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사극보다 현실 같은 사회극

 

<용팔이><미세스캅>은 주중 드라마의 쌍두마차가 되었다. 월화드라마 <미세스캅>은 심지어 사극인 <화정>을 밀어내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고, 수목드라마 <용팔이> 역시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역시 사극인 <밤을 걷는 선비>에 대한 화제조차 덮어버렸다. 전통적으로 사극에 강했던 MBC드라마가 사회극적인 요소가 강한 SBS드라마들에 밀려버렸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그 첫 번째는 MBC 사극이 너무 지나치게 허구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화정>은 초반만 해도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의 관점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그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정명공주(이연희)를 중심으로 세워 꾸려나가는 이야기에 근본적인 허점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역사의 재해석을 넘어서 버렸다. 심지어 너무 심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사실 사극에서 역사 왜곡의 문제는 이제 사극이 역사보다는 극에 더 중점을 두게 되면서 조금은 지나버린 구닥다리 논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극은 다시 역사로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지나친 상상력의 개입은 그것이 역사와는 무관한 허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고개를 숙였던 KBS 사극이 <정도전><징비록>을 통해 재조명된 건 이런 허구화되어가는 사극에 대한 반작용을 잘 말해준다.

 

<밤을 걷는 선비>는 아예 판타지다. 웹툰 원작의 이 작품은 사극과 뱀파이어물을 섞어 놓은 작품. 나쁘지 않은 시도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지상파 드라마로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느 정도는 실패요소를 안고 시작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사극에 대한 충성도 높은 중장년 시청층과 뱀파이어물이 갖는 젊은 세대의 시청층이 상승효과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집중력을 분산시킨 작품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왜 유독 지상파에서 시도된 뱀파이어물들이 모두 실패했는가를 잘 말해준다. 즉 뱀파이어물은 웹툰에는 잘 맞는 장르인지는 몰라도 지상파의 본방 시청 패턴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현실성을 벗어나 판타지로 가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잘 가지 않는다. 물론 이준기 혼자 북치고 장구 치며 극을 끌고 나가고는 있지만 그 판타지가 현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시청자들은 찾기가 어렵다.

 

반면 SBS<미세스캅><용팔이>를 통해 들고 나온 건 사회극이다. <미세스캅>은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부조리한 사회에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전통적으로 형사물은 장르적 특성상 잘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지만 이 작품은 최영진(김희애)이라는 아줌마 형사 캐릭터를 중심에 세움으로써 중장년 남녀 시청자들을 모두 끌어 모았다. 무엇보다 최근 대중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재벌의 문제나, 치안, 불공정한 정의의 문제에 내포된 현실을 상기시키는 정서가 이 드라마에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용팔이> 역시 마찬가지다. 의학드라마의 틀을 갖고 있지만 그 바탕은 사회극의 정서를 깔고 있다. VIP 병동과 일반 병동 사이에 느껴지는 갑을 정서는 이 드라마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속물 의사처럼 가장된 휴머니스트 김태현(주원)이 이 거대 자본과 맞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짠하고 한편으로는 공분을 일으키며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물론 <미세스캅>이나 <용팔이>의 스토리가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 역시 판타지를 자극하는 허구적 요소들이 들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거기에 깔려 있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정서들이다. 이 정서들은 <미세스캅><용팔이>의 허구적인 이야기가 우리네 현실을 표징한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현실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듯한 <화정><밤을 걷는 선비>와는 확연한 차이다.

 

한때 잘 나가던 MBC 사극이 SBS 사회극들에 밀려버렸다는 사실은 거꾸로 우리네 서민들이 느끼는 현실에 대한 갈증을 말해주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팍팍한 삶에 우리와 무관한 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둘 여유조차 느끼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도 우리 현실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안에서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사회극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 사회극 속에는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뒤엉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미세스캅>, 자본기계는 사이코패스와 뭐가 다를까

 

물론 드라마가 극화한 이야기일 것이다. <미세스캅>에 등장하는 KL그룹 회장 강태유(손병호)는 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살인을 사주하는 조폭 두목처럼 그려진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비호하기 위해 비리 경찰을 매수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정을 덮기 위해 살인을 사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그 힘은 모두 돈, 자본에서 나온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미세스캅>이 흥미로운 대목은 이 강태유가 살인을 사주하고 현장을 벗어나다가 같은 동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쫓기는 연쇄살인범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짧은 순간 강태유와 연쇄살인범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강태유는 자신의 살인 사주를 숨기기 위해 연쇄살인범이 찍힌 블랙박스의 메모리칩을 최영진(김희애) 형사에게 건네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강태유라는 인물을 자신의 살인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범. <미세스캅>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즉 비뚤어진 재벌이나 연쇄살인범이나 사람을 죽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별다른 동요나 감정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렇게 범죄와 결탁된 재벌들이 사이코패스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우리는 자주 봐왔다. 왜 그럴까.

 

물론 재벌은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걸 대신하는 건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다. 돈은 모든 걸 덮어버린다. 수치화해버리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거래 관계로 치환해버린다. 자본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4대강 사업처럼 사람의 터전은 물론이고 자연의 터전에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포크 레인을 드리우는 것 같은 그 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이 가능한 것은 그 앞에 자본이라는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 뒤로 숨어 그것이 자신의 죄라는 걸 애써 부정한다. 마치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살인을 살인이 아닌 하나의 게임으로 치부하듯이.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마를 둘 다 상대하는 존재가 그냥 형사가 아니라 미세스캅이라는 건 그래서 꽤 상징적이다. ‘미세스캅을 굳이 이 드라마가 캐릭터로 그린 건 아줌마라는 특징을,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형사라는 직업과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치 엄마가 이 위험천만의 사회 속에 내보내는 딸을 걱정하는 모성애가 겹쳐진다.

 

15일 간격으로 가출한 여자 아이들을 납치해 게임을 하듯 잔인하게 죽이는 연쇄살인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거래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비뚤어진 재벌. 그 앞에 서 있는 미세스캅이란 인물은 그래서 다분히 우리네 살벌한 현실 앞에서 가족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끌어낸다.

 

그녀의 분노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에 똑같이 절절함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우리는 모두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 앞에 매일 같이 맨살을 드러내고 떨어야 하는 현실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저 극화된 드라마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치부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몹시도 불편해지는 건 어찌된 일일까.



<미세스캅>의 균형 맞춰줄 손호준-이다희 콤비

 

SBS <미세스캅>의 추동력은 최영진(김희애)에게서 나온다. 엄마이자 형사인 워킹맘으로서의 고충과 비리에 연루된 상사와의 갈등, 아줌마 특유의 촉을 보여주는 수사는 물론이고,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의 출소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까지 모두 최영진의 역할이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이처럼 최영진의 역할은 이 드라마에서 절대적이지만 그렇다고 드라마가 한 사람의 힘으로만 굴러가는 건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드라마의 다양한 곁가지 잔재미들이 있어야 시청자들이 지루해하지 않는다. 각종 강력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은 그래서 피해자들의 이야기까지 덧붙여져 무거울 수밖에 없지만, 드라마가 시종일관 무거워서는 곤란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미세스캅>에서는 적어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최영진이 다시 강력계로 돌아와 팀을 꾸리게 되면서 새로운 케미를 보여줄 인물들을 구성해 넣었기 때문이다. 한진우(손호준)와 민도영(이다희)이 그들이다.

 

도무지 앞뒤가 꽉 막힌 것처럼 고집을 피우고 생각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는 한진우가 이 팀의 손발과 같은 존재라면 민도영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꼼꼼히 따져보고 생각하는 머리 같은 존재다. 두 사람이 의견대립을 보이고 부딪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대립에서 기대되는 또 하나는 의외로 피어날 케미다. 같이 현장을 뛸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대립하게 될 것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서로를 보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미세스캅>에서 의외로 달달한 멜로와 웃음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미세스캅>은 자못 진지한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시스템의 부조리와 자본의 갑질 그리고 정의의 문제는 물론이고, 이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워킹맘이 보여주는 일과 가정의 문제까지 다양한 사회의 문제들을 건드리면서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드라마다. 그러니 그 중심을 세워주는 최영진이라는 인물은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대신 그런 잔재미들을 채워주면서 동시에 가족 같은 팀이라는 판타지를 자극하는 존재들로서 한진우와 민도영이라는 캐릭터는 중요하다. 여기에 최영진과 우정인지 애정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박종호(김민종) 계장과 최영진의 든든한 오른팔인 재덕(허정도)도 빼놓을 수 없는 팀의 일원이다.

 

그 연기를 보여줄 손호준과 이다희는 둘 다 늦게 주목받은 연기자들이다. 외모로만 보면 아직도 창창한 20대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나이 서른을 갓 넘긴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최근 들어 <삼시세끼><진짜사나이 여군특집>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각각 주목받은 두 사람. 연기를 통한 이들의 의외의 케미는 <미세스캅>을 보는 또 다른 재미요소로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미세스캅', 아줌마의 촉과 오지랖 어떻게 볼 것인가

 

아줌마들 특유의 촉과 오지랖은 일에 있어서 장점일까 단점일까. <미세스캅>의 최형사(김희애)라는 캐릭터는 제목에 걸맞게 아줌마들의 특성을 오히려 장점으로 장착한 인물이다. 첫 회에서 연쇄살인범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자의 집에서 시루떡을 보고는 그것이 '이사 떡'을 빙자한 침입이었다는 걸 간파하는 장면은 이 최형사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준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이 드라마는 기획의도에 들어있듯이 아줌마이기 때문에 가진 능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내 가족의 건강과 재산을 위해서라면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가족의 수호자'인데다, '남자의 직감보다 20배 이상' 뛰어난 아줌마의 '수사적 직감'이 그것이다. 기획의도에 따르면 아줌마의 촉이란 '예컨대, 남편 자동차 조수석 의자가 기울어진 각도만 보고서도 내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잡아낸다거나, 셔츠에 묻은 낯선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국과수 따위의 감정결과 없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추정하는 능력, 심지어 짙은 스킨과 향수로 도배를 해도 낯선 여자의 향취를 맡아내는 경이로운 능력'을 말한다.

 

기획의도이니 다소간 과장이 있을 것이지만 여성들의 직감이 남성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건 인정할만한 이야기다. 게다가 아줌마들의 오지랖을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장점으로 부각시킨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최형사가 연쇄살인범이 투항의지를 밝힘에도 참지 못하고 총을 쏜 후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 거짓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밝힘으로써 파출소장으로 강등되는 이야기나, 그랬던 그녀가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으로 자칫 자살사건으로 종결될 수 있었던 연예지망생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이야기는 모두 이 '미세스캅'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최형사의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 모습이 우리가 지금까지 형사물에서 봐왔던 형사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살벌한 범죄 현장에서 최형사 같은 인물이 과연 있을까 싶은 의구심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설혹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드라마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 고개가 갸웃 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비현실적인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본래 판타지를 그리기 마련이고, 따라서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판타지로 그려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불편한 느낌을 줄까. 그것은 혹시 지금껏 남성들의 세계로 여겨져 왔던 형사라는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 아줌마의 이야기가 주는 이물감은 아닐까. 조직의 부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사실 '조직의 생리가 다 그렇지' 하며 생겨난 일종의 포기상태에 갑작스레 그것이 잘못됐다 얘기하며 나서는 아줌마 형사의 오지랖이 불편함을 주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드는 건 이 드라마가 상당 부분 그 대결구도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 미세스캅 최형사는 여동생과 딸, 이렇게 세 여자가 한 가족을 이뤄 살아가고, 범죄 현장에서 살해당하는 이들은 모두가 여성들이며, 그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이나 사건을 애써 덮으려는 그룹 회장과 2, 그리고 비리 경찰까지 모두 남성들이다. 그러니 마치 최형사 특유의 아줌마 오지랖이 깨나가는 건 단지 잘못된 수사가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으로 굳어져 있는 남성들의 세계처럼 보인다.

 

즉 최형사의 도발은 어쩌면 상명하복의 구악으로 남아있는 폭력적이고 나아가 범죄적인 남성들의 시스템을 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남성들의 시스템 앞에 한때는 저항했지만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견고함에 포기하고 심지어 순응했던 남성들에게 최형사의 도발은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잘못된 것과의 대결이 주는 통쾌함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불편함이다.

 

<미세스캅>이라는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캐릭터나 캐릭터가 해나가는 성취 또한 현실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구도 던지지 않는 그 불편한 질문을 던져본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미세스캅>의 최형사는 물론 비현실성으로 인해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계가 말하는 비현실성이란 오히려 그 세계의 비상식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미세스캅>, 일과 가정의 양립은 불가능한 일인가

 

김희애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워킹맘이다. 그것도 극한 워킹맘. SBS의 새 월화드라마 <미세스캅>에서 김희애가 연기하는 최영진이라는 인물은 포장마차에서 주인아주머니와 털털한 이야기를 나누며 잠복근무하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무언가 세련되고 우아한 자태를 늘 보여주던 김희애는 이제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달리고, 싸워야 하는 인물로 돌아왔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여성들을 잔인하게 유린하고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그녀가 일하는 현장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범인들의 칼에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되기도 하는 그런 살벌한 일들이 벌어진다. 최영진 팀장의 오른팔인 조재덕(허정도) 경사는 범인의 칼에 맞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간경화였다는 걸 발견할 정도로 자신을 돌볼 틈조차 없는 이 일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최영진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쩌다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되었지만,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아이의 발표회에도 가지 못하는 나쁜 엄마가 되었다. 대신 그녀의 여동생인 최남진(신소율)이 아이를 돌보지만 아이는 결국 엄마를 그리워하게 된다. 자꾸 물건을 훔치는 아이에게서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가 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은 최영진은 그래서 오열하며 이 일을 때려치울 결심을 한다.

 

그래서 과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지만 또한 눈에 밟히는 것이 팀장이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들이다. 조재덕에게 칼을 먹인 범인이 등장했다는 이야기에 그녀는 갈등한다. 그와 그의 아내에게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약속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게 조직의 생리이기도 하다. 팀장의 상사인 과장은 비리에 얽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성급하게 지목해놓고는 이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미세스캅>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동분서주하는 우리네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형사라는 직업을 통해 극화시킨 드라마다. 일 때문에 아이를 돌볼 틈이 없는 워킹맘들의 보이지 않는 속 앓이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최영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통 일에 자신을 내던지는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그런 삶의 아이러니라니.

 

최영진과 최남진 그리고 최영진의 딸이 그려내는 가족의 풍경은 다른 식으로 들여다보면 여성들의 공동체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과제 앞에서 가녀리게만 보이는 이 여성 공동체의 파편화된 삶은 저 살풍경한 남성성의 세계와 대립구도를 갖고 있다. 최영진의 상사인 염상민 과장(이기영)이나 연쇄살인범이 일 안팎에서 여성성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미세스캅>은 마치 전형적인 형사 장르물의 하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네 워킹맘들의 초상이 담겨져 있다. 최영진은 아마도 앞으로 일의 세계와 가정이 뒤얽히는 상황을 겪게 되지 않을까. 그 안에서 어쩌면 그녀는 선택을 강요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인가. 가정인가. 이러한 질문은 <미세스캅>이라는 장르물에 괜찮은 무게감을 얹어준다. 김희애가 그려나갈 최영진이라는 워킹맘의 삶이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다. 그녀는 과연 일과 가정을 모두 지켜낼 수 있을까.



반칙 외모에 연기까지 겸비한 중년 여배우들

 

SBS 새 월화드라마인 <미세스캅>의 여주인공은 김희애다. 그녀의 나이 48. 50줄을 몇 년 남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반칙(?) 외모의 소유자인데다, 그간 쌓여온 연기 공력은 한 마디로 넘사벽이다. 게다가 김희애 특유의 그 우아함은 심지어 이 드라마의 설정 상 하수구에 빠지기도 해야 하는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가려질 수 없었다고 연출자인 유인식 PD는 밝히기도 했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그녀는 <밀회>에서는 이제 20대 후반인 한참 나이 어린 유아인과 연인 관계를 연기한 적도 있다. 무려 20년 나이 차를 훌쩍 뛰어넘는 멜로 연기인 셈이다. 하지만 그게 하나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철저한 자기 관리로 이제 30대라고 해도 믿어지는 외모에, 실제 극중 주인공인 것처럼 완벽하게 빙의되는 그 연기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이니 이제 <미세스캅>에서 형사 같은 거친 역할을 한다고 해도 신뢰가 갈밖에.

 

김희애라는 배우의 이런 나이를 뛰어넘은 연기는 이제 드라마에 캐스팅되는 중견 여배우들의 상징처럼 되어있다. 나이가 들어도 잘 관리하기만 하면 오히려 더 깊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고 또 시청자들에게도 신뢰를 준다는 점에서 이들 중견 여배우들은 선호된다. 게다가 지상파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중년 여성들에게 이 나이를 잊은 듯한 중견 여배우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로망을 주기도 한다.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들이 중년인 이유 역시 이 주 시청층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 <어셈블리>의 여주인공 송윤아의 나이는 42세고 MBC 주말극 <여자를 울려>의 여주인공 김정은은 41세다. SBS 주말극 <너를 사랑한 시간>의 하지원은 37세지만 상대 남자 역인 이진욱은 33세이고 심지어 윤균상은 28세다. KBS 월화드라마 <너를 기억해>의 여주인공 장나라도 35세로 6살 나이가 적은 서인국과의 멜로 라인을 그리고 있다. 새로 시작하는 수목드라마인 <용팔이>의 여주인공 김태희도 35세로 상대역인 주원은 27세다.

 

앞에서 말한 대로 드라마 여배우들 대부분이 중년의 나이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은 납득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다보니 신인 여배우들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과거 김희애도 송윤아도 김정은도 하지원도 장나라도 김태희도 모두 20대 시절 연기를 했었다. 그 때는 물론 미숙한 점도 많았다. 모두가 지금처럼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김태희 같은 경우는 연기력 논란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기도 했다. 최근 <용팔이> 제작발표회에서도 이 연기력 논란이 또 지적됐다.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게 기자의 당혹스런 질문에 답을 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그녀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다. 여자 연기자에게 있어서 나이가 들었다는 건 양날의 칼이다. 그것은 삶의 경험치에 따라 연기의 해석력도 깊어진다는 뜻이지만 다른 하나는 여주인공의 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드라마 제작의 경향을 보면 나이와 여배우의 상관관계는 그리 딱 맞아 떨어지는 건 아닌 듯 보인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는 중견 여배우들로 오히려 신인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게 그 현실이다. 이건 해당 여배우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새로 연기의 세계에 들어서는 신인들에게는 암담한 현실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의 드라마들은 어떻게 꾸려진다고 하더라도 향후 10년 이후를 내다본다면 그것은 자칫 여배우 기근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희애처럼 반칙 외모에 나날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연기까지 갖춘 배우가 있다는 건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젊은 배우들이 설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우리네 드라마 업계의 새로운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신인 여배우들의 경우는 심각하다. 지속가능한 드라마 한류를 이어가기 위해서 이 문제는 결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네 취업시장이 안고 있는 두 가지 문제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즉 경험이 풍부한 고령의 경력자들을 계속 끌어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청춘들을 산업현장으로 캐스팅하는 일. 드라마 캐스팅 현장에서도 발견되는 세대 간에 벌어지는 기회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지금 해결해야하는 당면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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