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 그 아픈 사랑이 묻는 국가의 존재이유

여러 권에 이르는 엄마의 노트는 빼곡한 글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노트 안에는 성준이의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담겼다. 의사 선생님은 그 노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준이가 어떤 상태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 엄마는 그 성준이를 끼고 살았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성준이의 상태를 살피고, 성준이와 놀고, 학교를 가서도 교실 문 밖에서 혹여나 아이가 아플까봐 노심초사 들여다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MBC <휴먼다큐 사랑> 4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와 그 가족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살아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엄마. 그 엄마가 보여주는 성준이의 어린 시절 모습들은 그것이 왜 기적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가 연습을 통해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생일 날 촛불도 끄지 못했던 아이가 드디어 촛불을 끄는 그 순간이 엄마에게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삶 따위는 모두 지워버린 채 온전히 성준이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엄마. 그 빼곡한 노트에 채워진 글씨들에서 느껴지는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안전하다는 문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가습기 살균제. 그래서 믿고 사용했지만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 줄이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이를 잃은 다민이 아빠는 “이건 부모가 자식을 서서히 죽인 것”이라고 그 비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법원의 판결들 앞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에는 부모 같아야할 나라가 자식 같은 국민을 내버리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겼다. 

성준이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 어른거리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의 이야기에 담겨진 특별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파양에 학대 그리고 추방까지 당한 신성혁의 사연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바다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며 3년 간 딸들이 유해로나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해온 다윤, 은화 엄마들의 사연이 그랬다. 

그들은 마치 그 가슴 아픈 일들이 자신들이 잘못해서 생긴 일인 것처럼 무거운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 잘 살라고 입양시켰지만 결과적으론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 신성혁의 부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고,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에 다윤, 은화 엄마는 가슴을 쳤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성준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하지만 그 가슴 절절한 사랑을 들여다보면 그 아픔을 보듬어줘야 할 국가의 부재가 느껴졌다. 도대체 이 부모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어째서 그 부채감을 부모가 온전히 떠안고 알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은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 속에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질문들까지 담아내는 기존과는 다른 면들이 주목되었다. 

사랑은 그래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물었고,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정의를 묻는 그 질문들이 그저 갑자기 터져 나온 분노만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 상식적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안에서 눈물 속에 그 희생어린 사랑을 멈추지 않고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 우리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을 보며 느낀 먹먹함과 아픔과 함께 그 안에 어른거리던 분노의 실체가 아닐까.

<귀향> 어째서 모두가 봐야하는 영화일까

 

단 한 장면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구덩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진 소녀들. 흙투성이의 맨발과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것만 같은 눈물 자욱. 다른 곳에서 봤다면 그 색색의 한복이 그토록 고울 수 있었을 그녀들이 거기 그렇게 방치되어 있다. 그녀들의 몸은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직전에 남긴 그녀들의 마지막 목소리들이 귀에 쟁쟁 울리는 듯하다. 그 구덩이는 <귀향>이라는 영화가 애써 재현해내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아예 없었던 것이 될 뻔했을 게다. 그것이 또 끔찍하고 먹먹하다.

 


사진출처:영화<귀향>

어찌 보면 그리 대단히 돈이 많이 들 것 같지도 않은 이 영화가 빛을 보기까지 무려 14년이 흘렀다는 사실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앳된 나이에 그 먼 곳까지 끌려가 지옥을 살다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분들은 아마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렸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살아 돌아온 영희(손숙)가 몸은 돌아왔어도 마음은 진정으로 귀향하지 못했다고 하는 그 말 속에 그녀의 고통스런 한 평생이 느껴진다. 그 곳에서 여전히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소녀들을 어이할까. 그것은 영희가 가진 부채감이고 또한 그녀가 우리에게도 전하는 부채감이기도 하다.

 

사실 상업적인 선택이 일반화되어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문구는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귀향>은 꼭 봐야 하는 영화다. 그것은 우리가 봄으로써 기억에 담아질 수 있고, 그 하나하나의 기억들을 통해 사실이 왜곡되거나 묻혀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중오락의 성격을 띤지 오래지만 사실 그 이전에는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분명했다. <귀향>은 결코 지워져서는 안될 기록이다. 우리의 기억과 가슴에 새겨둬야 할 기록.

 

물론 그렇다고 <귀향>이 다큐적인 기록에 머무는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귀향>은 극영화로서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영화다. 씻김굿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영화는 무녀를 등장시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그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을 위한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실상은 훨씬 더 끔찍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끌려갔던 소녀들을 극도로 배려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영화는 그래서 상징적인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그 상징은 위안부의 실상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눈빛과 더럽혀진 발 얼굴에 가득한 멍 자국만으로도 커다란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과거의 소녀와 현재의 소녀가 무녀를 통해 만나는 과정은 어쩌면 없는 일인 양 단절되어 버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인다. 처음 위안부문제가 제기되고(당대에는 정신대라고 불렀지만) 그걸 피해자들이 신고하는 일조차 미친 짓으로 치부되던 시기가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노력은 그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아야할 실상이라는 걸 알게 해주었다.

 

이 영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이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 역사를 기억에 새기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 분들이 돌아올 수 있다. 그 구덩이에서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이. 그리고 몸은 돌아왔어도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우토로 마을 찾은 <무도>, 유재석이 사과한 까닭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우리가.” 유재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참고 참으며 누르고 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우토로 마을에 1세대로서는 이제 혼자 남은 강경남 할머니는 눈물을 보이는 하하와 유재석에게 오히려 울지 말라며 다독였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 되어 이주한 우리네 동포들이 지금껏 살아가는 곳 우토로 마을. 그곳에 따뜻한 한식을 들고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그렇게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한없이 고개를 떨궜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하하와 유재석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이 강경남 할머니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우리가 너무나 잘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라가 어려워 그렇게 힘겹게 한 세상을 살게 됐던 우리네 동포들이 아닌가.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버리고 있었다는 건 크나큰 잘못이었다.

 

우토로 마을이 우리에게 재조명 됐던 건 약 10여 년 전인 2004년이다. 당시 일본의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회원과 주민들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여해 했던 애끓는 호소는 여러 민간단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89년 일본정부는 우토로 거주 동포들에게 우토로에서 나가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퇴거명령 확정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강제로 끌려와 강제 노역을 했던 우리 동포들에게 터전을 주기는커녕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땅을 매각해 이제 강제 퇴거를 명령했다는 것이다.

 

2004년 이 사실이 알려지고 민간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다. 민간단체와 재단들은 '그까이꺼 사버리자'며 우토로 토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사연을 접한 서민들은 꾸깃꾸깃 모아뒀던 쌈짓돈을 모아 성금을 보내왔다. 그리고 여론에 의해 국회에서도 우토로 땅 매입을 위한 30억 원 지원이 의결되기도 했다. 2011년 이렇게 모인 기금으로 우토로 지역의 832평을 시민사회의 모금으로 또 1152평을 한국정부의 지원금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전체 크기의 3분의 1 정도 되는 규모였지만 그렇게라도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토로 마을을 찾은 <무한도전>의 하하와 유재석은 여전히 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그 곳에서 살아가는 그 분들에 대한 우리의 부채감을 마치 대변하는 듯 보였다. 그분들을 위해 <무한도전>이 정성껏 차려낸 한 끼의 밥상과 사라질 집 앞에서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듯 사진을 찍어두는 장면에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얹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의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행복해지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할머니 앞에서 결국 눈물을 터트리는 하하와 유재석의 마음은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 그대로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유재석의 이 말 속에 모든 게 들어 있었다. 이제 1세대로서는 단 한 분 남아있는 강경남 할머니. 그 할머니의 연세는 91세였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이 곳으로 와서 벌써 8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래도록 흘렸을 눈물로 더 이상 말라버렸을 것만 같은 할머니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라도 찾아준 그들에게 할머니는 연실 고마움을 표했다.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유재석의 사과는 같은 동포로서 아마도 그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었을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이 그러하듯이.



<아빠를 부탁해> 조재현 딸 조혜정, 왜 이렇게 예쁠까

 

이런 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 딸 조혜정에 대한 관심은 이미 파일럿 방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심한 아빠 조재현을 뒤에서 늘 바라다보며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딸 조혜정. 그녀가 늘 열어 놓고 있는 자신의 방문은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빠에 대해 늘 열려져 있는 그녀의 마음을.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스스로도 말하듯 조재현은 딸에게만큼은 나쁜(?) 아빠다. 드라마 촬영에 딸과 시간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는 아빠. 집에 딸과 함께 있어도 뭘 해야 할지조차 잘 모르는 아빠. 전날 술을 마셨다며 한 시간만 자자고 말하고는 그걸 기다리는 딸의 마음까지는 잘 챙기지 못하는 아빠.

 

그런 아빠 주변을 뱅뱅 도는 딸 조혜정은 아빠 바라기다. 아빠랑 뭘 하고 싶냐고 적어보라고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위시리스트를 적는 딸. 하지만 고작 그녀가 해보고 싶은 건 아빠가 해주는 밥 한 끼를 먹는 것이나, 아빠와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런 소소한 걸 하면서 그녀는 한없이 행복해진다.

 

감정 표현에 솔직한 조혜정은 애교덩어리다. 말투에서부터 애교가 뚝뚝 떨어진다. 이런 애교의 모습은 무뚝뚝한 아버지 조재현과는 사뭇 대비되는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애교에는 아빠에 대한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존경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사근사근한 태도로 아빠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방랑하다 돌아온 나쁜 아빠와 자신의 마음을 일기장에 적어 놓는 딸의 모습이 등장하는 연극을 보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조혜정의 마음에 시청자들도 공감한다. 그것이 조혜정에게는 고스란히 자신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을 터이다. 그걸 본 아빠 조재현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 때문에 가족과 그리 많은 시간을 갖지 못했던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조재현이란 아빠는 우리네 대부분 아빠들이 가족에게 갖는 부채감을 드러내는 존재처럼 보인다. 밖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멋진 아빠지만 집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나쁜 아빠.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과 조혜정의 관계가 유독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그것이 고스란히 보통의 우리네 아빠와 딸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량이 소주 두병 반이라고 딸 조혜정이 말하자 아빠 조재현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여전히 어린애로만 생각한 딸이 어느새 부쩍 자라 함께 술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도 못했는데 저토록 아빠를 바라보며 함께 걷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 한없이 행복해하는 모습이라니. 조혜정이라는 딸이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모습을 보며 새삼 세상의 아빠들은 자신의 딸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됐을 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딸들을.

 

'앵그리맘' 김희선 무리수 설정이지만 판타지 강한 까닭

 

잔혹한 학교 폭력을 당한 딸을 가진 엄마들의 마음은 어떨까. 온몸에 멍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딸을 보는 그 마음도 똑같이 멍투성이 피투성이일 게다. 폭력이 벌어져도 쉬쉬하기 바쁜 학교와 피해자보다 가진 자들의 눈치를 더 보는 교육당국,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과 처벌을 받아도 피해자가 또다시 보복을 당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엄마들은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앵그리맘(사진출처:MBC)'

<앵그리맘>은 그 피해 학생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딸 오아란(김유정)이 심각한 학교 폭력에 내몰려 있다는 걸 알게 된 엄마 조강자(김희선)는 법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박진호(전국환) 소년부 판사를 찾아가지만 거기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학교 폭력과 대항해 끝까지 싸웠던 한 엄마의 오열. 결국 아이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조강자는 법 또한 딸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현실에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이 조강자의 다음 행보는 엉뚱하다. 딸의 문제를 해결하고 복수하기 위해 여고생으로 위장해 학교에 들어가는 것. 그녀는 한 때 잘 나가던 전설의 주먹이다. 여고생들의 성희롱을 일삼는 선생님을 혼내주기도 하고, 학교 짱을 단 한 방에 쓰러뜨린 인물. 학교에 잠입한 조강자는 딸의 책상에 새겨진 저주의 말들에 오열하고 딸을 괴롭히던 여고생들을 한방에 제압해버린다.

 

딸의 복수를 위해 여고생으로 잠입하는 <앵그리맘>이라는 설정은 무리한 점이 많다. 먼저 여고생을 딸로 둔 애엄마가 제 아무리 동안이라도 여고생으로 학교에 전입해 들어온다는 게 현실적일 수는 없다. 그나마 최강 동안인 김희선이 그 역할을 맡았으니 어느 정도는 보게 되는 것이지만 이 무리수는 <앵그리맘>이 제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거의 만화 같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조강자가 폭력에 맞서는 건 또 다른 폭력이다. 그녀 역시 학창시절의 주먹이 아니었던가. 물론 정의의 주먹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폭력은 똑같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적이고 판타지적인 설정이지만 학교의 폭력 문제는 냉엄한 현실이다. 그 현실의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그런 교육 시스템 전체의 문제를 단순히 폭력의 문제로 다루고 그 해법 또한 단순한 폭력으로 보여주는 건 드라마라도 너무 지나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많은 무리수들에도 불구하고 <앵그리맘>에 대한 판타지는 꽤 크다는 점이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이고, 올바른 해법이라고도 말할 수 없지만 이처럼 판타지가 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드라마가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이 이렇게 부조리한 교육 시스템에 어떤 조처나 대안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앵그리맘>은 벽처럼 느껴지는 현실 앞에서 잠시지만 강력한 판타지가 된다.

 

거기에는 이런 현실에 무력하기만 한 엄마들의 자식들에 대한 부채감이 들어가 있다. ‘보호자가 보호해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저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조강자의 자각은 그래서 엄마들의 부채감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조강자라는 판타지는 이 부채감을 먹고 탄생한 것이다. 시스템이 해결 못하는 걸 직접 뛰어들어 해결하는 엄마라는 판타지.

 

물론 <앵그리맘>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심지어 만화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실을 건드리는 면이 존재한다. <앵그리맘>의 판타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공고한 현실을 그것이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심지어 엄마가 여고생이 되는 무리수마저 허용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린이집 사건에 대한 <무도>식의 메시지

 

왜 갑자기 <무한도전>은 과거 망했던 아이템인 아이 돌보기를 다시 꺼내들었을까. 최근 벌어진 어린이집 폭행사건은 여러모로 이 아이템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실로 아이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던 그 사건. 인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한 그 문제의 장면은 지금도 뉴스의 자료영상으로 무한 반복되어 나온다. 그 때마다 그걸 바라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허물어진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어린이집 일일교사로 나가는 걸 도우러 온 오은영 박사에게 그 사건을 보고 어떠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은영 교사는 울었다며 가슴이 먹먹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은 충격적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보육교사들이 똑같은 비난과 의심을 받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였을 게다. <무한도전>무도 어린이집특집에 그 어떤 비판적인 시선을 담아내는 걸 피했다. 물론 해당 교사의 이해할 수 없는 폭행 사실은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 비난이 열심히 노력하며 아이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보육교사들에게까지 튀는 건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선택은 그래서 어린이집을 찾아가 자식처럼아이를 열심히 돌보는 모습을 담아내는 일뿐이었다. 유재석은 아이들이 등원하기 전 미리 이름을 외워놓는 특유의 자상함을 보여줬고, 박명수는 조금 거친 듯 보이지만 혼자 우울해하는 아이에게 특별히 관심을 주는 따뜻한 면을 보여줬으며, 정준하는 동물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하하와 정형돈은 숲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체험하는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역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을 주는 존재들이었다. 유재석이 우는 어린 아이를 안고 달래주고 있자 한 아이는 휴지를 빼서 그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낮잠을 자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하루가 끝나고 돌아가는 아이에게 문득 달려가 다시 안아준 하하의 설정 가득한 모습 속에는 그래서 진심 또한 묻어났다. 유재석은 가는 아이에게 팔을 벌려 한번 안아줄래 라고 물었고 다가와 안아주는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번 <무도> 어린이집 특집은 큰 웃음의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웃음만을 강조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억지로 상황극을 만들거나 현실에 대한 풍자를 섞기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에게 하루를 헌신하는 모습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웃음은 적었어도 저런 어린이집이면 믿을 수 있겠다는 바람을 전해준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돌아설 때의 그 부채감을. 그런데 그 어린이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 땅에 사는 부모들에게 더 큰 부채감을 만들어낸다. 큰 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더도 말고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무도> 어린이집이 보여준 것처럼.

 

<명량>의 민심, <해적>의 고래, <해무>의 참상

 

<명량>, <해적>에 이어 <해무>까지. 공교롭게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나온 한국 영화 3편이 모두 바다를 공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이 모두 단 몇 달 전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건 그 공간이 바다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이전부터 이미 영화 제작자들의 마음 속에 틈입되었을 현실들이 깔려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전부터 제작된 영화들이 마치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이 안타까운 일을 환기시킨다는 것은.

 

'사진출처:영화<명량>'

3백여 척이 넘는 왜적들과 어느 방향으로 휘돌아갈지 알 수 없는 죽음의 회오리 바다 위에서 그것도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장수와 병사들 그리고 민초들이 두려움을 넘어 세상과 싸우는 이야기 <명량>은 세월호 참사에서 숭고하게 희생된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제 살길이나 찾자며 도망치는 왕이나 신하들은, 가라앉는 배에 무력했던 정부의 리더십과 승객들을 책임지기는커녕 제 목숨 하나 챙기려 도망치는 선장을 연상케 한다.

 

죽을 줄 알면서도 그 명량의 바다로 나가는 이순신 장군과 병사들의 모습에서는 그 가라앉는 배의 두려움 속에서도 학생들을 향해 달려갔던 숭고한 선생님과 승무원들의 희생이 떠오른다. <명량>1400만 관객을 넘어 전무후무한 15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신드롬은 새삼 일어난 이순신 장군 열풍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세월호 참사로 인해 무겁게 생겨난 우리의 마음 깊숙이 존재하는 부채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적>은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지만 거기에서도 세월호의 잔상이 어른거린다. <명량>이 그러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국가는 좀체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민초들은 떠돌다 산적이나 해적이 되고 국가는 왕권을 인정받기 위해 명나라의 재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영화의 기막힌 풍자는 명나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가져오는 옥쇄를 고래가 꿀꺽 삼켜버린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고래인가. 조정은 고래가 옥쇄를 삼켰다는 그 사실이 백성들에게는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하늘의 뜻으로 읽힐 것이라며 해적까지 동원해 옥쇄를 되찾으려 한다. 즉 고래는 여기서 선량하지만 핍박받는 대다수의 백성들(천심)을 상징화한다. 어미 고래는 그저 자식을 보호하려할 뿐이지만 조정은 그 자식을 볼모삼아 고래를 죽이려 한다. 세월호의 침몰을 마치 우리나라의 침몰로 느낀 분들이라면 그저 자식 하나 보호하려 안간힘을 쓰다 쓰러져가는 고래에서 그 비슷한 잔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해무>IMF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감척사업으로 인해 폐선이 될 위기에 몰린 전진호가 밀항에 손을 대면서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이야기다. 만선의 꿈은 일찌감치 사라져버렸고 그저 생존하기 위해 벌인 일은 사람다운 땀과 노동의 공간이었던 전진호를 지옥 같은 살육의 공간으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 여기서도 우리는 세월호의 한 자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무엇이 선량했던 그들을 그렇게 악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게 만들었던가. 가라앉는 전진호는 그래서 자본의 논리 속에 인간실종으로 내몰린 세월호라는 결과를 상징화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 안개, 해무의 정국. 그 혼돈의 시간 속에서 그 혼돈에 가려진 채로 폭력들이 자행된다. 하지만 제 아무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그것을 마음속에서 마저 지울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몇 달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도 그걸 지울 수는 없는 것처럼. 그 원죄의식과 부채감은 그래서 고스란히 남은 자들에게 파국으로 다가온다.

 

<명량><해적> 그리고 <해무>라는 영화 세 편이 모두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건, 영화가 그걸 기획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이 참사가 벌어지기 전부터 우리네 참혹한 현실이 그 참사를 예고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미 그 전부터 <명량>의 바다는 버림받은 민심으로 들끓었고, <해적>의 바다는 무고한 백성들의 고래를 살육해왔으며, <해무>의 안개 가득한 바다 속으로 벼랑 끝에 몰린 가장들을 내몰아왔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는 그 무수한 과정들의 결과인 셈이다. 올 여름 극장가에는 웃음 속에서마저 그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채감과 잘못된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같은 현실 속에서 느껴지는 그 아픔에 대한 공감대가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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