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월’, 퓨전과 짬뽕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

영화 <그레이트 월>은 예고편만 보면 정말 엄청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제목에서 묻어나듯 이 영화는 중국의 미스터리로까지 남겨진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감독은 거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예모인데다, 주인공은 맷데이먼이다. 그러니 예고편에서 맷데이먼이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아처의 형상으로 만리장성 위에서 활을 쏘아대는 모습만으로도 기대가 될밖에.

사진출처:영화<그레이트 월>

<그레이트 월>은 그러나 그 기대감 안에 담겨져 있는 불안요소들을 좀체 넘지 못한다. 즉 영화적 배경은 중국의 만리장성이고 감독은 장예모인데, 그 주인공은 서양인인 맷데이먼이고 그가 중국인 배우 경첨과 유덕화와 함께 싸우는 적은 외계에서 온 알 수 없는 ‘진격의 괴수들’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동서양의 퓨전이고 중국 무협과 서구의 판타지의 만남이며 만리장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고 여기에 외계 생명체와의 대결이라는 에일리언적 요소들까지 가미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들 요소들은 너무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겹쳐져 있어 그것이 하나로 융합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 더 강하다. 무엇보다 장예모 감독의 거대한 화면에 채워지는 미술적인 연출에 대한 기대를 하는 관객이라면 그저 상업적인 틀에 머무는 영화에 실망할 수 있고, 맷데이먼의 눈으로 보여주는 액션이 아닌 내적인 응어리 같은 걸로 더 강한 폭발력을 내는 액션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볼거리 위주의 액션에 실망할 수 있다. 

판타지와 무협의 퓨전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그 합이 더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기보다는 판타지로서도 또 무협으로서도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이러한 퓨전은 상업영화로서의 마케팅적인 결합처럼 보인다. 즉 맷데이먼이 중국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은 중국 관객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여기에 만리장성이 일종의 지구를 지키는 최종방어선처럼 그려지는 것 역시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건드리는 마케팅적 장치로 보인다. 

물론 영화가 이러한 황당해 보이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 통해서 담으려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그것은 서역에서 검은 가루(화약)을 찾아 이 동양에까지 다다른 윌리엄(맷데이먼)과 외계의 적과 맞서고 있는 린 사령관(경첨)이 “우리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후에는 “우리 생각이 틀렸다. 우리는 비슷하다”는 결론으로 바뀌는 그 과정이다. 거기서 지구를 구하는 두 패권이 손을 잡는다.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서구의 힘이다. 물론 거기서도 실질적으로 과시되는 건 제목에 등장하듯 ‘만리장성’의 위용이지만. 

그래서 영화는 여러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엄청난 적들과 대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이건 저들에게 설득되는 이야기들일 뿐, 우리처럼 그들의 세력다툼에 휘둘려오며 변방을 치부되어온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줄 수 없다.

그래서 그저 남는 건 스펙터클이다. 하지만 이 스펙터클 역시 ‘대륙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고 말할 때 갖게 되는 조금은 비하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기상천외한 상상력들이 스펙터클로 보여지지만 그것이 너무 나가있어 관객이 몰입되기보다는 헛웃음이 나오는 그런 느낌. 장예모에 맷데이먼, 유덕화 그리고 만리장성까지 만나는 그 이질적인 조합은 그래서 시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공감 가는 퓨전보다 이질적인 것들이 마구 뒤섞인 짬뽕에 가까운 결과물이 되었다.

노출만 보이는 스텔라, 노출 마케팅의 함정

 

노출만 보지 마시고 다양한 시선으로 봐 주셨으면 한다.” 스텔라의 여섯 번째 싱글 떨려요언론 쇼케이스에서 막내인 전율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노출이라고 해서 너무 안 좋게만 보일까봐 사실 걱정이 된다.” “여자가 섹시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스텔라는 쇼케이스에서 줄곧 노출에 대한 우려와 입장을 드러냈다.

 


사진=디엔터테인먼트파스칼

쇼케이스에서 보여준 무대 역시 보이는 건 안무였다. 이미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이제는 식상할 만도 할 안무들이 이어졌다.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쑥 내밀고 가슴을 손으로 쓸어 모으는 듯한 동작들이 반복됐다. 아예 무대에 누워 유혹하는 듯한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노래가 끝났지만 무슨 노래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노출의상과 야릇한 동작들만 아른거릴 뿐이다.

 

스텔라의 뮤직비디오는 티저와 스틸컷이 올라온 것만으로도 그 파격적인 노출에 대한 논란이 터져 나왔다. 끈 팬티를 밖으로 드러낸 치파오 의상을 보여준 자켓 이미지가 논란을 일으켰고, ‘떨려요뮤직비디오에서는 전라처럼 중요부위만 가린 여성의 신체가 보여지기도 했다. 쇼케이스에 대해서는 이른바 엉밑살(엉덩이 밑의 살)’ 노출이 화제가 되고 있다.

 

노출만 보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노출을 보라는 말처럼 달리 들린다. 실제로 반라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여성 신체의 중요 부위들이 춤 동작이라는 미명 하에 전시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노래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다. 그것은 마치 선정적이기를 작정한 무대에서 배경음악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노출이 가진 양면성은 그 한계 또한 명확히 드러낸다. 물론 스텔라가 이런 화제가 되는 건 2011년 데뷔해 별다른 주목을 못 받다가 작년 마리오네트가 소개되고 나서부터다. ‘마리오네트는 그 노출과 선정성 때문에 세간에 논란을 일으켰다. 스텔라로서는 이런 결과가 무시 못 할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번 과감하게 보여준 노출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그러니 파격은 계속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노출이 만들어내는 논란과 화제로 주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걸 그룹으로서의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시선은 잡아끌었는데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노출은 그저 노출로서 끝날 뿐이다.

 

걸 그룹들이 여름철만 되면 저마다 노출을 콘셉트로 들고 나오는 건 이제 이상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너도 나도 노출을 하다 보니 오히려 그렇지 않은 콘셉트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노출을 해도 결국 살아남는 걸 그룹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음악적인 실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씨스타나 걸스데이, AOA, EXID 같은 걸 그룹을 보면 노출 콘셉트를 갖고 있어도 음악이 들린다. EXID위 아래가 음원차트 역주행을 한 건 그들의 파격적인 안무동작 때문이 아니다. AOA짧은 치마사뿐사뿐같은 곡이 대중들의 귀에 달라붙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스텔라에게서는 안타깝지만 그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일단 나오기만 하면 노출 논란으로 시끄럽긴 한데 남는 음악이 없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스텔라의 절실함은 이해하지만, 그래서 일단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노출 또한 감수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데도 노래가 주목되지 않는 건 치명적이다. 이러니 노출만 보지 말라는 말이 이해가 갈 수 있겠는가.



관객, 스크린, 노이즈까지, 다 가진 <연평해전>에 없는 하나

 

영화 <연평해전>은 지독할 정도로 상업적인 영화다. 누군가 이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일면일 뿐이다. 정치적인 것, 그 위에 상업적인 것이 뒤덮고 있다. 먼저 영화관 풍경이 그렇다. 평일 840분에 하는 조조영화를 보러간 필자는 그 시간에 영화관이 가득 메워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른 조조시간도, 그 공포라던 메르스의 여파도 뚫고 가득 메운 관객들.

 


사진출처: 영화 <연평해전>

그런데 그 관객들의 거의 대부분이 같은 제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낯설게도 다가왔다. 군부대에서 단체 관람을 온 것이다. 해군 6만 병력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외부단체관람을 나섰다는 뉴스는 <연평해전>이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상업적인 전략을 구사했다는 걸 말해준다. 이미 제작에서부터 육, , 공군이 모두 참여했고, 그 이야기는 군인들의 단체관람을 어느 정도는 예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정도의 예비 관객을 갖고 있는 영화라면 실패할 위험성의 거의 없다. 영화적 재미를 떠나서 이건 군인들의 자발적인 선택만은 아닐 것이다. 보라면 봐야 하는 게 군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기본 관객이 준비된 데다, 무슨 일인지 멀티플렉스 체인 영화관들은 일제히 이 영화의 상영관을 한없이 늘려놓았다. 첫날 667개였던 스크린 수가 5일 후 1013개까지 늘어났다. 누군가의 압력이나 지시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지만 사실 이건 지극히 상업적인 선택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가 군인 같은 예비 관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관들로서도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스크린 수도 늘렸을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보수적인 입장으로 애국주의를 설파하려는 정부의 뜻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음모론에 불과한 것이지만 영화가 연평해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건 이 땅에 사는 국민들로서는 그 누구도 그 의미를 부인하거나 퇴색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은 장병들이 희생됐다는 건 어떠한 정치적인 입장을 뛰어넘는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니 영화의 애국주의적 입장은 휴머니즘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다. 그런 애국주의적인 잣대만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애국주의 마케팅을 쓴다고 해도 영화관으로서는 오히려 득이 되는 일이다. 그건 잘만 풀리면 엄청난 상업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 이러한 선택 또한 지극히 상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 애국주의 마케팅이나 스크린 독점 같은 이슈들이 터져 나오면서 어떤 노이즈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이 상업적 선택의 덤과 같은 것이다. 이 노이즈를 보수와 진보 같은 전선을 가르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마케팅은 이미 저 <디 워>에서 그 효과를 본 바 있다. 이런 마케팅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힘을 발휘한다.

 

<연평해전>은 그러니 확보된 관객에 확보된 스크린 수 게다가 준비된 노이즈까지 완벽하게 상업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걸 다 가진 영화가 갖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영화적 재미다. 상업적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영화가 주어야 하는 긴장과 이완, 중간 중간을 채워주는 소소한 에피소드의 재미가 하나하나 축적되어 후반부의 거대한 감동으로 이어주는 그런 흐름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결국 당일 날 벌어진 연평해전의 그 핏빛 전쟁 속에서도 숭고하게 희생하고 버텨내려 했던 그 장병들이 주는 먹먹한 감동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가 주는 감동이라기보다는 실제 그 연평해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분들이 그렇게 차가운 서해 바다 한 가운데서 어떻게 싸웠는가를 더 생생하게 들여다보며, 당시 편안히 월드컵을 즐겼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의미 있다면 바로 그 점 한 가지일 것이다.

 

<연평해전>은 대단히 상업적인 영화지만 그 상업적이라는 것은 영화가 대중적이라거나 웰 메이드라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소재와 마케팅적으로 상업적인 영화를 뜻한다. 영화는 본래 상업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영화적으로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 대중적이어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은 21세기라는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닐까. 하긴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네 현실이 시대착오적이니 어쩌겠는가. 여전히 보수니 진보니 하며 편 가르기만 하면서 민생은 돌보지 않는 정국도 그러하고.



<신의 한수>, <군도>의 이슈화, 할리우드를 잠재운 까닭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이하 트랜스포머4)>가 개봉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번 여름철 블록버스터 시장은 또 할리우드가 장악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비주얼에 개봉했다 하면 관객수 신기록을 경신해버리는 <트랜스포머>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이 가세하면서 할리우드의 장악은 더 공고하게 여겨졌다.

 

'사진출처:영화 <트랜스포머:사라진 세계>'

하지만 이런 예측은 한국영화들이 하나 둘 블록버스터 시장에 선을 보이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트랜스포머4>가 워낙 중국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에 우리네 관객에게는 그다지 어필하지 못한 면이 강하지만 그래도 이제 5백만 관객을 조금 넘어섰다는 건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다. 이것은 <혹성탈출>도 마찬가지다.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관객수는 현재 4백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반면 19금이라는 족쇄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신의 한수><트랜스포머4><혹성탈출> 사이에서 35십만 관객을 돌파한 건 대단한 성과다. 또한 개봉하면서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킨 <군도 : 민란의 시대>가 순식간에 4백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군도> 역시 평단이나 관객의 평가가 그리 좋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과거라면 단순히 한국영화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겠지만 요즘은 한국영화니 더 봐달라는 식은 마케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러니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면서도 괜찮은 성적을 낸 <신의 한수><군도>는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최근 변화한 영화 마케팅 방식이 한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신의 한수><군도>가 보여준 것은 이슈화의 성공이다. 좋은 평가가 나오던 좋지 않은 평가가 나오던 일단 말이 많이 나오는 작품에 관객들이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군도>의 바람몰이는 본격적인 이번 여름 우리 블록버스터의 첫 걸음을 기화로 활활 타올랐다.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럼에도 <군도>는 일정한 완성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호불호를 호기심으로 바꾸며 끊임없이 관객들을 유입시킬 수 있었다.

 

<군도>의 이슈화가 워낙 강하다 보니 할리우드 영화들의 이야기는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여기에는 계속 연이어 개봉되는 <명량>, <해적>, <해무> 같은 한국영화의 라인업으로 더 힘을 받았다. <명량><군도>의 비교점을 만들면서 벌써부터 흥행 대박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건 영화가 일정 부분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 우리 블록버스터 이슈화 바람에 쉽게 올라탈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트랜스포머><혹성탈출> 그리고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이 정도의 선전을 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논란이나 호불호마저 이슈화하고 잘 꾸며진 라인업으로 밀고 당겨주는 마케팅의 힘이 느껴진다. 과거 할리우드 대작들이 들어오면 거의 초토화되어버렸던 극장가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최근 들어 제작뿐만 아니라 이제 마케팅적인 면에서도 성공하고 있는 우리 영화의 달라진 면모를 볼 수 있다.

 

김연아와 안현수, 숟가락만 얹는 부끄러운 대한민국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4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너는 11번을 뛰어오르는 대한민국이고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다.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

 

'패러디영상(사진출처:Olive Oh)'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무려 여섯 개나 들어가 있는 모 기업의 이미지 광고는 지금 대중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 있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으로 바뀌는 이 광고는 김연아를 상찬하는 것 같지만 그 자체로 지나친 국가주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실로 김연아가 그 정상에 오르기까지 국가가 해준 것은 별로 없다. 지금까지 그녀가 해온 일들은 그녀의 가족과 그녀 자신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이지 제대로 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이룬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느 날 갑자기 정상에 서게 된 김연아라는 세계적인 선수를 통해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해외에 알려지는 판이다.

 

그런데 김연아가 아니라니. 김연아라는 개인을 부정하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투입시키는 건 너무 노골적인 국가주의 마케팅이다. 물론 김연아는 대한민국라는 등호는 그만큼 김연아 선수가 대한민국 그 자체일 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호명이나 칭호가 그다지 달갑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로 귀화해 금메달을 딴 안현수 선수가 만들어낸 국내 빙상연맹에 쏟아지는 후폭풍은 지금 현재 국가에 대한 민심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선수가 귀화를 결심하고 마치 보란 듯이 절치부심해 금메달을 따는 과정은 마치 국가에 대한 한 개인의 투쟁처럼 보여진다. 우리 선수들과도 경쟁해서 따낸 금메달이지만 지금 우리네 대중들은 러시아 국적을 가진 안현수 선수를 거꾸로 응원해주고 있다. 왜 그럴까.

 

국가라는 이름을 호명해 자리 하나씩을 차고 앉아 있는 관료들의 행태를 이미 대중들은 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현수 선수의 귀화는 그래서 국가를 저버린 행위가 아니라 국가로부터의 탈출로 받아들여진다. 지긋지긋해서 살기 싫다며 이민을 생각하는 수많은 이들이 갖는 그 생각.

 

국가가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대중들은 이제 그다지 바라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냥 내버려두길 원하는 것이다. 잘 하는 이들이 그저 잘 할 수 있게 내버려달라는 것이다. 김연아 광고에 쏟아지는 비난과 안현수 선수에 대한 응원 속에는 해준 것 없이 숟가락만 얹으려는 국가에 대한 반감이 들어가 있다.

 

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변호인>에서 일갈했을 때 그 단순한 말 한 마디가 대중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은 국가를 제 멋대로 해석해 그 권력으로 국민을 심지어 고문하기도 하는 세상에 대한 당연한 분노가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우선이 아니라 국가가 우선인 세상에 대한 분노.

 

그래서 김연아 광고를 뒤집어 놓은 한 패러디에는 국가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김연아라는 개인에 대한 찬사가 들어가 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당신은 피겨약소국의 한 운동선수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챔피언이고 당신은 어린 후배를 위해 기꺼이 다시 뛰어오르는 선구자입니다. 당신은 김연아입니다. 당신이어서 고맙습니다.’

 

힘겨운 대중들에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힘을 늘 안겨주는 김연아 선수의 선전을 기원한다.

정형돈 돈가스 논란, 무엇이 문제일까

 

‘연예인 돈가스’라는 말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을 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정형돈을 떠올렸을 것이다. 정형돈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도니도니’라는 제품명, 게다가 정형돈의 캐릭터에서 비롯된 돼지의 이미지가 그를 마치 돈가스의 대명사처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형돈이 이름을 걸고 정성스럽게 만들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는 누구나 이 제품의 사업주가 정형돈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홈쇼핑에 직접 나와 물건까지 팔았으니...

 

정형돈(사진출처:현대홈쇼핑)

검찰이 함량 미달 돈가스를 판매해 76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한 축산물가공업체 대표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소식. 그 때 떠올랐던 ‘연예인 돈가스’라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던 검색어는 그렇게 유야무야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한 케이블 채널의 기자간담회에서 정형돈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정형돈은 “그 부분은 회사와 따로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여기서 답변 드리기는 곤란하다”며 대답을 회피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대응방식은 옳았던 것일까.

 

사실 이런 식의 연예인이 참여한 상품 판매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연예인이 제품을 개발하거나 혹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체로 이름을 빌려주고 적당한 홍보를 해주며 제품 판매액의 몇 프로를 이익으로 가져가는 방식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아마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정형돈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이름을 빌려주고 상품을 파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제품 판매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도니도니’라는 돈가스를 사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형돈이라는 인물이 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회사와 따로 이야기를 하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 제품에서 정형돈의 이름과 ‘도니도니’라는 상품명은 알아도 그 회사명이 뭔지는 잘 모른다. 그만큼 소비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물건을 팔았다면 그 물건의 하자가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회사 측은 검찰의 함량 측정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모양이다. 즉 냉동상태의 돈가스의 무게를 그대로 재지 않고 흐르는 물에 녹이고 튀김옷을 제거하고 물기까지 짜낸 후 중량을 측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제기도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등심 함량이 162g이라면 다른 걸 빼고 실제 등심의 함량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문제는 이번 돈가스 논란으로 불거진 연예인을 내세운 상품 마케팅이 정형돈에게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로부터 허위, 과장, 기만 등을 이유로 백지영-유리, 김준희, 진재영 등이 징계를 받은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런 연예인 홈쇼핑이나 쇼핑몰 관련 문제들은 이슈화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꽤 많은 수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터넷을 쳐보면 피해사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연예인이 관련된 상품 마케팅에는 이런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

 

광고비가 결국은 제품 가격을 높여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을 내세워 하는 상품 마케팅이 결국 과도한 연예인 마케팅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상품과 서비스의 부실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번 정형돈의 경우에도 홈쇼핑과 정형돈에 무려 35%나 떼주는 바람에 원가절감 차원에서 함량을 속였을 것이라고 검찰은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홈쇼핑에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른바 방송인이 다된 전문가들을 출연시키는 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이른바 종편 예능의 대세로 자리 잡은 집단 토크쇼에 출연하는 변호사, 의사, 요리사 등등의 속칭 전문가들이 속속 홈쇼핑의 쇼 호스트로 투입되어 상품 판매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신뢰성을 상품 판매에 활용하는 것이지만, 이들이 진짜 전문가인지는 의문이다. 이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되는 방식은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방송인으로서 재미적인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든 방송인이든 자신의 명성을 빌어 어떤 상품의 대박을 기록했다면, 그만한 책임감도 똑같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연예인의 명성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들로부터 받은 명성을 이용해 대중들을 속이는 행위는 어떠한 변명에도 용납되기가 어렵다. 그것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관리까지가 책임의 범위인 것은 분명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그 연예인의 얼굴을 보고 그 말을 믿고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연예인이든 방송인이든 사업에 연루될 때는 훨씬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저 얼굴 빌려주는 것이라고 뛰어들었다가는 그 얼굴에 먹칠하는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표절시비부터 강제 천만 영화 만들기 논란까지

 

영화 <광해>가 31일 만에 9백만 관객을 돌파함으로써 천만 관객 동원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 몇 년 동안 영화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CJ E&M이 추석 시즌을 목표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 되었다. 마치 예상한 시나리오대로의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는 <광해>. 하지만 여기에 대해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국내에서 천만 관객 영화라면 사실상 신드롬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텐데,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걸까.

 

사진출처: 영화 '광해'

그 발목을 잡고 있는 첫 번째는 표절 시비다. <광해>는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를 표절했다는 논란을 받아왔다. 동아일보는 <광해>와 <데이브>의 18가지 유사점을 조목조목 짚어낸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 내용들을 보면 대통령 대신 왕이, 대역 직장인 대신 대역 만담꾼이, 비서실장 대신 도승지 허균이, 대통령 부인 대신 중전이, 각료들 대신 신하들이, 흑인 어린이 대신 어린 나인이, 경호원 대신 호위무사가... 등등. 대구를 이루는 것들이 너무 많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데이브>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광해>가 꽤 괜찮은 작품이라 여길 만하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이병헌의 1인2역도 단단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왕이라는 항상 서민들의 판타지가 투영되기 마련인 존재의 이야기를 왕이 된 평범한 민초의 시각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공감대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같은 상황을 두고 보면 기획적으로도 적절했다 여겨진다. 하지만 <데이브>와의 유사성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괜찮은 완성도가 오히려 너무 심했다고 생각될 수 있다. 표절을 했건 안했건 영화로서 너무 비슷한 것만은 사실이니까.

 

여기에 천 만 관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각종 마케팅과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까지 겹쳐지면 <광해>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가늠할 수 있다. 자사 계열 배급사의 영화에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스크린 수 밀어주기를 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특히 그 불공정성이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광해>는 개봉일에 상영관 689개를 확보하며 시작했지만 반달 만에 1000개가 넘는 상영관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무료 26%가 넘는 스크린 수 점유율이다. 이 정도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볼 게 없어 <광해>를 본다는 볼멘소리가 이해될 법 하다.

 

또한 <광해>의 관객 수가 마케팅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허수라는 논란도 있다. <광해>는 CGV에서 이른바 ‘1+1’이라는 한 명이 보면 다른 한 명은 공짜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관객 수의 수치는 천 만을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유효 관객 수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애매해진다. 결국 천 만 관객 마케팅을 위해 그 수치를 강제로 뽑아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고 있다는 얘기다.

 

<광해>는 콘텐츠적으로 괜찮은 완성도를 가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작품의 표절 시비나 배급과 마케팅 문제에 있어서 꽤 시끄러운 잡음을 내고 있는 영화인 것도 분명하다. 소급해서 생각해보면 <도둑들>이 올 여름 최고의 기록을 낸 데도 결국 대형 배급사의 마케팅 수완이 한몫을 했을 거라는 심증이 짙다. 이제 천 만 관객도 마케팅으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일까. 또 그렇게 영화가 작품보다는 상품에 더 골몰하는 처지가 된 것일까. 거대 자본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그림자는 국내 영화 산업 전체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공감 없는 상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승승장구'(사진출처:KBS)

최근 이른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애정남'이 대세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의 줄임말인 '애정남'. 도대체 뭐가 애매하다는 것이고, 그는 또 그걸 어떻게 정해준다는 얘기일까. 먼저 간단한 몇 가지 애매한 상황을 제시해보자.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다가 마지막 한 개가 남았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그냥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덥석 먹자니 좀 그렇고. 또 누군가를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스킨십은 언제부터 해야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을까. 이런 애매한 상황은 너무 사소해보여서 안 보이는 것뿐이지 사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지하철에 앉아 가는데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탔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양보를 해줄 것인가. 하다못해 영화관에서 팔걸이는 어느 쪽으로 해야 옆 사람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사실 너무 소소한 일이라 이런 고민은 전혀 쓸 데 없어 보인다. 실제로 남은 음식을 누가 먹든, 팔걸이를 어떻게 하든 '애정남'이 늘 코너에서 말하듯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건 정말 쓸 데 없는 고민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애정남'이 건드린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이런 자잘한 것들은 고민의 대상에 끼워주지 않는 걸까. 꼭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지극히 공적이고 법제화된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중요한 의제로 제기될까. 왜 우리가 늘 생활하는 사소한 일상들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걸까. 그걸 조금만 심각하게 얘기해도 좀스러운 사람 취급을 하는 걸까. '애정남'이 열어놓은 것은 바로 이 거대담론들에 의해 가려지거나 소외되었던 자잘한 일상들의 소중함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따위 거대담론들이 도대체 내 살림살이를 얼마나 낫게 해주었는가 하는 냉소적인 시선도 들어있다.

거대담론들은 늘 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우리에게 던져져왔다. 거기에 우리가 끼어들 틈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디 이런 상명하복식의 혹은 일방통행식의 거대담론으로 굴러가는 시대인가. 이제 우리는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엮어서 세상을 만들어가려 한다.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공약들이 공염불이 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온 유권자들은 이제 '우리들만의 소중한 약속'이 더 중요해졌다. 그 실천 가능한 것들이야말로 어쩌면 실제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다.

물론 '애정남'은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그런 코너가 아니다. 이것은 개그다.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을 통해 웃음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애정남'이 이런 애매한 상황에 내리는 일종의 지침이나 해법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은, 밑반찬일 경우에는 아무나 먹고(리필이 가능하기 때문에), 육류는 집게를 가진 사람이 먹으며(일한 사람이 먹는다), 나머지 기타 음식은 돈 내는 사람이 먹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애정남'이 건네는 답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 상황들이 곤란하고 애매하다는 것을 똑같이 공감한다는 것 그 자체다. 그 상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 "맞아 맞아"하고 공감하며, 일종의 해답을 찾으려는 그 노력 자체에 수긍하고 동조하게 되는 것. 이른바 '공감 개그'라고 불리는 '애정남'이 갖고 있는 대단한 경쟁력의 실체다.

따라서 '애정남'의 힘은 대중들이 현재 어떤 가려움을 갖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능력에 있다. 지난 추석 다음 아고라에 애정남이 올린 글은 그 단적인 사례다. 추석이나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것을 좋아할 며느리가 몇이나 있을까. 제사 지내고 나면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애정남'은 그런 며느리들에게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아침 먹고 설거지가 끝나는 순간 출발입니다잉"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며느리를 탐탁찮게 여길 수 있을 시어머니에게도 한 마디 공감어린 충고를 곁들였다. "잘 생각하세요. 시어머니들. 이게 지켜져야 따님도 빨리 볼 수 있는 겁니다잉." 이 글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내용을 따다가 쓴 기사에 무려 천 개가 넘는 댓글이 붙었고, 그 내용도 대부분 "공감 백프로"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좀스럽고 어쩌면 곤란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를 애정남이 살짝 끄집어내는 순간, 빵 터지는 웃음과 함께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졌던 것. 물론 이렇게 인기발언을 제 맘처럼 해주는 '애정남'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졌다.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이런 현실 공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개그는 '애정남'뿐만이 아니다.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도 모두 현실에서 지나쳤던 일상을 가져와 공감을 바탕으로 웃음을 주는 소위 '공감개그'들이다. 하지만 이들 개그들과 '애정남'은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이 현실에 대한 태도다. '생활의 발견'이나 '불편한 진실'은 그 부조리한 일상의 현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것이라면, '애정남'은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지침(?)을 준다. 물론 애정남의 말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쇠고랑을 차지는' 않는 일이지만 '서로 지킴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행동을 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저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걸 강조한다.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우리들만의'라는 한정이다. 저들의 쇠고랑 차고 경찰 출동하는 거대담론이 있다면, 우리들만의 자잘한 상황 속에서의 아름다운 약속이 있는 셈이다.

'애정남'이 구획하는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왜 이 개그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누군가 정해놓은 것들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대중들은 언제부턴가 저 스스로 약속을 정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국가나 세계가 주창하고 따르기를 바라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비록 작고 소소하다고 하더라도 나와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 물론 이 개그 속에는 저들의 법칙으로 구획되어 좀체 바뀌지 않는 단단한 세상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들어있지만, 그 안에는 또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대안도 들어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약속'은 무엇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동어반복일 지 모르지만 그것은 바로 '공감대'다. '애정남'이 애매한 상황에 던지는 지침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느 사안에 대해 특별히 수사적인 설변이 없어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황. 어찌 보면 상식적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 지키지 않아 더더욱 돋보이는 그런 상식. 마음과 마음의 교감 혹은 동감. 거기서 생겨나는 동류의식. 이런 것들이 이 작은 코너 속에서는 번뜩인다.

마케팅이 단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라면 아마도 '애정남'이 주는 교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이제 상품보다는 문화를 팔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문화라는 것은 바로 '애정남'이 보여주는 그 공감이라는 장치를 통해 만들어지고 공유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만일 공감이 없다면 문화도 없다. 그러니 이를 확대해서 얘기하면 공감 없는 상품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아마도 마케팅의 기본일 것이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이나 공감하게 한다는 것이 그다지 달리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미는 약간 다르다. 공감은 단순히 물건 하나에 심어진 이미지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총체적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드는 회사나 장인의 진심이 더 중요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일 그 진심을 대중들이 공감하게 된다면, 상품 판매는 특별한 프로모션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게 될 테니 말이다. '애정남'은 바로 그런 달라진 대중들의 시선을 슬쩍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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