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 김주혁의 소신과 열정은 어째서 무시될까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을 보다 보면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분노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아르곤’이라는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처한 상황과, 그 안에서 그 누구보다 소신을 지키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들이 어쩐지 제대로 평가받기보다는 오히려 핍박받는 위치에 서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아르곤(사진출처:tvN)'

HBC에서 보도의 중심은 메인 프로그램인 ‘뉴스9’이다. ‘아르곤’은 탐사 보도 프로그램으로서 특종을 해왔지만(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잦은 소송과 사과방송까지 하게 되었고 결국은 자정 시간대로 밀려난다. ‘아르곤’이 이렇게 된 것은 그 프로그램이 의미와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소신을 지키고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성역 없는 취재를 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김백진(김주혁) 앵커. 그는 재난보도에서 ‘뉴스9’이 정치적 목적으로 섣부르게 현장소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보도한 것을 백업 보도하지 않는다. 대신 그 보도가 편향되었다는 걸 알고는 이를 바로 반박 보도함으로써 방송사의 경연진들에 눈총을 산다. 팩트에 근거한 진실보도보다 방송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그들의 판단 때문이다. 

그는 말기암 판정을 받아 ‘뉴스9’을 물러나게 된 최근화(이경영) 앵커의 자리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길이다. 그의 라이벌로 사사건건 그의 발목을 잡는 유명호(이승준) 보도국장이 그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지만 유명호가 벌써 국장 자리에 오르게 된 건 진실보도에 대한 소신을 지키기보다는 정략적인 보도를 통해 오로지 출세의 길로만 달려온 덕분이다. 

유명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과거 ‘아르곤’이 했던 종교계 비리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건을 다시 끄집어온다. 그 종교단체가 갑자기 김백진을 지목해 소송을 벌인 것. 알고 보면 그것도 유명호가 뒤에서 꾸며낸 계략이었다. 소신 보도의 길을 걷다보니 많아진 소송 건들을 건드려 ‘뉴스9’ 메인 앵커 투표에서 그의 표를 깎아내려 했던 것. 결국 소신을 지키려 하는 이가 출세를 향해 달리는 이들에 의해 핍박받는 현실을 우리는 <아르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소신과 열정을 가진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김백진 같은 리더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리더와 함께 뛰고 또 뛰는 ‘아르곤’의 기자와 작가들은 그의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 똑같이 핍박받는 위치에 서게 된다. 그래서 마침 회사를 나가려 결심한 육혜리 작가(박희본)는 김백진 앵커의 소송을 취하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려 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안 김백진 앵커가 그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걸 분명히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연화(천우희) 같은 시용기자라는 특수한 계약직이 만들어진 것도 결국은 저런 출세만을 위해 달리는 유명호 같은 인물들 때문이다. 유명호는 자신을 지지하는데 사인을 하지 않은 이연화에게 계약직이라는 위치를 상기시키며 은근히 협박을 한다. 그것이 그들이 시용기자라는 특수한 계약직을 만들어 이용하는 방식이다. 

<아르곤>은 사실 드러내 놓고 지금 현재 공영방송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의 문제를 끄집어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르곤>이 그리고 있는 그 대결구도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공영방송 언론이 처한 상황을 가늠해낼 수 있다. 사실 소신을 지키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기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소금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잘 되는 현실이 아니다. 오히려 사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더 잘 되는 현실. <아르곤>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분노의 원천은 이렇게 우리네 현실과 맞닿아 있다.

'추격자'도 그랬는데 왜 '브이아이피'만 문제 삼느냐고?

영화 <브이아이피>는 북한에서 내려온 고위급 자제 연쇄살인범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져왔다. 누아르 장르를 표방하는 만큼 피가 튀는 총격전이나 칼부림은 심지어 미학적 액션으로까지 담아진다. 박훈정 감독의 전작이었던 <신세계>가 그러하듯이 이 작품이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이러한 폭력이 난무하는 누아르를 통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미국, 북한의 외교적 관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사진출처:영화 <브이아이피>

연쇄살인범을 잡았지만 북한의 고위 정보를 가진 그에게서 그 정보를 빼내기 위해 그를 보호하는 미국 측에 의해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연쇄살인범이 버젓이 일가족을 처참하게 유희를 위해 살해해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 못하는 북한의 비뚤어진 권력 체계. 그 안에서 피해를 보는 건 북한이든 남한이든 평범한 서민들인 상황. 이건 마치 사드 배치와 미사일 위협의 갈등 사이에서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가는 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정세를 압축해 보여주는 듯한 흥미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누아르에 덧댄 현실적 정경들 같은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브이아이피>는 비뚤어진 여성에 대한 의식을 담고 있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연쇄살인범이 저지르는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여성 살해 장면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데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그저 살인이 아니라 유희에 가깝기 때문에 특히 관객들은 왜 저런 장면이 저렇게 적나라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중이다.

사실 폭력적인 장면이 수반되기 마련인 누아르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소재로 다뤄진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추격자>도 그랬고, <살인의 추억>도 그랬다. 그러니 그 장면만으로 섣불리 이 영화가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의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왜 그런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과연 <브이아이피>는 적절한 답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추격자>나 <살인의 추억>의 경우 이 여성 피해자들이 더 이상 나오는 걸 막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형사들의 간절함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즉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과 동정 그리고 그런 일들을 벌이는 살인자에 대한 공적인 분노 같은 것들을 영화가 그 정서적 기저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이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나 국정원 요원도 또 북한에서부터 내려온 보안요원도 분노하는 건 이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대신 동료가 죽음을 당한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사적 분노가 더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야기의 동력이 브이아이피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굳이 그토록 잔인한 여성 피해자에 대한 묘사가 왜 필요했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영화가 중반 이상을 지나고 나면 여성 피해자에 대한 감정보다는 저들끼리의 대립에 의한 감정이 더 전면에 등장한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 가서 연쇄살인범이 최후를 맞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남는 불편함을 피할 수 없다. 그 불편함은 처절하게 당한 피해자가 있지만 그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이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대신 저들끼리의 액션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주는데 머무른다.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나아가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관점이 투영되었다고 느끼는 건 바로 이 소외된 피해자라는 지점 때문이다.

‘알쓸신잡’, 유시민이 분노한 시대착오적 낙화암 소개 

“지금 여러분이 이용하고 있는 이 강은 백마강으로 낙화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당나라로 하여금 멸망할 때 적군의 노리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여 이렇게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감싸고 백마강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처럼 우리 민족사의 여인들은 백의민족이며 정절을 중요시하는 순박한 여인들로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tvN <알쓸신잡>이 떠난 여행에서 낙화암을 둘러보는 유람선에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의 내용에 유시민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 자체가 무려 1500년 간이나 ‘가짜 뉴스’로 내려오며 진짜 역사적 사실인 양 굳어져 가고 있던 사안이 아닌가. 역사란 팩트 그 자체가 아니라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인정하는 일이다. 이렇게 달라진 역사관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낙화암을 둘러싼 의자왕의 이야기가 여전히 승자들의 윤색에 의해 지금까지도 그대로 믿어지고 있다는 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시민은 사실 ‘백마강’이라는 이름 자체도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며 ‘조룡대’ 이야기를 꺼냈다. 용을 낚았다는 뜻을 가진 조룡대 이야기는 사실상 당시 당나라 장수였던 소정방의 관점으로 기술된 신격화된 무용담으로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는 것. 무왕이 용이 되어 지킨다는 그 강에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해서 그 용을 낚았다 해서 조룡대란다. 그래서 그 강의 이름도 백마강이라는 것. 어떻게 이런 식의 신격화된 해석들이 지금까지도 안내판에 버젓이 담겨 그 곳을 찾는 이들이 읽게 내버려두고 있게 된 것일까. 

소설가 김영하는 기분 나쁜 일이지만 점령군 장군에 대한 숭배는 늘 있어왔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 장군을 신으로 숭배하는 일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 정재승은 그래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로 농담을 섞어 아픈 현실을 꼬집었다. 과거에 역사로 기술되었다고 해도 현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그것이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덧붙였다. 

그런데 저 낙화암에 대한 유람선에서의 안내방송에 담긴 건 단지 역사적 사실의 왜곡 문제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등장하는 ‘정절’ 이야기와 ‘백의민족’ 게다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소개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나 먹힐 이야기가 지금도 버젓이 안내방송에 나오고 있다니...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네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거기 담긴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지만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조차 되지 않고 지나치는 것.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관심을 안 갖고 내버려두니까 있는 대로 그냥 흘러가는 거야. 누가 문제제기를 해야 바뀌어지지.”

<알쓸신잡>은 이런 사안들을 이미 저 강릉의 오죽헌에서도 발견한 바 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율곡의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진 안내판. 조금 있는 신사임당 이야기도 그저 율곡의 어머니로서만 기록된 글들. 세상은 이미 바뀌었는데 그 세상 안에 들어차 있는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은 여전하다. 그 일상에 가득한 문제들을 계속 끄집어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은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해나가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인문학을 그저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인문학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전들이 현재에 어떻게 적용되고, 그래서 현재의 문제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까지 적용될 때 비로소 그 인문학은 효용성을 갖는 것이 아닐까. <알쓸신잡>이 그 많은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문제들을 직접 발로 경험하며 끄집어내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 그래야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

‘품위녀’ 김선아, 통쾌한데 불편한 이유는 뭘까

저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강남의 부호들로서 뭐든 사고 싶은 건 사고 하고 싶은 건 하는 그들이다. 그들이 사는 집 자체가 서민들에게는 현실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문을 통과해 들어가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되는 대저택에, 도대체 방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집안. 게다가 그 집에서 주인들을 위해 일하는 아주머니들.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가 보여주는 강남의 부호들이 사는 모양은 보통의 서민들에게는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게다가 이 걱정 하나 없이 살아갈 것 같은 이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 가관이다. 불륜은 마치 공기처럼 퍼져 있고, 심지어 공공연히 아내에게 내놓고 내연녀 이야기를 하는 남편도 있다. 아는 언니의 남편과 바람을 피우고 자신의 레지던스에서 상습적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딸의 미술선생과도 바람이 난다. 마치 일반적인 삶은 이제 지겹다는 듯 탈선은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니 이 세계 속으로 들어간 박복자(김선아) 같은 흙수저의 서민이 가진 알 수 없는 분노와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욕망을 채우려는 그 모습들에 시청자들은 양가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편으로는 저 위화감을 주는 세계를 파괴해가는 박복자의 행각에 통쾌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가 저지르고 있는 그 범죄가 주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건 그나마 이 세계에서 어떤 자신만의 룰을 지키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아진(김희선)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모두가 불륜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욕망을 분출하며 살아갈 때 그녀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모두가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들을 하녀처럼 부릴 때 그녀는 그 분들의 자녀의 생일선물을 챙겨준다. 물론 그것 역시 그녀가 가진 허영일 수 있다. 자신은 충분히 가졌지만 또한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박복자에 의해 우아진의 세계가 깨져버리는 이 구도는 아마도 <품위 있는 그녀>가 의도하고 있는 자본화된 사회의 부박함을 잘 드러낸다. 이름처럼 박복한 여자의 도발로 인해 그 우아한 세계가 깨져갈 수 있는 건 이 모든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안태동 회장(김용건)이기 때문이다. 우아진은 박복자에게 멈추라고 했고, 급기야 “나가야 한다”고 명했지만 어느새 안태동의 마음을 사로잡은 박복자는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 존재가 된다.

돈줄이 모든 권력의 중심이 되고 그 중심을 쥐는 것으로 이 시스템의 권력을 쥐게 되는 박복자는 그래서 이제 우아진을 비롯한 그 집안을 장악하는 새로운 실세로 등장한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건이지만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이 공고한 시스템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드라마는 말해준다. 박복자에게 느끼는 동정과 분노는 이 시스템의 을로서 갖게 되는 이중적인 감정이다.

이로서 드디어 만들어진 우아진과 박복자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흥미진진해진다. 시청자들은 때론 박복자의 도발 앞에 우아진이 그녀의 욕망을 멈추게 해주길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우아진의 그 위화감을 주는 세계가 박복자에 의해 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미 드라마 초반에 등장한 바 있다. 박복자의 죽음. 그것은 욕망의 끝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파괴된 우아진의 세계를 말해주는 일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비극이지만 또한 우리 사회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는 이 대결구도가 가진 흥미진진함과 그 안에서 인물들이 일으키는 동정과 분노의 양가감정의 힘에 의해 팽팽하게 흘러간다. 그러면서 그 대결구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품위 있는 그녀>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가져가는 독특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엘르’, 우리에게 이 영화의 울림이 적지 않은 이유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엘르>는 집으로 난입한 복면의 남자에게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난폭한 그 장면을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가 바라본다. 그런데 이 미셸의 반응이 이상하다. 강간을 당했다면 응당 굉장한 충격을 받아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해야 하지만, 그녀는 마치 그것이 일상이라는 듯 깨진 잔을 빗자루로 치운다. 물론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는다. 나중에 친구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만 더 놀라는 건 친구들이다. 그녀는 너무나 담담하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사진출처:영화<엘르>

그녀의 이 담담한 얼굴은 관객들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것은 그녀의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친구인 안나(앤 콘시니)와 함께 게임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미셸은 마침 회사에서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캐릭터의 성폭력 동영상이 메일로 전 직원에게 퍼지는 사건을 겪는다. 하지만 누가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뿐 그녀는 역시 이를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공포심을 갖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담담해진 이유로서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이 밑거름을 제공한다. 아버지가 수십 명을 무차별 살해한 사이코패스였고, 그 살해 현장에서 찍힌 그녀의 사진은 마치 그녀마저 아버지의 공범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사실 이 정도의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면 그녀의 담담함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녀는 폭력적인 사건들이 일상인 세상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감옥에서만 평생을 산 아버지를 그녀의 엄마는 자꾸만 찾아가 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트라우마이며 벗어나고픈 과거일 뿐이다. 엄마는 집착적으로 젊은 남자와 그 나이에도 연애를 하고, 미셸은 그런 엄마의 삶이 어딘지 잘못되어 있다고 느낀다. 또 피부 색깔이 다른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 믿으며 여자친구에 집착하는 아들의 삶 역시 엇나가 있다 여긴다. 무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녀 역시 자신이 겪는 사건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잘못된 것들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다만 어떤 촉발점이 없을 뿐이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 촉발점이 되어준다. 친구인 안나에게 엄마의 연애행각을 보며 “내가 저렇게 살면 죽여줘”라고 말하는 미셸은 엄마처럼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보다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은 단지 안에 들어가는 재에 불과한 삶이라는 걸 엄마의 죽음으로 확인한 그녀는 아버지를 찾아가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엇나가게 만든 아버지라는 트라우마를 진정으로 죽여 버리고 싶어 총 쏘는 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정작 교도소를 찾아간 그날 아버지는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가 찾아가겠다는 그 말 한 마디가 아버지에게는 총알이 되어 날아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가 자신이 호감을 가졌던 이웃집 남자 패트릭(로랭 라피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끌림과 폭력 사이에서 갈등한다. 평상시 신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패트릭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동시에 폭력이 아니면 사랑이 되지 않는 그 남자의 실체 앞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패트릭이라는 남성은 얼마나 여성들에게 폭력이 일상적으로 가까이 존재하는가를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 모든 문제들을 자신이 겪었던 그 방식으로 해결한다. 과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차별 살인 속에서 자신이 피해자였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황 속에서 가해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그 살인 현장에 서게 되지만. 

<엘르>는 일상적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절한 복수를 하는 그런 영화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성들을 둘러싼 일상적 폭력들이 섬뜩할 정도로 잘 담겨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이자벨 위페르의 그 무심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냉철한 얼굴은 그래서 쿨하게도 다가오지만 동시에 일상적 폭력 속에서 둔감해진 여성의 아픈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한 편이 이토록 다양한 상징적 의미들과 확장성을 갖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특히 우리처럼 여성들이 오래도록 가부장적 틀에서 살아오며 피부에 이식되어 이제는 그게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자행되는 일상의 폭력들을 겪는 사회에서 <엘르> 같은 영화가 주는 울림과 카타르시스는 의외로 크다. 여성들이 느낄 폭력의 실체를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그런 영화다.

‘쌈마이웨이’, 송하윤의 눈물과 엄마의 피눈물

“결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엎으고 우리 설희 앞에 다신 얼씬대지도 마러라. 그 따우 집구석에 나는 우리 딸 안 보낸다.” 이렇게 적으려던 엄마는 썼던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적는다. “주만아, 잘 지내지? 본지가 오래 되었구나. 설희가 혼자 돌잔치에 가 있다. 설희가 너를 참 많이 좋아한다. 우리 설희 그저 많이 예뻐해다오.” 본래 쓰려던 문자와 보낸 문자 사이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느껴지던 본래 쓰려던 문자는 한껏 정제되고 차분한 문자로 바뀌었다. 엄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엄마와 딸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어내는 걸까. 딸 백설희(송하윤)는 엄마가 주만(안재홍)에게 보낸 문자를 읽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날 낮 예비시댁의 백일잔치에서 종업원처럼 일하던 자신의 모습을 엄마가 봤을 거라는 걸 그녀는 단박에 알아차린다. 한쪽으로 치워져 있던 쓰레기를 엄마가 치워놓았다는 것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걸 봤을 엄마의 마음이 설희를 눈물 흘리게 한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에서 백설희라는 청춘은 지나치게 저자세다.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고기를 잘라준다. 그녀는 6년 동안이나 남자친구 주만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그 덕에 주만은 홈쇼핑 회사에 들어가 대리를 달고 살아간다. 하지만 백설희는 여전히 주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그것은 그녀의 삶 전체를 저자세로 만들어버린다.

주만은 그녀에게 “네가 모자란 게 뭐가 있냐?”고 질책하며 제발 저자세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누나네 백일잔치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설희를 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이나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의 그런 희생에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늘 그래왔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주만의 집안사람들은 설희가 주만과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한다. 

그래도 온전히 그녀를 챙겨주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건 주만이다. 그는 집안 사람들에게 설희를 무시하지 말라고 호통치고, 설희와 결혼을 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아니면 자신은 결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인턴 장예진(표예진)에게 철벽을 치고, 혹여나 이를 신경 쓸 설희를 걱정한다. 

<쌈마이웨이>는 빈부 격차로 인해 태생적으로 스펙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가지지 못한 청춘들이 겪는 현실을 멜로로 엮어낸 드라마다. 하지만 그 짠내 나는 현실은 청춘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 청춘의 부모들은 그 현실 앞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죄인이 된다. 백설희라는 청춘이 눈물을 흘릴 때, 그걸 바라보는 엄마는 피눈물이 흐른다. 

족발집을 하는 설희네 가게에서 족발을 자르는 남편에게 설희 엄마가 슬쩍 한 마디를 던져본다. “우리 족발집 때려치고 레스토랑이나 하나 할까?” 낮에 백일잔치에서 주만네 집 사람들이 설희네가 족발집을 한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다. 주만에게 선이 들어왔는데 그 집이 레스토랑을 한다는 이야기에 설희 엄마는 괜스레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왜 그러냐는 남편의 물음에 설희 엄마는 말한다. “그냥 설희가 족발집 딸이라는 게 싫어서.” 

힘겨운 청춘들, 어째서 부모가 죄인이 되어야 할까. <쌈마이웨이>가 던지는 질문이다.

정의 없는 세상, ‘파수꾼’의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지점

“니들이 못 잡고 안 잡으니까 내가 대신 잡았잖아!” MBC <파수꾼>이라는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아마도 이 조수지(이시영)가 던지는 한 마디 속에 압축되어 있을 것이다. 검찰이 있고 검사가 있지만 그들은 범인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검장의 아들이 조수지의 아이를 살해한 혐의를 받자 검찰은 그 아들을 무혐의로 만드는 것으로 지검장에 줄을 서려 한다. 결국 아이가 희생되자 조수지는 법 정의가 이 사회에서 무력하다는 걸 실감하고 스스로 총을 든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녀가 살인미수로 현상수배범이 되어 쫓기며 살아가는 것이었고, 그 지검장은 검찰총장이 되어 그녀를 더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파수꾼(사진출처:MBC)'

법이 정의의 편이 아니라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걸 담은 드라마들은 꽤 많았다. 대부분의 법정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이런 테마들을 담고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수상한 파트너>에서도 가진 것 없는 여주인공이 엉뚱하게 살해 용의자가 되었다가 남주인공에 의해 가까스로 풀려나지만 그 후로 이 남녀의 미래는 가시밭길이 되어버린다. 법 정의가 진실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가진 자들을 비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생겨난 현실들이다. 

<파수꾼>은 그래서 아예 법 바깥에서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가상조직을 판타지로 그려낸다. 조수지를 끌어들인 이 조직은 장도한(김영광)을 수장으로 서보미(김슬기)와 공경수(키)가 함께 모여 비뚤어진 법 정의를 바로잡는 일을 음지에서 한다. CCTV를 통한 감시와 해킹을 통한 정보 수집 등을 서보미와 공경수가 한다면, 조수지는 몸으로 부딪쳐 임무를 수행하는 행동대원이다. 

그래서 <파수꾼>의 관전 포인트는 시작부터 보여졌던 이시영의 액션이 그 첫 번째다. 오토바이로 자동차를 추격하며 아슬아슬한 액션을 선보이는 이시영의 걸 크러시는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화제가 되는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가 가진 겉모습일 뿐이다. <파수꾼>이 가진 실제의 힘은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숨겨진 분노와 울분 속에 들어 있다. 

이시영이 연기하는 조수지라는 인물은 딸을 잃는 그 과정을 통해 그 울분을 드러내지만, 시작부터 어딘지 출세에 눈먼 속물 검사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 장도한은 더 큰 분노를 숨긴 채 와신상담하는 중이다. 그는 정의를 향해 직진하려 애쓰는 김은중(김태훈) 검사에게 말한다. “너처럼 하면 절대 저들을 못 잡아.”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장도한은 그래서 검찰 조직 속으로 들어온 언더커버나 마찬가지다. 보통 조폭들 속으로 들어간 형사들의 언더커버가 그려지는 것과 달리, 검찰 조직을 상대로 들어온 검사의 언더커버가 의미하는 건 이 법 정의를 구현해야할 집단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다. 

그래서 <파수꾼>은 법 집행을 하는 검찰과 싸우는 은밀한 조직의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사적인 정보들을 캐내고 그것을 통해 협박을 하기도 하는 이 파수꾼들은 그래서 법 바깥에 존재한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범죄행위가 포함된 사투지만 더 큰 악과 싸우다는 점에서 용인된다. 

어찌 보면 단순한 대결구도다. 하지만 이 단순함이 의외로 힘이 세지는 건 지금의 대중들이 느끼는 법에 대한 정서가 이 불씨를 불길로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무수히 쏟아지는 법비들과 싸워나가는 법정드라마들은 돈 없으면 무고해도 죄인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담고 있다. 이들의 액션이 그저 통쾌하기보다는 어딘지 짠하게 다가오는 건 이렇게 해서라도 잠깐이나마 속이라도 풀어보겠다는 정서가 그 안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상한 파트너’, 공적인 일과 사적인 감정 사이

“너는 인질이야. 니가 있어야 범인이 나타났을 때 내가 잡을 수 있지.”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에서 노지욱(지창욱)은 은봉희(남지현)를 자신의 집으로 들이며 그렇게 말한다. 변호사일도 접고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려 마음먹었던 은봉희의 마음이 흔들린다. 노지욱은 어느 날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툭 “너 내 사람 되라”고 했던 것이 진심이라고 말한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누가 봐도 이들은 밀당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인질’이라는 표현은 마치 그들의 동거가 범인을 잡기 위한 공적인 일처럼 만들지만 그건 누가 봐도 동거하자는 말이다. 또 “내 사람 되라”는 말 역시 노지욱이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합류해서 일하자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은봉희에게 ‘내 사람’이 되라는 사적이고 멜로적인 감정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은봉희는 ‘인질’이라는 말에 설렌다. 왜 이렇게 잘 해주냐고 묻자 “인류애”라고 했던 노지욱을 떠올리며 “인류애에서 인질로 발전했다”며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좋아한다. 이것은 <수상한 파트너>가 그리고 있는 멜로의 실체다. 거기에는 사적인 차원의 멜로와 공적인 차원의 일(변호, 진범 찾아 누명 벗기)이 겹쳐져 있다. 멜로적 상황이 나올 때마다 인물들은 그것이 그저 공적인 일일 뿐이라고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그 공적인 일 안에서는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적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또 한 축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적 편견의 문제나 진실과 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공적 사안과 사적 감정들은 뒤엉킨다. 은봉희를 아들의 살인범으로 생각했지만 풀려나게 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지검장 장무영(김홍파)은 그 사적인 감정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하는 은봉희에게 그는 그렇다면 진범을 잡아오라고 말한다. 그는 누구든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 셰프의 살해 용의자로 붙잡힌 택배 기사가 은봉희를 변호사로 지목하고, 그녀가 그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을 때 그녀 역시 공적인 선을 넘어 사적인 감정으로 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한다. 그 택배 기사의 상황이 자신이 과거 살인자로 몰려 있을 때의 처지와 너무나 똑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때 노지욱이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주었듯이 그녀는 그에게 동아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에게 노지욱은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말한다. 장무영도 또 은봉희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사적인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드라마의 실체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노지욱과 은봉희는 사건을 맡아 변호를 하면서도 멜로적 상황들을 놓치지 않는다. 택배기사의 변호를 하면서도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사건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얼굴이 아니라 사랑에 이제 막 빠지려는 연인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멜로적 상황을 일로서 슬쩍 감추는 그 방식은 오히려 이 멜로의 감정들은 더 강화시키는 힘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진짜 살인범을 잡아 누명에서 벗어나는 목표를 갖고 있고, 또한 억울한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의 변호를 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이러한 멜로적 상황들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게 만든다. 공적인 입장과 사적인 감정들이 겹쳐져 일과 사랑을 명쾌하게 가르지 못하고 혼재시키는 상황들은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완벽하지 못하고 어딘지 부족하지만 그것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것. 

그래서 <수상한 파트너>에는 그 흔한 갑을관계조차 혹은 절친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불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친구들 관계에서조차 가해자와 피해자로 선악이 구분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노지욱의 모친인 홍복자(남기애)가 운영하는 피자집에 은봉희의 모친인 박영순(윤복인)이 아르바이트로 들어오자 홍복자는 이른바 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전형적인 상황 속에서도 박영순은 결코 만만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갑과 을의 상황은 마치 친한 친구들이 툭탁대는 모습처럼 유쾌하게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오며 절친으로 지냈지만 노지욱의 여자친구와 불륜을 저질러 이제는 멀어져버린 지은혁(최태준)을 대하는 노지욱의 감정은 미움과 분노와 더불어 우정이 겹쳐져 있다. 그래서 노지욱은 지은혁을 결코 앞으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지만 그들을 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저지르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다. 

<수상한 파트너>는 온전히 로맨틱 코미디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또 진범을 찾아내고 그래서 누명을 벗는 법정드라마로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부분이 엮어져 만들어내는 공적인 일들과 사적인 감정들의 혼재와 그 안에서 슬쩍 슬쩍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쩌면 이 드라마만이 가진 특별한 재미가 아닐까. 그 부족하고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하는 모습들이 그토록 예뻐 보일 수가 없으니.

'역적' 김상중이 미친 듯이 연기해낸 한 노비의 초상

“우리 길현 어매, 길동이는 손가락 빨렸어도 도련님한테는 젖 물렸고, 우리 길현이는 도련님 대신해 숱하게 매 맞으면서 커들 않았서라. 내는 이날 이때까지 나리 모시느라고 허리 한 번 못 펴봤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이 집에 뼈며 살이며 힘줄까지 발라 바쳤는데... 아녀 아녀 나리 잘못이 아녀. 다 내 탓이여. 나리가 뭔 잘못이 있겄어. 온통 노비들은 인간이 아니라고들 하는데 나리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겄어... 어째서 그 때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잉.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싹 다 죽여뿔고 새로 태어날 생각을 워째 못했을까잉.”

'역적(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역적>에서 아내의 죽음에 아모개(김상중)는 드디어 사태를 깨닫고 각성한다. 자신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이 지옥 같은 노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의 주인인 조참봉(손종학)을 향해 낫을 든다. 그에게 ‘아모개’라는 이름을 지어준 조참봉에게 그는 “이름을 고 따위로 지어 놓으니께 아모개는 아무케나 살아도 되는 줄 알았냐”며 끝내 분노를 터트린다. 

남다른 힘을 가지고 태어난 길동이(이로운)에게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힘을 보이지 말라고 당부하는 아모개는 결국 자신 역시 화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왔던 그 힘을 꺼내 보인다. 그는 길동에게 애기 장수 이야기를 해주며 천인이 힘을 보이면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모두 죽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억누르고 누르며 살아왔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노비를 아모개라 이름지어버리고 아무렇게나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역적>이 그리고 있는 세상은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노비들을 착취하고 수탈하며 심지어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목숨을 거둬가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 양반들의 세계다. 그들은 노비들이 가진 것들을 죄다 빼앗는 도적들이지만 이 이상한 세상에서는 그것이 전혀 죄가 아니고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 양반들은 좀 더 높은 신분에 오르기 위해 수탈한 것들을 더 높은 이들에게 상납한다. 이 수직적 수탈 체계의 끝은 왕이다. 왕의 뒤에 서서 권세를 잡기 위한 줄서기는 그래서 끝없이 아래쪽을 착취하는 일로 이뤄진다. 

다른 한 세계는 양반들에게 재물을 눈앞에서 빼앗겨도 그게 전부 “주인님 것”이라고 피눈물을 토하며 얘기해야 하는 세계다. 아모개 역시 양반들의 재물을 도적질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도적질이 된다.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도 분노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어떤 힘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온 가족이 죽을 위기에까지 처하게 되는 이 이상한 세상. <역적>은 이 두 개의 세계가 부딪치며 누가 진짜 도적이고 역적인가를 묻는 드라마다. 

단 2회를 보여준 것뿐이지만 <역적>이 갖고 있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온 몸으로 연기해 보여준 김상중의 존재감은 칭찬 받을 만하다. 사실상 그의 역할은 <역적>에서 힘을 갖고 있지만 힘을 드러내지 못하는 길동이 그의 비극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각성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극이 앞으로 나가는데 있어서 그 밑바탕이 되는 민초들의 분노 같은 정서를 깔아두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역할이 중요했던 건 이 시대를 훌쩍 뛰어넘은 이야기를 왜 지금 우리가 들여다봐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미친 듯이 연기해낸 아모개라는 한 노비의 초상은, 가족들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들끼리 벌이는 ‘도적질’에 의해 나라는 갈수록 피폐되고 서민들의 삶은 더더욱 힘들어진 현재에 더 큰 울림을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실을 각성한 아모개의 절규는 이름 없이 묵묵히 성실하게만 살아왔던 많은 대중들을 공감시킨다. 바로 이 아모개의 연기를 통해 김상중은 단 2회 만에 <역적>을 기대작으로 만들었다.

<무도>의 꺼지지 않는 현실 인식, 이러니 국민예능이지

 

이걸 보면 사람들이 박수를 쳐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나요.”, “뜨거운 데 만질 수 있어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 7살 어린이가 또박또박 던지는 말들이 새삼 가슴에 콕콕 박힌다. 아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촛불이다. 정답을 확인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조금은 숙연해졌다. 정준하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아이의 표현에 그게 중의적인 표현이었네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아이가 촛불집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라는 말 하나일 것이다. “이걸 보면 박수를 친다는 건 아무래도 생일을 떠올리는 광경일 테고,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건 바람 앞에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이가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한도전>이 아이의 목소리를 담아 그걸 퀴즈로 낸 건 이렇게 에둘러 촛불집회에 대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른바 산타를 뽑는 미션을 가진 산타 아카데미라는 특집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현실 인식을 놓지 않았다. 산타복을 입은 멤버들의 가슴에는 그 빨간 산타복 때문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는 예고된 대로 산타 아카데미가 본격화되며 한바탕 몸 개그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막을 통해서건 특별한 상황들이 연출되건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한 의식을 놓지 않을 거라는 게 그 노란 리본 속에 담겨있었다.

 

알고 보면 북극곰의 눈물특집 역시 곳곳에 사용된 자막의 표현들은 현 시국에 대한 정서들을 반영한 것들이 있었다. ‘분노라는 단어도 사지라는 표현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아직 바다가 얼지 않아 북극해를 건너지 못하는 북극곰들의 기다림은 마치 온 국민이 염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처럼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바다가 조금씩 얼어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후일담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분 나쁜 날<기분 좋은 날>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여러모로 현 시국의 대중정서를 제목을 담은 것이 분명했다. 캐나다에서 북극곰을 보고 돌아온 박명수와 정준하에게 이것저것 묻는 과정에서 엉뚱하거나 무지한 답변을 반복하는 그들을 세워두고 무시하거나 몰아세우는 일종의 상황극으로 그들을 기분 나쁘게하는 콘셉트. “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유재석의 멘트로 시작한 코너는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이 예고한 2017년 신년 프로젝트 국민내각특집은 <무한도전>이 지금의 시국에 던지는 한바탕 사이다 예능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 것이라고 소개한 국민내각특집에 대해서 유재석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어떤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해 주시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참여와 소통의 의지를 보여주는 <무한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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