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문제 지적만큼 중요한 솔루션 제시

밤 7시 딸의 취침준비시간. 남편 고창환은 딸 고하나의 방학생활 숙제를 도와준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시누이로부터의 전화. 고창환은 활짝 웃으며 통화하다 딸 고하나를 바꿔준다. 반갑게 고모를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 “집에 오면 저랑 같이 자요.”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시누이가 집에 온다는 그 말에 아내 시즈카는 화들짝 놀란다. 

시즈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자 남편이 일종의 해명을 한다. “친구 만나러 왔다가 늦을 거 같아서, 운전하기 좀 위험해서, 자고 가도 되냐고 해서. 상관없지 않나?” 딸 하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척 넘어가려는 그 말에 하나가 “괜찮아.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말했어”라고 답을 해준다. 하지만 시즈카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몇 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 시즈카에게 “늦으면 자고 있다가” 일어나면 되지 않냐고 고창환은 속편한 말을 한다.

시즈카가 불편해 하자 고창환은 마치 그게 정답이나 되는 듯, “가족이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즈카는 “가족이라도 달라”라며 단호한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 누구 집인데? 오빠만 살아?” 시즈카의 그 말에 남편 고창환은 “다음에는 내가 물어볼게”라며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려 한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딸 하나가 그걸 풀기 위해 하는 말이 흥미롭다. “아빠는 고모가 와도 되니까 그런거지? 그런데 엄마한테 왜 안 물어봤어?” 그러자 아빠가 답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빠가 물어본다고 했어. 그럼 됐지?” 그런 하나가 예쁘게 느껴졌던 지 시즈카는 하나를 꼭 안아주며 웃는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보여준 이 장면은 굉장히 짧지만, 거기에 어쩌면 지금 이 프로그램이 처한 문제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방송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공분을 일으킬 만큼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안들은 짜증을 유발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살았던 일상인지도 모르지만, 관찰카메라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투성이였다는 걸 드러내면서 나타난 반응들이다.

그 파장이 워낙 커서인지 여기 출연했던 김재욱-박세미 부부는 프로그램을 하차하며 그 불편한 심경을 SNS에 올렸다. 일정한 ‘콘셉트’가 있었고, 그래서 설정과 ‘연기’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폭로’가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것이 제작진의 잘못도 존재하지만 또한 온전히 편집 때문인가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은 왜 발생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이상한 시댁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극적인 반응들을 만들어 내다보니 문제의 장면들만 집중해서 보여주는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등장한 최현준-신소이 부부 이야기에서도 며느리에게 “야”라고 부르고 자기 아들인 현준을 우선적으로 챙기라는 ‘돌직구’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그 시어머니가 “해달라고 하기 이전에 남편을 위주로 하고!”라고 말할 때는 자막에 붉은 색으로 ‘남편을 위주’를 강조하고 불꽃까지 더해 붙였다. 일종의 강조점을 찍은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그런 이상한 나라를 조명해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니 그런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만이 아니라 해법 또한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적과 분노 이상의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 해법을 시도해 보여준 적이 있을까. 

이러한 가족 내의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관찰카메라를 활용한 솔루션 프로그램에는 적어도 그 상황을 직접 당사자들이 보게 하고, 거기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과 상대방의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해결방식을 제안하곤 한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그런 해결 방식이나 과정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즈카의 가족이 보여준 짤막한 장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시즈카는 남편이 ‘가족’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 대목에 단호하게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곳이 자신들만의 공간이고 그래서 남편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시댁 식구들까지 포함해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으로서 그 곳은 경계가 있다는 걸 시즈카는 확인시켜준 것이다. 

최근 들어 성 평등 문화에서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이른바 ‘경계 존중 교육’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몸이 있고, 내 공간이 있고, 나만의 삶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올 때는 그래서 사전에 양해를 통한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경계는 누구에게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네 문화에서 경계는 ‘가족주의’라는 틀 속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버렸다. 심지어 “우리가 남이냐”라는 말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 사회에서조차 친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고, 그것은 경계를 훌쩍 넘어 마구 침범하는 문화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댁이 이상한 나라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결혼을 했으니 ‘우리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마구 선을 넘는 행동과 말이 그렇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가 의미 있게 다가온 건 딸 하나가 보이는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훅 들어오는 행위들은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는 그래서 딸 하나에 대한 살아있는 훈육처럼 보인다. 딸이 아빠에게 “엄마에게 왜 안 물어봤어?”하고 묻는 대목은 그 역시 가족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시즈카가 스스로 보여준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잘못된 풍경을 끄집어내고 지적하는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거기서 어떤 해법들을 찾을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불편하고 자극적인 상황의 나열로 인해 ‘분노’만을 일으키고, 결국은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현실만을 그려낼 위험성이 있다.(사진: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이블랙·마리, 이것이 요즘 부부의 삶

등장부터가 심상찮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우리가 다른 부부들에게서 봐왔던 아침의 풍경이 뒤바뀌어 있어서다. 정규 편성되면서 새로 투입된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 이야기다. 알람소리에 먼저 일어난 남편 제이블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하고, 능숙하게 아침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 마리는 늦잠을 잔다. 늦게 일어난 아내에게 서둘러 아침상을 준비하며 권하는 남편의 모습. 

두 사람은 스타일부터가 남다르다. 보라색 레게 머리를 한 마리와 길게 기른 머리를 머리끈으로 묶은 제이블랙. 역시 이름난 프로 춤꾼들이라 스타일도 스웨그가 넘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부부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같은 크루의 동료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또 그것이 반전이다. 어딘지 거칠 것 같은 선입견을 갖게 되지만 이 부부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 아니 존댓말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서로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다. 

아침상으로 제이블랙이 내놓은 건 고수를 잔뜩 얹은 차돌박이 구이에 역시 고수가 들어간 라면 그리고 밥이다. 프라이팬 째로 놓고 먹는 그 밥상에 눈에 띄는 건 즉석 밥. 이 부부가 얼마나 실리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괜한 격식이나 격의에 얽매이지 않는 느낌이지만, 아내 마리가 고수를 좋아해 잔뜩 챙겨 넣은 요리에서는 제이블랙의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마침 그 날은 이들이 시댁을 찾아가기로 한 날이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자주 등장한 것이 시댁 찾아가는 날 며느리들이 뭘 입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다. 정규로 돌아와 방영된 첫 회에도 민지영이 어버이날 선물을 갖고 시댁에 갈 때 역시 조신하게 챙겨 입고 가려는 며느리의 고민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름 조신한 원피스라고 산 옷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시댁을 가기 위해 화장을 하는 마리와 그 시간동안 게임을 즐기는 제이블랙의 모습도 남다르다. 보통 그런 상황이면 으레 등장하는 게 ‘빨리 빨리’를 외치는 남편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아내의 모습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마치 각자의 삶의 방식이 달라도 당연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화장이 다 끝날 때까지 자기 시간을 즐기는 모습에서 이 부부가 가진 여유 같은 게 엿보인다. 

시댁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는 이 시댁도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워낙 제이블랙의 스타일이나 개성이 뚜렷해서 그 부모들도 이제는 익숙해졌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마리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다가왔을 리가 만무다. 살짝 등장한 인터뷰에서 시어머니가 말하듯, 처음엔 “정신 나간 애들” 같은 모습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개성이고 스타일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면 그 안에 담겨진 진짜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전지적 며느리 시점’으로 바라본 우리네 결혼 생활이라는 ‘이상한 나라’를 관찰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며느리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그 ‘이상한 나라’의 문제들이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의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건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이상한 부부’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던 그런 부부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삶의 모습. 

그런데 과연 이들 부부의 삶이 ‘이상한’ 걸까. 어쩌면 그 삶은 요즘 부부들이 꿈꾸는 삶일 수 있다. 오히려 과거 부모 세대들이 살아왔던 그 삶이 ‘이상한’ 것이고.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를 등장시킨 건 프로그램의 균형을 위해서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여도 그것이 요즘 부부들의 새로운 모습이고, 그런 변화된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사진:MBC)

‘휴먼다큐 사랑’, 꽃보다 예쁜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딸

“어머니 꽃 같으세요. 꽃 같아요.” 시어머니 김말선씨의 105세 생신날, 며느리 박영혜(68)씨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곱게 단장하신 시어머니에게서는 젊어서 특히 단정했을 그 모습이 그려진다. 그 생신을 축하하듯 영혜씨의 친정엄마 홍정임씨가 구성지게 노래를 불러준다. “청춘을 돌려다오-” 이제 웃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나이지만, 시어머니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다시 돌아온 MBC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이 예쁘게도 담아낸 사랑과 사람의 풍경이다. 

며느리이자 딸 영혜씨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니 그 나이에 엄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신도 혼자 하지 못하시고 밥숟가락도 혼자 들기 버거워 하시는 시어머니는 그 깔끔한 성격 때문에 기저귀에 대변을 보고 자꾸만 손으로 파고 뭉개놓는다. 그런 삶을 벌써 10여 년째 살아내고 있는 며느리지만, 속상한 마음이 자꾸 시어머니의 속을 긁는 소리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105세의 연세라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또 며느리가 고생하는 걸 안타까워하는 시어머니는 밥을 더 이상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래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 결국 시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와중에 항상 뒷전이 되어버리는 친정엄마가 나선다. 친정엄마는 당신도 허리가 안 좋으시지만 시어머니의 입에 연신 숟가락을 넣어주고, 기분 좋아지라고 노래도 불러준다. 

물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사이가 늘 좋은 건 아니다. 친정엄마의 사소한 말 몇 마디에 시어머니는 아이처럼 토라져 대꾸 한 마디 않고 돌아눕는다. 하지만 그럴 때 마음을 풀어주는 건 흥 많고 쌓아두지 않는 성격인 친정엄마다. 친정엄마는 들꽃 몇 개를 꺾어 병에 꽂아 가져와서는 “할머니꽃은 어떤 거야?”하고 묻는다. 그 화해를 신청하는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에서 특히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건, 이 세 사람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영혜씨는 한 때 몸이 아파 요양원에 시어머니를 맡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 결국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시어머니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영혜씨에게서는 인간으로서의 어떤 숭고함 같은 것마저 느껴졌다. 

그런 딸을 보는 친정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친정엄마는 가타부타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대신 딸의 부담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까 생각하고, 시어머니와 말동무도 되어주고 딸처럼 챙겨주기도 하면서 마음을 쓴다. 그런 친정엄마를 시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의지하고 있었다. 

며느리와 사돈이 자신 때문에 고생한다는 걸 알고 있는 시어머니는 자꾸만 ‘죽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사라져야 저 두 사람이 그래도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게 일상인데다, 표정조차 별로 드러내지 않는 시어머니지만 그래서인지 며느리와 사돈에게 종종 높임말이 흘러나온다. 그 마음이 또한 먹먹하게 다가온다.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 이렇게 세 사람은 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느껴진다. 그들은 젊어서 어쩌면 친정엄마, 시어머니, 딸, 며느리 같은 호칭으로서 살았을 게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런 호칭이 중요하지 않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서 있다.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삶을 축약해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운신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친정엄마가 뒤에서 밀어주지만, 어찌 보면 허리가 좋지 않은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의 휠체어에 의지해 함께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서 딸이자 며느리인 영혜씨가 지팡이를 집고 함께 걸어간다. 그 장면은 마치 함께 지지하며 걸어가는 동행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그 무엇보다 예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사진: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우리들이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

늘 봐오던 풍경이라고? 그래서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MBC 새 교양 파일럿 프로그램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늘 봐오던 풍경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던 시댁의 풍경이 어째서 그리도 이상한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사랑과 전쟁>의 ‘불륜녀’ 역할로 많이 알려진 배우 민지영은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에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친정집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시댁을 간다는 그 부담감에 전날부터 뭘 입고 갈지 고민하고, 새벽부터 메이크업을 했던 민지영.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이바지 음식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도대체 이렇게 많이 음식을 준비하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시댁으로 가는 딸을 보며 엄마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왜 눈물을 흘렸는가는 시댁에 도착한 후 민지영이 금세 체감하는 그 공기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치 남자들이 있는 공간과 여자들이 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는 유리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시댁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남자들이 두런두런 모여 술판을 벌이기 시작할 때, 며느리들(시어머니도 며느리다)은 음식 준비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어머니는 첫 날은 그렇게 일하는 거 아니라며 며느리를 밀어내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어찌 시어머니가 동분서주하는 걸 보고만 있을까. 

이런 상황은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의 명절 풍경에서는 더더욱 충격적으로 보여졌다. 남편이 일을 나가 임신 8개월의 무거운 몸에 어린 아들을 안고 무거운 짐까지 들고 홀로 나서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시댁으로 가는 길 보채는 아들을 달래가며 운전을 하는 모습이라니. 임신 8개월의 몸으로 이런 일을 혼자 감당한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명절이니 제사니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시댁에 어렵게 도착했을 때 시아버지는 손주만 덜렁 안고 들어가 버렸고, 앉아 쉴 틈도 없이 바로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박세미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많이 줄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명절 음식들. 먹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걸 차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역이었겠나. 그러면서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며 과거와 비교하는 시어머니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며느리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과연 진심으로 좋아졌다 생각할 수 있을까.

시댁 식구들이 다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지만 며느리는 이방인이었다. 시누이는 그토록 챙기면서 어째서 며느리는 그렇게 부릴까. 보채는 아이 챙기며 음식 준비하고 시댁 식구들 심부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 며느리는 임신 8개월이었다.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남편은 생각도 없이 자신이 사왔다는 술을 꺼내 자랑을 늘어놓고, 어렵게 잠을 청하자마자 새벽부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깨운다. 제사상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제사가 끝났으면 일찍 친정으로 보내주면 좋으련만 시댁 식구들은 어떻게든 더 붙잡아두려 혈안이다. 억지로 윷놀이 하는 걸 지켜보며 웃는 척 하고 있지만 며느리의 마음이 어디 편할 수 있을까. 어째서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토록 없을까. 시어머니도 한 때는 며느리가 아니었던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일상처럼 치부되어 왔던 시댁의 풍경을 관찰자 시점에서 다시금 들여다본다. 그랬더니 드러나는 건 이 풍경에 담긴 놀라울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다. 남자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어떤 일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봐야 그 문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려니 했지만 그걸 확인해보니 더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며느리의 일상. 그 일상에 깊이 공감하며 같이 아파하는 시간은 그래서 굉장히 가치 있는 일로 다가온다.(사진:MBC)

‘추리의 여왕’, 최강희 아줌마의 추리를 가로막는 것들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독특한 건 주인공인 설옥(최강희)이 셜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탐정 셜록에서 따온 듯한 그 이름 앞에 붙어 있는 건 탐정이 아니라 아줌마. 설옥이 남다른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데 그 앞길을 가로막는 것도 바로 이 아줌마라는 꼬리표가 가장 크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한 폭력남편을 추리해내는데 있어서 이 아줌마 설옥은 통화기록과 카드전표 등의 수치들과 CCTV 화면을 분석해 조작된 알리바이를 파헤친다. 그 남편의 알리바이였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친구가 술에 취해 있을 때 아내를 살해하고 돌아와 시계를 되돌려놓음으로써 알리바이를 만들었던 것. 시계에 찍혀진 지문과 미지근해진 맥주 그리고 편의점 CCTV 속에서 그 남편이 친구의 가게로 돌아가지 않고 집쪽으로 향했던 장면 등을 종합해 설옥은 그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걸 입증해냈다. 

물론 그 아내의 직접적인 사인은 남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부모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죽은 줄 알고 강물에 유기했던 며느리가 사실은 살아있었던 것. 결국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며느리를 강물에 유기한 시부모가 직접적인 살인자가 되었다. 

사실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는 액면으로만 보면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추리의 여왕>은 그 사건을 추리해내는 설옥이라는 아줌마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이 과정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믿지 않던 아줌마의 추리가 하나하나 맞아들어갈 때 무시 받던 이 존재의 반짝임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

설옥을 무시하는 존재는 완승(권상우)이라는 형사와 시어머니 박경숙 여사(박준금)다. 완승은 아줌마가 사건 현장을 어슬렁거리는 것 자체를 탐탁찮게 여긴다. 그래서 한 번만 더 현장에 나오면 공무집행방해로 넣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설옥의 추리가 하나하나 맞아들어가는 걸 보면서 이 아줌마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오히려 그녀의 추리에 은근히 기대는 모습까지. 

박경숙은 설옥을 그저 집안일에나 묶어두려는 전형적인 시어머니다. 밥 때 되면 시어머니를 챙겨야 한다며 집으로 달려가는 설옥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어디냐고 묻는 시어머니의 전화. 마침 한창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듯한 시점에 시어머니의 전화가 갑자기 울리는 장면은 설옥은 물론이고 그녀의 추리를 기다리는 완승 그리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답답하게 만든다. 

완승이 설옥의 사회 생활에서의 어떤 편견을 상징하는 존재라면 시어머니는 가정 생활 속에서의 편견을 담아내는 존재다. 그리고 그 종합은 역시 아줌마라는 존재의 삶에 대한 편견으로 뭉쳐진다. 아줌마라고 어찌 꿈이 없고, 또 숨겨진 능력이 없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아줌마라는 이유로 집에서 밥이나 하고 가족 뒷바라지나 하라고 밀어낸다. 

바로 이 지점은 설옥이라는 아줌마 셜록에 시청자들이 푹 빠져드는 지점이다. 딱히 아줌마가 아니라도 아저씨나 사회에서 소외된 청춘들 같은 본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캐릭터에 몰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옥이 놀라운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가고 그런 그녀의 진가를 슬쩍슬쩍 인정하게 되는 완승 같은 시선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똑같은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최고의 사랑>, 할 말 다 하는 김숙 이러니 대세지

 

가모장제 김숙에게 명절증후군 따위가 있을까. JTBC <최고의 사랑>은 설 명절을 맞아 가상 남편 윤정수와 한복을 차려입고 함께 설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원시원하고 할 말 다 하는 김숙과 그녀의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윤정수에게 선배 개그맨들의 덕담이 쏟아졌다.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 그러니 아예 진짜 결혼하라는 것.

 


'최고의 사랑 님과 함께(사진출처:JTBC)'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선배 이성미의 말대로 두 사람은 점점 닮아간다. 가상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어찌 보면 순간 순간 결혼을 소재로 한 콩트를 찍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두 사람은 손발이 잘 맞는다. 설날이라고 떡국을 끓이지만 마늘을 너무 많이 넣어 못 먹을 맛에 MSG를 투하하고는 자랑스럽게 그걸 넣었다고 얘기하는 김숙. 그래도 다 먹으라는 한 마디에 꾸역 꾸역 먹는 윤정수다.

 

발 싸대기(?)를 벌칙으로 세워두고 벌이는 윷놀이는 결국 간발의 차이로 윤정수가 뺨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놀이를 하는 과정은 마치 아이들처럼 즐겁다. 물론 김숙이 남편 막 대하는 모습은 일종의 상황극 설정이 들어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상황극이 주는 실감이 의외의 통쾌함을 선사하는 건 왜일까.

 

갑작스레 이성미가 등장해 윤정수의 시어머니 역할로 이 상황극에 들어오게 되자 상황은 명절의 흔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여자들이 부엌에서 하루 종일 손에 물 묻히며 일할 때 남편은 뒹굴고 시어머니는 심지어 며느리에게 잔소리를 하는 그런 장면이 우리네 명절의 흔한 풍경이지만 김숙과 윤정수는 거꾸로 되어 있다. 윤정수가 쌓여진 설거지를 하려고 하자 이성미가 마치 시어마니나 되는 것처럼 니가 왜 설거지를 해라고 소리친다.

 

자꾸만 진짜 결혼해 살라는 이성미의 이야기에 선배님에게도 대놓고 실언을 많이 하신다어서 가시라고 등을 미는 모습에서는 김숙 특유의 사이다 같은 시원스러움이 느껴진다. 결국 상황극 설정 속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했던 이성미는 얘 상 돌아이 아니냐고 혀를 내두른다. 그 대책 없이 할 말을 다 하는 김숙의 모습은 물론 실제라기보다는 순간 상황극 속에서의 캐릭터 설정이겠지만 마침 명절의 스트레스를 한껏 느낀 며느리들이라면 그 느낌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최고의 사랑>으로 김숙과 윤정수가 재발견된 것은 그들이 이 리얼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을 절대로 리얼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다. 대신 그들은 이 상황을 개그맨 특유의 잘 맞는 합으로 웃음을 주는 콩트로 만들어낸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일 때 시청자들이 웃게 되는지를 그간의 오랜 개그맨 생활을 통해 체득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들은 웃음을 주기 위해 때론 과한 설정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김숙은 그 속에서 남편 구박하는 아내의 모습을 또 윤정수는 구박 받으면서도 순종적인 남편을 연기하지만 그럼에도 그 합이 너무 잘 맞는다.

 

바로 이 상황극 속에서 슬쩍 진심이 나올 때 시청자들은 그것이 단지 연기만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진짜 마음을 느끼게 된다. 윤정수가 벌칙으로 발 싸대기를 맞고 아파하자 안쓰러워하며 김숙이 오빠 괜찮아?”하고 묻는 장면이 그렇다. 슬쩍 드러난 그녀의 진심은 남자로서는 아니라고 해도 오빠로서 윤정수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런 김숙이 마침 명절을 맞아 벌이는 상 돌아이상황극은 그래서 기분 좋은 사이다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피곤한 명절을 보낸 며느리들은, 할 말 다하고 남편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당당하게 시키는 김숙의 모습을 통해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날려보낸다. 가모장제를 주장할 정도로 당당한 성격에 어떤 상황극에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김숙만이 할 수 있는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대세 개그우먼다운 면면이다

의외로 강한 <자기야>, 이런 판타지가 없다

 

이만기 같은 사위가 있다면 어떨까. SBS <자기야-백년손님>에서 이만기와 장모는 톰과 제리의 관계를 보여준다. 틈만 나면 소파에 누워 제 집처럼 잠을 자기 일쑤지만 그럴 때 장모는 맛좋은 소라무침에 막걸리를 한 상 내놓고는 사위를 슬슬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일을 시킨다. 그런 장모에게 이만기는 시종일관 투덜투덜 대지만 또 막상 시키는 일은 꼬박꼬박해낸다. 이만기는 마치 머슴살이 들어온 힘 좋은 사내처럼 보인다.

 


'자기야 백년손님(사진출처:SBS)'

그런데 갑자기 단수가 되어버리자 마을 입구까지 내려가 물을 떠오는 이만기를 보면 역시 천하장사다운 스케일을 보여준다. 자그마한 물통이 아니라 하나 들기도 힘들 것 같은 양동이 두 개를 꽉 채워 옮긴다. 힘들 게 옮기는 물통이지만 동네 어르신이 한통만 달라고 하자 또 그걸 거부하지도 못하는 순박함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마치 순박하고 힘 좋은 머슴이 물을 길러 오는 장면처럼 그려진다.

 

밭일하기 위해 연장을 챙기러 창고에 온 이만기가 거기 있던 의자에 누워 보고는 아예 장모의 눈을 피해 숨는 장면 역시 톰과 제리의 마름 머슴판처럼 그려진다. 장모의 눈을 피해 그 거대한 몸을 잔뜩 웅크려 숨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장모는 아예 문을 밖에서 잠가 버린다. 화장실이 급해진 이만기가 결국 어무이 문 좀 열어 주이소하는 모습은 꾀부리다 오히려 당하곤 하는 톰을 떠올리게 만든다.

 

제리 같은 장모가 톰 같은 이만기를 부리는 방법은 역시 음식이다. 죽통밥을 해주겠다고 꼬드겨서 대나무를 자르러 가서는 아예 한 열 개 정도 잘라 평상을 만들라는 장모의 말에 일이 점점 커지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도무지 끌고 올 수 없을 것 같은 그 대나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끌고 오는 모습에서는 역시 천하장사의 위용이 느껴진다.

 

집에 와서 이만기는 그 대나무들을 하나하나 잘라 쉬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장모는 잘라낸 죽통으로 죽통밥을 만든다. 일이 너무 많아 한참을 투덜대며 하던 이만기는 그러나 장모가 내온 죽통밥에 순식간에 단순해진다. 너무 맛있다며 힘들었던 노동을 싹 잊어버린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은 아마도 이 땅의 장모들에게는 우직하고 단순해도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졌을 것이다.

 

SBS <자기야-백년손님>은 사위들의 강제 처가살이라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누가 봐도 이 설정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장서관계에 있어서 바람직한 설정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대신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문제와 함께 점점 사위가 아내의 친정과 가까이 지내게 되면서 사위의 처가살이는 현실적인 일이 됐다.

 

이만기처럼 든든함을 주는 사위의 모습은 현실적으로는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이 판타지가 주는 힘은 의외로 세다. 톰과 제리, 마름과 머슴처럼 보이지만 그런 격의 없는 툭탁댐은 장모와 사위의 관계라기보다는 엄마와 자식 같은 편안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위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이 판타지라고 해도 자꾸만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왕가네>, <이순신>보다는 나을 수 있을까

 

시집살이가 아니라 처가살이? 늘상 가족드라마에서 그토록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지던 것이 시집살이와 고부갈등 같은 거였다면, <왕가네 식구들>이 들고 온 처가살이는 그나마 소재만으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현실적으로야 여전히 시집살이가 더 많겠지만 최근 처가살이라는 말도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결혼하고 시집에 들어가 사는 신혼부부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심지어 시댁에서도 함께 사는 걸 꺼려하는 추세다. 오죽하면 시집살이가 아니라 ‘며느리 살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직장 다니는 며느리 챙겨주는 시어머니들의 고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대신 아이 보육 문제 등으로 친정과 가깝게 지내는 신혼부부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당연히 갈등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문영남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렇게 달라진 가족관계의 모습은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왕가네의 가장은 왕봉(장용)이지만 이 집안의 실권자는 그의 아내인 이앙금(김해숙)이다. 그녀는 왕봉의 홀모인 안계심(나문희)이 있어도 아랑곳 않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꺼내놓을 정도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이름대로 왕봉은 그저 봉인 존재이고, 안계심은 있어도 안 계시는 시어머니다. 이름대로라면 이앙금은 아마도 시댁에 어떤 앙금이 있는 인물일 게다.

 

집안의 어른인 시어머니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대신 며느리가 실권을 쥐고 있는 건 전형적인 신 모계사회의 가족 풍경이다. 이앙금은 딸들의 사위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한다. 처가 식구들을 챙겨온 첫째 딸 왕수박(오현경)의 사위 고민중(조성하)은 이앙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둘째 딸 왕호박(이태란)과 혼전임신으로 결혼한 백수 허세달(오만석)은 구박 덩어리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그리는 여성과 남성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여성들은 남편 덕에 잘 나가거나(왕수박), 철없는 남편과 상반되게 성실하게 살아가거나(왕호박), 교사직을 포기하고 자기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셋째 딸 왕광박(이윤지)), 전교 1등의 성적을 거둘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막내 딸 왕해박(문가영)) 인물들이다.

 

반면 남자들은 거의 모두가 위기상황이다. 고민중은 역시 이름대로 회사가 위태로워 길바닥에 나앉기 일보직전이고, 허세달은 허세만 가득한 백수이며, 안계심 여사의 늦둥이 왕돈(최대철) 역시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백수다. 중학교 교감 선생인 왕봉은 아이들에게 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고 그의 늦둥이 아들 왕대박(최원홍) 역시 엉뚱한 반항만 하는 인물이다.

 

즉 <왕가네 식구들>은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가족 구성원을 보여주면서 이 새로운 모계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갈등들을 보여줄 예정이다. 첫 술에 어찌 배부르겠냐마는 첫 회는 식구들의 캐릭터를 빠르게 세우기 위해서인지, 다소 급하고 어수선하게 진행된 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그간 딸 부잣집 이야기가 거의 모두 딸들이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느냐는 관점에만 몰두했던 점들을 생각해보면, 이 딸들이 중심이 되는 딸 부잣집 이야기는 확실히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최고다 이순신>이 시청률 면에서나 화제성, 완성도 면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터라 KBS 입장에서는 주말극의 자존심을 세워줄만한 힘을 <왕가네 식구들>이 보여줄 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과연 <왕가네 식구들>은 그만한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적어도 <최고다 이순신>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그러려면 그나마 괜찮게 여겨지는 <왕가네 식구들>의 처음 가진 기획의도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관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고다 이순신>이 그러지 못해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장옥정>, 왜 독해질수록 살아날까

 

장희빈 하면 먼저 떠오르는 장면. 그것은 바로 먹지 않으려는 사약을 억지로 입에다 우겨넣는 장면이다. 하지만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에서의 장옥정(김태희)은 그런 최후는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조선시대의 패션 디자이너인데다 이순(유아인)과의 달달한 로맨스가 전면에 펼쳐지지 않았던가.

 

'장옥정 사랑에 살다'(사진출처:SBS)

하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나 보다. 순둥이에 늘 당하기만 할 것 같던 그녀는 단 몇 회만에 독이 잔뜩 오른 모습으로의 대변신을 보여주었다. 장옥정이 영원히 용종을 잉태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극약을 대비 김씨(김선경)가 궁녀들을 시켜 억지로 입에 넣는 장면은 그래서 본래 장희빈 하면 떠오르던 바로 그 명장면(?)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본래 장희빈의 귀환이다.

 

예쁘고 착하기만한 장희빈? 의도는 알겠지만 애초부터 가능하지도 않고 또 대중들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 굳이 장희빈을 장옥정으로 부르고, 숙종을 이순이라 부르는 건 그만큼 이 사극이 역사와의 간극을 두겠다는 의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즉 이 사극은 역사의 기록에 남겨진 장희빈과 숙종을 그리는 게 아니라, 기록 바깥에 존재하는 사적인 인물로서의 장옥정과 이순의 애틋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역사에 기록된 장희빈이 벌인 일련의 사건들마저 왜곡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장희빈을 장옥정으로 바꾸면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그녀가 벌인 일들에 어떤 사적인 근거를 마련해주는 정도다. 그래서 장희빈의 독한 행동들이 왜 나왔는가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여준다면(그것이 이순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것으로 장옥정이란 인물의 재해석은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장옥정>은 그녀가 독하게 변하게 되는 극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궁 밖으로 내친 것도 모자라 그녀를 집에 가둔 채 불을 질러버린 인현왕후(홍수현)의 부친 민유중(이효정)은 그녀가 독해지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계기는 그녀의 당숙인 장현 역관(성동일)이 제공한다.

 

“이제 깨달았느냐.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의 들끓는 욕망을, 원하는 것을 빼앗겼을 때의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넌 주상의 총애를 받고도 길거리에 내던져졌고 민유중의 여식은 주상의 총애 없이도 명문가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감히 네가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저 자리에 있지 않느냐?”

 

장 역관이 장옥정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태생적으로 이미 정해져 버린 삶에 대한 도발이이다. 누구는 명문가에 태어나 사랑 없이도 왕의 여인이 되는데, 정작 왕의 사랑을 받는 자신은 궁에서 밖으로 내쳐져 정인 옆에도 갈 수 없는 현실. 조선이라는 신분사회가 가진 간극을 장 역관은 그녀에게 펼쳐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태생적이고 운명적인 삶에 대한 도발은 다분히 작금의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청춘들의 현실을 반영한 스토리텔링일 것이다.

 

결국 장옥정은 독해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장옥정이 이순의 사랑을 갈구하며 뭐든 다 저지르기로 마음먹는 그 순간, 장희빈이라는 캐릭터가 본래 갖고 있던 대중적인 힘이 생겨난다. 장희빈이라는 캐릭터가 과거 정통사극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면서도 대중들의 마음을 끄는 것(여성 캐릭터로서는 거의 유일무이하다)은 그녀가 단지 악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어찌 보면 조선을 다루는 사극에서 신분과 계급의 금기를 뛰어넘고 도발하는 거의 유일한 능동적인 여성이다.

 

과거 정통사극에서는 그래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를 보는 이중적인 시선이 존재했다. 한편으로는 악녀로서 비난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꽉 막힌 신분제 사회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통쾌함이 있었다는 것. 마치 가부장적인 시월드에서 시어머니에 대들고 맞서는 며느리처럼 장희빈은 당대의 양가적인 감정을 끌어안는 캐릭터였던 셈이다. 어쩌면 사극 속 장희빈의 악행을 보며 시어머니는 분노하고 며느리는 통쾌해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옥정>은 이 이중적 시선에서 ‘악녀’로서의 시각을 떼어낸 셈이다. 그녀는 여전히 독하지만 악녀는 아니다. 오히려 운명을 뛰어넘으려, 또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신세대 여성이다. 그러니 그토록 연기력 논란에 휘말리던 김태희가 ‘언제 연기 이렇게 잘했나’ 칭찬받고, 바닥을 치던 시청률이 반등하는 것은 이 본래 장희빈이 갖고 있는 캐릭터의 색깔이 살아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사극 속의 신세대 장옥정은 악녀라는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이니 이제 시청자들에게 남은 일은 그녀의 도발을 즐기는 것뿐이다. 물론 그 결과는 역사가 기록한대로 비극일 수밖에 없겠지만, 조선 같은 신분사회에서 한바탕 제 목소리를 내고 사라진 한 여성의 삶이 어찌 새롭고 귀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이제 사랑 앞에 한없이 말랑해지고 그 사랑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한없이 독해지는 장옥정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서영이>, 최윤영과 박정아 주조연이 바뀌었나

 

<내 딸 서영이>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호정(최윤영)이다. 상우(박해진)가 본래 진지하게 사귀었던 인물이 호정이 아니라 미경(박정아)이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갑작스런 변화는 당혹스러울 정도다. 한 회 분의 방송분량으로만 비교해 봐도 호정과 미경이란 캐릭터는 이제 주조연이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우와 사귀던 시절만 해도 미경의 분량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호정은 그저 한 때 스쳐 지나는 한 조연에 불과했었지만, 지금은 미경의 존재감을 거의 지워버릴 만큼 그 방송분량이 많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딸 서영이'(사진출처:KBS)

물론 사랑과 결혼이라는 것이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개연성이라는 것을 따라야 하는 게 사실이다. 상우와 미경은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고,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상우의 누이가 미경의 오빠인 우재(이상윤)와 거짓 결혼을 했다는 사실뿐이다. 누이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지는 결심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상우가 호정과 결혼까지 하는 건 과하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미경은 아무런 죄도 없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인물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그렇게 결혼한 상우가 미경을 쉽게 잊어버리고 호정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 역시 그 진정성에 의심을 가게 만든다. 과연 상우는 호정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랑 없는 결혼이지만 호정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그저 받아주고만 있는 것일까. 아니 상우는 벌써 미경을 잊어버린 것일까. 어느 쪽으로 봐도 상우와 미경 그리고 호정은 엇나간 관계 속에서 시작한 불행한 인물들일 수밖에 없다. 상우는 본래 사랑했던 여자와 결혼하지 못했고, 호정은 결혼은 했으나 사랑을 얻지는 못했으며, 미경은 사랑했던 이를 다른 이에게 빼앗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새롭게 상우와 호정 커플이 주목을 받는 것은. 여기에는 약간의 착시현상이 들어가 있다. 즉 호정이 남편인 상우와 시아버지인 이삼재(천호진)에게 너무 잘한다는 점이다. 시아버지에게 깍듯이 대하고 상우에게 사랑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호정이 부모 세대들에게는 흐뭇함을 안겨줄 수 있다. 며느리로서 호정은 부모 세대들에게 판타지적인 존재다.

 

여기에 최근 들어 <내 딸 서영이>에서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는 비밀들로 끊임없이 멘탈붕괴에 이르는 인물들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알콩달콩함을 보여주는 커플이 상우와 호정이다. 우재의 가족은 강성재(이정신)의 출생의 비밀이 터진 후 곧바로 서영이의 비밀도 폭로되면서 거의 붕괴직전의 가족을 보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러니 이 극적인 긴장감 속에서 그 긴장을 풀어주는 커플로서 상우와 호정이 유일하게 돋보이게 되는 셈이다.

 

물론 호정 같은 인물은 결혼이 반드시 사랑을 전제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캐릭터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 있지만 과거 세대들에게 이 이야기는 공감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우와 호정 커플이 급진전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미경의 캐릭터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라면 그 아무 죄도 없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미경의 상황을 좀 더 납득되게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작가가 갖고 있는 고민이 묻어난다. 미경이란 캐릭터를 다시 집중하게 되면 그 피해자라는 존재 자체가 자칫 서영이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한 것도 모자라, 동생의 사랑까지 뒤틀어버린(물론 그건 그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지라도) 서영이는 어쩌면 용서받지 못할 인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를 극적으로 몰다 보니 너무 많은 일들이 겹쳐져버렸다. 이제 서영이가 모든 비밀을 털어내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지만, 너무 멀리 간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몇몇 캐릭터들은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있다. 결국 서영이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이들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모습을 자꾸만 보여주는 건, 그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일 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래의 주조연이 바뀌어버리는 것은 너무 과한 의도가 아닐까.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71)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60)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131,577
  • 2301,182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