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서야 가족도 행복, ‘황금빛’의 새로운 가족 제안

“난 이 집 가장 졸업하겠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태수(천호진)는 아들 서지태(이태성)에게 그렇게 말했다. 과거 노모의 병환 때문에 아들에게 진 빚을 집 보증금을 빼서 갚겠다고도 했다. 집 나가서 어떻게 혼자 살 거냐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혼자서였다면 더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고.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서태수의 ‘가장 졸업’ 선언은 그간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결과였다. 사업을 망하기 전까지 그토록 노력해왔던 그의 삶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망한 후 힘들었던 일들만 가장의 책임으로 치부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실망했다. “사업 망해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양미정 당신 나 한 번이라도 위로해준 적 있냐. 지태 지안이 지수 네들이 나 한 번이라도 안아준 적 있어?...그래. 나 못난 애비다. 무능한 아버지야. 서태수 너 인생 실패했다.”

서태수는 그래서 하나하나 정리해나가고 있었다. 지수(서은수)를 찾아가 그는 25년 전 그를 데려와 자식으로 키운 걸 사과했다. 부모의 사과. 그것은 더 이상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네가 믿든 안 믿든 넌 항상 내 딸이었고 사랑했다. 하지만 훔친 딸이니까 내 딸이 아닌 거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그는 그것이 허망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이 들면 시골로 내려가 조촐하게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겠다던 소박한 가장의 꿈은, 대학을 나와도 여전히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고, 부모가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자식의 미래도 결정되는 현실 앞에서 흙수저 부모이기 때문에 부정당하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가장 졸업 선언이 공감 가는 이유다.

<황금빛 내 인생>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는 수저 계급의 사회 속에서 가족이, 핏줄이 족쇄가 되어 개개인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 서태수가 느끼고 있는 절망감처럼, 재벌가의 딸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사실은 엄마의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고는 그 집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가족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서지안(신혜선)도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죽을 결심까지 하지만 친구 덕분에 돌아와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던 중 그는 새삼 부모 탓을 하며 희생을 감수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깨닫는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는 하우스 메이트의 말 한 마디에 서지안은 문득 그간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떠올린다. 부모의 지원을 마치 당연히 해줘야 할 것처럼 여겼고 그래서 그것이 현실적으로 되지 않자 스스로 꿈을 접고 희생하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재벌가 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 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그는 새삼 깨닫는 중이다.

가족이 따뜻한 둥지가 아니라 족쇄가 되는 사정은 서지수가 들어간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집도 마찬가지다. 재벌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서지안처럼 위장해 공식석상에 서야 하는 걸 거부한 서지수는 할아버지 노양호(김병기)의 냉혹한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네까짓 게” 자신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노양호는 “황금 물고 태어나면”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며 서지수를 집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한다. 서지수는 이 재벌가의 핏줄에 황금빛 족쇄가 채워져 버린 셈이다. 

최도경(박시후) 역시 재벌가의 이미 정해진 삶으로서 결혼할 가문과 상대가 있었지만 서지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그걸 거부한다. 그 역시 이 재벌가의 핏줄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찾겠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지금의 가족드라마들이 내세웠던 것과는 다른 가족상을 내세운다. 그것은 서로 핏줄로 얽혀 끈끈한 가족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가족상이다. 부모든 자식이든 그리고 서민이든 재벌가든 가족이 핏줄이라는 이유로 족쇄가 되는 삶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서서 비로소 행복해질 때야말로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제시한다. 

김수현 작가의 2008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엄마의 휴업 선언을 다룬 바 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가 지난 지금 <황금빛 내 인생>은 아빠의 가장 졸업 선언을 그리고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부모와,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신의 삶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자식이라면 그 가족은 따뜻한 둥지가 아닌 서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닐까. 각자 삶은 각자 개척해야 비로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족상이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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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까닭

가족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인가. 지금껏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면, 지금 방영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어딘가 수상하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가족의 양태는 결코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서민층 가족도, 또 돈 걱정 없는 재벌가 가족도 무엇 하나 따뜻하거나 부러워할만한 구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째서 <황금빛 내 인생>은 그간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왔던 그 가족의 면면을 완전히 뒤집어 보여주고 있는 걸까.

한 때는 잘 나가건 회사의 사장이었으나 부도를 맞고 전국의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해온 서태수(천호진)는 그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숨겨왔던 마음의 응어리를 토해놓는다. 가족을 위해 뭐든 희생하며 살아왔던 그였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집 나간 딸 지안(신혜선)에게서 “가족이면 다 함께해야 하냐”는 독한 말을 듣고 그는 모든 걸 놓아버린다. 아들 지태(이태성)에게 안하던 화를 쏟아내는 그는 이제 가족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왜 그렇지 않을까. 아내 양미정(김혜옥)이 그간 잘 지내왔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지금의 힘겨운 시기만을 얘기하는 것에 화가 나고, 서지안도 서지수도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그 시절을 마치 모두 잊은 듯 그를 대하는 모습에 울분이 터져 나온다. 마치 아버지의 무능 때문에 결혼은 결코 안하겠다 소리쳤던 지태의 외침 또한 그에게는 비수 같은 말들로 남아있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는 그것을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고 가족만을 챙기려 했던 그 삶이 어딘가 잘못됐었다는 걸. 그에게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따뜻하고 포근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렇다면 재벌가 최도경(박시후)의 가족은 어떤가. 가족이라기보다는 마치 회사 같은 느낌을 주는 그들은 마치 인형처럼 정해진 대사들을 말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과의 결혼이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그 당사자들 역시 그렇게 만나 그 날 약혼하고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건 하나의 계약 사항 같은 것이니까.

그 속으로 들어간 뒤늦게 찾은 딸 서지수(서은수)는 그래서 이 재벌가 가족이 가진 위선적인 모습들을 드러내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거죠?”라는 질문에 이 이상한 가족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 이 가족의 삶이다. 서민가족의 삶이 그 곤궁함으로 인해 결혼조차 포기하려 했고, 어떻게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결코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재벌가의 남녀가 만나자마자 마치 모든 게 결정되어 있었다는 듯 결혼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 계획까지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이 가족들의 양태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그 양태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런 비정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은 같은 곳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돈이다. 현실이다. 없는 자는 없어서 가진 자는 너무 많이 가져서 그 가족의 삶이 피폐해진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고 상처가 되며 심지어 굴레가 되는 가족을 진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가족 체계를 굳이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가족의 불편함을 보여주는 가족드라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오래도록 불변의 가치로 여겨왔던 가족주의라는 틀에 대한 균열을 말하고 있다. 핏줄과 혈연으로 얽혀진 가족이라는 틀이 한때는 끈끈하게 서로를 엮어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는 힘이었던 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끈끈함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서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따로 ‘내 인생’을 세우고 또 같이 나아가는 진정한 가족을 지향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우리 시대가 추구해야할 가족의 새로운 가치가 아닐까.(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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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인생’, 가진 자들의 위선 고발하는 서민 자매들

최도경(박시후)이 “자꾸 신경 쓰인다”고 말할 때 서지안(신혜선)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얘기를 들어주는 그 얼굴에 감정은 1도 섞여있지 않다. 최도경은 내놓고 자신의 호의와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서지안은 안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또 이런 호의도 사실은 위선적이라는 걸. 최도경은 입만 열면 자신은 해성그룹의 오너가 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해진 혼사도 사업 계약하듯 당연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결국 가진 자의 위선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서지안은 알고 있다. 

호의라면 상대방이 그 배려를 받아야 호의라고 할 수 있지만, 최도경이 내미는 호의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재력을 가졌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실천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애가 그 호의의 실체라는 것. 진짜 호의를 베풀 것이라면 먼저 서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최도경은 ‘젠틀맨’이라는 자신의 허상에만 붙잡혀 있다. 서지안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유다. 서지안은 그 허상뿐인 가진 자들이 호의라며 내미는 화려한 식탁과 옷과 돈과 차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것.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의 가족들은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나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라는 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을 밀어내며 그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면, 서지수는 해성그룹의 재벌가의 딸로 들어가 뼛속까지 가진 자의 허위로 똘똘 뭉쳐 있는 노명희(나영희)와 그 세계를 공격하는 중이다.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고, 마치 그들은 먹는 것조차 다른 걸 먹는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려 드는 노명희에게 서지수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서지수를 해성그룹의 딸로 바꾸기 위해 그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방에서 치워버리자 굳이 쓰레기차까지 쫓아가 그걸 가져와서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버리는 건 예의냐”고 따진다.

자신이 엄마라고 강변하는 노명희에게 “낳기만 하면 엄마냐”고 되묻고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갈 테니 방 하나 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노명희에게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자신을 길러준 부모들을 단죄하려 했었다는 걸 들은 서지수는 대노하며 “그럴 자격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화를 낼 자격은 “자신 뿐”이라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이 서지안과 서지수라는 평범했던 서민층 자매가 사건을 겪으면서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지안은 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했던 ‘속물근성’을 발견하고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결국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된 것.

서지수는 늘 순응하며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잘 적응해 밝게 살아왔지만 이 일을 겪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의외로 당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늘 언니의 그늘 아래서 커왔지만 이제 스스로 서야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가 둘이 생긴 상황 속에서 결국 중요해진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지안과 서지수는 이 아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서지안은 그토록 희구했던 대기업 입사가 허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공일 같은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서지수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하려 했던 제빵의 길을 접지 않는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을 할 때만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황금빛’의 허구에 한때 눈이 멀었던 이들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저마다 ‘내 인생’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금빛’ 인생일 것이니.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금수저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현실이지만, 그 금수저가 가진 위선을 이토록 신랄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도 없을 게다. 그 어떤 사회극보다 신랄해진 주말드라마라니. 서지안과 서지수의 일침이 은근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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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인생’과 ‘변혁의 사랑’이 그리는 금수저 판타지 깨기

재벌가의 삶이 판타지를 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버린 모양이다. 재벌3세가 등장하고 그 상대역으로 신데렐라, 남데렐라, 줌마렐라 같은 인물들이 주는 판타지는 최근 드라마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물론 재벌3세라는 특정 캐릭터는 여전히 등장하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과 tvN <변혁의 사랑>을 보면 지금 대중들이 바라보는 재벌가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황금빛 내 인생>에 등장하는 재벌가 해성그룹은 그 부유함이 막연한 판타지를 주는 그런 곳이다. 서지안(신혜선) 같은 흙수저에게는 특히 그렇다. 어떻게 해서라도 마케팅팀에 들어가기 위해 인턴으로 갖가지 잔심부름까지 기꺼이 도맡아 하는 곳. 하지만 드라마는 애초부터 그런 판타지는 흙수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어느 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금수저 친구에게 밀려나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곳. 그것이 굴지의 재벌가에서 일이라도 해보려는 흙수저에게 떨어지는 씁쓸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흙수저가 하루아침에 해성그룹의 잃어버린 딸이 되어 금수저가 되자 이 모든 닫혔던 문들이 열린다. 그래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하루에 천만 원씩 쓰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집안이지만 사실 사는 모양이 영 불편하다. 지켜야할 것도 많고 보는 눈도 많고 구설에 오를 일도 넘쳐난다. 재벌3세인 최도경(박시후)은 입만 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치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가 모두 결정된 인물이다. 심지어 누구와 거래하듯 정략결혼을 해야 할 지까지.

서지안은 동생 서지수(서은수)가 진짜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게 힘겨운 지옥의 삶을 경험한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해성그룹의 사모님 노명희(나영희) 같은 인물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실감한다. 게다가 이 재벌가 사모님은 입만 열면 ‘특권의식’이 철철 묻어나는 말들만 늘어놓는다. 서민들과는 말도 섞지 말라는 식이다. 서지안이 뒤바뀐 출생의 비밀 때문에 겪게 된 재벌가는 판타지가 아니라 지옥이다. 되도록 빨리 도망치고픈 그런 곳.

<변혁의 사랑> 역시 재벌가의 풍경은 그리 다르지 않다. 변혁(최시원)이라는 낭만주의자 재벌3세는 그 낭만적인 성격 때문에 집안에서 밀려난다. 형인 변우성(이재윤)은 동생을 영구히 밀어내기 위해 변혁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은밀하게 더 키우는 그런 인물이고, 아버지 변강수(최재성)는 아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백준(강소라)이라는 프리터족 흙수저의 현실은 더 참담하다. 직업 갖는 걸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는 겉으로 명랑해보여도 속은 문드러져 있다. 늘 돈을 빌려달라는 엄마에게 자신도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다달이 모았던 적금통장을 깨서 주려고 가져가는 그런 딸. 그런데 철없게도 돈 쓸 줄만 아는 변혁은 그런 그가 안타까워 척척 돈으로 그걸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백준은 그런 변혁의 행동이 오히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돈만 많았지 세상 사람들의 아픈 현실은 잘 모르고, 그렇게 돈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인물이 바로 변혁이기 때문이다. 재벌3세라면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 것 같지만 변혁은 오히려 정반대다. 집안에서도 제대로 기를 피지 못하고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해도 한 사람의 마음 하나를 얻지 못한다. 

흔히 드라마가 재벌가 판타지를 담곤 했던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진 권력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당대의 정서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갖가지 재벌가의 특권의식이 점철된 갑질 사건들이 주는 현실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지 금수저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황금빛’ 인생을 살아가는 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나 <변혁의 사랑>은 물론이고, <품위 있는 그녀>가 그려냈던 불륜과 치정으로 얼룩진 재벌가의 삶이나, <부암동 복수자들>에 담겨진 저들만의 세상에 대한 분노 같은 반감들은 최근 드라마들이 재벌가를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을 담고 있다. 어차피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그런 판타지는 애초에 ‘꿈 깨’라고 드라마가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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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인생’, 내 인생의 진정한 황금빛은 어디서 오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제 2회가 지난 것이지만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는 빠르게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 같은 것들을 뛰어넘었다. 첫 회는 어째 주말드라마의 공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출생의 비밀인가 싶었지만, 그 설정은 2회에 풀려버렸다. 이로써 <황금빛 내 인생>은 그 흔한 가족드라마의 코드와는 다른 이야기 전개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사실 첫 회는 그다지 기대할 수 없는 어디서 본 듯한 설정들이 등장한 게 사실이다. 흙수저로 열심히 살아가는 서지안(신혜선)이 부장님의 명으로 그의 차를 대신 몰고 가다 해성그룹의 외아들인 최도경(박시후)의 차와 접촉사고를 내며 인연이 이어지는 과정이나, 해성그룹의 안주인인 노명희(나영희)가 어린 시절 잃어버린 딸이 서지안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던 첫 회만 해도 그저 그런 신데렐라와 출생의 비밀 코드를 버무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런 우려를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2회에 드라마는 노명희가 직접 양미정(김혜옥)을 찾아오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 중 누가 자기 딸이냐고 물으며 그래서 양미정이 결국 서지안이 그녀의 딸이라고 말하는 장면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보통의 옛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이 부분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장편 가족드라마가 나오곤 했던 그 코드들이다. 

<황금빛 내 인생>이 이처럼 일찍 그 코드를 드러낸 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최근 우리 사회에 자주 거론되는 ‘금수저 흙수저’를 소재로 담고 있다. 흙수저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영향아래 기죽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서지안(신혜선). 하지만 이제 막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잠시, 친구가 금수저 낙하산으로 그 자리를 꿰차며 역시 높은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하게 됐다. 

그런 서지안이 바로 그 해성그룹 노명희가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은 향후 이 흙수저가 하루 아침에 금수저로 그 삶이 바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 금수저의 삶이 서지안이라는 짠 내 나는 캐릭터의 장밋빛 인생을 가능하게 해줄까. 과연 가진 자들의 삶은 행복하고 못 가진 자들의 삶은 불행할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삶은 그렇게 빈부에 따라 행복의 질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는 두 가족, 즉 부자가족 최도경의 집과 서민가족 서지안의 집은 그 느낌이 상반되게 다가온다. 어째 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서지안의 집이 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 

즉 서지안은 본래 태생은 금수저였지만 어린 시절의 사건(?)으로 흙수저의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 흙수저의 삶 속에서도 그녀를 행복하게 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 서태수(천호진)가 보여준 가족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토록 귀하게 키운 딸을 어려운 현실 때문에 이제 기꺼이 재벌가로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회한이 없진 않겠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가 사는 현실은 태생으로 그 미래까지 결정되는 금수저 흙수저의 세상이다. 그 안에서 흙수저의 인생을 부여받은 이들은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그 ‘수저의 벽’ 앞에서 절망한다. 청춘들은 청춘들대로 부모들은 그런 청춘들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파한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청춘들과 부모들에게 그래도 당신들의 삶이 가치 있다는 위로의 말을 던지는 드라마다. 진짜 인생의 황금빛은 가진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걸 전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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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후의 편지, 용기일까 무리수일까

 

“하지만 사건 이후에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제 곁에 있어주신 여러분을 보면서 용기를 내어 봅니다.” 성 스캔들로 인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시후가 팬 카페에 그간의 심경에 대해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그 편지에서 박시후는 팬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팬들을 가족이라 칭하며 그 “가족이 있어 다시 한 번 꿈을 꾸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려 한다”고 했다. 언젠가 배우로서 복귀할 뜻을 전한 것.

 

'청담동 앨리스(사진출처:sbs)'

팬 카페에 올린 글이니만큼 일반 대중을 향한 이야기와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지해주는 팬들이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그 지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감사의 표시를 전하고, 또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우리네 연예 언론들은 팬 카페든 미니 홈피든 아니면 SNS든 다분히 사적인 이야기들도 끄집어내 공론화하는 습성을 가졌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박시후 스스로가 의도한 점이 있을 지도 모지만.

 

어쨌든 팬 카페에 글을 올리는 순간(그것도 박시후가 아닌가!) 그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공적인 이야기처럼 전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일반 대중들의 정서가 팬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 2월 갑자기 불거진 박시후 관련 성 추문은 그가 일반 대중들에게 갖고 있던 반듯한 이미지에 커다란 흠집을 만들었다. 게다가 이 스캔들 공방은 점점 가열되면서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까지 공개되는 극한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대중들의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박시후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지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성폭행을 주장했던 여성이 합의에 의해 고소를 취하했던 것. 결국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아는 것으로 남겨지게 됐다. 문제는 법적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쨌든 드러난 치부는 설혹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잘못도 거기에 분명 들어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던가. 물론 성폭행 주장 여성의 말처럼 그가 가해자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는 이야기다.

 

이처럼 여전히 의혹이 남아있고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박시후가 팬 카페에 올린 편지는 너무 앞서가고 있는 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팬 카페에 올린 팬들을 위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시겠지만, 그것이 밖으로 유출되었을 때 일반 대중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마치 온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듯한 뉘앙스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게다.

 

“길고 거센 이번 여름 장마처럼 저에게도 모진 비가 내렸지만 그 비를 이겨낸 만큼 더욱 땅이 단단해지리라 믿습니다.” 박시후의 소망은 이것이 그냥 한 때 지나가는 비였으면 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대중들의 마음은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그가 다시 단단한 땅이 되려면 바로 이 지금의 현실 인식을 바라보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은 행동이나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본업이 대중들을 캐릭터에 몰입시켜야 하는 연기자라면 그 손상된 이미지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지워질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섣부른 용기보다는 좀 더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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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원래 그런 걸까 아니면 더 힘겨워진 걸까

 

최근 들어 연예계 사건 사고는 거의 매일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미성년자 상습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고영욱,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박시후에 이어서 이번엔 이승연, 박시연, 현영, 장미인애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 게다가 대마초 알선 소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DMTN의 멤버 다니엘과 대마초 흡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미수다> 출신의 비앙카까지. 일일이 터져 나오는 사건들의 전말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피곤할 지경이다.

 

'청담동 앨리스'(사진출처:SBS)

이렇게 연예계의 사건사고가 한꺼번에 연달아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항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늘 그래온 시선 돌리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즉 연예계는 원래 그래왔었던 것이고, 다만 지금 시점에 그 치부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다. 혹자는 과거보다 훨씬 더 힘겨워진 연예계의 현실을 얘기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연예인 생활이 힘겨워졌다고 해도 그들의 빗나간 선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연예계는 정말 본래부터 이랬던 것일까.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일까. 일정 부분 공감이 가는 얘기다. 왜냐하면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갖는 특수성이 그들을 좀 더 쉽게 멘탈붕괴에 이르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영욱의 사례는 빗나간 욕망과 연예인이라는 남들이 보기에 우월적인 지위가 만나 생겨난 사건으로 해석된다. 물론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모든 연예인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좀 더 그런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박시후 스캔들은 겉으로 보면 연예인의 성관계라는 자극적인 면모가 부각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연예계 전반에 깔려진 비뚤어진 욕망들이 꿈틀댄다. 거기에는 톱 연예인의 공허함이 깔려 있고, 그 톱 연예인이 되거나 그들을 이용해 한 몫 잡아보려는 연예인 지망생의 욕망이 있으며, 그 톱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종종 벌어지는 고질적인 알력 관계도 들어 있다. 여기에 연예인 관련 스캔들이라면 일단 뭐든 기사화하는 것을 오히려 기자정신으로 착각하는 언론들의 욕망도 들어 있다. 이 스캔들 하나에 꽤 많은 연예계의 비뚤어진 욕망을 읽을 수 있는 셈이다.

 

이승연, 박시연, 현영, 장미인애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유혹과 자기 관리의 실패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연예인의 스트레스는 과중한 일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자신이 늘 노출된 상황에서 살아간다는 점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여기에 불면증이나 심지어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하면 유혹은 언제든 가까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심각한 것은 이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해줘야 할 병원이 이들에게 상습적으로 마약류를 투약했다는 점일 게다. 이것은 어찌 보면 점점 몸이 상품화되어가는 사회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스스로 중독자가 되어버린 의사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때만 되면 터져 나오는 대마초 사건은 이제 흔해빠진 연예계 뉴스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그렇게 한때 대마초로 구속됐던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그 경험을 예능으로 풀어내기도 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만큼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역시 대마초 사건 역시 연예인들이 갖기 마련인 특수한 상황(흔한 얘기지만 과도한 스트레스와 노동 같은)에서 그 유혹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이렇게 무수한 유혹과 사건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또한 최근 들어 연예인들의 삶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힘겨워진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것이 노출되는 현 매체 환경에서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보장받기 더 어려워졌고, 실제 사실과 다른 오해와 소문만으로도 일파만파 논란이 커지기도 한다. 너무 많은 연예인들로 인해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졌으며 따라서 상대적인 박탈감도 훨씬 커졌다.

 

본래 연예계라는 곳은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공간으로서 그 속에 들어있는 연예인들을 비인간화하기 마련이다. 출연료 얼마에 매겨지는 연예인들은(물론 이건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우리네 대중들도 마찬가지지만 연예인들은 더더욱 그렇다) 바로 그것 때문에 상식 밖의 일들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다. 자기관리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연예계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연예인 개인에게 책임 물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당 연예인 몇몇을 비난하고 매장하고 넘어가는 것만으로는 이 시스템적이고 고질적인 연예계 사건사고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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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욱에겐 공분하고 박시후는 안타까워하는 이유

 

박시후가 연예인 지망생 A씨(22세)를 성폭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고소장 내용에 따르면 박시후와 A씨는 지인의 소개로 지난 14일 오후 11시쯤 서울 강남의 한 포장마차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고 한다. A씨의 주장은 만취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성폭행을 당한 상태였다는 것. 물론 박시후는 이 사실을 부인했다. 19일 박시후측은 공식입장 자료를 통해 “지인의 소개로 만난 A양과 술자리를 가진 점에 대해 인정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서로 남녀로서 호감을 갖고 마음을 나눈 것이지, 강제적으로 관계를 가진 것은 결코 아님을 알려 드린다"고 밝혔다.

 

'청담동 앨리스(사진출처:SBS)'

‘관계를 가졌지만 강제성은 없었다.’ 이 말은 성추행 혐의로 최근 미성년자 강제추행 및 성폭행 혐의를 받고 구속되어 공판을 받고 있는 고영욱 측이 줄곧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의 경우 폭력이 수반되어야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13세 이상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을 시 상호합의일 경우에는 어떤 법령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박시후와 고영욱은 다 같은 성폭행 혐의라도 그 상황과 정서가 다르다. 즉 박시후의 상황은 성인들끼리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 앞뒤 정황을 좀 더 정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성인들끼리 만나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서로 마음이 맞아 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이 관계에 대해서 A양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어느 쪽 이야기가 진실인가가 명명백백히 밝혀지기 전에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고영욱은 그 상대가 미성년자인데다 그 사건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번이라는 점에서 상황도 다르고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정서도 다르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연애 감정’ 운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주장은 고영욱이 현재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법적인 발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받아온 연예인으로서 이런 모습은 대중들의 실망과 공분만 키울 뿐이다.

 

물론 <청담동 앨리스> 같은 드라마를 통해 허당스러운 매력을 보여주었던 박시후로서는 이번 사건이 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어떻든 이미 박시후의 내밀한 사생활의 치부가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만일 같은 연예인이었다면 핑크빛 스캔들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은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점 때문에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 그것은 아무래도 탑 연예인과 연예인 지망생이 내포하는 권력 관계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은 거꾸로 박시후가 무고를 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심증을 갖게 만드는 구석이기도 하다. 연예인의 위치라는 것은 결국 단 한 방의 치명적인 폭로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탑 연예인과 연예인 지망생의 권력 관계는 오히려 거꾸로 역전될 수도 있다. 반면 고영욱 사건은 미성년자를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그 권력관계를 쉽사리 예상하게 만든다. 따라서 공판이 어떻게 나오든 그 자체가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고 여겨진다.

 

박시후의 경우에는 성인 남녀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아직 그것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잘잘못을 따지기가 어렵다. 이것은 고영욱 사건이 터진 후 대중들이 일제히 공분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박시후에게 많은 대중들이 안타까움을 먼저 표현하는 이유일 게다. 결국 박시후측이 공식 입장 자료를 통해 밝힌 것처럼 좀 더 확실한 정황 증거가 나올 때까지 상황을 두고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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