로 이루어지면서 어딘지 CG의 힘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최고의 CG 실사 합성 능력을 보여준 LA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장면들은 기존 블록버스터의 전통에 충실한 맛은 있지만 아쉽게도 ‘디워’만의 차별성을 찾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한 평론가는 “차라리 LA가 아니라 남산타워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부수는 이무기였다면 더 볼거리가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에 일부 공감하게 되는 것은 영화 속에서 관습적으로 괴수나 적의 공격을 받는 LA나 뉴욕이라는 도시를 너무 많이 봐온 탓은 아닐까.

아리랑을 영화음악으로 삽입할 정도로 한국적인 걸 강조하는 심형래 감독도 미국시장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타협해야될 부분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적인 정서를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시장 속 블록버스터 공식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안전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블록버스터에 있어서 우리 것을 조금 더 고집하는 것이 위험성은 있겠지만 결국 새로운 볼거리라는 측면에서 미국시장과 우리시장을 다 노릴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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