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누나’를 통해 작가들이 이제 귀 기울여야 하는 것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던 건 흔한 멜로드라마를 통해서도 사회변화나 사회적 사안들을 예리하게 건드린 부분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문제적 인물은 바로 윤진아(손예진)다.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버젓이 자행되던 회사를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던 인물. 일정 부분 ‘포기상태’로 살았던 그가 서준희(정해인)라는 인물의 사랑을 받고, 그래서 자신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그것이 그를 각성시켜 회사 내의 성차별과 성폭력 사안에도 맞서나가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이 기존 멜로와는 다른 진일보한 시각을 담고 있다 여겨져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후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클리셰’에 발목이 잡혔다. 일상의 문제들을 날카로우면서도 또 멜로가 가진 달달함과 풋풋함을 동시에 껴안는 그 어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그려왔던 초반의 이야기는, 김미연(길해연)이라는 흔해빠진 아침드라마형 결혼반대 엄마의 클리셰를 가져오면서 퇴행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불만은 여기서부터 불거졌다. 그리고 여기에 윤진아라는 캐릭터 역시 ‘변화한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생각 없는 모습’으로 퇴행하는 이야기가 담겨지면서 불만은 더욱 커졌다.

물론 이건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껏 수많은 드라마에서 써왔던 흔한 클리셰 공식들이다.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갈등이고, 따라서 멜로드라마는 사랑을 하는 남녀와 이를 반대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흔한 공식.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부터 우리네 <춘향전>이나 <시집가는 날> 같은 고전, 그리고 최근의 멜로드라마까지 이 공식은 바뀐 적이 없다. 다만 달라지는 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멜로드라마라도 사회적 의미를 띤 이른바 ‘사회적 멜로’라고까지 지칭하는 드라마들이 나왔던 건, 그 장애물이 이제는 양가 부모 같은 구시대적 클리셰에서 벗어나 사회적 갈등(신분이든 빈부든 취향이든)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랑을 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결혼 반대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지금도 일상적일까 하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드라마가 그런 클리셰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후반부의 동력이 그런 비판적 시각이라기보다는 그 ‘반대’가 갖는 갈등구조 자체를 활용하고 있다. 즉 클리셰를 통한 전형적인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건 작가가 기존의 드라마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런 면면들은 이 드라마가 ‘미투 운동’을 연상케 하는 회사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캐릭터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이 드라마가 그리는 윤진아를 포함한 몇몇 여성 캐릭터는 명민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용당하기도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를 테면 강세영(정유진) 같은 인물이 남호균(박혁권)의 감언이설에 속아 윤진아를 밀어내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그가 서준희를 좋아했었다는 설정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즉 흔한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질투라는 클리셰적 코드가 이 안에도 들어있다. 

윤진아가 각성된 인물로 그려지다 어느 순간 ‘민폐녀’가 되고만 건 결국 그 좋은 캐릭터의 설정이 ‘클리셰’를 깨는데 활용되기보다는 오히려 ‘클리셰’에 잡혀 먹히는 이야기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윤진아의 각성이 다시 전면에 나올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사안에서도 또 개인적 사랑에서도 더 이상 ‘포기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한 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담는 것이다. 마지막의 결론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과정과 선택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불편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지금의 상황을 뒤집는 결과가 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구조 자체가 흔한 ‘클리셰’의 공식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시청자들의 마음이 어째서 좋지 않은가를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그건 작가가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끌고 가기 위한 옛날 방식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클리셰는 이 드라마가 소재로도 잡고 있는 ‘미투 운동’ 같은 성차별에 대한 반대에도 반하는 일이 된다. 과거의 공식을 반복하는 클리셰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이 뚜렷이 들어가고, 심지어 양가 부모의 역할도 어느 정도는 고정되어 있다. 그걸 마지막에 가서 깨기 위한 설정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본래 그것조차 이 클리셰는 공식 중 하나라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우리는 꽤 자주 논란이 불거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직업 비하 논란, 성폭력 미화 논란, 성차별적 장면이 만들어내는 논란 등등. 그래서 논란이 나올 때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며 사과하지만, 그래도 또 논란은 터져 나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이것이 각각의 사안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껏 통용되어 왔고 작가들이 배워왔던 ‘드라마 공식(그건 다른 말로 클리셰다)’ 속에 그 논란거리들이 이미 내재해 있어서다. 결국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지만 볼게 아니라 이 흔한 공식이라는 뿌리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라면 이제 누구나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이 시대의 시청자들이 그 과정을 통해 보고 싶은 건 윤진아라는 과거 ‘클리셰적인’ 인물이 사랑을 통해 각성하고 그래서 회사에서도 또 집에서도 보다 당당한 ‘독립적인 인물’로 거듭나는 모습일 게다. 그 틀에 박힌 상황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아니라.(사진:JTBC)

‘키스 먼저 할까요?’ 감우성과 김선아의 멜로 웃긴데 슬프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요.” ‘오늘만 살자’며 다짐하듯 손목에 그 글씨를 문신하고 안 마시던 술을 진탕 마셔버린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은 누가 더 절망적인가를 내기하듯 자신의 불행을 하나씩 내놓는다. 안순진은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지만, 늘 미소 짓는 그 웃음이 진짜가 아닌 가식이었다고 말한다. 

“전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어요.” 안순진이 내놓은 불행담에 손무한이 내놓은 불행은 울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그것이 무슨 불행인가 싶지만 그건 그런 감정 자체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아픔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안고 이제는 별 다른 희망 따위도 사라진 어른들은 그렇게 만나 당장 오늘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 안하던 짓을 한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손무한과 안순진의 만남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설렘과는 전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같은 불행 속에서 그 아픔을 공유하며 만났다. 6년 전 흔들리는 기체에서 승무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나 서로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죽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토로했던 그들. 이혼한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손무한은 안순진에게 건네며 태워 버려달라고 했고, 안순진은 차마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안순진은 그 때 한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동물원을 찾아갔고, 손무한은 그가 준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안순진 때문인지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 눈 내리는 동물원, 한 켠에서 오열하는 안순진에게 손무한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건 그의 아픔과 상처를 똑같이 느끼는 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사진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줄곧 따라왔다는 손무한에게 안순진은 사진을 버렸다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은 영영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손무한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서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말해주었던 것. 

그 후로 6년이 지난 후 윗층 아래층 이웃으로 다시 안순진을 만나게 된 손무한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그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절망감에 죽음까지 결심했던 안순진을 애써 구해냈던 그 때의 기억을. 하지만 안순진은 그 때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겨버린 것. 하지만 손무한의 등장은 그에게 그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놓는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로부터 안순진과 손무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진짜로 웃어본 일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울 정도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먼 길을 돌아온 두 사람은 그래서 ‘오늘만 살자’며 그간 안 해본 일들을 해보려 한다. ‘키스 먼저’ 하는 일도, ‘함께 자는 일’도 그들에게는 그래서 남다른 일이 된다. 그건 각자 버텨내던 삶에서 이제 ‘함께 버텨내는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든 함께 할까요?” 기억을 되살려낸 안순진의 이 제안은 그래서 도발적이면서도 가슴 먹먹한 느낌을 준다. 너무 아픈 기억 속에서 살아와 메말라버린 것 같던 웃음과 눈물이 그 ‘함께 하자는 말’ 한 마디에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다 보면 뭐 새로울 것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 설렘도 기대감도 없는 ‘오늘’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도 서로가 겪고 있는 그 무뎌짐을 공유하고 누구나 가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으로 새로운 사랑의 문이 열리기도 할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가 중년들에게 주는 공감은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진짜 웃음과 눈물을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중년들에게는 더더욱.(사진:SBS)

평범 속의 비범, <또 오해영>에 이은 <낭만닥터>의 서현진


tvN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은 너무나 평범해서 똑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오해영과 비교당하며 살아가는 역할을 연기했다. 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이 되어버리고, 하는 일도 또 연애도 주인공들 뒤편에서 바라보는 역할에 머무는 삶. <또 오해영>이라는 작품은 그래서 이미 2001년에 걸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해체된 후, 2016년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아주 천천히 하지만 결코 느슨하지 않게 작은 역할들을 연기하며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던 서현진의 실제 삶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던가. 그 평범함에 묻혀 있던 서현진이 <또 오해영>이라는 작품으로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을 가진 주인공임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서현진에게는 그래서 감회가 남달랐을 작품이다. 그 이전까지는 주인공이라고 해도 주목받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은 다르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물론 김사부 역할의 한석규나 강동주 역할의 유연석이 있지만 그 중심추로서 윤서정을 연기하는 서현진이 서 있다. 그녀는 온전히 그 여주인공으로서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이란 캐릭터는 결코 쉽게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등장하자마자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것도 그녀는 차 안에서 그에게 했던 말 한 마디가 그런 교통사고로 이어졌을 거라는 자책감까지 갖게 됐다. 충격에 산을 오르다 손을 다쳤고 외과의사로서 사형선고가 내려질 그 위기를 김사부가 구해줬다. 하지만 그 과거의 아픔과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병원 내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윤서정은 결코 죽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인물은 아니다. 대신 그 와중에도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 그것이 미안한 감정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살겠다는 의지가 절실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돌담병원과 김사부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채 그녀는 다양한 연기의 폭을 보여줘야 한다. 유연석과는 밀고 당기는 멜로의 감정과 함께 과거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 남자친구의 트라우마를 넘어서는 연기를 보여줘야 하고, 한석규와는 그 트라우마 때문에 바닥까지 내려왔던 외과의사로서의 길을 다시금 걸을 수 있는 치열한 성장드라마의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서현진은 이 장르적으로는 멜로드라마와 장르드라마를 오가는 작품을 너무나 잘 소화해내고 있다. 외과의사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면면이 보여지는 동시에, 연애의 풋풋함과 아픈 기억의 절망감이 연기에 잘 녹아들어 있다. 무엇보다 서현진이라는 배우가 괜찮다 여겨지는 건 자연스러움이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 튀기보다는 상황 속에 잘 스며있다는 느낌을 준다.

 

평범 속의 비범. 아마도 서현진이라는 배우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지극히 평범해 길거리 어디선가 마주쳤을 지도 모를 그런 이미지를 보이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범한 매력들이 드러난다. 이것은 서현진이 향후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낼 연기자로서 성장하는데 좋은 바탕을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중장년 연기자들은 넘쳐나도 이제 중심을 잡아줄 새로운 연기자들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 여배우들은 더더욱 그렇다. 젊은 나이에 주목을 끌던 여배우가 조금씩 필모그라피를 쌓아가며 성장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서현진이라는 여배우의 등장은 우리네 드라마나 영화에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성시대에 걸맞는 참 괜찮은 배우를 만나게 되었으니.

멜로드라마 세상, 남자주인공들의 지분율

 

바야흐로 멜로드라마의 세상이다. 한때 드라마에서 멜로는 성공하기 어렵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멜로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월화의 <구르미 그린 달빛><달의 연인>은 멜로 버전의 사극이고, 수목은 <질투의 화신>, <쇼핑왕 루이> 그리고 <공항 가는 길> 세 작품이 모두 멜로다. 거의 일주일 내내 멜로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런데 멜로드라마에서 역시 눈에 띄는 건 남자주인공이다. 물론 여자주인공의 역할이 작은 건 아니지만 확실히 여성 시청청이 대부분인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의 지분율을 절대적이다. 그래서 뜨는 멜로드라마에는 뜨는 남자주인공이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배우가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박보검이다. 이제는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과찬이 아닐 정도로 박보검의 존재감은 이 작품을 넘어서 방송가까지 넘쳐나고 있다. 어딘지 아이 같은 눈빛과 외모지만 그 안에 의외의 어른스러움과 슬픔 같은 것을 담고 있는 박보검은 보는 이들을 시쳇말로 심쿵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는 작가가 대놓고 박보검 캐스팅에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박보검 보기 위해 이 드라마를 본다는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달의 연인>을 그나마 보게 만드는 요인도 다름 아닌 이준기와 강하늘이라는 두 배우의 존재감이다. 꽃미남의 외모에서 개늑대의 야성으로 돌변하는 이준기의 양면적인 매력과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는 이 사극에 진중함과 어떤 비장미 같은 걸 만들어내는 강하늘의 매력이 절대적이다.

 

수목드라마는 한 마디로 멜로드라마들, 그 중에서도 남자주인공들의 대결이 되었다. <질투의 화신>의 조정석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희안하게 어찌 보면 조금은 지질해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허세 가득한 모습이 귀엽게도 보이는 그의 연기는 이번 작품에서 버럭버럭 화를 낼 때조차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웃기지만 짠한 느낌은 조정석이 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드러낸 배우로서의 가치다.

 

새로 시작한 <쇼핑왕 루이> 역시 이중적인 면을 잘 소화해내고 있는 서인국의 지분율이 절대적인 작품이다. 전 세계의 명품 한정판을 찾아가며 쇼핑하는 것으로 생활하던 대부호의 손자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고 꽃거지로 거리를 전전하며 거기서 우연히 만난 시골소녀로부터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알아간다는 드라마. 여기서 대부호의 손자로 생활해왔지만 이제 현실은 시골소녀에 붙어먹고 사는 꽃거지인 루이 역할의 서인국은 이 양면적인 모습들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수목극에서 유일하게 여성 주인공에 더 집중하게 되는 건 <공항 가는 길>이다. 김하늘이 중심이 되어 있는 이 작품은 딸을 둔 여자주인공이 그 딸과 함께 지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이의 아빠와 감정적인 공유와 위로, 위안을 통해 조금씩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하늘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역시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건 작품의 성패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월화의 박보검이 있다면 수목에는 조정석이 있다. 드라마가 잘 돼서 남자주인공이 주목받는 것도 있지만, 거꾸로 이들 남자주인공들의 매력이 드라마를 견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들이 있어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는 한층 올라가고 있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된다는 반응이 나올 만큼.

<닥터스>, 다채로워진 박신혜 자연스러워진 김래원

 

섬세하고 따뜻했던 드라마 덕분인가. SBS <닥터스> 종영에 즈음해 되새겨보면 박신혜와 김래원에게 이 작품은 한 뼘 더 성장하게 해준 고마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에 머물지 않았고, 멜로드라마지만 사적인 사랑을 넘어 휴머니즘까지를 담아낸 <닥터스>. 자칫 그 섬세함이 드러나지 않으면 밋밋해질 수 있는 관계와 구도들을 생생하게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공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박신혜가 연기한 유혜정은 결국 복수의 감정을 사랑으로 이겨낸 인물이다. 그러니 이 내적 갈등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건 이 연기가 가진 중요한 지점이다. 그녀는 과거 할머니의 죽음 때문에 진명훈 원장(엄효섭)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으로서 그를 살려내는 길을 택한다.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홍지홍(김래원)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진명훈 원장의 위험천만한 종양수술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만일 홍지홍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명훈 원장의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그녀 안에 자리한 과거의 부채감과 증오를 극복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 장면은 그래서 <닥터스>가 가진 멜로구도와 복수극 그리고 의학드라마라는 다채로운 장르적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여지고 또한 풀어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의사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냉철한 모습과 할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고 분노하는 한 서민의 모습 그리고 홍지홍 앞에서는 사랑스런 여자로 변모해가는 그 모습들이 박신혜라는 연기자를 통해 다채로운 결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지금껏 그녀가 해온 캐릭터들에서 진일보한 면모다. 어딘지 여전히 소녀 같고 교복을 입어야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지만 이제 그녀는 그 위에 프로페셔널한 전문직 여성의 카리스마와 사랑에 빠진 여성의 달콤함을 얹었다. <닥터스>는 그녀의 이런 연기자로서의 성취가 아니었다면 결코 잔잔하지만 묵직하며 따뜻한 그 감동을 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라는 연기자가 다채로운 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김래원은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서게 됐다. 본래 <넌 어느 별에서 왔니><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같은 풋풋한 청춘 멜로가 잘 어울리던 연기자였지만 언젠가부터 김래원은 하는 역할들이 너무 무거웠던 게 사실이다. <천일의 약속>의 지형이나 <펀치>의 박정환은 그래서 그에게는 너무 힘이 들어간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닥터스>의 홍지홍은 마치 그간의 무거움을 털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훨씬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진 김래원의 면면들을 제대로 끄집어내줬다. 어찌 보면 선생과 제자의 결코 나이차가 적지 않은 설정의 사랑이지만 김래원 특유의 풋풋함과 능글맞음이 적절히 조화된 모습은 그 어색함마저 설렘으로 바꿔놓았다.

 

좋은 작품은 연기자들 또한 성장시킨다. <닥터스>는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박신혜와 김래원의 성장점이 될 만한 작품이다. <닥터스>가 보여줬던 그 따뜻함과 유쾌함과 진지함이 모두 연기자들이 잘 소화해낸 캐릭터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좋은 작품이었고 좋은 캐릭터였으며 좋은 연기자들이었다

청춘 보고서 <청춘시대>, 그저 달달한 멜로를 선택하지 않은 까닭

 

JTBC <청춘시대>에는 무려 다섯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윤진명(한예리), 정예은(한승연), 송지원(박은빈), 강이나(류화영), 윤은재(박혜수)가 그들이다. 그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캐릭터들이다. 연애가 사치일 정도로 여유 없는 짠한 청춘의 전형을 보여주는 윤진명,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나쁜 놈이란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정예은, 늘 인기 만점이지만 정작 남자친구는 없는 모태솔로 송지원, 제 몸 하나 맘대로 굴려 스폰서를 전전하며 막 살아가는 구질구질한 건 못 견디는 강이나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귀여운 새내기 윤은재.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하지만 무려 다섯 명의 이런 반짝이는 여주인공을 세우고 있는 드라마에 눈에 띄는 남자주인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남자를 초대해 벌인 이른바 수컷의 밤파티를 보면 이런 면들이 단박에 드러난다. 윤진명은 아예 파티에 참가하지 않았고, 정예은은 결국 그 나쁜 놈을 데려왔다. 강이나는 바에서 알게 된 어딘지 미스테리한 아저씨를 초대했고 윤은재는 벌칙이 싫어 자신을 따라다니는 선배 윤종열(신현수)을 데려왔다. 파티를 주도한 송지원은 역시 캐릭터에 걸맞게 한 사람도 초대시키지 못했다.

 

누가 봐도 청춘 멜로드라마라고 여길만한 <청춘시대>에 정작 남자주인공이 이렇게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나마 자신의 현실 때문에 남자를 자꾸 밀어내는 윤진명에게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이는 박재완(윤박)이 눈에 띄는 남자지만, 그 역시 이 드라마에서 중심적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윤종열 역시 조금씩 윤은재와 가까워지지만 남자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존재감은 아니다.

 

그렇다고 멜로의 애틋함이나 달달함이 없는 건 아니다. 윤진명과 박재완의 관계는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시청자들은 알지만, 그 관계를 거부하는 윤진명의 현실이 너무나 공감가고 그렇게 밀려나면서도 늘 곁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서성이는 박재완이 못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의 외적인 요소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렸던 윤은재가 차츰 그녀의 옆자리에 있는 선배 윤종열에게 마음을 주는 모습은 한 마디로 풋풋한 첫사랑의 설렘이 묻어난다.

 

그런데 <청춘시대>는 이들의 멜로를 살짝 살짝 양념처럼 치고는 있지만 결국 에포크 하우스에 함께 살고 있는 여자 다섯 명의 이야기가 본맛이라는 듯 그들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젊음을 공유한 그들이지만, 그들은 저마다 아픈 비밀스런 자신들만의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 신발장 귀신을 이야기하며 그 귀신이 보인다는 송지원이나, 누군가 죽기를 바랐다는 윤진명(그녀는 식물인간인 자신의 동생이 죽기를 바란다) 그리고 속으로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하는 윤은재는 물론이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팔찌에 무언가 비밀을 갖고 있는 강이나도 모두 미스테리한 과거의 아픔들을 숨기고 있다.

 

멜로는 이들 청춘의 겉면이지만 <청춘시대>는 그 이면에 놓여진 청춘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이것은 <청춘시대>라는 드라마가 그저 달달한 사랑 타령을 하는 단순한 청춘 멜로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거기에는 일종의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보고서 같은 아픈 현실의 이면들이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숨겨져 있다.

 

어찌 보면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큰 약점이 될 수 있다. 결국 멜로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여성들에게 남자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건 가장 중요한 선택의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춘시대>는 여자주인공들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반면 남자주인공들은 살짝 뒤로 밀려나 있다.

 

이것은 혹시 그저 청춘을 첫사랑같은 이야기로 다룰 수만은 없는 지금의 현실이 투영된 건 아닐까. 물론 그들도 사랑하고 싶어 하고 그것이 청춘의 중요한 순간들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현실이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만일 쉽게 그럴 듯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워 달달한 사랑을 그려냈다면 훨씬 쉽게 대중성을 확보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청춘시대>는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그건 달달할 뿐 현실을 마비시키는 거짓 판타지이니까. <청춘시대>가 대중성을 떠나 괜찮은 드라마라는 이유다.

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어떤 의미인가

 

멜로드라마에서 키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혹자는 사실상 멜로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남녀가 키스하는 그 순간의 달달함 때문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멜로드라마에서의 키스는 남녀의 관계가 좋은 감정 이상의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이고, 그로부터 멜로 특유의 행복감이 생겨나는 지점이며 또한 불안감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닥터스(사진출처:SBS)'

최근 부쩍 많아진 멜로드라마들에서 키스 장면이 만들어내는 관심거리와 화제는 그 드라마의 인기의 척도처럼 얘기된다. 이를테면 종영한 tvN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서현진)과 박도경(에릭)이 하는 키스신은 서로 치고 받는 격렬한 느낌을 줌으로써 큰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의 쌓여 있던 감정들과 그것이 풀어내지는 과정을 그런 독특한 키스신이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하는 키스신은 조금 어색하고 서툴러 더 설레는 장면이 되었다. 즉 한 번도 키스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떨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키스신은 <닥터스>가 그려나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주며 성장해가는 그 과정에 잘 걸 맞는 것이었다. 키스신조차 기분 좋은 경험과 배움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W>의 키스신은 작품의 성격에 맞게 맥락 없이자주 벌어진다. 즉 극중 여주인공인 오연주(한효주)가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에게 뜬금없이 키스를 해대는 것. 물론 그 이유는 그녀가 웹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려는 목적 때문이지만, 그런 잦은 키스신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급진전되었다. 유머 있고 위트 있는 키스신이 작품의 묘미를 한층 높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키스신은 자못 비장하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신준영(김우빈)은 자신이 점점 사랑하게 된 노을(수지)을 자꾸 밀어내다가 결국 기습키스를 하게 된다. 이 키스신은 신준영이 참다 참다 못해 내적으로 응축된 그 사랑을 폭발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으로서 임팩트가 있게 다가온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에서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그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인 김현지(김소현)가 귀신 보는 박봉팔(옥택연)과 키스를 우연히 하게 됐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일종의 핑계처럼 보이지만 이런 설정이 의외로 선선히 키스신을 가능하게 해 남녀의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드는 장치인 건 분명하다.

 

한편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공감 능력이 없는 이영오(장혁)가 계진성(박소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답변으로서 계진성이 이영오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아무래도 공감 능력이 없어 사랑의 감정은 물론이고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이영오에게 계진성이 한 걸음 다가가는 의미로서 키스신이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이처럼 그저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변주된다. 때론 의도적으로 관계를 급진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설정들을 통해 넣기도 하지만, 때론 향후의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 오히려 자제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키스신의 한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키스신의 반응은 그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를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닥터스>, 상투성을 깨는 하명희 작가의 좋은 시선

 

병원에서의 직진 로맨스와 34각 멜로,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한 대결 구도, 수술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인에 의혹을 품고 그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한 추적. SBS <닥터스>가 다루는 소재들은 의학드라마에서 늘 봐오던 것들이다. 로맨스야 심지어 가운 입고 연애한다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많이 나온 소재이고, 권력 대결은 <하얀거탑> 이후 의학드라마의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소재다. 여기에 죽음의 사인을 추적하는 이야기 역시 그리 새롭다 말하긴 어렵다.

 

'닥터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닥터스>는 이처럼 어찌 보면 상투적인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전혀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 들어가면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예를 들어 이미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서로 좋은 감정을 드러내고 남녀로서 가까워지고 있지만, 유혜정에게 공공연히 호감을 드러내는 정윤도(윤균상)와 또 그를 좋아하는 진서우(이성경)의 멜로구도를 보자. 이건 틀에 박힌 4각 구도가 아닌가.

 

하지만 그 4각 구도가 보여주는 양상은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그려낸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정윤도는 유혜정과 홍지홍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연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걸 질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대놓고 틈만 보이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홍지홍에게 마치 동생처럼 밥 사라고 투덜대기도 한다. 이들의 멜로 관계는 그 속내를 다 알지만 질척임 같은 것도 없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갈등 같은 건 더더욱 없다.

 

정윤도를 좋아하지만 그가 유혜정에게 호감을 보이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진서우라는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밉상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4각 멜로에서 보여주는 그런 식의 폭주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상황과 자라온 환경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 태생적으로 구제불능 캐릭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 주변에 피영국(백성현) 같은 친구가 있어 그녀를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봐주는 건 이 캐릭터에 대해 작가가 역시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해 홍두식(이호재)과 진성종(전국환)이 대립하고 그래서 홍두식은 진성종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본래 친구관계였다는 걸 끝내 버리지 않는다. 재수술을 앞두고 있는 진성종에게 홍두식이 면회 오자 그는 얼굴은 괜찮냐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홍두식은 진성종의 비자금을 알고 있다며 각을 세운다. 사적으로는 친구 관계지만 공적으로는 대립적인 관계라는 게 둘 사이에서는 공존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들 진명훈(엄효섭)수술이 잘못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진성종은 발끈하며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고 오히려 자식을 질책하는 대목 역시 독특하다. 흔한 병원 권력 투쟁의 이야기라면 이 진성종-진명훈 부자가 권력 쟁취를 위해 막나가는 그런 장면들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그와는 사뭇 다른 양상들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런 상투적 소재들 속에서도 상투성을 뛰어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이기도 하면서(이 드라마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명희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남다른 인물관에서 비롯된다.

 

하명희 작가는 심지어 불륜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애써 찾아낼 정도로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인물들이 폭주하는 그런 막장적인 상황 속에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그려진다. 우리가 그저 극적 전개를 위한 악역으로 치부해온 인물들도 그 속으로 들어가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진서우라는 밉상 캐릭터에게 홍지홍이 난 네 담탱이야. 네가 잘 되길 빌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마치 작가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밉상이지만 그래도 작가는 끝까지 그녀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영향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닥터스>는 그래서 의학드라마지만 환자를 고치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의 의학드라마라기보다는, 의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관계들을 통해 치유 받을 수 있는가를 다루는 의학드라마처럼 보인다. 유혜정은 그렇게 나락에서 홍지홍을 통해 구원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인물의 구원이나 성장이 교사가 학생에게 주는 것 같은 그런 일방향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다시 의사가 되어 유혜정을 만난 홍지홍은 그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홀로 서는 일에만 익숙했던 유혜정의 삶은 그것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홍지홍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혜정은 홍지홍에게 힘든 일도 모두 공유하자고 말한다. 홍지홍 역시 모든 걸 혼자 떠안고 결정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변화하고 성장한다. 뻔한 상투성의 소재 속에서도 <닥터스>가 주는 따뜻함과 위로, 위안 나아가 구원 같은 느낌은 바로 이 하명희 작가의 사람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에서 비롯되고 있다

<태후>, 새드엔딩 싫지만 그래도 불사신 주인공이라니

 

불멸의 유시진’, ‘좀비 유시진’, ‘불사조 유시진’. KBS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유시진은 이제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어가고 있다. 교전 중 총에 맞아 의식을 잃었고 원대복귀 하지 못했으며 사망 통지까지 날아온 그지만 1년 후 알바니아에 의료봉사를 간 강모연(송혜교) 앞에 그는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그렇게 돌아온 유시진에게 강모연이 말도 안돼라고 말하는 대목은 아마도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이미 죽은 줄 알고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1년을 지낸 그녀가 아닌가. 그런 그녀 앞에 다시 돌아온 유시진은 그녀에게 그 어려운 걸 또 내가 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였다.

 

사실 유시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강모연에게 전해지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도 그가 진짜로 죽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 모두 바라는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껏 수차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르크에서 강모연이 납치되었을 때도 그녀를 구하다 총에 맞은 바 있고, 국내에서 벌어진 총격전에서도 총에 맞았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툭툭 털고 돌아와 여전히 농담을 날렸다. 그러니 그가 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져도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누구나 예상했을 것이다. 만일 살아 돌아오지 않고 끝난다면 그건 지금껏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유시진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유시진이 이렇게 죽을 고비를 끝없이 겪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이 이 달달한 멜로드라마에 긴장감을 유발하고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삼각, 사각의 멜로 구도를 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멜로드라마에서 삼각, 사각 구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긴장감을 만들기 위함이지만, 이 드라마는 대신 전쟁, 재난, 전염병 같은 것들이 사랑의 장애물로 활용된다. 따라서 유시진이나 강모연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긴장감은 높아진다.

 

특히 유시진이 불사조가 된 까닭은 그가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이다. 강모연이 일하는 병원이라는 공간보다 유시진이 뛰어들어야 하는 전장이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러니 멜로의 장애로서 그가 끝없이 위험 속에 들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문제가 생긴다. 삼각, 사각 멜로의 장애라고 해봐야 남녀의 마음이 돌아섰다 다시 돌아오는 정도로 그럴 듯한 이야기의 개연성이 만들어지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는 장애라면 계속 해서 살아 돌아온다는 것이 그럴 듯한 개연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알바니아의 어느 풍광 좋은 곳에서 추모의 꽃다발을 내려놓는 강모연 앞에 갑자기 나타난 유시진의 몰골은 방금 어딘가에서 탈출해 돌아온 듯 초췌해 있었다. 아무리 극적인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지만 바로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달려온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김은숙 작가는 <태양의 후예>판타지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하지만 판타지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갖춰져야 공감이 가지 않을까. 그 누구도 새드엔딩을 바라지 않지만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자칫 지금껏 잘 달려온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월화 <육룡>, 수목 <태후>, 금토 <시그널>

 

드라마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월화에 SBS <육룡이 나르샤>가 있다면 수목에는 KBS <태양의 후예>가 있고 금토에는 tvN <시그널>이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나오는 얘기. 어떻게 일주일을 또 기다리느냐는 얘기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만큼 완성도도 높고 몰입감도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명품드라마들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이들 명품드라마들은 확실히 과거의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육룡이 나르샤>는 사극이지만 이전의 사극이 아니며, <태양의 후예>는 멜로드라마지만 그저 그랬던 과거의 멜로가 아니다. <시그널>은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와 깊이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들이 화제성은 물론이고 시청률까지 가져가고 있다는 건 주목할 일이다.

 

과거의 경우 드라마는 막연하게 성공 공식 같은 것들이 있다고 여겨졌다. 이를 종합선물세트로 차려놓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률을 가져간 게 막장드라마들이다. 또한 지상파는 그 주시청층이 정해져 있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도(어쩌면 그것이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이 시청률을 담보하지는 못한다고 믿어져 왔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한 마디로 적당(?)히 만들어졌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의 후예>처럼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담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6회만에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다는 것이 그렇고, <시그널>처럼 멜로도 없는 본격 장르물(그것도 형사물은 시청률에서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이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를 가져갔다는 것도 그렇다. 무려 50부작에 이르는 사극이지만 한 회 한 회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육룡이 나르샤>의 선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확언하긴 어렵지만 추정할 수 있는 건 드라마의 시청층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40대 드라마 시청층은 30대부터 우리네 드라마와 미드, 일드를 함께 즐기며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갈증을 키워왔던 세대다. 이들은 기성의 드라마 주시청층이 좋아하던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 복수극을 담은 막장드라마 같은 공식적인 드라마도 보지만 동시에 본격 장르물에 대한 선호도도 높은 시청층이다. 그 누구보다 막장드라마를 개탄해하고 완성도 높은 명품드라마가 등장하기를 기다려온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막장드라마 논란을 일으킨 MBC <내 딸 금사월>에 관계자 징계와 주의라는 법정 제재 같은 이례적인 조치를 내린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미 막장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방심위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청률이면 얼토당토않은 개연성에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아내던 막장드라마는 조금씩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의 새로운 판도가 열리고 있다. 변화의 시점에 그 헤게모니를 누가 잡는가는 방송사들의 사활을 건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전쟁의 방식이 과거처럼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막장드라마 경쟁 같은 퇴행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제 아무리 시청률을 가져간다고 해도 대중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바 있고, 또 새로움을 요구하는 시청층을 잡지 않으면 광고 매출 같은 직접적인 수익에도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한 때는 주중에까지 침투해 들어왔던 막장드라마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었지만 이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명품드라마들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풍경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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