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치열한 일과 멜로가 만났을 때

 

역시 서숙향 작가의 멜로는 확실히 다르다. 그저 그런 잘 난 남자와 신데렐라의 이야기 따위는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드라마에는 치열한 일터의 현실이 있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구원하는 왕자 같은 남자? 아마도 여성들은 그런 판타지를 꿈꿀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서숙향 작가의 작품 속 남자들은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있음직한 그런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리얼리티 멜로라고나 할까. <별에서 온 그대>가 심지어 외계인을 등장시켜 여심을 사로잡는 판타지 멜로의 극점이라면 <미스코리아>는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리티 멜로의 극점이다. 97IMF 시절, 한창 벤처 붐이 일었던 그 시대의 공기를 <미스코리아>는 제대로 포착해낸다. 순수한 벤처 정신을 가진 많은 창업자들이 한편으로는 조폭 같은 대부업체의 손에 의해 도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벤처 투자가라는 명목으로 된다 싶은 업체를 사냥하는 이들에 의해 회사를 빼앗겼던 시절이다.

 

비비화장품 주변을 맴도는 정선생(이성민)이나 이윤(이기우) 같은 캐릭터는 그래서 당시의 조폭과 벤처 투자가라는 벤처의 위협을 표징하는 인물들이다. 비비화장품 사장 김형준(이선균)은 순수한 벤처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지만 바로 그렇게 곧기 때문에 번번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성희롱이 일상이 된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연희) 역시 이 사라져버릴 직종의 끝자락에서 미스코리아라는 지푸라기를 잡고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다.

 

미스코리아라고 하면 어딘지 부정적인 인상이 먼저 떠오르지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를 선택하는 건 그녀가 결국 가진 것이 몸뚱어리 하나뿐이라는 그 절박함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그녀가 미스코리아를 키워내는 마애리(이미숙)가 아닌, 가진 건 없지만 진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미스코리아로 만들어주려는 김형준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멜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상품화되는 몸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몸으로서 오지영이 미스코리아가 되려는 진심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 언젠가부터 멜로는 사랑 하나만이 아닌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성들의 달라진 삶이 반영된 탓이다. 점점 늘고 있는 직장여성들에게 사랑은 일과 무관하지 않고 또 일 역시 사랑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을 다루는 멜로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실로 드라마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서숙향 작가의 멜로드라마가 남다른 것은 그 일의 세계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차별이 존재하고 그러기 때문에 파리 목숨이 되기도 하는 일하는 여성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파스타>가 라스페로라는 이태리 레스토랑의 주방을 사나운 불길과 날카로운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그려지듯이 <미스코리아>의 드림백화점의 엘리베이터라는 폐쇄된 공간은 숨 막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텨내는 감옥 같은 공간으로 그려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 앞에 나타난 남성들이 사랑 그 자체의 마취적인 탈출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일을 지지해지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물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일에서의 성공과 사랑으로의 성공. 이것은 현대여성들이 꿈꾸는 가장 현실적인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별에서 온 그대>에 밀려 조금 저조한 시청률을 냈지만 그렇다고 <미스코리아>가 실패한 드라마는 아니다. 97년의 한 시대적 풍경 속에서 그려낸 서숙향 작가의 일과 사랑은 충분히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서숙향 작가가 여성들의 성장 멜로에 있어서 각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왕가네>를 통해 보는 가족주의의 해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시작부터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외치며 온갖 민폐를 끼치던 왕수박(오현경)이 집을 나와 식당에 취직했다가 쫓겨나고 노숙자처럼 길거리를 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이 이제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왕가네 가족들에게 패악질 하던 캐릭터들이 이제 권선징악, 개과천선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것 또한 시청자들이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닐 것이다.

 

'왕가네 식구들(사진출처:KBS)'

수박이 동생 호박(이태란)을 만나 오늘이 아부지 생신이라며 돈 봉투를 전하는 장면이나 호박아, 너하고 광박이한테 정말 고맙다. 집도 얻어주고. 난 맏이 노릇도 못하고 못난 짓만 하는데라는 대사를 던지는 것도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왕가네 식구들>의 등장인물들이 수박과 호박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진 순간부터 예정된 일이다. 즉 수박이 엄마로부터 편애를 받고 비뚤어지는 인물이며 호박이 구박을 받으나 결국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은 이름에 나타나 있다.

 

문영남 작가의 등장인물 작명 방식은 주말드라마의 공식과 패턴을 잘 드러낸다. 즉 아버지 왕봉(장용)은 가족의 봉이고, 이앙금(김해숙)은 마음 속 앙금으로 비뚤어진 엄마이며, 수박의 남편인 고민중(조성하)은 이혼을 고민하게 되는 캐릭터이고 호박의 남편 허세달(오만석)은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민폐형 캐릭터다. 마치 RPG 게임처럼 시청자들은 이들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케 하는 이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마인드 게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왕가네 식구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기치 못한 전개나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의미의 발견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권선징악이나 가족이 최고같은 누구나 다 아는 가치의 반복이면서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 전개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시청률이 45%에 육박하는 놀라운 수치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통해서 흔히 봐왔듯이 시청률과 완성도 혹은 작품성에는 아무런 비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드라마의 평균적인 시청률이 10%대이고 20%를 넘기면 성공작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무려 50%를 넘보는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것은 작품성과 상관없이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보여주는 사회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시간대의 가족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왕가네 식구들>만이 아닌 이 시간대의 KBS 주말극이 일정하게 높은 시청률을 내왔다는 것은 작품 그 자체보다 이 시간대가 가진 프리미엄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무슨 일인지 이 시간대에 KBS 주말극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편안한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감을 적절히 배반하다가도 채워주는 말 그대로 시청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하는 드라마의 공식이 있다. 그 공식을 시청자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즐기는 면이 더 크다. 마치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게임처럼.

 

여기에는 이 시간대의 주말드라마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가족주의가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즉 최근 주중 드라마들을 보면 가족주의보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불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완전함을 얘기하고, <미스코리아><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은 가족이 등장하긴 하지만 가족과는 상관없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이다. 최근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도 그렇다. 물론 시대극을 다루고 있는 <맏이>는 예외가 되겠지만(이 드라마 역시 과거 가족에 대한 향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 가족의 해체를 역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드라마들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한다.

 

결국 작금의 현실에서 가족은 과거 같은 가족드라마 틀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던 김수현 작가마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담론들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한 이유는 김수현 작가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기 마련인 가족주의의 틀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의 해체가 드라마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왕가네 식구들> 같은 KBS 주말드라마의 성공은 거꾸로 가족주의에 대한 판타지를 이어가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영남 작가의 드라마가 과도한 민폐 캐릭터 때문에 막장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는 것은 결국 이 민폐 캐릭터가 권선징악의 형태로 결말을 맞을 것이며 또한 가족이라는 오히려 더 공고해진 틀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시청자들은 안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가네 식구들>을 보다보면 해체되어가는 가족주의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반발을 느끼게 된다. 거기 등장하는 민폐 캐릭터들은 그것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인 셈이다. 그들을 미워하고 욕하고 결국은 용서하고 다시 끌어안는 동안 우리는 가족은 여전히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느끼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안간힘은 이 시간대가 마치 유일하게 남은 가족주의의 성전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뻔하고 식상해도 자꾸만 되새기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미스코리아>의 무엇이 이연희의 연기를 깨웠나

 

와이키키-” 하며 억지로 미소 짓는 연습을 하던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라는 인물은 어쩌면 그녀를 연기하는 이연희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을까.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서 CCTV를 피해 삶은 계란을 통째로 입안에 우겨넣는 오지영의 억지로 짜낸 듯한 미소는 그래서 노동자의 슬픈 데드마스크를 떠올리게 했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예쁘다기보다는 슬프다. 예쁜 마네킹처럼 웃는 백화점 엘리베이터걸들은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박부장(장원영) 같은 파렴치한 밑에서 퇴직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퇴직금까지 갈취 당한다. 97IMF 시절 사라져버린 엘리베이터걸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마치 노동이 기계로 대치되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돈 없고 백 없고 학벌 없는 오지영이, 가진 자산이라고는 달랑 몸뚱어리 하나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래서 그 몸을 상품화하는 것뿐이다. 엘리베이터걸에서 미스코리아로 그 목표가 수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지영의 서글픈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미스코리아를 대거 발굴해낸 퀸 미용실 원장 마애리(이미숙)를 오지영은 엄마 같은 존재로 따르지만(그녀에게는 엄마가 없다) 마애리는 또 다른 박부장이다.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성의 상품화는 훨씬 세련되어진다.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힙을 업시키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다리부터 엉덩이까지 병으로 눌러대며, 틈만 나면 물구나무서기를 당하는 몸은 그래서 여전히 슬프다.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당한 채 훈육되어지는 몸. 그리고 심지어 성형이라는 이름으로 조각되고 만들어지는 몸.

 

오지영이 가슴 성형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을 때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주는 김형준(이선균)의 목소리는 그래서 하나의 구원이 된다. 마치 미스코리아 공장 같은 마애리의 퀸 미용실을 벗어나 소박하지만 꿈이 있는 김형준의 비비화장품을 찾아온 오지영은 비로소 처음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한 셈이다. 미스코리아가 되겠다는 꿈은 똑같지만 김형준과 오지영의 그저 직업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 관계는 모든 걸 바꾸어 놓는다.

 

지지고 볶는 비비화장품의 사장과 직원들의 모습이 마애리 퀸 미용실의 풍경과 달리 하나의 공동체 같은 인상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거기서 직원들은 김형준을 사장이라 부르기보다는 형 혹은 오빠라고 부른다. 김형준이 오지영을 미스코리아가 되게 하려는 것은 물론 비비화장품을 살리기 위한 욕망 때문이지만, 거기에는 오지영이 그토록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지만 그걸 다시 가슴에 주워 담는 김형준의 순수한 사심도 들어있다.

 

그래서 오지영이 김형준 앞에서 와이키키-”, “하와이-”를 하며 미소를 짓는 모습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것은 오지영의 김형준에 대한 마음을 거꾸로 직업적인 연습을 통해 감추려는 것이니까. 여기서 비비화장품과 미스코리아라는 목표는 오지영과 김형준의 사심을 숨기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비로소 오지영은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된 몸이 아니라 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당당해진 몸으로 서게 된다.

 

오지영이라는 성장 캐릭터가 이연희라는 연기자에게 주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를 것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가 아닌 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선다는 것은 연기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말이다. 연기자에게 예쁘다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그저 외모가 예쁘다는 건 연기자에게는 치명적인 비판일 수 있다. 그것은 배역으로서 주목되기보다는 연기자 자신으로서 주목되기 때문이다. 연기력 논란은 바로 이 지점, 배역과 연기자가 따로 노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미스코리아>에서 이연희의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그 배역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녀에게 맞춤의 역할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예쁜 데드마스크의 얼굴이 차츰 진짜 예쁜 살아있는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또 이연희라는 연기자를 통해서 보고 있다.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예쁜 것은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점점 당당해지는 그녀의 변신과 성장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연희에게도 그대로 전파된다. 그녀는 연기자가 진짜 예뻐 보일 때가 외모가 아닌 배역에 몰입할 때라는 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배워가고 있다.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쁜.

성숙해진 언니 이효리는 왜 드센 언니가 됐나

 

5집을 들고 돌아온 이효리에 대한 호평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5집에는 지난 앨범들과는 달리 자신의 진솔한 삶이 고스란히 손때처럼 묻어났기 때문이다. 트렌드 세터나 섹시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는 여전했지만 여기에 조금은 편안해진 스토리텔러 같은 모습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사실 타이틀곡인 ‘Bad girls’도 좋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미스코리아’나 'Holly Jolly Bus', 'Special ' 같은 곡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안녕하세요(사진출처:KBS)'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음악을 갖고 나온 이효리에 대해 쏟아지던 호평은 단 몇 주만에 혹평으로 바뀌었다. 음악방송 출연을 2주만 하고 휴식기에 들어간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줄기차게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들이 쏟아졌다. 이효리는 가수인가 예능인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여기에 이효리 측근이라는 사람의 쓸데없는 설명은 불에 기름을 부운 격이 되었다.

 

한 매체는 이효리 측근의 얘기라며 음악방송 중단의 이유에 대해 “요즘 가요계가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고, 음악 방송의 경우 아이돌 팬층이 대다수”라며 “이효리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부분과 다소 맞지 않고 고충이 있어 우선적으로 중단하게 됐다"는 식으로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액면 그대로만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의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아이돌 중심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따라서 이효리 같은 아이돌을 벗어난(혹은 벗어나려는) 가수들에게는 어색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개념 있는 행보’라고도 볼 수 있는 이효리의 음악방송 중단은 호평보다는 혹평을 더 받았다. 이유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소비되면서 생긴 그녀의 왜곡된 이미지 때문이다. 똑같은 모습도 너무 많이 보이게 되면 진력이 나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이효리라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계속 나오는 것은 시청자들로서는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여기도 이효리, 저기도 이효리인 상황은 심지어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효리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자칭 타칭 예능 고수(?)인데다 실제로 출연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기까지 하는 상황이니 그녀를 모시려는 프로그램이 줄을 서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게다가 이효리의 입장에서도 예전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이 있는 PD들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지만, 문제는 예능이 이효리를 소비하는 방식에도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기 센 여자’로 캐릭터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해피투게더>는 제목에 걸맞게 여러 출연자가 함께 해피한 모습을 보여줘야 균형이 맞지만 이효리가 출연한 분량에서는 거의 그녀의 독무대처럼 그려졌다. “난 쿨한 여자니까.”라는 이효리의 전용멘트는 이런 상황에서는 쿨함을 넘어 ‘기 센 여자’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심지어 돌직구가 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건 그것이 순수하고 솔직한 느낌을 전해주었을 때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칫 드센 느낌으로 변질될 수 있다.

 

또한 <맨발의 친구들>이나 <안녕하세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효리는 센 캐릭터를 잡는 더 센 캐릭터로 그려졌다. ‘강호동 잡는 이효리’는 ‘효리성 복통’을 앓는 강호동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센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또 <안녕하세요>에서는 아예 대놓고 이영자에게 독설을 날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러자 이효리는 과거 이영자의 ‘안 좋은 일’을 거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예능이 일관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효리의 ‘기 센 여자’ 이미지는 과거처럼 쿨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는 음악 방송 중단 같은 소신 있는 행동조차 ‘너무 나대는 이미지’로 보이게 만든다. 측근의 설명은 그런 뜻이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효리와 아이돌을 음악적으로도 비교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그녀에 대한 달라진 대중정서의 변화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고 있는 ‘기 센 여자’ 이미지는 이번 5집 앨범이 기대하게 만든 이효리의 보다 성숙한 이미지와도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5집 앨범의 분위기는 그녀로 하여금 그저 ‘센 언니’가 아니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성숙한 언니’를 기대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예전의 모습으로 반복 소비되고 있다.

 

새 음반을 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본격 활동을 나선 이효리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순심이 같은 새로운 사회활동을 통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 그런 변화된 삶이 음악으로 뭉쳐져 결실을 맺은 5집은 그녀의 새로운 출사표지만 달라진 그녀를 받아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없었던 셈이다.

 

순위제가 부활된 음악 프로그램은 달라진 자신의 음악적 성향과는 잘 맞지도 않고 또한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의 자신 같은 가수들에게는 어딘지 어색한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효리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게다. 실로 우리네 음악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이 아닌 싱어 송 라이터나 순위와는 상관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음악인들이 음반을 냈을 때 그들에 맞게 노래를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몇 개나 되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조금은 밀려난 시청 시간대에 남아있는 음악 프로그램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은 달라진 이효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 이효리가 예능에서 효과를 봤던 ‘센 이미지’만을 불러와 소비시켰다. 물론 프로그램들은 이효리를 통해 화제도 얻고 시청률도 얻었지만 이효리에게는 그다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효리는 음원을 냈을 때의 호평이, 본격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혹평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물론 잘못된 이미지 노출의 문제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효리처럼 아이돌을 벗어난 나이에 이제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려는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나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 깔려 있기도 하다.

퍼포먼서에서 아티스트로 돌아온 이효리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목소리가 남다르다고도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춤은? 물론 퍼포먼스는 화려하다. 하지만 춤만 놓고 봤을 때 굉장한 춤꾼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리가 하면 먼저 시선이 가고 귀가 열린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그녀의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이건 능력이 아니라 매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이효리의 모노크롬(사진출처:B2M엔터테인먼트)

3년 만에 돌아온 5집 ‘모노크롬’이 발표되기 전 선 공개된 ‘미스코리아’는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응축되어 있다. 그것은 첫 무대에서 과거 미스코리아 수영복 차림으로 나와 노래 불러도 여전히 아름답게 여겨지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노래에서 반복되는 가사는 ‘Because I'm a Miss Korea’다. 아마도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이라면(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이 후렴구가 자못 도발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 그리 중요한가요. 망쳐가는 것들 내 잘못 같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넌 Miss Korea” 마지막 가사가 전하는 것처럼 이 노래는 외부의 시선으로 뽑혀지는 미스코리아 타이틀 같은 ‘신기루’에 미혹될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을 ‘멋진 Girl'이라 여기라는 전언이다. 이 가사의 이야기는 이효리 자신의 이야기면서 미의 타이틀로 재단되고 가늠되는 세태에 대한 사회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수영복 차림을 하나의 패션으로 소화해내는 ‘미스코리아’는 여전히 섹시한 이효리를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음악적으로도 레트로풍의 복고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됨을 잃지 않고 있다. 마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고풍스러운 세련됨이랄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섹시미와 지성적인 면모가 공존하며, 음악과 자신의 삶이 하나로 통과하는 듯한 ‘미스코리아’는 그래서 강렬한 사운드를 구사하지는 않지만 담담해서 오히려 진솔한 이효리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집을 통해 이효리가 어떤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를테면 작곡가의 표절로 피해를 본 4집이나, 연인 이상순과의 만남 혹은 소셜테이너로서의 사회적인 활동들)의 영향이 크겠지만, 끊임없이 어떤 변신을 시도해온 그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핑클에서 이효리는 그저 요정이었지만, <해피투게더>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예능에서 이효리는 털털한 언니였고, 2003년 1집 <스타일리시 이효리>로 발표한 ‘10 Minutes’부터 이후 ‘U-Go-Girl’ 같은 일련의 곡들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장한 섹시아이콘이었다.

 

이렇게 일련의 성장과정을 거친 이효리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래는 편안해졌고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스토리텔러의 면모가 생겼다. ‘미스코리아’나 이번 5집의 타이틀곡인 ‘배드 걸스’는 그 자체로 음악과 퍼포먼스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그 안에 이효리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 5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이효리가 너무나 다양한 면들을(때로는 이질적인 것조차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가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여전히 섹시하지만 한편으로 소탈하고, 스스로를 ‘배드걸’이라고 도발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악녀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디부터 해외의 작곡가까지 또 심지어는 순심이 같은 동물까지 한없이 여유로워진 그녀의 세계 속에 자연스럽게 안겨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것’을 이제는 ‘당신도 할 수 있다’ 말해주는 이번 5집은 그래서 아티스트 이효리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녀는 남이 해준 옷을 억지로 꿰어 입기보다는 이제 자신의 솔직한 삶이 만들어내는 실로 직조된 음악의 옷을 입으려 하고 있다.

미스코리아와 메스코리아의 아이러니

 

도대체 아직도 미스코리아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었나. 사실 미스코리아라는 대회 자체가 잊혀진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엉뚱한 방향에서 미스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는 간단하다. 진으로 뽑혔는데, 알고 보니 성형미인이었다는 거다. 게다가 밝혀지고 나자 쿨하게 스스로 인정했다는 건데, 여기에는 우리가 최근 들어 일반적으로 성형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미스코리아라는 고전적인(?) 대회에서의 성형이 갖는 의미가 부딪치는 지점이 생긴다. 논란은 바로 여기서 생겨난다.

 

e뉴스(사진출처:tvN)

성형? 사실 그게 뭐 대수냐 하는 게 대중들의 달라진 시선일 게다. 쌍꺼풀 수술 정도 하는 건 성형으로도 치지 않고, 그 무시무시하다는 안면을 깎아 아예 형태를 바꾸는 수술도 그다지 비난받을 일로 치부되지 않는 세태다. 그만큼 생긴 대로 살던 시대에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가꾸는(?) 시대로 넘어왔다. 성형을 통해 삶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을 자꾸 끄집어내 상품화하고 부추기는 것이 문제지만.

 

성형이 일반화되는 세태는 그래서 그 자체로 모태 미인을 주장하고 가장하는 미스코리아 같은 대회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이상 미(美)를 태생적이고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 그 미의 기준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성형미인이 진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구닥다리의 미적 관점을 가진 대회에 대한 일종의 도발이자 선전포고인 셈이다.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어? 고쳐라!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사정이 아니다. 실제로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는 여러 번 성형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2011년 미스 호주 셰리 리 박스는 2004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 1위를 차지한 호주 출신의 제니퍼 호킨스가 성형수술을 했다고 폭로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또 미스 유니버스를 유난히도 많이 배출한 베네수엘라에서는 미스 베네수엘라 사관학교격인 '킨타 미스 베네수엘라'라는 교육기관이 있는데 여기서는 심지어 성형수술도 권장 받는다고 한다.

 

이쯤 되면 태생적인 미인인 양 가장한 채 열리는 이러한 미인 대회들이 사실상 변화하고 있는 세태에 두 손을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적으로 우리가 보게 되는 미인들 중 상당수가 성형을 하는 상황에 모태 미인만을 찾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러니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도 “자연미를 훼손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아예 공식적인 조건으로 ‘성형수술’을 제한하지 않는 것일 게다.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이 사태를 지켜본 한 누리꾼이 “이건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메스코리아”라고 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스코리아든 메스코리아든 성을 상품화하는 건 마찬가지다. 미스코리아가 타고난 성을 전시하고 순위 매김으로써 육체를 상품화했다면, 메스코리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육체를 누구나(아니 돈을 지불할 수 있으면) 가질 수 있다고 부추긴다. 물론 이 바탕에는 미(美)에 마치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는 식의 전제가 들어있다. 하지만 개성과 다양성의 시대에 기준이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기준이 없는데 자꾸 기준을 세우려고 한다. 왜 그럴까. 그래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은 돈을 끌어온다. ‘코리아’가 붙었으니 대표성도 띄게 된다. 세계대회에 나가서 상이라도 타게 되면 마치 국가가 그만한 이미지를 얻은 것인 양 들썩거린다. 하지만 더 큰 것은 이러한 미의 기준을 내세우는 대회가 만들어내는 상업적인 파급효과다. 기준이 있어야 성형도 정당화된다. 기준을 근거로 순위를 쭉 매기면 불행하게도 저 끝에 놓여진(것이라 착각되는) 이들은 성형외과의 문턱을 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자본의 체계 속에 들어있는 상품이 그러하듯이 상품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자꾸 불필요하게 부추겨지는 욕망일 것이다. 성형?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해야만 할 것처럼 부추겨지는 건 큰 문제다. 미스코리아 같은 대회는 그 자체로 이런 욕망을 정당화한다. 순위를 매기는 행위가 어떤 미(美)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게 당당히 성형을 밝힌 2012 미스코리아 진 김유미는 자신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자연 미인이 아니라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대중들의 비난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모태미인이라 말한 적 없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미인대회에서 성형이 공공연해진다면(이미 관계자들 사이에선 그런 것 같지만) 자칫 성형대회가 되어버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성형 광풍으로 이어질 것이다. 왜? 우리나라에서 미스코리아란 단지 최고 미인이라는 영예가 아니라, 그것이 성공의 발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모델이 되기 위해서 대회에 나간다. 그러니 팔자를 고치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이들이 많아질 것은 뻔한 일이다. 결국 여기도 성공을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된다.

 

여러모로 개성미를 찾는 시대에 또 성형이 일상화된 시대에, 미스코리아라는 대회는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뒤에 놓여진 수많은 상업적인 선택들 때문일 게다. 그러니 김유미의 당당한 고백은 자신도 모르게 그 밑에 숨겨진 미인대회의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 결과가 되었다. 언제까지 이런 시대착오적인 대회를 계속 할 것인가.

국민적 공감대 없는데 왜 코리아를 붙일까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다. 과거 대회가 열리면 TV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나름대로의 채점’을 해보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언제 그런 대회가 있었느냐고 할 정도다. 이것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에 따라 2002년을 기점으로 공중파 방송이 중단되면서부터이다. 이로써 사실상 연예인 선발대회의 성격을 띄었던 미스코리아 대회와 공중파 방송과의 밀월 관계는 끝난 셈. 2002년 이후 지금까지 눈에 띄는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이 별로 없는 것은 이 사실을 방증한다.

미스코리아는 더 이상 연예인의 등용문이 아니다
미스코리아가 연예인의 등용문으로 인식된 것은 80년대 후반 김성령(88 진), 고현정(89 선), 오현경(89 진) 같은 스타들을 쏟아내면서부터다. 이후 염정아(92 미), 이승연(92 미), 김남주(92 경기진), 성현아(94 진), 최윤영(95 선), 권민중(96 한국일보), 김지연(97 진), 김사랑(2000 진), 손태영(2000 미), 박시연(2000 한주여행사)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미스코리아를 통해 배출됐다. 이후에도 몇몇 수상자들은 아나운서로 진출하기도 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그다지 주목되지는 않았다. 분명한 건 이제 미스코리아는 더 이상 연예인이 되는 길을 확실히 제공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한 시들해진 관심은 또한 달라진 미의 기준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 우스웠던 점은 성형외과 의사가 나와서 예를 들면 삼등 분할 같은 완벽한 얼굴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과학적 기준이라는 것이었지만 본래 미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없는 어떤 것이며 이것은 지금 시대에 와서 더욱 그러하다. 그 만큼 다양한 취향과 개성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최고의 아름다움을 어떤 기준으로 뽑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1백 명이 뽑으면 1백 가지의 아름다움이 뽑히는 시대다. 따라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의 진선미라는 순위는 납득될 수 없는 것이 된다.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잣대를 통해 진선미를 뽑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저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실체와 포장 사이의 간극
미스코리아 대회를 연예인 선발대회의 하나로 인식하게 되는 건 그걸 바라보는 한국인(이건 그저 미인선발대회가 아니라 코리아가 붙은 국가적인 대회다)과의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겉으로 내세우는 나라의 홍보대사니 국위선양 같은 홍보문구는 낯간지러운 것이 되고 만다. 실체는? 연예인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이 국가적 행사인 양 포장하면서 은근히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가미시켜, 대회의 본질인 ‘여성의 성 상품화’를 가려왔던 것이 이제는 오히려 대회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8년 미스코리아 미에 뽑힌 김희경이 과거 성인화보를 찍은 것과 2007년 미스코리아 미의 김주연이 낙태를 한 사실이 불거지자 타이틀을 서둘러 박탈한 것은 아마도 숨겨졌으면 좋았을 국가대표(?)의 결격사유가 드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스코리아의 수영복 심사와 김희경이 찍은 성인화보는 그 드러나는 형식이 다를 뿐 성 상품화라는 차원에서는 사실상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대회의 심사위원이 품위 운운하며 김희경의 타이틀을 박탈하는 것은 넌센스다. 게다가 이미 미스코리아로 연예계로 뛰어든 몇몇 연예인들이 찍은 성인화보는 되고, 미스코리아가 되기 전에 한 성인화보는 안 된다는 건 어딘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 대회의 본질로 보면 이미 연예인이 된 미스코리아의 화보촬영은 성공으로 간주되는 것이지만, 미스코리아가 되기 전에 찍은 화보는 대회의 포장을 더럽힌다는 점이다. 김희경의 타이틀 박탈 사건이 보여주는 건 미스코리아 대회의 실체와 그 포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미의 기준으로 삼는 시대에, 획일적인 미의 순위를 가르는 미스코리아 대회는 이미 시대착오가 되었다. 대회의 실체가 언제부턴가 연예인이 되는 길로 바뀌어졌지만 공중파와 고리가 끊어진 지금은 그 길마저 불확실한 상황이다. 어쩌면 공중파들은 이 달라진 시대에 미스코리아 출신이 갖는 무게감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린지도 모른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굳이 존재하려 한다면 차라리 대회의 본질에 합당한 새로운 이름을 갖는 편이 그나마 대중들의 공감을 확보할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이다. 코리아라는 거창한 단어는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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