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 제작의 시대, 좋은 인력들이 참여를 원해야

 

MBC드라마가 위기라는 건 여러 지표들이 이미 예견한 바 있다. 작년 <MBC 연기대상>을 통해서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처럼 <W> 한 편을 빼놓고 나면 MBC드라마에서 이렇다 할 큰 성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쇼핑왕 루이><역도요정 김복주> 같은 작은 성취들이 있었지만 이 역시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라 말하긴 어렵다.

 

'불야성(사진출처:MBC)'

이런 흐름은 올해도 여전하다. 최근 월화에 방영되고 있는 <불야성>은 심지어 시청률이 3%대까지도 떨어졌고 화제성도 그다지 없다. 최근 종영한 <역도요정 김복주>는 작품은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5%대를 전전했다. 그나마 MBC가 성과라고 내세우는 건 주말드라마다. <불어라 미풍아><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는 각각 19%, 14%대의 최고 시청률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주말드라마가 작품성보다는 관성적인 고정 시청층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주중드라마의 부진은 MBC드라마가 왜 위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를 말해준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MBC드라마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월화에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오는 30일 새롭게 포진되고, 이번 주부터는 수목에 <미씽나인>이 편성되었다. <역적>MBC가 그래도 월화 시간대에 힘을 발휘해왔던 사극이라는 점에서, 또 홍길동의 생애를 담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만들고 있다. 또한 <미씽나인> 역시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서바이벌류의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이 그만한 결과로 돌아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무래도 드라마에 초반 힘을 실어주는 건 작가다. 이른바 스타 작가가 쓴 작품은 첫 회부터 압도적인 관심과 시청률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MBC드라마에서 스타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 특이할만한 사항이다. 작년 <W>가 그나마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건 다름 아닌 송재정이라는 스타 작가가 작업을 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송재정 작가를 빼놓고 보면 최근 MBC드라마들은 이렇다 할 스타 작가의 작품을 편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tvN이나 SBS가 드라마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하게 된 건 사실상 스타 작가의 파워가 이들 방송사쪽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최근 tvN이 했던 작품들을 보면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는 물론이고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 김지우 작가의 <기억> 등등 스타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SBS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강은경 작가의 <낭만닥터 김사부>와 박지은 작가의 <푸른바다의 전설>이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MBC드라마들이 승승장구 했던 건 그만큼 좋은 작가들이 많이 MBC와 작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MBC와 작업했던 좋은 작가들은 타 방송사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MBC에서 사극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꽤 오래도록 SBS<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의 작품을 해왔고, <해를 품은 달><킬미 힐미>로 확고한 팬덤을 가진 진수완 작가는 올해 tvN<시카고 타자기>로 컴백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난 것들만 두고 볼 때 MBC드라마에는 이른바 스타작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눈에 띄는 점들이다. 드라마 외주제작의 시대에 사실상 스타작가들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느냐는 그 방송사의 드라마 위상을 말해주는 단적인 지표가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MBC드라마의 최근 몇 년 간의 위기는 바로 이 점 스타작가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건 과연 우연의 일일까. 많은 작가들이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아도 최근 MBC드라마국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건 이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새로운 실험을 과감하게 시도하던 MBC드라마의 과거 전통이 어느 순간 수익률만을 바라보는 장편드라마 편성으로 바뀌게 된 점이나, 최근 논란이 됐던 정윤회씨 아들 정우식씨의 특혜 의혹 같은 불편한 지점들, 무엇보다 기자들이 토로하듯 최근 몇 년간 MBC드라마국이 거의 언론과 불통의 관계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들은 왜 작가들이 발길을 돌렸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MBC드라마는 9부작 드라마인 <세가지색 판타지> 같은 세 명의 젊은 연출자들의 실험을 담은 작품을 오는 26일 밤 11시부터 편성해 방영한다고 한다. 이런 흐름이 MBC드라마가 어떤 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기를 바라게 되는 대목이다. 결국 좋은 드라마는 좋은 제작인력들이 모여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력에 대한 투자(여기에는 다양한 작품에 대한 실험을 허용하는 방송사의 분위기까지 포함된다)만이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세종부터 윤동주까지, <무도> 역사로 현재를 경고하다

 

세종대왕, 위안부, 성웅 이순신, 유관순 열사, 윤동주 시인... <무한도전>이 힙합과의 콜라보를 위해 꺼내든 역사는 그 하나하나가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실들이었다. 그것은 굳이 현재의 시국 상황을 꺼내놓고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단지 그 역사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비판보다 준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의 평가가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에 내리는 철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가기 전 출연자들이 모여 들은 설민석 강사의 강의는 그 메시지가 명확했다. 설민석 스스로 말했듯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킨 건 백성이라는 게 이 강의의 중심주제였다. 본래 역사란 현재에서 선택되는 순간 그 자체로 현재적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설민석이 중심 주제를 그렇게 잡은 것도, 또 그래서 현재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과 임진왜란에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이순신 장군, 독도가 우리 땅임을 천명하기 위해 천민이지만 홀로 나섰던 안용복 선생님, 일제강점기에 기꺼이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린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나라 잃고 이름마저 잃은 세상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 그리고 꽃다운 나이에 이역 땅까지 끌려가 지옥 같은 나날을 살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소녀들까지 모두가 그저 과거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 울림을 주는 것들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농사직설 같은 책을 편찬하기 위해 똥지게를 지고 직접 농사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를 지금의 대중들은 어떻게 들을까. 이를 주제로 노래를 만들기 위해 정준하와 지코가 찾은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해주는 세종대왕의 이야기에 지금의 대중들은 어떤 걸 떠올렸을까. 박상연 작가가 지도자들 입장에선 백성이란 존재가 적당히 무식하고 정치에 무관심해야 통제하기가 쉽다.”고 말한 대목에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를 비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을 양세형과 비와이가 만나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초를 듣는 그 대목에서 지난해 1228일 한일외교정상회담에서 나온 위안부 합의의 굴욕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에 할머니들 역시 거리로 나와 현 국정농단을 규탄하면서 위안부 합의 역시 역사 농단의 하나임을 외치지 않았던가.

 

왕이 도망칠 때 홀로 왜적과 맞서 싸운 성웅 이순신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순신 장군을 노래로 만들기 위해 하하와 송민호가 <명량>의 전철홍 작가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들은 저 광화문 광장에서 지금도 우뚝 서서 백성들과 함께 할 그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박명수와 딘딘이 설민석 강사의 강의에 감명 받아 노래로 만들려 하는 독도이야기에서 나라의 관리들이 하지 못한 일을 천민 출신의 안용복 선생이 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또 황광희와 개코가 주제로 잡은 윤동주 시인이 시로써 써나간 당대의 부끄러움이 현재의 부끄러움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없었다. 오직 역사적 사실들을 가져와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은 그 어떤 준엄한 비판보다 크게 다가왔다. 거기에는 결국 역사가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후대에 평가되어 대대로 이어질 역사가 있다는 것. 그걸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은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날렸다.

사극의 또 다른 진화 보여준 <육룡>의 서사

 

SBS 월화 사극 <육룡이 나르샤>는 이제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사극은 여러모로 놀랍다. 무려 50부에 해당하는 대작이지만 한 회 한 회 느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렇고, 여말선초라는 이미 닳고 닳은 사극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그렇다. 물론 이 많은 영웅들(제목부터가 육룡이다!)이 누구하나 묻히는 이 없이 저마다 선명하게 자신들만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놀라움이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하지만 무엇보다 더 이 작품이 대단하고 여겨지는 건 이건 그저 사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극이라 부르지만 기성의 사극에서 다뤄지던 내용을 완전히 뒤집거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가상의 설정들이 눈에 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역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무명이라는 조직이 그렇고, 왕의 독주를 막기 위한 장치로서 정도전(김명민)이 만들어낸 가상의 사대부 조직 밀본이 그렇다.

 

무명밀본<육룡이 나르샤>를 독특하게 만들어내는 이 작품만의 새로운 설정이다. 말미에 들어서 이방원(유아인)과 정도전(김명민)의 대결은 사실상 무명밀본의 대결양상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그 안에 인물들에 의해 그 조직의 성격이 변질될 수도 있다. 그래서 흥미롭다. 이 이야기의 변수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역사라는 스포일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다.

 

또한 <육룡이 나르샤>가 기존 사극과 다른 지점은 사극의 역사적 이야기와 동시에 무협에서나 등장할 법한 무술의 세계가 엮어져 있다는 것이다. 무휼(윤균상)이나 이방지(변요한)는 물론이고 길태미(박혁권)와 길선미 나아가 홍대홍(이준혁)이나 척사광(한예리) 같은 인물군들은 무협의 세계에 나올 법한 인물들로 <육룡이 나르샤>의 또 다른 재미요소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서로 대결하고 무술을 배우는 그 과정 또한 이 사극의 또 다른 축이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정보조직인 화사단과 비국사라는 집단도 흥미롭다. 이 두 조직은 이른바 지재(정보)를 사고파는 집단이다. 이 집단이 사극 속에 들어가게 된 건 여러 모로 <육룡이 나르샤>에서 벌어질 여러 사건과 대결구도들이 현재적인 뉘앙스를 갖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정보전의 시대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를 소재로 다루면서 정보를 사고파는 가상조직을 집어넣어줌으로써 현재적인 느낌을 주는 더 흥미진진한 대결이 가능해지는 것.

 

사극의 정해진 역사라는 소재가 있고, 그 역사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가상의 조직들이 있으며 또한 이들이 서로 대결하는 것이 그저 정치적인 대결이 아니라 무술의 대결로서 시각화하는 무협적인 가상인물들이 등장하며 또한 정보의 흐름을 장악한 자가 승리한다는 현대전의 양상을 담아내는 비밀정보조직까지 있으니 이건 우리가 봐왔던 사극에서는 한참 더 진화된 어떤 형태라고 해도 될 법 하다.

 

흥미로운 건 <육룡이 나르샤>가 이미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그 소재들을 상당부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비담 같은 인물이라고 칭하는 얘기를 통해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과거에 썼던 <선덕여왕>과의 연결고리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제 훗날 어떤 사극이 <육룡이 나르샤>가 그려냈던 이런 조직들과 설정들(이를 테면 무명이나 밀본 혹은 화사단이나 비국사 같은)을 활용해도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장치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장르라는 것은 이처럼 매력적인 하나의 작품을 통해 구조화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판타지 장르가 톨킨이 그려낸 반지의 제왕호빗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잘된 작품은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육룡이 나르샤>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그 세계가 지금껏 사극들이 다뤄온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화를 거듭한 끝에 생겨난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육룡>의 무명, <뿌리>의 밀본에서 보이는 작가의 야심

 

SBS 월화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드디어 밀본(숨은 뿌리)’이 등장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와 유포를 막는 세력으로 등장했던 비밀조직이 밀본이다. 밀본이란 조직은 꽃은 꽃일 뿐 뿌리가 될 수 없다라는 말로 그 조직의 성격을 설명한다. 정도전(김명민)1대 본원인 밀본은 그가 주장한 대로 왕의 나라가 아닌 사대부의 나라를 꿈꾸는 조직. 왕은 상징성을 드러내는 꽃일 뿐, 실질적으로 나라가 움직이는 건 사대부들에 의한 관료 시스템이며, 그들의 근본적인 힘은 백성(민본)이라는 뿌리에서 나온다고 밀본은 주장한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1대 본원인 정도전은 사대부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밀본을 세우며 위민(爲民), 애민(愛民), 중민(重民), 안민(安民), 목민(牧民) 같은 강령을 외친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뿌리 깊은 나무>에 열광했던 시청자라면 그 장면이 익숙할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가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긴 채 밀본을 움직이던 정기준(윤제문)이 사대부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던 그 장면과 똑같기 때문이다.

 

물론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세운 밀본<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이 움직이는 밀본은 사뭇 성격이 다르다. 근본적으로 왕을 견제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그래도 정도전은 이성계(천호진)라는 왕을 견제하면서도 보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의 정기준은 다르다. 세종(한석규)이 왕이 되면서 오히려 왕은 애민을 실천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정기준과 밀본 세력은 그 왕이 하려는 일을 막는 비밀조직으로 전락한다.

 

이미 작가들이 밝힌대로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다. 그러니 밀본이라는 조직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육룡이 나르샤>의 이야기를 <뿌리 깊은 나무>와 연결시킨다. 무휼이나 이방지 같은 동일인물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살펴보는 재미가 <육룡이 나르샤>의 전편에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마무리가 되어가는 지점에 <뿌리 깊은 나무>와의 연결고리 또한 흥밋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육룡이 나르샤>에는 무명이라는 조직이 등장한다. 이 조직은 밀본과는 또 다른 조직이다. 밀본의 1대 본원인 정도전과 대립하는 조직이 무명이다. 그 무명은 여러모로 이방원(유아인)과 뜻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처음 정도전과 사제지간으로 있을 때는 이방원 역시 무명과 대립했지만, 이제 정도전과 한 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방원은 무명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한 배를 타게 되었다. 결국 <육룡이 나르샤>의 후반부는 역사가 이미 얘기하듯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결이 되겠지만, 그것은 또한 밀본과 무명이라는 두 비밀조직의 대결이 되기도 한다.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는 이토록 비밀조직들을 등장시킬까. 그것은 이제는 사극에서 너무 많이 다뤄져 역사적 사실이 뻔히 드러나 있는 소재들을 어떻게 하면 더 흥미진지하게 만들까를 고심한 데서 나온 결과다. 김영현 작가는 과거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종 대의 이야기를 고민하다가 이정명 작가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를 보고 그 해답을 찾았다고 말한 바 있다. 즉 너무나 뻔해 보이는 세종대의 역사적 사실을 이면에 있는 비밀 스런 이야기를 덧붙임으로 해서 새롭게 그려내는 방식이 그것이었다.

 

밀본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고, 무명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새로운 방식은 우리가 퓨전사극이라고 부르던 역사에 상상력을 덧대 만든 사극의 시도와는 사뭇 다르다. 퓨전사극은 역사적 사료가 거의 없는 인물을 그리거나, 있다고 해도 그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인물을 찾아 그려왔다. 하지만 이성계, 이방원, 이도 같은 역사적 사료가 풍부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것이 뻔하지 않고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붙일 수 있는 방법이 무명이고 밀본이 되었던 것이다.

 

이미 해외의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들이 성공적으로 그려냈던 것처럼 무명과 밀본 같은 비밀스런 조직의 등장은 뻔한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사실 그 이면에서 움직였던 비밀 조직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육룡이 나르샤>가 이미 성공적으로 그려진 마당에 이제 또 이 무명과 밀본 세력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가 사극으로 새롭게 탄생하길 기대하는 건 그래서다. 무명의 암호인 초무자 무진(初無者 無盡: 애초에 없는 자 영원히 있으리니라는 말은 그래서 또 다른 후속작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야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유아인의 무엇이 그의 해를 만들었을까

 

2013<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유아인이 이순 역할을 연기할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이 배우가 이토록 급성장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완득이><깡철이> 같은 영화을 통해 괜찮은 연기의 결을 가진 배우라는 건 충분히 증명되었다. 하지만 유아인은 어딘가 청춘이라는 틀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갇혀 있는 듯한 인상이 강했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성균관 스캔들>의 문재신 역할에서는 드라마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패션왕>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청춘의 반항기는 어딘지 시청자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캐릭터였다. 그랬던 유아인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밀회>를 통해서였다. 그간 청춘의 반항과 방황이라는 일관된 이미지를 갖고 있던 유아인은 <밀회>를 통해 순수한 영혼의 청춘 이선재가 되었다.

 

영화 <베테랑>은 유아인으로서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사실 연기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변신하거나 연기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이 악역이다. 그는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큼 뻔뻔하고 안하무인의 재벌3세 역할을 <베테랑>을 통해 제대로 소화해냈다. 사실상 이 캐릭터가 만들어낸 공분이 이 영화의 흥행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데 유아인의 지분은 확실했다고 평가된다.

 

한 번 물이 오른 연기는 <사도>를 통해서 한층 깊어졌다. 사실 <사도>의 사도세자는 그가 처한 입장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이다. 그저 광인으로만 기록되고 알려져 있던 사도세자가 아닌가. 그런데 유아인은 이 사도세자에서 아버지 영조와 노론 세력이 이미 구축해놓은 시스템 속에서 결코 떳떳하게뻗어나갈 수 없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청춘의 슬픈 자화상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하반기 최대의 기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육룡이 나르샤>에서 육룡 중 한 명인 이방원의 역할로 돌아온다. <육룡이 나르샤><뿌리 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박상연 극본에, 역시 같은 작품을 연출한 신경수 PD가 메가폰을 잡고, 김명민이 정도전 역할로 출연하는 작품이다. 만일 이 작품이 성공하고 거기서도 유아인이 확실한 자기만의 지분을 보여준다면 그는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영화에서부터 드라마까지.

 

그렇다면 유아인의 이런 승승장구를 가능하게 한 그만의 힘은 무엇일까. 가장 큰 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 깊이 있는 연기력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밀회>에서의 어딘지 어눌하지만 그 순수함 때문에 마음을 잡아끄는 섬세한 연기는 물론이고, <베테랑>에서의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악역이나, <사도>에서의 깊은 슬픔과 광기를 꾹꾹 눌러 보여주는 연기까지 그는 청춘의 역할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바 있다.

 

즉 젊은 세대부터 중년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은 멜로 연기도 되고, 악역도 되며, 때로는 정극의 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팽팽함을 보여주는 연기력이 가장 큰 그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건 유아인이란 연기자를 좋은 작품들이 찾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사실 우리 시대에 가장 많은 질곡과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 바로 청춘이 아닐까 싶다. 그 청춘의 군상들은 순수하기도 하고, 반항기가 가득하기도 하며, 때로는 엇나가고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하며 때로는 혁명을 꿈꾼다. 그 많은 청춘들의 얼굴들이 유아인이라는 한 얼굴 속으로 겹쳐진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아인이라는 연기자의 초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 이 뿌리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피어날까

'뿌리깊은나무'(사진출처:SBS)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 왕이 스스로 이렇게 외치는 이유는 명백하다. 왕이지만 왕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송중기)은 아버지인 태종(백윤식)의 그늘 아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태종이 권력을 잡기 위해 친인척을 구분하지 않고 피의 숙청을 감행하는 것을 보면서도 세종은 아무도 구하지 못한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모두 치워버리는 것"이 정치라 생각하는 태종 앞에서 "나의 조선은 다를 것"이라 말하지만 세종은 "너의 조선이란 게 무엇이냐?"는 태종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런 세종을 일깨운 것이 일개 똘복(채상우)이라는 민초 아이라는 사실은 세종의 정치철학은 물론이고 이 사극이 가진 메시지를 함축한다. 정치도 모르고 반역이라는 것은 더더욱 알 리 없는 이 아이가 역당의 무리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세종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태종의 칼날이 목에 드리워지지만 세종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 한 아이를 구하는 것, 그것은 세종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자신이 구한 백성"으로 그 아이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백성을 구한다'는 메시지와 그 백성이 위기에 처한 이유가 양반들에게만 독점된 글자로 인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세종의 '한글 창제'의 충분한 동인으로 제시된다. 문자를 읽고 쓴다는 것이 사실은 '죽고 사는 문제'였다는 이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는 어찌 보면 그다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을 한글 창제의 의미를 드라마에 깊게 각인시킨다. 세종의 이 분명한 목적의식은 앞으로 집현전을 두고 벌어질 사건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갖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된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세종의 한글창제에 대한 평가는 일상화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이것을 보다 강력한 대결구도와 흥미로운 장치들을 활용해, 쉬우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있다. 태종과 세종의 팽팽한 대결구도는 이 사극이 굴러가는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그 대결 속에서 기묘하게 연결된 똘복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종의 소명의식을 드러낸다.

태종과 세종의 '다른 조선'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방진이라는 흥미로운 도구를 통해 쉽게 제시되어 있다. 즉 태종이 마방진으로 고민하는 세종에게 "이건 너무 간단한 문제"라며 다른 숫자를 다 떼어버리고 1자 하나를 가운데 세워두는 장면은 태종의 중앙집권식의 정치철학을 함축하는 장면이다. 반면 그 많은 숫자들을 나열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운 방진을 꾸리려 애쓰는 세종의 모습은 그대로 그의 민초들을 생각하는 정치세계를 잘 말해준다. 그 숫자 하나 하나는 수많은 똘복의 분신인 셈이다.

화려한 액션과 군더더기 없는 영상 연출은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이어나간 장태유 PD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복잡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군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배치하며 그 속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팽팽한 갈등구조는 돌아온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공이 느껴진다. 여기에 거친 야성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백윤식과 그 중견연기자의 힘 앞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송중기의 일취월장된 연기는 이 사극이 가져갈 초반의 힘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은 '뿌리 깊은 나무'라는 새롭고 특별한 사극의 시작이자 전제일 뿐이다. 이 깊은 뿌리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지들이 이야기로 자라날 것인가. 실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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