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신화 버리자 활짝 열린 상상초월 요리신세계

백종원은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할 때부터 자주 했던 말이 “야매”, “우리끼리의 비밀”이었다. 그것은 그가 하는 요리가 가진 파격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요리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곤 했던 어떤 이미지를 깨는 면이 있었다. 그것은 파격이지만 또한 요리를 정석으로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심리적 저항감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이것을 ‘야매’라고 낮춰 마치 웃음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곤 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하지만 tvN <집밥 백선생>이 지금껏 해왔던 요리들의 신세계를 돌아오면 그 ‘야매’가 의도치 않게 해온 놀라운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우리가 요리하면 생각하는 그 정형화된 이미지를 깬 것이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집밥’의 이미지를 깬 것이다. ‘엄마의 밥상’만을 집밥으로 생각했었다면 <집밥 백선생>은 ‘집에서 먹는 밥’, 즉 누구나 다 해먹을 수 있는 밥을 ‘집밥’으로 새로 이미지화시켰다. 그건 ‘집안일 분담’을 위한 그 어떤 주장들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집밥의 신화를 깬 자리에 들어온 건 상상을 초월하는 요리의 세계다. 식빵을 구워서 잼 발라 먹을 줄만 알았던 우리들은 그걸 밀대로 밀고 돌돌 베이컨과 함께 말아서 구워 마치 롤처럼 잘라먹는 방식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것이야 어딘가의 레시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마트에 가면 1+1의 단골메뉴처럼 나와 있는 양념돼지갈비를 가지고 간단하게 갈비고추장찌개, 갈비된장찌개를 만드는 건 집밥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색할만한 레시피가 아닐 수 없다. 

굴소스가 없을 때 굴소스 비슷하게 만들어 사용하고, 굴전을 만들 때 굴에 부침가루를 조물조물 묻혀 달걀을 넣고 바로 전을 붙여내는 간단함을 보여준다. 값싼 냉동낚지를 사다가 소금으로 빡빡 닦아내고 살짝 물에 데쳐 탱글탱글하게 심폐소생을 해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게를 넣어서 만드는 뿌팟퐁커리를 게살로 뚝딱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맛의 상상을 통해 상식을 깨는 요리가 가능해진 건 모두 그 ‘야매’ 정신 덕분이었다. 

물론 이건 백종원이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닐 것이다. 그는 요리사업가로서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해온 전력이 있고, 그러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노하우가 이러한 상식 파괴 요리 레시피들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혼자 보유하고 개인적 사업으로만 활용하기보다는 방송을 통해 그 노하우를 알려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집밥’의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런 요리의 세계를 <마이 리틀 텔레비전>처럼 캠핑 요리 같은 개념이 아니라 <집밥 백선생>이라는 ‘집밥’의 틀로 묶어놓은 연출의 묘가 한 몫을 차지했다. 

<집밥 백선생>은 현재 시즌3로 33회를 마쳤다. 시즌1이 37부작이었고 시즌2가 36부작이었으니 전체 분량이 100회를 훌쩍 넘긴 셈이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2015년부터 현재 2017년까지 그 2년 간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 기간 사이에 우리가 오래도록 갖고 있던 그 ‘집밥’의 이미지가 깨지고 요리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중요한 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시세끼’, 산양유 하나로 이런 훈훈한 정경이라니

왜 하필 바다목장이었을까.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나영석 PD는 바다목장을 굳이 마련한 이유에 대해 “낚시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반은 진담 반은 농담이었을 게다. 낚시라는 소재가 방송에서는 물론 들인 시간에 비해 나오는 분량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낚는다는 그 사실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그 낚은 걸로 삼시 세끼를 챙겨먹는 이 프로그램이 또 잘 어울린다는 건 이미 첫 번째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이 보여준 바 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러니 낚시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새로운 그림을 원했다는 게 더 맞을 게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목장에서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잭슨 패밀리가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풍경. 그리고 그 젖을 짜는 특이한 체험만으로도 ‘어촌편’의 남다른 그림이 되어줄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은 여기에 룰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들이 짠 산양유를 제작진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정자에 마련된 잭슨살롱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 득량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고마움의 표시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렇게 마을 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정자에 냉장고 하나 마련해 놓고 매일 짠 산양유를 제공해드리는 것뿐인데, 그것 하나가 가져오는 파급효과는 의외로 크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산양유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 가는 길에 마을 분들과 출연자들은 교감하게 된다. 게스트로 온 한지민은 자전거를 타기 위해 내려가서는 어르신들에게 산양유 드셔봤냐며 맛은 어떻냐고 묻는다. 그 짧은 장면 속에서 어르신들의 훈훈한 정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급기야 옆집 아저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비닐봉지로 둘둘 싼 걸 냉장고에 넣어두며 “산양유 값”이란다. 시골 마을에서 이처럼 음식을 주고받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산양유를 맛보신 어르신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만무다. 마을 분들은 김치도 넣어주고 잡은 게나 소라도 넣어준다. 출연자들에게 이런 의외의 득템은 이번 <삼시세끼>의 색다른 행복감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을 분들에게는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무언가를 받은 느낌. 그건 바로 정이다. 

그렇게 받은 게나 소라가 <삼시세끼>의 밥상 위로 올라온다. 한지민이 마음을 졸여가며 정성을 다해 만든 해신탕에 마을 분이 준 게와 소라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 시청자들로서는 그런 밥상의 풍경 자체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다음번에는 또 어떤 분이 산양유 값이라며 무엇을 넣어주실 지가 궁금해진다. 이 정자에 마련된 ‘잭슨살롱’은 그저 냉장고가 아니라 마을 분들과 외지에서 온 출연자들, 제작진들 사이에 오고가는 마음이 나눠지는 공간이 된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음식을 먹는 일이 너무 편의적이고 기능적으로 되기 마련이다. 그만큼 바쁘고 모든 음식들이 돈을 주고 사고파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환산되는 세계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이나 마음 같은 걸 느끼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물건과 물건의 교환이 아니고(물건과 돈의 교환은 더더욱 아닌) 마음과 마음의 교감이 되는 잭슨 살롱이라는 공간이 주는 로망은 도시인들에게는 의외로 크게 다가온다. 

그렇게 음식을 주고받으면서 나눠진 마음 때문일까. 한지민이 화투 치는 동네 어르신 옆에서 살갑게 말을 붙이고, 그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며 마치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보는 듯 걱정 한 가득, 대견함 한 가득을 드러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은 섬이지만 득량도의 이 동네에 드리워지는 한 가족 같은 포근함.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도시의 삶에서는 도무지 느끼기 어려운 그런 것이 그 안에는 담겨져 있다.

엄마의 밥상 앞에선 <12> PD도 온순해진다

 

과거 <12>에서 이승기가 나영석 PD를 흉내 내 안 됩니다!” “을 외칠 때 그 복불복 결과에 대한 냉정함과 단호함은 이 프로그램의 색깔을 분명히 해주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너네 집으로특집에서만큼은 이런 단호함은 예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준호의 고향집을 찾아간 <12>에서 그의 어머니가 차려놓은 어마어마한 한 상 앞에, 제아무리 복불복 게임에서 진 그라도 어찌 굶게 만들 것인가.

 


'1박2일(사진출처:KBS)'

맛있게 음식을 먹는 승자들의 밥상을 보며 입맛만 다시는 아들을 위해 유호진 PD에게 한 그릇 허락을 얻어낸 김준호의 어머니는 대접을 가져와 밑에서부터 밥과 갖가지 반찬들을 탑처럼 쌓아올린 한 그릇을 아들과 진 팀에게 챙겨주었다. 음식이 가득한 밥상보다 채워진 음식들이 더 많아 보이는 그 한 그릇은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따뜻한 정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자식과 출연자들만을 위한 한 상이 아니었다. 함께 하고 있는 PD와 작가 그리고 스텝들까지 모두 배불리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챙겨놓은 어머니. 어머니가 굳이 유호진 PD에게 장어 한 점을 입에 넣어주는 모습에서는 모두가 자식 같은 마음이 묻어났다. 왜 그렇지 않을까. 자기 자식이 귀한 만큼 함께 하는 동료들도 모두 자식처럼 여겨질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아버님은 말씀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지만 그 반가운 마음을 아이고..”라는 한 마디 속에 담아 전해주었다. 김준호가 아버지를 닮은 듯, 그 얼굴에 가득한 장난기는 부자가 마찬가지였다. 봉투에 두둑하게 챙겨온 용돈을 아버지에게 건네자 슬쩍 그걸 빼앗으려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는 안 된다며 돈을 챙겨 넣으셨다. 부모를 둔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훈훈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말을 제대로 내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힘겹게 “1!”을 외치는 아버지. 그리고 거기에 맞춰 “2!”을 외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그래서 부모 자식 간의 정을 에둘러 보여줬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이 장면이 주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12>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선점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이 고향의 정서. 제 아무리 세련된 삶의 스타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해도 우리네 마음 속에 늘 남아 있는 곳. 그래서 항상 힘겨울 때 찾아가면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아도 그저 차려주는 밥 한 끼에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고향이 아닌가.

 

엄마의 밥상은 그래서 <12>에는 공기와도 같다. 그래서 시골 어느 마을에 들어가도 느껴지는 그 정감과 훈훈함은 그 엄마의 밥상이 주는 정서를 그대로 깔아놓는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왁자지껄한 자식들의 복불복과 놀이가 어르신들에게는 흐뭇한 미소를 자식들에게는 따뜻한 편안함을 주는 이유다.

 

이번 <12> ‘너네 집으로특집은 그 마지막에 며칠 전 별세하신 김주혁의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추억을 두 아들을 사랑으로 길러내신 주혁의 어머니 김의숙 여사를 기억하며라는 자막과 빛바랜 사진 한 장에 담아 전해주었다. 엄마들이 주는 그 따뜻함과 그리움. 그것이 <12>을 보며 느껴지곤 하던 고향 같은 훈훈함의 정체가 아닐까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16)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05)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050,478
  • 6476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