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10/21 마시멜로, 괴물, 주몽 논란이 남긴 것
  2. 2006/10/14 작가의 소외, 얼굴마담들만 판친다

숫자숭배에 지배당한 위험한 우리 사회

정지영 아나운서의 퇴진까지 가져온 밀리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는 숫자 놀음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것은 출판계에서는 ‘판매부수’로 불리며, 영화에서는 ‘관객수’로, 그리고 TV 드라마에서는 ‘시청률’로 불린다. 그것들은 이름만 다를 뿐 그 역할은 비슷하다. 작품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숫자들이 맡은 역할이다.

숫자들의 권력은 점점 커져서 언제부턴가 우리네 문화계는 콘텐츠 자체의 질에 승부하기보다는 이 숫자를 얻기 위한 무한경쟁에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스테디셀러보다는 베스트셀러를, 두고두고 꺼내보는 명작으로 남기보다는 최단기간에 최대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를, 그리고 시청자들과 호흡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시멜로 이야기’가 보여준 숫자놀음의 진수
‘마시멜로 이야기’는 작금의 출판계가 해온 기획 출판의 정점을 보여준다. 책은 작가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문번역자가 아닌 아나운서 정지영씨의 얼굴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목적은 단 하나. 베스트셀러를 만들려는 것이다. 이러한 출판의 스타마케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부터 연예인들은 작가라는 또 다른 명함을 갖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연예인들은 자서전에서부터 여행서, 수필, 어학교재, 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냈다. 일찍부터 출판사들은 스타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실제 출판사 얘기를 들어보면 비디오를 갖춘 선물세트의 성격을 띤 서적류에 있어서는 상당한 돈이 오간다고 한다. 그만큼 스타마케팅을 활용한 책에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러한 스타마케팅을 활용한 책들을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중 ‘마시멜로 이야기’가 모난 돌이 된 이유가 그 책이 추구했던 베스트셀러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이러한 책들이 과연 출판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이냐는 점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경우 원 번역자는 이 책이 “1만 부나 나갈까 싶었지 이렇게 많이 팔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내용은 좋지만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책 자체의 내용보다 정지영씨의 이미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걸 말해준다. 즉 이러한 책들은 스타들의 이미지를 포장한 ‘상품’의 성공이지 콘텐츠 자체로 승부한 ‘서적’의 성공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리작가들과 얼굴마담 스타들만 늘어나는 출판계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독서군을 빼앗는 사태를 예고한다. 이 사건은 정지영씨의 윤리적인 문제보다 더 앞서, 이러한 베스트셀러라는 숫자놀음에 빠져있는 출판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영화의 관객수와 드라마의 시청률
그런데 이러한 숫자 경도 현상은 출판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에서 관객수로, 드라마에서는 시청률로 대변된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최고의 수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영화 ‘괴물’과 드라마 ‘주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괴물’은 개봉 그 자체부터 괴물다웠다. 칸느 영화제에서의 호평(수상이 아니다)을 통해 솔솔 불어온 괴물에 대한 기대감은 마치 괴물의 탄생처럼 저 한강 밑바닥에서부터 차츰차츰 커져갔다. 그리고 대낮에 버젓이 등장한 괴물에 대해 일제히 언론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비평가치고 괴물 평 안 해본 사람 없을 정도로(이 영화는 실제로 비평가들의 비평 욕구를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홍보가 된 이 영화는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엄청난 속도로 관객몰이를 시작했다. 여기에 언론들은 ‘몇 일 만에 몇 만 돌파!’라는 식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들로 범람하는 인터넷이라는 강물 속에서 뛰쳐나온 ‘괴물’은 일순간 ‘정보의 획일화’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 어딜 가든 우리는 괴물에 대한 기사들을 보게 되었다. 그 숫자의 압력은 지대한 것이어서 우리를 극장 앞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괴물이 사라진 지금까지 그 혼령은 여전히 인터넷을 떠돈다. 새로운 영화가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 괴물의 흥행 넘을까’류의 글들이다. 이러한 기사들은 괴물의 숫자를 다시 떠올리는 힘을 발휘하는 동시에, 새로 등장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해보자. 이 기사는 정보일까. 홍보일까. 정보라기보다는 홍보에 가깝다. 물론 ‘타짜’와 같이 19세 이상가 영화로서 500만 관객을 넘은 경우, 그것이 기사로 나왔다면 정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홍보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대박 영화들에 조명이 집중되는 시각, 소외되고 있는 타 영화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관객수는 TV로 오면 시청률로 변신한다. 드라마 ‘주몽’에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40%대를 넘는 시청률을 유지하는 것은 드라마적인 재미 이외에도 시청률의 그 숫자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 시청률은 권력이 되었다. ‘주몽’에 대한 비판이 어려운 것은 그 40%라는 막연한 시청률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이것은 ‘주몽’이외에도 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들 모두가 갖고 있는 무언의 압력이다. 시청률이 권력이 된 상황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무조건 시청률에만 올인하여 결국 시청률은 높으나 완성도는 떨어지는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드라마의 존재기반은 드라마 자체가 아닌 시청률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는 ‘높은 시청률 = 완성도 높은 드라마’라는 등식은 깨지게 된다.

예술작품은 재미없다는 말은 옛말(?)
과거에 흔히 우리는 ‘예술작품은 재미없다’는 식의 자조적인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 얘기 속에는 예술성과 상업성은 별개라는 의식이 있었다. 또한 이 얘기는 상업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예술적으로도 실패는 아니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문화계에서 이러한 얘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 ‘괴물’에 대한 관심은 ‘재미있다’는 점에 ‘작품성이 있다’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자극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칸느 영화제라는 작품성의 공간에서 벌어진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드라마 ‘주몽’에 대한 관심의 증폭 역시 ‘최초의 고구려사에 대한 접근’이라는 가치와 ‘퓨전사극’이라는 재미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물론 ‘마시멜로 이야기’ 역시 여타 연예인과는 다른 정지영 아나운서라는, 무언가 지적인 면모와 미모를 함께 갖춘 인물로 인해 가능했다(요즘 아나운서들의 전성시대는 바로 이 직업이 갖는 양면성에 비롯한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이제 예술작품(완성도 높은 작품)도 재미가 있다는 얘기인가.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거꾸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이제는 작품성이라는 부동의 지위까지 얻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좀더 대중과 가까워진 예술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도 읽을 수 있으나, 그럼에도 이제는 잘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불리는 권력까지 부여한 혐의를 지울 수는 없다. 이로써 진정한 예술작품들은 예술로서도, 상업적으로도 소외 받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는 현재가 다양한 콘텐츠의 시대라는데 이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런 다양한 콘텐츠들을 실제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은 마치 다양성이 보장된 사회로 가는 징후로 얘기됐으나, 실제 우리의 삶은 그 중 ‘선별된’ 몇 개의 정보를 누리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많은 콘텐츠와 정보들은 어떤 식으로든 선별되지 않으면 모두 쓰레기가 된다. 그런데 그 선별과정은 과연 투명한가. 아니 공정한가. 이 정보들을 선별하는 순위 혹은 수치라는 근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부분에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수치는 콘텐츠의 질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단순한 수치가 아닌,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는 그 속에서 독자들과, 관객들과, 시청자들의 제대로 된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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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사건으로 본 출판계의 문제

아나운서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번역을 둘러싼 일련의 발표들을 보다 보면 마치 ‘범죄의 재구성’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거기에는 밀리언셀러라는 돈 냄새가 물씬 풍기고, 속고 속이는 관계들이 난무한다. 출판사는 이중번역을 했다고 하고, 원 작가는 대리번역이라고 한다. 출판사는 정지영씨가 그 사실을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정지영씨는 정말 몰랐으나 그래도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런 대로 그림조각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만일 출판사가 정지영씨 모르게 이중번역을 하고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면 그건 정지영씨가 출판사에 의해 이용당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정작 정지영씨는 이 사태에 대해 출판사를 상대로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보자. 그것의 진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를.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말해주는 현 출판계의 대필 관행이 아닐까.

출판계측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미지근한 반응뿐이다. 이 말은 벌써부터 저 보이지 않는 곳에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이 있으면서도 그대로 방치었으며 그게 터졌다고 뭐 대수냐는 말이기도 하다. 상업적으로 과잉경쟁에 들어간 출판 환경에서, 책과 연예인 혹은 유명인의 공생관계 속에 작가(대필자 혹은 대리번역자)의 피해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약자였기에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지영이라는 연예인과 밀리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상업적 출판의 최정점에서 그 문제가 터졌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골 깊은 출판계의 불황, 어디서 온 것일까
출판사 측은 이 문제에 대해 “골 깊은 출판계의 불황 속에, 나름대로 살길을 모색해보고자 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출판계의 불황을 가져온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마시멜로 이야기’의 원 번역자가 한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이 책이 “1만 부나 나갈까 싶었지 이렇게 많이 팔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내용은 좋지만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가 책의 미래를 점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이 말은 밀리언셀러가 되는 데 있어서 책 이외에 정지영씨의 이미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책은 이제 컨텐츠의 질로 팔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로서 팔리는 이른바 ‘문화상품’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지만 혹시 여기에 출판계의 불황의 단초가 있는 것은 아닐까.

문화, 상품이라는 양날의 칼
작금의 출판계를 보면 과거 ‘문화’에 찍혀 있던 방점이 거의 ‘상품’쪽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서점에 가면 거의 비슷한 컨텐츠들을 가진, 포장만 다른 상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듯한 제목과 뭔가 있어 보이는 포장을 가진 상품들은 각종 매체들을 통해 광고되고 홍보된다. 세일은 물론이고, 붙여 팔기, 심지어는 끼워 팔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팔려나간다. 이제 서점의 풍경은 대형할인매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책들은 총천연색에, 양장까지 하며 호화롭게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굳이 소설에까지 불어닥친 양장본 열풍은 우리네 출판계가 현재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정확히 시사한다.

좋은 컨텐츠에 좋은 옷을 입히는 것을 굳이 욕할 수 있으랴.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소중한 한 가지를 잃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컨텐츠의 질보다는 광고나 홍보 또는 상품 자체의 포장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로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혹자들은 독자들의 성향이 변하면서 책 또한 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너도나도 상품을 내보내 성공을 맛본 출판계가 독자들의 입맛을 바꾸었을 혐의가 더 짙다(게다가 상품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고스란히 독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마치 저 패스트푸드가 우리네 먹거리를 침투하듯이.

작가의 소외
컨텐츠보다 상품의 이미지가 책 구매의 조건이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의 소외 현상이 일어난다. 좋은 컨텐츠의 발굴보다는 어떤 포장을 할 것인가가 출판계 초미의 관심이 된다. “요즘은 뭐가 뜬다더라”하면 관련 서적들이 봇물을 이루는 것은 기획이 작가의 힘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걸 말해준다.

작가는 이제 기획에 종속되면서 기획의 입맛에 따라 컨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물론 확실한 상품성이 있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다르다 하겠지만 이들 역시 큰 관점에서 보면 마찬가지의 처지에 놓여 있다. 작가가 대필작가(대리번역가를 포함하여)가 되는 것은 그래서 눈물겹고 처절하다. 작가가 내놓는 작품이 하나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들은 처절한 밥벌이를 위해 현대판 대리모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기가 내놓는 자식이 큰 성공을 이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대리모의 입장에서는 모두 눈물나는 일이 된다.

따라서 대리모들이 대신 잉태하는 작품의 질이 좋을 까닭이 없다. 대충대충, 적당히, 돈 값만 치르는 것이다. 기획자들이 그걸 관리감독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치밀한들 진짜 낳고 싶어 낳은 자기 자식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기획자들은 그걸 어느 정도 용인한다. 이제 작가의 시대가 아닌 포장의 시대라고 생각하므로. 출판계에는 온통 얼굴마담 저자들과 대리모들로 넘쳐난다. 책과 얼굴마담격의 저자들은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다.

작가에 기생하는 출판사와 유명인들
노력의 대가가 작가에게 가지 않는 상황에서 좋은 컨텐츠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 같은 상황이 불러온 것은 인문학과 같은 진짜 컨텐츠를 담은 저작의 실종이다. 조금은 비뚤어지고 못생겼어도 개성이 넘치며 저마다 깊은 속내를 가진 인문학 컨텐츠들은 사라지고, 온통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화장,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은 실용서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비디오를 포함한 요가 실용서들은 그 엄청난 로열티에도 불구하고 몸 좋다는 연예인들을 마구 끌어들여 시장에 내놓았다. 물론 마케팅으로 무장한 이들 책들은 잘 팔려나갔다. 그런데 실용서가 무엇인가. 실용서란 ‘써먹는 책’이다. 그러니 그것은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보면서 따라하는 기능성이 강조된 책이다. 책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출판계 불황을 만든 요인 중에는 분명 출판계 자체에서 야기한 부분이 상당부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읽는다’는 책의 본질을 ‘선물한다’거나 ‘써먹는다’는 기능적인 것으로 만든 것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책의 ‘읽는다’는 고유가치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책과 유명인들(실질적 저자가 아닌)의 공생은, 사실상 그들이 작가라는 모태에 기생하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글쟁이들이 작가가 되는 그 날이 오길
작가들은 흔히 자신을 ‘글쟁이’라고 폄하해 표현하곤 한다. 이 말에는 글이라는 창조행위를 하는 작가의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그래도 지긋지긋한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리모 역할까지 해야하는 자기모멸감이 들어있다.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모든 이들이 현재 처해 있는 소외 현상은 이다지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사건이 말해주는 것은, 상업화가 극에 달해있는 우리 출판계 전반의 끔찍한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다. 작가가 대접받지 못하는 한, 출판계의 앞날은 절대로 밝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은 다시 출판계의 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출판계의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자체적인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정부의 손길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신이 낳아놓은 아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이 땅의 대리모들이 작가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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