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역량은 어떻게 최대치로 발휘되는가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기억>은 아마도 박찬홍 감독-김지우 작가 콤비의 인생작이 아니었을까. 이토록 시작부터 끝까지 얼개가 갖춰지고 완성도도 높은데다 대중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콤비가 만들어낸 <부활>, <마왕>, <상어> 3부작의 총아가 모두 결집되어 있는 듯한 작품이 <기억>이다. <기억>은 복수극의 틀에서조차 벗어나 사회에 현실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사회극이면서도 동시에 한 가장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는 휴먼드라마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인생작을 작가들이라고 늘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억(사진출처:tvN)'

사실 <시그널>이라는 작품이 tvN에서 방영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을 때도 이것이 김은희 작가의 인생작이 아닐까 여겨진 면이 있었다. 장르물의 대가라는 건 이미 지상파에서 그녀가 해온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감지된 바 있다. 하지만 지상파에서 했던 그녀의 작품들이 좋은 기획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구성에 빈틈이 많이 보이거나 일관된 메시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하나의 완성도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에 반해 <시그널>은 마치 억눌렸던 예술혼이 터져버린 듯 거침이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완성도와 통일성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장르물이 갖는 재미를 소화하면서도 그 안에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이러니 <시그널>을 보며 시청자들이 인생의 작품이라고 얘기했던 것일 게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김은희 작가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물론 인생작이라고 해서 그걸로 작품의 성장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거기서부터 어떤 터닝포인트를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시그널>에 이어 <기억>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갖게 되는 건 그래서 tvN이라는 채널의 무언가가 이들 작가들로 하여금 인생작을 뽑아내게 하는 힘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도대체 이토록 역량 있는 작가들에게 tvN은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율성이다. 자신이 애초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끝까지 다 밀어 붙일 수 있게 하는 자유. 물론 그렇다고 기획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기획의 방향성이 갖춰지면 역량을 최대치로 뽑아낼 수 있게 하는 자율성은 작가들이 흔들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는 작품을 그려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은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지상파의 드라마들이 상당히 기획에 휘둘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 들어서 중국의 영향으로 많은 드라마들이 사전 제작되고 있지만, 우리네 드라마들은 지금껏 실시간 제작이 그 현실이었다. 그러니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대본이 수정되거나 심지어 새로운 작가가 투입되고 나아가 작가가 교체되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하게 생겨났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경우 메인작가인 이향희 작가를 제외하고 무려 5명의 작가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과거 개연성 없는 전개로 호화캐스팅에도 초라한 성적을 냈던 SBS <너를 사랑한 시간>은 작가가 교체된 후 기획PD가 작가로 참여하는 파행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작품에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넘어 시청률을 만들기 위한 간섭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면 작품은 사라지고 상품만 남겨지게 될 것이다. 작가가 애초에 생각했던 작품이 이리저리 휘둘리다 엉뚱하게 끝나버리는 결과가 생기는 것. 이것은 작가에게도 또 시청자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최근 tvN에서 방영된 일련의 드라마들, 이를테면 <시그널>이나 <기억> 같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건 작가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영화 제작 인력이 투입되어 대본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연출의 공적이 있지만, 그래도 작품의 근간이 되는 작가 역량이 100% 발휘되는 드라마 제작 환경이 주효한 면이 있다.

 

시청자들도 달라졌다. 그저 시청률이 높다고 시청자들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또 상업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결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 시청자들은 좀 더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언제부턴가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이제는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지상파 드라마에서도 인생작을 내는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휴먼다큐 사랑>, 고인이 된 그가 가족을 위로하는 법

 

마왕 신해철. 그는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갑작스레 떠난 신해철을 위해 마련된 콘서트에서 선후배들의 입을 통해 불려지는 노래 속에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는 후배의 목소리를 빌어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하고 여전히 소리쳤고, 그의 아들 동원이는 화답하듯 난 아빠를 원해!”라고 외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그는 떠났지만 가족들의 곁에 그는 여전히 자그마한 밥 그릇 앞에 앉아 있었다. 또 집 한 구석에 놓여진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가족들은 밥을 먹을 때나 아니면 사진 앞을 지날 때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특별한 맛이라며 젤리를 아빠의 사진 앞에 놓고는 이제 마음껏 드시라는 딸 지우의 마음 속에, 또 그녀가 차를 타고 가면서 따라 부르는 재즈카페슬픈 표정하지 말아요같은 노래 속에 살아있었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가족을 향한 걱정이자 위로이자 격려였다. 가족에게 그 노래는 다정다감했던 아빠의 목소리이고 그가 여전히 전하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냄새로도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아내는 그의 베개 솜을 꺼내 아이들과 자신의 베개에 넣었다. 사라져가는 냄새를 통해서라도 그녀는 계속 그를 붙잡고 싶었다.

 

아내는 둘이 같이 웃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별히 어딜 갔던 일도, 특별히 함께 무언가를 했던 일도 아닌 함께 웃었던 일’.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 아내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 신해철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49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해철의 그날 아내는 그가 좋아했던 문어와 갈비찜을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문어를 아이들이 챙기며 하나씩 빼먹는다. 그 문어의 추억 속에서, 그걸 먹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다. 마지막을 떠나보내며 팬들이 부르는 민물장어의 꿈속에서도.

 

그의 가장 좋은 옷을 챙겨 태우며 아내는 가족들 몰래 눈물을 삼킨다. 그녀는 그의 평안함을 기원하다가 아이들 잘 챙길께요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떠나는 그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난 그 빈 자리가 얼마나 클 것이라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의 빈 자리는 가족들이 하나씩 채워가고 있었다. 아내는 가장이 되어 더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더 성장할 때까지 자신이 대신 버티겠다고 담배도 끊었다. 할아버지는 밤이면 그가 해왔던 문단속을 대신 한다. 그래도 동원이는 여전히 아이다. 누가가 잠시 자리를 비울라치면 견디지 못하는 그 아이를 이제 할머니가 맡는다. 그들은 서로가 조금씩 떠나간 그의 빈 자리를 채워간다. 위안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렇게 서로 똘똘 뭉쳐있는 일 뿐이기 때문이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기록한 고 신해철의 다큐멘터리에 정작 신해철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예쁜 아내의 착한 마음 속에, 아빠를 진정으로 원하는 동원이의 마음 속에, 아빠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한다는 지우의 마음 속에, 아프게 가슴에 묻어두고 그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마음 속에. 앞으로도.

 

<상어>, 복수극과 멜로 사이에서 길 잃었나

 

박찬홍 감독에 김지우 작가. 드라마를 좀 봤다 싶은 시청자들에게 이 이름은 각별할 것이다. <부활>과 <마왕>이라는 이들의 전작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시청률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모두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가 보였던 꽉 짜인 스토리 전개를 시청률이 따라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상어(사진출처:KBS)'

<상어>는 이들의 아우라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품이다. 시작 전부터 김남길과 손예진의 합류로 기대감을 한껏 모았던 것도 전작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영향도 존재한다. 그것은 전작들이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는 점. 따라서 마니아 드라마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안 나와도 호평은 받는.

 

하지만 <상어>가 과연 마니아 드라마일까. 아마도 1,2년 전만 해도 그런 호칭을 받았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추적자> 같은 작품이 복수극과 사회극의 접점으로써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싸인> 같은 작품 역시 형사물이나 스릴러는 드라마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뒤집은 바 있다. 그렇다면 <상어>는 이들 작품과 비교해 과연 웰 메이드라 말할 수 있을까.

 

<상어>의 이야기 구조는 <추적자>와 유사하다. 불편한 진실에 대한 접근방식이 그렇고,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틀을 갖고 있는 것이 그렇다. <상어>가 결국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오현식(정원중)이 진실을 위해 과거를 파헤치려는 검사 며느리 해우(손예진)에게 “묻어둬. 과거란 들출 때만 존재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메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즉 이 드라마는 우리의 근대사로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뿌리 깊은 과거사 청산의 문제를 한 가족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가야호텔그룹 회장인 조상득(이정길)은 그 과거사를 덮으려 하는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이수(김남길)와 가족은 죽음으로 내몰린다. 조상득의 손녀 딸인 해우는 조상득의 과거사와 연관된 오현식의 아들 준영(하석진)과 결혼함으로써 복잡한 가족 내의 숨겨진 갈등이 생겨난다. 기성세대들은 과거사를 덮으려하고 이수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그의 친구(이자 여전히 연인)들은 그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려한다.

 

그리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전작과는 달리 주제의식을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드라마의 대중적인 코드들에 더 충실해졌다. 이수가 돌아왔지만 본격적인 복수극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몰라보는 이수와 해우 사이의 안타까운 멜로나, 이수와 준영 사이의 우정 또는 이수와 관계된 과거 인물들(동생, 친구 등)과의 만남 등에서 머뭇대고 있는 건 그 헤어진 이들이 다시 만나는 시퀀스들이 전형적인 드라마들의 성공방정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어>의 연출력은 ‘웰 메이드’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또 이를 연기하는 김남길이나 손예진의 호연 또한 볼만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스토리는 어딘지 너무 지지부진하게 여겨진다. 이수의 말 한 마디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해우로 하여금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하고 그녀를 뒤흔드는 시퀀스들은 너무 반복되면서 지루해져버렸다. 이 드라마는 물론 과거의 불편한 문제를 다시 들춰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건 어딘지 정체된 느낌을 만들어낸다.

 

<상어>는 멜로와 복수극이 얽혀있는 드라마다. 복수극이 드라마의 속도감을 만들어낸다면 멜로는 감정을 덧붙인다. 이 두 가지가 잘 엮어진다면 그 힘은 의외로 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어>는 멜로의 늪에 빠져 복수극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실을 파헤쳐야할 검사 해우의 혼돈과 방황에 드라마가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수의 복수극은 물론 여타의 복수극과는 다르다. 그것은 해우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에 얽혀 있는 불편한 과거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우를 사랑하는 이수 역시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 진실을 그녀 앞에 내놓으면서도 “도망치라!”고 분열되는 것. 이것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비장미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감정에 드라마가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이 좋은 설정마저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

 

“상어는 부레가 없어. 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된대.” 이것은 이수가 처한, 진실을 밝혀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어지는 상황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해우는 상어 조각을 만들어 이수에게 주면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부레도 만들어 줬어. 언제나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게 하려고...”라고 말한다. 이것은 이수에 대한 해우의 사랑을 담고 있다. <상어>가 더 속도감이 있어지려면 안타까워도 해우가 달려 하는 부레를 떼어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다. 상어처럼.

연기자에게 필요한 것, 출연료 아닌 좋은 작품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입장이어서 일까. 드라마의 성패에 따라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건 작가나 연출자가 아니라 연기자다. 그러나 연기자가 아무리 훌륭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어도 작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연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연기력이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작품의 캐릭터가 워낙 좋으면 그 연기자는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2007년도 드라마들에서도 그런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연기자들을 살렸던 드라마, 또 연기자들을 울렸던 드라마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연기자의 연기력을 극대화시킨 드라마들
그간의 부진을 씻고 정상의 궤도로 연기자들을 올려놓은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커피프린스 1호점’. 이 작품에 출연한 윤은혜, 공유, 이선균, 채정안은 모두 과거의 아픈 기억 하나씩을 갖고 있는 연기자들이다. 윤은혜는 ‘궁’, ‘포도밭 그 사나이’를 통해서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지만 늘 따라다니는 건 연기력 논란이었다. 공유 역시 ‘어느 멋진 날’ 같은 작품에 등장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했고, 이선균은 ‘하얀거탑’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약한 배역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채정안은 ‘해신’ 등을 통해 연기를 선보였지만 오랜 공백 끝의 복귀였다. 그러니 이 작품 하나는 이 네 명의 연기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윤은혜에게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었다면 이준기에게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있었다. ‘왕의 남자’로 일약 천만 관객의 배우가 된 그 지점에서 연기 첫걸음을 내딛던 이준기가 가진 부담감은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이 작품은 이준기의 다양한 연기의 결을 보여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상황에 따라 수없이 변해가는 캐릭터의 성격을 이준기는 큰 무리 없이 무난하게 연기함으로서 스타에서 연기자로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고맙습니다’. 이 작품은 공효진의 진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장혁의 연기자 복귀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하얀거탑’의 김명민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연기자 본능을 과시했고, ‘외과의사 봉달희’가 발견한 이요원과 버럭범수 이범수 또한 2007년 드라마가 주목한 배우였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보여준 ‘마왕’의 주지훈, ‘인순이는 예쁘다’의 김현주 또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연기력과 상관없이 연기자를 울린 드라마들
반면 작품을 잘못 만나 연기자가 연기력을 보일 수 없었던 드라마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로비스트’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캐스팅만 보면 실로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연기자들이 포진된 작품이다. 먼저 주연을 맡은 송일국은 ‘주몽’으로 굳건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상대역의 장진영 역시 영화 ‘소름’으로 연기력의 가능성을 보이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30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인기여우상을 거머쥐면서 연기자로서 발돋움한 재원이다. 여기에 언제 등장해도 든든한 드라마의 기둥 역할을 해주는 허준호와 백발의 카리스마 연기까지 변신한 김미숙까지 동원됐지만 결과는 어이없게도 참패였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에어시티’를 들 수 있겠다. ‘에어시티’는 이정재와 최지우 같은 이른바 한류 스타들이 브라운관에 복귀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가 될 정도의 대작 드라마였지만 역시 어이없는 참패를 맞았다. 공항이라는 관심을 끄는 소재는 전혀 작품의 스토리와 연관을 갖지 못하고 심지어는 공항 홍보 드라마냐는 비아냥까지 받았으며, 한류스타들에게마저 연기력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게 하는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편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하희라 같은 경우는 작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으나 캐릭터가 살지 않아 주목을 못 받은 경우다. 반면 ‘아이 앰 샘’의 양동근은 좋은 연기에도 시청률 틈바구니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고 또한 작년 ‘마이걸’로 주목받았던 이다해는 ‘헬로 애기씨’라는 조금은 시대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작품을 만나 외면 받았다. 어떤 경우든 역시 아무리 발군의 연기자라 해도 결국엔 좋은 작품 속에서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7년 연기자들을 울리고 살린 드라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작품 없이 연기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자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실상 출연료가 아니라 좋은 작품인 셈이다. 내년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연기자들이 더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2007년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방송사별 특색

2007년 한 해의 드라마를 특징짓는 한 현상은 시청률은 낮은데 호평 받았던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일 것이다. ‘마왕’, ‘경성스캔들’, ‘한성별곡’, ‘얼렁뚱땅 흥신소’까지 가장 많은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곳은 KBS. 여기에 MBC의 ‘메리대구 공방전’ 정도가 그 범주에 들어간다 할 수 있다. 희한한 일이지만 SBS는 단 한 편도 마니아 드라마라 꼽을 만한 것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마니아 드라마를 등장하게 했고, 그 양태가 방송사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 같은 드라마에 웃고 울고
마니아 드라마의 한 특징은 그것이 만화를 닮았다는 점이다. 만일 만화로 친다면 ‘마왕’은 사이코 메트리가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가 될 것이며, ‘경성스캔들’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한성별곡’이 정조시대를 다룬 본격 역사만화가 된다면, ‘얼렁뚱땅 흥신소’는 도심 속의 보물찾기라는 코믹 모험 만화가 될 것이며, ‘메리대구 공방전’은 코믹한 청춘 멜로를 그린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들의 만화 같은 특징이 만화의 세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보통은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가져왔으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성스캔들’, ‘얼렁뚱땅 흥신소’, ‘메리대구 공방전’같은 드라마는 아예 영상 구성 자체를 만화적인 컷으로 하는 실험성까지 보였다. 톡톡 튀는 재미와 심각한 주제마저도 가볍게 끌어가는 연출은 이들 마니아 드라마가 호평을 이끌어낸 원천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은 기존 드라마 시청층(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으로부터 외면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보통의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층은 일단 만화적인 상상력이 엉뚱하다는 것 이상으로는 이해될 수 없었고, 스토리텔링의 촘촘함이 무기인 이들 작품들은 한 회 정도 걸렀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 찾아보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 시청층은 늘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낮선 드라마보다는 아무 때고 봐도 이해될 수 있는 조금은 느슨하고 편안한 드라마를 찾았다. 그러니 이들 드라마들의 본방 시청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니아 드라마가 될 뻔했던 드라마들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했다 해서 모두가 마니아 드라마가 됐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쩐의 전쟁’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 ‘히트’, ‘커피프린스 1호점’같은 드라마들이다. ‘쩐의 전쟁’은 아예 원작이 만화였으며, ‘개와 늑대의 시간’은 국내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느와르의 세계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히트’ 역시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로 인기를 끌었고, ‘커피프린스 1호점’은 순정만화 톤의 드라마연출로 각광을 받았다.

어째서 이들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완전히 낯선 만화적 세계를 그렸다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현실성이나 익숙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라는 낯선 세계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 사채라는 소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그만큼 높았으며, ‘히트’와 ‘개와 늑대의 시간’은 장르의 익숙함과 멜로적인 인간관계의 구성으로 그 벽을 넘어섰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꼼꼼한 연출력과 캐릭터의 힘, 게다가 트렌디에 바탕하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스토리 전개로 호평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즉 2007년도를 특징짓는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들의 탄생은 바로 그 낯선 세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만화적인 낯설음이기도 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에 대한 낯설음이기도 하다. 젊은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허용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젊은 세대가 앞으로 미래의 시청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들 마니아 드라마들은 과거의 답습보다는 미래의 드라마에 도전한 드라마로 볼 수 있다.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2007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
마니아 드라마가 생기는 이유로서, TV 본방 시청보다 인터넷이나 IPTV 등의 다운로드형 시청 패턴이 젊은 층을 통해 늘고 있다는 것은 또한 현재의 시청률 집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사의 고민은 현재의 시청률 집계 속에서 시청률을 잡기 위해 나이든 시청층에 맞는 익숙한 드라마를 내보내야할 것이지만, 또한 달라지고 있는 미래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도외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러한 고민이 깃든 방송사들에서 저마다 마니아 드라마의 양태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올 한 해 방송사별 드라마의 특색을 가장 잘 말해주기도 한다.

가장 많이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KBS는 완성도만을 고려한 정통적인 드라마 기획을 한 점은 높이 살만하나, 결과적으로 현실적인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 한 개의 마니아 드라마도 양산하지 않은 SBS의 경우는 그만큼 올 한 해의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들은 실제로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MBC는 어찌 보면 이를 가장 잘 조화시킨 경우가 될 것이다. 도전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완전히 낯선 세계가 아닌 익숙한 세계를 끼워넣는 노력을 보였다.

그 성과가 어떻든 방송사들의 마니아 드라마 양산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 받을 만한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마니아 드라마만의 양산은 자칫 방송사의 방만함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반면 마니아 드라마가 한편도 없다는 것은 방송사 자체의 도전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던 마니아 드라마들은 따라서 올 한 해의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을 말해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2007년 한 해, 마니아 드라마가 있어서 우리는 행복했다.

마니아 드라마는 없다

네모난 세상/명랑TV 2007.07.06 21:50 Posted by 더키앙

실시간 시청률이 마니아 드라마 만든다

‘마왕’, ‘케세라세라’, ‘경성스캔들’, ‘메리 대구 공방전’,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시청률은 낮지만 소위 말하는 대박 드라마만큼의 호평을 받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만일 시청률이 의미하는 것이 그만큼 호평을 받는다는 것이라면 이 ‘시청률 낮은 호평 받는 드라마’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래서 이상한 타이틀이 붙었다. 소위 ‘마니아 드라마’, ‘폐인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 호칭이 붙는 순간,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마니아(심지어는 폐인?)가 되어버린다. 소수 취향에 특별한 광기(본래 마니아는 그리스어로 광기란 뜻)를 지닌 사람의 축에 끼게 되는 것. 하지만 진짜 그럴까. 그저 시청률에 의해 재단된 것은 아닐까. 만일 지금의 방식으로 산정되는 시청률이 현재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떨까. 마니아 드라마는 진짜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세대가 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도
나이가 지긋하신 장년층 시청자분들은 ‘메리 대구 공방전’을 보면서 “도대체 저게 뭐 하는 것들이냐?”고 말한다. 등장인물들이 어려서가 아니라 그 독특한 스타일이 소위 말해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마왕’같은 작품은 아예 이해불가를 넘어서 고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작품 자체가 시청자들의 머리를 끝없이 추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소위 호평 받는 프로그램들 대부분에 대한 반응도 비슷하다.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은 “지들끼리 나와 떠드는 걸 뭐하러 보냐”고 하기 일쑤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어느 정도 학습이 필요하다. ‘메리 대구 공방전’을 재미있게 보려면 적어도 인터넷 소설이 주는 만화처럼 톡톡 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마왕’이 재미있으려면 적극적으로 추리를 해보겠다는 약간의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무한도전’이 재미있으려면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TV 속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를 던져주지 못한다.

이것은 과거, 일방향적인 TV의 시청 행태로는 지금 같이 쌍방향적인 TV 프로그램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래서 장년층들은 채널을 돌린다. 이해할 수 있고 코드에도 맞으며 자신들에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에 고정시킨다. 일일가족드라마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나 현재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반면 똑같은 일일가족드라마라 해도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어느 정도의 학습(적어도 이순재가 왜 야동순재로 떴는지는 알아야 한다)이 필요한 프로그램은 다르다. 시트콤이란 형식이 시청률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20% 전후의 시청률에 머무르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TV와 컴퓨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TV란 그저 정보와 재미를 ‘전달’해주는 매체를 넘어서 그 전달된 정보를 통해 새로운 재미를 생산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인터넷이란 의견의 장은 그 재미를 무한히 증폭시켜준다. 그러니 그들은 기성세대들이 원하는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찾게된다.

여기에 인터넷 다운로드 방식은 빠르게 젊은 세대들의 시청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TV로 방영되는 시간에 맞춰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다운로드 받은 드라마 파일을 컴퓨터나 PMP 같은 뉴미디어를 이용해 아무 때나 보는 게 더 편하다. 심지어는 여러 편을 한꺼번에 보는 몰아보기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TV가 기성세대의 매체가 되고 있는 반면, 젊은 세대의 매체로 뉴미디어들이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대간의 시청형태는 TV와 컴퓨터로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IPTV가 그것이다. 실시간으로 다운로드를 받아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이 마법의 장치는 인터넷과 TV가 만나는 지점에서 나온 것으로 과거 TV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그 중 가장 첨예한 것은 실시간 시청이란 TV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은 엄밀히 말해 TV이기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조차 편리한 도구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더 파괴적이다.

물론 이것은 이제 막 태동하는 TV의 진화이기에 그 변화의 양상이 피부에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진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시청형태의 변화는 곧 이루어질 거라는 점이다. 문제는 지금의 실시간 TV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청률 산정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거나 최소한 준비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마니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니아가 아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청률은 낮지만 소위 말하는 대박 드라마만큼의 호평을 받는 드라마’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지금의 시청률 산정의 문제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그 호평은 특정 기관이 주는 것도 아니고, 몇몇 평론가들이 주는 것도 아닌 바로 시청자들이 주는 것이다. 따라서 호평을 받으면 시청률이 높고, 그렇지 못하면 시청률이 낮아야 당연한 것이다. 이 비례적인 등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청률이라면 그다지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깟 시청률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보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처럼 산정된 시청률이 광고라는 힘을 등에 업고 드라마를 제작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청률 산정으로 인해 드라마 제작이 기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미래의 시청자들을 지금부터 버리는 행위가 된다.

엄밀히 말해서 마니아 드라마는 없다. 오히려 마니아 드라마의 존재는 지금의 시청률 산정이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거꾸로 말해 마니아 드라마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청률 잣대로 인해 소외될 수 있는 세대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이 마니아 드라마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마니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니아가 아니다.

OST,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 이미 끝난 지 꽤 된 드라마인데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에 드라마에 푹 빠졌던 추억이 떠오른다. 노래로 기억된 영상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손예진이 감우성과 함께 도넛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던 장면도 떠오르고, 이하나와 공형진, 이 엉뚱한 커플의 로맨스도 슬쩍슬쩍 머리에 스쳐지나간다.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OST
OST는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게 해주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장치도 없다. 인상적인 드라마를 보고 나면 기억을 자극하는 영상과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 영상을 영원히 감금해놓고 언제든 우리네 감성 속에서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OST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어렵다는 음반시장에 있어서는 훌륭한 기회로서 작용한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가수들이 방송에서 노래할 공간이 좁아지는 상황에 매회 적어도 1,2회씩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매체(?)의 제공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OST는 드라마와 음악이 확실한 시너지를 이루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시너지는 다름 아닌 문화 소비자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감성에 목마른 현대인에게도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곡을 들으면 주인공이 떠오른다
▶ ‘연애시대’와 스윗소로우가 만난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국내 명풍드라마의 탄생을 알린 ‘연애시대’. 멜로를 다루었으되 질척거리지 않고, 코믹한 터치로 드라마를 만들었으되 가볍지 않은 ‘연애시대’는 그 분위기에 딱 맞게 스윗소로우라는 뽀송뽀송한 목소리의 소유자들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을 선보였다. 같은 소절이 계속 반복되는 이 곡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갈등하는 은호(손예진)와 동진(감우성)의 감성을 잘 잡아내고 있다. 진호가 부른 ‘만약에 우리’ 역시 헤어진 후 더 절실해지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다.

▶ ‘봄의 왈츠’와 러브홀릭이 만난 ‘One love’
윤석호 PD의 사계 시리즈 마지막편인 ‘봄의 왈츠’는 마치 드라마 같은 가사와 멜로디를 줄곧 선보여온 러브홀릭을 만나 ‘One love’란 감미로운 곡을 만들어낸다. 어쿠스틱한 분위기에서 마치 꽃이 확 피어나는 듯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는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윤석호 PD는 드라마에 한국적 풍경과 함께 음악을 적절히 잘 배합하는 능력이 탁월한 연출자이다. 윤석호 PD의 작품치고 드라마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에 걸맞게 OST는 명반으로 남았다.

▶‘하얀거탑’과 바비킴이 만난 ‘소나무’
국내 전문직 드라마의 새 장을 연 ‘하얀거탑’. 김명민이란 배우의 카리스마가 돋보인 이 드라마에 삽입된 ‘소나무’는 바비킴의 읊조리는 듯한 음색이 차츰 절정을 향하며 호소력 짙게 감성을 흔드는 곡이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이란 가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욕망과 그 좌절을 그린 드라마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마치 뽕짝처럼 우리네 정서를 깊은 뿌리서부터 느끼게 하는 바비킴의 창법은 세련되면서도 토착적인 음색을 ‘소나무’에 심어놓았다.

▶ ‘마왕’과 박학기가 만난 ‘빛의 향기’
‘향기로운 추억’으로 발라드라는 장르에 그만의 굵직한 획을 그었던 박학기는 ‘마왕’이란 드라마를 만나면서 부활하는 듯 하다. ‘마왕’의 OST는 바비킴의 ‘뒷걸음’이나 JK김동욱과 드라마 주인공인 엄태웅이 직접 부르기도 한 ‘사랑하지 말아줘’, 그리고 박학기가 부르는 ‘빛의 향기’, ‘널 사랑하나봐’ 모두 드라마의 내용과 분위기에 잘 맞는 곡들이다. 특히 ‘빛의 향기’는 드라마 속 이승하(주지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고, ‘사랑하지 말아줘’는 강오수(엄태웅)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 ‘히트’와 거미가 만난 ‘통증’
‘히트’의 장르가 수사물이란 점은 그 OST의 색깔 역시 스릴러와 액션에 가깝다는 걸 짐작케 한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OST는 긴장감을 높여주는 효과적 배경음악으로 가득하다. 물론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테마곡들은 청자의 귀를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미가 부른 ‘통증’은 드라마 상의 차수경(고현정)이 가진 내적 상처를 잘 표현한 곡이다. 이밖에도 JM이 부른 ‘그 사람’은 극중 캐릭터들의 멜로 라인이 애절하게 느껴지는 곡이며, 메인테마곡인 슈퍼주니어의 ‘히트’도 경쾌하게 전체 드라마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 ‘내 남자의 여자’의 상처를 담은 더 원의 ‘사랑아’
불륜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점점 여성심리극으로 가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남편과 친구를 동시에 잃고 그 상처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지수(배종옥)의 심경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더 원의 ‘사랑아’도 화제가 되고 있는 곡이다. 절규하는 듯, 울먹이는 듯한 더 원의 음색이 듣는 이의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만든다.

▶ 고마운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만든 김태훈의 ‘고맙습니다’
훈훈한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고맙습니다’는 김태훈이 부른 동명의 곡이 잔잔한 톤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아마도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을 이 곡은 그러나 드라마와 만나자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다. ‘당신은 바보네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내용은 고스란히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주인공 영신(공효진)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드라마와 만나 명곡이 된 노래들은 부지기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내세우는 메인 테마는 어김없이 명곡이 되기 일쑤다. 특히 극중 캐릭터가 메인 테마와 만났을 때, 그 호소력은 더 짙어진다. 곡을 들으며 단지 멜로디와 가사만을 듣는다는 것 그 이상이 되게 만드는 영상과의 만남, 이것이 OST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이것은 또한 뮤직비디오가 점점 길어지고 스토리를 담으며, 캐릭터를 창출하고, 심지어 뮤직드라마로 진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왕, 주지훈

네모난 세상/명랑TV 2007.05.16 01:23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 종반에 와서야 왜 궁의 황태자가 마왕으로 캐스팅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궁’에서 보여주었던 겉으론 차갑지만 정이 많은 황태자의 모습은 ‘마왕’에 와서 좀더 완성되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주지훈은 초반 시종일관 차가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 차가운 얼굴 속에서 따뜻함이나 아픔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야누스적인 면모는 ‘마왕’이란 드라마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면서 또한 주지훈만의 독특한 아우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왕’과 주지훈은 서로의 주인을 제대로 찾은 격이다. ‘마왕, 오승하’가 아닌 ‘마왕, 주지훈’이라 일컫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마왕, 오승하
오승하(주지훈)란 캐릭터를 연기하는 주지훈의 얼굴은 좀체 변화가 없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포커페이스다. 이것은 ‘마왕’이란 드라마가 처음 시청자들에게 내민 얼굴과 같다.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지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 얼굴, 그것은 ‘마왕’이란 퍼즐조각 맞추기 게임에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변호사란 직업을 가진 오승하란 캐릭터는 그 설정 자체가 이 드라마의 질문이 된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란 철학적 질문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이중성과 맞물린다. 그것은 변호사가 ‘약자를 위한 변호’를 하기도 하지만 또한 ‘강자를 위한 변호’를 하기도 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오승하가 변호사가 된 것은 자신의 형이 ‘강자(강오수네 집안)를 위한 변호’에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려는 것은 형사인 강오수(엄태웅)가 잡으려는 범인을 변호해 과거의 자신이 약자로서 겪었던 상황을 강오수가 똑같이 겪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변호사의 캐릭터를 가진 오승하의 얼굴은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다. 직업적인 얼굴과 표정과 말이 나올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승하가 갖는 묘한 카리스마와 탈속한 듯한 느낌,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악마적인 이미지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눈과 입이다. 그의 감정은 반쯤 감겨진 눈빛을 통해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더욱 강하게 전달된다. 그것은 포기한 눈이며, 슬퍼하는 눈이고, 분노하고 있는 눈이며, 그런 자신을 증오하기도 하는 그런 눈이다. 그런데 좀체 표정을 보이지 않던 입이 실룩거리기 시작하면 위악적인 얼굴이 연출된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언뜻 보이는 살짝 말아 올려진 입 꼬리가 주는 섬뜩함은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악동을 만들어낸다. 오승하는 바로 이 악동의 얼굴을 차마 숨기려는 듯 애써 무표정한 주지훈의 절제된 연기에 의해 탄생했다.

마왕, 정태성
무표정과 절제된 얼굴이 주는 힘은 지대하다. 그것은 시종일관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얼굴이 특정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을 지었을 때 보다 특별한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이 미로 같은 드라마에 오승하는 작은 실타래를 던져주는 캐릭터이기에 그 얼굴의 변화에 시청자들은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얼굴은 좀체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정이 수면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얼굴에 표정으로 드러난다. 그 때 나타난 얼굴은 바로 오승하란 얼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 정태성의 얼굴이다.

해인(신민아)의 집에 초대되어 잡채를 먹다가 어린 시절 형과의 추억이 떠올라 차마 삼키지 못하는 장면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뒤쫓아 나온 해인이 본 것은 늘상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이라고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오승하의 얼굴이 아니다. 어린 시절, 그녀에게 우산을 건네주고는 자신은 괜찮다며 빗속으로 달려간 정태성의 얼굴이다. 사고로 죽은 오승하 행세를 한 자신을 알아차린 오승하의 누나 앞에서 미안하다며 오열하는 이는 바로 정태성이다.

정태성이란 얼굴이 늘 울고 있는 것은 그 복잡한 상황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얼굴 오승하가 지금 하고 있는 복수는 자신이 당한 것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또 다른 정태성이란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다. 권현태(이도련) 변호사를 죽인 조동섭(유연수)을 변호해 결국 무죄로 만든 오승하에게 권 변호사의 아들은 “사람이 죽었는데 무죄라는 게 말이 되냐”고 말한다. 그 말에 오승하 속의 정태성이란 얼굴이 꿈틀댄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12년 전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 속에서 복수의 희생양이 되는 대리살인자들에 대한 죄책감 역시 그를 짓누른다. 복수를 하면 할수록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온다는 것. 그것이 채워질 수 없는 갈증으로 정태성의 얼굴이 울고 있는 이유다.

마왕, 주지훈
그를 캐스팅한 박찬홍 PD는 주지훈이란 연기자에 대해 ‘따뜻함과 악마 같은 차가움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라 평한 바 있다. 이처럼 주지훈이 정태성과 오승하의 양면성을 모두 지닌 마왕이 된 것은 그의 얼굴 이미지가 갖는 양면성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하지만 거기에는 주지훈 자신의 얼굴에서 마왕의 면모를 뽑아내려는 당사자의 노력이 전제되었을 때 얘기다. 무표정으로 날카로움과 차가움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짧은 웃음과 울음을 극대화시킨 주지훈의 전략은 주효했다.

여기에 주지훈을 마왕으로 탄생시킨 공로에 있어서 반드시 덧붙여져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탁월한 화면연출과 조명이다. 드라마 중간마다 마치 간주곡처럼 삽입되는 주지훈의 모습은 그의 무표정한 얼굴 너머의 감정을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효과를 주었다. 빛이 쏟아지는 창을 바라보며 등을 보이고 똑바로 앉아 있는 주지훈의 모습은 오승하의 악마적인 면모와 정태성의 쓸쓸한 면모를 동시에 전달한다. 가끔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나무들 사이에 처연한 얼굴로 선 주지훈에게서는 마왕의 전지전능함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긴 터널을 걸어가다 문득 돌아보는 얼굴에서는 쓸쓸함과 동시에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영상들 속에 여지없이 끼어 드는 것은 바로 조명이 만들어내는 색감이다. 때론 파란색으로 때론 오렌지색으로, 때론 어둠 속에 실루엣으로 주지훈의 얼굴에 음영을 만들어내는 조명은 그 얼굴에서 여러 가지 모습의 감정들을 전달해준다. 파란색 속에서 악마적인 이미지를 끄집어냈다면, 오렌지색에서는 쓸쓸한 감정을 잡아낸다. 조서실의 어둠 속에 나타난 실루엣은 이 인물이 가진 야누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왕, 주지훈의 탄생은 김지우라는 작가가 탄생시킨 놀라운 이중적 캐릭터에 박찬홍 PD의 계산된 연출과 정길용 조명감독의 색감이 주지훈이란 연기자의 얼굴에 집중된 결과이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 앞에서 고뇌하는 ‘마왕’이란 캐릭터의 창출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의 목적인 바, ‘마왕’은 주지훈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너무 잘 짜여진 ‘마왕’ vs. 너무 흐트러진 ‘히트’

‘하얀거탑’을 통해 미드와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시청자들이 그 연장선 상에서 기대했던 드라마는 ‘마왕’과 ‘히트’였다. 하지만 이 두 유망주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마왕’은 그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연일 최저시청률을 경신하고 있고, ‘히트’는 수사물로서의 맥을 잡지 못하면서 시청률 추락을 맞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잘 짜여진 드라마, ‘마왕’
‘마왕’을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가 김지우라는 작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구성력에 있어서 이 정도면 거의 퍼즐 맞추기에 가까운데, 그 속에 인물들을 살려놓고 양파 껍질 벗기듯 조금씩 속살을 감질나게 보여주는 전개방식은 이것이 과연 드라마에서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만든다. 물론 미드를 한 편이라도 본 경험이 있다면 ‘마왕’의 전개방식이 그다지 낯설다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작품에 수십 명의 작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내는 미드와 ‘마왕’은 그 대본의 제작환경이 백 프로 다르다.

미드의 경우, 에피소드 하나를 만드는 데 투여되는 인원은 최소 10명에서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메인 작가는 한 명이지만 공동 집필을 하는 경우 공동작가(co-writer)가 있고, 여기에 그들을 돕는 여러 보조작가(staff writer)들이 붙는다. 작가들의 분야도 각자 달라서 아이디어만을 내는 작가(creator)가 있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스토리 구성작가(story editor)들, 그리고 대본만을 집필하는 작가(teleplay)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 정도 작가군이 투입되는 드라마가 치밀한 완성도로 미드 폐인들의 혼을 쏙 빼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왕’의 작가는 김지우 혼자다. 그는 12년 전의 한 사건(혹은 사고)에서부터 비롯된 처절한 복수극을 혼자 생각해냈고, 수많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캐릭터들이 가진 스토리를 혼자 만들어냈으며,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사건들에 혼자 질서를 부여했고, 그 복수극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주제의식도 스스로 세웠다. 실로 놀랍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역량을 통해 김지우 작가는 초라한 우리네 드라마 작가 시스템에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은 ‘마왕’을 좀더 많은 대중들이 즐기기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마왕’의 도전의식은 가치 있고 이 변화의 기로에 선 우리 드라마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명이지만, ‘마왕’은 그 지점을 넘어서 너무 멀리 앞서가고 있다. ‘마왕’은 지금 미드에서도 좀체 시도하지 않는 20부 연작 추리극을 시도하고 있다. 미드가 그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맥을 놓치지 않는 것은 그 한 회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는 에피소드 형식을 안전망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왕’ 역시 그 형식을 취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왕’의 이야기는 어느 한 편, 아니 어느 한 신, 심지어는 그저 휙 지나가 버린 소품 하나까지 기억해두지 않으면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짜여져’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매니아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지만 중간에서라도 보고 싶은 시청자는 처음부터 챙겨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마왕’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잘 짜여져 있어’ 시청자들을 허락하지 않는 드라마가 되었다.

너무 흐트러져 있는 드라마, ‘히트’
반면 ‘히트’는 너무 허술한 구성과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배반한 드라마가 되었다. ‘히트’의 문제는 그것이 ‘멜로가 있어서’ 라든가, ‘리얼하지 않은 연기’라는 식의 단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과 스토리, 캐릭터 등이 맞물려 생긴 총체적인 문제이다. ‘마왕’이 너무 에피소드별로 드라마를 자르지 않아 시청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였던 것에 반해, ‘히트’는 너무 에피소드별로 잘라내면서 맨숭맨숭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미드가 가진 에피소드들이 시즌 드라마로서 힘을 받는 이유는 그 잘려진 에피소드들이 다음 에피소드와 맞물려 차츰 드라마의 긴장도를 높여간다는데 있다. 그러나 ‘히트’의 에피소드들 간에는 차츰 발전되어 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접착력조차 약하게 느껴진다.

‘히트’가 이렇게 된 데는 드라마 진행에 있어서 캐릭터에 너무 천착한 결과이다. ‘히트’는 스토리와 구성 등에 많은 허점을 드러내지만 보기 드문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갖고 있는 ‘이상한’ 드라마이다. 보통의 경우 스토리란 캐릭터(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그것이 차츰 미궁에 빠지기도 하고 해결을 향해 나가기도 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마련인데, ‘히트’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극적인 긴장감을 일으킬만한 스토리가 부족하다.

강력 사건의 발생이 히트 팀 캐릭터들과 함께 벌어진다(장형사와 홍콩마약밀매 사건, 조과장과 최반장이 얽힌 증거물 도난 사건 등등)는 구조 역시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사건에 캐릭터들을 포진시켜 좀더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던 시도는 캐릭터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했을 지는 몰라도,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좀더 디테일한 사건 전개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홍콩 사건을 예로 들면, 어느 순간 사건은 사라지고 장형사(최일화)와 그 딸의 애틋한 정으로 흘러가면서 급작스럽게 맥이 풀려버리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형사물로서 사건이 우선이 되고 그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이 부각되어야 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좀더 치밀한 스토리와 에피소드 간의 강력한 접착력 그리고 그것이 중첩되면서 좀더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면 ‘히트’가 가진 캐릭터들은 좀더 사건 속에서 부각되었을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드라마의 에피소드로 진행되고 있는 14년 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는 이전 에피소드와는 다르게 치밀한 면모가 있다. 초반에 있었던 사족 같은 에피소드들 대신 바로 이 메인 에피소드에 천착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마왕’은 너무 잘 짜여져 있어서, ‘히트’는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 결과적으로 시청률의 추락을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드라마와 앞으로 변화될 미래의 드라마 사이, 과도기에 걸쳐 있는 이들 드라마들의 시도는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의미가 있다. 시행착오들이 좀더 탄탄한 성공의 길을 알려준다는 면에서 어쩌면 그것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TAG 마왕, 히트

이번 주는 드라마들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유난히도 돋보인 한 주였습니다.

역시 배종옥, 변신 김정민
SBS의 월화드라마,‘내 남자의 여자’는 극의 흐름을 김희애의 독한 연기가 끌어왔는데 이번 주에는 반격에 나선 배종옥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겪는 상처와 분노,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세요”하는 아이의 애원에 흔들리는 엄마라는 복합적인 내면연기를 ‘역시 배종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화해냈습니다. 배종옥은 과장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역할에 딱 맞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MBC의 ‘히트’는 전문성에 대한 비판여론 탓인지 분위기를 멜로에서 전문직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새롭게 전면에 나선 김영두 역의 김정민이 가수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멜로로 말랑말랑해진 ‘히트’에 조금은 강력계다운 강한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숙 공효진, 소름 주지훈
수목드라마에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달라진 공효진, 장혁의 물오른 연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에서 조금은 되바라진 캐릭터를 보였던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모성애 강한 미혼모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장혁의 깊어진 연기와 서신애의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구, 강부자의 연기력들이 맞물려 따뜻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낮아도 여전히 화제에 중심에 있는 ‘마왕’은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다가, 순간 순간 씩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며 보이는 악마적인 느낌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때면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연기 역시 돋보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린다
TV 프로그램의 성패가 된 리얼리티는 이제 드라마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리얼하냐는 것이 공감의 바로미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캐릭터가 극의 중심으로 오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스토리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적당한(?) 연기력을 가진 외모출중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반면, 최근에는 외모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착한 척하는 배우, 예쁜 척 하는 배우보다는 자신은 망가지더라도 극중 캐릭터를 100%로 살릴 수 있는 연기를 보이는 배우가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들이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이, 이제 제 궤도에 오른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맛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고맙습니다’ 뒤에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빛나기 마련! 그러나 시청률과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그 다양한 맛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80%) : 새로운 남자, 이종원이 등장하면서 배종옥의 갈등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배종옥과 김희애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80%) : 연기로 보자면 이 드라마 만큼 기대감을 높이는 드라마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9단의 모습을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대결구도도 관전포인트입니다.
▶ ‘히트’(기대감 50%) : 아직까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긴박감이 살아나지 않는 반면, 김정민의 역할이 얼마나 그걸 해줄지 기대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강오수’와 ‘형사로서의 강오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태웅의 연기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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