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9>의 눈물, 진심이 느껴진 까닭

 

<댄싱9>. 이건 실로 오디션의 끝판왕이라고 할만하다.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이 이제는 더 이상 경쟁과 서바이벌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중들이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제 아무리 경쟁의 시스템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보여지는 ‘공존과 협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K팝스타>가 배출했던 수펄스가 그랬고, <보이스 코리아>의 백미인 콜라보레이션 미션이 그랬다.

 

'댄싱9(사진출처:mnet)'

그런데 <댄싱9>은 차원이 다르다. 가창의 영역에서 콜라보레이션은 이미 일상화된 것이지만, 춤은 아직까지 실험적인 단계가 아닌가. 도대체 현대무용과 스트릿댄스가 어우러지고, 한국무용과 재즈댄스가, 또 댄스스포츠와 스트릿댄스가 어우러지는 무대를 우리가 어디서 접하겠는가. 물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같은 작품을 통해 비보잉과 발레가 접목됐을 때나, 숙명가야금 연주단과 비보잉 그룹 라스트포원이 만나 절묘하게 꾸며지는 무대를 봤을 때 그 감동이 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단 6시간 정도를 주고 이 다양한 장르의 춤을 한 무대로 선보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자못 무모한 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무대 위에 올라온 결과물을 보면 이건 기대 이상이다. 단지 춤이라는 공유점 하나만을 갖고도 이들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결과를 보이는 걸까. 스트릿 댄스를 하는 서영모가 캡틴인 무대에서 한국무용을 하는 김해선의 압도적인 표정으로 무대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장면이나, 스트릿 댄스의 하위동이 캡틴으로 나선 무대에서 현대무용을 하는 이선태가 그 느낌을 맞춰주는 장면은 순간 이 무대가 오디션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최선의 무대를 향한 이들의 의지는 심지어 합격과 불합격의 차원을 넘어서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거의 모든 무대 미션은 울음바다가 되기 마련이다. 팀을 이끌었던 캡틴은 누군가 떨어진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 일쑤고, 떨어진 팀원들은 오히려 캡틴에게 감사를 표한다. 심지어 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뜨린 마스터들도 눈물을 글썽인다. 이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틀 속에 들어와 있지만 모두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눈치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댄싱9>이라는 무대가 이들 춤꾼들에게 주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일 게다. 춤. 사실 지금껏 춤은 대중문화의 중심에 들어온 적이 별로 없었다. 현대무용이나 발레 같은 클래식은 어딘지 대중과 유리된 어떤 세계처럼 치부되어왔고, 비보잉 같은 스트릿 댄스는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에 반짝 관심이 모였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의 위상을 바꿔주지는 못했다. 댄스 스포츠는 <무한도전>이나 <댄싱 위드 더 스타> 같은 프로그램으로 전면에 세워진 적이 있으나 여전히 대중문화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춤 하면 여전히 대중들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백댄서. 춤바람. 심지어 제비가 아니던가. 그들은 그렇게 가수들 뒤에서 춤추는 존재들로 치부되어 왔고, 심지어 사모님을 돌리고 돌리는 그런 타락의 존재들로 비하되어 왔다. 이런 편견은 고전무용이나 현대무용 같은 클래식을 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딘지 대중과 유리된 귀족들만을 위한 춤처럼 여겨지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게 그들의 현실이 아니던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과거 한 스포츠화 광고에서 이종원이 의자 하나를 놓고 보여준 현대무용이 대중들을 열광시킨 적이 있었고, <백야>의 미하일 바르시니코프는 놀라운 연속 턴으로 발레의 세계에 우리를 푹 빠뜨린 적이 있었으며, 최근에도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블랙스완>이나 하다못해 <개그콘서트>에서 발레를 소재로 했던 ‘발레리노’가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춤은 그렇게 늘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 한때 우리를 주목시키기도 했지만 그것이 하나의 독립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장르로 인식되지 못하고 광고나 영화 심지어 개그의 소재로서 일회적인 관심에 그쳤던 감이 있다.

 

‘백댄서’로 표상되듯 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서서 누군가를 돋보이게 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을 비로소 온전히 무대의 중심에 세워준 <댄싱9>이라는 무대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을 것인가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게다. 그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은 그 간절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해주는 것이고, 또한 춤의 장르는 달라도 ‘춤꾼’이라는 한 마디로 모두가 공감하는 현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콜라보가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에서 <댄싱9>이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주는 ‘춤꾼’의 세계는 그들이 갖고 있는 경쟁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춤’이라는 공유지점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지극히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적어도 춤꾼들을 백댄서 혹은 화석화된 고전을 여전히 시연하는 존재 정도로 보는 시선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그 누가 이들을 더 이상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토록 아름답고 인간적인 몸의 언어들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려 몸부림치는 그들을.

'보코', 어떻게 오디션 끝판왕 됐나

주말 내내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해서 보다보면 결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역시 오디션은 '보이스코리아'"라는 것. 뭐니 뭐니 해도 그 첫 번째 이유는 가창력이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보이스코리아'의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무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이고, 그 위에 독특한 보이스의 매력이 얹어지니 금상첨화다.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보이스코리아'는 그 독특한 시스템 때문에 코치(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다)들의 상찬과 과감한 리액션은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리액션조차 과도하다 여겨지지 않는 건 참가자들의 기량이 그런 상찬을 받을 만큼 충분하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K팝스타'에서 무려 100-100-99점을 받았던 박지민의 무대에 쏟아진 심사위원 3명의 리액션이 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물론 현 단계에서 '보이스코리아'와 'K팝스타'를 비교하는 건 적절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즉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은 오디션과 현재 생방송을 하고 있는 오디션에는 확실히 질적인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생방송에서 오히려 시청률이 점점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난립은 경연과 서바이벌이 주는 긴장감 그 자체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대중들은 서바이벌이라는 장치 위에 드러나기 마련인 음악 그 자체에만 주목한다. 그러니 생방송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음악적인 면모에 오히려 실망할 수밖에.

그런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굳이 생방송이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은 적절하다. 생방송의 의미는 마치 저 스포츠처럼 경쟁과 서바이벌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집중하게 될 때 효과를 가지는 것일 뿐, 지금처럼 톱10에 들어가면 누가 떨어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는 환경(그들은 이미 선택된 이들이라는 걸 우리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했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목해야 할 것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주는 감동의 무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이스코리아'는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오디션 환경에 가장 적응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즉 '보이스코리아'는 기존 서바이벌에 방점을 찍던 오디션들이 갖기 마련인 세 가지 요소를 일찌감치 없애버렸다. 그것은 독설, 과열경쟁, 합격 불합격으로 나오는 당락, 이 세 가지다.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들이 앉아있고, 그들은 독설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참가자들에게 심지어 세레나데를 부른다. 합격 불합격 같은 자극적인 말들은 좀체 들리지 않고, 참가자들 사이에서의 과열 경쟁 또한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은 '보이스코리아'만의 독특한 배틀 라운드 시스템을 통해 드러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탈락되는 배틀 라운드가 한 무대 위에서의 하모니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은 이 오디션이 경연 그 자체보다 최고의 무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무대 위에서 경쟁자들은 자신의 기량을 혼자 뽐내기보다는 상대방과 맞춰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를 망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탈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협력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구조의 배틀 라운드 시스템은 그래서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기본적으로 하모니를 이뤄야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경쟁보다 하모니에 맞춰진 시스템은 그래서 경연이 끝나고 나서도 지극히 쿨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떨어진 참가자가 붙은 참가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붙은 참가자가 떨어진 참가자를 진심으로 껴안아줄 수 있게 되는 것. 이러한 음악 그 자체에 맞춰진 오디션 시스템과 그래서 갖게 되는 한바탕 음악적인 어우러짐처럼 여겨지는 경연 무대는 '보이스코리아'가 오디션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제 경쟁은 지겹다. 음악을 허하라. '보이스코리아'는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듯하다.


'보코', 경연에도 하모니가 들리는 이유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서바이벌일까, 아니면 음악 그 자체일까. 아마도 1년 전만해도 우리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서바이벌'이었을 것이다. 그 경쟁 스토리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지금 '서바이벌'이 갖는 경쟁적인 스토리는 어딘지 구질구질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굳이 덕지덕지 스토리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음악과 무대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지는 어떤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닐까.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는 이렇게 달라진 오디션의 관전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제목 자체가 ‘배틀 라운드’이고, 무대 역시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이름이 불려지면 오르는 사각의 링 같은 서바이벌의 느낌을 풍기지만, 실제 그 위에서 부르는 두 사람(그 중 한 명은 떨어진다)은 절정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첫 링(?)에 오른 장재호와 황예린은 그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의 ‘안부’를 마치 연인 같은 느낌으로 불러주었다. 기둥처럼 굳건하게 중심을 세워주는 장재호의 보이스 위에 화려하게 장식되는 황예린의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듣는 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파워풀한 지세희의 목소리에 브릿팝의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오경석의 목소리가 겹쳐져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듯 불려진 ‘맨발의 청춘’, 너무 뛰어난 목소리들의 화음 때문에 백지영으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만든 유성은과 임진호가 부른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4차원 소녀 우혜미와 파워풀한 보컬의 정소연이 블루스적인 감성을 흠뻑 느끼게 해준 신촌블루스의 ‘아쉬움’은 또 어떻고. 이것은 분명 한 명은 탈락하는 배틀 라운드지만 최고의 무대 그 자체에 더 방점이 찍히는 무대였다.

즉 서바이벌을 통해 누군가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은 그저 결과일 뿐이고, 사실은 과정 즉 무대에서 만들어지는 이 두 사람의 놀라운 어우러짐이 ‘배틀 라운드’의 진짜 얼굴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포인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보이스 코리아’는 질척이지 않고 대단히 쿨한 느낌을 선사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하지만, 무대에서는 배틀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함께 부르는 노래 그 자체에 집중하고 모든 걸 그 화음에 쏟아 붓는다. 그렇기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그 서바이벌 결과의 순간에 잠깐 흐르는 눈물은 기존 오디션이 갖는 신파의 느낌이 아니라 대단히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최선을 다해 무대 위에서는 싸운 선수들이 무대를 내려와 서로를 토닥이는 그런 쿨함.

오디션 프로그램을 서바이벌로 보게 되면 자극으로만 흘러가게 된다. 독설이 난무하고 누가 떨어질 것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묻힐 수밖에 없다. 결국 오디션에서 서바이벌은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도전자들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자극제. 하지만 이제 음악을 듣기 시작한 대중들은 자극제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음악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K팝스타’의 수펄스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다. 모두가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탄생한 수펄스라는 네 명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절정의 하모니는 듣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 순간 우리는 이것이 서바이벌의 무대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음악에 집중했던 것이 아닌가.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가 보여준 그 특유의 쿨함은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징후로 보인다. 음악이다. 서바이벌이 아니고.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CJ E&M에서 음악사업을 맡고 있는 신형관 국장은 오디션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이유를 이 단 한 마디로 정리했다. 신 국장은 무수한 화제를 낳았던 '슈퍼스타K3'를 기획했고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보이스 코리아'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신개념 콘셉트를 장착한 '보이스 코리아'는 본래 '더 보이스'라는 해외 포맷을 가져와 한국화한 것으로 첫 회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오디션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된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거친 평가에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의 풍경 따위는 '보이스 코리아'에서는 발견하기 힘들다. 이 오디션은 사실상 심사위원이란 존재가 없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로 불린다. 자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버튼을 눌러 회전의자를 돌림으로써 코치들은 참가자를 선택한다. 즉 가창력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나 출연자의 외모에 휘둘리던 어쩔 수 없는 오디션의 한계를 '등 돌리고 있는 코치들'로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오디션은 기존 심사위원과 참가자들 사이에 놓여진 '권력관계(?)'를 뒤집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즉 한 참가자를 복수의 코치들이 선택하게 되면, 이제 선택권은 거꾸로 참가자에게 넘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가"를 어필하는 역 오디션이 생겨난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오디션은 없다고 여겼던 시청자들에게 이 전혀 다른 콘셉트의 오디션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새롭지 않으면 보지 않는다'는 건 방송계에서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특히 오디션 형식의 예능만큼 그 변화 속도가 빠른 건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엠넷의 '슈퍼스타K2'가 지상파 시청률을 압도할 정도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전, 오디션 형식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는 낮았다. '슈퍼스타K' 시즌1은 새로움은 있었으나 일반 대중들까지 열광하게 하는 파괴력은 없었다. 하지만 시즌2에 이르러 '슈퍼스타K'는 거의 정점을 찍었다. 환풍기 수리공으로서 우승자가 된 허각은 '허각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현실의 무거움에 허덕이던 대중들은 허각을 통해 일종의 신분상승의 판타지를 대리경험했다.

하지만 '슈퍼스타K2'의 대성공은 거꾸로 이 프로그램의 위기가 되기도 했다. 마침 풀려진 지상파 간접광고 허용으로 지상파에서도 대거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물 타기가 생겨난 것이다. '위대한 탄생', '댄싱 위드 더 스타', '기적의 오디션' 등등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고, 여기에 변종 오디션들인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2' 같은 프로그램들이 가세하면서 작년 1년의 예능은 사실상 오디션 빼고는 찾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또한 오디션 형식의 소비 속도를 더 빨리 진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슈퍼스타K3'가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고 불릴 정도의 편집증적인 디테일과 엄청난 속도의 오디션으로 재무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즈음 '슈퍼스타K3'의 거의 폭주하는 듯한 오디션을 통해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의 새로운 오디션 형식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무얼 봐도 비슷비슷한 형식들이 반복되는 오디션 형식은 그래서 이제 하락기를 걷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작년 말에 시작한 'K팝스타'는 말 그대로 복병이었다. 거대 기획사 3사, 즉 SM, YG, JYP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거에 사라져버렸다. 사실 방송 전, 거대 기획사와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거대 기획사에서는 늘 오디션을 보지만, 그 오디션과 오디션 프로그램은 정서적으로 확연히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존 기획사 시스템 바깥에 놓여진 가수 양성 시스템으로 인식되었다. 나이와 성별 심지어 외모와도 상관없이 누구나 가창력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고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건, 기존 거대 기획사 시스템과는 차별화되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장점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일반 대중들의 판타지가 섞여있는 판단일 뿐이다. 현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이 결국은 다시 기획사를 찾아가는 그 구조에서 드러났다. 물론 오디션을 통해 인지도는 높지만 가수 활동을 위해서는 기획사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거대 기획사 3사가 참여하는 'K팝스타'는 이제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오디션이 가진 지나친 판타지가 사라지고, 대신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이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기획사가 참여하는 오디션이라는 차별성은 프로그램 형식의 차별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기획사가 발굴해내려는 아이돌 콘셉트는 참가자들의 연령을 현저히 낮춰놓았고, 참가자들을 심사하는 방식은 3대 기획사들의 개성과도 맞물렸다. 즉 심사위원으로 앉은 YG의 양현석과 JYP의 박진영은 같은 참가자의 노래를 듣고도 의견 대립이 잦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하는 YG와 기본기를 중시하는 JYP의 기획사 특징이 드러나는 식이다. 게다가 각 기획사들이 선택한 참가자들이 그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받는 점도 이 오디션만의 특징이 되었고, 그들이 또 서로 경연을 벌일 때, 기획사들 간의 묘한 긴장감은 기존 오디션 형식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결국 'K팝스타'는 이러한 새로운 차별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숱한 오디션 형식들 속에서도 대중들의 열광을 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가수다'를 기획하고 만들어냈던 김영희 PD는 "대중들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고, 따라서 처음 먹혔던 방식을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일단 형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게 대중들이라는 것이다. 시즌1을 정리하고 시즌2가 시작되기 전 일정 기간의 준비기간을 갖고 있는 '나는 가수다'의 시즌2는 그래서 시즌1과는 사뭇 달라질 거라는 의견이 많다. 사실 어찌 보면 작년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낸 대중문화계 전반에 끼친 충격파는 기존 오디션 형식의 뒤집은 데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일반인들이 참가하는 것을 톱 클래스 가수들이 참가하고, 거꾸로 청중평가단이 탈락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그렇다. 하지만 이 혁명적인 진화는 1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 새로운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진화는 어디까지가 가능한 것일까. 아니 계속적인 진화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엠넷의 신형관 국장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결국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큰 틀에 있는 한 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이 당대의 방송 트렌드와 맞물려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 진화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현재의 오디션 형식은 다큐적인 리얼리티 형식과 무대 형식이 맞물린 형태지만 이것은 또 대중들의 기호와 맞물려 새로운 형식 실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신 국장은 "이제 모든 유사 프로그램을 오디션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기가 애매해진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이스 코리아'를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슈퍼 보컬 서바이벌'이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확실히 지금 오디션 형식은 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트렌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건, 끊임없는 진화의 덕택이다. 그것이 없는 한, 오디션 형식은 쉽게 소비되고 식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오디션의 진화는 또 새로운 다른 형식과 맞물려 전혀 다른 이종 예능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높다. 모든 생태계가 그러하듯이.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미친 가창력, 돌아버리겠네 정말!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노래가 고조되면 될수록 코치들의 손은 점점 버튼으로 다가간다. 마치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버튼 근처를 서성이는 손은 당장이라도 버튼을 누를 것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노래는 점점 더 고조되고 그럴수록 코치들의 얼굴은 경탄과 갈등과 곤혹스러움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결국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버튼을 누르면 의자가 빙그르르 돌아가고 갈등했던 코치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그걸 본 참가자 역시 한층 신이 나 감동적인 무대를 이어간다.

이것은 '보이스 코리아'라는 블라인드 오디션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구성을 잘 보면 알겠지만 이건 일종의 대결 구도다. 참가자가 노래만으로 코치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대결. 코치들은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마치 그리스 신화 사이렌의 유혹적인 목소리를 들은 선원들처럼 그들은 결국 이끌리듯 버튼을 누르게 된다. 누가 봐도 톱가수들이자 아티스트인 권위자들이 보여주는 이 일종의 굴복(?)은 대중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권위자들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미친 가창력이라니.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

첫 회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배근석은 이 프로그램의 파괴력을 가장 잘 보여준 참가자다. 얼굴 노출이 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부터 그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여겨지더니, 무대에 오르자 거의 여성에 가까운 미성과 매력적인 바이브레이션으로 코치들을 한 명 한 명 돌아 버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일련의 과정이 반전에 반전이었다. 서인영의 '신데렐라'를 선곡했기에 그 중성적인 목소리의 배근석은 코치들에게는 여성으로 인식되었던 것. 코치들은 먼저 그 중성적인 보이스의 매력에 놀랐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것에 또 놀랐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코치들은 보지 못했지만 관객과 시청자들은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코치들보다 우위에 선 입장이다. 즉 '보이스 코리아'라는 오디션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권위에 있기 마련인 '심사위원'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관객과 시청자는 참가자를 바라보면서 심정적으로 하나의 팀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그 참가자의 놀라운 가창력에 코치가 안절부절하고 결국 버튼을 누르는 굴복의 장면에 시청자들 또한 승리감(?)을 맛보게 된다.

'보이스 코리아'가 가진 블라인드 오디션이란 매력적인 특징은 바로 이 '권력의 역전'에서 나오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실제로 지금껏 보지 못한 놀라운 가창력의 소유자들이 이 무대에 서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거장인 퀸시 존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던 정승원이나,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가 될 뻔했고 요아리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던 강미진, 허각의 쌍둥이 형인 허공 같은 첫 무대에서부터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는 참가자들이 이 오디션에는 넘쳐난다. 특히 보컬 트레이너들이 대거 참여한 점도 오디션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이미 너무 알려졌거나, 혹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참가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이 프로그램만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만으로 승부한다'는 점은 모든 선입견을 지우고 원점에서 시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심지어 프로가 이 무대에 선다고 해도 그것을 용인하게 만든다. 어쩌면 기성 가수라면 그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는(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무대이기 때문이다.

코치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이 오디션은 그래서 이제는 식상해진 오디션에 돌아서려 하던 시청자들의 마음도 돌려 세우고 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이면 우리는 그간 잘 돌리지 않았던 케이블로의 채널을 돌린다. 돌지 않고는 참가자들의 면면을 볼 수 없어 안달하는 코치들처럼.


반전 없는 '위탄2', 반전의 '보코'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엠넷)

'위대한 탄생2'의 생방송무대는 꽤 기대를 갖게 만드는 멘티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밋밋한 느낌이 있다. 마치 출연자들이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것만 같은 인상이다. 구자명에 이어 골든 티켓을 거머쥔 배수정의 무대는 공연 그 자체로는 괜찮았지만 오디션이라는 형식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긴장감은 없었다. 이런 당연한 수순을 그것도 아주 급하게 쫓아가는 듯한 무대 진행은 결과적으로 최고조의 긴장을 주어야할 최종 탈락자 발표마저 그저 해야 할 것을 한 듯한 무대로 만들었다. 도대체 이 긴장 없는 오디션의 이유는 뭘까.

오디션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반전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는 그런 반전 요소는 오디션의 핵심이다. 잘 하건 잘 못하건 멘토들은 거의 도돌이표의 심사평을 반복하고, 긴장과 이완을 통해 쇼의 묘미를 살려야할 진행자는 그저 순서 진행에 급급하며, 전문평가단들의 점수 역시 참가자들의 인기와 거의 비례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드는 뜻밖의 이야기는 발견되기 어렵다.

이것은 또한 전형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패턴을 읽어버린 대중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대한 탄생2'가 시즌1보다 확연히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청자들은 점점 새로운 걸 기대하는데, 정작 프로그램은 업그레이드된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상 상승구조의 시청률 흐름을 갖기 마련인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에서 '위대한 탄생2'가 거꾸로 갈수록 시청률 하락을 경험하게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반면 '위대한 탄생2'의 부진과 상반되게 주목을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엠넷에서 방영되고 있는 '보이스 코리아'다.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신개념 콘셉트를 장착한 이 프로그램은 본래 '더 보이스'라는 해외 포맷을 가져와 한국화한 것으로 첫 회부터 대중들의 시선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그 이유는 오디션의 핵심인 '반전 요소' 덕분이다.

'보이스 코리아'는 오디션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거친 평가에 눈물을 흘리는 풍경 따위가 없다. 이 오디션은 사실상 심사위원이란 존재가 없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로 불린다. 자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버튼을 눌러 회전의자를 돌림으로써 코치들은 참가자를 선택한다. 즉 가창력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나 출연자의 외모에 휘둘리던 어쩔 수 없는 오디션의 한계를 '등 돌리고 있는 코치들'로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오디션은 기존 심사위원과 참가자들 사이에 놓여진 '권력관계(?)'를 뒤집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즉 한 참가자를 복수의 코치들이 선택하게 되면, 이제 선택권은 거꾸로 참가자에게 넘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가"를 어필하는 역 오디션이 생겨난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오디션은 없다고 여겼던 시청자들에게 이 전혀 다른 콘셉트의 오디션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보이스 코리아'의 반전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기존 선입견을 깨는데서 나온다. 오디션은 뻔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뒤집은 게 첫 번째 반전이고, 또 해외 포맷이 있기 때문에 그 포맷에서 본 대로 일 것이다 했는데 거기에 플러스 알파 요소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게 두 번째 반전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스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던 것 같다. 즉 단적으로 말해 가창력은 좋지만 외모가 떨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사실 외모와 목소리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훈남도 등장하고 개성있는 인물도 등장했다는 게 또 하나의 반전요소로 작용했다.

'위대한 탄생2'의 부진은 이제 기존 오디션 형식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반전 포인트를 주지 못하는데서 생겨난다. 반면 '보이스 코리아'에 대한 열광은 지금껏 오디션 하면 떠올렸던 일련의 흐름을 모두 뒤집는 반전에서 나온다. 이 상반된 결과는 오디션 형식이 왜 끊임없이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형식인가를 말해준다. 진화를 통해 반전을 주지 못하는 오디션은 대중들에게 더 이상 감흥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보이스 코리아', '더 로맨틱', 지상파보다 나은 이유

'보이스 코리아'(사진출처:mnet)

Mnet '보이스 코리아'가 첫 회부터 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낸 것은 그 참신한 형식 때문이다. '보이스 코리아'는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불편한 문제들을 '블라인드 오디션'이란 장치로 손쉽게 넘어섰다. 외모도 춤도 아닌 오로지 가창력 하나만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코치들은 무대를 등지고 앉아 오로지 귀에만 의지해 참가자를 자신의 팀으로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한다.

따라서 그 판정기준은 다분히 직관적이고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 음정이 어떻고 표현이 어떻고 하는 논리적인 심사에 의해 참가자의 노래가 난도질당하는 상황은 그래서 절대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복수의 코치들이 참가자에게 자신의 팀으로 들어오라고 애원을 하는 '역 오디션'의 상황은 지금껏 고압적인 심사위원들의 선택만을 동아줄처럼 바라봐야 했던 참가자나 시청자 모두에게 반전의 쾌감을 선사한다.

물론 '보이스 코리아'는 포맷을 수입한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참신한 시도나 형식 그 자체가 Mnet의 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이 기획의 성공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고전적인 형식들, 예를 들면 참가자들이 일제히 무대에 올라 한 명씩 부르고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당락을 결정하면서 마지막 생존자들이 최후의 생방송 무대를 펼치는 식의 형식들은 어딘지 식상해진 게 사실이다. '슈퍼스타K'의 성공 이후 지상파에서 쏟아져 나온 오디션 형식들이 그 소비를 더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케이블에서 '보이스 코리아' 같은 차세대 오디션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있는 상황에, 지상파의 '위대한 탄생2' 같은 프로그램이 애초 차별점으로 내세운 멘토제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점점 '슈퍼스타K'의 형식을 거의 따라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부턴가 케이블이 전방위에 서서 다양한 프로그램 형식들을 시도하고 있는 반면, 지상파들은 적당히 그런 형식을 가져와 지상파 버전으로 방영하는 느낌이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포맷 특성에 있어서 누가 누구를 따라하고 무엇이 원조인지를 묻는 것은 이제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제 프로그램들은 어떤 식으로든 상호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참신한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위대한 탄생2'의 형식이 어디서 많이 본 어딘지 식상한 느낌을 주는 반면, '보이스 코리아'가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게다가 프로그램의 자극성에 있어서도 '보이스 코리아'는 좀 더 진심에 닿아 있는 인상이 짙다. 오로지 노래가 전하는 그 진정성에 기울이게 만드는 형식 때문이다. 과거 케이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어딘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이라 여겨졌었다면, 이런 작금의 변화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과도한 시청률 경쟁 때문인지, 최근 들어 지상파 프로그램들의 자극과 선정성은 케이블 못지않은 게 사실이다.

'짝'은 짝짓기 프로그램의 리얼리티쇼 버전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로그램의 전형이다. 일반인 사생활 노출에 대한 논란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조작논란까지 나오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진정성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논란거리가 될 만한 자극들에 치중하는 경향도 보였다. 스펙이나 외모에 경도되는 일반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

tvN이 새롭게 시작한 '더 로맨틱'은 여러모로 '짝'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같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더 로맨틱'은 자극보다는 설렘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결혼을 굳이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일상 바깥으로 나가 여행이 주는 새로운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치열한 삶 속에서 이젠 없는 것이라 여겼던 한 편의 영화 같은 순간들을 우리에게 다시 전해주는 그런 느낌. 그 설렘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모든 케이블 프로그램들이 지상파보다 참신하고 더 유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근 들어 케이블 프로그램들의 참신한 시도들이 눈에 띄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한편 지상파 프로그램들이 어디서 본 듯한 형식을 가져와 구태의연한 반복을 하고 있거나, 또 지상파 프로그램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자극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자칫 젊어지는 케이블과 노회하는 지상파로 시청세대가 구분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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