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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전문직을 끌어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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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군의 남녀들이 삼각 사각으로 엮이던 전통적인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으면서 등장한 것이 전문직 장르드라마다. 그만큼 직업에 대한 디테일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 '멜로는 이젠 별로'라는 인식이 자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파스타'는 그 하나로서 멜로드라마가 거꾸로 전문직의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그 오랜 전통으로 볼 때, 드라마가 가진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극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그 속에 사랑과 이별이 빠질 수는 없다. 즉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추락은 그 본질적인 요소의 추락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지 못한 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다. 무늬만 전문직인 캐릭터들과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돌고 도는 복잡한 삼각 사각관계의 멜로드라마는 그 내적인 장치를 모두 시청자들에게 들킴으로 인해서 식상해져 버렸다.

그 해법은 멜로드라마의 추락과 함께 부상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발견되었다.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전문직의 세계, 권력과 욕망과 자기 성장이 부딪치는 그 세계 속에서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했던 흥미진진한 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문직 장르 드라마는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화제성으로 주목받았던 '하얀거탑'이 20%대의 시청률에 머문 것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멜로드라마와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결합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뉴하트' 같은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와 멜로드라마가 적절히 엮어지면서 시청률에도 성공하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재미적인 요소의 한 부분으로서 멜로를 활용하는 것이지, 멜로드라마의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가능성을 보인 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이 드라마는 청춘 멜로를 다루면서 전문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일의 세계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다루었다. 커피 전문점이라는 공간과 그 금녀의 공간에 남장여자로 들어가는 고은찬이라는 캐릭터는 모두 직업적인 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위에서 이 청춘 멜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파스타'는 그 연장선에서 좀 더 직업적인 전문성이 확장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쉐프를 꿈꾸는 여성 요리사 서유경(공효진)과 새롭게 부임한 마초 쉐프 최현욱(이선균)의 밀고 당기는 멜로를 그리는 이 드라마는, 그 멜로의 틀 속에 직업적인 세계를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다. 주방에서의 쉐프의 사랑은 자칫 요리사들에 대한 형평성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이 멜로가 갖는 장애요소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즉 직업이 사랑의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만 빠져 직업을 등한시하던 과거적인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양상이다.

'파스타'는 막내 요리사와 쉐프의 사랑을 그리면서 또한 여성 쉐프의 꿈을 꾸는 한 여성 직업인의 성장드라마를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멜로드라마는 성공적으로 전문적인 직업의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유경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자기 직업에 대한 사랑은 이 멜로드라마를 팽팽하게 해준다. 사랑 앞에서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의 모습은 현대 직업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일과 사랑 사이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이로써 '파스타'를 통해 한 단계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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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긴장감 놓지 않는 '파스타'의 일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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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선덕여왕'의 독주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된 월화극 삼파전에 '파스타'는 꼴찌로 시작했다. 장르적으로 보면 그것은 당연해 보였다. 사극 '제중원'이 당연히 시청률 1위를 할 것이고, 사회극의 성격을 가진 '공부의 신'이 그 다음을, 그리고 멜로드라마인 '파스타'가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라 예상됐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가 가진 힘에 의한 서열은 '공부의 신'이 앞서나가고 '제중원'이 뒤떨어지면서 무너졌다. 그 와중에 멜로드라마로서 '파스타'는 놀랄만한 힘을 보여주었다. 사극 '제중원'을 앞서나갔고, '공부의 신'이 종영하고는 드디어 시청률 20%를 넘기면서 수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멜로드라마는 그다지 시청률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멜로드라마들이 갖는 천편일률적인 삼각 사각 구도의 사랑타령이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멜로드라마가 그 특성으로 취해왔던 '운명적인 거창한 이야기'가 작금의 시청자들에게 그저 감정 과잉의 드라마로 인식되게 된 것은 가장 큰 멜로드라마의 한계로 지적되었다. 따라서 멜로드라마의 이야기구조는 사극 속으로 편입되거나, 가족드라마 속으로 들어가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 속에 끼워 넣어지는 상황에 도달했다. 멜로드라마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 현실(리얼리티)을 확보하는 것으로서 '파스타'가 시도한 것은 일과 사랑을 적절히 엮는 것이었다. 그간의 멜로드라마들이 저마다 멋진 직업을 가져왔지만 직업과는 상관없이 남녀 간의 감정 게임에 몰두해왔다면, '파스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요리사라는 직업 속에서 그 일이 갖는 의미에 천착하면서도, 그것을 또한 사랑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서유경(공효진)이라는 캐릭터가 기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멜로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전문직 장르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성장드라마가 갖는 개인적 성취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전문직 장르드라마가 멜로드라마를 끼워 넣던 형국에서 거꾸로 멜로드라마가 전문직 장르드라마를 활용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파스타'는 라스페라라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요리사로 성장해가는 서유경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사랑은 새롭게 부임한 까칠한 셰프 최현욱(이선균)과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라스페라의 주방은 이 일과 사랑이 동시에 얽혀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최현욱의 호언장담처럼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고 말한 그 곳에서 조금씩 그 선을 넘어서는 멜로는 그만큼 달콤해지고, 서열이 엄격한 주방에서 조금씩 인정받아가는 서유경의 일은 그만큼 흐뭇해진다.

결국 '파스타'가 보통의 멜로드라마들이 겪던 침체의 길을 걷지 않고 끝까지 힘을 유지하면서 막판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과 사랑을 엮으면서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면 이미 결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지만, '파스타'는 공개적인 연인 선언을 한 이후에도 라스페라라는 공간 속에서 살얼음을 걷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것은 어쩌면 '커피 프린스 1호점' 이후부터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는 '전문직이 있는 청춘멜로'의 경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외과의사 봉달희' 같은 멜로가 섞인 전문직 장르드라마는, 이제 '파스타' 같은 전문직의 리얼리티를 살려낸 멜로드라마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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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가 일과 사랑을 엮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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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파스타’와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러 모로 닮았다. 먼저 음식점이 배경이라는 점이다. 커피 전문점과 파스타 전문점은 이 드라마들에 묘한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들다. 그 공간에 포진한 꽃미남들과 그 속에 유일하게 서 있는 홍일점 주인공이라는 설정도 그렇다. 여기서 가능해지는 것은 일과 사랑의 공존이다. 일터라는 공간 속의 남과 여. 그것도 여러 명의 남자들과 여자 한 명이라는 설정은 이 여자 주인공의 일과 사랑이 가진 난관을 더 첨예하게 만든다. 남자들과 경쟁해야 하고, 또 그 남자들 중 하나와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파스타’와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남자 주인공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결(공유)이나 한성(이선균)은 모두 한없이 여성들에게 부드러운 남자들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꽃미남 종업원들도 모두 수직적인 위계질서와는 거리가 먼 수평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들이다. 하지만 최현욱(이선균)으로 대변되는 ‘파스타’의 라스페라에 있는 남자들은 위계질서 속에 서 있다. 마치 소리 지르는 게 일상인 듯 이들은 서로 자신의 위치가 높다고 으르렁댄다.

그러니 공간이 주는 분위기도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늘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주지만, ‘파스타’의 라스페라는 늘 전쟁터다. 주방장은 사장과 늘 대립하고, 직원들 위에 군림하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새 주방장 현욱이 데려온 요리사들은 기존 라스페라의 요리사들과 대립하며 헤게모니 싸움을 벌인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유일한 여성인 서유경(공효진)은 편견에 얽매인 남성들의 세계와 부딪치며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라스페라의 주방이 환기시키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직장의 세계, 그 위계질서의 세계 속에서 직장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상황을 라스페라의 주방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가진 남성 헤게모니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팀장 현욱의 마초적인 권위와 그 속에서 패배하지 않고 버텨내는 이제 막 인턴을 끝낸 사원(?) 서유경의 모습이 많은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라스페라의 주방이 또한 주방장 현욱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주방장이 바뀌면 주방의 풍경도 바뀌는 것은, 주방장의 마음이 고스란히 주방에 변화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욱이 라스페라에 오면서 주방은 전쟁터가 된다. 그것은 현욱의 마음이 ‘전쟁중’이기 때문이다. 이 사랑과 성공에 상처 입은 요리사는 그 마음 그대로 주방에서 감정을 지워버린다. 주방에서의 사랑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일과 사랑을 다루는 멜로드라마의 접점이 생겨난다. 주방장 현욱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내는 라스페라의 주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존재 서유경은, 바로 그대로 현욱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드라마 ‘파스타’는 일과 사랑을 다룸에 있어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이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맛을 낸다. 현실의 축소판으로서의 주방과 상처 입은 주방장의 마음을 대변하는 주방을 일치시킴으로써, 그 이야기가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멜로의 틀을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남자의 주방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와 그 남자의 마음을 여는 이야기가 서로 맞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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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는 불평등을 다루는 멜로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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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사진출처:MBC)

요리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 남자가 꽤 감성적이고 여성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행동할 것 같은 자상함을 가졌을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틀렸다. 요리하는 남자라고 꼭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요리사라는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면 그 요리는 어쩌면 전쟁과 같은 것이 될 지도 모른다.

파스타라는 요리를 소재로 삼는 드라마 '파스타'는 이런 편견을 트릭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그 트릭에 동원된 배우는 부드러운 남자의 대명사격인 이선균이다. 그러니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터져버린 비닐봉지에서 떨어진 금붕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서유경(공효진)의 두 손을 모아 그 위에 금붕어로 놓고 물을 부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최현욱(이선균)은, 바로 그런 요리하는 남자가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상함과 감성을 지닌 존재처럼 시청자의 마음을 한껏 푸근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남자. 절대 여성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남녀평등? 그런 건 자신의 주방에서는 꺼내지도 못하게 할 위인이다. 그렇게 부드럽게 보였던 이 남자는 이제 막 개점 시간이 되고 첫 주문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마초적이고 제멋대로인 남자로 돌변한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가 나왔을 때는 거침없이 접시째로 깨버린다.

처음에는 이 부드러운 쉐프가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그것처럼 조화로울 것이라 착각했지만, 점차 그 장면은 군인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행동처럼 변모한다. 그는 요리를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주문을 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몇 분만 더 지체되면 야수로 돌변하는 그런 존재로 인식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주문에 맞춰 척척 대응해내지 못하면 곧 죽을 것 같은 자세로 요리하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감성보다는 신속함을 담보해줄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런 그가 이 전쟁터에 여성이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까. 게다가 그는 연인이자 라이벌이었던 성공한 요리사 오세영(이하늬)에게 큰 상처를 입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최고요리사라는 자리를 그에게서 빼앗은 오세영은, 그에게 사랑에 대한 배신감을 갖게 했고, 최고요리사라는 자존심에 금이 가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주방에 여성이란 존재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그것은 물론 현실적으로 볼 때 법적으로도 위배되는 사항이고, 명백하게 심각한 성차별이다. 맞다.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는 애초부터 겉으로는 부드러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남성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마초가 맞다. 오세영의 배신은 그것을 강화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다. 최현욱이란 캐릭터는 남자가 봐도 참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끝으로 몬다. 특히 여성인 서유경에게 하는 짓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최현욱이란 캐릭터에게서 시청자들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왜 이다지도 마초적인 인간에게서 심지어 여성들마저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것이 짐승 같은 남성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소리 지를 수 있는 것도 능력일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생각할 것은 마초라고 불리는 남성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다. 마초라고 하면 늘 남성우월주의에 차서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성희롱을 자행할 것 같지만, 그것은 상상속의 그림일 뿐이다. 마초도 부족하지만 인간이다. 아직 여성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전쟁으로만 여기는 그래서 싸워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그런 불쌍한 인간.

최현욱은 주방을 나서는 그 순간, 즉 요리라는 일과 떨어지는 순간, 마초에서 보통의 남자로 돌아간다. 그는 일의 세계 속에서 비뚤어져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평범해진다. 이것은 어떤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의 존재가 여성성을 알아간다는 것. 그래서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 이것이 이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말단 요리사인 서유경의 성장드라마라고만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는 최현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또한 최현욱의 마초적인 모습은 물론 여성들을 모두 주방에서 내몰았지만, 거기 남아있는 남성들이라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넘어서 한 조직 내에서의 상사와 조직원 간의 관계로 확장된다. 조직의 그런 권위적인 상사에 대한 경험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갖고 있는 것들이다. 남성 시청자가 서유경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남녀평등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에 여전히 존재하는 권위적인 모습에 대한 공감이다. 서유경이 바로 그 권위적인 모습을 조금씩 무너뜨릴 때, 우리는 남녀를 떠나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일찍이 전문직과 멜로드라마가 만났을 때, 불평등이 다루어지던 방식이다. 불평등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투쟁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다. 그리고 투쟁은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는 바로 이 '파스타'와 연결고리를 갖는 드라마들이다. 그들은 모두 각각의 전문직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지만 모두 여성들 앞에서 소리 지르는 마초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멜로를 통해 여성성을 알아가는 존재로 변모해간다.

물론 이것은 분명 전문직과 함께 멜로를 다루는 드라마가 갖는 한계일 것이다. 왜 그들은 꼭 멜로로 그 마초적인 남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데 만족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또한 멜로라는 장르로서는 그나마 평등이라는 가치를 생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는 본래 남과 여 사이에 끼어들어 이를 방해하는 사회적 관습을 다루고, 그 관습을 뛰어넘어 남과 여가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이 목적인 형식이다. 그리고 그 관습에서 수없이 많이 다루어진 것이 남자가 가진 자기중심적 사고관 혹은 세계관이다. '파스타'도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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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BC드라마, 놀러와를 활용 못하는 것이 아쉽다

    Tracked from 노천카페에서 상상을 즐기며  삭제

     MBC 드라마의 전성시대를 본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완전히 KBS가 장악한 느낌이다. 월 화는 공부의 신이 수 목은 추노로 대박을 거두고 있는 것을 보면 에덴의 동쪽 내조의 여왕 선덕여왕에 이르기 까지 풍성한 열매를 맺었던 MBC 가 조금은 주춤해 보인다. 일단은 숨고르기로 보고 싶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더 풍성해지고 알찬 드라마들을 즐길수 있어 그들의 선의의 경쟁이 고맙기만 하다. 물론 드라마의 구성및 탄탄한 스토리 텔링 트..

    2010/01/17 12:01
  2. 태터앤미디어의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말단 요리사인 서유경의 성장드라마라고만 생각하지만, 이 드라마는 최현욱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파스타', 성별을 넘어 공감받는 이유>

    2010/01/17 14:55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사극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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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만일 현대극이었다면 어땠을까. 사극이라는 껍질을 벗겨내면 '선덕여왕'에서 우리는 익숙한 코드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출생의 비밀'이다. 이 드라마업계에서는 이미 안정적인 성공 코드로 취급되는 '출생의 비밀'은 이 사극의 전반부를 거의 차지하고 있다. 살기 위해 중국으로 도피했던 덕만(이요원)의 귀환은 그 신호탄이었다. 그녀는 먼저 언니인 천명(박예진)을 우연히 만나고, 또 친부모인 마야부인(윤유선)과 진평왕(조민기)을 차례차례 만난다.

게다가 그녀는 중국에서 그녀를 키워주었던 소화(서영희)를 또 한 명의 부모로 두고 있기 때문에, 소화의 등장과 덕만과의 재회는 또 하나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사극이 가진 '출생의 비밀' 코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덕만과 함께 버려진 비담(김남길)은 미실(고현정)과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만든다. 미실에게 버려졌으나 돌아온 비담은 또 한 번 버림을 당하는 고통을 맛본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이 부모의 참회로 이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이 코드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출생의 비밀'의 힘은 바로 만남의 시퀀스에서 나온다. 이것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와 가족드라마의 코드다. '선덕여왕'은 인물들 사이사이에 이 만남의 시퀀스를 계속 만들어낸다. 미실과 덕만의 만남, 미실과 소화의 만남, 소화와 칠숙(안길강)의 만남, 덕만과 칠숙의 만남, 소화와 마야부인의 만남, 문노(정호빈)와 미실의 만남, 비담과 소화의 만남, 춘추(유승호)와 덕만의 만남 등등. '선덕여왕'은 이 만남의 시퀀스에서 감정을 강화시키거나 반전을 꾀함으로써 드라마의 힘을 끌어낸다.

멜로드라마의 코드 또한 이제 점점 부상하는 중이다. 덕만과 유신(엄태웅)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이 표면화되고 있고, 그것을 질시하는 비담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운명적 관계는 현대극이라면 어색할 수 있었겠지만 사극 속으로 들어오면서 오히려 흥미진진한 멜로를 만들어낸다. 왜 이럴까. 현대극이라면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일련의 코드들은 사극 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이것은 사극이 가진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멜로드라마가 현대에 이르러 식상하게 된 것은 그 설정이 갖는 비현실성 때문이다. 멜로드라마는 논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감정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드라마다. 그러니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현재의 드라마에서 운명을 운운하는 멜로드라만 특유의 과장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한계는 멜로드라마가 왜 사극이라는 장르와 혼융하여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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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사진출처 :MBC)

사극 속에서 멜로는 현대극이라면 가질 수 없는 '태생적인 계급'이라는 장애요소를 자연스럽게 선취하게 된다. 즉 서열과 신분이 달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을 통해 만들어지는 만남의 시퀀스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극이라는 공간은 현대극이 갖지 못하는 특유의 이야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극이 먼저 그 리얼리티를 바라보게 한다면 사극은 그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바로 이 이야기성은 사극이 왜 타 장르들과 손쉽게 융합이 가능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선덕여왕'은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플래시백을 활용한 추리 형식의 영상연출, 전형적인 무협 액션 같은 요소들 또한 갖고 있다. 또한 '선덕여왕'의 융합 가능성은  매체 간에도 일어난다. 이 사극은 비담 같은 캐릭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무협지나 만화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엮어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적 매체적 요소들을 끌어안는 '선덕여왕'은 사극만이 갖는 가능성을 증폭해서 보여준다. 그것은 낯설음과 친숙함이 동시에 얽혀있는 공간의 구축이다. 거기에서 누군가는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미드 식의 긴박감 넘치는 시추에이션극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정반대로 아주 익숙한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문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사극이 갖는 이야기성의 친숙함이 있는 반면, 만화 같은 낯설음과 신선함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사극이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그 사극의 가능성을 100%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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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드라마 아닌 멜로드라마로서의 '시티홀'의 가치

'시티홀'은 정치드라마가 아니다. 작가가 밝힌 대로(밝히지 않았더라도 명백하게)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왜 자꾸만 정치드라마로서의 미련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 중에서 그만큼 본격적인 정치(정치사가 아닌)를 다룬 드라마가 별로 없기 때문이며, '시티홀'이 가진 설정과 구도가 어쩌면 그 정치드라마의 갈증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축소해놓은 듯한 '시티홀'이 상정한 작은 도시 인주시와, 이 나라의 정치를 풍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그려놓은 듯한 정치적 사건들 역시 그 기대감을 키워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갖고 있었다. 전도유망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 조국(차승원)이 인주시로 내려와 신미래(김선아)라는 10급 공무원을 만나는 과정과, 신미래가 밴댕이 아가씨선발대회에 나가 진에 뽑히는 그 과정이 뒤섞인 초반부에 정치적 색채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미래가 시장 후보로 나서고,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정치드라마로서의 기대감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신미래가 주장하는 정치는 우리가 흔히 신문지상에서 발견하는 현실적인 것과는 달리 지극히 이상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미래의 뒤편에 현실정치를 잘 알고 있는 조국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본격적인 정치적 대결구도가 생겨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신미래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이야기는 그 핵심이 현실정치를 사라져야할 부정적인 것으로 세워놓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말하는 진심이니 진정성이니 하는 것은 이상적인 구호는 될 수 있어도 현실정치의 리얼한 면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현실정치 자체를 적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은 다르다. 그는 신미래라는 돈키호테가 주장하는 그 진정성을 지켜주기 위해 현실정치를 막후에서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즈음에 신미래와 조국의 강력한 멜로 라인이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현실정치를 해야할 조국은 자꾸만 신미래에 빠져들고, 그녀의 이상에 동참하기 위해 그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드라마는 점차 정치를 버리고 본격적인 멜로로 들어가고, 바로 이 멜로까지를 스캔들로 비화시키려는 정치는 이제 멜로와의 적대관계를 형성한다. 멜로와 정치가 대결구도에 서는 것이고 물론 여기서 드라마가 심정적으로 기우는 것은 멜로다.

따라서 드라마는 현실적인 정치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조국과 신미래 사이의 멜로를 제거하고자 갖가지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빅브라더(최일화)와 고고해(윤세아)는 협박과 폭로로 이들의 멜로를 막아선다. 이 과정에서도 정치적인 선택보다 앞서는 것은 부자관계인 조국과 빅브라더, 그리고 약혼한 사이인 조국과 고고해의 그 관계다. 그 관계 사이에 신미래가 끼어든 것이 그들이 그녀와 조국 사이의 멜로를 깨려는 근본적인 이유로 작용한다.

'시티홀'은 따라서 정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정치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대신 정치를 적으로 상정하는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이들의 멜로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조국과 신미래 사이의 멜로 라인은 더욱 애틋해진다. 이렇게 보면 정치드라마로 나아가지 못한 '시티홀'이 가진 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드라마는 아니지만 굳이 정치드라마로 생각한다면, '시티홀'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는 결국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를 말하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는 거의 실행이 불가능한 이상적인 정치를 부르짖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본질인 멜로드라마로 본다면, '시티홀'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드라마다. 정치가 가진 양면성, 즉 진심과 연기의 미묘한 측면들을 멜로를 구축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완의 정치를 담은 '시티홀'은 따라서 정치드라마를 포기하는 대신 완성된 멜로드라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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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드라마이면서 멜로드라마가 되는 '시티홀'의 세계

'시티홀'은 그저 편안하게 멜로드라마를 보듯 볼 수 있는 드라마다. 실제로 시청자들의 주 관심사는 조국과 신미래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에 집중되어있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드라마는 멜로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무늬만 정치'가 아닌 제법 심각한 정치드라마의 면모들이 드러낸다. 도대체 '시티홀은 어떻게 정치와 멜로를 이렇게 공존시켰을까.

"요즘 내가 안하던 짓을 해요." 타고난 정치꾼, 조국(차승원)이 처음 인주시청의 부시장으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는 하던 짓(?)만 하던 사내였다. 여기서 하던 짓이란 흔히들 정치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하는 짓거리, 즉 협잡, 모함, 이용 같은 것들을 말한다. 그런 그가 한다는 안하던 짓은 그럼 무얼까. 그건 순진할 정도로 순수한 신미래(김선아)가 해나가는 '진심이 담긴 정치'를 옆에서 돕는 것이다.

그 진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것은 본래 그에게는 그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들이었다. "못사는 사람 잘 살게, 잘 사는 사람 좀 베풀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하는 신미래와, "정치는 돈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조국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그런 그가 안하던 짓을 한다? 그건 그의 신미래에 대한 마음의 표현인 동시에, 정치판의 복마전에서 잔뼈가 굵어온 자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유치한 짓이라 여기던 그 진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것에 이끌리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처음 봤을 때 너는 아주 쉬운 여자였는데, 그냥 이용하고 버리면 되는 여자였는데, 어떡하다 이렇게 됐는지 정말 돌겠다구." 그렇다. 조국은 정치를 하기 위해 BB(최일화)의 명으로 인주시에 허수아비를 세우려 왔는데, 어쩌다 그 허수아비를 사랑하게 됐고 그러자 모든 정치적 관계들은 뒤틀어져 버렸다. BB의 명을 어기게 된 것이고, BB의 돈줄이자 조국의 약혼녀인 고해(윤세아)를 배신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시티홀'이 그리는 세계는 정치와 멜로가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다. 신미래와 조국의 멜로는 그들의 정치적인 행보와 늘 반대로 작용한다. 둘의 사랑은 정치적인 위기를 불러올 것이고, 정치적인 행보는 둘의 사랑의 끝장을 불러올 것이다. '시티홀'이 구성해놓은 정반대의 위치에 세워진 정치와 멜로는 이처럼 절묘하다. 멜로가 어떤 진심을 끄집어낼 때, 정치는 그 진심을 배반한다.

이것은 또한 관계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시티홀'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정치가 얼마나 관계를 파괴하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미래와의 진심어린 사랑을 선택한 조국은 아버지인 BB와도, 또 약혼녀인 고해와도 서로 적이 되어 싸워야 한다. 민주화(추상미)와 이정도(이형철)는 부부지만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로 인해 부부관계의 진심마저도 흔들리게 된다. '시티홀'이 그리는 정치란 이처럼 부모자식 간에도, 애인 간에도,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금을 긋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괴물이다.

'시티홀'은 이처럼 정치와 멜로의 이중주를 들려주면서 그 접점을 모색하는 드라마다. 정치로서의 조국과 멜로로서의 신미래는 차츰 그 중간지대를 향해 나아가고, 점점 사랑에 빠져드는 조국과, 이제는 더 이상 정치를 외면할 수 없는 신미래로 발전해 나간다. 독특한 이름들이 가진 말장난처럼, '조국의 신미래' 혹은 '신미래의 조국'은 멜로와 정치의 중의적 표현인 셈이다. 따라서 '시티홀'은 멜로드라마이면서 정치드라마가 된다. 멜로드라마로서 정치는 거짓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되고, 정치드라마로서 멜로는 진심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된다. 정치와 멜로는 이렇게 '시티홀' 속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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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도 사라지지 않는 멜로 드라마의 전통

장르가 무엇이건, 스타일이 어떻건 우리네 드라마는 늘 그 중심에 멜로가 있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사실상 모든 드라마는 멜로 드라마이며, 그 변용이 여러 장르로 변주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트렌디 멜로 드라마에 대한 염증으로 ‘하얀거탑’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같은 장르 드라마들이 새롭게 등장했지만, 어느 새부터인지 그 장르드라마들 속에 떡 하니 들어앉아 있는 건 다름 아닌 멜로가 되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네 모든 드라마들은 멜로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월화드라마로 새롭게 시작한 ‘내조의 여왕’에서는 내조하는 여성들의 권력 대결구도가 전면에 나오고 있지만 그 후방을 지원하는 구도는 역시 멜로적 설정이다. 고교시절 잘나가던 퀸카 천지애(김남주)와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던 폭탄 양봉순(이혜영)은 그 시절 천지애의 남자친구였으나 지금은 양봉순의 남편이 된 한준혁(최철호)과 묘한 삼각관계를 구성한다. 한준혁은 여전히 천지애를 잊지 못하고 있고, 천지애는 남편을 취직시키려고 하는 퀸즈그룹의 사장인 허태준(윤상현)과 얽히는 중이다. 한편 천지애의 남편인 온달수(오지호) 역시 허태준의 아내인 은소현(선우선)과 대학 선후배 관계로 얽혀있다. 이 복잡한 멜로 구도는 내조를 둘러싼 권력 대결의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중심 모티브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월화의 타 방송사 드라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남자’는 구준표(이민호)와 금잔디(구혜선) 사이에 하재경(이민정)이 끼여들면서 본격적인 멜로 갈등을 만들어가고 있고, ‘자명고’는 낙랑공주(박민영)와 자명공주(정려원) 그리고 호동왕자(정경호)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가 운명적인 국가 간 대결구도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수목드라마에서 ‘카인과 아벨’은 기억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이초인(소지섭)과 오강호의 양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두 여자, 즉 김서연(채정안)과 오영지(한지민) 사이의 멜로가 바닥에 깔려있다. 이초인의 기억으로는 김서연과의 멜로가 이어지고, 오강호의 기억으로는 오영지와의 멜로가 이어진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50대의 멜로가 중심에 서 있다. 명진그룹 회장인 한명인(최명길)과 그녀의 남편인 이정훈(박상원) 그리고 그의 내연녀로 살아온 국민배우 은혜정(전인화)이 50대가 되어서야 드러나게 된 관계로 인해 극단의 대결구도로 치닫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춘시절 겪었던 그 사랑의 열병이 ‘미워도’, 그 열병 속으로 ‘다시 한번’ 뛰어드는 50대들의 치정 멜로를 다루고 있다. 한편 ‘돌아온 일지매’ 역시 멜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일지매(정일우)의 행보는 사실상 거의 월희(혹은 달이)와의 멜로 구도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많고 사실상 드라마도 한 영웅의 공적 행동을 그리기보다는 인간 일지매의 사적 삶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자명(김민종)과 백매(정혜영)의 멜로는 이 사극의 또 한 축을 이룬다.

이처럼 최근 모든 드라마들은 그 스타일과 장르를 떠나서 멜로를 그 중심 축으로 세워두고 있는 이유는 우리네 드라마사를 관통하고 있는 멜로적 전통이 드라마 자체를 멜로드라마로 보는 경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유일한 멜로 없는 드라마로서 ‘하얀거탑’은 호평은 받았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익숙한 드라마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미드가 가진 멜로 없는 아드레날린 드라마들에 대한 열광에서 비롯된 장르 드라마에 대한 요구는, 우리네 정서와 맞닥뜨리면서 어떤 타협점을 찾게 됐는데 그것은 어떤 장르를 표방하더라고 그 속에 멜로적 상황을 세워두는 것이었다.

우리네 드라마 속에 늘 존재하는 멜로의 전통은 그 장르의 낯설음을 친숙한 사랑이야기로 중화시켜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멜로적 전통에 익숙한 드라마가 장르라는 새로운 옷을 입으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드라마 문법의 잔재로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네 드라마 세상은 미드 같은 스펙타클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멜로를 빼고는 대중성을 확보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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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드라마는 어떻게 우리 식 정서와 만났을까

법정드라마에는 반드시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피해자를 돕는 법조인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신의 저울’에서도 다르지 않다. 거기에는 사랑하던 여자친구가 살해당하고 그 살인범으로 누명까지 썼으며, 그를 대신해 범인을 자청해 교도소에 들어간 동생을 둔 피해자 장준하(송창의)가 있고, 과실치사지만 그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장준하의 가족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든 가해자 김우빈(이상윤)이 있다.

신의 저울은 공평하지 않다는 전제
하지만 ‘신의 저울’이 평범한 법정드라마의 공식을 따르는 건 여기까지다. 이 피해자가 어떻게 법으로써 구원을 받는가의 문제라든가, 가해자가 어떻게 그것을 은폐하려 하는가의 문제는 공식을 벗어나 있다. 피해자인 장준하가 선택하는 것은 법조인, 즉 검사가 되는 것이다. 즉 ‘신의 저울’은 피해자가 법조인의 도움을 받는 드라마가 아니라 피해자 스스로 법조인이 돼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드라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가해자인 김우빈(이상윤) 역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법조인으로서의 권력과 지식이라는 사실이다. 법을 통해 한 명은 진실을 밝히려하고 다른 한 명은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 이것이 말해주는 건 법이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둔갑시키기도 하고 또 정반대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굳이 장준하의 가족이 겪는 고통을 들지 않더라도 이러한 법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대결구도 자체는 ‘신의 저울’이 공평하지 않다는 이 드라마의 전제를 말해준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법을 통해 보는 현실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신의 저울 위에 얹어지는 관계라는 무게의 추
‘신의 저울’이 독특한 것은 법정 드라마에 우리네 멜로나 가족드라마의 관계 코드를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장용하의 사건을 두고 벌어진 모의법정에서 유죄냐 무죄냐를 두고 갈라진 김우빈과 장준하 사이에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영주(김유미)는 갈등한다. 김우빈은 간교하게도 영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결혼 이야기를 꺼내고,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김우빈의 어머니인 송여사(김서라) 역시 이를 부추긴다.

눈을 가린 채 ‘신의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처럼 공평해야할 영주에게 그 가린 헝겊을 벗겨내고 자신 쪽을 바라보게 만드는 김우빈이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지금 우리의 법 현실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멜로 드라마와, 어울리지 않는 양가의 결혼을 중심테마로 하는 우리네 가족드라마의 틀은 ‘신의 저울’로 들어와서 이처럼 전혀 다른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사회가 법이라는 잣대보다는 관계와 지위, 권력 등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우리의 법 현실을 고민한 흔적
‘신의 저울’이 할리우드의 법정드라마처럼 쿨하게 보이지 않는 건, 바로 이런 법 집행에 있어서의 관계의 문제를 멜로드라마와 가족드라마의 틀 안에서 풀어내기 때문이다. 자식의 죄를 덮기 위해 힘있는 로펌과 사돈을 맺으려는 빗나간 모정, 사랑하는 연인의 애정공세 앞에 흐려지는 판단력, 무엇보다도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고시를 준비하는 주인공과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여자라는 설정 같은 것들은 법정드라마처럼 보다 전문적이고 세련될 것 같은 소재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왕의 아들이 거지를 죽였을 때와 거지가 왕의 아들을 죽였을 때는 절대로 똑같을 수가 없다”는 노세라(전혜빈)의 말처럼 어쩌면 바로 이런 신파적이고 얼기설기 엮어진 관계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이 우리네 진짜 법 현실인지도 모른다. ‘신의 저울’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저 서구의 세련된 법정드라마를 흉내내기보다는 조금은 구닥다리라도 우리 식으로 그것을 풀어내려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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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멜로의 식상함을 탐구하는 드라마, ‘달콤한 인생’

무엇이 달콤하다는 말일까. 펀드매니저 하동원(정보석)의 손아귀에는 거의 모든 것이 쥐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손아귀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도 있는 천 억 원의 돈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있고,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가는 예쁜 아내가 있으며, 한편으로 젊음의 육체와 연애감정을 만끽하게 해주는 내연녀도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의 인생은 달콤한 향내가 풀풀 나는 그런 동경의 대상이다.

이것은 ‘달콤한 인생’의 인물들 거의 모두가 가지고 있는 화려한 겉모습이다. 능력 있는 남편에 바라만 봐도 행복한 자식들을 가진 하동원의 아내, 혜진(오연수)이 그렇고, 능력 있는 스폰서 덕에 거침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하동원의 내연녀, 다애(박시연)와 재벌집 아들을 친구로 둔 덕에 부족할 것 없이 살아가는 준수(이동욱)가 그렇다. 하지만 ‘달콤한 인생’은 이들의 달콤해 보이는 피상적인 삶을 찬양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대신 잔인하게도 역설적으로 이 달콤한 인생들의 쓰디쓴 진면목을 해부해가는 드라마다.

거꾸로 가며 자꾸만 반추하는 드라마
해부의 도구로서 활용되는 장치는 컷 백(회상신)이다. 일상을 훑어가던 카메라는 어느 지점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지점에 대한 사연들과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이것은 마치 달콤한 현재라는 몸에 메스를 대고 그 안에 들어있는 숨겨진 과거를 찾아내는 과정 같다. 혜진은 남편의 숨겨진 불륜사실을 어느 날 아침 목격하게 되면서,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온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남부럽지 않았던 삶이 사실은 자신의 삶이 아닌 남편에게 포획된 삶이었다는 것. 끈떨어진 풍선처럼 기댈 곳이 사라진 그녀는 북해도로 도망치듯 떠난다. 하지만 거기서 만난 준수(이동욱)가 반복해서 말하듯이 그녀는 “죽기 위해 그 곳에 온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온 것”이었다. 북해도까지 멀리 도망쳐서야 비로소 자신의 과거들과 제대로 마주하고, 죽음이라는 벼랑 끝에 서서야 삶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 죽으러간 북해도에서 그녀가 만난 건 자신의 삶, 즉 준수와의 만남이다.

달콤한 인생 이면의 자신의 삶과 마주한 혜진에게 이제 삶은 더 이상 달콤한 것이 아니다. 혜진에게 일상의 대화 하나 하나는 새로운 의미를 띄고 다가온다. 헬스클럽에 대해서 남편이 “건강에 좋으면 되는 거지”라고 말할 때 그녀는 이제 남편이 더 이상 자신을 성적 매력을 가진 여성으로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녀는 자신을 “탁자 위에 놓여진 찻잔이나 찬장 위에 얹혀진 접시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남편의 실체를 보게 된다.

북해도의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눈 풍경과, 그 풍경 속을 헤집고 미친 듯이 다니면서 죽은 성구의 시체를 찾는 준수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상징한 그림이다. “이제 곧 봄이 되면 눈이 녹기 시작할 것이고 시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준수의 진술은 북해도의 아름다운 풍광 같은 인생, 그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함이 녹기 시작하면서 잔인한 욕망의 실체가 드러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멜로의 식상함을 해부하는 드라마
이것은 이 드라마가 서 있는 위치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멜로 드라마가 아니다. 만일 멜로 드라마로서 ‘달콤한 인생’을 본다면 거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늘 똑같은 불륜과 배신, 삼각 사각 관계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달콤한 인생’이 그리려는 세계는 바로 그 틀에 박히게 그려진 멜로 드라마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왜 늘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삶이란 불륜을 저지르고 거기서 달콤함을 맛보다가 어느 순간 쓴맛을 보게 된다는 피상적인 것들뿐일까.

‘달콤한 인생’은 바로 그 식상함을 칼로 주욱 그어서 그 이면에 진짜 들어있는 얼굴을 탐구한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결과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식상한 멜로의 틀 속에서처럼, 욕망의 달콤함에만 취해 살아가며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현실의 삶들에 대한 경종이다. ‘모든 욕망 속에서 충족된 듯 살아가는 당신의 삶은 정말로 달콤한가’하고 묻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달콤한 인생’의 첫 장면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본 부감. 그 고층 빌딩은 삶을 흥분하게 만드는 욕망의 바벨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혜진이 북해도의 바다 끝자락에서 섰던 벼랑이기도 하다. ‘달콤한 인생’은 바로 그 도시 욕망의 탑을 벼랑으로 변모시키는 자살사건으로부터 시작하면서,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 파문을 던지는 도발적인 드라마다. 따라서 퇴직한 형사 박병식(백일섭)이 좇고 있는 것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상 그 이면에 숨겨진 삶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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