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2’는 어떻게 연예인 관찰카메라의 한계 넘었나

이른바 관찰카메라의 시대지만 그 호불호는 확실히 나눠진다. 특히 연예인이 그 가족과 함께 등장하는 관찰카메라에 대해 대중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싱글와이프>나 <둥지탈출>이 연예인들의 가족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사실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건 단적인 사례다. 

'동상이몽2(사진출처:SBS)'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상이몽2>는 그 반응이 다르다. 여기에도 추자현과 우효광 부부가 등장하고, 이지애와 김정근 아나운서 부부가 등장한다. 물론 이재명 시장과 그의 아내 김혜경이라는 특별한 출연진이 눈에 띄지만 정치인과 연예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유명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도대체 <동상이몽2>는 무엇이 다르기에 연예인(유명인) 가족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 아닌 호평을 받고 있는 걸까. 

가장 큰 것은 <동상이몽2>가 보여주는 게 그저 연예인 부부의 특별한 일상이 아니라, 보통의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면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재명 시장과 김혜경 부부가 강원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모습은 그 나이의 부부들이 보여줄 만한 현실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풀 빌라가 로망인 아내와 낚시를 하고픈 남편. 그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금세 “내가 정말 당신을 사랑했나보다”라며 과거 임신했을 때조차 낚시를 하러 갔던 때를 회고하는 아내의 이야기는 둘 사이에 쌓인 남다른 부부의 정을 느끼게 해준다.

추자현과 우효광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대륙의 별’이라 불릴 만큼 유명해진 추자현이지만 우효광과의 부부생활에서 그녀는 달콤살벌한 현실 부부의 면면을 드러낸다. 용돈을 올려달라는 우효광의 요구에 과거 목돈을 줬다가 주식투자를 해 날린 남편 이야기를 꺼내 말문을 막아버리는 추자현의 모습이 그렇다. 그렇게 현실적인 갈등을 보이지만 또 헤어질 때면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절절한 애정을 보여준다. 유명한 연예인으로서의 일상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현실 부부로서의 공감대가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지는 이유다. 

짧은 분량으로 등장하는 이지애와 김정근 아나운서 부부의 일상은 더더욱 현실적이다. 프리 선언한 후 백수가 되어 육아대디의 삶을 살아가는 김정근이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나 카드가 없지롱”하고 말하는 대목은 빵 터지면서도 짠한 현실감을 준다.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아내와 철없이 비싸도 최고의 제품만을 사려는 남편 사이의 실랑이나, 아내가 준 카드를 바로바로 내역이 문자전송 되는 것 때문에 쓰지 않는 남편의 이야기는 보통의 우리 같은 부부들 역시 공감할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런 공감대가 바탕이 되어 있고, 그것이 <동상이몽2>라는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남편과 아내의 서로 다른 입장을 통한 소통이라는 지점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연예인 가족 홍보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즉 최근 민감해진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의 관건은 연예인 가족이 출연한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방송이 어떤 걸 지향하고 있고 그 메시지가 충실하게 시청자들을 공감시킬 만한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불편해하는 건 저들 만의 이야기가 보통의 시청자들과의 공감대와 상관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관찰카메라를 제작하는 이들이라면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할 것이다. 왜 그 방송을 시청자들이 봐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 <동상이몽2>는 현실부부의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한다는 지점에서 그 질문에 충실히 답하고 있다.

<탐정>, 권상우 성동일 콤비를 보며 부부를 떠올렸다면

 

미드 <셜록>에서 셜록은 마치 편집증 환자 같은 탐정의 독특한 매력에 전 세계 시청자들을 푹 빠뜨린 바 있다. <셜록>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탐정물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셜록 같은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 우리네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황과 정서에는 거기에 맞는 그만한 캐릭터가 필요할 테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탐정 : 더 비기닝(이하 탐정)>은 이러한 질문에 마치 정답지를 내미는 듯한 영화다.

 


사진출처: 영화 <탐정 더 비기닝>

별 기대 없이 <탐정>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그 소소하고 일상적이며 나아가 비루하기까지 한 시작에 혹시나가 역시나가 아닐까 후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탐정>은 초반의 이 소소함이 향후의 긴박감 넘치는 추리와 액션으로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다.

 

미제사건카페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로 탐정을 꿈꾸는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과 레전드 형사였지만 지금은 후배에게 밀려날 처지에 놓여있는 노태수(성동일). 읽고 본 건 많아 촉이 살아있는 강대만과 몸으로 부딪치며 갖게된 감이 살아있는 노태수. 버디 무비의 전형적인 틀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덜컥거릴 수밖에 없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은 하지만 바로 그 다르다는 점 때문에 살인사건을 수사하는데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환상의 콤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너무 다른 성격과 삶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은 살벌한 살인 현장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뛰고 또 뛰는 이 인물들이 마누라의 한 마디에 !”하고 뭐든 할 것 같은 공처가들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은 깨알 같은 웃음으로 관객들을 빠뜨린다. 이 정도면 코미디로서 괜찮은 조합과 선택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면서 굳이 더 비기닝이라는 의욕을 내비쳤을까. ‘더 비기닝이라면 이번 영화로 만들어진 설정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 <탐정> 시리즈를 이어가겠다는 포부다. 그게 말이 된다고 여겨지는 건, 아내에게 꼭 잡혀 살면서 눈치 보며 그래도 제 하고 싶은 일을 기웃거리는 강대만이나, 살벌한 비주얼과 느낌이지만 역시 빨간 고무장갑이 손에 맞지 않아 설거지가 어렵다는 노태수가 너무나 우리네 정서에 딱 맞으면서도 우리식의 추리와 형사물에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추리물이 갖는 의외의 반전들이 주는 재미와 함께 이들의 일상에 대한 공감이 각자 다른 이야기처럼 움직이다가 후반부에 하나의 메시지로 묶여지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추리물이나 형사물이 아니라 그 장르를 통해 일상의 메시지까지를 던지는 깊이를 숨기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이 터지고, 그러면서도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게 공처가로 내몰린 두 남자가 마치 남편과 아내 같은 케미로 엮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태수가 힘과 경험만을 내세우는 남편이라면 강대만은 꼼꼼하게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아내 같은 느낌. 그래서 마치 남편과 아내가 공조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듯한 이 영화의 느낌은 공처가인 두 남자의 판타지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분위기가 싸해져도 또 뭐가 잘 맞지 않아 툭탁거려도 결국은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는 그런 관계에 대한 판타지. 그 관계가 부부건 아니면 버디무비의 형제 같은 느낌이건.



<나를 찾아줘>가 보여주는 기막힌 미국사회에 대한 통찰

 

미국식 막장이라는 표현은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에 온당할까. 아마도 끝없는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고, 숨겨졌던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져 나오며, 멀쩡했던 인물들이 끔찍할 정도로 변신하는 그 과정들이 우리네 막장 드라마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심지어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MBC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과 비교하기도 한다.

 

출처 : 영화 <나를 찾아줘>

하지만 한 마디로 얘기하면 <나를 찾아줘><왔다 장보리> 같은 우리네 막장드라마는 비교 불가다. 다만 그 속도감과 놀라운 반전에 반전이 유사하게 여겨질 뿐, <나를 찾아줘>라는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의 밀도는 우리네 막장드라마들의 그 허술함과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나를 찾아줘>의 이러한 빠른 전개와 반전요소들이 그저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이 하려는 주제의식과 딱 맞아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줘>는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듯 보였던 부부 닉(벤 애플랙)과 그의 아내 에이미가 보여주는 거의 막장에 가까운 그네들의 연기적인 삶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에이미 때문에 그녀를 찾아 나선 닉은 사랑하는 아내를 절절하게 찾고자 하는 남편처럼 보이지만 차츰 그와 그들의 부부생활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건이 전개되면서 점점 에이미의 실종은 마치 닉의 살인이라는 심증으로 흘러가는데, 이것은 이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가 본격적인 반전을 만들어가는 데 거의 시작 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아주 담담하게 시작했는데 영화가 흘러가면서 점점 사건들이 중첩되고 그로인해 예측과 배반이 계속되는 이 흐름은 특별한 스펙타클 없이 이야기로만 흘러가는 이 긴 영화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이토록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드는 그 힘은 영화가 가진 놀라운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다. 영화는 한 쪽으로 이야기를 몰고 나갔다가 그 지점에서 다시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틀어버리는데 대단히 능하고, 그것은 또한 작품이 말하려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까지 하다.

 

영화가 반전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는 스포일러에 해당되는 것일 게다. 하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연기하는 삶의 끔찍함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쇼윈도 부부라고 부르는 그 연기하는 삶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결탁하고 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끔찍한 짓들이 자행되면서도 전혀 도덕적으로 둔감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나를 찾아줘>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도대체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삶. 그것은 이 영화의 극적인 전개만을 빼놓고 본다면 우리네 현대인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그 복잡한 삶 속에서 겉으론 멀쩡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잘 살아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본색이 숨겨진 채 연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 않던가.

 

<나를 찾아줘>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건 미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이중적인 얼굴이다. 겉으로 보면 미국(美國)’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의 외견을 보여주지만 어디 실체가 그런가. 로맨틱한 사랑의 이면에서도 쿨하다는 시대적 연기 강령을 가진 미국은 그 속에 자본의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한다 하면서 모든 걸 제 손에 쥐고 통제하려는 욕망은 그래서 때로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를 찾아줘>는 그래서 한 멀쩡해 보이는 부부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미국 사회가 가진 이중적 얼굴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미국식의 자본주의를 이식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문제가 아니다. 이 기막힌 미국사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가 막장이라고? 만일 이런 게 막장이라면 매일 보고 싶다.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니 세월호의 참상 실감

 

JTBC<마녀사냥> 대신 세월호 참사 관련 소재로 특별 제작된 <다큐쇼>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를 방영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우리의 시선은 줄곧 TV의 상단 우측이나 좌측에 쏠려 있었다. 거기에는 실종자 수와 사망자 수 같은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바뀔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허물어졌다.

 

'다큐쇼(사진출처:JTBC)'

하지만 숫자는 폭력적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정부의 실종자 발표는 계속해서 오락가락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라는 희망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가 곧 정정되었고 그 숫자도 계속 바뀌었다. 그 때마다 정부의 변명은 계산 착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산 착오에 실종자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에게는 그 숫자 하나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이기 때문이었다.

 

<다큐쇼>에서 마련한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세월호 참사라는 막연한 문구 아래 가려진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간다. 그 배에는 두렵다는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준 의로운 분도 타고 있었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받고 구조된 친구는 사망자로 돌아온 친구 앞에서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그 분의 가족들은 애써 의연하려 노력했다. 자식의 정의로운 선택 앞에 입을 앙다물었지만 그래도 보내는 마지막 길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배에는 마지막 순간에 구조된 부부도 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부부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모든 시간이 거기에 멈춰 있었다. 아내는 충격의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남편은 그 아내를 어쩌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 구조되는 순간 부모와 형제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8세 아이를 함께 탈출시키며 그 부부는 또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그 어린 나이에도 죽음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배에는 중국인 부부도 있었다. 착실하게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났다는 그 부부는 그러나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 부부의 가족들은 외국인이라고 확인도 되지 않는 상황에 놀라움과 분노를 표했다. 마지막 순간 배에 들어가는 그 부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며 눈물을 훔치는 유가족들은 결국 이 부부의 영혼결혼식을 치러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배에는 승무원은 맨 마지막이라고 외치며 끝까지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박지영 승무원도 있었다. 한 생존자는 그녀가 배가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또 자신을 도와주어 살아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제 겨우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떠난 그녀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진정한 선장이었다는 메모를 남겼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무수한 숫자들과, 막연한 세월호 참사라는 문구가 아니라 그 숫자와 문구 뒤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오열이 남겨져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숫자가 아닌 그 분들의 면면과 마지막 행적으로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일. 그것이 아프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해야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침몰한 배가 아니다. 숫자가 아니다. 그 배엔 사람이 타고 있었다.

결혼은 선택, 하지만 아이는...

SPECIEL 2014.03.01 09:37 Posted by 더키앙

파경 드라마, 하지만 육아 예능 그 의미

 

적어도 우리네 드라마 상에서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것 같다. 흔하디흔한 가족드라마들이 파경을 다루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해지만 재혼한 여자가 겪는 또 한 번의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나듯이 이 드라마에서 결혼한 이들은 하나 같이 불행하다. 재혼한 여자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뻔뻔해질 수 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재혼한 남자는 아내가 아이를 보듬어주기는커녕 아이를 심지어 질시하는 미성숙한 인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결국 김수현 작가가 하려는 얘기는 타인과 함께 살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자신을 기만하고 결혼한 이들은 예정된 파행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결혼은 반드시 해야 될 어떤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라는 전언.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에 세 번 결혼할 여자의 언니는 아직까지 미혼인데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보다는 동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최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등장하는 싱글턴(혼자 사는 삶)을 표징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는데 주목할 점은 그녀 역시 그다지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결혼해서 누군가와 같이 살거나, 아니면 미혼으로 혼자 살거나 그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는 파경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부부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서로 주고받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당연한 선택지로 내세워지던 이혼이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변수들에 의해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아이의 문제가 그렇고, 양가 가족들의 문제가 그렇다. 때로는 그렇게 한 발 물러서고 나서 오히려 상대방이 이해되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한다. 이 드라마 역시 결혼이 남녀 간의 사랑을 묶어내는 틀로서 얼마나 불안한 제도인가를 잘 드러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제시되는 상황은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크라이넨버그는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점점 결혼의 틀로 들어가기 보다는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이 늘고 있고, 통신혁명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대도시의 형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삶을 만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 혁명적인 수명연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삶을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 비율이 네 집 건너 한 집에 육박하고 있으니 싱글턴의 사회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식샤를 합시다> 같은 드라마나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방송 콘텐츠들이다. 이 라이프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결혼은 사실상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 제 아무리 선택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문제다. 남자든 여자든 그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한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이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종족 보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TV만 켜면 여기 저기 아이들이 나오는 육아 예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점점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는 느낌. 그것이 왠지 결혼이 선택이 되고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무관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왜일까. 우리는 어쩌면 책임 없는 과실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상의 행복이라고 할 지라도.

<네 이웃의 아내>, 불륜 넘어 공감 얻는 까닭

 

결혼 17년 차,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지만 아내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남자 안선규(김유석). 그는 커리어우먼으로 집안일에는 영 신경을 쓰지 않는 아내 채송하(염정아)보다 앞집으로 이사 온 주부9단 홍경주(신은경)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요리 솜씨가 일품인데다가 아이들과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드센(?) 아내와는 비교되기 때문이다.

 

'네 이웃의 아내(사진출처:JTBC)'

한편 홍경주의 남편 민상식(정준호)은 사회생활을 전혀 모르는 아내 홍경주보다 우연히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된 앞집 여자 채송하에게 눈길이 간다. 커리어우먼으로서 남자들도 버티기 힘든 광고판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내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원리원칙주의자인 남편 안선규와는 달리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원칙을 포기하는 민상식에게 마음이 가는 채송하나, 늘 부엌데기로 자신을 무시하는 민상식과는 달리 자상한 안선규에게 마음이 가는 홍경주도 마찬가지다.

 

<네 이웃의 아내>는 이처럼 불륜, 그것도 크로스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다 중년의 성담론이나 리얼한 사회생활 속에서의 접대 문화 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자극이 약한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우리가 흔히 불륜 드라마라고 부르는 드라마와는 완전히 상이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왕가네 식구들>에서 옛 남자친구인 허우대(이상훈)를 만나는 왕수박(오현경)이나, 조강지처를 내버려두고 은미란(김윤경)의 돈에 빠져드는 허세달(오만석)의 불륜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이것은 불륜을 다뤄도 그 목적이 다른 데서 나오는 차이다. 즉 <왕가네 식구들>이 다루는 불륜은 그 뻔뻔함을 통해 보는 이들을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식으로 자극을 위한 자극이 목적이지만, <네 이웃의 아내>는 위기의 중년부부가 겪는 권태기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시에 부부가 서로를 역지사지로 이해해가는 과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

 

즉 정의로운 의사로서 원리원칙을 자존심으로 버텨온 안선규는 민상식을 통해 아내가 겪는 사회생활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 아내를 위해 원칙을 꺾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생활을 전혀 모르는 아내를 늘 가정부처럼 부리며 무시하던 민상식은 채송하를 통해 그의 아내 역시 사랑받기를 원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이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불륜의 구조는 다분히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즉 민상식과 채송하는 살벌한 직장생활의 공감대를 보여주고, 안선규와 홍경주는 가정생활의 공감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이 네 인물이 보여주는 각자의 입장들이 모두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는 점이다.

 

가족을 위해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으며 개처럼 사회생활을 해온 민상식이나,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뛰어넘어 커리어우먼으로서 당당히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채송하, 돈은 못 벌어도 환자를 위한다는 그 의사의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안선규나,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자신을 위한 삶을 꿈꾸는 홍경주 모두 중년의 시청자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인물들이다.

 

이렇게 각자의 처지에 대한 공감대를 가진 인물들이 잠시 잠깐 타인에게 눈길이 가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둔감해진 부부 사이의 위기를 역지사지로 넘어서는 드라마가 바로 <네 이웃의 아내>다. 따라서 <네 이웃의 아내>는 불륜의 설정은 갖고 있어도 그 일정 수준의 선은 넘지 않는 거리두기의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상상 불륜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을 법하지만 그렇다고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자극제로 부부관계를 되돌아보는 것.

 

그러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네 이웃의 아내>와 <왕가네 식구들>은 제목과는 다른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주는 셈이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에서 따온 <네 이웃의 아내>가 아예 대놓고 불륜을 소재로 내세우면서도 불륜의 늪에 빠지지 않는 반면, <왕가네 식구들>은 마치 전형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처럼 보이면서도 오히려 불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에서 불륜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 숱한 고전들 속의 남자들이 ‘이웃의 아내’를 탐해왔다는 것은 이것이 결혼제도를 갖게 된 인간의 본능적인 서사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단지 불륜 코드가 갖는 자극만을 담아내기 때문에 흔히들 ‘불륜 드라마’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네 이웃의 아내>는 ‘불륜드라마’라기보다는 간만에 보는 ‘성인들을 위한 공감드라마’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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