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작은 집’, 저들이 이상한 걸까 우리가 이상한 걸까

이상한 즐거움이고 이상한 재미다. 도시에서와 정반대로 살아보는 재미와 즐거움. 뭐든 돈만 주면 다 만들어진 것들을 척척 살 수 있는 도시에서라면, 직접 물건을 만드는 일이 번거롭고 귀찮은 일 정도로 여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숲 속에 덩그라니 놓인 작은 집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톱으로 썰어 원하는 모양을 만들고 선반 지지대에 걸어 옷걸이 하나를 만드는 일이 꽤 즐겁다. tvN 예능 <숲속의 작은 집>이 보여주는 새로운 재미거리다. 

늘 그냥 놓여져 있던 외투가 눈에 걸렸다는 박신혜. 만일 그런 작은 집이 아니라 도시의 아파트였다면 그런 게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일이다. 이미 마련된 수납장이나 장롱에 걸어두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은 집에는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외투 하나를 수납할 수 있는 걸 나가서 사오는 일도 일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내 손으로 만들어본다. 그런데 늘 다 만들어진 것을 사기만 했던 때와 달리, 의외로 품을 파는 일이 즐겁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이 훨씬 내 것 같이 다가온다. 내 손길이 닿은 나만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만드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옷걸이를 만들고 세면대 옆에 수건걸이를 또 만드는 박신혜는 나무의 거친 껍질 면을 사포로 밀어 부드럽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나무껍질을 미는 소리가 그 껍질에 따라 다르다. 아무런 소리도 틈입하지 않는 숲 속에서 그 소리들의 차이가 미세한 것까지 느껴진다. 도시에서 우리가 청각의 즐거움이라고 하면 고작 귓구멍을 꼭꼭 막고 듣는 이어폰 음악소리 정도의 자극이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 숲속에서는 그저 가만히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오만가지 소리들이 즐겁다.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빗소리, 장작이 타는 소리, 개울가 물 흐르는 소리... 소리가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 컸던가.

<숲속의 작은 집>은 시작 전부터 나영석 PD가 단단히 얘기한 것처럼 ‘심심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심심하다’는 표현은 꽤 상대적인 개념이다. 숲 속이기 때문에 도시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과 비교하면 심심하다는 것. 아니 도리어 이 프로그램은 도시의 그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로부터 탈출해 적극적으로 심심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그 도시의 기준으로의 ‘심심함’을 추구하자, 그 심심함 속에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들이 발견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같은 미션은 멀티태스킹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한 가지에 집중하는 재미를 다시금 되살려주고, ‘한 시간 동안 책 읽기’ 미션은 다른 모든 걸 지워버린 채 몰입하는 즐거움을 깨워준다. ‘3시간 동안 식사하기’ 미션은 바쁜 일상 속에서 먹는 일이 온전한 즐거움이 되지 못하고 ‘때우는 일’이 된 우리의 새로운 식감을 열어준다. 

소지섭은 ‘빗속 산책’을 통해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찾았다. 마치 숲을 통째로 물에 우려낸 듯 밀려오는 그 냄새가 그를 기분 좋게 만들었고, 이름 모를 꽃과 풀과 이끼 위에 올라앉은 빗방울들이 ‘빛 방울’처럼 달라붙어 그것이 온전한 하나의 세계를 품어내는 신비로움을 목격하게 해줬다. 도시생활에서는 도무지 발견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감각들의 향연이 그 ‘심심함’의 세계 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숲속의 작은 집>은 거기 피실험자로 등장하는 박신혜와 소지섭의 숲 속 일상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왜 공공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저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상한 건, 저들일까 아니면 우리들일까. 끊임없이 숲속 ‘심심함’ 속에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내려 노력하며 “행복해질까요?”를 질문하는 이 프로그램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들이다.(사진:tvN)

박신혜·소지섭의 ‘숲속의 작은집’, 이 기분 좋은 심심함이란

심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한 것들이 많았다. 다만 우리가 도시생활에서 했던 그런 일들이 아니었던 것일 뿐. tvN 예능 <숲속의 작은집>은 도시생활에서 너무 많은 소리와 빛과 욕망들 때문에 가려졌던 또 다른 소리와 빛 그리고 평온함을 우리 앞에 보여줬다. 심심하다는 건 도시생활의 기준으로 말했을 때 그랬다는 것이지만, 그 곳에서는 심심함을 넉넉히 채워주는 또 다른 즐거운 감각들이 깨어났다. 

‘실험’, ‘다큐멘터리’, ‘피실험자’ 등등. <숲속의 작은집>은 그 스스로도 기존 예능프로그램과는 너무나 다른 것들을 담는 것에 대한 제작진의 불안감을 그 표현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이 불안한 것뿐이지, 그 길에 새로운 설렘이 있다는 걸 이 실험적인 프로그램은 충분히 보여줬다.

첫 날 주어진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실천들은 그래서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가진 것들을 꼭 필요한 것만 빼고 덜어내고, 밥 한 그릇 반찬 하나로 저녁 한 끼를 하는 체험은 어째서 우리가 비워내야 또 다른 것들이 채워질 수 있는가를 일깨워주는 것들이었다. 너무 많은 걸 갖고 있을 때는 그 가진 것들의 소중함이나 그 고유의 가치들을 느끼기 어려운 법이다. 옷도 그렇고 먹을 것도 그렇다. 

하지만 밥 한 그릇 반찬 하나를 놓고 대하는 저녁 밥상은 그 밥과 반찬이 주는 맛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많은 반찬들이 가득한 밥상 위에서 그 맛들의 향연을 누릴 때는 정작 반찬 하나가 가진 맛을 제대로 누리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밥 한 그릇만을 오롯이 집중해 먹게 되면 오래 씹을수록 올라오는 밥 자체의 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이 실험적인 예능 프로그램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박신혜와 소지섭을 캐스팅한 점이었다. 두 사람은 성향도 너무 달랐고, 또 각각 다른 공간, 다른 날씨 속에서 이 숲속의 시간들을 경험했다. 그들의 성향이 다르다는 건 각각 이 숲속의 작은 집에 가져온 가방의 크기에서부터 나타났다. 박신혜가 꽤 무거워 보이는 트렁크 두 개를 낑낑대며 가져왔다면 소지섭은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볍고 단출한 가방 하나가 끝이었다. 

트렁크 가득 채워온 옷가지며 먹을거리들을 소개하는 박신혜와, 어쩌면 이런 단출한 삶 자체가 너무나 익숙해 보이는 듯한 소지섭은 그래서 어떤 비교하는 재미를 선사했다. 밥과 반찬 하나로 저녁을 해먹으라는 미션에 울상이 되어버린 박신혜가 도시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의 감정을 그대로 이입하게 만들었다면, 그 미션에도 “배가 고프면 먹겠다”는 소지섭의 모습은 이 오프그리드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줬다.

그래서 깨어난 건 도시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들이다. 너무 많은 빛 때문에 사실은 하늘에 지천을 깔려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별을 보며 행복해하고, 너무 많은 소리들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했던 빗소리, 바람소리, 개울가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 가득한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청각에 집중하며 시냇물 소리를 찾아가는 소지섭의 발걸음은 그래서 그 기분 좋게 숲이 녹아든 듯한 축축한 공기와 청량한 물소리가 더해져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스마트폰이 어디든 우리를 연결해주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바람소리와 물소리, 빗소리를 들려주는 앱을 다운로드에 듣곤 한다. 가끔은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 깊은 고요 속에서 잃어가던 나의 감각을 다시 찾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본래는 자연의 일부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낯선 도시 속에 살아가다보니 잊고 있던 우리 자신. 우린 지쳐있었던가 보다. <숲속의 작은집>의 기분 좋은 심심함에 이토록 빠져드는 걸 보니.(사진:tvN)

시청률 지상주의와 정반대로 가는 ‘숲속의 작은 집’, 그래서 더 궁금하다

“시청률 안 나와도 되니까 만들어도 된다고 해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나영석 PD는 새로 시작하는 <숲속의 작은 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될 때 이른바 ‘시청률 공약’을 거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요즘, 나영석 PD의 이 말은 이례적이다. 

물론 지금껏 프로그램 시작할 때마다 겸손한 자세를 보여왔지만, 이번은 그런 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나영석 PD는 “심심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걸 내려놨다는 뜻이다. 왜 나영석 PD는 이렇게까지 말한 걸까.

그것은 <숲속의 작은 집>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숲속의 작은 집에서 소지섭과 박신혜가 ‘미니멀 라이프’를 체험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전기, 수도, 가스가 없는 삶을 체험하며 오프 그리드 라이프를 실제로 보여주는 것. 그러니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쪽이 포인트다. 있는 삶이 아니라 없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왜 시도했을까 하는 건 쉽게 이해된다.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언제부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숲 속 같은 공간에서의 ‘적극적인 고립’은 해보고픈 꿈이 되었다. 너무나 삶이 복잡하고, 매일 매일 누군가와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늘 신경이 곤두선 채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일상이다. 그러니 산을 가거나 섬에 들어가거나 혹은 절 같은 곳에 들어가 잠시 동안이라도 ‘신경의 전원’을 끈 시간을 누리고픈 욕망이 생겨난다. 

<숲속의 작은 집>은 그런 욕망을 대리해주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그러니 시청률 같은 경쟁적인 수치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와는 이율배반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나영석 PD가 항상 주장하듯,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과정을 똑같이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프로그램의 진가가 살아나게 된다. 나영석 PD가 시청률을 내려놨다고 하는 말은 그래서 진심이다. 그래야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미니멀’한 삶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렇게 시청률을 내려놓자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그것은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시청률을 목표로 삼아 만들어지고 있어서, <숲속의 작은 집> 같은 시청률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더더욱 새로울 것이라 여겨져서다. 결국 시청률 바깥의 프로그램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적어도 지금껏 봐왔던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어떨까. 시청률도 내려놓고, 심심한 프로그램이며, 잘 안될 수도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숲속의 작은 집>이 역설적으로 시청률도 잡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묘미를 보여주며 그래서 잘 되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까. 첫 회 시작 전부터 궁금해지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조정석과 도경수가 <>의 신파를 살려낸 비결

 

한 마디로 말해 영화 <>은 신파다. 경기 도중 충격으로 시력을 잃은 동생과 말기 췌장암 선고로 죽어가는 형. 배다른 형제의 브로맨스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짠하다. 애증으로 시작하던 형제 관계가 차츰 애정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먹먹함으로 이어지는 그 감정의 파고를 만든 건 바로 이 신파적 설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진출처:영화<형>

하지만 이 눈물 빼는 영화가 90%를 눈물로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형 고두식 역할로 나오는 조정석과 동생 고두영 역할의 도경수는 그 신파적 눈물과 비극을 뒤집는 코미디의 밀당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들이다. 여기에 유도 국가대표 코치로 등장하는 수현 역할의 박신혜와 깨알 같은 따뜻한 웃음을 전해주는 대창 역할의 김강현은 시종일관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하고 때로는 뭉클하게 만든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의 신선함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살려내고 신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는 영화를 헤어나올 수 있게 해주는 건 배우들이다. 놀라운 건 이 영화는 온전히 조정석, 도경수, 박신혜 그리고 김강현 네 배우가 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그 중심점에 조정석이 있다. 이미 SBS <질투의 화신>을 통해, 아니 훨씬 이전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로 등장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낼 때부터 조정석은 희비극이 뒤섞인 연기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는 자신이 비극적 상황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보는 관객들을 웃기는 놀라운 재주를 가졌다. 즉 상황은 비극이지만 보는 이들은 희극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 찰리 채플린이 얘기했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 얘기가 떠오르는 배우다.

 

<>에서도 조정석은 단연 빛난다. 교도소에서 가출소된 껄렁껄렁하고 욕쟁이인 이 형이 동생을 대하는 모습은 한 마디로 까칠하면서도 인간적인 애정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장님이 된 동생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그 형의 시선은 그래서 영화 초중반을 눈물보다는 웃음을 채워 넣어준 이유다. 브로맨스의 츤데레를 보는 듯 조정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생을 툭툭 건드리며 웃기다가 어느 순간 마치 둑이 터지듯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를 보여준다.

 

도경수는 <괜찮아 사랑이야>나 영화 <카트>를 통해 보여줬던 그 진지함으로 <>이 가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적 공기를 채워준다. 조정석이 시종일관 웃음을 줄 수 있게 된 건 바로 이 도경수가 만들어내는 비극적 정조가 어떤 긴장감을 만들어 그걸 살짝 뒤트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질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은 일종의 정해진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영화를 통해 대단한 상상력이나 혹은 삶에 대한 놀라운 시각 같은 걸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감정적 위로와 위안이 절실해진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떤 따뜻한 웃음과 눈물이 주는 효용가치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정석과 도경수의 연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즐겁게 해주는 힘이 되기에 충분하다

<닥터스>, 다채로워진 박신혜 자연스러워진 김래원

 

섬세하고 따뜻했던 드라마 덕분인가. SBS <닥터스> 종영에 즈음해 되새겨보면 박신혜와 김래원에게 이 작품은 한 뼘 더 성장하게 해준 고마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에 머물지 않았고, 멜로드라마지만 사적인 사랑을 넘어 휴머니즘까지를 담아낸 <닥터스>. 자칫 그 섬세함이 드러나지 않으면 밋밋해질 수 있는 관계와 구도들을 생생하게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공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박신혜가 연기한 유혜정은 결국 복수의 감정을 사랑으로 이겨낸 인물이다. 그러니 이 내적 갈등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건 이 연기가 가진 중요한 지점이다. 그녀는 과거 할머니의 죽음 때문에 진명훈 원장(엄효섭)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으로서 그를 살려내는 길을 택한다.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홍지홍(김래원)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진명훈 원장의 위험천만한 종양수술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만일 홍지홍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명훈 원장의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그녀 안에 자리한 과거의 부채감과 증오를 극복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 장면은 그래서 <닥터스>가 가진 멜로구도와 복수극 그리고 의학드라마라는 다채로운 장르적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여지고 또한 풀어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의사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냉철한 모습과 할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고 분노하는 한 서민의 모습 그리고 홍지홍 앞에서는 사랑스런 여자로 변모해가는 그 모습들이 박신혜라는 연기자를 통해 다채로운 결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지금껏 그녀가 해온 캐릭터들에서 진일보한 면모다. 어딘지 여전히 소녀 같고 교복을 입어야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지만 이제 그녀는 그 위에 프로페셔널한 전문직 여성의 카리스마와 사랑에 빠진 여성의 달콤함을 얹었다. <닥터스>는 그녀의 이런 연기자로서의 성취가 아니었다면 결코 잔잔하지만 묵직하며 따뜻한 그 감동을 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라는 연기자가 다채로운 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김래원은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서게 됐다. 본래 <넌 어느 별에서 왔니><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같은 풋풋한 청춘 멜로가 잘 어울리던 연기자였지만 언젠가부터 김래원은 하는 역할들이 너무 무거웠던 게 사실이다. <천일의 약속>의 지형이나 <펀치>의 박정환은 그래서 그에게는 너무 힘이 들어간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닥터스>의 홍지홍은 마치 그간의 무거움을 털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훨씬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진 김래원의 면면들을 제대로 끄집어내줬다. 어찌 보면 선생과 제자의 결코 나이차가 적지 않은 설정의 사랑이지만 김래원 특유의 풋풋함과 능글맞음이 적절히 조화된 모습은 그 어색함마저 설렘으로 바꿔놓았다.

 

좋은 작품은 연기자들 또한 성장시킨다. <닥터스>는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박신혜와 김래원의 성장점이 될 만한 작품이다. <닥터스>가 보여줬던 그 따뜻함과 유쾌함과 진지함이 모두 연기자들이 잘 소화해낸 캐릭터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좋은 작품이었고 좋은 캐릭터였으며 좋은 연기자들이었다

<닥터스>, 박신혜와 이성경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

 

이제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종영을 앞두고 있다. 20%를 넘긴 최고시청률. 최근 지상파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그 능선을 <닥터스>는 어떻게 넘었던 걸까. 흔한 의학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또 달달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닥터스>는 여타의 의학드라마와도 또 멜로드라마와도 다른 결을 보여줬다. 그건 관계를 통한 인물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의 여자주인공인 유혜정(박신혜)과 그녀와 대립적 위치에 서 있던 진서우(이성경)의 변화와 성장은 이 드라마의 색다른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불량하게 살아가던 유혜정은 할머니인 강말순(김영애)과 선생님 홍지홍(김래원)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좋은 영향에는 친구였던 진서우 또한 일조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 홍지홍과 유혜정이 가까워진 것을 본 진서우는 그 질시가 그녀를 엇나가게 만든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유혜정의 비극(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현실과 마주하게 된)은 그녀가 의사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된다. 드라마는 좋은 영향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도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의사가 된 유혜정은 진서우의 아버지인 진명훈(엄효섭)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되면서 본인도 고통스러워진다. 그런 그녀를 다시 되돌리는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다. 홍지홍은 복수가 그녀 자신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내는 건 진서우의 변화다. 늘 대립하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친구로서의 관계 또한 유지해온 진서우는 유혜정을 통해 아버지의 잘못을 알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사죄한다. 진서우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유혜정 역시 변화하고 성장하게 됐다는 것.

 

사실 이런 화해적인 결말이 조금은 미진함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봐왔던 많은 드라마들 속에서 악역의 최후나 몰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본래 드라마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복수극이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영향을 받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걸 뉘우치면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극적 갈등이 드라마의 관건이라고 얘기되는 현실에서 이 같은 화해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닥터스>는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희망적인 화해를 담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닥터스>가 얻어낸 것은 특유의 따뜻함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던 건 바로 그 위로와 위안의 느낌이 충분했던 따뜻함이 아닐까.

 

무엇보다 연기자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박신혜와 어깨에 힘을 뺌으로써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김래원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 윤균상과 이성경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 그 자체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의 치유를 보여주었고, 멜로드라마지만 남녀 간의 사랑만큼 인간과 인간의 휴머니즘을 보여준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대본의 힘은 힘겨운 현실을 마주한 서민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닥터스>의 질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도 될까?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유혜정(박신혜)의 할머니 강말순(김영애)의 죽음은 분명 진명훈(엄효섭)의 과실이 있었다. 진명훈도 그걸 인정했고 유혜정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유혜정은 더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과라는 것이 단 한 톨의 진심도 들어가 있지 않은 말뿐인 사과였기 때문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하지만 뒤늦게 드러난 진실로는 법적으로 진명훈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미 시효가 모두 지나버린 사건들이고, 당시 유혜정의 아버지가 합의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런 과실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뜻도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합당한 처벌이나 진심어린 사과가 이어지지 않는 현실. 유혜정은 그 앞에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멜로라는 색깔을 전면에 갖고 있는 드라마지만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가 현실에 던지고 있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네 법 정의의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에 있어서 피해자인 환자 가족들이 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맞서 싸워 이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법을 오히려 악용해 약자인 환자 가족들이 끝까지 싸울 수 없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진실을 규명해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집안이 몰락하고 가족들의 미래가 파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닥터스>의 유혜정에게 그녀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홍지홍(김래원)그만하면 안돼냐고 묻는 건 그래서다. 그 현실을 아니까. 유혜정은 과거 할머니가 수술 중 사망했을 때 합의가 아니라 싸웠어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홍지홍은 만일 그녀가 그랬다면 지금 현재의 그녀는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 싸움이 그녀의 미래까지 파괴했을 거라고. 아픈 이야기지만 이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닥터스>에는 왜 우리네 현실에서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더 잘 살아가고 피해자들은 더 어렵게 살아가게 되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인식이 들어있다. 그것은 법 정의가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없는 이들은 그걸 실현하려 해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오히려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도 되는 것일까.

 

유혜정이 하려는 일은 복수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규명이고 그녀가 바라는 건 처단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 그러니 마치 유혜정이 하려는 것을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로 보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걸 홍지홍도 알고 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그는 그녀가 진실규명을 위해 나섰다 다시 상처를 받는 걸 원치 않는다. 그건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한 보통 사람들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잘못된 일을 들춰 바로잡으려 하는 일을 복수라는 잘못된 욕망으로 치부하며, ‘참고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일이고, 내가 잘 되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식의 체념적 사고는 어찌 보면 우리네 사회에 끊이지 않고 반복해서 터져 나오는 사건 사고들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이처럼 진실규명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미래까지 걸어야 하는 현실에서 잘못은 고쳐지기 보다는 덮여질 테니. 가진 자들의 돈과 권력으로.

 

<닥터스>의 유혜정이 하려는 진실규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못내 궁금해지는 건 이처럼 이 사안이 우리네 현실의 중차대한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연 바라는 대로의 진실규명과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까.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도. 과연?

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어떤 의미인가

 

멜로드라마에서 키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혹자는 사실상 멜로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남녀가 키스하는 그 순간의 달달함 때문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멜로드라마에서의 키스는 남녀의 관계가 좋은 감정 이상의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이고, 그로부터 멜로 특유의 행복감이 생겨나는 지점이며 또한 불안감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닥터스(사진출처:SBS)'

최근 부쩍 많아진 멜로드라마들에서 키스 장면이 만들어내는 관심거리와 화제는 그 드라마의 인기의 척도처럼 얘기된다. 이를테면 종영한 tvN <또 오해영>에서 오해영(서현진)과 박도경(에릭)이 하는 키스신은 서로 치고 받는 격렬한 느낌을 줌으로써 큰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의 쌓여 있던 감정들과 그것이 풀어내지는 과정을 그런 독특한 키스신이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하는 키스신은 조금 어색하고 서툴러 더 설레는 장면이 되었다. 즉 한 번도 키스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떨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키스신은 <닥터스>가 그려나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주며 성장해가는 그 과정에 잘 걸 맞는 것이었다. 키스신조차 기분 좋은 경험과 배움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W>의 키스신은 작품의 성격에 맞게 맥락 없이자주 벌어진다. 즉 극중 여주인공인 오연주(한효주)가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에게 뜬금없이 키스를 해대는 것. 물론 그 이유는 그녀가 웹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려는 목적 때문이지만, 그런 잦은 키스신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급진전되었다. 유머 있고 위트 있는 키스신이 작품의 묘미를 한층 높여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KBS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키스신은 자못 비장하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신준영(김우빈)은 자신이 점점 사랑하게 된 노을(수지)을 자꾸 밀어내다가 결국 기습키스를 하게 된다. 이 키스신은 신준영이 참다 참다 못해 내적으로 응축된 그 사랑을 폭발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으로서 임팩트가 있게 다가온다.

 

tvN 월화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에서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그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인 김현지(김소현)가 귀신 보는 박봉팔(옥택연)과 키스를 우연히 하게 됐을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는 사실 때문에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키스를 하게 된다. 일종의 핑계처럼 보이지만 이런 설정이 의외로 선선히 키스신을 가능하게 해 남녀의 관계를 더 가깝게 만드는 장치인 건 분명하다.

 

한편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공감 능력이 없는 이영오(장혁)가 계진성(박소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답변으로서 계진성이 이영오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아무래도 공감 능력이 없어 사랑의 감정은 물론이고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이영오에게 계진성이 한 걸음 다가가는 의미로서 키스신이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멜로드라마에서 키스신은 이처럼 그저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성격과 내용에 맞게 변주된다. 때론 의도적으로 관계를 급진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설정들을 통해 넣기도 하지만, 때론 향후의 폭발적인 힘을 내기 위해 오히려 자제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키스신의 한 장면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키스신의 반응은 그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를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닥터스>, 윤균상의 직진 외사랑에 매료되는 까닭

 

정말 사랑해서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그 인생에 들어가야죠. 타이밍 좋은 건데.”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유혜정(박신혜)에게 정윤도(윤균상)는 홍지홍(김래원)에게 연락하라며 그런 조언을 던진다. 사실 이런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홍지홍은 자신의 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닥터스(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사랑의 주역은 유혜정과 홍지홍이지만 그만큼 빛나는 인물이 바로 정윤도다. 유혜정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한 사람은 홍지홍일 거라고 정윤도에게 얘기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자신의 사랑을 다할 것이라고 유혜정에게 털어놓는다. 받을 걸 전제로 하지 않는 일방통행의 사랑. 정윤도의 그것은 외사랑이다.

 

<닥터스>라는 드라마에서 정윤도 같은 인물은 중요하다. 어찌 보면 유혜정과 홍지홍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멜로드라마에서 봐왔던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정윤도 같은 인물이 보여주는 사랑은 <닥터스>에 독특한 온기를 만들어낸다. 만일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구도처럼 정윤도가 홍지홍과 유혜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각을 세운다면 어땠을까. <닥터스> 특유의 따스함은 사라졌을 게다.

 

물론 이런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속의 각을 세우는 인물이 <닥터스>에 없지는 않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진서우(이성경). 서우는 학창시절에는 홍지홍을 또 현재는 정윤도를 좋아하지만 그 두 사람이 모두 유혜정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피해의식을 갖는다. 그래서 괜스레 유혜정에게 화풀이를 해대지만 그렇다고 사랑의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서우 역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에서는 벗어난다. 그녀는 이러한 유혜정에 대한 피해의식이 터무니없는 것이란 걸 깨닫는다.

 

정윤도라는 캐릭터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지만 연인이 될 가망이 전혀 없는 유혜정에게 끝까지 진심을 다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진서우의 마음 또한 배려해준다는 점이다. 게다가 연적일 수 있는 홍지홍과는 대놓고 유혜정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마치 형 동생 같은 친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것은 정윤도라는 인물의 따뜻한 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닥터스>는 의학드라마지만 사랑에 대한 담론들을 담고 있는 드라마다. 사랑은 타인을 위해 변화하는 것이라며 유혜정은 홍지홍에게 변화하라고 대놓고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그 자체를 사랑하겠다고 마음먹는다. 홍지홍은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이 하고픈 대로 연락하는 것보다 차라리 연락이 오는 걸 기다리는 마음이 더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다. 늘 홀로 결정하며 살아와 마음을 좀체 열지 않는 홍지홍에게 유혜정은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모두가 서툴지만 서로가 만나 변화하고 성장시키는 사랑. 이들의 사랑은 마치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정윤도는 이상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사랑이 빗나간다고 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런 인물. 또 자신의 그 사랑으로 인해 누군가 아픔을 겪게 된다면 그것 또한 배려하는 인물. 그러면서도 그것에 엄살 부리지 않고 늘 밝고 긍정적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그런 인물. 이러니 그의 직진 외사랑에 여심이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하명희 작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의 이상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그가 아닐까 싶다.

<닥터스>, 상투성을 깨는 하명희 작가의 좋은 시선

 

병원에서의 직진 로맨스와 34각 멜로,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한 대결 구도, 수술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인에 의혹을 품고 그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한 추적. SBS <닥터스>가 다루는 소재들은 의학드라마에서 늘 봐오던 것들이다. 로맨스야 심지어 가운 입고 연애한다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많이 나온 소재이고, 권력 대결은 <하얀거탑> 이후 의학드라마의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소재다. 여기에 죽음의 사인을 추적하는 이야기 역시 그리 새롭다 말하긴 어렵다.

 

'닥터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닥터스>는 이처럼 어찌 보면 상투적인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전혀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 들어가면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예를 들어 이미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서로 좋은 감정을 드러내고 남녀로서 가까워지고 있지만, 유혜정에게 공공연히 호감을 드러내는 정윤도(윤균상)와 또 그를 좋아하는 진서우(이성경)의 멜로구도를 보자. 이건 틀에 박힌 4각 구도가 아닌가.

 

하지만 그 4각 구도가 보여주는 양상은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그려낸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정윤도는 유혜정과 홍지홍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연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걸 질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대놓고 틈만 보이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홍지홍에게 마치 동생처럼 밥 사라고 투덜대기도 한다. 이들의 멜로 관계는 그 속내를 다 알지만 질척임 같은 것도 없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갈등 같은 건 더더욱 없다.

 

정윤도를 좋아하지만 그가 유혜정에게 호감을 보이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진서우라는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밉상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4각 멜로에서 보여주는 그런 식의 폭주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상황과 자라온 환경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 태생적으로 구제불능 캐릭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 주변에 피영국(백성현) 같은 친구가 있어 그녀를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봐주는 건 이 캐릭터에 대해 작가가 역시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해 홍두식(이호재)과 진성종(전국환)이 대립하고 그래서 홍두식은 진성종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본래 친구관계였다는 걸 끝내 버리지 않는다. 재수술을 앞두고 있는 진성종에게 홍두식이 면회 오자 그는 얼굴은 괜찮냐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홍두식은 진성종의 비자금을 알고 있다며 각을 세운다. 사적으로는 친구 관계지만 공적으로는 대립적인 관계라는 게 둘 사이에서는 공존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들 진명훈(엄효섭)수술이 잘못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진성종은 발끈하며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고 오히려 자식을 질책하는 대목 역시 독특하다. 흔한 병원 권력 투쟁의 이야기라면 이 진성종-진명훈 부자가 권력 쟁취를 위해 막나가는 그런 장면들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그와는 사뭇 다른 양상들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런 상투적 소재들 속에서도 상투성을 뛰어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이기도 하면서(이 드라마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명희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남다른 인물관에서 비롯된다.

 

하명희 작가는 심지어 불륜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애써 찾아낼 정도로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인물들이 폭주하는 그런 막장적인 상황 속에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그려진다. 우리가 그저 극적 전개를 위한 악역으로 치부해온 인물들도 그 속으로 들어가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진서우라는 밉상 캐릭터에게 홍지홍이 난 네 담탱이야. 네가 잘 되길 빌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마치 작가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밉상이지만 그래도 작가는 끝까지 그녀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영향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닥터스>는 그래서 의학드라마지만 환자를 고치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의 의학드라마라기보다는, 의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관계들을 통해 치유 받을 수 있는가를 다루는 의학드라마처럼 보인다. 유혜정은 그렇게 나락에서 홍지홍을 통해 구원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인물의 구원이나 성장이 교사가 학생에게 주는 것 같은 그런 일방향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다시 의사가 되어 유혜정을 만난 홍지홍은 그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홀로 서는 일에만 익숙했던 유혜정의 삶은 그것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홍지홍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혜정은 홍지홍에게 힘든 일도 모두 공유하자고 말한다. 홍지홍 역시 모든 걸 혼자 떠안고 결정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변화하고 성장한다. 뻔한 상투성의 소재 속에서도 <닥터스>가 주는 따뜻함과 위로, 위안 나아가 구원 같은 느낌은 바로 이 하명희 작가의 사람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에서 비롯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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