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김유정, 남장여자 캐릭터의 진수

 

박보검 매직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시청률이 19.3%(닐슨 코리아)로 치솟았다. 8.3%로 다소 저조하게 시작했던 시청률은 16%로 뛰어오른 후 이제 20%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경쟁작으로 등장했던 SBS <달의 연인>7.4%로 시작해 5.7%까지 떨어진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달의 연인>은 장르적으로도 또 스타일 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사극이지만 청춘 멜로를 바탕에 깔고 있고 현대극에 가까운 시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한 성격의 두 작품이 이렇게 극적으로 희비쌍곡선을 그리게 된 건 아무래도 연기자들의 몫이 크다.

 

박보검은 아직 사극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의외로 이영이라는 왕세자의 다양한 면면들을 잘도 끄집어내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릴 때면 한없이 아이처럼 슬퍼하다가, 어딘지 무기력한 아버지인 왕(김승수) 앞에서는 반항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권력의 실세로 조정을 농단하는 김헌(천호진)과는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홍라온(김유정)에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끌림을 천연덕스럽게도 연기한다.

 

혹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정통사극이 아니고 현대적인 감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극이 주는 진중함을 가져가면서도 그것을 살짝 무너뜨리며 현대적인 유머와 시각을 집어넣는다는 건 어쩌면 온전한 정통사극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두고 보면 박보검의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그 균형감각은 연기자로서 탁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박보검만큼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다름 아닌 상대역인 홍라온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유정이다. 아직 만 16세로 우리에게는 아역으로 더 많이 기억됐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지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그 아역의 껍질을 깨고 어엿한 여인으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아역 시절부터 이게 과연 아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해냈던 김유정이다. 그녀가 해온 연기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연기공력을 쌓아왔는가가 한 눈에 드러난다. 현대극들은 차치하고라도 사극만, <일지매>, <바람의 화원>, <탐나는도다>, <동이>, <계백>, <해를 품은 달>, <비밀의 문>, <구미호 여우누이뎐>까지 무려 8편에 달한다. 이미 아역 시절부터 사극이 제 옷처럼 잘 맞을 정도로 연기 경험을 해온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도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은 각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남장여자 콘셉트의 사극은 여성 연기자들에게는 연기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다. <성균관스캔들>의 박민영이 그랬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이 그랬다. 기존의 이미지를 남장여자 캐릭터로 가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와 멜로 연기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의 김유정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 같던 이미지는 내시 역할을 하며 슬쩍 친구처럼 다가왔고 그러면서 이영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며 시청자들에게도 그 매력을 드러낸다. 그녀가 연희를 위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춤을 추는 장면은 김유정이 어엿한 여인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한없이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드는 그녀가 아닌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데는 분명 박보검과 김유정이라는 두 배우의 집중력있는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박보검도 놀랍지만, 아이 같은 귀여움과 여인의 설렘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김유정은 더 대단하다. 구름 사이로 교교히 비추는 달빛처럼, 이들이 매력은 어느덧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고 있다.

<오마비> 신민아, 살찌우자 비로소 보이는 연기

 

최근 여성연기자들은 예쁨을 감추려 안간힘이다? KBS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살을 주체할 수 없는 뚱뚱이로 분장했다. 대학시절에는 남자들을 줄줄 달고 다니는 말 그대로 비너스였지만 역변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랑사또전>의 아랑이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구미호 역할을 하며 미모를 뽐낼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연기가 이 뚱뚱이 분장을 하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최근 종영했던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은 물론 <킬미 힐미><비밀> 같은 작품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그저 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 그녀 역시 <그녀는 예뻤다>에서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에 폭탄머리를 하고 나왔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녀의 연기는 더 돋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여성 연기자들에게 미모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속박될 수 있는 족쇄가 된다. 특히 출중한 외모를 가진 여성 연기자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주목받지만 대신 연기를 해도 그 연기가 미모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그 미모가 그 연기자의 이미지로 굳어져버려 새로운 연기를 할 때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는 괜찮을 수 있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 미모의 여성 연기자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굳어진 이미지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연기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외모를 가려버리는 캐릭터들은 이들 여성 연기자들에게 매력적인 기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때 이런 장치로 가장 많이 쓰인 건 남장여자였다. <커피프린스1호점>의 윤은혜는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대중들의 새로운 주목을 받았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은 늘 따라붙던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깨버릴 수 있었다. 또 이렇게 이미지를 깨는 데 유용한 역할이 바로 악역이다. 수애는 <야왕>의 주다해 같은 악역을 통해 자신의 고고한 이미지를 깨려 노력한 연기자다.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녀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캐릭터를 얻은 셈이다. 뚱뚱이 강주은이라는 캐릭터는 보기 불편할 정도로 뚱뚱한 몸과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갖고 있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일단 강주은이라는 뚱뚱이 캐릭터가 가진 씩씩하고 밝으며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그녀가 어서 살을 빼고 제 모습의 비너스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이건 놀라운 변화다. 대체로 신민아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시청자들은 흔히 그 외모를 오히려 불편해한다. 왜냐하면 마치 그 외모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마이 비너스>는 정반대다. 그 외모를 뚱뚱이 캐릭터로 가리고 연기를 먼저 보여주고 나니 오히려 본래 신민아가 갖고 있던 그 외모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

 

여러모로 <오 마이 비너스>는 극중 캐릭터인 강주은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신세 마일리지라는 표현처럼, 신민아에게 신세 마일리지를 갖게 하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뚱뚱한 얼굴에서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참 많은 걸 표현해내는 신민아를 보게 되다니. 연기자로서 < 오 마이 비너스>는 신민아에게 어떤 분수령이 될 만한 작품이다.



<마을>, 이 복잡한 미로가 보여주는 것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장르다. 폐쇄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에서 시청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압도적인 몰입감은 오히려 시청자를 유입하는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사진출처:SBS)'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마치 이런 장르적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겠다는 듯 시청자들 앞에 복잡한 미로를 펼쳐놓는다. 하나의 미로를 지났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미로가 나타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불친절한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단서들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의문들을 더욱 증폭시켜 놓는다.

 

사건 없는 마을에 암매장된 시체가 발견됐다는 건 이 드라마의 화두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그저 작은 마을. 그러나 그 고요함 뒤편으로 들여다보면 수군수군 대는 수상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시체가 외지에서 온 김혜진(장희진)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고 그 여자는 이 마을의 최대 권력자인 서창권(정성모)과 내연관계였으며 그것 때문에 서창권의 새 아내인 윤지숙(신은경)과 드잡이까지 했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이들 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 죽은 김혜진이라는 인물이 이 마을에 영어교사로 들어온 한소윤(문근영)의 언니가 아닐까 하는 단서들은 서창권의 가족과 한소윤의 가족이 과거 어떤 일인가로 얽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윤지숙의 배다른 동생 강주희(장소연) 역시 김혜진과 무언가를 함께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이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마을>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회 한 명씩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언가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인물이 용의자로 등장해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단서를 뒤집고, 확실한 이야기를 숨긴 채 용의자를 줄이기보다는 늘려 나가는 불친절함이 의외로 드라마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많은 추리물과 스릴러물이 가진 힘일 것이다. 숨겨진 비밀과 그 비밀이 양파 껍질 까듯 벗기고 나면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반복될수록 궁금증과 호기심은 증폭된다.

 

물론 이건 드라마로서는 도전적인 일이다. 시청률을 담보해내지 못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몰입감이 높을수록 시청자들의 새로운 유입은 요원해진다. 중간에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드라마에 발을 디딘 시청자라면 결코 벗어나기 힘든 미로를 만나게 된다. 그 미로는 복잡해도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을>은 이런 미로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건의 전개는 마을 사람 모두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즉 애초에 평화로워 보이던 사건 없는 마을은 회가 거듭될수록 엄청난 의뭉스런 사건들이 숨겨져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고요한 표면 속에 꿈틀대는 욕망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소윤이 외부인으로서 이 마을에 들어와 느끼는 공포감과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에 대한 궁금증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시선에 맞닿아 있다. 시청자들은 한소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의문의 마을을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은폐된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소윤과 우재(육성재) 같은 인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엄청난 욕망들이 뒤얽혀있고 그것은 때로는 범죄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러면서도 그 욕망에 일조한 모두는 쉬쉬하며 숨기는 상황.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이 미로 같은 드라마를 즐기는 법은 매번 뒤통수를 치는 사건 전개의 복잡함에 빠져들면서도 전체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소윤이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라.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가 한 가지씩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미로를 즐기기 위해서는 실타래가 필요하다. 소윤과 우재라는 실타래를 쥐고 걸어가면 의외로 놀라운 마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박' 문근영, 진짜 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란

 

근영아 내가 너 이렇게 만들려고 부른 거 아냐.” 김주혁은 생각 외로 너무나 <12>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근영에게 그렇게 말했다. 문근영에게서는 <12>의 이 모든 상황들이 즐겁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미션을 들을 때면 누구보다 집중해서 룰을 이해하려 했고, 복불복 게임을 할 때는 몸을 사리는 법이 없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은근 식탐을 보이는 문근영은 다음 미션을 성공할 시 얻을 수 있는 음식을 보며 아 맛있겠다. 근데 다 술 안주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누를 타고 먼 거리를 가서 음식이름이 적힌 푯말을 가져오는 미션에서는 남달리 단련된(?) 체력을 보여주며 마치 조정경기 선수나 된 것처럼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심지어 그녀는 시간이 남는다며 다시 한 번 그 먼 곳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승부욕 또한 넘쳐났다. ‘노래자랑 선곡 쟁탈전에서 의자 뺏기게임을 하면서 문근영은 의외의 괴력(?)을 보여줬다. 그 운 좋다는 정준영을 일찌감치 엉덩이로 밀어내버린 그녀는 신지도 밀어내고 결국은 여유 있게 우승을 했다. 의외의 승부욕과 힘을 갖고 있는 그녀지만 표정은 늘 수줍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련의 모습에서 문근영에게 느껴지는 건 진짜 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늘 방에만 콕 박혀 지낸다는 그녀였다. 하긴 가까운 슈퍼에 가는 것도 그녀를 알아보는 이들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을 거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순식간에 국민 여동생이 되었던 그녀. 그러니 그 한참 놀 나이에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단발머리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자기가 자기 손으로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미용실에 가서 다듬어달라고 했다는 것. 머리 하나 자르는 것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12>은 진짜 처음 공개적으로 하게 된 놀이가 아닐 수 없었다. 싱글벙글 웃는 그녀의 모습에 보는 이들까지 흐뭇해진 건 그래서다.

 

그런데 <프로듀사>의 효과일까. 마침 <12>이 기획한 여자 사람 친구 특집또한 달라보였다. 문근영에게서는 <프로듀사>에서 <12>에 출연했던 신디가 떠올랐다. 어쩐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복불복 미션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나 다른 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며 어우러지는 모습이 <프로듀사>의 신디라는 인물과 자꾸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밝고 활기찬 모습만큼 그 뒤에 숨겨져 있을, 적은 나이에도 결코 적지 않을 아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신나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근영의 모습이 주는 짠함. 오죽하면 <12>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나마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일까.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아련함이나 쓸쓸함이라니.

 

<프로듀사> 신디라는 캐릭터를 통해 슬쩍 들여다본 아이돌의 삶은 그래서인지 <12>에 출연한 여자사람들에게서 어떤 페이소스 같은 걸 느끼게 만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12>이라는 프로그램이 늘 즐거움을 주면서도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어떤 애잔함의 정체가 아닐까 싶다. 이건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지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이나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가끔씩 너무 열심히 프로그램을 즐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으로 느껴지는 훈훈함과 애잔함. 큰 웃음 속에서도 느껴지는 이런 정서가 <12>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드는 진짜 힘은 아닐까.

 

여자사람친구 특집, 이게 바로 <1>만의 묘미

 

KBS <프로듀사>편집의 이해’, ‘러브라인의 이해’, ‘예고의 이해같은 부제가 달린 것처럼, 이번 <12> ‘여자사람 특집에 부제를 붙인다면 캐스팅의 이해정도가 되지 않을까. 설명이 필요 없는 귀여움의 끝을 보여주는 박보영과 문근영, 그리고 걸스데이 민아. 웃음과 경륜(?)을 책임지는 신지와 김숙, 게다가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까지. 본래 캐스팅이란 이처럼 섭외되는 순간 모든 이야기들이 준비될 때 완벽해지는 법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들의 등장은 <12>로 보면 별 것도 아닌 상황들을 특별하게 만들어버렸다. 오프닝에서 그녀들이 등장할 때마다 빵빵 터지는 웃음이 그랬고, 첫 등장부터 삶은 계란과 날계란 중 하나를 골라 상대방의 얼굴에 깨는 익숙한 복불복마저 그녀들과 함께 하자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치 금남의 지대처럼 여겨져 온 <12>에 들어온 여자 사람캐스팅의 파괴력은 이처럼 컸다.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게스트들의 출연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의 재미 또한 살려 놓았다. 오빠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드는 박보영은 계란을 아메리카노로 바꾸는 협상을 하면서 유호진 PD와 묘한 설렘을 만들어냈다. 마치 <프로듀사>에서 PD와 아이돌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를 보는 듯, 유호진 PD가 오히려 살짝 웃으며 박보영에게 양해를 부탁하자, 그걸 보던 신지는 PD끼 부린다고 꼬집었다.

 

한 번도 예능에 제대로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문근영은 의외의 승부욕을 드러내며 점점 문대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복불복 게임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승패에 속내가 숨겨지지 않는 표정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 예능 경험이 없어 오히려 더 리얼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헤어롤을 말고 함께 차 안에 앉아 천상 여자인 모습을 보여준 민아와 박보영은 마치 친자매 같은 훈훈함이 묻어났고, 테크노 여전사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극강 동안 이정현과 정준영의 오누이 같은 관계나 신지와 김종민, 김준호와 김숙의 끈끈한 관계는 웃음과 함께 <12>만이 가진 그 정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놀이공원에서 펼쳐진 복불복에서도 이런 <12>만의 훈훈한 정서들은 별 거 아닐 수 있는 장면들마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어찌 보면 이제는 누가 복불복으로 밥을 먹고 누구는 굶게 되는가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12>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여자 게스트들의 등장은 이 익숙함을 흥미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2>은 예전부터 외부인물들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더 시너지가 만들어지곤 했다. 이를 테면 일반인들이 100여명씩 출연하곤 했던 시청자와 함께 하는 <12>’이나 외국인 근로자 특집, 박찬호 같은 특급 게스트 특집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게스트의 투입은 새로운 리액션들을 보여준다. 결국 <12>의 웃음은 복불복 그 자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복불복에 이은 리액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소금물을 마시게 되는 복불복도 늘 하던 기존 멤버들이 하는 것보다 박보영이 마시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복불복의 과정을 통해 게스트가 점점 고정 MC들과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그래서 호스트와 경계가 사라져버리는 그 지점은 <12>만의 가족적인 재미를 가능하게 해준다. 박보영과 문근영, 민아, 신지, 김숙 그리고 이정현이 출연한 여자사람 친구 특집은 <12>만이 가진 묘미를 제대로 살려냈다. 그리고 그것은 게스트를 손님이 아닌 주역으로 만들어내는 <12>만의 리액션 웃음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청담동>이란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가 온 까닭

 

청담동은 ‘이상한 나라’다. 거기서는 백 하나의 가격이 누군가의 몇 달치 월급이고 옷 한 벌이 누군가의 일 년치 봉급이다. 그런데도 물건이 없이 못 팔 지경이다. 아니 심지어 가격을 더 높이면 높일수록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그래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스 코리아라는 명품(사치품?) 브랜드의 이제 겨우 33세 회장인 차승조(박시후)는 가격을 끊임없이 더 올리라고 한다. 결국 이 명품의 탈을 쓴 사치품은 가격과 상품의 질 때문이 아니라 ‘공포’ 때문에 팔리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살 수 없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감.

 

'청담동 앨리스'(사진출처:SBS)

이 부자들의 섬 같은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앨리스 한세경(문근영)이 들어온다. 그녀는 전형적인 88만원 세대. 등록금 대출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가 되고 여기저기 취업전선을 뛰어다니지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약한 스펙으로는 취업이 어렵다. 게다가 남자친구는 쓰러진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다 빚더미에 올라앉고 범법행위를 한 후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리고, 부모님은 대기업들의 횡포에 점점 기울어가는 골목상권의 피해자가 되어간다. 한쪽은 껍데기에 불과한 옷 한 벌에 수백 만 원을 펑펑 쓰고, 다른 한쪽은 돈 몇 푼이 없어 빚쟁이로 쫓겨 다니는 이 기묘한 세상. 청담동은, 아니 이 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청담동이 이상한 나라가 된 건 태생적으로 모든 게 결정되어버리는 양극화된 빈부의 삶 때문이다. 한세경은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지만 그녀에게 직장상사인 신인화(김유리)는 혹독한 현실을 일깨워준다. 한세경의 노력으로도 될 수 없는 것.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바로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삶에 의해 생겨나는 안목’이란다. 즉 한세경의 부족한 스펙이란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유학갈 형편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오면서 갖게 된 낮은 안목이라는 것.

 

결국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이 그저 ‘희망고문’이 되어버리는 이 이상한 나라를 보고는 절망하는 한세경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것을 몰라서 꿈이나 희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버지는 이미 노력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헛된 꿈이나 희망이라도 갖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말한다. 아버지의 이 고백은 이제 청담동에 발을 딛고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한 한세경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남편 잘 만나 청담동 사모님이 된 고등학교 동창 서윤주(소이현)와 한세경은 빈부의 양극단에 서서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 부딪치게 되지만 어쩌면 그 둘은 똑같은 앨리스인지도 모른다. 서윤주 밑에서 심부름을 하며 굴욕을 당하던 한세경이 어느 날 찾아와 서윤주의 과거를 꺼내 협박하며 자신도 어떻게 하면 너처럼 될 수 있냐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도무지 성장의 사다리는 보이지 않는 사방이 막혀져버린 막막한 현실 속에서 한세경이 청담동 며느리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과거 서윤주가 선택했던 그 길일 수 있다.

 

사랑조차 돈이 있어야 되는 이 현실을 한세경은 받아들인 것(그 선택이 끝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하지만 정반대의 인물도 있다. 돈을 찾아 떠나버린 서윤주와 결혼까지 했지만 버림받고 절치부심해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으로 돌아온 차승조가 그렇다. 그는 ‘돈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은 없다’고 말하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한세경의 순수한 사랑을 목도하고는 펑펑 눈물을 흘린다. 물품을 빼돌려 고소위기에 몰린 남자친구를 위해 차승조에게 한세경이 보낸 적금통장과 편지는 돈의 또 다른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치와 과시에 불과한 돈이지만, 그 적금통장 속에 알알이 적혀진 사연들은 한세경의 한없이 순수한 사랑의 표징이니까.

 

과연 한세경은 앨리스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신데렐라가 될 것인가. 청담동 며느리가 된 서윤주가 신데렐라를 꿈꾸며 사랑 따윈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인물이라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세경 역시 그 신데렐라가 되고 말 것인가. <청담동 앨리스>는 바로 이 한세경이 신데렐라의 유혹을 느끼면서도 앨리스로 돌아오길 바라는 그런 드라마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한 바탕 청담동이라는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런 앨리스. 이 절망적인 현실을 그녀는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앨리스를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아이유, 국민여동생 이미지 벗어나야

 

슈퍼주니어 은혁과 함께 찍은 셀카 사진이 SNS를 통해 유포되면서 아이유의 국민여동생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귀여운 외모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찬 모습의 그녀가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하고 노래를 부를 때 삼촌 팬들은 열광했었다. 하지만 이 야릇한 사진 한 장은 그 모든 이미지와 판타지를 깨버렸다. 아이유와 아이유 소속사로서는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아이유'(사진출처:로엔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또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다. 국민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누구나 성장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성장하고 있는(또 해야 하는) 연예인에게 국민여동생이란 이미지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아이유는 그 이미지를 통해 많은 팬덤을 형성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얻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게 굳어져버린 이미지는 아이유에게는 결국 독이 되기 마련이다.

 

영원히 팬들에게 국민여동생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 어린 나이에 성장이 멈춰야 한다. 이미지적으로 말하면 이미지가 변질되기 전에 은퇴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영원히 아이유는 국민여동생으로 봉인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아이유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많은 가능성과 장점을 가진 가수이기 때문이다.

 

셀카 사진이 이미 SNS를 통해 유포되었을 때 소속사가 “아이유 집으로 은혁이 병문안 와서 찍은 사진”이라고 진실 공방으로 대응한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이미지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믿고 싶은’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속사가 봐야 했던 것은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대중들이 뭘 믿고 싶어하는가 하는 그 정서다.

 

이것은 SNS 시대에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연예인들의 이미지 논란에서 반드시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다. 타블로와 티아라 사태가 일파만파 번졌던 것은(그리고 여전히 그 불씨가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 대중정서를 읽지 않고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에만 억울해하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벌어진 사건은 사실 진실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아이유는 스스로도 자신이 국민여동생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을 버거워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대중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인 걸. 과거 문근영이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겪은 성장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덧입혀진 그 이미지를 벗어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 사진의 진위가 어떻든 셀카 사진 한 장으로 생겨난 이 아이유 이미지의 균열은 그녀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그녀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면모를 가졌고 털털하면서도 개념 발언을 많이 한다고들 한다. 통기타 하나 들고 앉아 자신이 만든 곡을 담담히 불러내는 싱어 송 라이터로서도 그녀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가수다. 그간 너무 ‘여동생’의 이미지를 부여한 가사에서 탈피해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아이유는 기대하면 안 되는 일일까. 이번 일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아이유는 더 롱런할 수 있을 것이다.

'매리는 외박중', 어른 없는 세계를 꿈꾸는 드라마

"우리 아빠 때문에 미안해." "우리 엄마 때문에 미안해." 무결(장근석)의 엄마 감소영(이아현)과 매리(문근영)의 아빠 위대한(박상면)이 다투고 나자, 무결과 매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 다툼에 대해 얘기하듯.

'매리는 외박중'이라는 작고 귀여운 세계에 어른들은 외박중(?)이다. 위대한과 감소영은 둘다 그럴 듯한 직업이 없다. 어찌 보면 이 두 어른들을 돌보는 건 거꾸로 매리와 무결이다. 매리는 빚 독촉에 시달리는 아빠를 위해 100일 결혼 계약을 하고(그래서 떡볶이집 사장이 되기도 했다), 무결은 여전히 현실감이 없는 엄마가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정인(김재욱)의 회사와 계약을 한다. 물론 정석(박준규)도 마찬가지. 여전히 매리의 엄마를 잊지 못해 매리를 며느리로 들이려는 그는 좋게 말해 로맨티스트다.

어른 없는 세계에 오롯이 서 있는 네 인물, 매리, 무결, 정인(김재욱), 서준(김효진)은 저들끼리 어른들의 세상과 맞서보려 한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정인의 아버지는 사랑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황혼을 완성하기 위해 아들을 메리와 결혼시키려 하고, 위대한은 딸을 사랑하지만 딸의 사랑은 아랑곳없이 결혼을 시키려 한다. 무결의 엄마 감소영은 아들이 겪는 사랑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어른들을 뒤로 밀어낸 이 드라마는 그래서 그 위에 청춘들의 드라마를 세우려 한다.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가상 결혼 설정이 그것이다. 매리는 오전에는 정인과 오후에는 무결과 함께 지내면서 쿨하지만 풋풋한 일과 사랑을 꿈꿔나간다. 그래서 매리가 해보는 가상 결혼이라는 설정은, 흔히 막장드라마로 도드라지게 그려지는 어른들의 세계, 즉 결혼하면 늘 등장하는 정략결혼 같은 것과 대결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이 장난 같고 심지어 대책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사랑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매리의 아버지는 무결을 그저 그런 한량쯤으로 여기고, 정석은 자신의 아들 정인을 마치 자신의 욕망을 위한 소유물처럼 다루면서 사랑 또한 강요한다. 하지만 이런 막장스런 어른들의 강권 속에서도 아이들은 저들끼리 귀엽고 예쁜 사랑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 속의 네 청춘들이 만들고 있는 음악드라마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다. 시청률 때문에 편성이 되지 않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성세대의 입맛에 맞게 고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정인과 매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매리가 아이디어를 내고 정인이 채택한 사전제작 방식은 그래서 이 '매리는 외박중'이라는 드라마가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오롯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

이 작품에서 네 명의 청춘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은 기성 드라마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심지어 만화적이고 동화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문근영은 귀여움의 극치를, 장근석은 귀차니스트와 자유로움의 극치를, 김재욱은 신사다움의 극치를, 그리고 김효진은 스타답고 여성스러운 매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매리는 외박중'이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건, 스스로 기성 드라마의 자극적인 공식에 익숙해졌다는 얘기도 된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점을 뒤집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 없는 세계, 막장 없는 드라마, 동화 같은 판타지 같고 심지어 만화 같지만, 그래도 청춘들의 고민을 담아내는 드라마.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드라마가 꿈꾸는 세계는 시청률이라는 잣대로는 드러나지 않는(혹은 드러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

고슴도치 같은 '신데렐라 언니'의 사랑법

"옛날에 나 이집 떠날 때. 기차역에 왜 안 나왔어? 편지 못 받았어? 기차역으로 나와 달란 편지. 효선이한테 전하랬는데. 효선이가 혹시 안 전했었니? 응?" '신데렐라 언니'의 이 대사는 전형적이다. 이 부분만 들어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훈(천정명)의 질문에 대해 은조(문근영)가 "받았어"하고 말하는 장면은 그 전형성을 벗어난다. 사실 받지 못했고, 당시 그 편지 한 장이 은조에게 어떤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 은조의 독한 말에서 다양한 뉘앙스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읽고 나서 찢어버렸는지 태워버렸는지도 생각 안나는 데, 내가 그걸 여태까지 기억해야 돼? 거지 같이 굴지 마. 누구한테 뭘 구걸하고 있는 거야. 나한테 옛날 일을 얻어가겠다고? 줄 거 없어. 나한테 옛날 일 같은 거 묻지 마. 그딴 거 없어. 없다고 했잖아." 이 말투는 그녀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말투다.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는 왜 이다지도 독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받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고 하는 걸까.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남자가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진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새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이다. 엄마가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그 남자. 그래서 엄마의 부채감까지 혼자 짊어진 은조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대성도가의 일에만 몰두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심지어 그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 효선(서우)까지 돌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 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그 편지를 전하지 않은 것이 효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봐주려고 한다.

"편지 안 전했다는 거 그게 유치하다는 거지? 그럼 그 유치함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라는 게 그건 뭔데?" 효선의 추궁에 은조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처음으로..."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떨군다. 이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편지 시퀀스는 '신데렐라 언니'라는 드라마가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은조가 "유치하고 끔찍하다"고 표현한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 있는 상황은 유치할 정도로 전형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섬뜩할 정도로 끔찍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있는 편지는 그깟 편지 한 장이 아니다. 늘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당연한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그 일이,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하며 살아온 은조에게는 끔찍한 결과였을 테니까. 유치함이 끔찍함이 되는 상황.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신데렐라 언니'가 보여주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은조의 그 독함에서조차 마음이 끌리게 된다. 드라마가 그 독함 이면에 숨겨진 그녀의 가녀림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을 독하게 밀어내고,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기훈이 떠나자 다시 마음을 닫아 버린 은조.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깊은 부채감으로서 일의 세계에 몰두해온 은조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래서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그녀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준 이들은 모두 떠나버리게 된 것이니까.

유치함마저 끔찍함으로 바라보는 그 섬세한 시선은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독한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그 독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이 깊이 있는 시선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말투, 말 그 이면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드라마가 인간에 대한 어떤 깊은 이해와 공감을 추구한다면, '신데렐라 언니'는 거기에 가장 잘 부합하는 드라마일 것이다. 다가갈수록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세워진 은조의 가시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른다.

선악을 넘어, 관계의 화학반응으로 가는 '신데렐라 언니'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 '신데렐라 언니'의 그 언니인 은조(문근영)는 그녀를 향해 해맑게 미소 짓는 기훈(천정명)에게 다짜고짜 쏘아댄다. 기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넌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니?"하고 되묻는다. 어쩌다 은조는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고 여기는 아이가 되었을까. 기훈의 질문은 전통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그 언니가 왜 그토록 악독했던가 하는, 지금껏 아무도 던지지 않은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이 악독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서 소외된 그 언니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그녀가 그토록 독해지고 매정해진 사연을 찾아낸다.

그녀의 어머니 송강숙(이미숙)은 한 때 걸핏하면 계집질 하는 남자를 잡아놓기 위해 광목천을 끊어다 죽으려고까지 했던(물론 연기지만) 독한 인물. 그녀는 인생은 그처럼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며, 그러다 끽 잘못되더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얻을 걸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토록 진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엄마가 그 모든 것이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할 때 은조가 느꼈을 절망은 얼마나 컸을까. 자신의 삶이 지독히도 구차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효선(서우)이 아버질 좋아는 해? 효선이 아버지 그냥 뜯어먹을 게 많은 남잔 거야?"하고 묻는 은조는 그래서 필사적이다. 하지만 엄마 송강숙에게 그건 '거지같은 질문'이고 괜한 '청승'이다. 그래서 "좋아서 산다고 말해주면(거짓말이라도) 용서해준다"는 은조에게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잔인한 말을 해댄다. 은조를 엄마를 통해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더 이상 악역이 아니라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다. 술독에서 술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회초리를 맞아 피멍이 든 종아리에 고기 점을 붙여주는 기훈이 그저 "은조야"하고 불러주는 것에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달까지도 가겠다'는 기쁜 마음을 갖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기훈에게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듯이 따오기가 따옥 따옥 울듯이 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는 그 내레이션이 깊은 공감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은조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면서 그 독해진 사연을 들려주는 동안, 신데렐라인 효선은 그 몰이해 때문에 거꾸로 악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은조의 독한 행동 뒤에 숨겨진 상처받은 영혼을 보여준 후, 그로 인해 다시 상처받게 되는 효선의 마음을 찾아간다. 무엇하나 손에 쥔 게 없던 은조가 무엇이든 쥐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는 동안, 모든 걸 쥐고 있었던 효선은 차츰 은조에 의해 자기 것이 사라져가는 불행한 상황을 맞이한다.

그녀는 도저히 은조를 따라갈 수 없다는 데서 절망을 느끼면서, 질투가 존경의 차원으로까지 넘어가는 그 지점에 이르자, 입으로는 "언니야. 내가 잘 할께. 죽지마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죽어버려라'하고 외치는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형편없어지는 내 옆에서 근면성실하고 잘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은조에게 "네가 꼴도 보기 싫다"며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하고 외치는 효선의 마음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은조와 효선, 부딪치게 되는 이 두 인물의 속내를 이해하면서, 우리는 그녀들이 모두 악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진짜 악역은 누구일까. 눈앞에 언뜻 보이는 인물은 은조의 어머니 송강숙이다. 그녀는 자신의 구차한 인생의 이유가 모두 은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은조의 삶 또한 구차하게 만들어버리는 존재이며, 또한 모성애를 갈구하는 효선에게 엄마인 척 행동하면서 오히려 그녀를 망치고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몹쓸 행동들도 자식을 가진 모성애의 한 차원으로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너 업고 쓰레기통도 뒤졌어. 더러운 거라도 안 먹이는 거 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뒤져 먹이고 너 탈났을 때, 밤새 열 오르고 니 눈동자 뒤로 까무룩 넘어가 흰자만 번뜩일 때,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신령님, 내 새끼 죽이기만 해보라고, 내가 가만 놔둘 줄 아느냐고, 하늘이고 나발이고 간에 한 입에 꿀꺽 삼켜 잘근잘근 씹어주겠다고, 사람으로 품위 지키면서 사는 거 그날 밤으로 포기했어." 송강숙의 이 대사는 진짜 악역처럼 보이는 그녀에게서 그 독한 행동의 이유를 찾게 해준다.

보통의 드라마가 선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는 반면, '신데렐라 언니'는 악역을 위한 드라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독한 면모를 가진 악역들의 뒤에 숨겨진 독한 사연을 끄집어내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드라마.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 드라마에는 실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어떤 화학작용을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신데렐라 언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술도가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화학작용이, 상당부분 술이 주는 상징과 맞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소재들이 모여 부딪치며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결국 술이라는 하나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은, 치열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래서 술은 독하면서도 감미롭다.

세상에 진정으로 악하고 독한 자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세상의 악역은 어찌어찌하다 그 역할을 맡게 되었을 뿐, 실제 악이 아니다(실제 악은 오히려 '가난' 같은 엉뚱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런 인물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내면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악역이 되어버린 그들이 서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하나로 얽혀 만들어내는 소리는 아비규환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가 될 수도 있다. 저 은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술독에 술이 익어가던 그 소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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