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이 담아낸 의병, 개화기, 여성, 멜로, 글로벌 콘텐츠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추석특집으로 드라마를 감독판으로 재구성해 방송하면서 ‘Gun, Glory, Sad ending’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부제들은 어찌 보면 김은숙 작가가 그간 멜로 장인으로 불리며 그려왔던 작품들과 비교해 이 작품이 얼마나 도전적이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총과 영광 그리고 새드엔딩’은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확장시킨 자신의 세계를 압축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성과라면 먼저 역사교과서에 박제된 사진 정도로 남아있던 ‘의병’이란 존재들을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로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역사교과서에서 한번쯤 봤던 의병의 사진을 기억한다. 1907년 경기도 양평에서 영국기자의 요청에 의해 찍었다는 그 사진 속의 의병들은 모두 총을 들고는 있었지만, 너무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이 농사 짓다 온 농부들의 모습이었다. 중간에 유일하게 정복을 한 군인이 있지만, 그는 군대가 해산돼서 의병이 됐다고 전한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저마다 아픈 상처 하나씩을 가진 채 산으로 모여 의병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의 장면은 여러 모로 이 사진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전당포를 꾸려오며 음으로 의병을 돕던 일식이(김병철)와 춘식이(배정남)의 모습은 막 그 사진에서 나온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 사진 속 모습은 저들이 저런 모습으로 얼마나 일제에 항거할 수 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어리고 전투경험이 없어 보였지만, <미스터 션샤인>이 이들을 다르게 느끼게 해준 건 그들이 의병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로 담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문물로 변화해가는 저자거리에서 인력거를 끌거나 빵을 만들거나 양장점에서 옷을 만들고 전당포에서 사연어린 물건들을 받아 돈을 대주며, 병원에서 아픈 이들을 돌보던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군화발로 들어와 무고한 조선인들을 총칼로 쓰러뜨리는 걸 차마 참지 못하고 맞서 총칼을 들게 된 이들이었다. 

고애신(김태리)과 쿠도 히나라 불린 본명 이양화(김민정)가,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들어와 자축연을 여는 일본군인들이 있는 글로리 호텔을 폭파시키는 장면은 그저 그런 액션 장면이 아니라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와 당대의 시대적 코드를 상징하는 장면이 된다. 한 사람은 모든 이들의 추앙을 받던 집안의 애기씨로 불렸고, 다른 한 사람은 일찍이 아버지에 의해 일본인에게 팔려갔다 빨리 개화하여 돌아와 호텔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불렸지만 모두 숨겨진 의병이었다. 글로리 호텔이 폭파하며 튀어 오르는 ‘불꽃’은 저 고애신이 말했듯 의병들의 삶과 죽음을 압축해 보여준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불꽃이지만 또한 영광(글로리)의 불꽃이기도 하니까. 

김은숙 작가는 이처럼 의병이란 존재가, 우리네 역사가 어려움에 겪을 때마다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던 사실상 역사의 주인이라는 걸 그려내면서, 거기에 개화기와 여성의 문제를 담는 시도를 한다.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들이 고애신과 쿠도 히나라는 사실이, 그들로 인해 이 의병의 삶에 동참하게 되는 유진 초이(이병헌), 구동매(유연석) 그리고 김희성(변요한)이란 캐릭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여성들의 불꽃이 너무나 활활 타올랐기 때문에 이들은 그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그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간다. 

이 부분에서 드라마가 절묘해지는 건 의병의 이야기와 개화기라는 시기 그리고 여성의 문제가 ‘낭만’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멜로 코드와 엮어진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개화기는 일제의 침탈과 항거라는 축으로만 이야기된 점이 있었다면, 김은숙 작가는 그 시기가 조선의 신분사회와 유교적 전통이 서구의 신문물과 만나면서 허물어지던 시기라는 걸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여성의 탄생에 주목한다. 고애신도 쿠도 히나가 드라마의 중심에 서게 되는 건 그래서다. 

의병이라는 존재의 재조명과 개화기가 가진 특수성은 ‘확장된 멜로 코드’를 통해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려진다. 거기에는 유진초이가 가져온 미국도 있고 구동매나 쿠도 히나가 가져온 일본과 프랑스도 있다. 그 안에는 개화기에 일어난 의병이라는 특수한 이야기가 있는 동시에, 그들이 의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적인 관계의 이야기들이 확장된 멜로 코드를 통해 담겨진다. “당신은 당신의 조선을 구하시오. 나는 당신을 구할 거니까. 이건 내 역사고 난 그리 선택했오.” 유진초이의 이 절묘한 대사는 의병과 개화기와 멜로 코드가 시공간적 특수성을 넘어 보편적인 이야기로 담겨지는 마법을 구사해낸다.

아마도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그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조화는 아마도 향후 우리네 드라마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 시장을 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추구되어야할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조선의 개화기라는 시공간은 그래서 향후에도 다양한 해석들로 드라마들이 풀어내야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우리는 ‘콘텐츠의 개화기’를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의병, 개화기, 여성, 멜로, 글로벌 콘텐츠...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작품 하나를 통해 거둔 성과들은 꽤 크다. 그리고 이 시도들은 향후 우리네 드라마가 나가야할 한 방향을 지목하고 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이미 시장은 열렸고, 우리네 대중들의 눈높이도 그 열린 시장만큼 높아졌다. 이미 시작된 글로벌 콘텐츠 전쟁 속에서 때론 새드엔딩이 될지도 모르지만 불꽃처럼 타오르는 의병들 같은 새로운 콘텐츠들의 영광스런 행보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미스터 션샤인>이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사진:의병박물관)

‘미스터 션샤인’ 각자의 길을 가던 그들의 같은 목적지

이완익(김의성)은 건드리지 말아야할 역린을 건드렸다. 고사홍(이호재)의 집을 찾아와 그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철로를 놓겠다며 집벽을 허물어버린 것. 벽이 무너지며 고사홍도 무너졌다. 그러면서도 총을 들려 하는 고애신(김태리)을 막았다. 그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이로써 고사홍의 집안은 멸문지화의 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가노들에게 전답을 나눠주고 고애신에게는 부모의 사진을 전해준 고사홍은 죽음을 맞았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이야기가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들불처럼 일어나던 의병들이 고사홍의 죽음을 계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고애신도 들어 있었다. 단아한 한복을 입은 애기씨 대신 양복을 입고 얼굴을 두건으로 가린 채 총을 든 스나이퍼. 

고사홍의 죽음을 기점으로 각자의 길을 가던 유진 초이나 구동매 그리고 김희성(변요한)도 이제 같은 목적지를 향하게 됐다. 유진 초이(이병헌)는 고사홍으로부터 일본군 장교 모리 타카시(김남희)를 제거해 위태로운 조선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완익은 조선인의 손에 죽어도 괜찮지만 일본인인 모리 타카시는 미국인 신분인 유진 초이가 죽여야 명분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또 구동매(유연석)에게 고사홍은 물불 가리지 않고 애신을 보호해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김희성은 고사홍의 49제에 참석했다가 애신을 찾아온 일본군들이 총칼로 살육하는 현장에서 운명처럼 애신을 보게 됐다. 자신 또한 죽을 위기를 모면한 김희성은 그 사건으로 애신이 총을 들게 된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됐다. 왜 조선에 당장 필요한 게 총인가 하는 것도. 그 역시 각성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제 본격화된 일제의 침탈을 고사홍의 집이 멸문하는 과정을 통해 담아냈다. 그것은 모리 타카시와 이완익에 의해 주도된 것이지만, 그 고씨 가문의 멸문지화는 조선의 명운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 심지어 상여길을 막고, 49제에 살육을 벌이는 일본군의 모습 속에서 총을 들고 나타난 고애신과 의병들의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과정에서 역시 총에 맞아 쓰러진 함안댁(이정은)과 그렇게 무너진 그를 보며 오열하는 행랑아범(신정근), 또 총칼을 들고 달려드는 일본군에게 활을 쏴 대적하는 조씨부인(김나운)의 모습은 이 항거에 신분도 남녀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들은 모두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질 테니.

결국 <미스터 션샤인>이 그리려 한 것도 바로 이 의병들의 이야기였다. 저마다 먼 거리를 에둘러 온 그들이지만, 같은 목적지에 당도하게 된 그들. 노비 신분으로 미국까지 갔다가 미국인 군인으로 돌아온 이나, 백정 신분이라는 것 때문에 핍박받다 일본으로 넘어가 낭인이 되어 돌아온 자나, 민초들의 고혈을 빨던 지주의 자손이라는 게 부끄러워 도망치듯 룸펜의 삶을 살다 각성한 자나, 나라를 팔아먹는 친일파의 딸로 일본인에게 팔려갔다 돌아와 독립적인 삶을 살려던 자나 혹은 고귀한 신분으로 모두의 존경을 받던 애기씨의 삶을 살던 자나 이제 얼굴을 가리면 똑같은 목적을 가진 의병이라는 걸 이제 드러내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들불처럼 일어나 번져나갈 그들.(사진:tvN)

민족성 말살, ‘미션’ 김남희라는 역대급 악역이 만들 변화들

“조선인들은 다루기 쉬운 종자요. 배만 안 곯리믄 알아서 꿇고, 사탕이라도 하나 물리믄 알아서 기고, 나머진 매가 약이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매국노 이완익(김의성)은 조선인을 다루기 쉽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모리 타카시(김남희)는 그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지적한다. 

“나라를 팔겠다는 자가 이리 성의가 없어서야. 조선은 왜란 호란을 겪으면서도 여태껏 살아남았어요. 그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 때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내놓죠. 누가? 민초들이. 그들은 스스로를 의병이라고 부르죠.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을미년에 의병이 되죠. 을미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모리 타카시는 조선인들이 결코 호락호락한 이들이 아니라는 걸 역사를 통해 꿰고 있다. 일왕 다음으로 유명한 집안의 장남. 대대로 ‘정한론(나라 안의 문제를 돌리기 위해 조선을 침략해야한다는 이론)’을 얘기하던 귀족 집안의 자제다. 그러니 아마도 그런 역사 인식은 자신의 집안의 이야기이기도 할게다. 임진년부터 그들이 겪었던 패배의 역사. 

이완익은 그런 의병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반박한다. 그들이 있었다면 자신의 목숨이 남아 있겠느냐고. 하지만 이완익의 반박에도 모리 타카시는 그것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니 문제잖아. 매국노 하나 처단해서 화를 풀기보다 그에 미칠 결과를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난 임진년의 선조들이 조선군에게 당했던 수치를 반복할 생각이 없어. 의병은 반드시 화가 돼. 조선인들 민족성이 그래.”

<미스터 션샤인>에 새롭게 등장한 모리 타카시는 이제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새로운 긴장 국면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걸 예고한다. 매국노 이완익이 고종(이승준)을 흔들고 외부대신에 앉아 조정을 농단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는 자신이 이제 할 일에 대해 섬뜩한 이야기를 한다. “하야시 공사가 본국에서 돌아올 때 일한의정서를 들고 올 거야.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은 목숨을 내놓고 달려들어. 자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 정신. 조선의 정신을 훼손해야지. 민족성을 말살해야 한다. 난 그런 일을 할 거야.”

고사홍(이호재)은 다름 아닌 모리 타카시가 말하는 바로 그 ‘의병’이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내놓는’ 그런 인물. 그는 뜻을 같이하는 유림들과 머리를 풀고 고종 앞에 나아가 상소를 한다. 그건 사실 자신을 잡아 가두라는 의미다. 고종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고사홍과 그 유림들을 감옥에 넣으라고 하자, 고사홍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조선인들의 민심을 하나로 끌어 모으려 한 것. 고사홍의 투옥사실이 알려지며 일본인들에게 대한 민심은 흉흉해진다. 모리 타카시는 바로 이런 일들이 벌어질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족성 말살.’ 실로 그 어떤 총칼보다 무섭고 우리를 공분하게 만드는 말이다. 모리 타카시라는 악역의 등장은 그래서 이제 개화기를 넘어 본격적인 일제의 만행들이 벌어질 거라는 걸 말해준다. 하야시 공사가 가져온다는 한일의정서. 이제 을사늑약이 머지않았다. 모리 타카시는 치밀한 정보와 계산을 통해 움직이는 인물이다. 김희성(변요한)에게 접근해 친일적인 신문을 만들어달라 회유, 협박하기도 하고, 자신과 각을 세우는 유진 초이(이병헌)의 약점이 될 수 있는 고애신(김태리)과의 관계를 알아내 이용하려 한다.

흥미로운 건 이 역할을 연기하는 김남희가 실제 일본인 뺨치는 모습을 통해 그 실감을 높여 놓고 있다는 점이다. 유창한 일본어에 일본인 억양이 섞인 우리말과 영어를 할 때면 그는 영락없는 일본인처럼 보인다. 그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저 악역이 아니라 그 시대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재연해내고 있는 악역들. 그들이 있어 <미스터 션샤인>의 이야기들이 팽팽해지고 있다.(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흥미진진한 악역들의 대결이 말해주는 것

드라마의 반은 악역들이 끌고 간다고 했던가.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군 츠다 역할의 이정현이 잠깐 등장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사라진 후 호평을 받았던 건 악역 한 명의 힘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진짜 뒷목 잡게 만드는 악역들은 <미스터 션샤인>에 넘쳐난다. 

그 대표격은 아무래도 을사5적 중 거두로 지목되는 이완용을 모델로 한 듯 보이는 이완익(김의성)일 게다. 조선인이지만 리노이에 히로아키로 불리는 친일파. 역관으로 시작했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물. 심지어 고종(이승준)마저도 계략으로 엮어 자신을 외무대신으로 세우게 만들 정도로 비상한 두뇌를 가진 악역이다. 

이완익 같은 악역이 지금에도 여전히 의미를 갖게 되는 건 ‘큰돈’이 된다면 나라도 팔아먹는 그 매국노적 반역 행위 때문이다. 물론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지금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적행위도 마다치 않는 자본주의 시대가 아닌가. 그러니 이완익 같은 인물이 중요한 악역으로 세워진 건 단지 일제강점기의 매국노라는 점 때문만은 아닐 게다. 심지어 제 딸까지 일본인에게 팔 듯이 결혼시켜버린 자본화된 인물이 바로 이완익이다.

이완익과 각을 세우는 하야시 공사(정인겸)도 중요한 악역이다. 을사늑약에도 관여한 실존인물이기도 한 하야시 공사는 극중에서 츠다 하사를 문책하는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상부의 허락 없이 미공사관에 쳐들어갔다며 죽음으로 사죄하겠다는 츠다 하사 대신 책임을 전가하려는 야마다 하사(최강제)의 목을 베는 장면이다. “진실보다는 쓸모 있는 미친 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하야시 공사의 대사는 당시 일제가 어떤 방식으로 조선을 침탈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친일파라고 해도 조선인을 믿지 못하는 하야시 공사는 이완익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완익은 일본을 대변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본을 뒷배로 세우는 인물이다. 그가 외부대신으로 앉기 전 그 자리를 지키며 친일행각을 벌였던 이세훈(최진호)의 뺨을 때리고 그 이세훈이 반상의 위계까지 내려놓고 이완익에게 무릎 꿇는 그런 장면은 여기 등장하는 악역들이 조선 혹은 일본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에만 집착한다는 걸 잘 보여준다. 악역들끼리의 대결이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그리고 초반 미국에서 유진 초이(이병헌)와 친구로 지냈던 일본인 모리 타카시(김남희)가 드디어 등장한다. 그 곳에서는 친한 친구였지만 조선과 일본이라는 국가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입장 때문에 대결할 수밖에 없다. 유진 초이는 아직까지 조선을 가슴에 품지는 않았지만 가슴에 품은 고애신(김태리)을 통해 조금씩 조선을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다. 무관학교의 교관이 되는 조건으로 강화에 산을 받은 건 그래서 상징적이다. 자신과 부모님이 설 자리 한 자락을 얻은 것이니. 

이완익이 어느 나라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악역이라면, 모리 타카시는 귀족 계급 집안에서 자라나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미국까지 간 인물이다. 그는 일본을 위해 앞장서는 인물인 만큼 이완익과는 또다른 결을 보이는 악역일 수밖에 없다. 유진 초이와 모리 타카시의 대결은 그래서 저마다 갖게 된 신념과 입장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보통 악역은 그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다. 초반 어린 유진 초이가 그 먼 미국까지 도망치게 만들었던 김희성(변요한)의 조부와 부모들은, 주인공인 유진 초이가 그 사적인 원한을 넘어서는 과정을 메시지로 담아낸다. 그는 사적 복수를 뛰어넘어 대의를 위해 나아가려 한다. 그래서 김희성이 대신하고 있는 사죄의 삶을 부모가 지지해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완익 같은 악역은 자본화된 우리네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인물이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인 것들을 내던지는 인물. 그런 부정들을 우리는 지금도 자주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 쉽게 발견하곤 한다. 모리 타카시 같은 악역은 국가주의라는 시대적 한계가 만들어낸 인물의 비극을 담아낸다.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삶은 이제 그다지 정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다.(사진:tvN)

‘미스터 션샤인’이 다루는 개화기, 그 독립의 의미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첫 회에 들어간 이 내레이션은 개화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저마다 투쟁하는 삶을 살아온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 드라마가 할 거라는 걸 예고한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조선의 빗장을 열고 침탈해 들어오는 그 시기와, 그래서 의병의 길을 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들이 원하는 그 길이 ‘조선의 독립’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 만이었을까. 그들이 원한 독립은 진정 조선만이었을까.

이 부분은 우리네 개화기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항일 투쟁의 역사에 집중하다보니 종종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 콘텐츠들은 마치 그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항일 투쟁의 역사만을 채택하곤 한다. 워낙 절박한 시기였으니 그런 선택들이 잘못됐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 사라지는 건 개인이다. 나라를 위한 선택들은 숭고하지만 동시에 개개인들은 어떤 투쟁의 시기를 거쳤을까. 항일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는 개인적 삶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개화기가 갖는 외세에 대항하려는 뜻과 전통적인 신분사회의 틀이 무너져가는 시기의 딴스홀과 모던보이로 대변되는 ‘낭만적 삶’에 대한 욕망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미스터 션샤인>의 인물들은 그래서 조선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향해 ‘각자의 방법으로’ 나가는 중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독립을 향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중이다. 

반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애기씨’로 불리며 살아가는 고애신(김태리)은 밤이면 남장을 하고 지붕을 뛰어넘으며 친일하는 자들에게 총을 쏘는 스나이퍼 의병의 길을 걷고 있지만, 또한 당시 조선의 여성들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던 어른들이 정한 혼사를 거부하고 자신의 정인이 따로 있음을 밝힘으로써 그 전통적인 조선 여성의 삶으로부터 독립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조선을 떠나 더 멀리 훨훨 자유롭게 날고 싶어 한다. 유진 초이(이병헌)와 함께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모가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조선을 도망쳤던 유진 초이는 고애신과는 정반대의 입장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조선인들에게는 미국인으로 불리고, 미국인들에게는 조선인으로 불리는 그 애매모호한 정체성 속에서 ‘대의’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개인’으로만 살기를 원한 그가, 차츰 고애신을 만나 그 대의를 같이 걸어가려 한다. 그는 조선 사회의 신분제 속에서 조선에 대해 갖고 있던 뿌리 깊은 분노와 신분에 대해 스스로 갖는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부모가 이완익(김의성) 같은 친일파 중의 친일파인 쿠도 히나(김민정)나 악덕지주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김희성(변요한)도, 부모와 집안이라는 과거의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독립하는 삶을 선택한다. 쿠도 히나는 글로리호텔을 운영하며 때론 아버지 이완익과도 대립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삶을 선택하고, 김희성은 신문사를 차려 억울한 이들의 진실을 전하는 일을 하려 한다. 

<미스터 션샤인>이 다루는 개화기가 용기 있다 여겨지는 건 그 시대를 다룬 콘텐츠들이 역사적 대의 앞에서 삭제하곤 했던 이런 ‘개인적 삶’에 대한 부분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의 독립은 누구나 추구해야할 대의지만, 또한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대 앞에서 개인들이 저마다 과거로부터 ‘독립’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 이들이 원한 독립은 조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사진:tvN)

‘미스터 션샤인’으로 만난 김민정의 인생 캐릭터

이 정도면 김민정의 인생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글로리 호텔 주인 쿠도 히나는 실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기모노를 입고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조선에 들어와 사업을 하는 일본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본래 이름이 이양화라는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신이 그런 일본 이름을 갖게 된 것이 뼛속까지 친일파인 아버지 이완익(김의성) 때문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이 캐릭터의 만만찮은 복합적인 심리가 그려진다. 

그는 늘 웃으며 손님들을 응대하고 때론 여유가 느껴질 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진 사업체의 경영자 면모를 드러내지만, 그 속에는 많은 걸 잃어버린 상처 입은 자의 날선 독기가 느껴진다. 남성들과의 대화 속에서 오히려 주도권을 쥘 정도로 신여성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그런 모든 행동들이 어떤 대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업주로서의 비즈니스적인 선택이라는 걸 분명히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황은산(김갑수) 같은 의병 대장을 뒤에서 움직이는 고종의 최측근 정문(강신일)이 쿠도 히나를 찾아와 은밀히 지시를 내릴 때, 그는 “그래서 내가 얻게 되는 게 뭐냐”고 묻는다. 그 질문 하나는 차별이 더 심했을 당시의 신분이나 성차 같은 권력관계를 비즈니스라는 차원으로 수평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쿠도 히나는 비련의 주인공이지만 <미스터 션샤인>에서 가장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인물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개화기 때 미국으로 도망쳤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전혀 애국심이라고는 없을 법한 유진 초이(이병헌)라는 인물이 고애신(김태리)라는 숨은 의병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을 만나 변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 주목되는 건 오히려 여성 캐릭터들이다. 고애신은 고운 한복을 입고 가마를 타고 다니는 반가의 애기씨지만 밤이 되면 양복으로 성별을 숨기고 총을 든 채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스나이퍼다. 개화기라는 구시대의 전통과 새로운 시대의 신문물, 문화가 겹쳐지는 시대를 고애신이라는 캐릭터는 그 상반된 양면을 통해 보여준다. 

그런데 고애신은 여전히 반가의 여식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일찌감치 김희성(변요한)의 집안과 약속해 놓은 혼사의 틀에서 벗어나 혼자 자유롭게 살아가겠다 말하는 인물이지만, 그게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쿠도 히나는 다르다. 이미 아버지를 통해 원치 않는 삶을 강요받고 많은 걸 잃어봤던 그는 이제 그 어느 것 하나 잃지 않겠다며 살아간다. 어찌 보면 쿠도 히나가 고애신보다 훨씬 더 개화되고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때론 돋보이기까지 하는 이유다. 

총을 든 고애신과 칼을 든 쿠도 히나는 <미스터 션샤인>이 개화기라는 시기를 통해서 담아내려는 신시대의 여성상을 상징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복합적이지만 너무나 단단한 내면으로 분명하게 호불호를 밝히는 쿠도 히나라는 캐릭터가 심지어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봐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쿠도 히나를 연기하는 김민정은 그래서 인생 캐릭터를 얻었다고 말할 만큼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빛내고 있다. 무표정할 때 드러나는 속내와 미소 속에 담겨지는 처연함, 웃음 뒤에 숨겨진 카리스마까지 그 복합적인 면들을 김민정은 자유자재로 연기해내고 있으니.(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변요한과 김민정, 어른 없는 세상의 청춘들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나를 낳아주신 부모의 뜻에 따라야 하는 걸까. 심지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게다. 나이가 많다 해도 어른다운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 이들을 어른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는 부모라면 그 길을 막아서고 저항하는 것이 진정 후대가 할 수 있는 부모를 위한 일이 아닐까.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김희성(변요한)과 쿠도 히나(김민정)가 취한 삶의 자세가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하는 일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고 거기에 반기를 든 자식들이다. 김희성의 아버지 김안평(김동균)은 비겁한 기회주의자다. 그의 조부 역시 독하디독한 악덕 지주였다. 조선사람 중 그들의 땅을 안 밟아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만석꾼 부자지만, 김희성은 이런 부모와 집안으로부터 도망중이다.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나 유학을 하다 돌아와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글로리호텔를 숙소로 살아간다. 저잣거리 국밥집에서 갑자기 물세례를 받아도 그게 조부 혹은 아버지 때문일 거라 여기며 그저 허허 웃는 인물이다. 부모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그는 그래서 탕진하듯 청춘의 시간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룸펜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부모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고애신(김태리)이라는 인물이 가슴에 들어온다. 그가 그저 반가의 애기씨가 아니라 밤이면 총을 들고 나서는 의병 스나이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김희성은 조금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활동을 돕기 시작한다. 고애신이 자신을 위장하려 입은 옷을 똑같이 차려 입고 거리로 나감으로써 그 옷을 유행시키고 그래서 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한다. 가진 건 돈뿐인 아버지의 이름 석 자라, 그걸 이용해 돈을 빌리러 다니고 그 돈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쿠도 히나(김민정)는 더 지독한 부모를 두었다. 그는 바로 뼛속까지 친일파인 이완익(김희성)이다. 쿠도 히나는 그래서 세 가지를 빼앗겼다. 자신의 엄마와 청춘 그리고 이양화라는 본래 자신의 이름이 그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뺏기지 않겠다고 자신을 단련시켜왔다. 딸을 일본인 거부에게 팔아치운 아버지가 다시 그를 찾아와 여전히 그를 이용해먹으려 하지만, 그는 그를 더 이상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도모하려는 일들을 막기 위해 글로리호텔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그건 의병활동을 알게 모르게 돕는 일이 되어간다. 

그런데 <미스터 션샤인>은 왜 하필 이런 김희성과 쿠도 히나 같은 부모에 저항하는 청춘들을 인물로 세우게 된 걸까. 그건 어쩌면 그 개화기라는 시대가 양산한 친일파들이 했던 처참한 일들이 실제하고,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금까지 청춘들에게 대물림된 힘겨운 현실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정을 농단함으로서 그 아픈 현실은 고스란히 후대의 몫이 되어버리는 그 현실은 그러고 보면 그 기원이 이미 저 개화기 시절부터가 아니었던가 싶다.

시대를 다룬 드라마는 그 시대를 가져와 현재를 얘기하기 마련이다. 김희성과 쿠도 히나 같은 인물에게서 ‘어른 없는 세상의 청춘’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다. 올바른 선택이 아닌 개인적 욕망과 치부를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선택을 해온 어른 없는 세상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 지금의 청춘들이 물려받은 치열한 현실은 그 어른 없는 세상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김희성과 쿠도 히나 같은 인물이 남다른 청춘의 초상으로 보이는 이유다.(사진:tvN)

‘미스터 션샤인’, 눈물 났던 당대 의병들의 숭고한 선택들

“작금의 조선에 조선의 것이 없다.” 구동매(유연석)에게 붙잡힌 이름 모를 아무개, 의병은 칼날이 자신의 목줄기에 닿아 있는 와중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구동매는 그 의연함이 궁금하다. 자신을 돈이 되는 일에 목숨을 걸지만, 이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걸까. 그래서 묻는다. 그 이유를. 

그러자 이 아무개가 조선의 사정들을 줄줄이 읊어 놓는다. 열강들이 수탈해간 조선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하는 것”이란다. “이런 나라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른 이를 발고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해놓은 구동매는 적이 당황한다. 그 아무개는 “내게 단 한 명의 이름도 듣지 못할 것”이라며 스스로 칼날을 목으로 당긴다. 가까스로 자결하는 걸 막은 구동매가 “미쳤냐”고 묻자, 아무개가 말한다. “들키면 튀고 잡히면 죽는다.” 그리고 백 번을 잡아도 자신의 동지들 누구든 그렇게 할 거라고 일갈한다. 칼자루는 구동매가 쥐었지만 그는 아무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처참하게 베인다. 자신의 삶이 새삼 보잘 것 없어지는 그런 느낌.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이 짧은 장면은 구동매에게 앞으로 일어날 심경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는 그렇게 아무개로 남을 그들의 숭고한 선택에 대한 뭉클함이 들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작품이 진정 하려는 이야기일 게다. 그 중에는 지체 높은 애기씨도 있지만 이름 모를 촌부들도 있고, 노비에 백정 출신도 있으며 무엇 때문에 이런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는지 알 수 없는 아낙네도 있다. 

주인공들은 그 많은 아무개로 남은 의병들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서 있다. 머슴이었지만 부모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인의 신분으로 돌아온 조선인, 백정의 아들로 일본에서 칼잡이가 되어 돌아온 일본인 조선인, 그리고 악덕 지주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삶으로 자신을 저주하듯 살아가는 룸펜 조선인,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일본인에게 팔려가듯 결혼해 남편이 죽자 돌아와 호텔사업을 하는 일본인 조선인 여인, 미군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안고 포수로 위장해 의병활동을 하고 있는 조선인 등등. 

그 중 유진 초이(이병헌)와 구동매 그리고 김희성(변요한)은 서로 다른 국적을 갖고 있지만 묘한 관계로 얽힌다. 어느 주점에서 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그들에게 주인이 ‘동무’냐고 묻자 그들은 모두 아니라고 답한다. 하지만 김희성이 자신들을 “미국인인 조선인, 일본인인 조선인, 잘생긴 조선인”이라고 농담처럼 표현한 것처럼, 그들은 조선인이라는 하나로 묶여져 있다. 그리고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자꾸만 일깨우는 한 인물이 존재한다. 바로 고애신(김태리)이다. 고애신이 선택한 쓸쓸하지만 숭고한 그 선택 앞에 세 남자는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까” 고민 중이다. 

유진이 애신에게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사대부 연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라고 묻자 애신이 하는 말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거사에 나갈 때마다 생각하오. 죽음의 무게에 대해. 그래서 정확히 쏘고 빨리 튀지....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꼭 필요하오. 할아버님껜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개화기 혼돈의 시대이기는 하나 그 나라를 위해 초개같은 자신의 삶을 던졌던 청춘들 역시 어찌 사랑이 없었을까. 애신의 유진을 바라보는 사랑이 가득한 눈빛과 그러면서도 의병의 삶을 향해 불꽃처럼 달려갈 거라는 그 말의 교차는 그래서 더더욱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거기에서는 의연함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선택은 그래서 나비효과를 만들어내며 주변 사람들을 움직인다. 어느 아무개 의병의 말 몇 마디에 구동매가 칼날보다 더 아픈 상처를 입었듯이, 애신의 불꽃 같은 몇 마디 담담한 이야기는 유진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참 못됐습니다. 저는 저 여인의 뜨거움과 잔인함 사이 어디쯤 있는 걸까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더 가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꽃 속으로. 한 걸음 더. 요새 전 아주 크게 망한 것 같습니다.’ 유진의 이 읊조림은 그가 이 여인의 삶 깊숙이 들어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애신이 말했듯 출신도 성차도 뛰어넘는 숭고한 대의다. ‘얼굴을 가리면’ 그들에게는 조선이 그토록 신분과 계급으로 짓눌렀던 억압을 뛰어넘어 ‘다 같은 아무개’가 된다. 추운 겨울 꽁꽁 언 얼음길을 애신과 유진이 함께 걸으며 유진이 자신을 노비신분이라 털어놓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살 얼음길 같은 그 ‘함께 가는 길’에 유진은 그 신분차이가 큰 장벽이라 여기지만 과연 애신도 그럴까. 죽음을 향해 기꺼이 달려가는 불꽃같은 삶에 그건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하지 않을까. <미스터 션샤인>은 이름 없이 등장했다 사라져간 의병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되고 어떻게 불꽃처럼 살다 스러져 갔는지를 애신과 유진 같은 인물들을 통해 아프게도 그려내고 있다.(사진:tvN)

육룡에서 하나의 용으로 우뚝 선 유아인


이제 2회만 남겨 놓은 SBS 월화사극 <육룡이 나르샤>. 고려라는 구악을 끝장내고 신조선을 세우기 위한 여섯 용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이지만 결말에 이르러 그 최후의 일인으로 남은 인물은 다름 아닌 이방원(유아인)이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사실 때문일 수 있다. 조선 건국에 있어서 그 포문을 연 건 이성계(천호진)지만 실질적으로 그 패업을 완성한 건 이방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계획하고 추진한 건 정도전(김명민)이었지만 그것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실행한 것 역시 이방원이었기 때문이다. 스승과 동생까지 죽이는 비정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이런 패업에 대한 결행이 있었기 때문에 세종 대의 태평성대가 가능했다.

 

그러니 여섯 용인,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이방지(변요한), 무휼(윤균상), 분이(신세경)가 고려를 끝장내고 조선을 함께 세워나가는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이방원이 하나의 용으로 우뚝 서게 되는 건 역사적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사극으로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이방원은 일찌감치 무휼이라는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호위무사를 얻었고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정도전을 제거하면서 사실상 아버지 이성계의 권력조차 꺾어버린다. 이방원에 대한 마음과 오빠인 이방지 사이에 서 있는 분이는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인 백성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남은 건 이방지와 이방원의 대결이지만 그건 쉽게 이뤄지기 어려운 일이다. 분이와 무휼이 있는 한.

 

<육룡이 나르샤>가 여섯 명의 용들이 서로 이합집산하며 대업을 이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 사극의 또 다른 볼거리는 이 여섯 용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대결이다. 그 누구 한 명 빠지지 않는 연기력이 <육룡이 나르샤>의 깊은 몰입감을 만들었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이성계 역할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천호진, 역시 연기의 지존이라고 불러도 아깝지 않은 정도전 역할의 김명민. 무술의 극한 경지를 보여주면서도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연기해낸 이방지 역할의 변요한,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에서 충직한 호위무사로 거듭나는 성장을 보여준 무휼 역할의 윤균상 그리고 가녀리게 보이지만 대장이라는 호칭에 걸맞는 강단을 보여준 분이 역할의 신세경까지. 모두가 좋은 대본에 걸맞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축에 설 수밖에 없는 이방원 역할의 유아인은 그 누구보다 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중심에 제대로 서지 않으면 <육룡이 나르샤>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정도전을 자신의 잔트가르로 여기며 스승으로 모시던 시기의 이방원은 패업을 위해 정몽주(김의성)를 죽이는 순간부터 각성하기 시작해 심지어 스승마저 죽이고 패업의 중심에 서게 된다. 연기를 통해 이 변화의 과정들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도 자칫 잔혹한 인물처럼 그려질 수 있는 행동들마저 어떤 공감까지를 만들어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결국 이 50부작의 긴 여정을 걸어온 사극의 중심에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서게 된 것은 어쩌면 역사적 사실이 그걸 예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의 과정을 잘 연기해낸 배우의 공적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실로 좋은 대본에 좋은 연기가 합쳐져 만들어낸 결과다. 배우로서의 유아인에게 <육룡이 나르샤>라는 작품은 그래서 또 하나의 전기가 되는 필모그라피가 될 듯싶다

어떻게 <육룡>은 다 아는 역사도 흥미진진하게 만들까

 

도대체 척사광은 누구인가. 사실 SBS <육룡이 나르샤>가 아니었다면 이런 궁금증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척사광은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척사광이 실존인물인 고려 최고의 무장 척준경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설정은 이 가상인물에 대한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게 만든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척준경이 누구인가. 인터넷에 이 인물에 대해 쳐보면 상세한 역사적 기록들이 나온다. 그는 고려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으로 황해도 곡산 출신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윤관과 함께 동북 9성을 쌓는데 기여한 인물로 뛰어난 용맹으로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곡산 척씨 가문의 시조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기록보다는 거의 하나의 신화처럼 전해지는 그의 놀라운 전공에 대한 이야기가 대중들에게는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여진족을 상대로 싸운 전공은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 같은 이야기로 회자된다. 심지어 수만의 여진족 병사들 속으로 단신으로 뛰어들어 적장의 수급 수십 개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이게 사실인지 무협지의 한 대목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그만큼 무협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인물이 척준경이다.

 

척준경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이야기는 무수한 추측들을 불러 일으켰다. 무휼(윤균상)의 무술 스승인 홍대홍(이준혁)이 척사광이 아니냐는 예측들이 쏟아진 건 그래서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그가 사실은 여자였고 왕요가 사랑하는 인물 윤랑(한예리)이었다는 사실로 이를 뒤집음으로써 최고의 반전을 만든다.

 

척사광의 등장 또한 그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방지(변요한)가 그토록 수련을 통해 성공시키려 했으나 되지 않았던 검 위에 잔을 올려놓고 하는 검법을, 윤랑이 중독된 왕요를 치유시킬 수 있는 해독제가 담겨진 날아가는 잔을 검으로 받아냄으로써 그녀가 심상찮은 무공을 가진 척사광이라는 걸 드라마틱하게 알려준다.

 

척사광이라는 캐릭터를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등장시키는 방식은, <육룡이 나르샤>가 이미 역사를 통해서 또는 무수한 사극을 통해서 이미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생각해보면 <육룡이 나르샤>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남은(진선규)이나 조준(이명행), 하륜(조희봉) 같은 인물들을 처음부터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인상적인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다룬 후 그가 사실은 이 인물이었다고 나중에 알려주는 방식을 써왔다. 이것은 이 사극의 주인공들인 이성계(천호진), 이방원(유아인), 정도전(김명민) 같은 육룡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썼던 방식이다.

 

알다시피 여말 선초의 역사는 무수한 사극을 통해 재현된 바 있다. 게다가 웬만한 시청자들이라면 이 시대의 역사와 그 인물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역사를 재현한다는 것은 과거 정통사극의 시대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맥 빠지는 일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 역사라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인물들의 등장을 비밀스럽게(?) 슬쩍 등장시켜 나중에 정체를 밝히는 방식으로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왔던 것.

 

척사광이란 가상인물이 실제 역사적 인물인 척준경과의 연관성으로 흥미로운 인물이 되는 것처럼, <육룡이 나르샤>의 가상설정 주인공들인 이방지, 무휼, 분이(신세경) 같은 인물이 흥미로워지는 것도 이들이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인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실제는 가상에 흥미로움을 덧붙이고, 가상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실제 역사 이야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가시킨다. <육룡이 나르샤>가 왜 실제 역사 인물 3인이 아니라 가상인물 3인을 합쳐 육룡을 만들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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