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과 김유정, <구르미>의 어른 아이들

 

사실 대본만 놓고 보면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왜 이토록 화제가 되는 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남장여자 코드의 사극 버전 멜로는 이미 <성균관 스캔들>이나 <바람의 화원>을 통해 충분히 익숙해진 스토리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스토리는 여기서 그다지 새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남장여자로 자신을 숨긴 채 내시로 궁에 들어온 홍라온(김유정)이 왕세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멜로 이외에 사극이 갖기 마련인 정쟁 구도도 그리 신선하다 여겨지지는 않는다. 왕이 있지만 모든 실세를 쥐고 있는 세도가 김헌(천호진)이 그 정쟁의 중심에 서 있다. 대리청정을 받아들인 왕세자 이영(박보검)은 그 김헌과 대립한다. 이미 뽑힐 사람이 정해져 있는 말 뿐인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겠다던 이영은 정약용(안내상)의 조언으로 시험은 치르되 다른 시제를 냄으로써 시험의 초심을 공명정대하게 지켜낸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소소해 보여 이 사극이 보여주는 멜로와 견줘보면 그리 집중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이 사극의 이야기는 이영과 홍라온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가 거의 대부분이다. 남장여자라는 콘셉트는 내시와 여인 사이를 오가는 홍라온을 통해 이영과의 멜로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장치다. 물론 홍라온이 홍경래의 여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멜로구도는 정치적 사안과 맞물려 긴장감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극의 특성상 그 이야기 역시 정치적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멜로적 긴장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이야기는 익숙한 것들이 어느 정도는 그 향방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그리고 그 뜨거운 반응의 중심에는 박보검과 김유정이 있다. 이 두 사람의 연기에 한 마디로 심쿵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들의 연기가 무엇이 특별하길래 이토록 마법을 부리는 걸까.

 

사실 박보검은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그가 들어가는 프로그램마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응답하라1988>에서 그 연기가 주목받았다면 <꽃보다청춘>, <12>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심성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닿았다. 연기력과 심성. 이 두 요소는 요즘 드라마와 예능에서 가장 요구되는 자질들이다. 어린 나이지만 그는 <스틸사진>의 아역에서부터 <각시탈>, <원더풀 마마>, <참 좋은 시절>, <내일도 칸타빌레>를 거쳐 <응답하라1988>까지 꽤 많은 작품들에서 연기공력을 쌓았고, 파산으로 어려운 형편 때문에 쉽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연기 경험을 했던 것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은 점은 결과적으로 보면 연기자 박보검에게는 큰 자산이 됐다고 보인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이영을 연기하는 박보검은 여전히 아이 같은 순수한 눈빛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슬퍼 보이고 그러면서 때론 서슬 퍼런 왕세자의 눈빛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려보이지만 어른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그것이 꽤 슬픈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김유정 역시 이런 관점으로 보면 박보검과 비슷한 점들이 있다.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연기를 하며 성장해왔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3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벌써 연기경력이 10년이 되는 셈이다. 아역의 이미지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녀는 그것을 깨기 위해 최근 무던한 노력을 해왔다. <우아한 거짓말>이나 <앵그리맘>에서의 연기변신은 단적인 사례다.

 

아역이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성장통은 의외로 깊을 수밖에 없지만 놀라운 건 김유정은 아역 시절부터 벌써부터 성인역에 가까운 감정과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는 사실이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구미호와 인간 사이의 반인반수인 연이 역할을 연기하는 김유정이 그랬고, KBS단막 스페셜 <곡비>에서 기생 역할을 연기하는 그녀가 그랬다. 그녀에게도 박보검처럼 아이 같은 면면과 동시에 어른스러움이 갖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이런 남다른 필모그라피 덕분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면면을 갖고 있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서서 어른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박보검과 김유정의 눈빛이 더 아련한 느낌을 주는 건 당연하다.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살벌한 어른들 세계에 온전히 아이 둘이 서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지 않던가. 두 사람이 서로 애절한 눈빛을 나누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더 쥐어짜는 건 그래서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고 또 찾아보게 만드는 것도.

<구르미> 김유정, 남장여자 캐릭터의 진수

 

박보검 매직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시청률이 19.3%(닐슨 코리아)로 치솟았다. 8.3%로 다소 저조하게 시작했던 시청률은 16%로 뛰어오른 후 이제 20%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경쟁작으로 등장했던 SBS <달의 연인>7.4%로 시작해 5.7%까지 떨어진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달의 연인>은 장르적으로도 또 스타일 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사극이지만 청춘 멜로를 바탕에 깔고 있고 현대극에 가까운 시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한 성격의 두 작품이 이렇게 극적으로 희비쌍곡선을 그리게 된 건 아무래도 연기자들의 몫이 크다.

 

박보검은 아직 사극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의외로 이영이라는 왕세자의 다양한 면면들을 잘도 끄집어내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릴 때면 한없이 아이처럼 슬퍼하다가, 어딘지 무기력한 아버지인 왕(김승수) 앞에서는 반항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권력의 실세로 조정을 농단하는 김헌(천호진)과는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홍라온(김유정)에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끌림을 천연덕스럽게도 연기한다.

 

혹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정통사극이 아니고 현대적인 감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극이 주는 진중함을 가져가면서도 그것을 살짝 무너뜨리며 현대적인 유머와 시각을 집어넣는다는 건 어쩌면 온전한 정통사극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두고 보면 박보검의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그 균형감각은 연기자로서 탁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박보검만큼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다름 아닌 상대역인 홍라온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유정이다. 아직 만 16세로 우리에게는 아역으로 더 많이 기억됐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지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그 아역의 껍질을 깨고 어엿한 여인으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아역 시절부터 이게 과연 아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해냈던 김유정이다. 그녀가 해온 연기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연기공력을 쌓아왔는가가 한 눈에 드러난다. 현대극들은 차치하고라도 사극만, <일지매>, <바람의 화원>, <탐나는도다>, <동이>, <계백>, <해를 품은 달>, <비밀의 문>, <구미호 여우누이뎐>까지 무려 8편에 달한다. 이미 아역 시절부터 사극이 제 옷처럼 잘 맞을 정도로 연기 경험을 해온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도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은 각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남장여자 콘셉트의 사극은 여성 연기자들에게는 연기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다. <성균관스캔들>의 박민영이 그랬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이 그랬다. 기존의 이미지를 남장여자 캐릭터로 가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와 멜로 연기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의 김유정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 같던 이미지는 내시 역할을 하며 슬쩍 친구처럼 다가왔고 그러면서 이영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며 시청자들에게도 그 매력을 드러낸다. 그녀가 연희를 위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춤을 추는 장면은 김유정이 어엿한 여인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한없이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드는 그녀가 아닌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데는 분명 박보검과 김유정이라는 두 배우의 집중력있는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박보검도 놀랍지만, 아이 같은 귀여움과 여인의 설렘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김유정은 더 대단하다. 구름 사이로 교교히 비추는 달빛처럼, 이들이 매력은 어느덧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고 있다.

<배우학교>의 박신양, 연기에 대한 진정성 보여줄 수 있을까

 

박신양과 예능. 어딘지 낯선 조합이다. tvN이 새롭게 시도하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 <배우학교>가 시작 전부터 관심을 끌어모은 건 바로 이 낯선 조합에 대한 호기심 덕분이다. 왜 박신양은 <배우학교>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선택했을까. 지금껏 해왔던 배우로서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실로 이례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박신양이 누군가. <편지>, <약속> 같은 영화로 또 <파리의 연인>, <쩐의 전쟁>, <바람의 화원>같은 드라마로 그 누구보다 화려한 필모그라피를 보여주는 배우다. 물론 최근에는 2011년 작품인 <싸인> 이후에 이렇다 할 작품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연기력에 있어서 누구나 인정했던 배우가 바로 박신양이다.

 

하지만 박신양은 2007<쩐의 전쟁>에서 이른바 고액 출연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쩐의 전쟁>이 인기를 끌면서 연장방송된 번외편에서 회당 155백만 원의 출연료로 추가계약을 한 사실은 당시 제작사였던 이김프로덕션과의 법정 분쟁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결국 밥정은 박신양의 손을 들어줘 이김프로덕션이 추가 계약대로 386십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문제는 이 고액의 액수가 만들어낸 적지 않은 파장이었다.

 

드라마 제작사 협회가 나서 박신양이 거액의 출연료 요구로 드라마 발전을 방해하고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명목으로 박신양의 드라마 출연을 무기한 정지하기로 의결했고, 그 액수가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박신양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가워졌다. 결국 이 여파로 박신양은 2011<싸인>에 출연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안방극장에 얼굴을 내밀 수가 없었다.

 

사실 연장방송을 한 것이 더 잘못이고, 거기서 추가계약을 했다면 그 액수대로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박신양에게 이러한 계약이나 출연료보다 더 큰 문제는 연기에 대한 진정성이 이 논란에 의해 상당히 흐려져 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진짜라기보다는 이미지의 문제다. 그런 돈의 이미지가 배우로서 온전히 서 있던 박신양에게 드리워지게 됐다는 것.

 

이런 일련의 흐름을 통해 볼 때 박신양의 <배우학교>라는 예능 프로그램 선택은 꽤 괜찮은 행보라고 보인다. 다른 예능도 아니고 연기로 소재로 하는 예능이 아닌가. 게다가 박신양이 제작발표회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분석해보면 그는 결코 이 프로그램을 예능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연기에 대한 진심을 담아서 이 프로그램을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학교>는 그런 점에서 박신양의 연기에 대한 진정성을 드러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 출연하는 이른바 발연기제자들의 진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여기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발연기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 정도로 드러내놓겠다는 건 진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의 다른 말이 아닐 것이다.

 

과연 <배우학교>는 박신양과 그 제자들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담당 PD인 백승룡 PD는 이 프로그램이 예능인지 드라마인지 다큐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바로 그 헷갈리는 지점에 그 진정성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배우학교>도 또 박신양도.

<오마비> 신민아, 살찌우자 비로소 보이는 연기

 

최근 여성연기자들은 예쁨을 감추려 안간힘이다? KBS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살을 주체할 수 없는 뚱뚱이로 분장했다. 대학시절에는 남자들을 줄줄 달고 다니는 말 그대로 비너스였지만 역변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랑사또전>의 아랑이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구미호 역할을 하며 미모를 뽐낼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연기가 이 뚱뚱이 분장을 하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최근 종영했던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은 물론 <킬미 힐미><비밀> 같은 작품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그저 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 그녀 역시 <그녀는 예뻤다>에서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에 폭탄머리를 하고 나왔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녀의 연기는 더 돋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여성 연기자들에게 미모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속박될 수 있는 족쇄가 된다. 특히 출중한 외모를 가진 여성 연기자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주목받지만 대신 연기를 해도 그 연기가 미모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그 미모가 그 연기자의 이미지로 굳어져버려 새로운 연기를 할 때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는 괜찮을 수 있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 미모의 여성 연기자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굳어진 이미지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연기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외모를 가려버리는 캐릭터들은 이들 여성 연기자들에게 매력적인 기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때 이런 장치로 가장 많이 쓰인 건 남장여자였다. <커피프린스1호점>의 윤은혜는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대중들의 새로운 주목을 받았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은 늘 따라붙던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깨버릴 수 있었다. 또 이렇게 이미지를 깨는 데 유용한 역할이 바로 악역이다. 수애는 <야왕>의 주다해 같은 악역을 통해 자신의 고고한 이미지를 깨려 노력한 연기자다.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녀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캐릭터를 얻은 셈이다. 뚱뚱이 강주은이라는 캐릭터는 보기 불편할 정도로 뚱뚱한 몸과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갖고 있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일단 강주은이라는 뚱뚱이 캐릭터가 가진 씩씩하고 밝으며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그녀가 어서 살을 빼고 제 모습의 비너스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이건 놀라운 변화다. 대체로 신민아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시청자들은 흔히 그 외모를 오히려 불편해한다. 왜냐하면 마치 그 외모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마이 비너스>는 정반대다. 그 외모를 뚱뚱이 캐릭터로 가리고 연기를 먼저 보여주고 나니 오히려 본래 신민아가 갖고 있던 그 외모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

 

여러모로 <오 마이 비너스>는 극중 캐릭터인 강주은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신세 마일리지라는 표현처럼, 신민아에게 신세 마일리지를 갖게 하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뚱뚱한 얼굴에서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참 많은 걸 표현해내는 신민아를 보게 되다니. 연기자로서 < 오 마이 비너스>는 신민아에게 어떤 분수령이 될 만한 작품이다.



동성애 편견 깨준 대중문화 콘텐츠의 힘

 

5월은 결혼의 달인가. 백지영과 정석원, 한혜진과 기성용, 장윤정과 도경완, 그리고 서태지와 이은성의 깜짝 결혼 소식이 발표된 데 이어, 눈에 띄는 것은 그 대열에 김조광수와 동성연인인 김승환과의 결혼발표 기자 회견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식 보도 사진 속에서 당당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두드림(사진출처:KBS)

동성애자들이 공식석상에서 결혼발표를 하고 입맞춤을 하는 사진 한 장의 의미는 크다. 1996년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본격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을 본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들의 사랑을 서로 주먹을 입에 대고 입을 맞추는 장면으로 대신했다. 영화 속에서마저도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려 했던 것. 하지만 이번 김조광수의 결혼발표는 이제 영화도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동성애자의 애정표현이 그만큼 당당해졌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몇몇 용기 있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가져온 변화가 크지만, 동성애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시각에 일조한 것으로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는 <크라잉 게임>이나 <해피투게더>,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해외영화를 통해서나 겨우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로드무비>나 <후회하지 않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같은 우리네 동성애 영화들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야 한정된 공간에서 보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치지만, TV 드라마가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게 된 것은 이제 이러한 달라진 시각이 일상화 단계로 넘어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커피프린스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같은 이른바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는 큰 화제가 되면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일조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였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실로 파격적인 시도라고 여겨진다. 동성애를 직접 다루면서 그것을 가족드라마의 틀로 엮었다. 즉 동성애자인 아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처럼 보였다. 드라마가 가족애를 통해 동성애자를 받아들였듯이, 사회는 인간애를 통해 그들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달라진 시선이 이제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가장 확연히 보여주는 건 예능 프로그램 속에 자연스럽게 유머의 한 부분으로 자리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홍석천은 이른바 게이조크로 불리는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를 끄집어낸 인물이다. <라디오스타>에 나와 거침없이 김국진의 얼굴을 쓰다듬고 동성애를 유머 코드로 올려놓는 홍석천은 그런 점에서 대중과 성소수자 사이에 훨씬 편안한 가교역할을 해주었다.

 

<라디오스타>에 나온 2PM의 준호가 한 프로그램에서 홍석천에게 돌발 볼 뽀뽀를 당했다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준호로 하여금 원빈과 이병헌을 세워두고 이상형 월드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홍석천의 선구적인 게이조크 덕분이라는 얘기다. 게이조크는 아직 예능에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지만, 웃음을 코드로 한다는 점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는 힘을 발휘한다. <SNL 코리아>의 신동엽이나 김민교가 하는 게이 코드의 콩트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편견은 여전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응원의 목소리도 많다. 무엇보다 다른 성적 취향을 이해해주자는 시각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동성애에 완강히 반대하던 기독교측에서도 이제는 논쟁이 되는 양상이다.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식인데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냐는 것. 이러한 변화는 동성애의 편견을 자연스럽게 깨준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성이란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지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성애 콘텐츠, 어떻게 봐야할까

1996년도에 제작된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에서는 서로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주먹을 입에 대고 입을 맞추는 장면을 대신 묘사한다. 아마도 직접적인 표현, 즉 남자들이 진짜 딥키스를 하는 장면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영화적으로 연출하기가 힘들어서 그런 식으로 대신 표현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당시 대중들에게는 그 직설적인 장면연출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성애 코드도 아닌 동성애 자체의 문제를 포착한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이처럼 표현 수위에 있어서는 여전히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2008년 개봉된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보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 속에서 동성애자로 출연하는 민선우(김재욱)는 자신의 사랑에 당당하다. 물론 성적인 묘사는 그다지 노골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동성애자로서의 선우에게 그다지 특별한 시선을 던지지 않는 영화의 태도에 있다. 이 영화는 마치 "넌 여자를 좋아해? 난 남자를 좋아해! 그게 어때서?"하고 말하는 듯이, 동성애적 상황 자체를 일상적인 공기처럼 다뤄버린다.

사실 영화 속으로는 이미 이러한 동성애가 꽤 빈번히 다뤄졌었다. 동성애는 '로드무비'나 '후회하지 않아'같은 우리네 작품들이 있기 전부터, 해외에서 들어온 영화들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소재가 되었다. '크라잉 게임'이나 '해피투게더'같은 작품들을 비롯해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우리네 문화 전반에서 특히 영화가 동성애를 더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은 이러한 해외의 작품들을 통해 영화 속에 상대적으로 어떤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의 특성상,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구획되는 점이 좀 더 과감한 성적 표현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TV는 이제 공공연히 동성애라는 단어를 드러내고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나 '바람의 화원'같은 작품들이 동성애 콘텐츠가 아니라 동성애 코드 콘텐츠를 선보였다면 그 연장선 위에 '개인의 취향' 같은 작품이 있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자리에 '인생은 아름다워'가 있다. 그만큼 동성애에 관대해졌다는 이야기일까.

동성애 콘텐츠와 동성애 코드 콘텐츠?
간단한 구분이지만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그리고 '개인의 취향'은 동성애 콘텐츠가 아닌 동성애 코드 콘텐츠이다. 이 드라마들에는 동성애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남장여자들이 등장하거나, 동성애자로 오인 받는 남자가 등장해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뿐이다. 이 드라마들을 보는 시청자들은 그가 사실은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드라마가 가져온 것은 동성애 코드이지 동성애 자체가 아니다.

'개인의 취향'에서 동성애자로 오인 받는 전진호(이민호)는 오히려 그 설정이 판타지로 작용한다. 그와 동거하게 된 박개인(손예진)은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스스럼이 없고 오히려 남녀관계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까지 한다. 남자를 성적인 구분 없이 친구로 둘 수 있다는 것은 이 여성이 동성애자를 어떤 판타지로까지 여기게 되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서는 물론 동성애 코드지만 과거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에서 간접적으로 다뤄지던 동성애자들이 겪는 아픔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대중들이 갖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심적인 허용수준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성애 코드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때론 재미있는 설정(질척한 성적 관계를 벗어난 남자친구가 주는 판타지, 그것도 이민호 같은 남자라면!)으로 오히려 즐기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후회하지 않아' 같은 작품에 관객이 들지 않는 것은 우리네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수현 작가의 새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동성애는 실로 파격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진짜 동성애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그것도 가족드라마의 틀 안에서.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를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한다. 태섭(송창의)은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하는 유채영(유민)에게 어렵게 커밍아웃을 하고, 유채영은 그 상황을 힘겹게 받아들이면서 "미안하다"는 태섭에게 "그것이 네 잘못은 아니잖아"하고 말한다.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유채영과 그런 그녀를 두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눈물을 쏟아내는 태섭은 이들이 남녀 관계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것은 김수현 작가가 바라보는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다. 수많은 사랑이 있고, 그것을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다를 뿐, 틀린 사랑은 아니라는 것. 그것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공감까지 일으키고 있는 걸 보면 지금 확실히 우리가 바라보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걸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동성애 소재의 콘텐츠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그것이 점점 직접적으로 소수의 성을 다룬다고 해서 우리네 성 의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커밍아웃을 한 후 오히려 삶이 더 어려워진 동성애자들의 사례들은 이제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문화 속에서 동성애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는 있지만 성 소수자로서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왜 이렇게 동성애 콘텐츠들이 많아질까
그렇다면 여전히 편견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동성애가 대중문화 속에서 공기처럼 퍼져나가고 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이성애, 즉 이성 간에 벌어지는 멜로가 어느덧 식상한 어떤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식이 깔려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삼각 사각의 멜로나 신파조의 설정들은 이런 인식의 밑바탕을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한편 영화로서는 늘 연말이 되면 쏟아져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 역할을 했을 터이다.

남녀가 등장하면 으레 생겨나는 이러한 멜로적 상황이 대중들에게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하자 영상 콘텐츠들은 오히려 동성을 그 자리에 대치시켜 멜로가 아닌 인간애를 다루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동성애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본래는 남녀 주인공을 세우려했다가 결국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세운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준익 감독은 이미 전작 '왕의 남자'에서도 두 남자의 동성애를 끌어들여 예술혼과 인간애로 콘텐츠가 가진 주제를 확장시킨 전례가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이란 영화가 단지 성 소수자들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어떤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동성애가 가진 인간애로의 확장 가능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는 두 번째 이유는 남녀로 구분되던 성별구분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사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속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명확히 나눠져 있었다. 그것은 육체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농경사회에서의 성별 역할의 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육체적인 노동력이 아닌 정신적인 노동력을 사용하는 정보사회에서는 남녀의 역할구분이 사라진다. 오히려 여성들의 노동력이 섬세한 정보사회의 업무에 더 적합해진다.

남녀 구분은 이제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으로 바뀌게 된다. 남자라도 여성성이 많은 사람이 있고, 여자라도 남성성이 많은 사람이 지금 시대에 남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동성애는 바로 이 시선 속에 자연스러움을 얻게 된다. 남성이지만 강한 여성성이 실제 생물학적 성까지도 변모시킨 존재로서 동성애자는 외계인이 아닌 우리들 중 한 사람으로 자리 매김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실제 사회의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남성성과 여성성의 시각으로 보면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프린스들이나, '개인의 취향'의 전진호 같은 캐릭터가 사실은 여성성을 더 많이 가진 남성들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문화 콘텐츠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여성성이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신모계사회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창조적인 생각과 감성적인 접근, 그리고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여성성은 사회를 바꾸는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 바로 이 키워드를 어쩌면 가장 잘 보여주는 것들이 동성애 콘텐츠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적 구분은 가장 모호해지고 대신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이 더 명징해진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동성애 콘텐츠에 깔린 성 상품화의 확장이다. 사실 동성애라 얘기한다면 여성과 여성의 동성애는 우리네 문화 콘텐츠 속에서 늘 등장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왜 그 콘텐츠들은 동성애 콘텐츠라고 구획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 여성과 여성의 동성애는 남성적인 시선을 위한 성 상품화로 나왔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가 동성애가 자주 등장한다고 얘기할 때 그것은 남성과 남성 간의 동성애를 의미한다.

이렇게 남성들 간의 동성애가 이제 눈에 띄게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화구매자들로서의 여성이라는 존재의 위상이 그만큼 커진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등장하는 남성들이 모두 꽃미남들인 점은 과거 여성들의 성 상품화가 이제는 남성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동성애 콘텐츠, 중성적 사회로 가는 지표
확실히 우리의 문화는 이제 동성애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과감해졌다. 소재로서 아무 거리낌없이 활용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고, 어떤 것은 의도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는 경향까지 생겼다. '미인도' 같은 영화는 동성애 코드를 자극적으로 활용하여 성 상품을 극대화시킨 경우다. 이 영화는 신윤복이 남장여자였다는 설정 자체도 파격적이지만, 그 남장여자의 신윤복(김민선)이 남성의 옷을 벗어버리고 김홍도(김영호)와 과감한 섹스를 하고, 한편으로는 여성들끼리의 성적인 장면을 동시에 연출하는 그 지점이 더 파격적이다. 이 영화에서 남장여자, 즉 동성애 코드는 오로지 이 에로틱한 성적 상상을 위해서만 활용된다.

하지만 같은 신윤복을 다루었지만 전혀 다른 결을 갖고 있는 '바람의 화원'을 보면, 이 동성애 코드가 한 예술가의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상징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윤복은 남성을 강요하는 조선이라는 사회 속에서 어쩌면 여성성을 무기로 한 평생을 싸우다 간 화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가진 남장여자의 활용은 어쩌면 가장 적절했다 판단되는 것이다. '바람의 화원'이 보여주는 상황은 저 '미인도'처럼 직접적인 표현은 등장하지 않지만, 오히려 더 동성애에 대한 접근을 해주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미의식(여성성)을 추구하는 자와 그를 억압하는 사회가 대립하는 상황 자체가 소수자와 다수자 사이의 대립상황을 에둘러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재를 다룬 전혀 다른 결과물의 두 작품은 동성애에 대한 우리네 성 의식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하나는 여전히 하나의 볼거리이자 성 상품으로 세워지는 동성애다. 여성을 좀 더 자극적으로 벗겨내기 위해 남성의 옷을 입혀놓는 것이나, 꽃미남들이 나와 서로의 아름다운 몸을 만지고 보여주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다른 하나는 점점 중성화되어가고 있는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로서의 동성애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겉으로 드러난 성별보다는 그 내면 속에 담겨진 남성성과 여성성을 주목하면서 그 미묘한 감정선들을 잡아낸다.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들보다는 어딘지 여성적인 섬세함을 가진 남성들이 점점 대중문화 속에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중성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사회의 징후들이다. 그 속에서 동성애는 그 단적인 지표가 된다.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고 있는 동성애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사회가 가진 성 의식은, 이 두 가지 방향 즉 성 상품화와 중성적 사회로의 지향 사이에 놓여진 긴장관계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성 상품화가 남녀의 성별의식을 기본 전제로 만들어진다면 중성적 사회로의 지향은 이 성별의식을 무너뜨린다. 아직까지 눈에 띄는 변화가 확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후자쪽으로 점점 무게중심이 이동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신데렐라 언니' 문근영 어디까지 변신할까

신데렐라 집에 들어간 신데렐라 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근영이 연기하는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을 가족으로 살갑게 대하려는 새 가족들을 계속해서 밀쳐내는 중이다. 끝없이 재잘거리며 언니를 따르는 동생 효선(서우)에게 "너 원래 그렇게 말이 많니?" 하며 금을 긋고, 키다리 아저씨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기훈(천정명)에게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하고 쏘아댄다. 기훈의 말처럼 웃을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하필이면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는 아이. 그만큼 은조는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지독히도 배신을 당해왔다. 그러니 아예 행복의 접근을 막는 중이다.

이런 신데렐라 언니 옆에서 자신이 문자를 보내면 절대로 씹히지 않을 거라는 행복에 대한 신념을 가진 신데렐라 효선의 늘 방글방글 웃는 얼굴은 오히려 그녀에겐 상처가 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호의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데렐라 언니 은조에게 차분히 다가와 "나도 너 같았다"며 "너 같았는데 여기서 지내다가 나 같아졌다"고 말하는 기훈은 어쩌면 또 빼앗길 지도 모르는 이 행복을 조금은 믿고 싶게 만드는 인물일 것이다.

이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의 은조는 전혀 악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불행한 상황 속에 던져진 은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효선의 행동이 악역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이 드라마가 뒤집어놓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늘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는 은조가 측은해지고, 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재잘대는 효선이 오히려 미워지는 이 캐릭터 설정. 그리고 그 상반된 캐릭터의 축성을 통해 만들어낸 악역의 역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따라서 악역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이해가 되고 오히려 그 악역의 상황에 몰입되게 만드는 은조를 연기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에서 이것은 한 차원 더 나아가 '악역이 아닌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 문근영은 이를 위해 몇 가지 얼굴표정에 말투를 이어 붙였다. 절대로 웃지 않는 얼굴, 말하거나 들을 때면 약간 삐뚤어진 반항적인 입 매무새, 불만이 가득하지만 왠지 허무한 눈, 마치 가리려는 듯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반쯤 가려진 눈, 무심한 듯 하지만 사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을 반쯤 빼고 있는 자세로 틀어진 몸... 한 마디로 말하면 상처받은 짐승의 몸짓에 "아니요" 혹은 "싫어요"를 반복하는 대사를 연결시켰다.

쓸쓸하지만 때론 독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 눈빛은 '선덕여왕'에서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을 닮았다. 그러고 보면 문근영의 연기자로서의 행보는 여러 모로 고현정의 그것을 닮은 구석이 있다. 청춘스타로서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고현정은 세월이 흐른 뒤, 복귀하면서 '여우야 뭐하니'로 털털한 노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했고, 몇몇 영화들('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을 통해 스타의 이미지를 털어버렸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미실은 그녀를 온전한 연기자로 세워주었다.

문근영은 '어린신부', '댄서의 순정'을 통해 국민여동생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후,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려 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바람의 화원'의 남장여자 신윤복 역을 통해 더 이상 국민여동생에만 머물지 않는 그녀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미실이 고현정에게 완전한 연기자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준 것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는 문근영에게 또 한 번 연기자로서의 그녀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줄까. 살짝 돌려 내리 깔아보는 문근영의 눈에서 고현정의 기운을 느끼는 것은 섣부른 생각일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쌍화점’까지 달라진 동성애 시선

SBS 2008 연기대상에 베스트커플 후보 부문에 ‘바람의 화원’에서 화제를 모았던 닷냥커플(문근영-문채원)이 후보에 올랐다. 당초에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단지 남녀 커플이 아니라는 이유로 후보에서 배제될 수는 없다는 네티즌 여론에 따라 그렇게 결정된 것. 어쩌면 이것은 그저 이벤트적인 후보 선정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여러 대중문화 속에 자리하는 동성애에 대한 달라진 시선을 생각하면 꼭 단순한 이벤트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실제로 ‘바람의 화원’의 러브라인에서 닷냥커플은 사제커플(박신양-문근영)보다 오히려 사랑을 받았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멜로가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면, 정향과 신윤복의 멜로는 그 자체로 절절한 감정이 묻어났다. 정향이 가야금을 뜯고 신윤복이 그 정향을 화폭 속에 담는 장면은 남녀 간의 그 어떤 멜로 연출보다 더 뛰어나게 감정을 표현해냈다. 즉 닷냥커플은 그저 여여커플이라는 겉으로의 시각 그 이상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작년 동성애 코드를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화제를 모았던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가장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대사는 아마도 한결(공유)이 결국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은찬(윤은혜)에게 “갈 때까지 가보자”라고 한 말일 것이다. 이 대사는 남녀의 성을 넘어서 사랑의 감정 그 자체에 손을 들어주는 것. “네가 남자라도 사랑한다”는 절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반드시 동성애를 지지하는 시청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성 구분이라는 장벽을 넘어서는 이러한 코드들은 적어도 대중문화에서는 이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개봉했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는 이러한 동성애의 시선이 거의 일상적인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천재 파티셰인 선우(김재욱)는 동성애자로서 가게 사장인 진혁(주지훈)을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해 왔던 인물. 물론 진혁은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그들의 대화는 마치 동성애를 하나의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과거 무겁기만 했던 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변화이다.

앞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쌍화점’은 동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사랑과 질투의 대서사시다. 왕(주진모)의 총애를 받는 왕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지 못하고 자라나지만, 동성애자로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왕을 대신해 왕후(송지효)와 합궁을 하게된다. 그 때부터 홍림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그제야 알게되고 왕후와 사랑에 빠져들고 점점 질투의 화신이 되어가는 왕은 상황을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전제가 성적 구분 자체를 넘어서는 미묘한 지점에 서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역시 중요해지는 건 성별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다.

이제 적어도 대중문화 속의 멜로 구도에서 성별 구분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남녀 간의 멜로가 자진 상투적인 식상함을 벗어나 어떤 신선한 구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만큼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남녀의 역할구분은 이제 이 사회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은 물론 동성애 자체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녀구분에 대한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지금은 닷냥커플도 베스트 커플로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시대다.

퓨전사극, 팩션... 상상력이 역사를 앞지르다

사극은 이제 역사책을 들춰보기보다는 역사의 빈 자리를 찾아다닐 지도 모르겠다. 2008년도에도 여전히 퓨전사극의 바람은 거셌다. 상반기를 주도한 ‘이산’과 ‘왕과 나’는 기존 왕 중심의 사극에서 ‘나’ 중심의 사극으로 위치이동을 실험했다. ‘이산’은 정조를 다루되, 왕으로서의 정조가 아닌 이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정조를 다루었고 ‘왕과 나’는 왕 중심이 아닌 김처선이라는 내시의 눈을 빌어 역사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시점의 위치이동은 대중들의 달라진 역사에 대한 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왕조중심의 역사만이 정사로서 인정받는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진 탓이다. 확실히 달라진 점은 과거라면 사극의 역사왜곡이라는 논란이 불거져 나왔을 상황이지만, 올 들어 이 같은 논란은 상당히 잦아들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극이 이제는 역사와 동격의 의미에서 점점 벗어나 하나의 드라마로서 굳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면에서 ‘쾌도 홍길동’과 ‘일지매’는 아예 소재 자체를 허구에서 끌어들여 무거운 역사의 갑옷을 진즉에 벗어 던지고 상상력을 향해 달려갔다. 무희들이 테크노를 추며, 상투 대신 장발을 멋지게 늘어뜨리고 선글라스를 낀 주인공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쾌도 홍길동’은 젊은 시청층을 사극 속으로 끌어들였다.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표현주의적인 연출을 보여주면서 ‘쾌도 홍길동’은 사극 역시 모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편 ‘일지매’는 서양류의 영웅담을 우리 식으로 해석한 사극이다. 자신만의 아지트를 갖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탐관오리들의 창고를 털어 배고픈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은 가히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떠올리게 했다. 촛불시위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을 통해 사극 속에서 현 시대의 담론까지 담아내는 모습은, 이제 사극이 어떤 옛 이야기를 넘어서 지금 트렌드에 어디까지 근접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반기에 들어 화제를 일으킨 ‘바람의 화원’은 점점 새로운 영역으로 넓혀져 가는 사극소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고미술을 소재로 하면서도 팩션만이 갖는 추리적인 기법을 활용해 예술적인 성취는 물론이고, 재미까지 끌어낸 ‘바람의 화원’은 올 사극 중 가장 실험적이면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신윤복 신드롬까지 일으키며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남장여자로 표현된 신윤복에 대한 학계의 반발도 거셌던 작품이다.

안타까운 건, 주말 사극 불패 신화를 이어갔던 KBS 대하사극의 고전이다. ‘대왕 세종’은 여타의 사극들과는 다르게 본격 정치사극을 표방하고 나왔지만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스펙타클한 장면들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눈에는 이 작품이 갖는 심리 게임적인 요소들이 어렵게 다가갔을 수가 있다. 게다가 방영 중간에 시청시간대와 채널을 옮기는 바람에 시청률은 더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작품성으로만 본다면 역시 KBS 대하사극다운 진지한 면모를 보여준 작품이라 하겠다.

또한 ‘바람의 나라’는 그 스케일에 비해 화제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김진 원작의 ‘바람의 나라’는 사실 고구려 사극의 원조격. 하지만 이미 여러 번 반복된 고구려 사극들로 인해 이 사극은 안타깝게도 뒤늦은 사극의 트렌드로 치부되고 있다. 아직은 그 향방을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쨌든 ‘바람의 나라’가 말해주는 것은 이제 사극도 어떤 트렌드를 타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올 한 해의 사극들을 통틀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정통사극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퓨전사극의 등장으로 역사보다는 상상력에 더 기대는 사극들이 나온 지는 꽤 되었지만 올해처럼 다양한 소재로 실험적인 시도가 이루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이제 사극의 흐름이 온전히 역사와 결별해 어떤 그 시대의 트렌드와 조우하는 상상력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예감케 하는 사건이다. 사극, 이제 더 이상 정통은 없다.

2008년도 드라마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용두사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시청률에서 성공하면 완성도에서 떨어졌고, 완성도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면 시청률이 난항을 겪었다. 또 시청률도 괜찮고 완성도도 괜찮다 싶은 드라마는 초반의 모양새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중반 이후부터 어그러지기 일쑤였다. 물론 최근 들어 시청률과 완성도가 반비례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이처럼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은 올해 드라마들의 한 특징이 될 것이다.

먼저 완성도에서 성공적이었지만 시청률이 그만큼 따라주지 못한 드라마로 최근 종영한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을 들 수 있다. 그나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김명민 파워를 통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거두었지만 ‘바람의 화원’은 그 훌륭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시청률을 얻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이 두 드라마는 애초부터 마니아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클래식이나 고미술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 비대중적인 소재를 대중적인 틀 안으로 끌어온 그 시도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재에 있어서 대중적일 것이라 생각되었던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이 범주를 향해 가고 있다. 방송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완성도를 높였지만 그만큼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들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것은 역시 드라마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것이 관건이 된다는 점이다.

다음은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시청률은 높았던 드라마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조강지처클럽’이나 현재 방영중인 ‘에덴의 동쪽’을 들 수 있다. 완성도로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설정에 과장된 캐릭터들, 흐름의 비일관성, 앙상한 주제 등등, ‘조강지처클럽’은 전형적인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계보를 이으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에덴의 동쪽’은 상대적으로 세련된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강지처클럽’의 다른 줄기라고 보여진다. 역시 과장된 캐릭터들과 인물설정 등이 시대극을 표방하면서(전혀 그러나 시대극은 아니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들의 특징은 주로 과거 드라마들이 했던 문법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신파를 그 바닥에 깔고 간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 어려운 현실과 맞아떨어지면서 향수마케팅과 함께 TV의 실 시청자로 자리하고 있는 비교적 나이든 시청층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점이다. 이들 드라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드라마의시청률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감지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드라마 시청률은 단지 상업적인 의미로서 존재하며, 따라서 업계가 불황이 되면 될수록 완성도로의 접근은 더 요원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드라마들이다. ‘스포트라이트’, ‘이산’, ‘왕과 나’, ‘타짜’같은 드라마들을 비롯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종합병원2’나 ‘바람의 나라’같은 드라마들도 이 경향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방영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다가 방영과 함께 고꾸라진 경우도 있고, 또 방영 초기에는 화제를 일으켰지만 차츰 그 불씨가 가라앉은 경우도 있다. 올해 특히 이런 드라마들이 많이 양산된 것은 드라마가 거꾸로 마케팅이나 기획쪽에 더 많이 힘이 실렸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소재로 치면 누가 봐도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끄집어오고, 또 출연진들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타들을 배치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요소들을 작품으로 끌어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포장은 요란했지만 그 내용물은 볼품이 없었다는 말이다. 올해 유난히 이런 작품들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우리네 드라마 제작에 거품의 요소들이 실체로 드러났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 박신양 사건을 계기로 드라마 제작에 대한 거품을 걷어내자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완성도는 높지만 시청률이 떨어지는 마니아 드라마 경향과, 시청률은 높지만 완성도는 떨어지는 퇴행적인 드라마 경향, 그리고 초기에는 창대했지만 결과물은 앙상해지는 용두사미 드라마 경향. 이것은 올해 우리네 드라마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자, 내년 드라마들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 원고는 스포츠칸에 게재되었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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