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하이에나’, 음악 이젠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싱어 송 라이터들은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낼까. 어쩌면 KBS 추석 파일럿 프로그램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질문이 가진 효용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그건 제작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음악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늘 결과물로만 접했던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건반 위의 하이에나(사진출처:KBS)'

그런데 제작과정이 싱어 송 라이터들마다 다 다르다. 특히 양분되는 건 이른바 20세기 소년들이었던 윤종신과 정재형의 제작방식과 21세기 소년들인 그레이와 후이의 제작방식이다. 윤종신과 정재형은 물론 디지털 피아노를 활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창작에 있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반면, 그레이와 후이는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작곡하는 정재형의 작업 풍경과 비트를 먼저 쪼개 넣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어 뚝딱 만들어내는 그레이의 방식은 그래서 음악 작업 환경이 최근 몇 년 간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보여준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의 방식이 갖고 있는 장점은 분명이 있다. 정재형의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곡들이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면, 그레이의 디지털 방식으로 나온 곡은 훨씬 트렌디하다.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에서도 흥미로운 차이점을 보인다. 윤종신은 곡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인생작이라는 영화 <길>을 보며 그 감성적인 영감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정재형은 곡을 완성하기 위해 양양으로 가 서핑에 몸을 얹으며 영감을 받는다. 반면 그레이는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영감을 받고, 후이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장면이 주는 느낌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이런 저마다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곡들은 그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정재형의 곡이 아날로그적 피아노의 우아함을 담아 세련된 발라드의 느낌이 얹어졌다면, 그레이의 곡은 어딘지 힘을 쭉 뺐지만 세련된 힙합의 맛이 물씬 묻어난다. 후이의 곡이 아이돌 특유의 다이내믹함을 매력으로 갖고 있다면 윤종신의 곡은 1990년대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찌질한 남성의 감성이 담긴다. 

사실 많은 음악예능들이 지겹게 느껴지는 건 그 프로그램의 형식과 구성이 이미 시청자들의 눈에 익어서다. 대충 우리는 그 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음악에 스토리를 구성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러니 거의 오디션의 틀을 반복하는 음악예능이 제 아무리 맛있는 상을 차려내도 물릴 수밖에.

하지만 음악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제작과정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기존의 음악예능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것은 노래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해주기 때문에 생겨나는 재미다. 

너무 많은 음원들이 쏟아져 나와서 그런지 우리들의 귀를 스쳐가는 노래들은 그렇게 나왔다 사라지기 일쑤다. 그 음원들에 특별한 애착이 없다면 아무리 좋아도 귀에 달라붙지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는 너무 많은 아이돌들이 쏟아져 나와도 애착 없이 바라보면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프로듀스101>처럼 아예 그들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봐야 비로소 달리 보이게 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그런 점에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시청자들을 동참하게 해 그 음악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봉준호와 GD, 혁신보다 중요한 건 대중들에 대한 배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두 개의 풍경. 영화와 음원이 향후 어떻게 제작되고 또 어떤 경로로 유통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 두 개의 풍경 속에 녹아들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옥자>와 지 드래곤의 USB 앨범이 그것이다. <옥자>는 영화관을 통한 상영과 동시에 넷플릭스를 통한 전 세계 방영을 하게 되는 국내 최초의 영화가 됐고, 지 드래곤의 USB 앨범은 물론 이전에도 이벤트 성격으로 몇몇 아티스트들이 내놓긴 했지만 CD시대에서 USB 시대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뉴스룸(사진출처:JTBC)'

하지만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 속에서 두 명의 아티스트가 저마다의 혁신적 방식을 들고 나왔지만 그것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봉준호 감독이 기존의 시장이 가진 입장들을 대부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이 새로운 혁신적 방식을 추구했다면, 지 드래곤은 USB 앨범을 음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음콘협(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의 해석에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은 멀티플렉스 3사가 <옥자>를 보이콧한 사실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자신 역시 “멀티플렉스의 수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또한 멀티플렉스를 제외하고 자동차 극장까지 포함해 100여 곳에서 상영되게 되는 <옥자>가 오히려 멀티플렉스 이외의 극장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독립영화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 않다며 다만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가 그간 잊고 지냈던 정겨운 극장들”이 알려지는 건 반갑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음콘협이 내놓은 입장에 대해 지 드래곤은 “누군지도 모르는 어떠한 사람의 결정에 따라 한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그저 ‘음반이다/아니다’로 달랑 나뉘면 끝인가”라며 “LP, 테이프, CD, USB 파일 등 포인트가 다르다.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겉을 포장하고 있는 디자인적인 재미를 더한 그 형태가 아니라 그 누가 어디서 틀어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음악, 내 목소리가 녹음된 바로 내 노래”라고 말했다.

대부분 지 드래곤의 이런 입장에 대해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나왔지만, 그 USB 앨범이 음원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링크’ 형태로 되어 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대중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즉 음원이 아니라 링크로 되어 있다면 그저 음원사이트에서 다운로드받지 굳이 왜 USB 앨범을 살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고, 이어 링크 형태라면 ‘음이 유형물에 고정된 것’으로 정의되는 음반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사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넷플릭스 동시 방영이나 지 드래곤의 USB 앨범 같은 선택은 현재 이미 우리가 들어와 있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 소비 방식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어쨌든 향후 우리의 대중문화 유통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적인 선택은 항상 기존 시스템과의 갈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 갈등에서 사실상 혼란을 겪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소비자인 대중들이다. 

혁신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받아 들여야 하는 대중들에 대한 배려는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영화와 음원 시장의 두 풍경이지만,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건 바로 이런 혁신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겸손과 과신의 차이는 아티스트가 대중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그 태도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해줘>, ‘좋아요누를 수밖에 없는 66색 매력

 

영화 <좋아해줘>의 제목은 페이스북의 좋아요에서 따왔다.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아요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것은 의례적인 클릭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심어린 관심의 표명이기도 하고 나아가 애정어린 시선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많은 마음의 표현들 중 선택할 수 있는 게 좋아요하나밖에 없다는 건 SNS가 가진 한계지만 어쨌든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이 연결고리를 통해 먼저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

 


사진출처 : 영화 <좋아해줘>

정통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문법에 충실한 <좋아해줘>의 이야기는 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다채로운 사랑의 양상을 담아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러브 액추얼리>식을 따르고 있다. 세 커플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병렬적으로 구성되다가 함께 겹쳐지기도 한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 서사를 따르고 있지만 SNS라는 소재가 뻔하지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한류 스타 노진우(유아인)과 스타작가 조경아(이미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장애를 가진 작곡가 이수호(강하늘)와 연애고수지만 마음이 따뜻한 신입 PD 장나연(이솜), 나이들었지만 어딘지 어리바리한 스튜어디스 함주란(최지우)과 그녀와 동거하게 되는 자칭 연애전문가이자 요리사 정성찬(김주혁). 이들의 멜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SNS를 활용한다. 노진우는 조경아의 SNS 사진을 통해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이수호와 장나연은 SNS로 밀당을 한다. 함주란은 정성찬이 코치하는 대로 SNS에 사기 사진(?)을 올려 관심있는 남자의 주목을 끌려한다.

 

SNS를 통해 벌어지는 멜로의 이야기가 가진 참신함이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이들 6명의 배우들이 마치 진짜 자신들의 모습인 양 보여주는 6색의 매력이다. 유아인은 역시 톱스타답게 허세로 똘똘 뭉친 캐릭터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귀여움과 박력을 겸비한 매력을 선보이고, 이미연은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하는 털털한 매력을 한껏 뽐낸다. <동주>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그 진정성이 느껴지는 눈물 연기가 매력적인 강하늘과 <마담 뺑덕>과는 전혀 다른 순수하고 따뜻한 매력을 드러내는 이솜의 연기도 돋보인다. 또한 <12>과 일련의 나영석 PD 예능에서 각각 빛났던 김주혁과 최지우의 빵빵 터지는 로맨틱한 웃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아쉬운 것은 개봉 시기다. 만일 이 영화가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 정도에 개봉되었다면 어땠을까. 훨씬 더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알다시피 작년 한 해 동안(심지어 연말까지) 극장가를 달군 장르들은 사회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일종의 복수극들이었다. <베테랑>에서부터 <내부자들> 그리고 <검사외전>까지. 이런 상황이니 로맨틱 코미디 같은 가벼운 멜로물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

 

하지만 꽤 오랫동안 극장가에서 복수와 분노로 들끓는 영화들에 조금 지쳐 있다면 <좋아해줘> 같은 마음까지 밝아지는 편안한 영화가 쉼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면면을 보기만 해도 좋아요를 눌러주고 싶은 배우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톡톡 터트리며 그간 무거웠던 우리네 감성을 가볍게 털어주는 듯한 유쾌함이 절로 느껴지는 영화다

타란티노는 왜 <헤이트풀8>에 아날로그를 고집했을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은 결코 일반 관객들에게 쉽지만은 않은 영화다. 그것은 영화가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껏 멀티플렉스관에 상영되곤 하던 빠르게 전개되는 자극적인 영상과 속도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출처 : 영화 <헤이트풀8>

영화 시작에 눈 덮인 예수상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빠져나오며 저 뒤편으로 펼쳐지는 새하얀 설원 위로 말들이 끄는 마차 한 대가 화면 앞까지 달려오는 롱테이크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 속 카메라는 여러 공간과 시간 속 인물들을 넘나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황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대신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한 공간에 붙박아 놓고 그 안에 담겨진 내밀한 이야기들을 반전에 반전으로 드러내보여주려 한다.

 

눈보라 때문에 한 잡화점에 모이게 된 8명은 저 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그들은 결코 선과 악으로 구분될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다. 무언가 숨겨진 속내들이 있고, 그것은 그들의 출신이나 갖게 된 직업 그리고 나아가 피부색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처럼 저마다의 욕망들을 갖고 모이게 된 8인이 벌이는 죽고 죽이는 살벌하지만 그 타란티노 특유의 농담이 섞인 살육전은 미국의 역사와 절묘하게 중첩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 마치 <저수지의 개들>을 다시 보는 듯한 기막힌 타란티노식 심리극이 총잡이들의 사투로 풀어지는 흥미진진한 긴박감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거의 1시간에 걸친 도입 부분의 인물들에 대한 길고 긴 수다와 농담들은 미국의 문화나 역사를 잘 모르는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놀라운 건 무려 167분에 달하는 런닝타임을 갖고 있는 이 영화가 그 긴 시간 동안 보여주는 이야기의 공간은 좁은 잡화점 한 곳에 거의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단지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울트라 파나비전 70(Ultra Panavision 70) 렌즈에 70mm필름으로 찍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고집스런 선택으로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는 미국의 영화관에 영사기를 세워 돌리기 위한 막대한 투자가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놀랍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카메라와 필름의 질감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건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그저 총잡이들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심리극을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그 대목이다.

 

울트라 파나비전이라는 어찌 보면 과거의 스펙터클 영화를 찍어내던 방식을 가져오지만 결과적으로는 작은 잡화점 안에 카메라를 세워놓았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다. 아마도 타란티노에게는 울트라 파나비전도 저 <벤허>의 질감이 보여줬던 것처럼 이제는 스펙터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아날로그적 감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헤이트풀8>은 그래서 마치 잘 짜여진 대본을 갖춘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란티노의 이 옛 방식을 고집한 촬영은 그래서 지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마찰을 빚는다.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고 또 어찌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3D에서 4D까지 나가며 관객들을 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아날로그 방식의 <헤이트풀8>은 그래서 마치 일대 대결을 벌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단 몇 초 동안 자극에 자극을 이어가는 작금의 영화들의 시각적이고 순간적인 현란함에 옛날 방식의 어찌 보면 진짜 영화들이 그리워지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충분히 그 감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타란티노식의 핏빛 농담은 덤이다



가슴에 쥐나는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

 

무모한 시도처럼 보인다. 이 시대에 순애보를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2%를 넘지 못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어떤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겨진다. 이 시대는 이제 이런 사랑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걸까. 그저 즉물적이고 직설적이며 감각적인 사랑의 시대. JTBC <사랑하는 은동아>가 주는 아련함과 그리움은 도무지 공감되기 힘든 걸까.

 


'사랑하는 은동아(사진출처:JTBC)'

제목이 벌써 <사랑하는 은동아>. 세련되지도 않고 어찌 보면 너무 구시대적인 느낌마저 주는 제목. 그래서 선뜻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한 번 보고 빠져들게 되면 이만큼 늪처럼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드라마도 없다. 마치 과거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고 훈훈하게 했던 옛 사랑이야기에 대한 기억들이 방울방울 피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 일드 <러브레터>를 보며 느꼈던 기억 같기도 하고, 윤석호 PD의 계절 드라마가 주던 기억의 숨은그림찾기를 보는 듯한 기억 같기도 한 그런 느낌.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게 된 은동이를 한 남자가 잊지 못하고 20여년 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 몇 차례 만나서 사랑이 깊어갈 즈음,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은동이(김사랑)와 운명처럼 다시 만난 지은호(주진모)가 그 옛 사랑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촘촘히 들어가 있는 장치들은 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에 촉촉한 감성의 비를 내려준다. 자서전이라는 장치는 마치 <러브레터>의 연애편지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에 쥐가 나게 만든다. 은동이 자신이 은동인 줄 모른 채 지은호에게 들은 은동이와의 사랑 이야기를 적어나간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설렘과 먹먹함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옛 사랑의 기억이 자서전의 글귀들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단서가 되어 다시 지은호와 은동이를 이어준다는 설정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상대방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서도 이미 달라진 상황(은동이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다)으로 인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중요한 장치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뭐든 즉각적으로 연결하고 이뤄지고 헤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사랑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이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운 그런 사랑.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맘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가슴 한 켠이 무너지지만 그런 아픔조차 넉넉히 감당해내게 하는 사랑. 어찌 보면 너무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거리가 유지되어 있어 더더욱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

 

시청률은 낮지만 그 낮은 시청률로 모든 걸 평가하기에는 아까운 드라마가 <사랑하는 은동아>. 일단 첫 회를 보게 되면 끝까지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는 그 느릿느릿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진중한 사랑의 이야기로 이 시대에 잊고 있던 진짜 사랑의 기억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지은호가 은동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마치 그녀가 된 듯 가슴에 먹먹함이 느껴졌던 것처럼. 은동이의 잊혀진 기억이 지은호의 순애보로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나영석 PD의 <삼시세끼>가 흥미로운 몇 가지 이유

 

이명한 CP에게 대놓고 물었다. 이번 나영석 PD<삼시세끼>는 어떨 것 같냐고. 그러자 답변 대신 이런 말이 돌아왔다. “너무 잘 하는 팀이라 제가 관여할 일이 별로 없어요. 저는 기획단계에 조금 참여했을 뿐이죠.” <12> 시절부터 나영석 PD의 사수 역할을 해온 이명한 CP. 그도 이제는 나영석 PD의 감과 능력을 100% 신뢰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러면서 <꽃보다> 시리즈와는 다른 <삼시세끼>의 몇 가지 특징을 얘기했다. 그 첫 번째는 도시 문명과의 격리였다. 필자는 거기서 고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사실 격리든 고립이든 그렇게 긍정적으로 들리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에서 이 단어를 떠올리면 의외로 긍정적인 뉘앙스가 묻어난다.

 

매분 매초마다 울려대는 스마트폰에 어디든 즉각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최첨단의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좀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네트워크를 잠시 끊어버리고 좀 더 본질적인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서의 격리나 고립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닐 것이다. 특히 회사에 가족에 수많은 관계 속에 내몰려진 도시인이라면 더더욱. 격리나 고립은 여기서는 하나의 로망이 된다.

 

두 번째 <삼시세끼>의 특징은 그것이 오랜만에 나영석 PD가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이명한 CP“<꽃보다> 시리즈의 기획은 사실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인물 섭외에서부터 해외의 장소 선정까지 꽤 거대한 기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비해 <삼시세끼>는 훨씬 가볍고 그만큼 소박한 프로그램으로 확연한 차별점을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소박한 지점이 오히려 이 프로그램만의 재미요소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넓은 세상 밖으로 한없이 펼쳐져 나가던 카메라는 이제 소소하고 소박해 보이는 시골의 작은 일들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활과 일상 속으로 밀착한 이야기들이 주는 새로운 묘미. 그것이 <삼시세끼>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실 농사를 짓는 예능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이 아이돌들을 시골에 정착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그걸 카메라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어떤 한계를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좋은 세상 만들기><청춘불패>가 담아내는 시선은 도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농촌의 신기함이나 힘겨움에 대한 공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한 CP<삼시세끼>의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즉 지금의 농촌이란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곳을 의미하지 않고 도시인들에게는 살고 싶은 곳의 로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농사를 짓는 것은 맞지만 결코 농사라는 노동에만 집착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농촌의 삶이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주는 그 단순하고 소박하며 편안하게까지 다가오는 그 판타지. 이것이 <삼시세끼>의 세 번째 특징이 될 것이다.

 

사실 사는 건 복잡해 보여도 결국 삼시세끼먹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간단한 것을 어쩌면 잊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이명한 CP와 헤어지고 나오는 길에 한참 마지막 작업으로 정신없을 나영석 PD에게 못 참고 전화를 걸었다. “<삼시세끼>,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죠?” 섣부른 궁금증으로 던진 질문에 나영석 PD에게 결국 돌아온 답변은 직접 확인하시라는 것이었다. 하긴 설명이 어떻게 그 격리와 소박함과 단순함의 로망을 모두 말해줄 수 있으랴. 직접 느껴볼 밖에.

 

<응답하라1994>, 왜 촌스러움을 전면에 세웠을까

 

기성 드라마와 비교해보면 <응답하라 1994>는 세련된 드라마는 아니다. 첫 회를 삼천포(김성균)의 상경기 하나로 오롯이 채워 넣은 것은 기존 드라마 문법으로 보면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대체로 멜로드라마의 첫 회란 남녀 주인공에 맞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4>는 꽤 많은 시간을 삼천포의 상경기에 할애했다.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에 시트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아마도 이런 선택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능을 해봤던 경험 때문일 게다. 드라마? 꼭 그 문법을 따라갈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응답하라 1994>는 그래서 예능이 그러한 것처럼 때론 조금은 과장된 시트콤적인 상황을 통해 캐릭터와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필요하면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를 대놓고 드러내기도 한다.

 

성나정(고아라)과 쓰레기(정우)의 멜로 라인도 그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미 관계가 설정된 상황을 오누이처럼 살짝 가리는 것으로 처리했다. 2회에서 갑자기 쓰레기가 아픈 성나정의 옆자리에 함께 눕는 장면과 함께 이 둘이 오누이가 아니라 오래 만나다보니 오누이 같은 친근함을 가진 특이한 관계라는 것이 설명되었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해가는 과정도 드라마적인 스토리 전개보다는 시트콤에 가깝다. MT를 가서 술 마시기 게임을 하는 성나정이 오매불망 쓰레기의 삐삐만을 기다리는 장면이나 다음 날 아침 일찍 산책 나온 성나정에게 무심한 듯 살짝 애정을 표현하는 쓰레기의 모습은 이야기의 전개라기보다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시트콤적이다.

 

이것은 칠봉이(유연석)가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식을 찾아가려다 운전이 미숙한 성동일이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아다니다 늦게 되어, 결국 삐삐 음성으로 마음을 전하는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응답하라 1994>의 스토리는 어떤 일관된 흐름이나 전개를 갖기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상황과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그 안에 캐릭터 하나 하나를 소개하고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조금은 단순해 보이고 심지어는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이 전개는 그러나 이 드라마가 가진 소재나 메시지를 떠올려보면 의외로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운 건 ‘촌스러움’에 대한 것이 아닌가.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하숙집(그 하숙집도 지방에서 갓 올라온 집안이 꾸린 것이다)에서 같이 생활하며 낯선 서울 살이를 체험하는 이야기.

 

이것은 왜 첫 회에 삼천포의 상경기에 그토록 시간을 할애했는가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94년으로의 초대. 삼천포라는 인물은 그 시절의 조금은 구식의 풍경과 정서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준 인물인 셈이다. 그런데 왜 굳이 1994년을 다루면서 촌놈들의 서울 체험을 주된 소재로 삼았을까. 이것은 자칫 지금 세대에게 낯설 수 있는 1994년의 공기를 ‘촌놈’이라는 공통된 시선을 통해 보다 자연스럽고 또 재미있게 전하기 위함이다.

 

지금 세대에게 1994년이 낯선 모험의 지대인 것처럼 촌놈들에게는 당시나 지금이나 서울이 모험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양상국이 ‘네가지’나 <인간의 조건>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 촌놈의 시선은 또한 서울이 익숙한 이들에게도 서울을 낯선 모험의 공간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 표현한 ‘촌놈’이라는 조금은 비하적인 표현은 이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정감가고 아날로그적이며 세련됨이 밀어낸 따뜻한 정조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의미인 셈이다. 양상국처럼.

 

삐삐라는 지금은 너무나 투박하고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물건은 그래서 오히려 스마트폰 하나면 즉각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지금 시대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관계의 아련함 같은 것을 전해준다. 누군가의 삐삐가 오기를 밤새도록 기다리는 경험이라던가, 직접 통화하지 못하고 메시지를 녹음해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마치 손 글씨로 한 자 한 자 마음을 적어나가던 편지처럼 애틋해지는 구석이 있다.

 

<응답하라 1994>는 분명 촌스러운 드라마다. 하지만 이 촌스러움은 오히려 이 드라마가 지금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단지 과거를 회고하거나 추억하는 향수 드라마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정조를 ‘촌놈’의 시선으로 끌어내는 것. 이만큼 현재에 괜찮은 의미를 던져주는 주제의식이 있을까. 이것이 이 드라마의 촌스러움에 기꺼이 빠져드는 이유다.

<007 스카이폴>, 007을 도마에 올리다

 

여전히 007 제임스 본드는 유효한가. 50주년을 맞은 <007 스카이폴>이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 속에서 제임스 본드의 상관인 M은 장관에게 불려나가 MI6라는 조직의 유효성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장관은 이제 007 같은 스파이가 물리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속 스파이 조직의 존폐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이 스파이 영화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진출처:영화 <007 스카이폴>

바뀐 시대에 대한 증언은 007 시리즈에 신무기를 개발하는 캐릭터인 Q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는 과거처럼 제임스 본드에게 어마어마한 신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제임스 본드의 지문을 인식해서 그만이 쓸 수 있는 총 한 자루와 그가 위기상황에 놓일 때 위치를 알려주는 위치추적기 한 개를 줄 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런 무기를 만들던 시대는 지났어요.”

 

실제로 그런 시대는 지났다. <007 스카이폴>의 적으로 등장해 MI6를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실바라는 인물은 간단하게 컴퓨터를 해킹해서 버튼 하나 누르는 것으로 건물을 폭파시킬 수 있는 시대라고 증언한다. 놀랄만한 무기? 아마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는 그것이 유효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신무기를 제공하는 Q는 이 영화에서는 이제 해커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

 

007 시리즈의 핵심적인 재미 중 하나인 신무기가 빠져버린 그 자리의 공백을 메우는 건 제임스 본드라는 그 자체가 강력한 무기다. 제임스 본드는 이 스마트한 디지털 세상에 혼자 남아있는 아날로그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그는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허공을 날아오르고 달리는 열차의 지붕 위에서 적과 사투를 벌인다. 그를 디지털 세상으로 연결하는 건 그의 귀에 꽂힌 무선통신기가 전부다. 그 통신기를 통해 그는 컴퓨터가 날라다주는 거대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살인무기인 몸과 통신기.

 

여러모로 달라진 환경(국제정세나 미디어 환경 같은)은 007이라는 시리즈 자체에 대해 그 유효성을 묻는다. 사실 007 시리즈의 기반은 50년대 초반부터 80년대 말까지 이어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다. 이 냉전체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정치 개혁에 의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 막을 내렸다. 007 시리즈도 그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87년 티모시 달튼이 주연한 <리빙데이라이트>와 89년작 <살인면허>가 실패한 것은 냉전체제 붕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하지만 007시리즈는 이후에 피어스 브로스넌을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만들고 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설정하면서 다시 부활한다. <007 스카이폴>에서 장관이 질문한 MI6의 유효성에 대해서 M이 증언하는 것과 딱 맞는 얘기다. M은 이 달라진 시대에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하고 질문을 던지고는 과거의 보이던 적보다 지금의 ‘보이지 않는 적’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또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기라는 것을 피력하면서 제임스 본드를 그 상징적인 존재로 설정한다.

 

<007 스카이폴>의 적이 테러리스트라기보다는 M을 제거하려는 인물로 설정된 점은 이 영화가 다른 한편으로 007 시리즈가 왜 여전히 필요한가를 설파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고 읽혀진다. 제임스 본드는 위기에 처한 M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이 장면들은 마치 007 시리즈를 지켜내려는 사투처럼 보인다.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가 그 존속의 의미에 얼마나 천착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007 스카이폴>은 그래서 최첨단 무기들의 전시장이었던 전편을 탈피해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액션에 더 천착한다. 디지털 시대에 더 강력하게 다가오는 아날로그에 대한 매력. 본드 카로 1964년 작인 <007 골드핑거>와 1965년 작인 <007 썬더볼 작전>에 등장했던 ‘애스턴 마틴 DB5’라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차가 등장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늘 나오는 시퀀스 중에 하나지만 제임스 본드를 붙잡아 놓고 적인 실바가 너의 장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제임스 본드는 “부활”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걸맞게 <007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가 여전히 매력적이고 유효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사랑비' 시청률 5%가 전부는 아니다

'사랑비'의 시청률은 5%에 머물러 있다. 배용준을 잇는 차세대 한류스타라는 장근석과 K팝의 중심에 서 있는 소녀시대의 윤아, 그리고 1세대 한류의 선봉장 역할을 한 '겨울연가'의 윤석호PD와 오수연 작가, 게다가 방영 전 이미 일본에 80여억 원의 외화를 벌어들였다는 성과까지. 이렇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성공요소로 지목되는 것들이 많은 드라마로서 5%라는 시청률은 가혹할 정도다.

 

'사랑비'(사진출처:KBS)

그러나 더 가혹한 건, 5%라는 시청률이 아니다. 그 5%라는 수치 정도의 작품성으로 이 작품이 치부되는 현실이다. 시청률 추산이 대중적인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은 맞지만, 이미 TV시청률이 중장년층들에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이고, 또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작품성이 좋다는 등식은 이미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사랑비'에 대한 비판 여론을 보면, 5%라는 시청률에 지나치게 경도된 느낌이 있다. 이것은 거꾸로 '해를 품은 달'이 실제 작품의 완성도는 한참 떨어졌지만 40% 시청률을 넘어선 것만으로 마치 작품성이 좋았다는 착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실제 작품은 어떨까. '사랑비'의 드라마 전개는 느리다. 그래서 마치 한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이야기가 폭주하게 된 드라마들(언제부턴가 이런 자극이 우리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해왔다)을 보던 눈에 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완행열차를 탄 풍경 같은 드라마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전개가 빠르다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다. 그건 자극의 문제다.

'사랑비'는 그런 점에서 자극이 별로 없는 드라마다.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보면 여타의 폭주하는 드라마들이 다이내믹한 서사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사랑비'는 서사가 아닌 서정에 더 집중하는 드라마다. 멜로드라마로서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이런 전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랑비'는 그래서 서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별 얘기가 없는 것 같다(혹은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것 같다). 하지만 서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의 고저와 강약을 섬세하게 느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마치 서사 중심의 소설과 서정적인 시의 차이라고나 할까.

70년대식 첫사랑이 주는 느낌도 답답하게 다가올 수 있다. 왜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까. 왜 당장 전화해서 마음을 전하지 못할까. 하지만 이것은 2012년 현재적 관점에서의 생각이다. 휴대폰으로 언제든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시대의 정서와 아직도 편지를 쓰던 시대의 정서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왜 그 답답한 70년대식 첫사랑을 보여줄까. 그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멜로'라는 장르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미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 가진 우연성과 운명적인 느낌들은 미디어들에 의해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인스턴트식 사랑의 시대에 '멜로' 같은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는 장르는 어딘지 잘 맞지 않아 보인다. 멜로가 사극 같은 이야기(운명적 사랑이 가능하다) 속으로 자꾸만 도망치거나, 로맨틱 코미디처럼 유머로 바뀐 것(운명적 사랑이 유머처럼 그려진다)은 다분히 이런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사랑비'는 이 사라진 시대의 멜로를 마치 서랍 속에 구겨 넣었던 편지처럼 꺼내 읽는다. 시청률 5%와, 그 시청률 수치만큼으로만 곡해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대한 혹평들은 그래서 이 시대가 얼마나 사랑을 달리 읽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언젠가부터 사랑은 소리치고 대놓고 말하고 주장하고 쟁취하는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4회까지 다뤄진 이 아련한 70년대식 구식 첫사랑은 그래서 2012년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유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비'가 단순히 그 70년대식 구식 사랑에 대해 추억만을 담은 드라마는 아니다. 5회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2012년식의 사랑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70년대 식 구식 사랑과 2012년식의 신식 사랑 사이에 표현은 달라졌어도 그 바탕에 깔린 비슷한 정조를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미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디지털 환경 속에 내던져져 있지만(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아날로그를 희망하기도 한다. 빈껍데기 같은 허무한 즉석 사랑의 연속 속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추억하기도 한다. 마치 시대는 달라졌어도 여전히 내리고 있는 '사랑비'처럼.

'사랑비'는 느리지만 바로 그 느림의 미학이 지금 2012년 우리네 속도에 경도된 드라마들에 오히려 의미를 던져주는 드라마다. '사랑비'의 사랑은 구식이지만, 바로 그 구식이기 때문에 작금의 인스턴트식 사랑 속에서 하나의 판타지이자 희망이 되기도 한다. '사랑비'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내뱉는 대사들,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그 말은 비트로 쪼개지는 이 시대의 삶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비'에 내려진 5%라는 시청률은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작품성 이외의 문제들이 뒤엉켜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같은 시적인 영상의 드라마는 그 매체적인 차이 때문에 오히려 집중이 안 될 수가 있다. 영화라면 집중해서 보겠지만 드라마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달라진 매체 환경과 멜로의 관계에서 전술했듯이, 어쩌면 정통 멜로라는 장르 자체가 우리에게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을 수 있다. 또 한류를 너무 강조하는 것은 거꾸로 반감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한류가 거의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현실은 드라마가 그들만을 겨냥하고 있다는(그래서 국내 팬들은 소외되었다는) 곡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5%라는 시청률로 '사랑비'라는 드라마를 전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70년대가 초반 4회를 차지하고 또 그 정조가 후에도 이어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70년대에 주저앉아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제 2012년의 시점에서 이어질 드라마는 그 70년대를 추억하면서도 그 시절이 주는 아날로그가 지금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길 것이다. 그 질문이 혹시 우리 중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든다면, 자극과 속도에 경도된 우리들에게 조금은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랑비'를 뿌려줄 지도.

디지털은 광장을 지구촌으로 확장시켰다

전경과 시민간의 승강이가 벌어지는 현장. 자칫 폭력 진압, 폭력 시위가 연출되려고 하는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누군가 외친다. “찍어요! 찍어서 올려요!” 그러자 여기 저기서 무수한 카메라들이 고개를 들이민다. 시민들의 손에 들려진 폰카들이 그 수많은 눈들을 번뜩이자 긴장은 순식간에 풀어진다. 카메라의 힘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디지털이 아날로그적 마인드를 넘어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시대의 광장은 물리적인 충돌로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고, 87년 610민주항쟁이 그랬다. 그 때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마치 선점하거나 사수해야할 진지였다. 세상을 향해 사회의 부조리를 외치는 장소로서의 광장은 유일한 시민들의 매체였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밀실이라는 매체로 은밀히 자행되던 부정부패와 폭력을, 그들은 광장이란 매체 위에 올려놓고 세상에 성토했다.

밀실 매체에 익숙한 권력자들은 광장을 에워싸고 외부와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광장의 매체기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했다. 그 원천봉쇄 속에는 광장의 확장기능을 하는 방송사와 신문사라는 매체도 끼어있었고, 어떤 매체는 거기에 동조하다못해 거꾸로 권력자의 매체를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국민들의 십시일반으로 한겨레신문이 탄생한 것은 광장의 매체가 되어야할 이 권력매체들이 권력자의 시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미 성숙해진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한 길을 터놓고 있다. 디지털로 무장한 시민들은 이제 한 명 한 명이 저 방송사의 힘에 준하는 매체의 힘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 폰카로 찍은 폭력 진압의 장면은 순식간에 디지털을 타고 전국, 아니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방송사의 한정된 기자들 수를 생각해보면 매체력은 이미 시민들이 압도하고도 남는 상황이 된 것이다.

촛불 시위가 과거의 폭력 시위와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은 바로 이 디지털의 특성 때문이다. 아날로그가 바리케이드에 막혀진 소통의 창구를 뚫기 위해 물리적 힘을 써야했다면 디지털은 그저 공간을 뛰어넘기만 하면 된다. 주먹과 쇠파이프, 그리고 화염병을 들고 싸워야했던 아날로그 세대들의 소통을 향한 안간힘은, 이제 현장을 보여줄 카메라 하나와 현장에서 상징화해 보여질 촛불이면 되게 되었다. 따라서 보여지고 보여주는 촛불들 하나하나는 완벽한 매체가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매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소통이다. 디지털 공간 속에 만들어진 토론의 장은 물리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수십만 명의 광장 역할을 한다. 이 디지털 광장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과 아이디어들이 번뜩인다. 저마다 각자 가진 입장들은 다르지만 어떤 한 가지에 같은 입장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표현의 문제(한 촛불이라는 매체로서의)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공통된 이슈에 공감했을 때, 그것은 실제 광화문 광장의 촛불들의 모임으로 화한다.

정치적인 이슈 같은 거대담론이 지배했던 80년대 민주화 시대에 한 방송사의 카메라는 엄청난 힘을 과시했지만, 이제 이슈가 생활 속으로 숨어 들어온 시대에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대신 그 카메라를 대신하는 것은 촛불들이 각자 생활 속에서 들고 있는 카메라들이다. 미국 쇠고기 문제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가 더더욱 촛불들의 매체성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촛불들의 자발성에 배후를 운운하거나, 매체로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광장에 선 시민들 앞에 컨테이너박스 같은 물리적 차단막을 세우는 것은 지금 정부의 마인드가 얼마나 아날로그적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끔씩 보여지는 고층건물에서 부감으로 찍혀진 촛불집회의 인파들은 그 수많은 매체들이 한 가지 목소리로 모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압도적이고도 아름다운 ‘보여짐’이다. 그 보여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촛불이라는 매체는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마치 각각으로 흩어져 저마다의 역할만을 묵묵히 하던 시민이라는 디지털 코드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퍼포먼스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의미들은 디지털을 타고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광장이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지구촌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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