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리더십 부재인 현재의 결핍을 건드리다

 

우리에겐 제대로 된 리더가 있는가. 사실 이 질문은 지금 현재 우리네 대중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열망일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 밑으로 떨어져 연일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고 그럼에도 총리라는 사람은 국민을 대변하기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만 헤아리려 한다. 100만 촛불을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폄하하는 시대착오적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여러분이 시위 나갈 때 참가하지 않은 4900만 명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기업인도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런 시기가 만들어낸 거대한 결핍 때문이었을까.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김사부(한석규)라는 인물이 리더십 부재인 현재의 결핍을 툭툭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는 그 곳에서 밀려난 인물이 김사부다. 하지만 그는 돌담병원이라는 버려지다시피 한 자그마한 시골병원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잠룡이다. 거대병원 이사장이 자신의 수술을 해달라고 김사부에게 요청하자 그는 그동안 속에만 두었던 큰 그림을 꺼내놓는다.

 

9.5%(닐슨 코리아)로 첫 회가 나갔을 때만 해도 조금은 불안했다. 요즘처럼 사회적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첫 회에 시선을 잡아끌지 못하면 불안했던 탓인지 이 드라마는 그 첫 회에 너무 많은 것들을 채워 넣었다. 하지만 그 빠른 전개 뒤에 김사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2회부터 드라마는 안정을 찾아가며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회에 10.8%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낭만닥터 김사부>는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더니 6회에 무려 18.9%까지 치솟아 올랐다.

 

이 흐름은 무엇을 말해줄까. 첫 회만 해도 의학드라마에 멜로가 섞여 있는 그저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됐지만, 차츰 이 드라마가 대결하고 있는 것이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부조리한 시스템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김사부라는, 어찌 보면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인물이 가진 힘은 절대적이다. 그가 중심에 서 있는 돌담병원과 어쩌다 그 병원에 합류하게 된 윤서정(서현진), 강동주(유연석)는 하나의 팀이 되어 새로운 병원을 만들어가려 한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병원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병원.

 

김사부의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그와 맞서는 도윤완 거대병원 원장은 환자의 생명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대신 병원이 취할 이득과 자신의 권력만을 추구하는 인물. 그리고 이런 대결구도는 김사부의 밑으로 들어온 강동주와 도윤완 원장의 아들인 도인범(양세종)의 대결로 이어진다. 어쩌다 거대병원에서 돌담병원으로 파견 오게 된 도인범과 그 일행들은 그래서 김사부를 위시한 돌담병원 사람들과의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건 김사부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병원을 나라로, 의사를 공직자들로, 그리고 환자를 국민으로 치환해 놓고 보면 <낭만닥터 김사부>가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시국의 어떤 지점을 건드리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이게 나라냐고 물을 정도로 드러난 실체에 쏟아진 실망감은 그래서 이 돌담병원이라는 소외되어 퇴락해버린 작은 병원이 김사부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만나 어떻게 큰 그림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에 작은 위안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한다. 우리에겐 과연 김사부 같은 리더가 있는가

<진사> 박찬호 리더십, 메이저리거의 솔선수범

 

아마도 이건 박찬호가 낯선 이국의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맹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박찬호는 자신만이 아니라 동료와 병사들을 챙기고 함께 임무를 수행해가는 특유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 모습은 동료들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국 그들을 위한 박찬호의 마음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MBC <진짜사나이>에서 박찬호는 2갑판장이라고 불린다. 워낙 동료와 병사들을 챙기는 게 거의 습관화되다보니 그의 쉴 틈 없는 잔소리가 그에게 그런 별명을 붙게 만들었다. 같이 갑판에 배치 받은 솔비는 진짜 갑판장님이 가고 나면 휴식시간에 제2갑판장이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방탄복을 잘 못 챙겨 입는 솔비를 도와주고 암기사항을 잘 못 외워 늘 곤욕을 치른 서지수에게 그걸 외울 수 있게 도와준다. 막내로서 이런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서지수는 자신이 너무 못한다는 자책감에 눈물까지 흘린 바 있다. 박찬호는 그런 서지수에게 마치 딸처럼 세세하게 임무 상황들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탄피가 갑판에 떨어질 때 파손을 막기 위해 계류삭 작업을 할 때 박찬호는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보기 좋게 임무를 끝내고는 함께 한 동료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건 2 갑판장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행동이었지만 어찌 보면 과도한 느낌마저 주었다. 액면을 이야기하면 이건 <진짜 사나이>라는 군 체험 프로그램을 찍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박찬호의 행동은 프로그램을 찍는다기보다는 진짜 부사관 훈련을 받는 이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모든 임무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는 건 아니었다. 메이저리거의 투수로서 사격은 어딘지 그의 전유물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달랐다. 잘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던 타겟을 맞추는 것이 야구하고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으니까. 던짐줄 훈련에서도 그는 세 차례의 시도 끝에 겨우 성공해 단번에 성공시킨 이태성과 비교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결국 메이저리거라고 해도 군 생활은 또 다르다는 것.

 

하지만 그런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동료들과 어우러지고 또 통솔하는 면에 있어서 박찬호는 단연 돋보이는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 쏟아내고 다녀 투머치토커라고까지 불리는 건 어쩌면 동료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함께 하는 임무에 있어서 모두가 힘을 합쳐 이뤄내려는 그 마음은 야구인으로서 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는 이미 삶 속에 체득된 것이었을 게다.

 

40줄을 훌쩍 넘겨버린 나이에 해군 체험이 쉬웠을 리 없다. 그것은 그 나이에도 훈련을 할 때나 나아가 식사를 할 때조차 잔뜩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그 얼굴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갑판장과 동료가 챙겨주는 생일에 딸과 아내에게 받은 편지를 읽을 때는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잔뜩 쉰 목소리로 그가 편지를 읽을 때 동료들의 눈시울이 붉어진 건 어쩌면 나이는 들었지만 그간 열심히 동료들을 챙기려 애쓰며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해온 그의 진심이 읽혔기 때문일 게다. 그저 방송을 찍는 것이 아닌 진짜로 임하는 진짜 사나이의 면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징비록>, 임진왜란을 통해 보는 국가의 위기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생겨날까. KBS 주말사극 <징비록>이 던지는 굵직한 질문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벌어진 여러 국가적 사안들과 전쟁의 전조들, 피폐해진 나라 살림에 더해 붕당을 이뤄 권력에만 몰두하는 정치세력과 국제정세를 읽어내지 못하는 왕의 리더십 등 <징비록> 안에는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드러나는 다양한 증상들이 보여진다.

 

'징비록(사진출처:KBS)'

하필 지금 현재 <징비록>이 사극으로 만들어진다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물론 당장 왜란과 같은 전쟁의 위기가 닥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 터질 위험성이 다분한 현재가 아닌가. <징비록>에 등장하는 몇몇 사례들이 그저 옛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선조(김태우)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물론 그것이 흩어진 민심을 다잡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지라도 왜란을 방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건 국가 지도자로서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선조는 군역을 통해 축성을 멈추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류성룡(김상중)에게 당장 먹고 살 것도 없는 백성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거기에 대해 류성룡은 지주들에게 제대로 된 세금을 받아 군역을 하는 백성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선조는 지주들 또한 백성이라며 갑작스런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금문제는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연말정산 문제만 두고 봐도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들의 세 부담만 더 커졌다는 게 그 현실이 아닌가. 사실 국고가 여의치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서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아 생긴 일은 아닐 것이다. 4대강 사업 같은 나라 망치는 엄청난 사업에 엉뚱하게도 재원이 투입되는 것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군량미를 빼돌려 치부하는 양반들의 이야기는 최근 벌어진 방산비리로 구속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클라라와의 개인 메시지 공방을 벌였던 일로 존재가 알려진 이규태 회장의 이 비리 규모는 무려 500억대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의 방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국민의 혈세가 사적인 치부로 이어지는 상황. <징비록>이 그리고 있는 왜란 직전의 분위기와 무에 다를 게 있을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들에게 군역과 축성이 힘들다고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낸 선조의 조치는 마치 대선 때마다 흘러나오던 선심성 공약을 그대로 닮았다.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뒤집고,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고는 결국 흐지부지 중단하는 상황들에 나오는 이야기는 당장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변명이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공약을 왜 내건단 말인가.

 

이미 왜국에서는 전쟁준비에 돌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은 동인 서인으로 나뉘고 또 그것도 모자라 남인 북인으로 나뉘어 각자 이권에만 몰두하는 상황 또한 지금의 정당 정치와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늘 국민을 호명하지만 거기에 늘 국민들은 소외되는 아이러니한 현실. 양극화는 더 심해지지만 돈이 있어야 선거를 치르는 현실 속에서 지주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에게서 진정 서민들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징비록>400여 년 전에 벌어진 임진왜란 전후의 역사를 다루지만 그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는 지금 현재에 닿아 있다.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반복되어 비슷한 양상으로 생겨나고, 그 결과는 또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이 사극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류성룡이 <징비록>을 써내려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명량'의 바다와 세월호의 바다

SPECIEL 2014.08.26 09:38 Posted by 더키앙

<명량> 신드롬과 리더십에 대한 갈증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은 이미 신드롬이 되었다. 일찌감치 천만 관객을 예고해버린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하루에 거의 1백만 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알다시피 명량해전이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모두가 포기했던 그 전쟁에서 단 열두 척의 배로 3백여 척에 달하는 왜군을 깬 조선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다 아는 이야기에 왜 이렇게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이 이어지는 걸까. 그것은 영화의 만듦새가 그만큼 정교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도 우리가 처한 작금의 현실이 작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현실이란 다름 아닌 리더십의 부재이고, 그럼에도 힘겹게 이 나라를 버텨내고 있는 서민들이 갖는 치열함이다.

 

<명량>1977년도에 만들어진 영화 <난중일기>2004년도에 시작해 2005년까지 방영됐던 사극 <불멸의 이순신>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난중일기>가 당대의 반공 분위기에 걸맞는 구국의 영웅 이순신을 그려냈고, <불멸의 이순신>이 성웅이 아닌 인간적인 결점을 가진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명량>은 왕이나 국가가 아닌 민초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민중의 영웅 이순신을 그려냈다.

 

영화의 제목이 영웅 이순신이 아니고 <명량>이라는 점은 이 전쟁의 주역이 이순신 장군만이 아닌 함께 싸운 무명의 병사들이나 멀리서 기도를 하는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그 현장에 있던 모든 민초들이라는 걸 암시한다. 따라서 <명량>은 그저 역사의 한 줄에 놓여진 명량해전이라는 특정 사실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즉 밑으로는 회오리 파도가 치고 있고, 저 앞으로는 수백 척의 배를 몰고 쳐들어오는 왜군들이 있으며, 그럼에도 이 전쟁을 지원하기는커녕 항명한다며 이들을 핍박하는 통치자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정확히 현재의 우리네 현실을 환기시킨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려보면 그 바다와 <명량>의 바다가 얼마나 비슷한 공간으로 다가오는지를 공감할 수 있다. 배가 기울어지는 위기 상황에서 도망치는 선장이나 속수무책 아무런 위기대응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정부는 왜적이 쳐들어올 때 제일 먼저 도망쳤던 군신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럼에도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진 교사와 승무원들은 명량의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감히 살 것을 생각하지 않고목숨을 내던진 병사들과 민초들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혹은 국가적인 위기를 맞을 때마다 누구보다 앞장서 그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국민들이었다. 그러니 이미 역사를 통해 다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시 <명량>이라는 영화로 보며 박수를 치는 것일 게다. 거기에는 적들 앞에 추상같고 민중들 앞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 같은, 이순신 장군 리더십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있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는 그 유명한 말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 현재적 울림을 전해준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인물들이 저 혼자만의 살길을 찾는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공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고, 반면 저 스스로 희생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위기에 처한 우리를 살릴 것이라는 것. <명량>이 보여주는 것처럼.

 

<명량>의 민심, <해적>의 고래, <해무>의 참상

 

<명량>, <해적>에 이어 <해무>까지. 공교롭게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나온 한국 영화 3편이 모두 바다를 공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이 모두 단 몇 달 전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건 그 공간이 바다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영화 제작자들의 마음 속에 틈입되었을 현실들이 깔려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전부터 제작된 영화들이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이 안타까운 일을 환기시킨다는 것은.

 

'사진출처:영화<명량>'

3백여 척이 넘는 왜적들과 어느 방향으로 휘돌아갈지 알 수 없는 죽음의 회오리 바다 위에서 그것도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장수와 병사들 그리고 민초들이 두려움을 넘어 세상과 싸우는 이야기 <명량>은 세월호 참사에서 숭고하게 희생된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제 살길이나 찾자며 도망치는 왕이나 신하들은, 가라앉는 배에 무력했던 정부의 리더십과 승객들을 책임지기는커녕 제 목숨 하나 챙기려 도망치는 선장을 연상케 한다.

 

죽을 줄 알면서도 그 명량의 바다로 나가는 이순신 장군과 병사들의 모습에서는 그 가라앉는 배의 두려움 속에서도 학생들을 향해 달려갔던 숭고한 선생님과 승무원들의 희생이 떠오른다. <명량>1400만 관객을 넘어 전무후무한 15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신드롬은 새삼 일어난 이순신 장군 열풍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무겁게 생겨난 우리의 마음 깊숙이 존재하는 부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적>은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지만 거기에서도 세월호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명량>이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국가는 좀체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민초들은 떠돌다 산적이나 해적이 되고 국가는 왕권을 인정받기 위해 명나라의 재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영화의 기막힌 풍자는 명나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가져오는 옥쇄를 고래가 꿀꺽 삼켜버린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고래인가. 조정은 고래가 옥쇄를 삼켰다는 그 사실이 백성들에게는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하늘의 뜻으로 읽힐 것이라며 해적까지 동원해 옥쇄를 되찾으려 한다. 즉 고래는 여기서 선량하지만 핍박받는 대다수의 백성들(천심)을 상징화한다. 어미 고래는 그저 자식을 보호하려할 뿐이지만 조정은 그 자식을 볼모삼아 고래를 죽이려 한다. 세월호의 침몰을 마치 우리나라의 침몰로 느낀 분들이라면 그저 자식 하나 보호하려 안간힘을 쓰다 쓰러져가는 고래에서 그 비슷한 잔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해무>IMF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감척사업으로 인해 폐선이 될 위기에 몰린 전진호가 밀항에 손을 대면서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이야기다. 만선의 꿈은 일찌감치 사라져버렸고 그저 생존하기 위해 벌인 일은 사람다운 땀과 노동의 공간이었던 전진호를 지옥 같은 살육의 공간으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 여기서도 우리는 세월호의 한 자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무엇이 선량했던 그들을 그렇게 악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게 만들었던가. 가라앉는 전진호는 그래서 자본의 논리 속에 인간실종으로 내몰린 세월호라는 결과를 상징화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 안개, 해무의 정국. 그 혼돈의 시간 속에서 그 혼돈에 가려진 채로 폭력들이 자행된다. 하지만 제 아무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그것을 마음속에서 마저 지울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몇 달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도 그걸 지울 수는 없는 것처럼. 그 원죄의식과 부채감은 그래서 고스란히 남은 자들에게 파국으로 다가온다.

 

<명량><해적> 그리고 <해무>라는 영화 세 편이 모두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건, 영화가 그걸 기획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이 참사가 벌어지기 전부터 우리네 참혹한 현실이 그 참사를 예고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미 그 전부터 <명량>의 바다는 버림받은 민심으로 들끓었고, <해적>의 바다는 무고한 백성들의 고래를 살육해왔으며, <해무>의 안개 가득한 바다 속으로 벼랑 끝에 몰린 가장들을 내몰아왔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는 그 무수한 과정들의 결과인 셈이다. 올 여름 극장가에는 웃음 속에서마저 그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채감과 잘못된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같은 현실 속에서 느껴지는 그 아픔에 대한 공감대가 뒤섞여 있다.

 

리더십 부재의 현실, <명량>회오리를 만들다

 

개봉 11일 만에 900만 관객이 <명량>을 봤다. 거의 매일 백만 명 가까운 관객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신드롬이다. 영화만의 힘으로 이런 폭발력이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명량>의 흥행 회오리를 만들어낸 걸까.

 

사진출처:영화<명량>

사극은 역시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한 콘텐츠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야 이역만리 서구인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니 왜 지금 현재 이순신 장군이고 그가 치른 명량해전인지가 중요하다. 왜 하필 지금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에 닿은 걸까.

 

가장 큰 것은 민초들을 어루만지는 리더십의 부재다. <명량>의 첫 장면은 기묘하게도 이순신 장군이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듯이 선조는 잘 싸운 이순신 장군을 열심히 싸우지 않았다며 역적죄로 몰아 백의종군하게 만드는 왕이다. 이 첫 장면은 이 영화가 결코 왕을 위해 헌신한 장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니 애국이라 말할 수는 있어도, 여기서 말하는 국가란 이순신 장군에게는 왕이 아니라 백성이다. 이것은 영화의 대사를 통해서도 명백하게 밝혀진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즉 백성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나라이며 마지막이 임금이라는 것.

 

왕의 리더십 부재와 그럼에도 자신을 희생해 백성을 구하는 <명량>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만을 두고 봐도 딱 이 이야기랑 다른 게 없다. 우리가 거기서 발견한 것은 정부의 리더십 부재와 그럼에도 온 몸을 던져 한 명이라도 더 학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버린 숭고한 국민들이 아닌가.

 

영화의 제목이 영웅 이순신이 아니고 <명량>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4백여 년 전 발 아래 내려다보던 그 회오리 바다 명량이 지금 우리네 현실을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바다 저 앞에는 왜적들이 수백 척의 배로 침공해 들어오고 있는데 왕은 나가서 싸우려는 이순신 장군을 독려하기는커녕 왕명을 어긴다며 질책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죽음이 뻔히 앞에 보이는데 누가 나설 것인가. 그러니 홀로 명량의 바다 한 가운데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한 장수의 숭고함에 벼랑 끝에 서서 피난 가던 백성들마저 저마다 함께 싸우는 방법을 찾아나간다. 누군가는 저고리를 풀어 위험을 알리고, 누군가는 적진에서 첩보활동을 하다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명량은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서 저마다 안간힘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들을 위한 헌사의 공간이다.

 

<명량>은 왜 하필 지금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이어야 하는가를 지금의 대중들에게 제대로 설득시켰다. 최민식이 되살려낸 이순신 장군은 죽음의 명량 바다를 향해 나가는 그 비장한 얼굴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대중들을 울린다. 또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이름 모를 백성들이 보여주는 그 피눈물 나는 응원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명량>은 그 시대의 백성들이 가졌을 그 절망과 희망을 4백 년 넘어 살아가는 대중들의 가슴에 회오리치게 만들었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는 이들의 가슴 한 켠이 저마다 명량의 회오리 하나씩을 갖게 만든 것. 그것이 <명량> 신드롬의 실체가 아닐는지.

 

 

그래도 우리가 <빅맨>을 꿈꾸는 까닭

 

업무 도중 사망한 비정규직을 위해 자신의 연봉을 가불해 그 가족을 먼저 도와주고,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회사 차량에 새겨 고인을 기억하며, 가족을 찾아가 그 자식에게 이제 내가 너의 아버지다라고 말하는 사장. 회사의 쇼핑센터를 짓기 위한 시장 부지 매입에서도 먼저 시장 상인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장. 무엇보다 돈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가족처럼 챙기는 사장...

 

'빅맨(사진출처:KBS)'

KBS 월화드라마 <빅맨>은 서민들의 판타지다. 이런 사장이 현실에 있을까 싶지만 그래서 서민들은 그런 사장을 더더욱 꿈꾸는 지도 모른다. 부유한 재벌가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나고 해외에서 학위를 받아 머리도 좋고 배운 것도 많은 현성그룹 사람들과, 태어날 때부터 버려져 고아로 자라오며 시장통에서 시장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잔뼈가 굵은 김지혁(강지환)은 그래서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현성그룹 사람들은 김지혁을 희생양으로 이용하려 들지만, 김지혁은 현성그룹 사람들을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졸지에 현성유통 사장이 된 김지혁이, 가짜 가족 행세를 하며 그를 곤란에 빠뜨리려는 현성그룹 사람들의 음모를 뛰어넘는 건 그의 사람이 우선인 사고방식 덕분이다. 돌아온 강동석(최다니엘)이 김지혁에게 건넨 것이 돈이라면, 김지혁은 그런 강동석에게 가족으로서의 손을 내민다.

 

왕자가 된 거지의 이야기는 그 안에 가난한 자들이 공유하는 소중한 가치의 의미를 부여한다. 김지혁이 졸지에 사장이 되어 보이는 일련의 행보들은 그 자체로 지금껏 가진 자들의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의 처우 따위나 시장 같은 골목 상권 따위는 아랑곳 않는 재벌가의 행태. 패션쇼를 모델들이 아닌 실제 옷을 입는 시장통 사람들을 통해 실제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깊은 판타지를 드러낸다.

 

이 서민들을 위한 서민들의 리더 김지혁이 환기시키는 건 다름 아닌 진정한 리더를 찾기 힘든 우리네 현실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시장 같은 골목 상권을 상인들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쇼핑센터를 지으려는 모습은 마치 파괴되는 생태계는 고려치 않고 무작정 진행된 지난 정권의 4대강을 떠올리게 한다. 취업의 문제와 비정규직의 죽음에 대해 국민을 가족처럼 생각한 권력을 가진 리더가 있었던가. 세월호 침몰과 그로 인해 무너져 버린 신뢰는 먼저 제 한 몸 살자고 도망친 선장처럼 리더 없는 우리네 현실을 고스란히 상징한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리더십이 지워버린 것이 사람이 먼저라는 고귀한 가치다. <빅맨>의 김지혁이라는, 세상에 없는 리더의 판타지는 그래서 우리를 가슴 뛰게 하면서도 슬프게 만든다. 저런 리더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과 저런 리더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때가 되면 빅맨을 꿈꾼다.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서민들의 편에서 서민들을 위한 리더십을 보여줄 빅맨. 이 배운 것 없고 변변한 학벌도 집안도 없는 김지혁이라는 리더를 굳이 빅맨이라 지칭하는 건, 진정한 빅맨이란 그럴 듯한 간판이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세워 거짓말로 혹세무민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껴안을 수 있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빅맨을 꿈꾼다.

얼음들이 떠올리는 세월호 참사의 안타까운 아이들

 

아이들은 착하게도 끝까지 어른들의 통제에 따랐다. 하지만 그 어른들은 심장 따위는 없는 얼음들같았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을 희생시켰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 때문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지켜내지 못한 아이들의 모습을 아프게도 떠올리게 만든다.

 

'악동뮤지션(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표적> 같은 영화를 봐도 먼저 비리로 얼룩진 무능한 공권력이 떠오르고, <엔젤아이즈> 같은 드라마를 보며 남녀 주인공의 멜로에 빠져들다가도 119소방대원들이 마주하는 긴급 재난과 응급 상황들에 덜컥 마음 한 구석이 내려앉는다.

 

<쓰리데이즈> 같은 스릴러 장르 드라마에서도 먼저 보이는 건 책임지는대통령의 리더십이다. <심장이 뛴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준 모세의 기적에서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유독 안타까웠던 골든타임이 떠오른다. 지금 이 땅의 어른들의 마음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 일상을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이 세월호와 거기서 희생된 아이들에 멈춰 있다.

 

이런 와중에 맞는 어린이날이니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유독 간절할 수밖에 없다. 무심코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악동뮤지션의 얼음들이라는 노래가 마음 한 구석을 후벼 파는 건 그래서일 게다. 물론 세월호 참사 이전에 발표된 이 곡을 세월호 참사와 관계 지어 이야기한다는 건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가 우연히 벌어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토록 많은 사건 사고들 속에서도 여전히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았던 어른들의 예고된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동뮤지션이 어른들을 얼음들에 빗대 왜 그렇게 차가울까라고 질문하는 그 속에는 이미 변하지 않던 어른들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셈이다.

 

아이들조차 따뜻한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차가운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도 저 혼자 살아남겠다고 탈출한 선장과 일등항해사 같은 얼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저 학교에서도 오로지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식의 입시지옥 속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지 않았던가. 아이들은 얼음들이 만들어낸 경쟁체제의 시스템 속에서 늘 관리대상이었지 따뜻한 생명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얼음들이 녹아지면 조금 더 따뜻한 노래가 나올 텐데. 얼음들은 왜 그렇게 차가울까. 차가울까요.’ 악동뮤지션이 아이의 순수한 목소리로 얼음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심지어 준엄하게까지 다가온다. 배가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천진함을 잃지 않았던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선생님을 걱정하던 그 목소리는 더 쟁쟁하게 귓전에 울린다. 아이들은 그 때조차도 끝까지 어른들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을 위한 온전한 세상이어야 할 날. 그러나 얼음들의 중대한 과오를 눈앞에서 목도한 지금은 우연히 듣는 노래 한 자락마저 어른들을 비통하게 만든다. 어른들이 서둘러 도망치는 순간 한 아이는 두려워하는 친구를 위해 구명조끼를 벗어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전해준 그 인간적인 따뜻함이 제발 얼음들을 녹여주기를. 유독 슬픈 어린이날이다.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우리동네 예체능>

 

덕장이라는 표현이 아마도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현재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팀을 이끌고 있는 최인선 감독은 유독 을 강조했다. 한두 명 잘 하는 친구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팀 전체가 다 같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경기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물론 이기려는 경기를 해야 하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다보면 더 큰 걸 놓치게 되요. 한두 번 당장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즉 모두가 자기 역할을 하게 되고 만족스런 경기를 해냈을 때 승리는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우리동네 예체능(사진출처:KBS)'

실제로 이번 <우리동네 예체능>의 농구팀은 실력 편차가 크다. 줄리엔 강이나 서지석, 김혁이 에이스 중에 에이스라면, 부상으로 주춤한 최강창민이나 아예 농구공을 잡아 본 경험이 별로 없던 강호동은 말 그대로 구멍이다. 아마추어의 강호인 창원팀을 만나 1쿼터에 무려 170이라는 스코어를 내줬을 때 최인선 감독은 골고루 선수들을 뛰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남겼다. “가비지타임이라 그러죠. 이미 패했어요. 그걸 그냥 버리면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되는 거죠....기량이 약하다고 해서 그걸 무시하면 농구 경기가 짝짝이가 되요.”

 

기량이 약한 선수를 무시하면 팀은 균형을 잃는다는 것. 이것은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팀스포츠 농구에 대한 철학이다. 그가 말하듯 농구는 기록만 갖고 선수를 평가했을 때 큰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기록 바깥에서 열심히 뛰어주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기록을 내는 선수들도 있다는 것이다. 최인선 감독의 이 말은 농구라는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 울림을 준다. 우리 사회를 하나의 팀으로 생각해보라. 세계 몇 위의 경제를 수치적으로 자랑하며 몇몇 대기업들의 위상을 말하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노동자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우리사회는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

 

최인선 감독의 농구 철학이 단지 농구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또 다른 대목은 그가 강조하는 로컬에 대한 애정이다. 즉 그는 과거 농구대잔치가 농구 붐을 만들었던 이유가 우리 식의 농구와 우리 식의 팬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식축구가 미국에서만 하지 다른 나라에서는 안하잖아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인기가 있다는 겁니다. 즉 농구도 꼭 해외랑 겨루려고 할 게 아니라 우리 식으로 재밌게 하면 되는 거죠.” 해외 용병들이 들어오면서 몇몇 용병들의 기량에 따라 성패가 좌지우지되면서 다른 선수들이 전부 가려졌다고도 했다. “그런 용병들은 사실은 팀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죠.”

 

최인선 감독이 말하는 로컬은 90년대 우리네 사회가 온통 글로벌로 들썩거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화가 화두였던 그 시절, 결국 우리가 놓쳤던 것은 로컬이 가진 가능성들이 아니었던가. 결국 세계화의 끝자락에 IMF라는 철퇴를 맞았던 것처럼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최인선 감독은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 식의 농구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변했다. 실로 우리가 굳이 NBA를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슬램덩크가 아니라 어쩌면 슛도사슛쟁이가 아닐까.

 

최인선 감독의 이 로컬은 그래서 <우리동네 예체능>이라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생각이다. 생활체육이 살아야 스포츠가 살아난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동네 예체능>이 보여주는 건강한 로컬 스포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로 스포츠라고 하면 늘 거대한 국가 스포츠로만 생각하던 우리에게 이 프로그램은 우리동네라는 일상 속의 스포츠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국가 스포츠가 오로지 승패와 메달 수와 순위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동네의 스포츠는 함께 하는 팀워크나 그를 통한 배려 같은 스포츠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진정한 스포츠 정신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최인선 감독의 리더십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안녕들 하십니까운동이 보여주고 있는 안녕하지 못한 사회는 어쩌면 팀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팀 운용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오로지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으로 국가경제 몇 위의 순위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로컬을 챙기지 못하는 잘못된 국가 운용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건 어쩌면 최인선 감독 같은 덕장의 리더십인지도 모르겠다.

유재석과 김병만, 우리 시대의 리더십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대선주자들의 공약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언제 공약이 없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됐나. 아마도 대선을 대하는 대중들의 마음은 천만 번의 공약보다는 단 한 번의 실천에 더 진정성을 느낄 게다.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를 가장 잘 말해주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유재석과 김병만이다. 이 두 대중들의 영웅은 이 시대가 원하는 리더십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예능 프로그램이 리더십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성을 갖게 된 것은 프로그램들이 집단 MC체제로 운영되고, 그 안에 매번 도전적인 미션을 부여하게 되면서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시대를 연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이 대표적이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대중들이 몰입할 수 있는 서민을 대변하는 캐릭터들을 팀으로 모았다. 그러니 그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에 때론 대중정서가 작동하는 방식은 정치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유재석은 우리에게 겸손과 성실과 배려의 아이콘이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어떤 이들에게도 소홀함이 없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속에서 단 몇 초로 지나가 버리는 유재석의 ‘착한 손’은 어김없이 대중들의 눈에 발견되어 칭찬받는다. 그것은 억지로 흉내 내거나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그저 습관처럼 배어있는 품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방송이 스쳐 보낸 것도 대중들은 굳이 찾아내게 만드는 것이다.

 

<무한도전> 300회 특집에서 유재석이 후배들에게 자신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하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그의 겸손과 성실과 배려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재석의 리더십이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그의 리더십이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공존의 의미를 드러낼 때다.

 

과거 스키 점프대를 오르는 <무한도전>의 미션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을 밑에서부터 받쳐주며 “포기하겠다는 말만 하지 마라”고 했던 장면은 그의 함께 하는 리더십이 가장 잘 드러났던 사례다. 또 <런닝맨>에서 <슈퍼7> 콘서트 논란으로 하차선언을 하기도 했던 개리에게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마”라고 소리쳤던 장면에서도 그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이런 유재석의 면모를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이가 바로 김병만이다. 유재석이 <무한도전>과 <런닝맨>의 팀을 꾸려가고 있다면, 김병만은 병만족의 족장이다. 정글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는 리더십을 발휘해 모두를 생존하게 해야 한다. 이 <정글의 법칙>의 환경은 고스란히 작금의 대중들이 매일 겪고 있는 혹독한(심지어 진짜 정글에 로망을 느낄 정도로) 도시 정글의 삶을 대변한다. 김병만이 이 시대 대중들이 원하는 리더십과 만나는 지점이다.

 

그가 정글에서 부족(?)을 이끄는 방식은 묵묵히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솔선수범해 나서고, 환경에 생존 적합한 주거공간을 뚝딱 뚝딱 만들어내고 그 안에 부족들이 살을 부비고 살아갈 따뜻한 온기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그 힘든 환경에서조차 그 힘겨움을 소재로 부족원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노력한다. 정글을 빠져나오며 정작 자신도 힘들어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이 부족들을 힘겹게 할 거라는 걸 알기에 그는 늘 담담한 얼굴에 광대 같은 웃음을 짓는다.

 

<정글의 법칙>을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김병만의 멘트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제작진들이 “이제 일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정글에 들어가면 묵묵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구석에서 일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의 과묵할 정도로 일에 빠져 있는 모습은 편집 과정에서 자막이 김병만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장면으로 자주 쓰이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만족들은 김병만에게 의지하고 그의 말을 따른다. 그의 경험을 믿는 것이고, 그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준 것에 대해 부족들이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유재석과 김병만이 이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저 말이 아니라 실천력 있는 행동이며, 땀이 주는 신뢰다. 말로는 함께 가겠다 하고는 혼자만 배를 채우는 그런 사리사욕이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떠난 후의 시간을 배려할 정도로 함께 가는 리더십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개미 같이 작아 보이는 서민들을 진짜 개미 취급하는 게 아니라, 항상 낮은 자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낮추는 겸손과 배려의 리더십이다. 지금 대선주자들은 과연 이러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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