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다문화, ‘한끼’에 고스란히 녹아든 시대의 풍경들

꼭꼭 닫혀 있는 문 저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각자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그래서 다를 수밖에 없지만, 저녁 시간 가족들이 둘러앉아 한 끼 식사를 나누는 그 정경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허기를 채워주는 훈훈함 같은 공감의 정서가 흐른다. JTBC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가 기능하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서로 남남으로 살아가지만 저녁 시간 한 끼가 주는 그 공감의 정서 아래, 잠시 문을 열고 그 삶의 풍경을 보여주며, 그리하여 각각 다른 삶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사실은 동시대의 공감지대를 갖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수원 화서동에서 소녀시대 유리와 써니가 밥동무로 함께한 <한끼줍쇼>는 그런 점에서 왜 이 프로그램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끄는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강호동과 유리에게 선뜻 문을 열어준 단란한 가족은 서로 막걸리를 나누며 기분 좋은 훈훈함을 보여줬지만, 과거 아버님과 어머님의 연애시절 이야기에서는 당대 민주화 시절의 결코 쉽지 않았던 시대의 정경이 느껴졌다. 

마침 그날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왔다는 이 부부는 어딘지 모르게 느껴진 시대의 공기는 아버님이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수배됐을 때 처음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배된 처지에 결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아버님에게 오히려 어머님이 결혼하자 청혼을 했다는 것. JTBC 손석희 사장의 오랜 팬임을 밝히고 <백분토론>에도 참여했다는 어머님이 손 사장에게 감사와 지지의 영상편지를 보내는 대목에서는 최근의 촛불정국의 풍경이 겹쳐졌다. 그저 한 끼를 나누는 자리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의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담겨졌던 것.

8시 마감시간에 임박해 고맙게도 이경규와 써니에게 문을 열어 준 집은 <한끼줍쇼>에서는 최초로 방문하게 된 다문화가정이었다. 필리핀계 미국인인 남편과 성격 좋은 아내 그리고 예쁜 아이가 살아가는 집. 아직은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남편분과 서투른 영어로 나누는 대화가 조금은 낯설고, 마침 별로 준비된 게 없어 짜장라면 한 그릇씩을 나누는 저녁 한 끼였지만 그럼에도 공감대는 충분히 있었다. 특히 걸그룹을 좋아하는 남편분은 소녀시대의 노래를 잘 알고 있어 그 이야기만으로도 서먹함을 지워낼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며 느낀 고충이 없을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어 대꾸를 하지 않는다며 고함을 지르며 따라온 어느 사내의 이야기와 지하철에서 자신을 치고 침을 뱉고 갔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그걸 듣는 이경규나 써니에게도 화가 나는 일이었다. 써니는 “그건 한국 분들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그 분이 이상한 것”이라고 그 속상함을 공감했다. 

민주화와 다문화. <한끼줍쇼>가 수원 화서동의 어느 집에서 보여준 풍경 속에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변화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 가족과 함께 나누는 한 끼 밥상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과 함께 이어졌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한 자락이 담겨졌고,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 또한 자연스럽게 얹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그런 변화들을 겪고 있는 저마다의 가족들이 문을 열고 다른 이들과 함께 밥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훈훈한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는 걸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낯을 많이 가린다는 써니에게 이경규가 한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괜찮아. 어차피 나도 그쪽도 서로 어색해. 그런데 얘기하다 보면 정이 들고 심지어 헤어질 때는 좀 아쉽게 느껴지더라.”

전효성의 역사의식 부재, 무지가 폭력이 되는 이유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 시크릿의 전효성이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 무심코 던진 이 말은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만들고 있다. 아마도 80년대 민주화를 일궈낸 세대들에게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생소할 것이다. 개성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민주화’라니. 그것도 이 말 속에서 ‘민주화’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가.

 

전효성(사진출처:예스)

그도 그럴 것이 ‘민주화’라는 단어는 대표적인 극우사이트인 ‘일간베스트’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선동되어 획일화됐다’는 의미란다. 왜 ‘민주화’라는 단어를 이런 식의 부정적 의미로 쓰는 걸까. 거기에는 이 극우사이트가 보여주는 ‘민주화’에 대한 다른 해석이 깔려 있다. 그들은 흔히들 많이 사용되는 ‘민주화’라는 표현을 비꼬고 있다. 그들에게 ‘민주화’란 특정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집단행동(심지어 폭력)을 풍자하는 단어다. 그럴 듯한 보수적 논리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결국 민주화 운동 자체를 폄훼하는 시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시크릿 측에서는 “효성이 ‘민주화’의 뜻을 모르고 쓴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전효성 역시 트위터를 통해 거듭 사과의 뜻을 전했다. ‘오늘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의 저의 발언과 관련해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한 점 반성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황당한 것은 전효성 스스로가 반성과 사과의 글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간베스트’에는 ‘전효성을 지키자’며 시크릿 음반 구매를 유도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이들도 있고 이것이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즉 ‘일간베스트’에서는 이렇게 벌어지는 논란 자체를 그들이 쓰는 의미로 특정세력이 ‘민주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똑같은 ‘민주화’라는 단어가 이렇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을까. 이런 식의 해석은 ‘민주화’가 들어간 수많은 역사적 행위들을 폄훼시킬 수밖에 없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화 운동이 그렇고, 그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수많은 젊은이들과 시민들도 그렇다. 또 정반대로 광주 시민들을 군화발로 짓밟은 이들의 폭력은 전혀 다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벌써부터 전효성의 발언으로 커진 여론에 대해 ‘광주의 피해의식’ 운운하는 댓글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때마침 <무한도전>이 아이돌들을 모아 놓고 ‘역사특강’을 하면서 우리네 역사교육의 문제를 꼬집은 것은 이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면 선견지명이었다고 여겨진다. 5월18일 방송 예정인 ‘역사특강’ 2편은 그래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크릿 출연분량을 편집해달라는 네티즌들의 요구는 정당하지만 그것이 어찌 전효성만의 문제일까. 이번 논란은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을 부재하게 만들어버린 우리네 역사교육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전효성은 ‘몰랐다’고 하지만 그 무지가 타인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상처 입은 분들에게는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보상이고 예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 이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역사 자체를 전면 부정하거나 곡해할 수 있는 언어의 다른 사용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서로 다른 두 나라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다.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아닌가. 정치 싸움의 편 가르기가 만들어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한도전>이 제기한 제대로 된 역사의식과 역사 교육은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사실 명실공히 한국방송사극의 개척자인 신봉승 작가에 대한 저의 기억은 좀 엉뚱합니다. 오래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 "조선의 임금들은 왜 단명했을까"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한 적이 있어서죠.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이 작가의 임금에 대한 새로운 식견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의 임금들은 왜 단명했을까요? 지나친 격무 때문에? 매일 반복되는 신하들과의 줄다리기 때문에? 글쎄요. 의외로 답은 간단했습니다.

첫째. 운동을 안한다. : 운동할 일이 별로 없었겠죠. 행동반경도 궁이 전부였으니.
둘째. 섹스가 잦다. : 왕은 무치라고 해서 아무 데서나 원하면 성관계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 고단백의 음식을 많이 먹는다. : 산해진미를 원하는 대로. '대장금'이 증명해주죠.

새로 시작한 사극, '동이'를 보면서 그 숙종(지진희)의 깨방정을 보면서 저는 제일 먼저 이 신봉승 작가가 썼던 그 글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동이(한효주)와 숙종이 도망치는 장면에서 "이렇게 멀리 달려본 적이 없다"며 헉헉대는 숙종을 볼 때, 저게 '리얼이다'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최근에 신봉승 작가가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를 읽고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신봉승 작가는 '동이'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 사극에는 국가적 맥락이 없다"면서 "적어도 사극이라면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저변에 까는 역사인식이 기본"이며 "이런 역사인식은 정확한 사실과 적절한 해석이 조화됨으로써 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덧붙여 숙종을 '깨방정'과 연결시킨 것에 대해서 그것은 "역사인물을 친근화"하는 것이 아니고 "위엄과 카리스마를 갖춰서 숙(肅)이라고 했다는 기초적인 사실도 모르기 때문에 왜곡된 군주상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죠. 나아가 신 작가는 "요즘 사극들은 역사 속의 이름만 빌려왔을 뿐 한편의 활극이나 사랑타령일 뿐"으로 "재미만 추구"하며 "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작진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전문 : [조선인터뷰] '한국 방송사극의 개척자' 신봉승 작가)

신봉승 작가가 우리네 사극에 미친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조선왕조실록'이 완전히 한글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신 작가는 손수 그 많은 책을 독파하면서 우리 사극의 밑거름을 쌓았죠. 하지만 민족주의 시대도 아닌 지금,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해 국가적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서울, 1945'가 KBS가 좌파를 미화하고 건국대통령을 비하하는 작품이라 폄하했고, 반면 일본 NHK에서 방영한 '언덕 위의 구름(명치유신기 새나라 건설을 위해 몸바친 이들을 재조명한 작품이라고 합니다)'같은 '국가맥 맥락에 기여'하는 작품을 높이 평가했죠. 이런 시선으로 현재 '동이'에서의 깨방정 숙종이 주는 대중적인 공감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봉승 작가가 말하는 현 사극들의 '정사(正史)를 훼손하는 행위'는 수차례 논의가 되어진 것들이지만 '사극이 역사를 대변한다'는 그 인식이 바뀌어진 현재 그다지 의미있는 해석은 아닙니다. 사극은 과거 사(史)에 더 쏠렸던 무게중심을 극(劇)쪽으로 옮겨놓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사극을 역사로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최근 들어 등장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새로운 인식에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역사란(특히 정사란) 기득권자의 시선일 뿐, 당대를 살아간 수많은 민초들의 이야기들을 모두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현재의 사극은 과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초점을 맞춥니다. 즉 과거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이죠. 이 상황에서 역사의 실제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전개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극 자체가 역사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수용됩니다.

깨방정 숙종을 보면서 물론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극적 이야기 구성을 통해 만들어진 과장이 있겠지만 어쩌면 저게 실제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숙종이 낮은 자들에게 털털한 모습으로 손을 내밀고, 또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정쟁만을 일삼는 중신들에게는 지엄하게 꾸짖는 그 상반된 태도는, 숙종이란 왕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었던가를 에둘러 말해줍니다.

역사가 하나의 시각이라면, 인간적으로 고민하고 누군가를 가슴 뛰게 사랑하는 그런 왕이 아니라, 어떤 면으로 보면 신적으로 이미지화된 엄숙하고 돌 같은 왕을 우리는 더이상 바라지 않습니다. 절대왕정의 시대는 이미 지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존엄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극이 점점 역사의 엄숙주의의 박제에서 빠져나와 다양한 상상력으로 살아움직이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힘겨웠던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서 우리는 이제 다양성의 사회 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민주화 운동 역시 아무리 무거운 역사라고 하더라도 이제는 좀더 작고 일상적인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할 것입니다. 마침 올해 처음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5월10일부터 6월15일까지 <제1회 민주주의 UCC 공모전>http://civicedu.tistory.com/15을 가진다고 하는데요, 그 취지를 들여다보면 역시 거창한 것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의 민주주의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해 자신만이 느꼈던 작은 민주주의를 피력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어떻게 사람이 한 가지 모습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가 생각하는 임금은 늘 한 가지 이미지로만 굳어져서 우리에게 보여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양성이 민주화의 한 잣대로 제시되는 현 시대에 어울리는 진정한 이해와 소통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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