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건', 17년을 함께 한 슈퍼히어로의 쓸쓸한 뒷모습

휴 잭맨에게 17년을 함께 한 <엑스맨> 시리즈의 고별작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울버린이라는 어찌 보면 <엑스맨>의 정서적 바탕이 되는 캐릭터의 최후를 담은 작품이어서였을까. <로건>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로서의 피와 살점이 튀는 강렬한 액션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쓸쓸함과 처연함, 그리고 급기야는 먹먹함에 울컥하는 감정까지를 불러일으킨다. 

사진출처:영화<로건>

사실 <엑스맨>의 캐릭터들이 가진 핵심이 이 놀라운 초능력과 함께 그것이 축복이 아닌 저주이기도 한 캐릭터들의 희비극이다. 그들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놀라운 초능력을 가졌지만 바로 그 다르다는 점 때문에 배척받고 위협받는다. 인간을 위해 싸우면서도 인간에 의해 배척받는 존재들. 그들이 <엑스맨>이라는 캐릭터들의 기저에 흐르는 어떤 쓸쓸한 정서의 정체다. 

그 중에서도 울버린 로건만큼 기구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슈퍼히어로도 없다. 그는 부모도 사랑하는 여인도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극도로 그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는 일을 피하려 한다. <로건>에서도 그는 리무진을 모는 운전기사로 일하며 이제 나이 들어 자기조절이 잘 되지 않아 심지어 타인들에게 고통을 줄 위험성을 가진 프로페서X(패트릭 스튜어트)를 보필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 자신도 늙어 자가 치유되는 힐링팩터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는 죽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자신과 똑같은 능력과 운명을 가진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나타나고 그녀를 쫓는 정체불명이 집단들과 대결하게 된다. 

그러니 이 <로건>은 단순히 슈퍼히어로들의 놀라운 힘과 능력을 스펙터클로 보여주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나이든 로건과 90세에 가까운 나이로 죽음에 임박한 프로페서X 그리고 너무나 작디작은 소녀. 이들은 겉으로만 보면 슈퍼히어로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실체는 심지어 짐승처럼 보이는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이지만.

역시 로건의 액션은 강렬하다. 마치 한 마리 야수처럼 날카로운 발톱을 긋는 것만으로도 적들은 사지절단이 된 채 날아가 버린다. 프로페서X 역시 조절이 되지 않지만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라고 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반전 액션을 보여주는 인물은 바로 로라다. 이 작디작은 소녀는 통제되지 않는 강력한 살인무기로서의 액션을 소름끼치도록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가 추구하고 보여주려는 건 그런 액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셰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히어로의 쓸쓸한 뒷모습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부극 <셰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악당들을 다 해치운 셰인은 꼬마 아이에게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며 각자 자기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한 뒤 황야를 향해 떠나간다. 셰인이 꿈꾼 것도 어쩌면 소박하고 평범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보통의 삶이었을 것이다. 로건이 보여주듯 결코 다른 존재인 슈퍼히어로는 가질 수 없는 보통의 삶.

<로건>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는 그래서 로건과 프로페서X 그리고 로라가 어느 평범한 가정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다. 그 단 하룻밤을 보낸 후 프로페서X는 자신의 일생 중 가장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심지어 지구를 구하기도 했던 그 엄청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결국 꿈꾼 것이 소박한 보통의 삶이었다는 건 <로건>이 주는 메시지이자 이 영화의 정조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서부극 <셰인>을 오마주한 이 영화는 그래서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물이면서 그들이 꿈꾸는 평범한 가족의 삶이 유사가족이라는 형태로 슬쩍 드러나는 드라마적 요소들까지 갖고 있다. 할아버지 프로페서X와 아버지 로건 그리고 딸 로라가 함께 걸어가는 그 여정이 강렬하면서도 먹먹해지는 이유다.

<용팔이>의 속물 의사 주원, 굿닥터로 돌아가다

 

종영한 <용팔이>에서 최고의 수훈갑을 꼽는다면 역시 주원이 아닐까. 과거 <굿닥터>의 박시온 역할로 어눌하지만 착한 심성이 전하는 울림을 제대로 전해준 주원이었다. 그런 그가 <용팔이>로 와서는 자칭 속물의사를 연기했다. 돈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 그래서 병원에 가기 힘든 조폭들을 맨 바닥에 눕혀 놓고 치료하는 장면은 <용팔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용팔이(사진출처:SBS)'

하지만 자칭 속물의사는 사실은 돈 없고 배경이 없어 수술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속물의사는 껍데기고 사실은 저 굿닥터에 가까운 휴머니스트였다는 것. 겉으로는 까칠하고 돈만 밝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김태현(주원)이란 의사는 서민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휴머니스트의 심성을 숨긴 채 속물의사의 가면을 쓰고 12VIP병동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설정은 또 다른 기대감을 이어갔다. 거기 오래도록 감금된 채 누워있는 한여진(김태희)과 김태현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의 멜로 속에서도 주원은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태희를 상대로 하는 멜로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여진을 깨워낸 김태현은 그녀를 보호해주려 하면서도 그녀의 복수를 멈추려는 노력을 보여줬다. 한 명의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그는 이 사회와 현실이 만들어낸 피의 복수라는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처럼 한여진을 치료하고 있었다. 김태현이라는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사람을 죽이라 사주하는 복수의 화신 한여진이 그저 악역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쁜 존재가 아니라 아픈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와서 김태현의 분량보다 한여진의 분량이 훨씬 많아졌고, 그 복수극이 오래도록 펼쳐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현의 존재감은 늘 드라마의 다른 한편을 차지했다. 즉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건 복수는 복수를 부를 뿐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로 전염되는 질병일 뿐 피로써 치유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니 모든 걸 버리고 일층의원으로 돌아간 김태현은 한여진이 돌아가 치유 받아야 하는 곳이자 이 드라마의 주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진짜 복수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손에 더 많은 것을 쥘수록 점점 피폐해지는 한여진과 모든 걸 내려놓고 사람들 가까이에 선 의사로 돌아가자 한없이 행복해진 김태현은 이 드라마가 말하는 진정한 복수극의 해법을 드러낸다. 저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배신하면서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시스템은 저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결코 행복하게는 해주지 않는다는 게 <용팔이>가 전하려는 메시지일 것이다. 그 메시지를 앞에서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 캐릭터가 바로 김태현이라는 의사다. 주원은 이 의사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사랑과 치유까지의 변화과정들을 김태현이라는 캐릭터 하나로 제대로 꿰어냈다.

 

드라마의 겉면은 김태희가 연기하는 한여진이라는 캐릭터가 화려하게 이끌었을지 몰라도 드라마의 실제는 주원이 연기하는 김태현이라는 캐릭터의 소박함이 밀어주었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저들의 세계가 겉에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작아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세상은 살만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삼시세끼>가 수미쌍관으로 보여준 변화들

 

<삼시세끼> 1년 간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 이서진은 처음 모습 그대로 툴툴거리며 요리는 역시 인스턴트야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은 즐거움이 가득하고 손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게도 움직인다. 옥택연은 여전히 어딘가 조금은 어색한 음식을 하며 정통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꽤 그럴싸해졌다. 중간에 합류한 김광규는 애써 갖가지 양념을 들이부어 꽤 먹을 만한 겉절이를 내놓는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여전히 툴툴대고 어딘지 정통은 아닌 듯 별다를 바 없는 밥상을 보여주며, “직접 키워 해먹는다는 건 하지 말아야할 일이라고 얘기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어떤 보람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나영석 PD 역시 1년 간 삼시세끼 해먹으면서 그 의미가 사 먹으라고 결론 내주어서 고맙다고 비아냥대면서도 그리 싫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그렇다. 달라진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여전히 옥순봉 아래 집이 덩그라니 한 채 서 있고 그 모두가 떠난 자리에 이서진과 옥택연이 서 있다. 하지만 그 별다를 것 없다는 그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있었다. 아무 것도 없던 하트 밭에 옥수수들이 가득 자랐고 거기서 수확한 옥수수들은 그들은 한 때나마 흥청망청 고기 부호 놀이를 하게 해주기도 했다.

 

옥택연과 박신혜가 심었던 야채들은 무성하게 자라 그 열매들을 내주었다. 잭슨과 밍키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 2세들과 새로운 가족을 이루었고 꿀벌들은 옥순봉 사람들을 위해 야생화들에서 꿀을 애써 날랐다. 처음 낯설었던 시골살이는 이제 뭐든 척척 해내는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도시의 삶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서진은 이 시골 삶 역시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곳을 찾았던 무수히 많은 게스트들에게 줄 수확한 작물들을 챙기자 그들과의 추억들이 방울방울 피어올랐다. 김치를 담그며 이서진의 보조개를 패이게 했던 담그지우’, 망친 감자옹심이 때문에 속상해했던 김하늘과 버럭 셰프의 면모를 보여줬던 이선균, 늘 부지런한 보조로 묵묵히 일만 했던 손호준, 마치 형제처럼 읍내를 활보했던 지성 등등. 그들의 면면들이 그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은 옥순봉 세끼 집에는 여기저기 서려 있었다.

 

박신혜로 시작해서 박신혜로 끝내는 그 수미쌍관을 <삼시세끼> 시즌2가 굳이 선택했던 건 그 처음과 끝의 변화가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박신혜는 게스트가 아니라 신혜렐라가 되어 갖가지 맛나는 음식들을 척척 맛보게 해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부여한 밝은 에너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일까.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커다란 허전함이 남았다.

 

아마도 이 박신혜의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소회 그대로일 것이다. 한바탕 왁자했던 한 여름의 그 즐거웠던 기억들을 이제는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들이 애써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 아쉬움을 숨기기 위함이 아닐까.

 

실제로 달라진 건 없을 것이다. 내년에도 다시 씨앗은 뿌려지고 작물은 자라고 텅 비었던 그 곳에 사람들의 왁자한 목소리들이 들려올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간이 되면 그들은 아쉽게도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삼시세끼>1년 간을 들여다보면서 이 보통의 일들이 이제는 대단히 특별한 일들로 다가온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그 일상이 주는 특별함. 시간의 더깨가 쌓이면서 생겨나는 기적 같은 순간으로 남은 추억들. <삼시세끼>가 보여준 보통의 1년은 어느새 특별한 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듯 보이는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연예인, 그들만의 세상에 무슨 공감대가 있으랴

 

<아빠를 부탁해>는 지금 최대의 위기다. 시청률이 쭉 빠져 일요일 예능 대결에서 계속해서 꼴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더 안 좋은 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여기 출연하는 아빠들의 삶이 마치 우리네 삶처럼 다가왔었고, 그래서 그 아빠를 바라보는 딸들이 그토록 예쁠 수가 없었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런 공감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사라져버렸다. 프로그램 초기만 해도 아빠와 딸이 그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빠에게도 하나의 도전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이미 어느 정도 소통을 하게 된 아빠와 딸들의 관계 속에서 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소통이라기보다는 그저 놀러 다니는 것처럼 비춰지게 되었다.

 

딸 다은이와 함께 남이섬을 찾은 것에 대해 강석우는 과거 <겨울 나그네>의 추억이 깃든 곳이라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강석우와 다은이의 방송분 어디에서도 그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강석우와 다은이가 짚와이어를 타는 장면과 번지점프를 하려다 포기하고 내려오는 장면만 있었다.

 

물론 이것은 여러모로 지난 리마인드 웨딩을 했던 강석우네 가족의 이야기에 쏟아진 비판을 의식한 면이 있다. 시청자들이 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너무 사적인 일에 방송을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 작정한 듯한 느낌이 있다.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이섬까지 갔던 그 본래의 의도를 모두 지워버리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자의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면면을 드러낸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조재현의 딸 조혜정이 연기연습을 위해 오빠에게 가발을 씌우고 미용 실습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조혜정이 드라마에 미용사 역할로 캐스팅되어 그 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물론 조재현은 그러한 딸의 연기연습이 연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지만, 사실 이런 내용이 <아빠를 부탁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거기에서 과연 우리네 보통 50대 아빠들의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까.

 

공감이 사라진 지점에는 저들만의 세상이 보여주는 이질적인 삶을 왜 시청자들이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만 남을 뿐이다. 50대 아빠들의 공감대를 목적으로 했던 이 프로그램이 자꾸만 딸 연예인 시키려는 방송이라고 오인 받게 되는 건 그래서다. <아빠를 부탁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초심, 즉 우리네 보통의 50대 아빠들이 갖는 삶의 여러 측면들을 프로그램이 공감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삶이 아닌 저들만의 세상으로 자꾸만 미끄러져 나갈 때 시청자들의 이탈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의 실제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는 그래서 쉬워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즉 어쨌든 카메라는 그들이 사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닮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잘 사는 집이 비춰질 때면 시청자들로서는 부러움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화감을 느끼게도 된다. 이 차이는 전적으로 프로그램이 본래 갖고 있던 기획의도를 잘 지켜내고 있는가 아닌가에서 결정된다.

 

이것은 현재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나마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의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이 역시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여러 차례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을 준 적이 있다. 갖가지 PPL의 전시장이 되거나 똑같은 육아라고 해도 저들만의 화려한 삶의 일단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고개를 돌리게 된다.

 

제 아무리 위장막이 되어 있다고 해도 그들의 삶이 우리네 보통의 삶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가려져 있던 것들이 차츰 오래 반복되면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고, 그랬을 때 조금씩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이질감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연예인들이 잘 사는 것이야 그것만으로 무에 잘못된 것이 있을까. 중요한 건 그 잘사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지고 방송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삶이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기획의도를 벗어나는 순간 서민들의 눈에는 그것이 놀면서 돈 버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힘들다는 얘기가 실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빠를 부탁해><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에 대한 공감이 갈수록 사라지는 건 그래서다. 보편적인 육아나 가족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할 때 그것은 저들만의 세상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거기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서민들의 공감대는 있을 수 없다



싼 재료로 그럴싸하게... <집밥 백선생>이 바꿔놓은 것들

 

콩나물 100원 어치 주세요.” 3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어머니가 사온 100원 어치 콩나물로 반은 콩나물국 끓이고 반은 무쳐서 반찬을 내놓으면 그만한 밥상이 없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콩나물은 싸다. 천 원 어치만 사도 한 끼 음식으로 충분한 양이다. 5천 원이면 한 박스를 살 수 있다. 흔하고 싼 식재료라서 그런지 먹을 것 없는 가난한 밥상에 구색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인 게 콩나물이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런데 그 콩나물이 달리 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덕분이다. 백종원은 콩나물을 갖고 할 수 있는 남다른 음식들을 선보였다. 어린 시절 별식 중에 별식이었던 콩나물 밥, 술안주로도 좋고 해장으로도 좋은 얼큰 콩나물 찌개, 이게 콩나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그럴싸한 닭갈비 소스를 이용한 콩나물 불고기... 값싼 재료라 늘 밥상 위에 올라와도 주연급(?)이 되지는 못했던 콩나물이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값 비싼 재료로 고급 요리를 만든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건 그만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런 고급 요리를 만들 수 있을만한 환경 또한 필요하다. 그러니 그런 요리를 방송으로 본다고 해서 일반 서민들에게 그만한 감흥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콩나물 같은 흔하디흔한 재료를 그럴싸하게 보이는 고급진(?) 음식으로 내보일 수 있는 꿀팁이라면 다르다. 가뜩이나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는 요즘, 몇 천 원 어치 콩나물로 일과 술에 지친 남편의 해장국을 끓여주고, 아이 입맛에 딱 맞는 콩나물 불고기를 해줄 수 있다면 주부들로서는 반색할 일이 아닌가.

 

백종원의 음식은 딱 콩나물을 닮았다. 그리 특별하다거나 각별하지 않다. 그래서 굳이 요리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애매하다. 백종원 스스로도 요리가 아닌 음식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요리사가 아니라 사업가라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집밥 백선생>에서 자신이 내보이는 음식이 전문 셰프들에게는 너무나 소소한 것이라는 걸 자인하곤 했다.

 

심지어 그는 음식을 선보이다가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콩나물밥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물을 맞추는 일인데, 미리 콩나물을 끓여 그 물로 밥을 한 후 거기에 끓인 콩나물을 얹는다는 건 발상의 전환이다. 그런데 끓인 물을 식히지 않고 밥을 하다 보니 밥이 질어진 것. 백종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이 신도 아닌데 실수할 수 있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걸 보며 아마도 백전노장의 주부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천 원어치 콩나물, 콩나물 밥 같은 흔한 음식, 그리고 때로는 예상외의 실수까지. 이것은 아마도 보통의 주부들이 늘 부엌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니 백종원을 특별한 요리사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는 그냥 주부들이 매일 같이 하는 그 한 끼 식사를 좀 더 간단하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법을 그저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백종원 덕분에 이제 콩나물도 달리 보이게 생겼다. 어딘지 밥상 한 구석에서 구색으로 치부되며 억울해했을 콩나물을 밥상 중간으로 떡 하니 세워놓는 일. 늘 주방에서 음식을 해 내놓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 흔적도 별로 안 남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폄하되던 주부들의 식사 준비가 사실 매일 벌어지는 가족사의 중심이라는 걸 되새겨주는 일. 무엇보다 먹을 게 없어 콩나물국만 주야장천 끓여내며 자조해온 가난한 주부들에게 그 콩나물국이 얼마나 좋은 음식이냐고 알려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집밥 백선생>에게 충분히 고마울 일이 아닐까



게스트로 보이는 <삼시세끼>의 초지일관

 

tvN <삼시세끼>의 가장 큰 특징은 정착형 예능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곳을 계속 찾아가는 여행과는 달리,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변화과정에 집중한다. 늘 새로움을 줘야 하는 일반적인 예능으로서는 그리 유리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워 보이는 풍경이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도시인들의 로망을 건드렸다. 그저 하루 세끼 챙겨먹는 일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인 시간들.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그런 무료함은 어느새 판타지가 되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인지라 <삼시세끼>가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카메라는 옥순봉 세끼집 주변에 자라는 꽃을 벌의 시점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하고, 작물들이 자라나는 장면들을 생명의 신비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경이로운 장면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반복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패턴을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삼시세끼>는 게스트라는 변수를 활용한다. 새로운 손님을 초대함으로써 그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

 

최근 <삼시세끼>의 게스트 활용법을 보면 쿡방 전성시대를 총망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를 배워온 손호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요리 대결을 벌이는 홍석천이 찾아온 데 이어 드라마 <파스타>로 버럭 셰프 캐릭터를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이선균이 다음 게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쿡방의 주역들을 게스트로 출연시키면서도 거기에 <삼시세끼>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명민함이 돋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이 아니라 손호준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냉장고를 부탁해>의 전문 셰프들이 아니라 연예인 요리사인 홍석천을, 그리고 <파스타>의 실제 모델이었던 샘킴이 아니라 그 드라마 주인공인 이선균을 출연시킨다는 건 특별한 선택이다. <삼시세끼>는 전문 셰프들을 출연시키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삼시세끼>가 요리사들의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는 쿡방과는 다른 결을 가진 예능이라는 걸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삼시세끼>는 요리사들의 예능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요리를 해먹는 것이 포인트다. 그러니 백종원보다는 요리 무식자에 가까운 손호준이 낫고, 요리만이 아니라 특유의 흥을 가진 홍석천이 훨씬 낫다. 물론 이선균은 요리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의 버럭 캐릭터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손호준은 <집밥 백선생>에서 배워온 강된장으로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김광규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삼시세끼> 내용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손호준이 김광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그 관계가 훨씬 더 주목되었다. 홍석천이 출연한 방송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선보인 태국식 요리들만큼 흥미를 준 것은 딱딱하게 타버린 빵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제빵왕 서지니의 변명이었다.

 

쿡방이 대세지만 <삼시세끼>는 그렇다고 전문 요리사들을 데려와 화려한 요리 쇼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한 끼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손호준이나 홍석천, 이선균이 모두 요리와는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출연이 화려한 쿡방을 예고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래서 평범하고 보통인 한 끼를 고수한다는 점은 <삼시세끼>가 가진 일관된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일이다



관찰카메라가 투덜이들을 좋아하는 까닭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은 투덜이 아빠다. 귀차니즘의 대가(?)답게 집에서는 거의 런닝셔츠같은 차림에 소파, 침대와 껌딱지다. 딸 혜정이 뭘 하자고 하면 일단 그걸 왜 하냐?”고 투덜대고는 결국은 그걸 하게 된다. 늘 투덜대고 퉁명스럽게까지 보이지만 그건 그의 겉모습일 뿐이다. 그는 다만 겸연쩍은 행동을 하기가 쑥스러운 것뿐. 대부분의 아빠들이 이렇지 않을까.

 

'아빠를 부탁해, 삼시세끼(사진출처:SBS, tvN)'

<아빠를 부탁해>에 조재현이 있다면 tvN <삼시세끼>에는 원조 투덜이 이서진이 있다. 그 역시 이 시골 살이에서 뭐든 귀찮아하는 귀차니즘의 대가다. <삼시세끼>에서 혜정의 역할은 나영석 PD. PD가 이틀 후 아침 메뉴로 갈릭 바게트를 얘기하자 이서진은 난 못 알아 들었어라며 황당해했다. 하지만 이틀 후 그는 스스로 만든 화덕에서 잘 구워진 갈릭 바게트를 꺼내놓고는 득의만만해했다.

 

투덜이들이 사는 세상. 도대체 관찰카메라가 투덜이들을 더욱 좋아하는 까닭은 뭘까. 그것은 고분고분 수긍하고 순종하는 인물보다 훨씬 극적인 상황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관찰카메라가 한 편의 드라마라면 그럴 듯한 갈등 구조가 있어야 한다. 상황 속에서 대립각이 서지 않으면 그 장면은 밋밋하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재현이나 이서진이 이 관찰카메라 세상에서 주목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들은 결코 사소한 일 하나라도 그냥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다.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 하나 타는 일도 하다못해 딸과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는 일도 또 딸의 자전거를 가르치는 일도 조재현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그것 자체가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덜투덜대지만 어쨌든 그는 그러면서도 그걸 다 해낸다. 그래서 그가 나오는 분량은 매회가 작은 도전처럼 여겨진다.

 

이서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밥 한 번 스스로 해먹지 않았을 것 같은 분위기의 이 차도남은 정선의 삼시세끼 집에 내리면서부터 툴툴대기 시작한다. “그런 것 좀 하지 마.” “노예근성을 버려.” “○○은 얼어 죽을...” 이런 말들을 수시로 쏟아내지만 나영석 PD 말대로 그는 또 그러면서도 결국은 더 열심히 그 일을 해내는 인물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그래서 나영석 PD 앞에서는 불만을 잔뜩 쏟아놓지만 할배들 앞에서는 모든 걸 살뜰히도 챙기는 아들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들이 관찰카메라에서 주목받는 건 단지 이 대립을 통한 극적인 효과만은 아니다. 그것은 관찰카메라가 추구하는 가장 보통의 캐릭터들로서 그들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조재현은 가장 보통의 아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서진 역시 가장 보통의 도시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낯선 경험들 앞에서 투덜대지만 또한 그 경험이 주는 즐거움에 조금씩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동은 가장 보통의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관찰카메라는 특별한 것들의 선망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이고 보통인 것들의 공감을 추구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방송이라고 해도 늘 해왔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조재현이나 이서진 같은 투덜이들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된다. 그 투덜이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 똑같은 모습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그들의 변화에 동조하게 된다. 조재현이나 이서진 같은 투덜이에 대한 주목은 관찰카메라 시대가 어떤 인물을 요구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영석 PD, 최고의 자리에서 프로그램 홍보라니

 

박신혜 2탄이 남았다. 이번 주 <프로듀사> 보다가 루즈한 부분 나올 때 바로 채널 돌리면 박신혜 씨가 나올 거다. 많은 시청 부탁드린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영석 PD는 이런 말로 TV부문 대상 수상소감의 마무리를 했다. 예능PD로서는 처음으로 대상을 거머쥔 PD치고는 참으로 싸 보이는수상 소감이 아닐 수 없다. 최고의 자리에서 프로그램 홍보라니.

 

'백상예술대상(사진출처:JTBC)'

그런데 바로 이런 점이 나영석 PD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사실 최고의 위치라는 것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영석 PD가 그 최고의 위치에서 한 것은 깨알 같은 프로그램 홍보였다. 이 얘기는 그런 시상식에서도 그는 여전히 프로그램을 열심히 만드는 PD라는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최고의 위치에 대상 수상자로 서게 됐지만 다시 저 치열한 촬영현장의 PD로 단번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

 

그는 예능은 자 붙은 상 받으면 잘 안 된다는 징크스를 얘기하기도 했다. 이건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예능은 가장 낮은 위치에 서 있을 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서민들의 눈높이를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상이라는 높이는 더 많은 책임감이나 무게감을 갖게 만든다. 그는 이 불리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 말에는 또한 그간 예능이 대상을 받지 못해왔던 것에 대한 아쉬움 역시 묻어난다. 왜 예능이 대상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까.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예능은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영석 PD가 대상을 받은 것에는 이런 편견을 깨는 일이기도 했다.

 

나영석 PD가 백상예술대상의 최고상에 선정된 데는 지금 현재의 대중문화 트렌드가 반영되어 있다. 즉 지금은 바야흐로 예능의 시대다. 잘 만들어진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웬만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가 만든 해외 배낭여행 트렌드나 실버트렌드, 그리고 <삼시세끼>가 만든 쿡방 트렌드나 유기농 라이프 트렌드가 그 증거들이다.

 

게다가 이제 예능의 주인공은 출연자들이라기보다는 예능을 만드는 PD라는 것이 최근 달라지고 있는 시선이다. 즉 똑같은 아이템을 줘도 어떤 PD가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처럼 몇몇 스타 예능 MC들이 프로그램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굳이 프로그램도 또 출연자도 아닌 나영석 PD를 백상이 선택한 데는 그런 의미도 깔려 있다.

 

그러니 나영석 PD는 본인 스스로 표현했듯이 뜬금없는대상에 겸연쩍어할 필요가 없다. 받을 만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영석 PD의 그 싸 보이는수상 소감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높은 위치에 오른다고 해도 굳이 자신을 저 밑으로 끌어내리려는 그 모습에서는 늘 대중들과 똑같은 보통의 눈높이를 추구하는 그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이러니 그의 깨알 홍보에 기꺼이 넘어갈밖에.

 

<12>, 참신했던 서울대 김종민들의 만남

 

<12>은 왜 서울대에 갔을까. 언뜻 여행이란 소재와 서울대는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2>의 유호진 PD는 세계의 유명 대학들은 관광명소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학은 때로는 도시의 녹지와 공원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서울대는 학교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곳이 하나의 작은 도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12>이 서울대에 간 이유가 어디 여행지로서의 그 곳을 소개하기 위함만일까. 더 큰 기획 포인트는 서울대가 주는 막연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수능만점자 만나는 것이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흔한 곳. 남다른 뇌섹남, 뇌섹녀들이 있는 그 곳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과 동경.

 

그렇지만 <12>이 보여주려 한 것은 서울대생이라는 그들만의 특별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역시 보통의 청춘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라는 걸 <12>은 보여주었다. 휴강이 되면 마치 축제라도 하듯 즐거워하며 삼삼오오 캠퍼스 잔디밭에 둘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애니메이션 동아리 같은 활동에서는 그 누구보다 오타쿠들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

 

그런 점에서 서울대에서 찾은 여럿의 동명이인 김종민들과 <12> 팀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특히 흥미로웠다. <12> 멤버들은 읽지도 못하는 수학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서울대생들이지만 제기차기 대결을 하거나 콜라 빨리 마시기 대결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또래의 청춘들과 다름없었다.

 

이른바 신바(신나는 바보)’라는 캐릭터로 불려온 김종민이 똑똑한 서울대 김종민들과 팀을 이룬다는 발상은 그래서 그 자체로 우습기도 했지만 서울대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깨주는 설정이기도 했다. 서울대는 그렇게 <12>의 놀이를 통해 조금씩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공부에는 서울대생들을 당해낼 수 없는 <12> 팀이지만 재치에 있어서는 역시 <12>팀이 한 수 위였다. 2 빼기 2라는 공식의 답을 김준호는 이를 다 뺐으니 잇몸이라고 말해 주변 사람들을 포복절도시켰고, 10억 단위의 숫자 연산문제를 실패하자 데프콘이 문제를 로또 상금으로 얼마를 받았는데 누나 명품 백 사주려 얼마를 쓰고하는 생활밀착형 문제로 바꿔 냈으면 맞췄을 거라고 해 큰 웃음을 주었다.

 

서울대생이라고 취업 문제에 있어서는 걱정이 없을까. 휴강을 맞아 잔디밭에 앉아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던 데프콘은 불쑥 공부를 잘하니 취업 걱정이 없겠다고 물었다. 그러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암울하다다들 고시 준비를 한다고 말했던 것. 청년 실업 문제는 서울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12>이 만난 것은 단지 우리네 최고의 명문대생들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들 역시 똑같은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보통의 청춘들이었다. <12>의 서울대 여행은 그래서 우리가 막연히 생각해온 서울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황석정이 보여준 <나 혼자 산다>의 진가

 

황석정은 드라마 <미생>의 반전뒤태 재무부장으로 대중들의 마음속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러브콜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제 중년에 혼자 살아가는 그녀는 MBC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최적일 수밖에 없다.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소유나 효린, 엠버처럼 간간히 여성 출연자들이 출연하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상에 부려진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자칫 엿보기 악취미로 그려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일상이 주는 헛헛함이 어찌 남성들만의 것이랴.

 

그런 점에서 보면 황석정만큼 그 리얼함의 끝을 보여준 인물도 없을 것이다.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민낯은 기본이고 목욕탕에 쪼그리고 앉아 긴 머리를 벅벅 감는 모습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같이 사는 반려견 대박이와의 스킨십은 마치 오래된 지인같은 편안함이 묻어나고, 도시락으로 김밥을 마는 솜씨에서는 그녀의 능숙함이 묻어난다.

 

사실 황석정이 등장해서 보여주는 특별함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일상일 뿐이다. 차 한 잔을 들고 나와 베란다에 앉아 마시는 장면이나, 거기에 그녀가 키워놓은 꽃과 야채를 살짝 보여주는 것, 그리고 소파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일상처럼 보이는 대박이를 바라보는 건 남다를 것 없는 보통사람들의 삶 그대로다.

 

이제 대중들이 TV를 통해 보려고 하는 건 셀러브리티들의 특별한 삶에 대한 선망이 아니게 되었다. 관찰카메라의 시대는 보다 일상 가까이에서의 공감을 요구한다. 따라서 황석정이 보여주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소소함이란 다름 아닌 <나 혼자 산다>가 가진 진가다. 이 프로그램을 늘 새롭게 하는 것은 그 특별함을 거둬내고 일상의 자잘함들에 시선을 돌릴 때 생겨난다.

 

민화를 배우고 그렇게 그린 그림을 황정음이나 김광규 같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같은 나이로 혼자 살아가는 대학동기들과 만나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이젠 달콤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 나이대에 가질 수밖에 없는 솔직한 소회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텅 빈 집으로 홀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누구나 그 삶의 뒤태를 보면 느껴질 수 있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병원 검사비 때문에 한껏 딸을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괜찮다고 재차 말하는 황석정의 무덤덤한 표정 속에는 그래서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담긴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그렇게 하루를 들여다보면 드디어 보이는 그 반짝거림의 실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일상으로 흘러가지만 그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지게 만든다는 것.

 

이것은 <나 혼자 산다>가 빛나는 이유다. 이 카메라가 헌사하는 일상에 대한 시선들 속에는 그렇게 무참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에 대한 소중함이 묻어난다. 황석정의 그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들에서 느껴지는 보통의 특별함’. 그것이 <나 혼자 산다>의 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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