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선생 고현정, 화나지만 공감 가네

 

성적순으로 앉히고 성적순으로 사물함도 사용하게 하며 성적순으로 꼴찌 반장을 뽑아 갖은 궂은일을 시킨다? 점심시간 배식 중에 실수로 카레를 엎지르자 남은 카레 역시 성적순으로 나눠줘 몇 명 빼고는 맨밥을 먹이고, 시험 볼 때는 화장실도 못 가게 해 결국 오줌을 싸게 만들며, 심지어 아이들의 숨은 가정사를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해 창피를 준다?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고현정) 선생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막장이다.

 

'여왕의 교실(사진출처:MBC)'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학생은 무조건 꼴찌 반장. 제목이 보여주듯 마여진은 선생이라기보다는 교실에 군림하는 여왕처럼 보인다. 이 역할을 맡은 고현정이 <선덕여왕>의 미실을 떠올리게 하는 건 그래서 당연하고, 어쩌면 오히려 이 캐스팅이 그 효과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이 막장 선생 마여진은 왜 이토록 지독하게 아이들을 어른들의 현실 앞에 내세우는 걸까.

 

만날 중학생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때리겠다는 위협을 받는 동구(천보근)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도망치거나 굴복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는 선생. 그 둘 다 싫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 선생. 이제 겨우 초등학생에게 과연 할 말일까. 또 늘 코미디언 흉내를 내는 동구에게 반 아이들 앞에서 미혼모에 가출한 동구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며 “넌 진짜 동구가 되기가 두려운 거야”라고 말하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선생. 마여진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직장의 신>과 비교해 <여왕의 교실>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들 말하는데 사실 마여진 같은 선생은 실제 교실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선생님보다 더 갑이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학교로 항의하러 몰려온 학부모들을 오히려 마여진 선생이 포섭해버리는 시퀀스는 그래서 이것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지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여왕의 교실>은 도대체 뭐가 현실적이라는 걸까.

 

그것은 작금의 아이들 교육이 앞으로 아이들이 맞닥뜨릴 지독한 현실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한 질문이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차별이 어때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이 차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잖아.” “사회의 99%는 너희 부모들처럼 차별 받는 것을 한탄하며 산다.” 마여진 선생이 던지는 이 이야기는 아프게도 모두가 현실이다.

 

<여왕의 교실>이 때론 지나치고 때론 너무 가혹하다 여겨지는 건, 이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을 진짜 현실을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직시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것은 달리 보면 아동 학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꿈이라던가, 평등이라든가, 자유 같은 이상적인 가치들은 이 냉혹한 현실주의 앞에서는 심지어 무력하게까지 보인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왜 이런 냉혹한 현실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일까. 지금의 교육이 너무 안일하다는 비판일까. 성적순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교육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속내는 교육의 문제보다는 마여진 선생으로 대표되는 냉혹하게 되어버린 현실의 문제를 더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되바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순수한 아이들 앞에서까지 냉혹한 세상의 잣대를 강요하는 마여진 선생 같은 괴물을 탄생시킨 지독스런 현실을.

 

<여왕의 교실>은 그래서 청소년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잔인하지만 아이들이라는 눈높이로 다시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동구에게 “너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잔인하게 실상을 말하는 마여진 선생에게 동구의 좋은 점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선생님은 이런 동구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고 말하는 하나(김향기)는 그래서 냉혹한 현실 운운하는 어른들을 뜨끔하게 만든다.

 

<여왕의 교실>은 아이들 앞에 무시무시한 현실의 잣대를 제시하는 마여진 선생과, 그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지켜야할 가치들, 이를 테면 정의나 자유나 평등 같은 것들이 왜 소중한가를 드러내는 아이들이 대결하는 드라마다. 따라서 마여진 선생으로 대변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현실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정반대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순수와 가치를 가르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동구는 좋은 친구”라고 밝히면서 눈물 흘리는 하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졌다면 여전히 우리 어른들에게도 가능성은 있는 게 아닐까.

<야왕>, 수애는 왜 그저 악녀로 전락했을까

 

<야왕>의 주다해(수애)는 왜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이나 <하얀거탑>의 장준혁이 되지 못했을까. 이들 캐릭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욕망은 비뚤어진 것이어서 이들은 모두 악역을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그 악역이 모두 비난받는 건 아니다. 미실은 악역이면서도 자신만의 현실적인 통치 철학을 보여줌으로써, 또 장준혁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 역시 사회라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의 희생자라는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그 죽음에 이르러 시청자들을 고개 끄덕이게 한 인물들이다.

 

'야왕'(사진출처:SBS)

하지만 <야왕>의 주다해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일말의 동정적인 시선이 사라져버린 전형적인 악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첫 등장에서 죽은 어머니 사체 옆에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던 모습은 이 가정폭력과 가난에 시달리는 여인이 앞으로 달려갈 욕망의 질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 후 주다해의 모습은 줄곧 시청자들의 이해를 받기보다는 안쓰러울 정도로 성공에 집착하는 악녀로 일관되었다.

 

의붓아버지를 죽이고는 하류(권상우)를 공범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렇게 그녀에게 헌신하는 사실상의 남편이었던 그를 배신하고 심지어 감방에 들어가게 한데다 딸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재벌그룹 아들 백도훈(정윤호)의 약점(사실은 그가 누나 백도경(김성령)의 딸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와 결혼하고, 하류(대신 쌍둥이형인 차재웅이 죽게 되지만)의 살인을 사주한다. 이것도 모자라 백도훈마저 사경을 헤매게 만드는 전형적인 악녀, 그녀가 바로 주다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스토리에 세계관이나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이 악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차원으로 되돌리는 간편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주다해는 아무런 이해도 받지 못하는 인물로 전락했다. 결국 이것은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주다해가 나쁘기 때문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하고도 단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남녀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이다. 즉 <야왕>이라는 작품에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이 들어가 있다. 물론 선악구도로 나누어 놓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여성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그 자체로 무언가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 남성은 당연히 성공을 꿈꾸어야 하지만 여성은 그러면 안 되는 듯한 관점. 이것은 주다해의 성공 욕구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편한 시선이다.

 

이렇게 주다해라는 악녀가 시스템이 탄생시킨 괴물이 아니라 그 나쁜 심성 때문에 생긴 인물이 됨으로써 <야왕>은 그저 온전한 복수의 게임으로 전락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때로는 마치 성공하기 위해 발악하는 여성과 그것이 무조건 잘못 됐다는 성차별적인 전제 하에 그녀를 막으려는 남성의 대결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만일 주다해를 좀 더 이해될 수 있는 악녀로 그렸다면 이 드라마는 훨씬 풍부한 관점을 가지면서 논쟁적인 이야기를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그나마 주다해를 수애라는 어딘지 도도하고 믿음이 가며 그 자체로 동정심마저 유발하는 배우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만일 수애가 아닌 다른 연기자가 주다해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생각해보라. 어쩌면 <야왕>은 그저 극악스럽기만 한 막장으로 굴러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엉성한 얼개의 스토리는 막장에 가깝지만 그래도 연기자들이 그것을 연기로서 커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연기자들이 갖고 있는 힘은 세계관이 부재한 허술한 <야왕>의 대본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게 만드는 힘이다. 권상우의 연기가 그렇고 김성령의 연기가 그렇다. 물론 정윤호는 연기력 부족에다가 그저 바보가 되어버린 백도훈이라는 캐릭터의 한계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긴 하지만.

 

<야왕>은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게임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시각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발견하지 않고 그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태도가 그렇고,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여성 차별적 시선도 그렇다. <야왕>의 이 문제를 집약적으로 갖고 있는 인물이 바로 주다해다. 그 어떤 사회의 문제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태생적인 악녀가 되어버린 인물. 볼수록 안타까운 일이다.

냉철한 카리스마에서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로

'대물'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자 대통령을 연기할 고현정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 이유는 전작이었던 '선덕여왕'에서 그녀가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지도자적인 카리스마가 이번 작품에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뚜렷한 변화로 보이는 건 '대물'의 고현정이 연기하는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의 표정이 확실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정치지도자로서 마음의 변화를 상대방에서 노출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표정변화 없이 늘 꼿꼿한 그녀의 모습은 그 속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 무표정함에서 잠깐씩 보이는 입술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 마음의 동요를 언뜻 비춰주었을 뿐이다.

미실이 무표정으로 일관한 것은 '선덕여왕'의 추동력이 그 변화 없는 미실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무표정했던 미실이 차츰 무너지면서 고통스런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준 사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이미 신비화될 정도로 정점에 선 그녀가 서서히 권력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내려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대물'의 서혜림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올라간다. 보통의 평범한 주부이자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던 인물이 남편의 죽음을 겪고는 차츰 정계에 들어서게 되고 결국에는 그 정점인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성장의 과정을 그린다.

따라서 서혜림의 표정은 다채롭다고 할 만큼 끝없이 변화한다. '대물'에서 고현정의 연기가 남다른 것은 한 표정에서 다른 표정으로 순식간에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강렬한 고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내온 대통령의 비서를 맞는 장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그녀는 평범한 얼굴에서 시작해 화환을 모두 부숴버리며 오열하는 얼굴로 돌변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갑자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토로하는 방송을 하는 그녀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급작스런 변화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남편의 죽음을 한 평범한 여자의 입장에서 강렬하게 표현해낸다.

"놀아 달라"는 아이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장난을 치는 그녀의 모습이 눈물겨운 것은 이 깊은 상처를 그녀의 웃는 얼굴에서조차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돕는 하도야(권상우) 검사 앞에서 마치 남 얘기하듯 짐짓 밝게 남편의 얘기를 하며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하고 말하다가 결국 오열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절절한 연기는 위로하는 하도야마저 더더욱 따뜻한 존재로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고현정이 '대물'에서 보여준 연기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차츰 정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성장과정과 함께 속내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 정치 지도자를 그리고 있지만,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미실은 이제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의 '대물'로 돌아왔다.

선악구도의 재현은 대중들을 공감시키지 못한다

"마마 대응책이라뇨? 지금 그걸 누가 마련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마마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마마께서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뿐입니다. 그게 정치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궁지에 몰린 장희빈(김소연)은 남인의 수장, 오태석(정동환)을 불러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하지만 그의 반응은 싸늘하다. "권력이 있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그른 것"이라는 장희빈 자신의 말대로 된 것이다. 힘이 없어진 그녀는 이제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써야 할 위기에 처했다.

장희빈의 권력에 대한 인식은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을 떠올리게 한다.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다만 권력관계가 만들어내는 힘의 불균형이 있을 뿐이다. 사실 권력에 대한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권력을 어떤 실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권력을 쥐는 사람의 심성, 의지에 따라 모든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달라지는 것은 그 권력관계 속에 들어가는 인물들뿐이다.

'동이'에서 장희빈이 초반부에 동이(한효주)의 도움을 받아 중전의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그녀는 마치 선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결국 중전에 오르자 입장은 달라졌다. 권력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권력을 쥔 것이 아니라 다른 권력관계 속에서 입장이 달라진 것뿐이다. 따라서 권력을 얘기하면서 흔히 권력을 쥔 자는 악이고 권력에 이끌리는 자는 선이란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동이 역시 그 상층부의 권력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장희빈처럼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권력이기 때문이다.

'동이'의 장희빈이 '선덕여왕'의 미실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것은 이 사극의 구도가 지나치게 선악구도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동이는 무조건적인 선이고 장희빈은 악이다. 권력이 없는 동이와 권력자인 장희빈의 대결구도, 그래서 장희빈을 무너뜨리고 그 권력을 동이가 쥐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그려진다. 여기에 사극은 장희빈이 저지르는 일련의 일들을 부도덕한 처사로 몰아간다. 즉 게임의 법칙, 정정당당함을 잃은 장희빈은 악이 되는 것이다.

장희빈의 몰락은 그래서 권선징악적인 이 사극의 목표처럼 보인다. 바로 이 단순한 구도는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다. 물론 장희빈이 "권력이 있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이 그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사극의 권력에 대한 인식는 선악구도의 그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식이 그런 것과 실제로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뉘앙스는 다르다. 이 사극은 지금껏 선악구도(운명적으로 선인 동이와 그 반대인 장희빈)를 전면에 내세웠다. 장희빈의 오빠인 장희재(김유석)는 뼛속까지 악역이고 서인의 핵심인물로 등장하는 심운택(김동윤)은 늘 선이다. 그들은 결국 권력을 향해 달려간 두 인물일 뿐이지만.

'선덕여왕'의 미실이 악역이면서도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이 사극이 선악구도를 그리기보다는 보다 권력의 관계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미실은 덕만(이요원)과 대립관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멘토 같은 역할을 했다. 그들은 권력의 법칙을 잘 이해했고 그래서 미실이 최후를 맞이할 때 덕만 또한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 덕만이 여왕의 자리로 등극한 이후에 심지어 미실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부재를 깊이 느낄 만큼, 사극은 선악구도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관계의 다이내믹함(끝없이 변화하는 힘의 움직임)을 잘 잡아냈다. 반면 '동이'의 대립구도는 지나치게 선악구도에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이 권력의 시스템이 그 구도 아래 가려지는 상황을 맞이한다. 과연 이 사극처럼 동이가 장희빈을 내쫓고 나면 시스템은 달라질까. 해피엔딩은 올 것인가.

장희빈은 그래서 미실만큼 매력이 없다. 이건 연기의 문제가 아니다. 캐릭터가 가진 매력의 문제다. 역사에서 정치의 상층부로 올라갔던 여성의 성장과 몰락의 과정에서 장희빈이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반면, 미실이 꽤나 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장희빈하면 우리는 그 배역을 연기한 배우들의 명연기와 억지로 사약을 받는 그 체통도 우아함도 잃은 한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주변적인 관심들은 어쩌면 이 공고한 시스템을 가리고 이 모든 것들이 선악의 문제라고 강변하는 보수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선악구도의 변화는 아무 것도 바꾸지 않는다. 한때 이 악녀로 그려졌던 장희빈에게 열광하던 시대가 가고, 이제 그 단순함에 별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권력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 또한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미실의 죽음에서 '모래시계' 태수가 떠오르는 이유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이 아름다운 최후를 맞았다. 이제 드라마 속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인물이지만,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우리네 드라마史에 남을 족적을 남겼다. 먼저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사극 속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드라마 전체에 힘을 부여하고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을 지닌 캐릭터였다. '선덕여왕'의 시작이 덕만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미실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미실이라는 강력한 여성 카리스마를 세워두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서 덕만(이요원)과 유신(엄태웅), 비담(김남길), 춘추(유승호) 등의 캐릭터가 세워질 수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자결한 미실 앞에서 덕만이 하는 말, "당신이 없었다면 자신도 있을 수 없었다"는 그 말은 캐릭터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바로 덕만이 술회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미실은 단순히 악역으로 치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때론 강력한 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덕만의 멘토 역할을 해주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미실은 악역이라기보다는 시대를 잘못 만난 안티 히어로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상적인 덕만과 상반되게 현실 정치 감각을 가진 인물이 미실이다. 덕만이 곧잘 하는 말, "미실이 하는 방식으로 해야겠다"는 말은 이 인물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말해준다.

미실은 또한 여성으로서의 카리스마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캐릭터이기도 하다. 미실은 이 사극 속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는 캐릭터다. 그녀는 칼을 휘두르거나 전쟁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저 한 자리에 앉아 판세를 읽고 거기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 칼의 힘보다 더 강력한 말의 힘만으로 상대방을 오금을 저리게 만들 수 있는 인물이 미실이다.

이 정적인 상태에서 온전히 카리스마를 보여야 하는 미실이라는 캐릭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고현정이라는 연기자다.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틀고, 눈꼬리를 조금 올리는 것만으로 미실이 가진 힘을 온전히 표현해냈다. 즉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고현정이라는 연기자에게도 큰 의미가 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고현정은 청순한 이미지에서 탈피해 털털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꾀해왔고, 이번 작품을 통해 요염하면서도 악마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비극적인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함으로써 연기 스펙트럼을 더욱 넓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빛나는 캐릭터의 하차가 아쉽기 때문일까. 미실의 죽음 앞에 '선덕여왕'의 인물들은 저마다 예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5년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은 청순한 모습으로 최민수와 연기 호흡을 맞추며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고현정에서 당시 최민수가 보여주었던 카리스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실의 최후에, 드라마史에 길이 남게 된 모래시계' 태수(최민수)의 죽음이 연상되는 것은, 미실이라는 캐릭터가 일궈낸 여성 카리스마의 절정과 그것을 연기한 고현정의 변신이 놀랍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한 시대는 흘렀고, 카리스마 역시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겨져 왔다. 미실은 바로 그 지점을 표상하듯 서 있는 캐릭터다.

멘토형 악역 미실이 시사하는 것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에게 귀족들이 결국에는 구휼미로 내놓을 것을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 비싼 값에도 곡물을 매점매석하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미실은 덕만에게 농부들에도 자영농과 소작농이 있다면서 그들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재차 질문을 함으로써 덕만에게 그 답의 단서를 제시한다. 그 단서를 얻은 덕만은 궁의 비축미를 시장에 풀어 가격을 낮춤으로써 비싼 값에 곡물을 산 귀족들에게 역공격을 가하고, 백성들은 싼 가격에 곡물을 살 수 있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과정은 덕만이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미실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셈이 된다. 여타의 사극이라면 특이한 상황이겠지만 '선덕여왕'에서 이런 식의 전개는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유는 악역이면서도 멘토의 역할을 하는 미실이라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이처럼 덕만에게 문제를 제시하는 존재이면서 때로는 그 문제의 해법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덕만의 캐릭터와도 조응한다. 덕만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적의 방식을 그대로 활용하는 인물이다. 곡물의 매점매석을 시장의 논리로서 해결하는 것도 그렇고, 미실이 일식 같은 자연현상을 이용해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어 정치에 활용하는 방식은 덕만이 궁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방식으로 활용된다. 덕만은 어찌 보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늘 미실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덕만의 성장은 그녀를 도와주고 돌봐주는 인물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문제를 내는 인물들에 의한 것이다.

덕만과 미실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고 벌이는 대화는 마치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의 그것 같다. 미실이 백성들은 환상을 원하고 그 환상을 통해 통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미실 앞에서 덕만은 자신만의 비전을 궁구하고, 결국 답으로서 환상이 아닌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자 미실은 "자기보다 더 지독한 짓"이라고 말하고, 거기에 대해 덕만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를 짓는다. 이것은 비전과 현실정치 사이의 괴리를 말하는 것이다. 덕만은 현실정치를 위해 미실의 방식을 차용하되, 그것이 속이는 환상이 아니라 꿈꾸게 하는 희망으로 비전을 내세운 것이다.

결국 덕만의 방식은 미실이 갖고 있는 정보의 독점을 통한 통제가 아니라, 정보의 공유를 통한 공통 비전의 제시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부분 미실의 통치방식을 연구한데서 나온 것들이다. 적이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 이 방식은 '선덕여왕'이 갖고 있는 이야기의 주된 방식이라고 할 때, 그 문제출제자이자 기존 정보의 제공자인 미실은 이 사극의 실제적인 추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멘토가 되고, 때로는 악역으로 서는 미실이라는 존재가 있어 '선덕여왕'은 비로소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현실정치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비전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 과정이 정치의 성장 과정이 아닐까.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적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적이 답변을 해주는 이 덕만과 미실의 이야기는 대화와 소통부재의 정치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제목이 '선덕여왕'이니 덕만(이요원)이 그 주인공일까요. 그녀와 짝패를 이룰 천명(박예진)이 그 주인공일까요. 아니면 이 모든 싸움의 결과를 가져갈 김유신(엄태웅)과 김춘추가 그 인물일까요. 저는 이 모두가 아쉽게도 그 주인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의 힘은 다른 곳에서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 인물은 바로 미실(고현정)입니다.

이것은 미실이 이 사극에서 해오는 역할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미실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선덕여왕이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신하들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여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고 전횡하는 미실은 이 사극의 전제조건입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면 덕만을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보낸 것도 미실이고, 그 곳에서 천문을 읽는 훈련과 세계의 문물을 경험하게 한 장본인도 미실이 됩니다.

미실은 이 사극의 가장 중심에 놓여져 있는 힘입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카리스마로 무장하고 등장해 극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했고, 그 카리스마를 통해 상대방을 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녀와 대적하는 어린 덕만은 바로 그 행위만으로 자신의 아우라를 만들 수 있었죠. 이것은 후에 그녀와 대적하는 천명, 그녀와 대적하는 유신 같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미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캐릭터는 더욱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이죠.

미실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기도 하고, 신하들을 자신의 발밑에 줄세워놓기도 합니다. 설원공(전노민)과 세종(독고영재)은 미실을 가운데 두고 묘한 경쟁관계에 놓이고, 그 아들들인 하종(김정현)과 보종(백도빈) 역시 충성경쟁을 하게 합니다. 이 충성경쟁이라는 미묘한 관계는 사극에 어떤 흐름을 만들면서도 변수를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미실이라는 존재의 카리스마는 같은 편 내부에서도 독특한 힘과 방향성을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미실은 이 사극의 이야기를 주도해나갑니다. '사다함의 매화'라는 에피소드 속에는 미실의 비밀스런 과거가 숨겨져 있고, 그 과거는 또한 현재의 권력과 그대로 연관관계를 가집니다. 이 비밀 한 가지를 틀어쥐고 있는 미실을 통해 사극은 흥미진진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미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사극의 메시지도 숨겨져 있습니다. 민심과 천심에 대한 미실과 덕만의 대화는 이 사극이 말하려는 정치적 대결구도의 실체를 드러내줍니다. 천심을 틀어쥐고 민심을 휘두르려는 미실과 민심을 천심처럼 읽어내려는 덕만은 권력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을 드러내줍니다.

미실이 이 사극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잠시 미실이 없는(혹은 카리스마 없는 미실) 이 사극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미실이 무너지면 사실상 이 사극은 끝이 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이 어떤 실패 앞에서도 늘 미소짓고 적까지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려는 여유있는 모습을 연기해보여줄 때, 이 사극은 힘을 발합니다. 혹자는 고현정의 연기가 이요원에 비해 단선적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미실이라는 역할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을 때, 생명력이 길어집니다. 이것은 덕만과는 정반대죠. 덕만이 감정적인 인물에서 차츰 감정을 숨기는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과 미실이 감정없는 인물(마치 신처럼)로 서 있다가 차츰 감정이 드러나는 인물(역시 인간이었다!)로 변화해가는 과정의 쌍곡선은 이 사극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악역들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을 담당하는 것처럼 '선덕여왕'의 미실도 이 사극의 중추적인 힘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타의 극과 다른 점은 미실이 거의 모든 부분에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 힘겨운 압력을 버텨내고 있는 고현정의 고군분투가 놀랍게 생각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미실과 덕만, 그녀들이 사람을 얻는 법

"사람을 얻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고 하셨습니까? 보십시오. 전부 제 사람들입니다." 진흥왕(이순재)이 죽자 미실(고현정)은 이렇게 선언한다. 이것은 '선덕여왕'이 말하는 정치의 세계다. 따라서 이 사극의 궁극적인 미션은 정치적인 색채를 띄게 된다. 주어진 미션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승리, 즉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을 얻어야 한다. 양극점에 서있는 미실과 덕만(이요원)은 자신들만의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

'선덕여왕'의 두 인물이 보여주는 카리스마가 주목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덕만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모성에 가깝다. 그녀는 자신 역시 두려움에 떨면서도 공포에 질려 있는 동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에 적에게 자신을 노출시킨 죄로 참수를 당하게 된 시열(문지윤)을 덕만은 끝까지 지켜낸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부상병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알천랑(이승효) 앞에 그녀는 '공포'가 아닌 '희망'을 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덕만이 가진 카리스마의 단면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속에서 약자를 포기하는 카리스마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녀는 대신 약자들도 하나로 뭉치면 강자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카리스마의 결과는 현실로 드러난다. 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 속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려는 알천랑 앞에 그녀는 '원진'을 외치고 가까스로 살아남고, 미션 수행 과정에서 동료가 동료를 죽이는 선택을 막아내고는 결국 함께 살아남는다. 이 과정 속에서 약자들은 물론이고 강자들마저(알천랑이나 김유신(엄태웅)같은) 그녀를 따르게 된다.

한편 미실이 추구하는 카리스마는 더욱 정치적이다. 그녀는 적과 아군의 구분을 넘어서 이기는 자, 천운을 가진 자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를 보인다. 사지로 내몰렸던 김서현(정성모)이 살아 돌아오고 점점 입지를 다져나가자 그녀는 그마저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 게다가 지금껏 충성해왔던 설원랑(전노민) 앞에서 공공연히 이를 밝힘으로써 '충성경쟁'에 불을 붙인다. 그녀의 진정한 힘은 설원랑이 말한 것처럼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을 취하는 정치적 카리스마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미실과 덕만, 이 두 여성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현재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져온 리더십의 변화를 말해주기도 한다. 이제 물리적인 힘으로 제 발밑에 사람들을 무릎 꿇리는 남성적 카리스마의 시대는 저물었다. 미실이 보여주는 정치적 카리스마는 그 목적이 어떻든 포용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한때 적이었던 자까지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쉬운 것이 아니다. 한편 약자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이끌어주는 덕만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모성적인 색채를 띈다.

이 두 카리스마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녀들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실에 끌리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욕망(권력에의)이 자리하는 반면, 덕만에 이끌리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희망이 자리한다. 근본적으로 욕망이란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인 반면, 희망은 삶의 기쁨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점에서 이 두 카리스마는 차이를 보인다. 미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반면, 덕만에게서 삶의 냄새가 강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이 두 여성을 통해 여성적 카리스마라고 불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적 리더십에 대해 말하는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악으로 세우고, 선으로 무너뜨린다

'선덕여왕'은 이야기 구조가 흥미롭다. 제목이 '선덕여왕'이라면 응당 그 선덕여왕에 해당하는 덕만공주(이요원)가 먼저 등장하는 것이 정석. 대체로 이런 경우 성장한 덕만공주의 이야기를 도입부에 넣고, 플래쉬 백으로 과거로 돌아가 어린 시절부터 다시 거슬러오는 수순을 밟기 일쑤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그런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

아예 첫 회에 덕만공주(아역이라도)를 등장시키지 않았고, 대신 미실(고현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즉 첫 회는 미실이 가진 막강한 권력과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권력욕, 그걸 채우기 위해 뭐든 하는 위악적이면서 섬뜩한 유혹으로서의 그녀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온전히 할애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목을 '미실'로 할 것이지 왜 '선덕여왕'으로 했을까.

이 부분에서 엿보이는 것은 이 드라마가 취한 고민의 흔적이다. 사실 미실이라는 인물은 최근 문화계에서 주목받는 여성이다. 김별아의 소설을 통해 재탄생된 미실은 그저 역사가 재단한 요부, 요녀의 틀을 넘어서는 인물로 현대적인 새로운 여성상을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소설 속에서 미실은 운명의 틀 속에 사로잡혀 태어났지만,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간 인물이자,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요녀로 전락하지 않은 자유영혼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따라서 이 시대에 사극의 소재로서 적합한 인물로만 따진다면 그건 선덕여왕이 아니라 미실일 것이다. 그 파격적인 팜므파탈의 여성은 시대를 넘어 자유를 꿈꾸고 자기 욕망을 억압하지 않는 현대여성의 한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 작가들이 밝힌 대로 그들이 미실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부딪치는 것이 사극이 갖는 보편적인 정서와의 대립이다. 아무리 식상하다고 해도 우리네 사극에서 선악구도는 빠질 수 없는 것이며, 그 주제가 여전히 권선징악에서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면서도 사극으로서의 보편성에서는 벗어나 있는 딜레마를 가지게 된다.

'선덕여왕'이 미실이 아닌 덕만(훗날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이런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이런 상반된 두 인물을 차례로 세움으로써 이 드라마는 두 가지의 재미를 모두 갖게 되었다. 그 첫째는 미실이라는 팜므파탈이 만들어가는 파격적인 욕망의 질주를 보는 재미이며, 둘째는 이 벽처럼 존재하는 욕망의 화신, 미실의 세상을 하나씩 허물어가면서 선의 세상을 구원해가는 덕만의 성장스토리가 주는 재미다.

먼저 미실을 세우고 그 다음 덕만을 등장시키는 '선덕여왕'의 선택은 여러모로 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파격적인 내용을 가지고도 전통적인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미실을 그저 악독한 요부로만 그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선악의 대결처럼 보이고 그것이 사극을 보는 보편적인 정서라도 말이다. 선악의 대결이 아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여성의 대결을 병치시키는 건 여전히 사극의 작법에서는 위험한 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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