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의 핵보다 뜨거운 남북 철우의 브로맨스

역시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다. 그의 신작 영화 <강철비>는 사실 전작과는 너무나 다른 소재를 들고 왔다. 그것은 가상 핵전쟁 시나리오다. 북한 내에 쿠테타가 벌어지고 암살 위협을 피해 남한으로 북한1호와 함께 내려온 엄철우(정우성)가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를 만나 핵전쟁을 막기 위해 뛰고 또 뛰는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 그러니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가슴 뜨거워지는 인권변호사의 외침이 지금도 생생한 <변호인>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직접 영화롤 보게 되면 <변호인>과 <강철비>는 닮은 구석이 많고 또 그 느낌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변호인>이 인혁당 사건 같은 국가적인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접근방식으로서 인권변호사의 따뜻한 인간적인 행보에 집중했다면, <강철비>는 핵전쟁 시나리오라는 지금도 실제 상존하는 위협과 불안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그 접근방식으로는 북의 엄철우와 남의 곽철우가 동행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끈끈한 인간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철비>는 2006년 개봉했던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와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다. <한반도>가 점점 커지는 북핵의 위협이라는 불안감을 스펙터클로 잡아내는 블록버스터에 가깝다면, <강철비>는 그 안에서도 사람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철비>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은 전쟁 스펙터클이 주는 자극적인 면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데서 오는 감동 같은 것이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강철비’ 같은 살상무기에 의해 순식간에 지옥도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주는 끔찍함은, 그것이 분단 상황에서 적국의 위협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그 분단을 이용해 권력을 쥐려는 이들의 욕망에 의해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단지 끔찍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 장면이 상기시키는 건 이 분단 상황이라는 체제가 권력자들에 의하여 얼마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 공감대 아래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북의 엄철우와 남의 곽철우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어 핵전쟁을 막으려 공조하게 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적국이 된 상대방이 아니라 그 분단을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이라는 걸 확인하다. 그리고 그 공감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건 두 사람 모두 각각 지켜내야 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강철비>는 그래서 마치 핵전쟁이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 권력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벌어지는 비극에 남북의 두 인물이 핵보다 뜨거운 휴머니즘으로 맞서는 듯한 대결구도를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공교롭게도 ‘철우’인 건 이유 있는 작명이라 생각된다. 인명 살상을 위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그 끔찍한 ‘강철비’에 맞서는 두 철우(강철비)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이런 가상 전쟁 블록버스터에서도 뜨거운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건 역시 양우석 감독이기 때문일 게다.(사진:영화<강철비>)

임시완, 아이돌에서 연기돌, 연기돌에서 연기자로

이제 임시완에게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지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 어린 허염 역할로 잠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곱상한 외모가 연기보다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불한당>

하지만 2013년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할로 분해 갖은 고문을 당하는 청년을 연기하는 임시완에게서 아이돌의 이미지는 말끔히 지워져버렸다. 그 아픔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그는 진우의 그 처연하기까지 한 모습을 연기했다. 텅 비어버린 듯한 눈빛은 바로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연기자라는 호칭은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 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2014년은 그래서 임시완에게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했다 상승하는 연기의 진폭을 보여준 해였다.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그의 연기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캐릭터는 과장되게 느껴졌고, 당연히 그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말 <미생>이 다시금 그의 연기자로서의 진가를 끄집어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 때론 안으로 감정을 누르고 때론 밖으로 터트려내며 임시완은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가 되어갔다. 물론 그것은 너무 잘 맞는 옷이어서 그에게 넘어서야할 도전이 되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장그래의 잔상이 그에게서 느껴질 정도로.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불한당>의 현수라는 인물은 이 장그래라는 옷을 벗고 임시완이 또 다른 옷을 챙겨 입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작은 키에 어딘지 가녀리게까지 느껴지는 임시완의 이미지는 이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반전효과를 만들어냈다. 저렇게 예쁘장한 외모에서 어떻게 저런 폭발력이 나오는가가 놀라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영화 도입 부분에 감옥에서 현수가 거구의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며 “어 저 놈 봐라”하며 짜릿한 쾌감과 끌림을 느끼는 재호(설경구)의 시선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시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감옥을 나와 패거리들과 싸울 때 시계를 감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연약한 이미지의 임시완은 사라져버렸다. 

<불한당>이 보여주는 재호와 현수의 피와 눈물이 범벅되는 브로맨스는 어떤 남녀 간의 멜로보다 더 진하게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액션과 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임시완의 연기는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증오와 분노와 형제애 같은 정이 뒤범벅된 감정연기는 그래서 관객들을 그 인물 속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기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해내며 연기돌이라 불렸던 임시완은, 이제 사뭇 상반된 캐릭터 역시 연기해내면서 온전히 연기자라 불러도 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이제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변호인>부터 단 4년 사이의 일이라고 보기엔 놀라울 만큼의 성장이다.

하늘의 별이 된 김영애, 마지막까지 보여준 연기투혼

“묵은 빚은 돈으로 갚는 거 아이다. 눈으로 발로 갚는 기다.” 아마도 영화 <변호인>을 봤던 분들이라면 고 김영애가 연기한 국밥집 아줌마의 이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국밥 한 그릇 먹을 돈이 없어 도망쳤던 송 변호사(송강호)가 성공해 돌아와 그 때의 빚을 갚겠다며 돈을 내밀자 아줌마가 했던 그 대사. 

사진출처:영화<변호인>

이제 그렇게 찰진 대사를 더 이상은 들을 수 없게 됐다. 김영애는 지난 9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이 된 그녀의 소식이 특히 놀랍게 다가왔던 건, 최근까지도 우리의 기억 속에 선연히 남은 작품들 때문이다. 유작이 된 KBS <월계수 양복점>에서 우리는 전혀 그녀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 알려진 것이지만 끝까지 진통제 투혼을 보이며 펼친 연기는 그래서 우리에게 김영애가 얼마나 치열한 배우였는가를 각인시켰다. 

김영애만큼 극과 극의 이미지를 연기한 배우가 있을까. <로얄패밀리>나 <황진이> 같은 작품에서 그토록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지만, <변호인>은 물론이고 <닥터스>나 <판도라>, <카트> 같은 작품에서는 서민들의 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다는 소회 때문일까. 그래도 특히 기억이 남는 건 한 그릇의 국밥 같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서민적인 모습이다. 

<변호인>이나 <닥터스> 그리고 <판도라> 같은 작품을 보면 김영애라는 배우가 그 작품 전체에 어떤 정서를 만들어냈는지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물론 주인공의 역할은 아니지만 작품의 어떤 색깔을 부여하는 역할. 이를 테면 대사 한 마디로도 느껴지는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줌마의 그 따뜻함이 주는 서민적 정서는 속물이었던 송 변호사가 인권변호사가 되는 계기가 된다. 

<닥터스>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유혜정(박신혜)이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 당당한 의사가 되는 그 배경에는 역시 강말순 할머니(김영애)라는 존재가 자리했다. “밥 먹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해? 숨 달려 있으면 먹으면 되는 거지.” 거기서도 이 할머니는 유혜정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준다. <판도라>에서 사지로 아들을 보내며 오열하는 모습이나, <카트>에서 차츰 노동자들과 연대해가는 모습 역시 서민으로서의 아픔과 따뜻함 같은 걸로 기억된다. 

즉 원로배우로서 작품의 뒤편에 늘 서 있었지만 그 존재가 만들어내는 온기나 때로는 차가움마저 작품 전체의 중요한 정서를 담는 역할을 해줬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아마도 같이 작업을 해온 배우들로서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에 함께 작업했던 제작진들이나 배우들이 진심어린 애도의 뜻을 표하는 건 그래서다. 

김영애가 췌장암을 발견한 건 이미 2012년 <해를 품은 달>을 촬영하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책임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9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유작이 된 <월계수 양복점>을 촬영하면서도 고인은 아픈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고 대사 하나하나를 잊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작품 속에서 그 작품의 정서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고인은 아마도 배우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는 모습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 모습은 대중들에게 어떤 열정과 따뜻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변호인>에서 보여줬던 영원히 식지 않을 국밥집의 온기처럼.

<리멤버>, 이 복합장르에 담긴 <변호인><베테랑>

 

SBS 새 수목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은 다양한 장르들이 뒤섞여 있다. <별에서 온 그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냄새를 보는 소녀>처럼 SBS가 그간 열어온 이른바 복합장르의 유전자가 이 드라마에는 어른거린다. 주인공 서진우(유승호)가 갖고 있는 기억 능력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타인의 내면을 읽는 능력이나, <냄새를 보는 소녀>의 냄새를 보는 능력의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이고, 그들이 범죄에 연루되어 진범을 찾는 이야기도 비슷한 구조처럼 읽힌다.

 


'리멤버(사진출처:SBS)'

범인을 찾는 이야기가 스릴러 장르의 한 면을 보여준다면 서진우와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언제 사형당할 지 알 수 없는 그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의 애끓는 부자 관계는 가족드라마의 틀이고, 서진우와 향후 사건을 함께 파헤쳐나가며 사랑 역시 피워나갈 이인아(박민영)와의 관계는 멜로드라마의 틀이다. 여기에 박동호(박성웅) 같은 조폭 변호사 캐릭터는 저 <용팔이>의 조폭들에게 왕진가는 의사 김태현의 이야기가 살짝 변호사로 변주된 느낌이다.

 

각각의 캐릭터들도 흥미롭고 이렇게 장르적으로도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 일관된 흐름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놀랍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복합적인 장르의 장치들이 드라마를 보는 다양한 재미들인 반면, 그 기저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올 한 해 대중들이 그토록 몰입하여 들여다봤던 정의의 문제다. 과연 정의는 실현될 수 있을까.

 

영화 <변호인>을 쓴 시나리오 작가 윤현호의 첫 드라마라는 사실은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드라마에 대한 상당한 신뢰감을 만들어낸다. <변호인>은 송우석(송강호)이라는 한 인권 변호사를 인물을 세우고 있지만 <리멤버>는 세 명의 변호사가 나온다. 하나는 인권변호사 이인아이고 또 하나는 조폭변호사 박동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모든 걸 기억해내는 절대기억변호사 서진우다.

 

이처럼 세 명의 변호사가 제각각의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건 드라마의 다채로운 재미의 결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정의 실현의 문제가 우리네 현실에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뜻(인권변호사)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며 또 그렇다고 현실적인 처세(조폭변호사)로만 되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절대 기억 같은 놀라운 능력이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 명의 변호사가 맞서게 되는 인물은 남규만(남궁민)이라는 재벌 후계자다. 이 인물은 여러모로 <베테랑>의 공분유발자 조태오(유아인)를 닮았다. 금수저와 갑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만들어내는 키워드를 모두 갖춘(?) 인물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이 만만찮은 남규만이라는 인물과 세 명의 변호사가 대결구도를 갖는 것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리멤버>는 이처럼 최근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들과 정서들을 그 복합적인 장르의 틀 속에 기막히게 채워 넣고 있다. 그 요소들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서진우나 박동호 같은 캐릭터의 신선함이 있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기억의 문제를 이 익숙한 이야기 위에 변주하게 했다는 건 흥미롭다. 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아들은 너무나 모든 기억들을 세세히 갖고 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그 상반된 기억능력 때문에 고통 받는다.

 

기억과 정의의 문제를 교차시켜놓은 것도 흥미롭다. 어쩌면 진정한 정의의 실현은 법에 의한 처벌보다 기억이 해내는 것이 아닐까.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대중들의 기억을 상기시킴으로써 시대적 정의의 문제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던 것처럼, <리멤버> 역시 파렴치범으로 기억된 채 형장으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과연 아들은 돌려놓을 수 있을까. 오랜만에 다양한 재미의 결과 동시에 신선한 의미를 기대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나왔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님아, 그 강을..>

 

도대체 무엇이 대중들로 하여금은 손수건을 챙겨 영화관으로 향하게 했을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신드롬을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울고 싶은데 뺨 때린영화들이 가진 힘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물론 이 독립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는 영화지만 그것이 신드롬의 차원으로 이어진 데는 외적인 요인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처: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작년 말에 개봉해 올해 초에 신드롬을 이끌었던 <변호인>이나 올 여름 신드롬을 만든 <명량>도 마찬가지다. 영화적인 가치를 떠나 이들 작품들은 모두 현실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정서의 뇌관을 건드렸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향해 있지 않은 법 정의의 문제로 대중들을 울렸다면, <명량>은 세월호 정국으로 드러난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소환했다. 영화를 보러간다기보다는 억눌린 정서를 잠시나마 풀어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던 것.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신드롬 역시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유난히 많은 사건사고들로 점철된 한 해를 겪어내며 애써 눈물을 참아왔던 대중들이 아닌가. 이 영화는 마치 그 한 해를 참았던 묶은 눈물들을 쏟아내는 일종의 씻김굿의 현장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이미 입소문에 의해 그 내용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이 영화는 내용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가 비로소 함께 울고 있다는 그 공존의 위안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모두를 함께 울게 만드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죽음 같은 우리네 삶의 본질적인 것들에서 나온다. 결국은 모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본질. 거기에 헛된 욕망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좌절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취업전쟁과 팍팍해진 현실, 경제적 불황과 양극화 같은 좌절들마저 죽음 앞에서는 소소해진다.

 

그 앞에서도 어르신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은 실로 아름답다. 그것은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현실이 가려놓은 삶의 본질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그것이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할 본질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발 하나를 떼어 밖으로 나와 비로소 그 현실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자식들이 의견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 죽음을 앞둔 어르신이 그 메마른 눈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은 그래서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돌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강을 건너가려는 님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그 님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 우리네 미천한 삶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님이란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네 소중한 삶 그 자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삶이 힘들고 지쳐서 도무지 견디기 힘든 서민들이 작정하듯 손수건 하나씩을 들고 이 영화관을 찾는 것이다. 85분 동안의 웃음과 눈물은 우리네 삶의 본질을 찾는 시간이 된다. 먹먹한 감동에 영화관을 나서는 발길이 들어갈 때보다 가벼워져 있는 건 그래서다.

 

 

<명량>, 애국영화보다는 <변호인>에 가까운 까닭

 

요즘은 영화관에서 박수를 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70년대 말 80년대 초반만 해도 영화를 보며 박수치는 일이 흔했다. 이렇게 된 것은 과거에는 영화가 연극이나 비슷한 실제 무대 체험으로 받아들여졌던 반면, 이제는 영화가 그저 하나의 가상체험일 뿐이라고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량>을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이 시간을 거슬러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충동을 순간순간 느끼게 된다.

 

사진출처:영화 <명량>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이순신이 아들에게 던져주는 이 한 마디는 이 영화의 굵직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는다. 자신은 압송되어 고문까지 당하고 백의종군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라를 지키는 최 일선에 서 있는 이순신. 그 이유는 왕이 아니라 백성이라는 것. <변호인>국가는 국민입니다!”라는 한 마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명량>은 후반부의 해전 장면이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블록버스터지만 그렇다고 단지 전투의 재미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영화의 전반부가 다소 지루할 정도로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향해 있는 건 그 장수로서의 고민을 감성적으로 이해한 연후에야 바다에서의 전투가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죽음을 향해 스스럼없이 나아가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숭고미는 <명량>이 이순신 장군을 재조명하면서 바라보려는 것이다. 점점 다가오는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와 대적해야 하는 고작 12척 남은 배. 한 대 남은 거북선까지 불타버리고 병사들도 두려움에 탈영하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단 하나 남은 희망의 불씨를 떠올린다. 그것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명량이라는 회오리 바다는 그래서 바로 이 죽음에 대한 완벽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죽은 자들의 외침처럼 들려오는 그 바다의 울음소리가 주는 두려움을 내려다보는 이순신의 모습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는 표현이 중의적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이순신을 포함한 조선 병사들의 마음 속을 회오리치며 헤집고 다니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면서, 저 울돌목 바다가 만들어내는 무서운 조류변화를 오히려 전투의 기폭제로 활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명량>은 저 77년 반공시절의 <난중일기> 같은 다소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와는 여러모로 궤를 달리한다. 영화는 국가 같은 애국에 호소하기보다는 차라리 백성들을 위하는 애민에 더 호소한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장수가 백성들과의 의리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게다가 영화가 포착해내는 이순신의 내면은 그것만으로도 국적과 상관없는 위대한 인간승리의 휴먼드라마를 보여준다.

 

김한민 감독은 <최종병기 활>이 그랬던 것처럼 <명량>에서도 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단순하지만 묵직한 대결이 주는 액션의 묘미를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서 활이나 바다가 주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액션 속에 인물들의 감정이나 정서를 잘 얹는 감독인 만큼 죽음의 바다를 향해 나가는 이순신의 내면이 압도적인 전투신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최민식의 연기는 한 마디로 압권이다. 그 스스로는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100% 이해하지 못해 흉내만 냈다고 했지만 영화는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있어 비로소 수백 년 전의 영웅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표정 하나 동작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연기는 죽음 앞에서 오히려 담대하게 맞섬으로써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걸 몸소 보여준 이순신의 면면을 되살려놓았다.

 

만일 영화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명량 해전 당시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순신 장군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과 공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정작 나라를 지켜야할 정치인들은 저 살길만을 찾을 때, 오롯이 백성들만을 생각하며 선선히 죽음을 불사하고 나가는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대중의 욕망이 수백 년을 넘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저 명량의 회오리 바다가 놓여있다.

 

<개과천선><밀회>가 그리는 법 정의의 문제

 

최근 종영한 JTBC <밀회>에는 김인겸(장현성)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서한그룹의 사위이면서 그 재벌가를 지키는 변호사지만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그에게 가족이라고 손이 안으로 굽는 일은 좀체 없다. 그는 철저히 자기 이득에 따라 아무 쪽에나 붙을 수 있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서한그룹 비리의 증거를 갖고 있는 오혜원(김희애)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다가 거꾸로 그 증거를 공유하는 조건으로 그녀의 편으로 돌아선다. <밀회>가 그리는 김인겸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변호사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변호사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어떤 일들을 하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드라마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다. 이 드라마에는 차영우펌이라는 로펌이 등장한다. 차영우가 대표 변호사지만 이 로펌의 실질적인 에이스는 김석주(김명민). 그가 맡는 대부분의 일은 돈 많은 재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저지르는 온갖 비리와 악행들을 비호하는 것이다. 그는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로서 그 일이 어떤 일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저 회사의 샐러리맨으로서 이익이 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김석주는 일제에 강제 징용당한 어르신들의 반대편에 서서 일본기업을 변호하고, 재벌2세의 강간치상을 변호하면서 피해자 여자 연예인의 치부를 드러내 자살시도까지 하게 만든다. 그녀는 결국 죽은 재벌2세로 인해 살인혐의로 기소된다. 또한 그는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고에 책임이 있는 기업을 변호하면서 어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가지 않도록 무려 5년 간이나 사건을 질질 끌기도 한다. 결국 이 때문에 몇몇 절망한 어민들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에 봉사하는 전형적인 변호사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인물의 변화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점이다. 재벌가들의 하수인 역할을 해온 이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고쳐먹는다는 것. <밀회>에서 오혜원은 순수한 청년 선재(유아인)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되고 결국 자신이 비호하던 서한그룹 재벌가의 비리를 공개하고 스스로 죗값을 받는 길을 걸어간다. 자폭을 선택함으로써 법 정의를 다시 세우는 것. <개과천선>의 김석주는 어느 날 우연히 당한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게 되고 과거 자신이 했던 짓들을 되새기며 조금씩 재벌가가 아닌 서민 편으로 돌아서는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드라마가 모두 말해주는 건 법 정의라는 것이 어떤 인물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그 좋은 머리를 재벌가를 유지하고 비호하는데 써왔던 이들이 이제는 그들의 비리를 폭로하고 공격하는 입장에 선다는 점에서 이들 드라마는 현실에서 좀체 발견하기 어려운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에서 법은 정의의 편이 아니라 자본의 편이라는 것.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서민들을 위한 법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작년 <변호인>이라는 드라마가 그토록 대중들을 열광시킨 이유는 바로 이 서민들을 위한 법 정의를 부르짖는 송우석(송강호)이라는 변호인이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을 원한다. 변호사와 변호인의 차이는 그것이 직업적인 것이냐 아니면 인간적인 것이냐 에서 비롯된다. 직업적인 선택은 자본의 시스템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간적인 선택을 희구하게 된다. 김석주 같은 자본의 첨병으로서의 변호사가 어느 날 억울한 이들을 위한 변호인으로 개과천선하는 것. 이것이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 되는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까.

코미디언 출신의 영화 집착, 논란만 많은 까닭

 

서세원과 심형래. 최근 들어 이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들의 이름이 부쩍 논란의 도마 위에 자주 오르내린다. 서세원은 최근 폭행혐의로 아내 서정희씨에 의해 신고 당했다. 대중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추함을 넘어 추악함까지 보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서세원(사진출처:채널A)'

서세원은 자신이 제작 총감독을 맡은 영화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시나리오 심포지엄에서 빨갱이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안 지키면 자녀들이 큰일 난다.”는 발언을 해 세간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영화 <변호인>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란다.

 

또한 그는 똥 같은 상업영화 때문에 한 국가와 시대, 민족이 잘못된 집단최면 상태에 빠지고 있다.”고 말해 대중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이 발언은 대중들이 선택한 <변호인> 같은 상업영화를 같다 표현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발언들은 마치 <변호인>을 본 천만관객을 빨갱이에 물든 대중으로 표현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주었다.

 

결국 이러한 무리한 발언들 속에는 영화를 영화적 가치로서 대중들에게 선택받기 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편 가르기라는 편법으로 선택받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이른바 애국 마케팅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한 인물이 바로 심형래다. 그가 만들어낸 <디 워> 논쟁은 뜬금없는 애국주의를 내세워 부족한 완성도를 가리는 논란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영구아트의 폐업, 임금 체불로 인한 피소, 그 후로 생겨난 엄청난 구설수들. 하지만 지난 1월 개인 파산신청으로 170억 원에 달하는 채무 탕감을 받고, 또 직원 43명의 임금과 퇴직금 등을 체불해 불구속 기소된 후 벌금 1500만 원을 최종 선고 받은 그는 <디워2>에 대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영화란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이다. 작품의 경쟁력이 아닌 얄팍한 마케팅만으로 접근한다면 자칫 업계에 커다란 악영향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서세원과 심형래는 한때 이름만 얘기해도 웃음이 나는 최고의 코미디언들이었다. 서세원의 <토크박스>나 심형래가 활약했던 <유머일번지>의 무수한 코너들은 코미디업계에서는 하나의 레전드로 남아 있다. 그랬던 그들의 현재 모습은 연상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낯설게까지 다가온다.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달라졌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코미디언이라는 직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러하듯 코미디언 역시 오래도록 현업에 머물기 어려운 직업이다. 특히 코미디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코미디에 대한 일종의 폄하가 편견처럼 자리하고 있어 코미디언을 배우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업계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현업에 있을 때 일찍부터 은퇴를 준비하곤 한다. 코미디언들의 그 많은 음식점 개업과 실패 소식이 업계에 늘 떠도는 건 그래서다.

 

성공한 코미디언들이 영화감독을 꿈꾸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배우로서 좀체 인정받지 못하는 코미디언들은 그래서 영화 제작자나 영화감독으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서세원이 86년도에 <납자루떼>라는 영화를 만들어 실패를 경험한 것이나, 이경규가 92년도에 <복수혈전>으로 흥행 실패의 아픔을 겪은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심형래는 일찍부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코믹 괴수물로 큰 성공을 거둔 이례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결국 본격 상업영화 시장으로 들어온 그의 감독으로서의 행보는 결코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코미디언에 대한 저평가가 영화감독 같은 자리에 대한 욕망을 더 강렬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욕망과 감독으로서의 인정을 받는 일은 사뭇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감독으로서 인정받으려면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로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해외의 경우는 사정이 너무 다르다. 이를테면 우디 알렌이나 벤 스틸러 같은 코미디 배우이면서 동시에 영화감독들은 배우로서도 또 감독으로서도 칭송받는 인물들이다. 94년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청춘스케치>로 영화감독으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최근 개봉했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는 감독 겸 배우로 등장해 호평을 얻기도 했다. 우디 알렌은 코미디에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더 깊어진 영화의 세계를 보여주며 삶의 의미를 담아내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 우리는 우디 알렌이나 벤 스틸러 같은 코미디언들이 없을까. 어째서 비뚤어진 욕망으로 논란만 만들어내는 서세원이나 심형래 같은 안타까운 사례들만 나올까. 이것은 어쩌면 코미디에 대한 우리들의 뿌리 깊은 편견에서 비롯한 일일 수 있다. 그나마 임하룡 같은 중견 코미디언이 배우로서도 존재감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코미디언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들이 오롯이 배우로서 인정받고 그 위에서 지평을 넓혀가는 건 우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까. 제발 더 이상 비뚤어진 욕망으로 왜곡된 안타까운 사례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변호사들의 개과천선, 서민들에게는 판타지

 

우리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호사가 서민들을 위해 변호하는 장면은 얼마나 될까. 아니 실제 현실에서는? 서민들이 변호사를 쓴다는 일은 그렇게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변호사들의 일이란 돈 많은 이들을 의뢰인으로 삼았을 때 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물론 인권변호사 같은 특별한 존재들이 있지만.

 

'개과천선(사진출처:MBC)'

변호사의 개과천선이 주는 깊은 감동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영화 <변호인>이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는 세법 변호사로 돈을 버는 지극히 평범한 속물 변호사에서 자신과 인연이 있는 국밥집 아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난다. 서민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변호사가 일종의 슈퍼히어로처럼 여겨지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법에 의해 움직이고 그 법은 돈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닌 억울한 서민들의 편에 서는 변호사는 그래서 서민들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변호사는 최고의 로펌인 차영우펌의 에이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는 오로지 회사에 돈을 주는 재벌 의뢰인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변호를 해온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하고 기억상실을 겪게 되면서 그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 테마다.

 

엄청난 법 지식과 노련한 경험을 갖춘 이 변호사 슈퍼히어로는 사고 후 깨어난 병원에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서민들의 일들을 척척 해결해낸다. 옆 병상에 있는 자동차 사고를 겪은 이가 보험회사 직원과 벌이는 실랑이를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몇 마디 던지는 걸로 김석주 변호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카시트는 대물배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보험회사 직원의 말에 대해 그는 만 8세 이하 아이들은 카시트에 태우는 게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에 카시트가 고객 개인의 편의나 취향에 따라 장착된 설비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당연히 보험회사에서 대물배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또 병상에서 떨어져 다친 환자에게 병원측이 그건 환자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2차 사고라며 병원비나 간병비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자, 김석주 변호사는 병원 내에서 충분한 보호장치를 하지 않았고, 병원 지배구역 내에서 일어난 일이며, 간호 수칙과 간호 매뉴얼을 100%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병원측이 병원비, 간병비를 보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법 조항과 적용에 대해 잘 모르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데 이 김석주 변호사는 뭐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마디 던지는 것만으로 일을 척척 해결해낸다. 이것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기대감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그 대단한 실력과 능력을 가진 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서민들을 위해 쓴다는 것.

 

김석주 변호사의 옆자리에 위치해 그와 점점 가까워질 존재로서 이지윤 인턴(박민영)의 역할 또한 작지 않다. 그녀는 김석주 변호사의 변화를 가까이서 목도하는 인물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곱씹게 해주는 역할이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질 멜로는 그 인간적인 변화가 가져오는 달콤함 결과물이 될 수 있다.

 

왜 현실에서는 개과천선한 변호사를 만나기 힘들까. 그것은 그 직업적 선택이 결국은 자본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 정의를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게다. 그래서일 것이다. 더더욱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나 <개과천선>의 김석주 변호사 같은 이들의 변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마치 사회적 부조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거꾸로 정의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처럼.

<추격자>에서 <괴물>까지 인재를 꼬집는 영화들

 

그랬다면 어땠을까. 배에 화물을 과적하지 않았다면, 화물들과 자동차를 좀 더 단단히 고정했다면, 배의 무게를 잡아주는 밸러스트 탱크에 제대로 물을 채워 넣었다면, 배가 기울었을 때 제주가 아닌 진도에 바로 구조요청을 했다면, 승객들에게 서둘러 대피 공지를 냈다면, 선장이 선원들만 챙기지 않고 끝까지 남아 승객들을 먼저 챙겼다면 어땠을까.

 

'사진출처: 영화 <괴물>'

또 사고가 난 후에도 곧바로 정부가 자기 자식을 잃은 것처럼 혼신의 힘을 다했다면, 발표에 우왕좌왕하지 않았다면, 초동대처에 재빨랐다면, 애초부터 바지선과 오징어잡이배를 동원하는 생각을 실종자 가족들이 아닌 정부가 먼저 해냈다면, 또 이제야 투입되는 각종 첨단 장비들이 좀 더 일찍 투입되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 참사를 되짚어보면 어째서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일련의 선택들을 했는지가 의아할 정도다.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회들이 있었다. 거기서 제대로 된 선택들을 했다면 조금은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재난이 천재가 아닌 인재의 축적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왜 우리네 참사는 늘 인재일까. 영화가 현실일 수는 없지만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그대로 말해주는 건 사실이다.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마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건 공권력의 무능이다. 결국 경찰에 잡히게 된 연쇄살인마가 풀려나게 되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게 되는 상황은 대중들이 바라보는 현실인식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공권력은 믿을 수 없다. 결국 믿을 건 나 자신 뿐이다.

 

<괴물>에서 문제가 되는 건 한강에 출몰한 괴물 그 자체가 아니다. 괴물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가 더 큰 문제다. 결국 정부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이들을 격리하고 심지어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양산해낸다. <괴물>이 말하는 진짜 괴물은 정부의 공권력인 셈이다.

 

<변호인>에서 멀쩡한 청년을 파괴하는 건 역시 잘못된 공권력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다고 용공세력으로 몰려 고문당하는 현실. <변호인>의 분노는 국가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공권력의 오만에서 비롯된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카리브해에 있는 외딴 섬에서 통역 서비스조차 없이 수감생활을 하게 된 건 당시 재외공관의 무능 때문이다. 국민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할 당시 프랑스 한국대사관은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인재 중의 인재다.

 

이것은 그저 영화의 이야기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때때로 벌어지는 홍수나 폭설로 인한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가 늘 듣는 단어가 있다. ‘인재라는 것이다. 사고는 물론 미리 대비하고 예방해야 하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터졌을 때 그 대응체계는 실로 중요하다. 그 체계에 따라서 천재보다 더 큰 인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만 터지면 정부의 무능을 발견하게 되는 끝없는 인재의 연속. 언제쯤 이 단어를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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