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리는 ‘죄와 벌’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세 번째 살인>은 미스미(샤쿠쇼 코지)가 공장 사장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미 젊은 시절 살인을 저질러 30년 간 감옥에서 지낸 바 있다. 출소한 후 다시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것이 미스미의 두 번째 살인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미스미는 순순히 붙잡혀 자신이 공장 사장을 살해했다는 걸 시인한다. 그러니 더 이상의 살인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세 번째 살인’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세 번째 살인>은 해석할 여지가 많은 문제작이다. 살인과 재판 그리고 그 사이에 드러나는 진실들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법정극의 틀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예사롭지 않은 질문과 대답들 사이에서 이야기는 ‘심판’이나 ‘죄와 벌’ 같은 종교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살인사건의 동기나 과정을 파고들어가지만 미스미라는 문제적 인간이 던지는 질문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너무나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의 미스미는 살인자의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물론 그 무표정함과 냉철함이 어떤 섬뜩함을 만들지만, 그것은 마치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세계를 경험한 자의 눈빛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두려움 같은 것이다.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애초에 미스미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건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목적하는 바인 사형만을 면하는 것이 그가 미스미 사건을 변호하는 이유다.

진술을 듣는 와중에 시게모리는 미스미에게 점점 더 몰입하기 시작한다. 공장사장의 살해현장에서 발견된 우연인 듯 보이는 십자가 형상을 보며 이상함을 느끼는 시게모리는 점점 혼돈에 빠져버린다. 미스미와 공장사장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가 아는 사이였고 사키에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사키에를 구하기 위해 응징을 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또한 과거 미스미의 살인 역시 억울하게 당한 가족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가 과거 지키지 못했던 딸을 미스미와 동일시했다고 시게모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미스미의 집에서 그가 기르던 새가 죽어 묻은 곳에서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나온 걸 확인한 시게모리는 그가 새들을 죽여 묻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그저 살인자라는 사실과 자신의 딸과 동일시한 사키에를 구원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두 관점 사이에서 혼동에 빠진다. 그렇지만 사키에가 미스미를 위해 자신이 당한 일을 법정에서 진술하겠다고 나서자 미스미는 갑자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이렇게 진술을 번복한 것이 사키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키에는 진실을 밝히지 않고, 시게모리가 예상한 대로 미스미는 무죄주장 때문에 오히려 사형 구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미스미가 사형 구형을 받는 그 장면에서의 얼굴이 너무나 평온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원했던 결과가 이것이라는 그런 표정이다. 법정에서 미스미가 시게모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악수를 하는 대목에서 시게모리는 문득 깨닫는다. 미스미가 말보다 더 정확히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손이라고 했던 말을. 

<세 번째 살인>은 구체적으로 미스미가 무엇을 계획했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진 않는다. 그가 말했듯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말들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굳이 ‘세번째 살인’이라고 제목을 붙여 놓은 데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이 미스미가 스스로에게 내린 심판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유추해낼 수 있다. 그는 공장사장을 이야기하며 “세상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인간”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스미라는 문제적 인간을 세워놓고 <세 번째 살인>은 시게모리라는 어찌 보면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여겨지는 냉정한 인물이 그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담는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미스미의 얼굴에 근접해 거의 겹쳐지려는 유리창에 비춘 시게모리의 얼굴을 보여준다.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무죄 주장을 통해 사키에가 과거의 상처를 증언할 필요가 없게 배려했다고 믿지만, 미스미는 그 ‘좋은 얘기’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게 유리창에 비친 두 얼굴은 겹쳐지는 듯 보이지만 다시 멀어진다. 

세상은 진실대로 움직이지 않고 죄와 벌은 등가로 심판받지 못한다. 미스미는 그래서 살인이라는 어쩌면 신만이 가진 심판을 제 손으로 내린다. 그러면서 거기 십자가를 새겨 넣는다. 그것이 마치 대속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스스로에게도 심판을 내린다. 우리는 미스미가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를 심판하는 그 과정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지속적으로 십자가의 형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살해된 공장사장이 불에 탄 자리에 남은 십자가 형상이 그렇고, 미스미의 집 죽은 카나리아를 묻은 작은 무덤 위에 새겨진 십자가가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는 이제 십자로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시게모리의 모습을 통해 십자가의 형상이 그려진다. 도무지 인간이 판정하고 판결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서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십자가 형상을 긋는 것 정도라는 걸 드러내듯. 오랜만에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났다.(사진:영화 '세번째 살인')

<굿와이프>, 그 어려운 걸 해낸 연기자들의 놀라움이란

 

tvN <굿와이프>는 종영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연기자들의 잔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도연이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연기자에게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미드 리메이크작으로서 정서적 충돌이 분명히 있었지만 이걸 넘게 해준 건 역시 연기자들의 빛나는 연기 덕분이었다.

 

'굿와이프(사진출처:tvN)'

그 중심에 서 인물은 단연 전도연이다. 사실 김혜경 같은 인물이 우리네 정서에서 심정적 지지를 받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전도연은 이 인물이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는 과정에서도 섬세한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한 면이 있다.

 

남편의 외도와 자신을 이용하려는 속내를 알아차리고, 억누르며 살았던 자신을 끄집어내 그 욕망을 분출시키는 과정들이 그저 불륜이라고 치부되지 않았던 건 그녀가 연기를 통해 보여준 김혜경이란 인물의 내적 갈등이나 억압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와 남편 앞에서 또 일터에서 각기 다른 면을 보여주며 그것이 모두 합쳐진 복합적인 인물로서의 김혜경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또한 유지태 역시 초반에는 권력을 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번 실수를 저지르고 아내에게 참회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이태준의 캐릭터를 구축함으로써 드라마에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조금씩 숨겨져 있던 욕망을 드러내고 김혜경, 서중원(윤계상)과 각을 세우는 나쁜 남편의 모습을 그렸지만, 그러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건 유지태의 연기가 얼마나 빛났던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윤계상 역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김혜경과 점점 가까워지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냉철함을 보이는 인물이었다. 마치 두 사람의 불륜이 이뤄질 것처럼 여겨졌지만 결국 친구처럼 남아버린 결말에도 그것이 이해될 수 있었던 건 윤계상이 연기한 서중원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냉철함이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납득되었기 때문이다.

 

김서형은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전문적인 이미지가 묻어나는 서명희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워낙 이런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지만 <굿와이프>에서는 로펌의 오너로서의 판단과 동생인 서중원의 누나로서의 판단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김혜경과 어떤 동질감을 공유하는 워킹우먼으로서의 판단이 부딪치는 캐릭터로서 훨씬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김단 역할로 인생 캐릭터를 만난 나나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등장하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났었다면 <굿와이프>의 나나는 이런 이미지를 일거에 날려버리는 효과를 만들어주었다. 사실상 김혜경의 뒤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해내는 만능 캐릭터였던 김단은 일을 위해서는 뭐든 하는 열혈 여성의 걸 크러시까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굿와이프>는 분명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문제작이었다. 그러니 자칫 잘못했다면 논란거리가 양산됐을 드라마다. 하지만 이것을 충분히 눌러주었던 건 연기자들이 섬세한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설득해줬던 그 노력 때문이다. 결국 그저 불륜드라마가 아니라 좋은 아내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 그 어려운 걸 해낸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굿와이프>의 쿨한 도발, 충분히 의미 있는 까닭

 

tvN <굿와이프>는 여러모로 도발적이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법정극을 다루지만 우리네 법정드라마들이 하듯 법 정의를 내놓고 기치로 내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혜경(전도연)은 새로 로펌에 들어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의뢰인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입하는 모습을 보이다 로펌 대표인 서명희(김서형)로부터 한 소리를 듣는다. 변호사의 일은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굿와이프(사진출처:tvN)'

이 대단히 쿨하다 못해 비정하게까지 여겨지는 법에 대한 태도는 <굿와이프>라는 법정드라마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변호인들이 대부분 약자들의 편에 서서 법 정의를 실현해내는 소시민들의 영웅처럼 그려지고 있다면, <굿와이프>에서 변호사들은 프로들이다. 김혜경과 계속 맞닥뜨리는 상대편 변호사 손동욱(유재명)은 이기기 위해서는 별의 별 꼼수까지 다 쓰지만 결과가 나오고 나서는 마치 스포츠라도 한 판 한 듯 쿨하게 그녀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우리네 법정드라마에서 법 정의를 둘러싸고 선과 악이 극명히 대립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다만 의뢰인에 따라 결정되는 직업적인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것에 굉장한 도취감이나 좌절은 없다. 다만 성취나 낙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런 쿨한 태도는 아마도 좀 더 실제에 가까운 변호사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저 선과 악을 운운하고 서민들의 영웅으로 그려지곤 하는 우리네 변호사들이 순진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순진해보여도 바로 우리네 정서인 것만은 분명하다. 드라마가 결국 현실을 그대로 그린다기보다는 현실에 부재한 판타지를 건드린다고 볼 때, 우리에게 드라마가 그리는 변호사에 소시민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판타지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에서 희구되는.

 

그래도 법 정의의 문제일 때는 <굿와이프>의 이런 직업적이고 프로적인 쿨한 태도는 그런대로 흥미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또 한 축, 즉 남편과 남자친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삼각관계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정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김혜경의 남편 이태준(유지태) 검사는 한 마디로 나쁜 남편이다. 그는 이미 불륜을 저질러 김혜경을 배신한 바 있고, 그래서 잘못했다 말하면서도 아내의 그 좋은 이미지를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김혜경은 그 남편과 살아왔던 세월을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하지만 거기서 상사이자 오랜 친구인 서중원(윤계상)과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국 선을 넘어버린다. 이 부분은 미국적 정서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간 김혜경이 살아온 세월과 당해온 일들을 생각해보라. 그녀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당연히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 마음이 걸리는 건 아직 아이들이 있고 남편과 이혼을 명쾌하게 하지 않은 사이에서 김혜경과 서중원이 선을 넘는 모습이다. 그건 마치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남편과 똑같이 옳지 않은 행동으로 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러한 행동도 선과 악의 윤리적 잣대로 바라보는 우리네 시선과는 상당히 다른 미국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굿와이프>는 우리네 드라마 정서에는 태생적으로 문제작일 수밖에 없다. 제목이 <굿와이프>지만 그것은 좋은 아내로서의 김혜경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이른바 좋은 아내로 상정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암묵적인 사회적 압력 같은 것들을 보기 좋게 깨버리는 김혜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경의 성장은 그래서 일에 있어서는 쉽게 선악으로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프로페셔널로 서는 것이고, 사랑에 있어서는 좋은 아내같은 때로는 폭력적인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굿와이프>가 하려는 이야기는 도발적이지만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으로 우리네 대중들에게 100% 공감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가진 가치는 지금껏 선악구도와 윤리적 잣대에만 매몰되어 아무도 질문을 건네지 않았던 일과 사랑에 대한 파격적인 질문들을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곡성>, 무서운데 웃긴다? 에너지 넘치는 문제작

 

간만에 보는 문제작이다. 무당, 퇴마, 귀신 같은 하나만 나와도 섬뜩해질 소재들이 <곡성>에는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러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 공포와 스릴러가 주요 장르지만 나홍진 감독은 여기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빼놓지 않았다. 마치 공포의 집에 들어가 호들갑을 떠는 납량특집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어 숨 막힐 듯 소름 돋는 영화지만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사진출처:영화<곡성>

영화는 낚시를 하는 한 사내를 비춰주며 시작한다. 사내가 낚시 바늘에 미끼를 꿰는 장면은 <곡성>이라는 영화가 가진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 종구(곽도원)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차츰 종구가 깊숙이 들어가고 그것은 결국 종구와 그 가족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곡성>을 문제작이라고 부르는 건 그 이야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귀신이나 퇴마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종구가 그러하듯 관객들도 갑자기 마을에 깃든 어두운 기운과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등장하는 무당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종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종구가 끊임없이 미궁 속에 빠져버리고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에너지가 커진다. 사실 3시간 짜리 영화에서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곡성>이란 영화를 명쾌하게 해석하는 건 쉽지 않고 또 이 영화에 합당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난해한 문제를 미끼로 던져놓는 것 자체가 <곡성>이라는 영화의 힘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관객은 도대체 저런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를 궁구하면서 영화 속에 깊게 빠져든다. 그것은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관객이 누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것과 닮아있다. 이유를 알기 위해 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낚시 바늘은 더 깊게 상처를 파고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건 믿음혹은 현혹에 대한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그러한 미지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홍진 감독은 그 미지의 공포들을 관객 앞에 죽 세워두고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영화가 두렵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건, 미지의 세계 앞에 두렵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곡성>은 그래서 나홍진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진 미끼처럼 느껴진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미끼이기 때문에 일단 영화관에 들어서는 순간 헤어 나올 수 없는 미궁의 엄청난 에너지를 체험하게 된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화 체험이 아닐 수 없다

<개과천선> 김명민의 딜레마가 담는 예사롭지 않은 질문들

 

<개과천선>의 이야기 전개는 생각보다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겪은 기억상실로 인해 윤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같은 사람이지만 김석주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어 있는 것. 현재의 김석주는 과거의 김석주가가 저지른 잘못들을 스스로 고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따라서 <개과천선>은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일관되게 흘러온 사적인 역사에 다름없다. 그런데 김석주 변호사는 기억 상실로 인해 이 정체성이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부정할 때 과연 그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터미네이터>나 최근 개봉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가 보여주듯 과거를 바꾸려는 현재의 노력은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개과천선>이 놀라운 것은 이 드라마가 기업의 편에 서서 서민들의 힘겨움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던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가 그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하는 이야기 정도를 다루는 단계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이야기였다면 김석주는 서민들의 슈퍼히어로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시청자들에게 꽤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단순한 서민들을 위한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선선히 던져버리고 진지한 정체성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것은 기억상실로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약혼녀였던 유정선(채정안)을 만나면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김석주 변호사가 유정선에게 인간적인 끌림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유정선은 서민들을 나락으로 몰고 간 주가조작 혐의로 법정에 서고 구속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김석주 변호사의 정체성 혼란에 의한 두 번째 딜레마가 시작된다. 첫 번째 딜레마가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냐 아니면 가진 자들을 위한 변호사냐를 두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변호사로 재탄생된 김석주의 문제를 다뤘다면, 두 번째 딜레마는 이렇게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변신한 김석주가 개인적인 사랑을 앞에 두고 겪는 문제를 다룬다. 변호사는 공적인 직업이지만 그 역시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가진 한 인간이라는 것.

 

무수한 사람들을 피해보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서민들을 생각한다면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는 그들의 편에 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여인에게 점점 마음을 주기 시작한 한 남자의 입장에서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곤경에 처한 여인, 그것도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된 여인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개과천선>은 올해 보기 드문 문제작이다. 그저 그런 판타지를 주는 단계를 넘어서서 인간의 딜레마를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으로서의 변호사인가. 또 공적인 일을 하는 변호사인가 아니면 한 사적인 존재로서의 변호사인가. <개과천선>은 능력을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이미 능력은 검증된 김석주라는 변호사가 서게 되는 딜레마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아마도 이런 전개는 시청률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서민들을 위한 변호사로 개과천선하는 과정이 주는 통쾌한 카타르시스일 가능성이 높고, 또 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변호하는 한 남자의 절절한 멜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개과천선>은 이런 일반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놀라운 드라마다. 그래서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의 입장 또한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시청률인가. 아니면 좀 더 진지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인가. 만일 후자라면 이 드라마는 비록 시청률은 떨어지더라도 그 어떤 드라마도 가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셈이다.

선생도 학생도 막장인 <여왕의 교실>, 실제일까

 

이게 진짜 요즘 초등학생들의 현실일까. 아니면 일본드라마의 리메이크 과정에서 제대로 우리화하지 못한 드라마의 문제일까. <여왕의 교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현실은 더 심하다는 쪽이 그 하나이고, 정반대로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며 마여진(고현정) 선생 같은 인물이 과연 가능할 수 있느냐는 쪽이 다른 하나다.

 

'여왕의 교실(사진출처:MBC)'

이 드라마가 문제작이 될 수밖에 없는 건 아이들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려운 잔인한 행동들 때문이다. 친구를 지켜주려 한 심하나(김향기)는 매번 그 아이들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은보미(서신애)를 위해 마여진 선생이 제안한 축제 행사를 보이콧 하자고 주장하지만 은보미는 당일 거꾸로 마여진 선생에게 포섭되어 심하나를 배신하고 감시하는 조장이 된다.

 

또 지갑을 훔친 친구 고나리(이영유)와의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 그 비밀을 숨겨주다 본인이 도둑으로 몰린 심하나(김향기)지만, 고나리는 오히려 그런 심하나에게 이게 다 들킨 너의 잘못이라며 왕따를 시킨다. 심지어 고나리는 심하나가 지갑 주인인 수진(변승미)과 친해지게 되자 불안함을 느껴 둘을 이간질시키기도 한다. 로커에 가둬버리고 심하나가 도와 달라 애원하는 걸 장난스레 따라하는 아이들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이게 아이들이 맞나?

 

하지만 이것은 이기적이고 되바라진 아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마여진 선생 같은 괴물 때문에 생겨나는 일들이다. 가정형편이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동구(천보근)의 불행한 가족사를 아이들 앞에 공공연히 폭로하고 “너는 친구가 없다”고 단언한다. 친구를 끝까지 믿는 하나에게 그녀는 “우정을 믿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몰라주는 진실? 멍청하기는. 사람들이 몰라주는 진실 따윈 아무 의미 없어. 친구니 우정이니 그럴 듯한 말들이긴 하지만 결국 네 선택은 틀렸어. 진짜 진실은 말야. 다른 아이들 눈에 보이는 네 모습이야. 선생님한테 반항하면서 잘난 척 했지만 뒤에서는 친구 지갑이나 훔치는 질 나쁜 애. 그러면서 끝까지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우겨대는 거짓말쟁이. 이중인격자. 넌 이제 그런 아이야 알겠니?”

 

제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는 거의 아동 학대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신체적인 폭력보다 더 한 것이 정신적인 폭력이니까. 진실 따위는 필요 없다는 사고방식도 문제지만, 상처받은 아이를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거기에 대고 거짓말쟁이에 이중인격자라 몰아 부치는 건 너무 심한 일이 아닌가. 이 마여진 선생의 대사는 그 부분만 떼어내서 들어보면 도저히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라고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무표정한 얼굴에 인간미라곤 하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는 또 어떻고.

 

그래서 시청자들은 이렇게 막장인 아이들과 선생 사이에서 오로지 아이다운 아이는 심하나 하나뿐이라고 여긴다. 아니 여기고 싶어진다. 친구가 없다는 선생님의 단언에 “오동구는 제가 좋아하는 친구예요”라고 말하는 아이, 진실이나 우정 따윈 필요 없다는 말에 “우정은 소중한 거고 언젠간 진실이 꼭 이길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 심하나만이 현실적인 아이처럼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왕의 교실>이라는 드라마는 심하나를 빼고는 현실성이 없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혹 원작이 만들어진 일본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이 다른 데서 생기는 편차가 아닐까. 그런 면이 있다. 마여진 선생 같은 인물은 실제 현실에서 그다지 보편적인 캐릭터라고 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학교 당국이나 학부모들이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제 아무리 성적 지상주의라고는 하나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그대로 볼 우리네 학부모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치부하기도 어렵다. 우리의 입시제도라는 것에 일본식 교육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미 입시교육의 시작점이 초등학교로까지 침범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약육강식의 현실을 던져놓은 어른들이 그 아이들에게 아이들다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환상이 아니겠는가.

 

결국 <여왕의 교실>은 드라마지만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마여진 선생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싶지만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또 그 선생의 논리가 틀렸으면 싶지만 잘못된 현실 속에서는 그 논리가 그럴 듯하게 들리는 현실이 아닌가. 그 속에서 비뚤어지고 파괴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게다.

 

<여왕의 교실>의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그것이 보기 싫은 것들을 자꾸만 우리 눈앞에 펼쳐놓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길 원치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고 위로받기를 원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여왕의 교실>은 문제작이라 할만하다. 우정이 배신되고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이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래서 드라마들 사이에서 왕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도 바라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가진 심하나 같은.


'브레인', 심지어 컬트적인 문제작

'브레인'(사진출처:KBS)

"이건 우리의 마음이거든요. 사람이 마음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신경외과 의사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이토록 경이로운 뇌를 만져온 인생을 바친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뇌를 통해서 사람을 이해했고 연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레인'의 뇌의학자 김상철(정진영) 교수의 이 진술은 마치 작가의 진술처럼 들린다. '브레인'의 작가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뇌를 들여다보고 만짐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지금까지 어떤 드라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드라마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브레인'은 확실히 지금까지의 어떤 드라마와도 다르고, 특히 그 어떤 의학드라마와도 차별화되어 있다.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의사를 환자처럼 다룬다. 이강훈(신하균)은 어린 시절 뇌수술을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 아버지의 기억을 깊은 트라우마로 가진 인물로, 오로지 실력 하나로 세상과 대적하려 한다. 실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심지어 인물을 유아적으로까지 비춰지게 만든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 어린아이 같고, 함께 사는 삶에서 오로지 맨 꼭대기에만 서려 한다.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 그는 어쩌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이런 병을 앓고 있다.

이강훈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김상철 교수는 그 죄책감에 기억을 지우고 성인군자처럼 살아가지만, 그 이면에는 그 상처가 만들어내는 괴물 같은 욕망이 꿈틀댄다. 누르고 눌렀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것은 뇌에 종양으로 자라난다. 그러자 김상철 교수는 마치 에일리언이 침투한 사람처럼 종양이 자란 뇌의 조종을 받게 된다. 난폭해지고 성격이 급변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상하고 비정상의 차이가 뭐죠? 정상이라... 포장하고 사는 거겠지요. 저는 포장지가 다 뜯어져버렸나 봅니다." 그는 포장을 뚫고 나온 죄책감의 기억에 시달리는 환자다.

이처럼 '브레인'의 의사들은 저마다 뇌의 병을 앓고 있다.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서준석(조동혁) 교수는 그 일 때문에 수술실에 심지어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공황장애를 겪게 되고, 심지어 환자에 대한 배려가 지나칠 정도로 강한 윤지혜(최정원)가 이강훈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상황 역시 뇌 사진을 통해서다. 어쩌면 '브레인'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하나의 뇌의 반응으로 읽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음은 뇌의 조종을 받고, 또 뇌는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우리가 흔히 보던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드라마의 캐릭터란 일관성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브레인'에서 탐구하듯 열어 보이는 캐릭터들의 뇌는 이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잘 말해준다. 뇌의 작은 부분 하나만 건드려도 캐릭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니까. 따라서 '브레인'의 캐릭터들은 그 성격이 급변하고 그 변화의 폭도 대단히 넓다. 이것은 만일 '브레인'이 캐릭터들의 뇌를 진단하고 열어 보이지 않았다면 설득될 수 없는 캐릭터일 것이다. 하지만 뇌의 변화까지 근거로 제시하는 '브레인'의 인물들은 사실상 전날 성인군자였다가 다음날 폭군으로 변하는 인물도 수긍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때로는 기괴하게까지 여겨지고, 심지어 컬트적이라고 생각되는 상황들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강훈을 포함해 김상철, 서준석, 고재학(이성민) 같은 인물들이 서로 욕망을 위해 연합하고 대립하지만 그 누가 선이고 악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은 '브레인'의 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점 때문이다. '브레인'에는 선악이 없다. 다만 저마다 (크고 작건 간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보통의 드라마들이 대미에 와서 서로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부딪치는 것으로 그 갈등을 해소시킨다면, 이 드라마는 그래서 이 모든 인물들을 수술실로 불러들인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라는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상철 교수의 뇌 종양 제거수술에 이강훈이 메스를 들고, 서준석이 보조를 하는 건 이 모든 갈등을 단번에 풀어내는 효과적인 설정이다. 이 수술 장면으로 김상철 교수는 각성수술을 통해 자기의 뇌를 바라보고 쓰다듬는다(이 얼마나 컬트적인 장면인가!). 마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담은 뇌를 인정한다는 듯이. 이강훈은 늘 자신의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김상철 교수의 뇌수술을 하는 것으로 그 콤플렉스를 넘어선다. 물론 서준석은 공황장애를 이겨낸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자신의 뇌를 수술하게 하는 이 장면은 어찌 보면 '허준'에서 스승인 유의태가 자신의 몸을 제자에게 맡기는 장면처럼 감동적으로 그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인'은 이미 마음을 조종하는 뇌를 본 마당에 이런 낯간지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 뇌 의학자의 뇌수술 아무나 하겠습니까? 교수님의 뇌에 메스를 댄다는 것 자체가 교수님의 뒤를 잇는다는 것인데. 제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있겠습니까?" 이강훈은 늘 그렇듯 도전적으로 김상철교수에게 이렇게 말하고, 김상철 교수는 "끝까지 나를 마지막까지 이용할 생각이구만."하고 답한다. 이것은 분명 애정의 표현이지만, 뇌를 다루는 그들에게 애정표현이란 이렇게 쿨한 면모가 있다.

이것은 이강훈과 윤지혜의 멜로에서도 드러난다. 이강훈은 아픈 윤지혜를 찾아가 그녀를 보살펴주지만, 깨어난 그녀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마음을 숨긴 채 버럭 댄다. 그런 이강훈에게 윤지혜는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어찌 보면 어색하기 이를 데 없고,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코미디가 될 수도 있지만, 이강훈이 실제로 노래를 읊조리듯 부르는 순간 상황은 반전된다. 그 장면에서 왜 우리는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졌던 걸까. 그것은 이강훈이라는 마치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어떻게 사랑표현을 해야할 지 몰라 투덜대기만 하던 인물이 그 아픔을 넘어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치유의 장면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브레인'에서는 멜로조차 하나의 치유로 그려진다.

'브레인'은 문제작이다. 여러 드라마들이 지금껏 캐릭터를 그려내면서 그 일관성이니 전형성이니 또 성장이니를 운운했다면, 이 드라마는 캐릭터를 뇌 차원으로까지 확장해 그 고전적인(?) 캐릭터 작법을 무너뜨린다. 이 얘기는 캐릭터로 인해 구축되는 장르들 예를 들면 멜로나 스릴러, 미스테리 같은 장르들 역시 그저 하나의 관습적인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때론 멜로처럼 보이다가 때론 공포처럼 읽혀지는 '브레인'이 가능한 것은 그 캐릭터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랑의 차원까지 뇌를 통해 만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그려낸 '브레인'은 그래서 기존 드라마들 바깥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이런 캐릭터를 가능하게 해준 신하균이나 정진영 같은 발군의 연기자들일 것이다. 그들이 있어 '브레인'이라는 놀라운 드라마는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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