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맨스 터지는 ‘터널’의 형사들 어딘가 다르다

30년 시간의 터널을 훌쩍 통과해온 형사 박광호(최진혁). 30년 전 그를 따르던 막내 전성식(조희봉)이 어느덧 강력 1팀장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팀에서 박광호는 이제 막내 처지다. 그러니 박광호는 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팀의 위계질서 속에서 투덜댈 수밖에. 그런데 워낙 그를 따르던 막내였던 탓일까. 전성식은 박광호가 바로 그 30년 전 실종된 선배라는 걸 알아보고는 길거리에서 누가 보는 지도 모르고 껴안고 반가워한다. 

'터널(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터널>의 이 풍경은 사실 조금 낯설다. 흔히 형사물 스릴러 장르에서 남자들의 세계는 거친 면들만 부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지어 차갑게 느껴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터널>은 이런 스릴러 장르의 폼을 잡는 대신, 형사들의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다. 박광호와 헤어지며 전성식이 “이번엔 그냥 훅 사라지면 안돼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애인에게 하는 말처럼 살갑다. 브로맨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그렇게 박광호가 사실은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나타난 선배라는 걸 알면서도 강력1팀으로 돌아오면 두 사람의 선후배 관계는 뒤집어진다. 박광호는 그럭저럭 존댓말을 하는 게 익숙해지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성식은 좀체 그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막내 박광호에게 존댓말이 튀어나온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팀원들은 마침 교육을 갔다 온 전성식이 후배들에게 존대를 하라는 교육을 심하게 받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 

사실 이런 깨알 설정들은 형사물 스릴러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전 OCN 드라마였던 <보이스>의 경우, 이런 코믹한 깨알 상황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살인사건의 연속과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들의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가 이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터널>은 다르다. 똑같이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범인을 추격하는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중간중간에 형사들의 애환이 코믹한 상황으로까지 연출되어 있다. 

강력1팀의 곽태희(김병철)와 송민하(강기영)는 그래서 마치 만담 콤비처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숨 쉴 여지를 제공한다. 특히 <수사반장>을 좋아하는 마니아로 설정된 송민하는 주목할 만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서 나타난 박광호의 구식 스타일을 오히려 멋있게 느끼며 <수사반장>을 흉내낸다며 촌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나타난 송민하라는 형사는 <터널>이 형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려 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터널>에는 미드 [CSI]를 연상케 하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박광호와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김선재(윤현민)가 그렇고, 범죄심리학자로 범죄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신재이(이유영)가 그렇다. 하지만 <터널>이 추구하는 방향은 스릴러이고 형사물이면서도 어떤 따뜻한 인간미라는 건 명백해 보인다. 부검의로 등장하는 목진우(김민상) 같은 캐릭터를 보면 냉철한 분석을 해내면서도 박광호에게 농담을 툭툭 던질 정도로 인간미를 보여준다. 

<터널>의 형사들이 여타의 스릴러 장르물들과 달리 따뜻한 느낌을 주는 건 의도된 장치다. 결국 이 드라마는 범인을 잡는 형사물이 분명하지만 그 범인을 어떻게 잡는가 하는 그 방식에 더 집중시킨다. 즉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타임리프 설정은 과거의 아날로그적인 형사 박광호를 현재로 소환시켜 이른바 과학수사라고 불리지만 과학적 수치에 가려진 인간애나 생명에 대한 간절함 같은 걸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가. 

그래서 <터널>이 추구하는 건 [CSI]가 아니라 오히려 <수사반장>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간절함. 마치 가족 같고 형제 같은 느낌을 주는 형사들의 관계. 때론 웃기고 때론 짠해지는 동료애 같은 것들이 <터널>의 형사들에게서는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주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영화보다 낫다..OCN 무비드라마 빛 보나

OCN 새 주말드라마 <터널>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첫 회 2.8%(닐슨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2회 만에 3%를 넘겼다. 같은 시간대의 OCN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보이스>가 첫 회에 2.3% 그리고 2회에 3%를 넘긴 후 5%가 넘는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이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터널>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터널(사진출처:tvN)'

<보이스>가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본격 스릴러 장르로 성공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비슷한 스릴러 장르를 갖고 있는 <터널>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즉 OCN이 무비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10여년 간 지속해왔던 본격 장르물에 대한 투자가 이제 그 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스릴러 장르를 통해 보여준 <보이스>의 성공은 그만한 시청층이 이미 존재한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중요한 건 <터널>이 <보이스>와 유사한 스릴러 장르를 그리고 있으면서도 <보이스>가 갖고 있던 단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보이스>는 한번 보면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와 구성은 호평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잔인한 살해 장면들이 반복됨으로서 지나친 자극으로 흐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터널>의 경우, 여전히 연쇄살인범의 끔찍한 살인이 보여지긴 하지만 <보이스>처럼 자극적인 느낌은 덜 하다. 이런 차이는 드라마가 갖는 시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이스>가 보다 자극적이고 끔찍한 느낌을 줬던 건 살인자나 피살자의 시점을 자주 차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널>은 같은 살인장면이라고 해도 그 시점이 사건을 추적하는 박광호(최진혁)에 주로 맞춰져 있다. 

여기에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박광호라는 형사 캐릭터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물이라면서도 <터널>이 어떤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tvN <시그널>이 스릴러 장르를 그리면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가장 큰 요인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형사들의 절절하고 뜨거운 이야기들이 드라마적 감성을 다르게 만들어줬다는 것. 

<터널>은 또한 박광호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는 이야기로 타임슬립 설정이 되어 있다. 타임슬립 설정은 자칫 그 시간여행 장치에 지나치게 빠져 게임처럼 활용되어 버리면 이야기만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터널>은 이 부분에서도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즉 타임슬립을 장치적 재미 자체로 보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벌어지는 인물의 감정선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으로 와버린 박광호와 1986년에 있는 그의 아내 사이의 거리와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터널>에는 중요한 정서로 깔려있다. 

지금이야 영화 같은 드라마들이 많아졌지만 처음 OCN이 무비드라마를 주창하고 나왔을 때만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영화 같은 드라마가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 역시 커졌다. 만일 <보이스>에 이어 <터널>까지 어떤 성취를 가져가게 된다면 이로써 OCN드라마의 브랜드는 의외로 공고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격 스릴러 장르 드라마하면 먼저 OCN이 떠오를 지도.

악역이 뭐길래...이준호·김재욱·엄기준, 주인공만큼 빛나는 존재감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펄펄 나는 건 주인공 남궁민만이 아니다. 악역으로 등장해 이제는 남궁민과 짝패가 된 이준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얻었다. 그는 서율 이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에게 안하무인격으로 반말을 하고 필요하면 폭력까지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윤하경(남상미) 대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면면을 드러낸다. 김과장과 대립하다가도 그가 죽을 위기에 몰리자 그를 구해주는 의외의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어,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물론 이준호는 드라마 <기억>이나 영화 <스물> 등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로 평가받은 바 있다. 하지만 <김과장>의 서율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하게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것은 악역이 주는 힘일 것이다. 드라마에 긴장감과 갈등을 부여하는 역할로서 악역은 제대로만 연기해내면 주인공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지금껏 풋풋한 청년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준호가 서율이라는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로 만든 반전 이미지는 그에게는 연기자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처럼 악역은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자의 새로운 결을 드러내게 해준다. 종영한 OCN <보이스>에서 중반 이후부터 등장해 마지막회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해준 김재욱 역시 악역을 통해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등장만 해도 살벌한 느낌을 주는 모태구라는 악역은 조각 미남 김재욱의 이미지를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여성적인 느낌마저 주는 그 미남의 이미지가 거꾸로 살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재욱은 꽤 많은 작품들을 해왔다. 하지만 잘 생긴 외모는 오히려 연기자로서는 어떤 장애요소로 작용한 면이 더 크다. 다양한 연기를 해내기에는 그 외모가 주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재욱 역시 모태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에서의 엄기준 역시 차민호라는 악역을 통해 새삼 주목받았다. 사실상 <피고인>은 주인공인 지성과 악역인 엄기준이 서로 치고 받는 그 힘에 의해 끝까지 탄력을 잃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소 과한 설정들과 개연성이 부족한 면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끝까지 힘을 유지한 것도 지성과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도면밀하고 뻔뻔하기까지 한 살인자 재벌2세라는 캐릭터는 지금의 대중정서가 공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 요소들을 통해 엄기준은 냉철하고 냉혹한 악역을 만들어냈다. 어딘지 선해 보이는 엄기준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그래서 더 잔혹해지는 행동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강렬해질 수 있었다. 

악역은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연기자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깨는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만든 배우들을 보면 저마다 확실한 악역의 필모그라피가 있다. 남궁민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보여준 악역의 힘이 있었고, 유아인 역시 영화 <베테랑>에서의 악역이 있었다. 이준호, 김재욱, 엄기준 역시 이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악역이 부여한 연기자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은 어째서 ‘보이스’에 눈을 뗄 수 없었나

“모든 사이코패스들이 살인마가 되는 건 아닙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가정과 환경 사회에 영향을 받는 후천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한 인물의 예를 들어보죠.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년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를 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이후에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되어서 아주 걷잡을 수 없는 끔찍한 살인마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가장 감추고 싶었던 비밀들이 이 시대의 범죄자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보이스(사진출처:OCN)'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서 강권주(이하나)는 도주한 모태구(김재욱)를 격동시키기 위해 방송을 통해 그를 자극하는 말을 남긴다. 그런데 이 대사 속에는 살인마의 탄생이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요소에 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즉 선천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떤 후천적인 악영향이 촉발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살인마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태생 그 자체보다 그 부모나 사회 같은 주변적 상황들이 중요하다는 것.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탄생하게 된 건 결국 어린 시절 아버지 모태범(이도경)이 살인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다. 모태범과 모태구의 잔학한 살인의 연대기는 그 이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살인마가 되어버린 모태구가 저지르는 살인들이 자신 탓이라고 여기는 모태범은 아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면서 그는 끝까지 아들 모태구에게 그가 ‘살인마’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고 교육시킨다.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특별한 존재로 교육받는 모태구는 이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모태구라는 희대의 살인마는 강권주의 이 격동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무진혁(장혁)에 의해 검거된다. 하지만 모태구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자신은 피해자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부모와 사회 탓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인의 고통을 공감 못하는 인물이 심지어 재계인물이나 고위 공무원 그리고 검찰이나 경찰총장까지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갖게 되는 일은 실로 끔찍한 결과를 만든다. 

심각한 연쇄 살인도 살인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성운 통운 버스 사건 같은 비인권적 고용문제와 더불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사고로도 이어진다. 사고가 나면 그 보험금을 사측이 가져가는 계약을 해놓고 사고 위험이 있는 버스를 방치한 채 버스기사로부터 운행하게 만드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안전불감증과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사이코패스적 권력자들의 문제를 드러낸다. 칼 들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이들만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누군가 사고를 당할 위험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아무런 경각심 없이 방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 

<보이스>는 어쩌다 사이코패스적인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골든타임팀’을 투입해 희생자들에게는 절박한 그 골든타임을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을 보여준다. 강권주와 무진혁의 절절함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그 끔찍한 사건들이 주는 충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우리 사회가 주는 불안감을 빼놓을 수 없다. 꽃다운 나이에 몇 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인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지만 그 골든타임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무엇을 했던가.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버려도 지켜주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는 사회란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는 끝까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만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그 사이코패스의 귓가에서 울려 퍼지며 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 <보이스>가 마지막에 보여준 최후장면은 그래서 정신병동에서 무수한 정신병자들의 손에 의해 난자되는 모습보다 어둠 속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끔찍하게 다가온다. <보이스>는 잔혹한 장면들의 폭력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하려던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굳이 자막으로 일일이 그간 드라마 속에서 희생됐던 이들을 적어 넣은 건 그래서다. 

‘허지혜씨도 강국환 경사도 복님이도 아람이도 은별이도 박복순(심춘옥) 할머니도 낙원 복지원 희생자 분들도 그리고 성운 통운 버스에서 희생되신 분들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골든타임 안에 그분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억울하고 안타깝게 희생되는 분들이 더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보이스’, 고통스런 고구마 전개에 점점 더 민감해진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몰입감은 놀랍다. 거의 영화에 가까운 긴장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하다. 첫 회부터 등장해 주인공들인 무진혁(장혁)의 아내와 강권주(이하나)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는 해머처럼 생긴 철퇴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차례 피해자를 가격해 죽인다. 2회에는 칼로 찌르고 죽이려는 계모를 피해 세탁기 속에 숨어 경찰의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가 방영됐다. 4회에서는 범인을 홀로 추격하던 강권주가 오히려 범인들에게 잡혀 산채로 매장당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흘러나왔다. 시청자들로서는 다음 회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보이스(사진출처:OCN)'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끔찍한 장면들이 거의 공포영화 수준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보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시청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워낙 현실에서 사건사고를 많이 접하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케이블 채널에서 시청률이 5%를 넘어섰다는 건 이런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몰입감에도 불구하고 너무 고구마 전개를 이어가고 해결시간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낚고 있다는 비판 역시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보이스>는 워낙 강렬한 사건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어서인지, 한 회에 그것이 마무리되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끝을 맺은 후 다음 회를 기약하는 방식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특히 지난 주 4회에서 마지막에 강권주가 포대자루에 묶여진 채 구덩이에 던져져 땅에 묻히는 장면을 보여주고 끝난 건 다음 주 5회까지 1주일 간의 잔상을 남긴다. 

물론 그건 시청자들의 시선을 계속 묶어두기 위한 드라마의 정당한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영화의 극적인 상황 속에서 갑자기 뚝 끊어버린 듯한 그 전개방식은 시청자들에게는 깊은 이물감으로 남을 수 있다. 아마도 5%라는 시청률에는 이런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이 작용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사실상 드라마가 늘 해오던 방식이다. 한 주에 2회를 방영하면 2회째에는 늘 다음 주를 위한 떡밥이 던져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고구마 전개’를 통한 떡밥에 대해 시청자들은 몹시 민감해진 모양새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지성의 연기호평과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전개에도 불구하고 ‘고구마 전개’의 불편함을 호소하게 된 건, 그가 계속해서 당하는 장면만을 보고 있어야 하는 답답함 때문이다. 

<보이스>는 물론 계속 새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그것이 약 2회분에 걸쳐 해결되면서 범인이 잡히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큰 틀의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인 무진혁과 강권주가 그들의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한 진범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5회에서도 결국 붙잡게 된 범인이 갑자기 과거 아버지의 살해 현장을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를 던져 강권주를 광분하게 만드는 장면은 그래서 사이다로 끝난 것처럼 여겨졌던 상황을 다시 고구마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보이스> 같은 진범을 찾거나 진실을 찾는 드라마들이 늘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건 해결을 뒤로 지연시킴으로써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방식. <보이스>의 연출을 보면 그것이 상당히 의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범인을 찾기 위해 학교로 간 무진혁과 강권주가 갑자기 나뉘어 수색을 하게 되고 누구나 예감했던 것처럼 강권주 앞에 범인이 나타나 사투를 벌이는 장면과 엉뚱한 곳에서 범인을 찾고 있는 무진혁을 교차해 보여주는 식은 이제 <보이스> 연출의 한 패턴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건 드라마의 효과를 위해 차용한 방식이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고구마 전개의 지연방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참을성은 갈수록 없어지는 형국이다. 그건 아무래도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워낙 현실의 전개 자체가 답답한 형국인지라 드라마 속에서도 그런 전개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물론 정당한 사유들이 있어 사건 전개가 지연되는 건 개연성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명쾌하게 제시되지 않는 지연은 자칫 불편함을 불러올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보이스>가 조심해야 될 부분이다.

<보이스>,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까닭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보고 그냥 채널을 돌린 사람은 없을 듯하다.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에 대한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그 지표는 시청률이 말해준다. 2.3%(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는 3회 만에 5.6%를 찍었다. 벌써부터 작년 최고의 스릴러물로 얘기되던 <시그널>과의 비교가 나온다. 작년에 <시그널>이 있었다면 올해는 <보이스>가 있다는 이야기.

 

'보이스(사진출처:OCN)'

물론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 밑에 갈린 정서적인 면들일 게다. <시그널>이 연쇄살인을 막고자 하는 형사들의 간절함이 심지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 판타지까지 허용하게 해줬다면, <보이스>는 생사를 오가는 골든타임에 놓인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형사들의 간절한 마음이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는 주인공의 판타지를 허용해주고 있다.

 

강권주(이하나)가 그 판타지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시력을 거의 잃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갖게 된 남다른 청력으로 보통사람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인물이다. 그가 콘트롤 타워에서 귀에 꽂은 리시버와 마이크 하나로 현장상황을 거의 눈앞에 보듯이 진두지휘하고 때로는 미세한 소리만으로 위급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를 찾아낼 수 있는 건 그 판타지적인 능력 때문이다.

 

강권주가 콘트롤 타워를 지키며 전체를 관망하고 행동할 방향을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그 손발이 되어주는 건 현장을 뛰는 무진혁(장혁)이다. 그는 강권주가 연결된 통신장비 하나를 의지 삼아 현장에 뛰어든다. 남다른 관찰력과 현장에서의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길바닥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아내에 대한 기억은 그를 때로는 물불 안 가리고 몸이 먼저 앞서게 만들기도 한다. 강권주의 콘트롤과 무진혁의 현장에서의 능력은 그래서 이 살벌한 사건들에 놓여진 피해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과 만나며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사건들은 눈을 뜨고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다. 아버지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해온 피해자가 다시 나타난 그 아버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아동학대를 자행하는 두 번째 사건은 그 피해자가 아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계모의 칼에 찔린 채 세탁기 속에 숨어서 강권주와 통화를 하며 구해 달라 외치는 아이의 목소리는 시청자들에게 공포물에 가까운 충격을 주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아이를 죽이라 사주한 비정한 아버지가 사실 그 아파트의 경비원이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고 그가 무진혁마저 죽이려는 반전은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들었고, 또한 미리 알아챈 무진혁이 상황을 뒤집어 오히려 그 경비원의 잔혹한 범죄들을 토로하게 만드는 장면은 또 다른 반전의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이야기는 다시 무진혁의 아내와 강권주의 아버지가 동일한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드라마에 추진력을 달아주었다. 결국 강권주를 믿지 않던 무진혁은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자신들의 가족을 비참한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를 잡는 궁극의 목표로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그널>도 그렇지만 <보이스> 역시 최근 우리네 대중들에게 어떤 정서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간절함이라는 코드를 담고 있다. 골든타임 내에 구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피해자들이 있고, 자신들의 가족도 그 골든타임을 넘겨 죽음을 맞게 된 트라우마를 가진 형사들이 있다.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구하려는 형사들의 몸부림이 시청자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보이스>의 예사롭지 않은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을 덧붙인 까닭

 

즉석사진도 경찰과 응급환자들을 위한 비상출동 시간도 세계 어느 곳이든 3분이다. 왜냐하면 3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기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3분력>의 저자인 타카이 노부오의 문구는 왜 OCN <보이스>에 들어가게 된 걸까. 마치 tvN <시그널>을 연상시키는 형사물의 색채를 깔고 들어온 <보이스>는 거기에 골든타임이라는 콘셉트를 장착했다.

 

'보이스(사진출처:OCN)'

<시그널>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판타지를 활용해서까지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그 간절함을 형사물에 담아냈다면, <보이스>는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오가는 몇 분이 될 수 있는 사건 후 몇 분 간의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을 형사물에 녹여낸다. 그 시간은 단지 몇 분에서 몇 십 분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대한 몰입이 그 어떤 작품들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건 골든타임이라는 장치를 달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112 콜센터에 피해자의 전화가 울린다. 그 전화 저편에서는 살려주세요라는 피해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울려 펴지고 강권주(이하나) 센터장은 피해자와 지속적으로 통화하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불의의 사고로 눈을 다친 후 남다른 청각을 소유하게 된 그녀는 작은 소리까지도 듣고는 피해자의 상황들을 추리해낸다. 그리고 그녀의 지시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무진혁(장혁)은 온 몸으로 부딪쳐 골든타임에 몰려 있는 피해자를 가해자들로부터 구해낸다.

 

물론 우리가 흔히 많이 봐왔던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의 장면들처럼 보이지만 <보이스>는 여기에 현실적 공감대들을 더 얹어 놓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적인 트라우마가 되어 있는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이 그것이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살려주세요라는 말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몰입시킨다. 어떻게든 그 절박한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얹어지면서 <보이스>는 흔한 스릴러물 이상의 미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이 일련의 골든타임을 요구하는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강권주와 무진혁이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로 엮여 있는 이야기 구조는 현실에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시청자들을 심적 공감대로 연결시켜 놓았다. 3년 전 무진혁의 아내가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마침 당시 콜센터에서 일하던 강권주는 검찰 측이 내놓은 범인이 목소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진범이 아니라는 증언을 내놨다. 결국 당시의 진범은 따로 있을 것이지만 이 사건으로 무진혁은 강권주를 오해하게 된다.

 

결국 이 오해가 서서히 깨지고 강권주의 진심을 알게 되는 건 이들이 함께 골든타임을 요하는 많은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형사물이 갖고 있는 편편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들의 이야기를 또 통합적으로 이어가는 힘이 된다. 매회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걸 해결해가는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그건 결국 강권주와 무진혁이 연관된 사건을 해결하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큰 이야기 틀 속에 담기게 된다.

 

형사물이 골든타임 설정을 만나면서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야기는 실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마치 진짜 골든타임(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리는)처럼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보이스>는 거의 공포물에 가깝게 극악무도한 범인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아이가 칼에 찔려 범인으로부터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골든타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한 자극들을 자극으로만 그치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

 

무엇보다 침착하고 냉철하게 소리들을 분석해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강권주 역할을 연기하는 이하나의 연기변신이 흥미롭다. 지금껏 조금은 풀어지거나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해오던 그녀는 이번 역할에서는 훨씬 무게감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추론해가는 그 내면의 목소리들이 사건과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긴박감은 <보이스>라는 형사물만의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준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이라는 설정을 덧붙인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골든타임에 목말라 하는가를 이 드라마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에 콘트롤타워는 얼마나 빨리 침착하게 대응했던가. 콘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래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결핍을 채워줄 판타지에 대한 욕망. <보이스>는 이 정서들을 건드림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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