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누구의 편인가, ‘리턴’ 박진희 복수가 던지는 질문

“내가 왜 19년 동안 그 네 명을 직접 죽이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냐?” SBS 수목드라마 <리턴>에서 최자혜(박진희)가 변호인 금나라(정은채)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그의 복수가 단지 가해자에 대한 단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는 19년 간을 말 그대로 와신상담해왔다. 딸이 처참하게 죽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대상’이 되어 풀려난 가해자들이 버젓이 살아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기 위해.

당시 ‘촉법소년’이라는 명분을 법적으로 이용해 이른바 ‘악벤져스’들이 빠져나간 건 그들이 가진 재력과 권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갔고 대신 죄 없는 태민영(조달환)이 가난하고 힘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결국 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 되었던 것.

그러니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악벤져스’들의 범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자혜의 어린 딸을 죽게 만든 후에도 김정수(오대환)의 여동생을 성폭행했고 그럼에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오태석(신성록)이 말하듯 그들은 법이 처벌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법을 주무를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최자혜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만을 단죄한다는 것은 진정한 복수가 될 수 없었다. 그가 왜 직접 그들을 죽이지 않고 이렇게 복잡하게 사건을 이끌어왔는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는 염미정(한은정)의 사체를 그들의 차에 넣어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현재로 가져오게 했다. 당시에는 촉법소년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런 끔찍한 선택을 했다고 법이 판단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어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과거에 했던 그대로 똑같이 염미정의 사체를 유기하려 한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고 협박을 해온 자동차 딜러 김병기(김형묵)를 총으로 쏴 잔인하게 살해한다. 죄를 지어도 벌 받지 않았던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마저 둔감해져 버렸다. 물론 이들 악벤져스에 의해 죽을 위기에까지 몰렸던 서준희(윤종훈)는 어디서부터 그들이 엇나가기 시작했는가를 깨닫고 그 잘못을 뉘우치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번듯한 가정을 꾸려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한 강인호(박기웅)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죄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걸 묻어두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강인호는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건을 덮으려는 유혹에 흔들린다. 

법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리턴>이 최자혜의 남다른 복수를 통해 던지고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는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그 법의 부당함을 만방에 드러내려 한다. 과연 그건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 또한 범죄라고 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적어도 그가 하려는 그 일들 속에 담겨진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가해자는 버젓이 잘 살아가고 피해자는 그 상처 속에서 평생을 죽음처럼 버텨내고 있는 현실을.(사진:SBS)

'리턴' 박진희와 악벤져스를 망가뜨린 촉법소년의 아이러니

법이란 왜 공평하고 공정해야 할까. SBS 수목드라마 <리턴>이 하려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1999년 11월 4일 한 아이가 소년들이 모는 차에 치었다. 그들은 그 아이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바닷물에 던져 넣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법은 공정하지 않았다. 부유한 집안의 소년들 넷은 이른바 ‘촉법소년’이라는 ‘보호대상’으로 치부되어 풀려났고, 가난한 집안의 한 소년이 그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가해자들은 보호대상이 됐고, 아이의 엄마는 애타게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방화였다. 

그 아이를 잃은 엄마로 돌아온 복수의 화신이 바로 최자혜(박진희)였다. 촉법소년으로 풀려난 네 명의 소년들은 이른바 ‘악벤져스’가 되어 여전히 갖가지 폭력과 범죄 속에서 살아가지만, 지금도 법은 가진 자들의 편이었다. 돈과 권력의 힘으로 그들은 갑질이 자신들의 당연한 삶이고, 그것이 못 가진 자들에게 떡고물이라도 주는 일이라 여기기까지 했다. 그 때 악벤져스에게 모든 사건을 한 소년에게 뒤집어씌우자 제안했던 인물이 바로 염미정(한은정)이었고, 혼자 죄를 뒤집어쓴 소년의 동생이 독고영(이진욱)이 챙겨주던 후배형사 동배(김동영)였다. 동배의 어머니는 죄인의 심정으로 실의에 빠진 최자혜를 챙기려 했고 결국 동배는 최자혜가 하려는 복수를 돕게 됐다. 

최자혜의 복수는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시간을 1999년 11월 4일 그 때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이미 법의 판결은 나왔고 시간은 흘러 사건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현재지만, 피해자의 엄마였던 최자혜는 그 때의 시간으로부터 단 하루도 벗어나지 못했다. 가해자들은 죄를 잊고 제 멋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그 때의 상처를 지금껏 안고 살아가는 현실. 최자혜가 꿈꾼 건 가해자들 역시 그 시간으로 되돌려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악벤져스의 피해자인 김정수(오대환)가 염미정를 살해해 그 시체를 악벤져스의 차량 트렁크에 넣어 둠으로서 과거 그들의 최자혜의 딸을 차로 치었을 때의 상황을 다시 재연시켰다. 최자혜는 아마도 예상했을 테지만 악벤져스는 이번에도 이를 신고하지 않고 사체를 유기하려 했다. 그 때부터 악벤져스에게는 계속 사건들이 터졌다. 최자혜의 계획대로 그들은 자신들 앞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점점 과거 1999년의 사건을 떠올리게 됐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덮어졌다 여겼던 과거의 죄가 들춰지자 그로 인해 갈등하는 가해자도 생겨났다는 점이다. 악벤져스의 한 명이었던 서준희(윤종훈)는 사건을 덮기 위해 자신마저 친구들이 죽이려 하고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면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사건이 과거의 죄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자수하기로 마음먹는다. 강인호(박기웅) 역시 가정을 꾸린 한 아이의 아빠로서 갈등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죄를 다시 끄집어낼 수는 없다. 

독고영은 최자혜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고백한다. 자신 역시 친구를 죽게 했지만 촉법소년이라는 법 때문에 풀려났다는 것. 그는 죄를 저질렀지만 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실 때문에 지금도 또 앞으로도 평생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지금 시간을 되돌려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최자혜에게 과거로의 ‘리턴’을 멈추라는 것. 

<리턴>은 ‘촉법소년’이라는 법의 아이러니를 통해서 법집행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들까지 어떻게 삶이 파괴되는가를 보여준다. 피해자는 그 아픈 상처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가해자는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때 그대로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리고 또 어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은 사실을 오히려 더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법이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매듭 때문에 그들은 모두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 현재를 살아가지 못한다.(사진:SBS)

독한 드라마들에 가려진 편안한 ‘추리의 여왕2’의 가치

평범하지만 아줌마 특유의 관찰력으로 사건을 추리해가는 설옥(최강희)과 조직 내에서는 왕따를 당할 정도로 오로지 사건해결에만 뛰어들고 몸 쓰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형사 완승(권상우)의 조합.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2>는 국내에서 흔하지 않은 시즌2가 만들어질 정도로 그 캐릭터 조합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연쇄 방화사건 에피소드도 그 이야기 전개 과정을 보면 <추리의 여왕2> 특유의 색깔이 들어가 있다. 그저 평범하게 동네에서 벌어진 소소한 연쇄 방화사건처럼 등장하다가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는 방화사건으로 번지고, 거기서 범인이 붙잡히지만 완승의 집에 불이 나고 또 다른 범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식으로 이야기가 점점 커지고 심각해진다. 결국 인터넷에 올라온 방화 영상을 그대로 따라하는 카피캣이 방화사건의 전말로 드러나고 놀랍게도 약국집 아이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진다.

이런 점층적으로 확장되는 이야기와 더해져 완승과 설옥이 보여주는 때론 코믹하고 때론 달달한 케미의 재미는 이 살벌할 수 있는 소재를 편안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래서 여타의 범죄를 다루는 스릴러들과는 사뭇 다른 <추리의 여왕2>만의 관전 포인트가 생겨난다. 그건 조금은 편안하게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추리물’의 재미가 부여되는 것.

그런데 이런 남다른 재미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2>의 시청률은 좀체 오르지 않는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추리의 여왕2>는 CG를 활용해 정지화면에서 사건 현장 속에 들어가 완승과 설옥이 사건을 추리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그만큼 세련된 연출을 위해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첫 회 5.9%(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생각보다 저조하게 시작한 <추리의 여왕2>는 2회에 6.5%로 반등했지만 3회 만에 4.7%로 뚝 떨어졌다. 물론 많은 변수들이 작용했겠지만 이런 흐름은 경쟁작인 SBS <리턴>의 시청률 흐름과 반비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리턴>의 시청률은 <추리의 여왕2>가 시작하던 시점에 16.3%를 찍었지만 다음 회에 13.7%로 추락한 후 다시 16.2%로 회복됐다. 

마침 주인공이 교체되는 파행을 겪었던 터라 <리턴>의 추락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흐름이 나왔다. 이건 아무래도 드라마가 주는 자극의 강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리턴>은 이른바 ‘악벤져스’로 불리는 4인방의 엽기적인 범죄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 후에는 과거 이들 때문에 죽게 된 딸의 복수를 실행하는 최자혜(박진희)의 역시 독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추리의 여왕2>가 갖는 편안한 추리물의 재미는 어떤 면에서 보면 독한 드라마들 앞에서 진짜 소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2>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접근방식과 캐릭터가 주는 재미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피가 흘러넘치고 잔인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독한 드라마들이 주는 피로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이라면 오히려 <추리의 여왕2>가 주는 편안한 추리의 맛이 남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게다.(사진:KBS)

‘리턴’, 엽기적인 범죄? 이면에 담긴 피해자들의 억울함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드라마지만 이제야 그 본래 하려던 이야기를 알겠다. SBS 수목드라마 <리턴>의 제목이 왜 그렇게 정해진 것인지도. 

이 드라마는 이른바 악벤져스라 불리는 권력층 자제 4인방의 갖가지 폭력과 범법 행위들을 전면에 드러내며 시작했다. 그래서 시청률은 치솟았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급기야 이 4인방에 과하게 집중된 스토리는 이야기를 너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다. 

하지만 주연배우가 바뀌는 파행을 겪으며 새롭게 최자혜 역할에 박진희가 투입되면서 이야기는 전반부와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가장 큰 변화는 최자혜라는 인물의 미스터리한 과거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악벤져스를 둘러싼 갖가지 사건들, 이를테면 그들과 늘 함께 해왔던 염미정(한은정)의 죽음과 그 사체가 그들의 차 트렁크에서 발견되어 이를 유기하게 된 일이나, 염미정의 살인용의자로 강인호(박기웅)가 지목되고 그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경찰서로 가던 서준희(윤종훈)를 오태석(신성록)과 김학범(봉태규)이 붙잡아 죽이려고까지 했던 일, 그들이 염미정의 사체를 유기하는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영상으로 돈을 요구하다 오태석에 의해 자동차 딜러 김병기(김형묵)가 살해된 일 같은 것들이 모두 최자혜가 그린 복수의 큰 그림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악벤져스 4인방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한 후 바다에 던져진 소녀가 최자혜의 딸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모든 사건들을 의도적으로 벌어지게 만든 이가 바로 최자혜였다는 게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 그 소녀의 죽음과 부검결과를 속인 담당형사와 부검의까지 모두 살해당한 사실이 이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그 소녀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에 역시 악벤져스에 의해 여동생이 끔찍한 성폭력을 당하고도 그들이 무죄로 풀려나는 현실에 억울함을 토로하던 김정수(오대환)가 최자혜와 공모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판결에 동석했던 최자혜 판사는 그렇게 판사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다. 이미 그 때부터 이 모든 복수의 설계를 두 사람이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결국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법이 있어도 재력과 권력에 의해 덮어지고 피해자는 그 상처를 평생 가진 채 살아가야 하지만, 가해자들은 버젓이 갖가지 범죄적 행태를 하면서도 잘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항변이다. 최자혜 변호사는 법조계에 있었지만 그 법의 무력함을 알고는 이제 법 바깥에서 정의를 구현하려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그저 악벤져스들을 직접 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에게 다 잊혀졌던 과거의 그 사건들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끄집어내는 방식이다. 다 옛날 일이라며 그저 현재를 잘 살아가려던 악벤져스들은 그 과거와 마주하면서 다시 고통에 빠져버린다. 과거로부터 벗어나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건실하게 살아가려던 강인호나 그 과거의 잘못을 마음 한 구석에 죄의식으로 갖고 있던 서준희가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제목처럼 과거의 그 추악한 사건의 전말로 기억을 되돌리는(리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엽기적인 범죄의 연속으로만 여겨졌던 사건들이 알고 보면 묻혔던 과거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최자혜가 꾸민 큰 그림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 어쩌다 많은 파행과 난항을 겪으며 그 완성도에 균열들이 생겨나게 된 걸까. 본래 하려던 이야기가 갖고 있는 메시지가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런 파행들을 더더욱 안타깝게 만든다.(사진:SBS)


‘리턴’ 연기자 교체, 그 녹록치 않은 후유증에 대하여

SBS 수목드라마 <리턴>에 고현정 대신 박진희가 본격 출연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방영 도중 주연배우가 교체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후 과연 박진희로의 교체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효과는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분량은 대폭 늘었지만, 어쩐지 다른 캐릭터가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고현정이 초반에 연기했던 최자혜 변호사는 좀 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겉보기에는 털털한 성격에 농담도 곧잘 던지며 사건의 가해자들이 듣기에 섬뜩할 수 있는 팩트를 슬쩍 슬쩍 던져 놀라움을 주기도 하는 그런 캐릭터였던 것. 무엇보다 그 때의 최자혜 변호사는 분명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동시에 밝은 이미지 또한 가진 인물로 그려진 바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박진희로 교체된 후 등장한 최자혜 변호사는 이름만 같을 뿐, 고현정이 했던 캐릭터와는 너무 달라진 느낌이다. 우선 캐릭터가 너무 어둡다. 그건 연기자 교체라는 큰 변화를 무마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에 박진희를 조금씩 노출시켜 기존 고현정이 입었던 최자혜 변호사의 바통을 이어받으려는 연출적 의도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스토리의 변화와 인물에 대한 해석의 변화가 원인으로 보인다. 

<리턴>은 초반부터 이른바 ‘악벤져스’라고 불리는 악당들이 마치 장난처럼 저지르는 범죄행각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자극적인 전개에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상대적으로 최자혜 변호사의 비중이 줄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롭게 박진희가 투입되면서 의도적으로 최자혜 변호사 캐릭터의 비중을 높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방향성이 시청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즉 악벤져스의 범죄행각을 파헤쳐가며 그 진실에 접근하는 변호사의 캐릭터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숨겨진 최자혜 변호사의 ‘실체’를 보이는 쪽으로 그 분량이 늘었던 것. 최자혜 변호사는 악벤져스와 대립하는 인물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변호사라는 직업에 걸맞게 법으로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범죄자들이 하는 것 같은 ‘사건 설계’를 통해 행해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캐릭터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어둠에 빛을 던져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라, 과거에 겪은 어떤 사건에 의해 은밀히 복수를 계획하고 하나하나 실천해가는 인물로 새롭게 그려지고 있어서다. 물론 이건 애초부터 계획된 대본대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급변화하는 캐릭터는 그래서 그 과정을 설득시켜주는 ‘연기의 일관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만일 고현정이 계속 이 배역을 연기하며 이런 변화된 캐릭터의 면면을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만큼의 이질감을 주지는 않았을 게다. 하지만 캐릭터도 급변하고 동시에 연기자까지 교체되어 버리자 심지어 이들이 동일인물이 맞는가 싶은 이질감이 생겨났다. 몰입이 되지 않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분량은 늘었지만 고현정이 연기하던 최자혜 변호사가 어째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그 깨진 몰입감 때문이 아닐까.(사진:SBS)

<기억>, 드라마는 끝났어도 가시지 않는 깊은 여운

 

tvN 금토드라마 <기억>이 종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남겨 놓은 깊은 여운은 좀체 가실 것 같지가 않다. <기억>은 마지막까지 흔한 복수극의 엔딩을 탈피했다. 박태석(이성민)이 아들동우의 뺑소니범인 이승호(여회현)에 대한 복수가 아닌 진실규명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이승호가 자수하고 자신이 뺑소니범이며 친구까지 살해했다고 증언했을 때, 박태석이 뺑소니는 인정해도 살인은 인정하지 않은 건 그게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사진출처:tvN)'

뺑소니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끝난 상황. 결국 이승호는 풀려나지만 박태석은 그에게 진실의 무게를 느끼며 평생 그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또한 이승호를 찾아온 동우의 엄마인 나은선(박진희)은 어렵게 그를 용서한다. “난 동우가 너한테 상처가 아니라 희망이길 바라. 넌 우리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우리 동우는 너한테 희망이길 바라고 있어. 동우를 생각한다면 세상에 나가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게 동우가 너한테 주는 기회고 용서야.”

 

<기억>이 전한 것은 절망의 복수가 아닌 희망의 진실이었다. 진실의 무게가 복수보다 더 엄중하고,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을 가능하게 한다는 걸 <기억>은 전해주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또 한 축이 되었던 희망슈퍼 살인사건역시 그 진범인 신영진(이기우)이 체포되는 복수보다는 억울하게 범인으로 오인되어 무려 15년 간이나 복역해온 천민규의 무죄를 밝혀내는데 더 초점이 맞춰졌다. 박태석은 피고인에게서 희망을 빼앗은 사람은 본 변호인을 비롯해 검찰, 경찰, 그리고 힘 있는 권력자다. 우리 모두가 피고인에게서 희망을 빼앗은 공범이라고 말했다.

 

<기억>이 이토록 단죄 그 자체보다 진실규명을 더 절실하게 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 앞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복수든 법의 심판이든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안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 진실 규명은 그래서 그 어느 것보다 중대한 일이 된다.

 

<기억>에서 박태석은 생방송 중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아이러니한 말을 전한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후에 뒤돌아보니 그간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은 더 깊은 알츠하이머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기억의 측면에서 보면 스스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 많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지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우리네 현실에서 기억의 문제는 어쩌면 사회가 희망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국가적인 사건이 벌어지고도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사라지는 기억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진실을 덮으려는 가해자들은 물론이고 진실을 회피하려는 우리 모두가 공조해 생겨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사이다 복수를 보며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얻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건 진짜 기억해야 사안들의 진실이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마주하고 기억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기억>은 그 특별한 엔딩을 통해 그려냈다. 진실은 바다 밑에 가라앉히려 해도 결국은 떠오르고 회피하려 해도 먼 길을 돌아 다시 우리 눈앞에 마주하게 된다는 걸 <기억>은 전해주었다. 드라마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좀체 이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우리네 현실에 남겨 놓은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벌레로 살아갈 것인가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 아주 나쁜 놈이야. 당신 말대로 쓰레기고. 동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지옥 같아서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무섭고 두려웠어. 그래서 도망쳤어. 상처를 마주볼 용기가 없어서 있는 힘껏 도망쳤어. 기껏 도망친 곳이 진짜 지옥인지도 모르고 썩은 권력에 기생하면서 그들이 던져준 돈과 권력에 취해서 벌레처럼 살았어. 참 어리석었어. 매순간 진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매순간 그걸 놓치고 더 큰 죄를 지었거든. 그들도 나도 그렇게 살았어.”

 


'기억(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기억>에서 태석(이성민)은 전처이자 뺑소니사고로 죽은 동우의 엄마인 은선(박진희)을 찾아와 참회한다. 그는 자신이 지옥 같은 고통 때문에 기억으로부터 도망쳤지만 그 도망친 곳이 진짜 지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가 일에 빠져 살았던 태선로펌. 그 대표인 이찬무(전노민)의 아들 승호(여회현)가 사실 뺑소니범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것. 게다가 그들은 뺑소니 사고를 덮기 위해 씻을 수 없는 더 큰 죄를 지었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똑같은 어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동우의 어버이와 승호의 어버이는 너무나 다르다. 동우의 어버이인 태석과 은선은 드러난 진실 앞에 분노한다. 그리고 자각한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벌레의 삶이었다는 것을. 가해자들이 준 돈과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하지만 승호의 아버지인 찬무와 할머니인 황태선(문숙)은 여전히 돈과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덮으려 한다. 태선은 찬무에게 태석이 의심을 갖는다고 해도 증명할 건 아무 것도 없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찬무는 깨닫는다. 자신이 아들 승호의 죄를 덮기 위해 했던 일들이 승호에게는 어떤 기분을 주었을 지를. 그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모든 걸 덮으려 했던 어머니 태선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모두 널 위해서 한 일이다.” 태선의 변명 같은 말에 찬무는 답한다. “승호도 이런 기분이었겠군요.” 대물림되는 죄. 진실을 은폐한 대가는 이토록 무겁게 대를 이어 자식을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뺑소니 죄에 대한 응당의 벌을 받지 않고 살아오면서 승호나 그의 아버지 찬무 모두 또 다른 죄를 짓게 했으니.

 

<기억>이 건드리고 있는 건 어른의 삶과 선택이 후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권력에 기생해 살아온 대가가 얼마나 벌레 같은 삶이었는가에 대한 참회이고, 그 권력이 그 과거의 진실을 덮기 위해 여전히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칭해 쓰는 어버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감을 갖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버이는 진정 어떠해야 어버이라 불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어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부끄러운 단어로 오염되어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태석의 참회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도 내가 용서가 안되는 데 누가 날 용서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그를 전처인 은선은 오히려 위로해준다.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현실에 맞서는 태석은 비로소 동우의 아버지로서 어버이라는 자리를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버이들은 어쩌다 보니 부끄러운 존재들이 되었다. 스스로는 열심히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그것이 과거의 죄를 덮어버리고 쉽게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대가에 의해 이뤄졌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참회하기도 한다. 이러니 젊은 세대와 어버이 세대의 골은 깊어져간다.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세대는 친구가 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아픈 현실인가.

 

태석은 자신이 상대방의 약점까지 잡아 변호를 했던 대가로 자살한 김선호 박사의 유서를 젊은 변호사인 정진(이준호)에게 건네준다. 자신이 할 일을 끝내고 나서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이라는 것. 그렇게 되면 자신의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정변호사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정변은 김선호 박사와 관련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유죄라면 유죄야. 그치만 책임질 일은 없어. 내 말 알아들었어?”

 

자신의 죄를 자신이 책임짐으로써 젊은 세대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 태석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건 바로 그것이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짐까지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다는 태석에게 정변호사는 뜬금없이 인디언 말로 친구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그게 친구랍니다. 오늘부터 저 변호사님이랑 친구 먹은 겁니다.” 세대 간의 소통은 이런 식으로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곧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하지만 어버이라는 말이 이토록 창피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는 현실이라니.

<기억>,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가시 같은

 

기억이란 마치 가시 같다. 뺑소니로 아이를 잃은 박태석(이성민)은 그 기억이 가시처럼 뇌리에 걸려 있다. 그건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면서도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기도 하다. 전처인 나은선(박진희)은 그래서 그 기억의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아이를 잃은 기억의 고통을 자신과 박태석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일로 여긴다. 그녀는 태석에게 한시도 그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말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기억(사진출처:tvN)'

아마도 그 기억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서영주(김지수)와 재혼한 박태석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빠져 살아왔던 것은. 그런데 그 몸부림의 끝에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기억이 서서히 지워져가는 병.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잊고 싶은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지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은 자꾸만 잊혀진다. 술에 취해 그는 전처인 나은선의 집을 자꾸만 찾아간다.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건 제목처럼 기억이라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자 천형에 대한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지만 바로 그 잊혀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가시 같은 기억은 죄의식같은 걸 자극해 인간다운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태석의 아이를 뺑소니 친 채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승호(여회현)는 잊지 못할 가시 같은 기억 때문에 아이가 죽은 곳에 꽃다발을 갖다 놓는다.

 

잊고 싶은 기억, 잊혀지는 기억, 잊지 말아야할 기억. 태석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는 하루는 그 기억과의 사투 속에서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그는 일터에서 잊지 말아야할 기억을 잊어버려 낭패에 빠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렇게 뛰고 또 뛰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죽은 아이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다. 술 취해 나은선의 집에서 잠든 자신을 아내 영주가 찾아왔다는 그 기억에 미안해하고, 착한 영주의 심성을 빼닮은 아들 정우(남다름)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가슴 아파한다.

 

태석의 하루는 실로 전쟁터 같다.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동시에 자신의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태석은 조금씩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집단 따돌림 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하려던 정우를 찾는 태석은 그 누구보다 간절해진다. 또 아이를 잃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정우를 찾아낸 태석은 자신이 지켜내야 할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기억>이 그리고 있는 태석이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우리 시대의 가장들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태석 같은 존재가 기억 속에 아른거릴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어느 순간 떠나버렸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그 가장의 모습. 태석의 안간힘을 보며 어떤 슬픔 같은 걸 느끼게 됐다면 그건 이 인물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저마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잊어서도 안되지만 때로는 자의와 상관없이 사라져가는 기억. 우리는 어쩌면 태석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기억의 존재들이 아닐까. 물론 그는 알츠하이머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고 있지만 그게 아닌 우리가 그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기억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또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겨질 지도 모를

<구암허준>, 허준과 예진, 예수와 마리아처럼 보이는 이유

 

<구암허준>에서 허준(김주혁)과 예진(박진희)의 관계는 여타의 드라마들이 그리는 남녀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허준은 이미 다희(박은빈)와 혼례를 치른 기혼자. 허준과 다희의 부부관계는 그 누구보다 애틋하다. 드라마는 사실상 허준이라는 명의를 만든 것이 다희의 내조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토록 구박하는 오씨(김미숙)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모은 돈을 내의원 시험 보러가는 허준에게 건네는 다희의 모습은 전형적인 조강지처 그대로다.

 

'구암허준'(사진출처:MBC)

그렇다면 이 사극에서 사실상의 여주인공인 예진이 있는데 왜 허준은 다희와 이미 혼례를 치른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 걸까. 전형적인 드라마라면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멜로는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구암허준>은 애초부터 남녀 간의 멜로를 포기했다. 예진이 허준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존경에 가깝다. ‘부디 심의가 되셔서 천형을 지고 사는 병자들의 고통을 벗겨주십시오.’ 과거를 보러가는 허준에게 보낸 예진의 편지에는 그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허준과 예진의 관계는 <구암허준>이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구암허준>은 서자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저잣거리에서 행패나 부리던 허준이 의술을 배워가면서 차츰 심의(心醫)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 성인의 길이다. 대풍창(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삼적대사(이재용)가 약재를 실험하기 위해 스스로 독한 약을 먹는 모습이나, 그의 밑에서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허준, 예진은 그래서 인간이라기보다는 성자에 가깝게 그려진다. 허준과 예진은 마치 성경에서 나병환자를 구하는 예수와 마리아를 닮았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가난 때문에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 병자들을 구하는 허준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의성(醫聖)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도지(남궁민)와 그 일행들이 과거시험 때문에 눈앞의 병자를 내치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 그 많은 병자들을 돌봐주고 떠나는 길에 마을주민들이 “이 은혜를 어떻게 갚냐”고 하자 허준은 오히려 이런 말을 한다. “병자들을 다 보지 못하고 떠나 죄송한 마음일 따름입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허준에게 거짓말을 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돌쇠(이계인)의 에피소드 역시 의성 허준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겠다며 뿌리치던 허준은 결국 쓰러진 병자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노잣돈을 털어 약을 사오게 하고 갑자기 쓰러진 병자를 살리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병자의 입에 넣어준다.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길을 막은 돌쇠에게 화가 날 법도 하지만, 허준은 그 돌쇠의 절실함을 이해한다.

 

<구암허준>은 그저 의술의 길을 통해 어의에까지 오르는 허준의 그 출세와 성장담을 그리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대신 인간의 길과는 전혀 다른 성인의 길을 택한 한 의원의 이야기다. <구암허준>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작금의 출세와 성공에 목매는 세태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한 성자의 모습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암허준>이 때로는 종교적인 느낌마저 들게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지수에서 배종옥과 박진희, 그리고 한효주까지

이윤기 감독의 카메라는 늘 여자와 그녀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것이 여자의 섬세한 감정을 포착해 켜켜이 쌓아놓는 것으로 영화적인 성취를 이루어내는 감독의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감독이 다룬 영화의 이야기가 여자 주인공들의 감정변화를 따라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윤기 감독은 지금까지 찍은 영화 세 편에서 모두 여자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잘 잡아냈고, 그것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다. 그 여자 주인공들의 계보는 ‘여자 정혜’의 김지수에서, ‘러브 토크’의 배종옥과 박진희로 이어져 이번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한효주로 이어진다.

그의 카메라에 잡히면 여성 캐릭터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혹은 숨겨져 있던 독특한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여자 정혜’에서 그전까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김지수의 페르소나가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신비로운 식물’ 혹은 ‘깨질 듯 투명하고 아름다운 유리조각’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극중 여자 정혜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는 반짝거림과 동시에 외로움, 따뜻함을 숨겨놓은 차가움 같은 외면과 내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긴장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이윤기의 카메라와 연출력 때문이다. 그의 카메라는 늘 주인공 옆에서 서성댄다. ‘여자 정혜’는 영화 전체를 핸드 핼드 카메라로 찍어 고정된 화면을 볼 수가 없다. 이 서성대는 시선이 관객들로 하여금 정혜라는 여자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 불안하지만 친근한 시선에 관객의 시선이 맞춰지는 순간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일상적인 소소함을 지루할 정도로 잡아내는 이윤기의 연출력은 영화 속 캐릭터인 여자 정혜의 내면은 물론이고 심지어 연기자 김지수 속에 존재하는 여자 정혜를 끄집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윤기라는 감독이 연출한 ‘여자 정혜’라는 접신의 영화를 통해 김지수라는 연기자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해외영화제 수상과 국내 언론들의 호평 등, ‘여자 정혜’가 얻은 뜻밖의 성과는 이윤기 감독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했을까. 한 인물 주변에서 배회하던 카메라는 ‘러브 토크’로 와서는 굳건히 땅에 정착한다. 이것은 핸드 핼드 카메라가 갖는 단편영화 혹은 작가주의 영화적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카메라는 장르영화처럼 더 세련되게 움직이며 인물들을 포착한다(특히 자동차의 움직임과 그 속의 인물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세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전작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있는데 그것은 그 시선 속에 역시 배종옥과 박진희라는 여성 연기자들의 감정선을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이들과 이들 주변의 남자친구 혹은 연인들에 대한 ‘러브 토크’로 이루어져 있지만 감독은 이 두 여자의 심리와 감정의 부딪힘 같은 것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여자 정혜’가 개인의 아픔과 상처를 좀 폐쇄적인 관점에서 다루었다면, ‘러브 토크’는 대화하는 두 여자를 통해 그 상처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이윤기 감독은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다시 예전의 서성이는 카메라로 돌아간다. 그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인물은 한효주다. 우리에게는 윤석호 PD의 ‘봄의 왈츠’라는 드라마 속에서의 박은영이란 인물로 익숙한 한효주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 속에 숨겨진 아픈 영혼과 접신한다. 한효주는 어느 날 우연히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하룻밤동안 죽어 가는 한 남자의 딸 역할을 하게 되는 한 여자, 보경을 연기한다. ‘여자 정혜’가 폐쇄적인 상황에 놓인 한 여자의 아픔을 그려냈다면 ‘아주 특별한 손님’의 보경은 그 아픔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따라서 보경을 연기한 한효주의 페르소나는 좀더 적극적이고 솔직하다.

아쉽게도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대중적으로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고 저예산 영화의 성공작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 등장했던 여자 주인공들이 모두 성공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 정혜’로 데뷔한 김지수는 ‘가을로’에서 그 돋보이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러브 토크’에서의 박진희는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를 통해 섹시 발랄한 캐릭터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은 한효주는 또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물 주변의 일상들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것으로 그 인물의 감정을 통해 영화를 끌어가는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화면의 움직임이 적고, 파격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존 장르 영화적 관성에 싫증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독특한 여행을 제공해줄 지도 모른다.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문득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 여자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슬픔의 공감을 가질 지도 모른다. 거기서 우리는 한효주가 가진 감성의 속살을 살짝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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