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 시청자들의 디테일 요구에 부합한가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을 보다보면 어딘가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 때는 ‘드라마니까’ 라며 대충 넘어가던 것들이 이젠 ‘드라마라도’ 저건 좀 비현실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KBS <우리가 만난 기적>에서 송현철(김명민)이 일하는 은행풍경이 그렇다. 물론 코미디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극화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은행이라는 직종에 걸맞은 현실감 나는 이야기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은행이 배경으로 등장할 뿐이다. 

물론 단 1년 전만해도 드라마에서 이런 디테일까지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비지상파, 즉 tvN이나 JTBC가 내놓는 드라마들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일터의 상당한 디테일들을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tvN <나의 아저씨> 같은 드라마의 박동훈(이선균)이 일하는 삼안E&C라는 회사는 건물의 안전진단을 하는 곳으로 현장에서 드론을 써서 건물 외벽의 균열을 검사하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또 tvN <라이브>는 홍일지구대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 일하는 경찰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제목처럼 ‘생생하게’ 담아냈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또 어떤가.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일하는 윤진아(손예진)가 슈퍼바이저로서 회사 측과 가맹점 사이에서 겪는 곤혹을 이 드라마는 안판석 감독 특유의 디테일로 잡아내고 있다. 

이러한 일터의 디테일들이 드라마에서 빛을 발했던 건 tvN <미생>에서부터였다. 당시 <미생>은 종합상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건 워낙 원작이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소재로 담고 있어서다. 그 후로 <시그널> 같은 판타지가 들어간 작품에서조차 그려지는 일터의 풍경들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밑그림에 공을 들인 달까.

그런데 일터에 담겨지는 디테일은 그저 밑그림으로서의 배경 그 이상이다. 그건 공간에서 일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에 중대한 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 일하는 곳이 굳이 삼안E&C이고 그의 직업이 건축구조기술사라는 건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무너질 수도 있는 건물의 안전을 진단하고 그걸 미연에 막기 위한 직업이라는 점에서, 이 직업과 공간은 부조리와 적폐로 흔들리는 우리 사회라는 건물을 그대로 표징하는 면이 있다. 박동훈은 그 적폐세력들과 대비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직업과 일터의 공간이 굳이 디테일하게 담겨지는 이유다.

<라이브>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경찰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겠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당연하게 경찰들이 실제 겪는 일들이 그 드라마의 핵심적인 소재이자 내용이고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죽음을 사건 속에서 계속 마주하는 현장의 경찰들이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그런 에피소드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형사물과는 다른 현실적인 디테일을 보여준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가 일하는 곳이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인 것은 그의 일이 본사와 지점 사이에 놓여져 결코 만만찮은 스트레스를 주는 직업이라는 걸 드러낸다. 일상적인 느낌이지만 직업인으로서의 힘겨움은 윤진아가 서준희(정해인)라는 그의 가치를 알아주는 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다시 지상파 드라마들로 눈을 돌려보자. 상대적으로 비지상파 드라마들이 담고 있는 치열한 디테일들과 사뭇 비교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물론 이건 제작비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미 비지상파들이 디테일의 세계를 보여준 지금,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에서 인물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성은 물론 중요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어떤 욕망과 좌절에 의해 인물이 움직이는 그 동력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는 중요한 힘이 된다. 하지만 그 이야기성만큼 그 배경을 촘촘히 채워주는 디테일 또한 더더욱 요구되고 있다. 그것은 이야기성과 함께 ‘리얼리티’의 요구 또한 깊은 몰입도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사진:tvN)

'전체관람가', 메이킹부터 영화, 평가까지 전부를 본다는 건만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봉만대 감독이 만든 <양양>이라는 영화를 봤다면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봉만대 감독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19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중풍을 겪는 아버지와 두 아들의 짠한 여행기를 담은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을 100% 느끼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볕이 드는 곳을 의미하는 <양양>이라는 제목에서조차 ‘김양’을 먼저 떠올리는 게 봉만대 감독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선입견일 수 있으니.

'전체관람가(사진출처:JTBC)'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JTBC <전체관람가>는 그저 영화만 달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고, 영화 상영 후 이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나누는 자리까지 말 그대로 영화의 ‘전체’를 관람하는 시간이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관람가>라는 제목은 누구나 다 관람할 수 있는 등급의 영화라는 뜻은 물론이고, 이 프로그램의 형식이 그러하듯 감독들 모두가 모여 함께 관람한다는 뜻과 어쩌면 메이킹부터 평가까지 영화 전체를 모두 관람한다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여겨진다.

그 과정을 보니 봉만대 감독이라는 인물이 다시 보이고, 그가 만든 <양양>이라는 영화가 주는 감흥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19금 은퇴했다”고 강조하는 봉만대 감독이 이 영화는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때 많은 이들이 웃음을 지었던 건 그게 과연 진짜일까 하는 생각들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자 봉만대 감독은 그 제작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 냄새’를 풍겼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던 촬영이 바닷가 장면에서 갑자기 몰아닥친 비바람으로 난항을 겪기 시작하자 봉만대 감독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촬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비바람 속에서도 지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스텝과 연기자들 하나하나를 챙기는 모습은 이 감독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런 봉만대 감독과 스텝, 연기자들의 마음이 통했던지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오자 오히려 촬영 현장은 활기를 띠었다. 그것은 마치 이 영화의 제목이 그렇고 그 감성이 그러하듯이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그 순간을 기적처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봉만대 감독의 두 아들이 참여한 마지막 환상 신에서 이 영화의 가장 찡한 명장면이 탄생했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임하룡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아들들에게 그의 품에 안기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 갑작스레 자신의 품안으로 뛰어드는 두 아이들을 안으며 아마도 임하룡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뭉클함에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렸고, 그걸 보는 감독도 눈물을 흘렸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을 시사하던 감독도 배우도 눈물을 흘렸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평가의 자리에서 감독들은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에 편집된 장면들로 인해 영화의 몇몇 디테일한 면들이 부족했다는 걸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그 영화가 준 감동과 그 영화 제작 과정에서 봉만대 감독이 보여준 훈훈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전체의 제작과정과 상영을 더해 감상평까지를 담아내자 비로소 봉만대 감독의 면면들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영화가 주는 감흥도 더해질 수 있었다.

이건 아마도 <전체관람가>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일 게다. 사실 단편영화가 주는 감흥은 그 짧은 시간으로 인해 슥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장편영화가 한편의 소설 같다면 단편은 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은 짧아도 그걸 곱씹어보는 과정이 없으면 너무 밋밋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봉만대 감독 같은 이름만으로도 그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 것인가를 선입견으로 갖게 되는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전체관람가>는 그 영화 자체만이 아니라 그 앞과 뒤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그 영화 속 장면들을 곱씹게 해준다. 영화 진짜 전체는 바로 이런 모든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봉만대 감독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또 그가 지금까지 찍어왔던 영화들 속에 우리가 19금이라는 딱지 때문에 사실은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감성들을 이 프로그램은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굿와이프> 미드 리메이크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연기자들

 

사실 tvN <굿와이프>는 전도연 같은 연기자들에게는 부담스런 작품이다. 본래 리메이크라는 것이 원작과 늘 비교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굿와이프>2007년부터 CBS에서 방영되어 무려 시즌7을 이어오고 있는 인기 미드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 알리샤 역의 줄리아나 마굴리스는 이 연기로 여러 차례를 상을 받은 바 있다. 그 알리샤라는 인물을 이제 김혜경이라는 인물로 재탄생시켜야 하는 전도연으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미드를 리메이크하는 것도 낯선 일이다. 미국적 정서는 아무래도 중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권보다 우리에게는 더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굿와이프>의 알리샤라는 인물은 남편의 불륜 스캔들이 터져도 꿋꿋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고, 물론 화는 나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쿨함을 유지하는 여성이다. 이것은 우리네 정서와는 조금 다른 면면일 수 있다. 조금만 엇나가면 공감대가 일어나지 않아 그 연기가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원작에서 알리샤는 그래서 감옥에 들어간 남편 때문에 다시 변호사 일을 하게 되고, 집안 일을 시어머니가 와서 돕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 이것 역시 우리네 정서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리메이크는 그 설정 자체를 바꾸었다. 밖에서는 변호사로 일하고 집에 와서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돌보는 우리네 워킹우먼들 중 한 명이고, 시어머니는 원작과는 달리(원작에서 알리샤는 시어머니와 그래도 같은 여성으로서의 쿨한 공감대가 있다) 그녀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리메이크된 <굿와이프>는 원작의 내용들을 세세한 장면의 디테일들까지 그대로 가져올 정도로 충실히 따라고 있다. 물론 한국적 정서와 다른 점들은 바뀐 요소들도 적지 않다. 이를 테면 원작에서 집으로 불쑥 배달된 불륜 스캔들 사진을 아이들이 먼저 보게 되고 컴퓨터에 능숙한 아이가 그 사진을 분석해 그것이 합성이라는 걸 발견해내는 장면 같은 건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아 빠져 있다.

 

원작의 알리샤 남편이자 함정에 빠진 검사인 피터 플로릭(크리스 노스) 역시 미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캐릭터다. 그 역할을 맡아 이태준 검사를 연기하는 유지태는 우리 정서로 보면 자칫 뻔뻔해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스캔들 상대였던 여자를 붙잡아 수틀리면 죽일 수도 있다는 식의 은근한 협박을 하기도 하는 자다. 하지만 유지태는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인물을 어딘가 미스테리한 인물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가 진짜 함정에 빠졌을 수도 있고, 이 모든 게 아내 김혜경을 위한 일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굿와이프>의 리메이크는 커다란 이야기의 줄기를 바꾼 게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실제 변호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던 작가들이 여럿 모여 쓴 대본인 만큼 그 디테일들이 워낙 좋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굿와이프>는 좀 더 표현적인 면들에서 섬세한 변화들을 통해 이질감을 없애는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결국 그걸 떠안은 건 전도연이나 유지태 같은 연기자들이다. 일종의 우리 식의 연기 해석이 똑같은 설정과 장면에도 조금씩 달리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전혀 미드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도연과 유지태의 저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KBS <무림학교>의 지옥에서 <태양의 후예>의 천국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아마도 KBS 드라마국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학원물과 판타지를 접목한 <무림학교> 역시 애초의 기획은 야심찼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첫 회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여지없이 무너져 내려 시청률은 거의 3%대를 전전하다 2.8%(닐슨 코리아)로 종영했다. 조악한 CG와 병맛을 추구했다기보다는 너무 엉성한 스토리. 시청자 반응 또한 최악이었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뒤집는 구세주로 등장한 게 <태양의 후예>. 수목극에 들어오자마자 <태양의 후예>는 첫 회에 14.3%로 가뿐히 두 자릿수를 넘어섰고 고작 4회 만에 거의 10%가 오른 24.1%를 기록했다. 김은숙 작가표 멜로 특유의 맛깔 나는 대사와 그리스에서 찍은 화보 같은 영상들,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잡으며 <태양의 후예>는 대중문화의 가장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광고 완판은 물론이고 재방송까지도 75%의 광고 판매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는 극히 드문 사례다. 100% 사전 제작되어 중국과 동시 방영되고 있는 <태양의 후예>에 대한 중국 반응 역시 뜨겁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수치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제2<별에서 온 그대> 신드롬이 생기는 건 아니냐는 조심스런 예측이 들려온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그간 너무나 오랫동안 고개를 숙여왔던 KBS 드라마가 이 한편의 드라마가 거둔 2주간의 성과로 그 이미지 쇄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서 고정적인 시청층을 갖고 있는 KBS 드라마는 늘 괜찮은 시청률을 냈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트렌디한 주중 미니시리즈에서 성과를 내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주중드라마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도 달성하기 힘겨워했던 KBS 드라마는 그 수모를 <태양의 후예>를 통해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태양의 후예>의 성공은 또한 최근 지상파 드라마를 위협해오던 tvN 드라마의 독주를 잡았다는 데서 단지 KBS의 차원을 넘어 지상파 드라마들 전체에도 고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상파 플랫폼의 한계처럼 지목되며 늘 비슷비슷한 형태의 드라마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지상파 드라마들은 <태양의 후예>의 성공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은 지상파 플랫폼에서도 먹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궁금해지는 건 KBS가 어떻게 <태양의 후예> 같은 보물을 잡을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정도 작품이라면 타 방송국에서도 충분히 탐을 냈을 만한데 어째서 KBS였을까. 130억이라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여된 작품이다. 보증수표라고 하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방송사로서는 고민이 될 만한 작품이다. 특히 블록버스터드라마는 의외로 성공확률이 낮았다는 것이 방송가의 공공연한 이야기다. 드라마적인 스토리보다 볼거리에 치중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는 달랐다. 볼거리도 있지만 그 안에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태양의 후예> 역시 여러 타방송사에서도 고민을 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타방송사들이 아닌 KBS가 이 작품을 선뜻 편성하게 된 건 보다 더 절실한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성과를 내지 못한 KBS 드라마로서는 보다 과감한 투자가 되더라도 확실한 성공을 통한 이미지 제고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KBS의 선택은 옳았다. <태양의 후예> 한 편의 뒤집기로 KBS 드라마의 위상은 확실히 제고되었다. 이어지는 KBS 드라마의 라인업들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높아졌다. 김우빈과 수지가 캐스팅된 <함부로 애틋하게>, 박서준, 박형식의 <화랑 : 더 비기닝>, 박보검을 캐스팅한 <구르미 그린 달빛>까지. <태양의 후예>를 통해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한 KBS 드라마들이 올해 어떤 행보를 그려나갈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집밥 백선생>의 디테일이 놀라운 스튜디오의 진화

 

선생님-”하고 부르자 백종원이 스튜디오로 들어선다. 그런데 그 들어서는 장면이 여느 스튜디오 예능들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그림자가 어른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여지고 이어서 백종원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 스튜디오에 들어온다기보다는 어느 집 주방으로 들어서는 모습 같다. tvN <집밥 백선생>의 오프닝 장면이다. 도대체 이 자연스러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것은 세트 스튜디오의 특별함에서 나온다. <집밥 백선생>은 우리가 기존 스튜디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봐왔던 세트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스튜디오라는 느낌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석구석 진짜 주방처럼 꾸며놓은 것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특징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창고나 광처럼 구획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요리를 하다가 재료나 도구가 필요하면 출연자들은 자연스럽게 그 광으로 들어가 재료와 도구를 꺼내온다. 밥을 지을 때 쌀을 가져오기 위해 출연자들이 광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사실 프로그램이 굳이 잡아낼 필요까지는 없는 디테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동선 하나는 스튜디오라는 인위적인 느낌을 상당 부분 상쇄시켜준다.

 

아마도 이런 세트를 꾸미게 된 건 제목에 붙어 있는 집밥이라는 표현에 들어 있듯이 진짜 집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집에서 해먹는 밥이란 야외에서 해먹는 것과도 다르고 놀러가서 다른 숙소에서 해먹는 밥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익숙한 재료와 도구들이 원하는 자리에 척 놓여져 있는 우리 집 주방에 들어설 때의 그 느낌이 타인의 집 주방과 다른 것과 같다. 거기에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어딘지 푸근해지고 포만감이 느껴진다.

 

스튜디오물에서 세트는 의외로 중요하다. 이를테면 과거 MBC <놀러와>에서 다락방의 모습을 스튜디오로 구현한 공간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맨발로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함을 제공했다. KBS <해피투게더>의 사우나 콘셉트의 세트나 작은 음식점 콘셉트의 세트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집밥 백선생>의 주방 스튜디오는 그 디테일이 단연 압권이다. 단지 기능적인 공간만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그걸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어떤 화창한 날 기분 좋은 요리에 빠져들 수 있는 공간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물론 출연자들과 그들이 만드는 요리에 집중되지만, 가끔 저 뒤편에 놓여진 창밖의 빨간 벽돌이나 초록 잎이 올라온 나뭇가지를 배경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 나뭇가지가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진짜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밥 백선생>의 인기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바로 백종원 셰프다. 백종원이 여타의 셰프들과 다르게 다가오는 건 특히 자연스러움이다. 그는 때로는 아이처럼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투정을 부리기도 하는 선생이다. 그는 카레 하나를 만들어도 확실히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이면서도 그걸 알려주는 눈높이는 딱 보통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 보통의 눈높이는 그래서 요리를 가르쳐준다기보다는 이건 몰랐지?”하는 식으로 자랑하는 듯한 천진난만함을 담고 있다.

 

진짜 주방처럼 꾸며지고 연출된 스튜디오는 상당부분 백선생의 이런 자연스러움에 일조한다. 이건 스튜디오의 진화다. 점점 카메라가 일상화되고 리얼을 강조하게 되면서 스튜디오물은 그 인위적인 느낌 때문에 점점 밀려나는 형국이다. 대신 카메라는 현장으로 일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스튜디오는 방송에 있어서 적은 투자로 최적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스튜디오가 디테일한 자연스러움을 지향한다는 건 그래서 당연한 결과. <집밥 백선생>의 스튜디오는 그 진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생> 신드롬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이제 <미생>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끝날 때가 다 됐지만 정작 주인공인 장그래(임시완)의 위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물론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겨우겨우 계약직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그에게 아직 정규직 소식은 없다. 오히려 그 정규직을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위험성 있는 사업을 덜컥 하려는 오차장(이성민)과 그 사실을 알고는 퇴사를 고민하는 장그래가 갈등을 일으키는 중이다.

 

'미생(사진출처:tvN)'

그나마 만년 과장이었던 오과장이 오차장이 된 게 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성취다. 물론 풋내기 신입사원이었던 장그래나 안영이(강소라), 장백기(강하늘), 한석률(변요한) 같은 인물들이 이제 제법 회사에 적응해 척척 자기 몫을 해내는 건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그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미생들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성취나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는 <미생>이 왜 그토록 신드롬을 만들었는가를 의아해 한다. 하지만 <미생> 신드롬은 바로 그 커다란 성취나 판타지를 말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다. 사실 직장생활이라는 현실 속에서 커다란 성공이나 성취를 말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그들은 그저 그 힘겨운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섣부른 판타지는 헛웃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 <미생>은 그런 점에서 보면 헛된 희망을 얘기하지 않은 드라마다. 거기에는 그 흔한 멜로적 성취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사회현실 속에서의 성취가 불가능하다면 멜로 같은 사적인 성취라도 취하는 것이 기존 드라마들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미생은 그런 곁가지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사원과 대리, 팀장 사이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냄으로써 그 미생으로서의 삶에 자그마한 숨통을 만들었을 뿐이다.

 

멜로도 없고 가족도 그렇게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 일중독자들의 세상이 그토록 우리를 잡아끌었던 건 거기에 직장인들의 디테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직장인이란 유리지갑월급쟁이과로과음으로 점철된 어떤 존재들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일 속에 푹 빠져 살아가는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미생>은 달랐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뻔하게 치부해 왔던 직장인들의 면면을 깊숙이 들어가 자세한 디테일로 그려냈다. 거기에 특별한 판타지는 없었지만, 바로 이 디테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위안과 위로를 주는 힘을 발휘한다. 누구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았던 삶을 조명해준다는 것. 그리고 그 미생의 삶에 나름의 가치 부여를 한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왜 직장인들에게 그토록 큰 공감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미생>의 인물들은 그 드라마의 시작과 끝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변함없음을 보여주지만, 이런 헛된 판타지보다 이 드라마가 선택한 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직장인들의 삶이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 바둑에는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오차장의 이 말에서 방점은 우린 아직 다라는 단어에 찍힌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아픈 현실에 대한 공감. 그것이 <미생>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오만>, <미생>, <피노키오>가 꺼낸 칼끝이 향하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럭저럭 살만해 보인다. 아니 심지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한 걸음만 다가가면 온갖 뒤틀어진 욕망과 부조리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직업의 세계. 이런 의미로 보면 지금껏 대충 직장을 하나의 배경으로 다루고 그 위에 멜로 같은 이야기를 덧붙인 드라마들은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막연히 직장인의 로망을 말하는가.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제 전문직 드라마라는 표현은 구태의연해진 지 오래다. <오만과 편견>의 검찰, <미생>의 종합상사, <피노키오>의 언론사. 지금 현재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과거 전문직 드라마라고 불리던 드라마들의 호칭 자체가 무색해진다. 과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은 직업의 세계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그 디테일을 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면 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만들어냈던 것이 사실이니.

 

물론 의학드라마는 예외다. 무수히 반복되어오면서 디테일 역시 깊어진 게 의학드라마다. 하지만 검사나 기자 혹은 직장인을 다루던 전문직 드라마들의 디테일은 요즘 방영되고 있는 MBC <오만과 편견>이나 tvN <미생>, 혹은 SBS <피노키오>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들 드라마들은 좀 더 심층적인 취재가 아니라면 도무지 나오기 어려운 직업의 디테일들을 다룬다.

 

과거라면 이런 디테일은 시청률을 가로막는 저해요소가 됐을 것이다. 적당한 디테일에 조미료처럼 처지는 멜로가 드라마의 흥행공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당한 디테일은 이제 대중들에게는 리얼리티의 부족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니 거꾸로 깊어진 디테일은 실감으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디테일이 깊어진 이들 세 드라마가 시청률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오만과 편견>이 다루는 검찰은 막연히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디테일들이 들어가 있다. 문희만(최민수)같은 부장검사를 보다보면 전형적인 비리 검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가도 검찰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간힘을 쓰는 현실적인 검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검찰의 일원이 될 것인지 개인으로 남을 것인지를 구동치(최진혁) 수석 검사에게 묻는 문희만의 모습에는 시스템과 개인으로서 검사의 소신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미생>은 지금껏 우리가 종합상사라고 하면 해외에서 물건 떼다 파는 정도로 생각했던 그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또 직장인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샐러리맨의 애환 같은 통상적인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중독자들처럼 보이는 <미생> 상사맨들의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 가진 아픔과 기쁨을 모두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공감의 폭은 바로 이 디테일로 인해 커질 수밖에 없다.

 

<피노키오>는 그저 기레기로 치부되던 드라마 속 기자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다. ‘진실을 두고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보도경쟁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단독을 잡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는 현장 이야기가 들어간다. 기자가 나오면 으레 등장하는 클리쉐들은 디테일 속에서 무색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디테일에 승부하는 이들 직업 드라마들 속에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모두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이 주인공이라는 점이고, 그 사회 초년생에게 어떤 지침을 알려주는 직장의 멘토가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의 한열무(백진희)라는 초년생을 이끌어주는 수석 구동치가 그렇고,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라는 계약직을 끌어주는 오차장(이성민)이 그렇다. <피노키오>의 신입 기자 최달포(이종석)에게는 YGN 사회부 시경캡인 황교동(이필모)이 있다.

 

사회 초년병들과,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은 멘토들은 함께 힘을 합쳐 부조리한 현실과 맞선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조직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의 적은 검찰시스템이 되고, <미생>은 샐러리맨들의 직장 시스템이며, <피노키오>는 보도 경쟁에 내몰려진 방송 시스템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 직업을 다루는 세 편의 드라마는 다른 것 같아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업이 갖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항하는 청춘과 멘토의 공조체계가 그것이다. 어째서 서로 다른 직업을 다루면서도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나오게 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하는 직업의 세계가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취업도 어렵지만, 막상 들어가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스템의 현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비극들이 어떤 직업 속에서도 상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꾼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해진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덮어버리고 갔을 때는 좀체 정체가 드러나지 않던 막막하고 먹먹한 현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울고 갈 개과천선의 디테일

 

살릴 수 있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대학 4학년 때 백두그룹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한국 소주시장의 마켓 쉐어를 40에서 60% 늘렸습니다. 판사님도 백두소주 드시죠? 그게 바로 제 작품입니다. 하하하. 백두소주와 그룹 살려내겠습니다. 백두그룹은 민족기업입니다. 잠시 외세 투기자본과 악덕로펌이 결탁한 농간에 시달리는 것뿐입니다. 국내 채권단의 90%와 전체 평균 60%가 저 진진호가 단독 경영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에 짧게 등장한 이 법원의 장면은 여러 모로 진로그룹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진술한 백두그룹 진진호 회장(이병준)은 당시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진호 회장을 모델로 한 듯하다. 이야기의 소재도 그렇지만 심지어 외모까지도 비슷하게 연출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진진호 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제금융위기 때문에 국내의 그룹들이 휘청했던 건 사실이지만 소주 매출을 통해 진로만큼 현금보유고가 높았던 회사가 무너진 건 외세 투기자본인 골드만삭스의 작업(?)과 법정싸움에서 졌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결국 김석주(김명민) 변호사의 마지막 의뢰인으로 등장할 이 진진호 회장의 이야기는 진로그룹이 겪은 과정을 재현할 것으로 보인다.

 

<개과천선>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이처럼 거의 실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낸 기업의 편에 서서 생업이 달린 어부들의 보상을 막는 차영우펌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재벌의 부실 사채 판매를 한 유림그룹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부실사채를 떠넘기고 돈을 챙긴 후 회사를 법정관리로 넘겨 채무를 청산한 다음,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부실을 털어낸 회사를 다시 장악하는 대기업의 행태는 실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대형 은행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벌인 파생상품 영업 문제는 키코사태를 다루었다. 드라마로도 이 파생상품이 갖고 있는 복잡한 금융의 문제는 결코 쉽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것은 이 사태 자체가 전문가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복잡한 금융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양산되었지만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태를 드라마가 정면에서 다룬다는 건 놀라운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디테일은 세세한 취재와 조사가 아니라면 도무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사실상 국내의 법조계를 거의 흔들고 있는 차영우펌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국내 굴지의 로펌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니네 차영우펌은 손이 안 닿는 데가 어디야 대체.” 이렇게 묻는 이선희 검사에게 김석주는 이렇게 줄줄이 관련 기관들을 늘어놓는다. “청와대, 내각, 법무부, 법원, 검찰청, 국세청, 금감원, 공정거래위원회 심지어 교정국 출신 고위간부들도 영입해 오는 거 알지? 회장님들 옥수발해야 하거든.” 중수부장 출신이나 대법원장 판사 출신들을 영입해 전관예우를 받는 차원을 넘어서 거의 모든 공공기관들에 손을 뻗고 있는 것. 이러니 사법정의가 제대로 이뤄질 까닭이 없다.

 

<개과천선>처럼 하나의 드라마가 이처럼 우리 사회를 강타한 금융과 법조 비리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 적이 있던가. 이것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것만 같은 디테일들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말하는 개과천선이란 단지 김석주 변호사만의 이야기를 지목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거기에는 금융경제로 넘어오면서 대기업들에 의해 자행된 그 많은 잘못된 일들의 개과천선을 바라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만한 의지와 뜻이 아니라면 이런 디테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97)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86)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089,853
  • 547533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